어떻게 해도 아니다

칠월 육 일 오후 11시 59분이다. 이제 1분만 있으면 칠월 칠 일이 된다. 검푸른 곰팡이가 좁은 우리 집 욕실 타일 틈새에 빼곡하게 피었다. 더럽다. 나는 검푸른 게 싫다. 검푸르고 더러운 건 더 싫다. 물에 희석한 락스를 세척 솔에 묻힌다. 곰팡이가 죽어버릴 때까지 박박 문지른다. 곰팡이 시체가 수챗구멍으로 녹아든다. 욕조 안에선 빨간 거품이 인다. 락스 냄새 때문에 코가 아파서 짜증난다.

오후 9시에 경지가 우리 집에 온댔다. 얼굴 좀 보자고. 경지와는 일주일 전에 싸웠다. 경지는 내가 질린다는 말을 했었다. 난 경지가 오기 1시간 전부터 경지의 입에 쑤셔 넣어질지 내 얼굴에 엎어질지 모를 저녁을 준비했다. 경지가 좋아하는 밀푀유 나베, 일본식 어묵조림, 각종 잡 반찬을 하얀 접이식 밥상 위에 고르게 나열한다. 이왕이면 전부 경지의 입에 쑤셔 넣어졌으면 좋겠다. 경지가 예쁘다고 했던 검정 머리핀도 옆머리에 예쁘게 찼다.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경지가 도착했나보다.

현관문을 끽 여니 경지가 어색하게 서 있다. 경지는 빳빳한 정장을 입고 어색한 걸음걸이로 어색하게 갈색 구두를 벗고 어색하게 내게 묻는다. 이게 다 뭐냐고. 이거? 너 좋아하는 거. 배고프잖아. 경지는 경지의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경지는 나랑 싸울 때 마다 머리칼을 쓸어 넘겼었다. 그건 경지의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다. 나는 왜 경지가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다. 경지가 좋아하는 것만 있는데 말이다. 경지는 머리칼을 쓸어 넘긴 뒤에 밥상에 마지못해 앉는다. 난 경지의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는다. 경지는 한참 밀푀유 나베와 일본식 어묵조림을 번갈아서 쳐다보다 말한다. 경지의 언어는 너무 폭력적이니 내가 대충 요약하겠다. 경지는 이제 나랑 친구도 연인도 동료도 아무것도 되기 싫다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 했던 말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경지가 너무 너무 좋아서 화난다. 화나지만 나는 경지를 좋아하니까 참는다. 경지는 또 머리를 쓸어 넘기고 한숨을 내쉬더니 또 말했다. 이제 밖에서 아는 척 하지 말라고. 난 알았다고 했다. 알겠으니까 차려놓은 건 좀 먹고 가라고, 나 혼자 다 못 먹을 거라고 손톱을 잘근대며 말했다. 착한 경지는 그걸 또 먹어준다.

경지랑 나는 밀푀유 나베를 다 먹고 일본식 어묵조림은 절반 남겼다. 각종 잡 반찬은 많이 남겼다. 경지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지 않는다. 나는 반찬들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어묵조림은 버렸다. 어묵조림을 담았던 접시와 나베를 담았던 냄비를 싱크대에 넣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천 수세미에 포도냄새가 나는 퐁퐁을 두 번 펌핑하곤 접시와 냄비를 박박 닦는다. 경지는 그냥 앉아있다. 접시와 냄비가 부딪혀 나는 소리가 경지와 내가 있는 우리 집을 가득 채운다. 시끄러워 죽겠는 적막이다. 경지가 먼저 입을 뗐다. 경지는 내가 왜 부담스러웠고 왜 싫었고 왜 질렸고 왜 경지는 화를 냈는지 말했다. 나는 듣기 싫었다. 경지는 이어 말했다. 지금 니가 그 머리핀 낀 것도 소름 돋고 아무 일도 없는 것 마냥 행동하는 게 무섭댔다. 나는 그것도 듣기 싫었다. 경지는 또

야 너는. 너는 애가 왜 그러냐? 멀쩡하게 생겨서 왜 그래? 난 진짜 이해할 수가 없어. 어. 저거. 나베도. 니가 먹어 달래서 먹긴 했는데 진짜 기분 더러워. 내가 너보다 이상한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너 맞아 죽었어. 진짜.

