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이해

오랜만에 차를 타고 먼 길을 가니 멀미가 났다. 열차는 탔어도 차는 두 시간을 넘게 탄 적이 잘 없어서 그런지 힘들었다. 그래도 차에서 내려 몸을 펴자 좀 나아졌다. 아버지한테서 온 부재중 전화가 네 통이 넘었지만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기 근방이 참 좋아요. 저기 보면 물도 흐르고. 아, 저기가 수력발전소인데, 저게 글쎄, 경치를 다 망치고 세금 낭비하는 겁니다. 우리 사는 사람들은 반대했는데 뭐 마을 살리기 한다고 저런 쓸데없는걸.”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죠?”

“삼십 분? 얼마 안 걸립니다. 하도 그 멀미가 난다 하니까 잠깐 내린 거지, 얼마 안 걸려요.”

나는 다른 말은 더 안 하고 휴대폰을 꺼서 전화가 오는 걸 막았다.

“그나저나 이런 깡촌에 무슨 일로 오셨어요? 택시로 거금까지 써가시면서.”

“일이 있어서요. 차비는 다 일하는 곳에서 주니까 택시 탔죠. 근데 다른 거 탈 걸 그랬네요.”

“다른 거 탈 것도 없어요. 여긴 무조건 본인 차 아니면 택시. 버스도 안 다니는데 뭐. 돌아갈 때도 저 없으면 가기 힘드실 겁니다. 하하.”

다시 차를 탔다. 택시기사는 빨리 안 가도 된다고 하니 한참 전화를 했다. 대충 자기 집사람과 통화한 것 같았다.

“혹시 무슨 일 하시는지?”

한동안 조용히 가다가 또 말을 꺼냈다. 귀찮게 계속 말을 걸어서 대충 출장 왔다고 했다. 그렇게 택시기사가 묻는 말에 대충 답을 하니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건물은 엄청 컸다. 산중에 있는 건물치고는 너무 컸다. 택시는 하루를 통째로 빌린 거라 택시기사는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야, 이게 뭐래요? 나도 처음 와보는데. 이런 곳이 있었네.”

“‘두 마음 정신집중치료원’ 딱 보면 감이 오시겠죠. 정신병원이에요.”

“아, 그러면 설마 정신병원에 수감? 아 수감은 아닌가. 하하하.”

“수감이라뇨. 심리 상담사입니다.”

“농담이죠. 하하. 근데 상담사분이 이렇게 인상도 안 좋고 우울해 보여도 돼요?”

“상관없어요. 그리고 제가 뭐 얼마나 인상이 안 좋다고.”

“허허, 네. 그럼 전 근처 카페 있는지 알아보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일 마치면 전화하세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였다. 안내데스크에는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직원호출 버튼을 누르니까 오 분이 지나서야 직원 같은 사람이 한 명 내려와서 날 보더니 말없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가리킨 쪽은 화장실이었다.

“저긴 화장실 아닌가요?”

“네? 아~ 여기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화장실 가려고 들르신 등산객분들이어서, 습관적으로 하하. 무슨 일 때문에 오셨어요?”

“심리 상담사 이정현입니다.”

“아! 누구신가 했더니 이정현 선생님이셨네! 마스크 써서 못 알아봤어요. 머리 스타일도 바뀌셨고.”

직원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아세요? 소문이라도 난 건가요.”

“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 한지혁입니다. 전화 드린.”

“아 그러시구나. 근데 여기 원장님이 저 부른 거라고 들었는데 왜 부르신 건지..”

“아, 사실 제가 불렀습니다. 그때 말씀드렸다시피 문제가 되는 환자가 있어서.”

“아니, 문제 되는 환자는 많이 있죠. 왜 굳이 대단한 유명한 사람도 아닌 저를 부르신 건지 궁금하네요. 딱히 존경받을 만한 짓도 안 했는데. 이런 시골 촌구석으로 일부러 멀리 사는 사람 부른 거예요? 서울 촌놈 시골 구경 좀 하라고?”

“아.. 제가 선생님 부른 이유는 뭐 크게 유명해서 부른 건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너무 존경하는 분이라 너무 곤란한 환자한테 어떻게 대하실까 궁금해서 초빙한 겁니다.”

직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말하는 데 뭐가 그리 신났는지 계속 미소를 지었다. 선배를 대하는 미소가 아닌 정말로 신나 보이는 미소였다.

“언제 만났다고 존경? 그, 초면이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까 직급이 그리 높지도 않으신 것 같은데 누굴 부를 권한이 있으신지?”

“원장님 다음으로 제가 좀 관리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선생님이랑 저 많이 만났습니다. 그때는 제가 이 일 안 했죠.”

원장 다음으로 제일 높다고 하니 뭔가 싸해졌다. 나이도 해봤자 20대 중반이고, 일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높은 자리라니 이상했