(나는 경지가 하는 말이 진짜 개 너무 듣기 싫었다. 경지가 입으로 거미를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못생긴 거미가 경지의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진다고 생각했다. 경지는 지금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거미를 뱉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또 참았다.)

짜증나고……. 됐어. 내가 무슨 말을 하냐. 나 없다고 죽지만 마라. 죽어도 유서에 내 이름 쓰지 마. 이제 갈게.

경지는 앉아 있느라 구겨진 빳빳했던 정장을 가지런히 다듬고 일어났다. 우리 집은 화장실 문을 열어둔다. 검푸른 곰팡이가 피었기 때문이다. 습기 차는 게 싫어서 다시 곰팡이가 피는 게 싫어서 이젠 열어둔다. 현관 복도 옆에 있는 화장실이다. 경지가 현관으로 가느라 문 열린 우리 집 화장실 옆을 지나던 찰나에 나는 또 참으려고 했다. 진짜 참으려고 했었다 나는. 근데. 경지야.

내가 죽는 댔니? 내가 죽는 댔냐고? 내가 너 머리통에 고막에 대고 지금 당장 죽는다고 말려 보라고 내가 그런 말이라도 했냐? 언제? 언제 했는데? 죽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도대체? 내가 어제 식물성 크림이 들은 빵을 먹었는지 동물성 크림이 들은 빵을 먹었는지 어제 저녁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먹었으면 몇 시에 먹었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어제 동묘 거리에 나가서 싸구려 옷더미를 사뒀는지 아니면 동네 산책을 했는지도 모르면서(알 필요도 없었고 알아두려는 노력도 없으면서 없을 거면서?) 죽지 말라는 말을 도대체 왜 하는 거냐? 죽지 말라는 말을 하려면 적어도 내가 그냥 물을 마시고 사는지 양잿물을 마시고 사는지는 알아야 하는 게 아니냐? 경지야 너는 내가 좋아서 죽겠니? 좋아서 죽겠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지? 경지야 나는 너가 너무 좋아서 죽겠는데 너는 아니지? 아닌 건 아닌 거지? 어떻게 해도 아니지? 아닌 걸 나도 알고 있지? (너가 아까 싫댔으니까! 질린댔으니까!)

나는 놀랐고 무섭고 어이없는 눈을 한 경지를 힘껏 밀어버렸다. 경지가 문 열린 화장실 문지방에 누워버렸다. 경지는 내 말을 참을 수 없었는지 화장실 바닥에 머리를 찧고 화장실 타일 틈바귀 모양대로 누웠다. 틈바귀로 피가 굴러간다. 나는 경지가 너무 걱정됐다. 경지에게 미안했다. 경지는 너무 약해서 계속 나를 참게 만들었나보다. 나는 경지를 질질 끌어 욕조에 넣어줬다. 욕조는 우리 집 화장실에서 제일 깨끗한 부분이라 그랬다. 내가 아끼던 비싼 입욕제도 풀어줬다. 이러면 경지도 참을 수 있을 거다. 귀찮아서 방치해둔 검푸른 곰팡이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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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명실님은 인물의 감정을 단순화 시키는 방법으로 가장 폭발적인 순간을 담는 것 같아요. 제 취향이기도 하고, 감각적으로 느껴져서 좋습니다. 다만 이번 글은 마무리가 좀 아쉬워요. 경지의 죽음을 암시하는 부분과 그 전에 주인공이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이 특히 그렇습니다. 인물의 죽음에 꼭 어떤 단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느껴졌어요. 주인공이 앞 부분에서 좀 더 행동에 볼륨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감정을 터뜨리고-밀친다 라는 행위까지 도달할 수 있어보여요.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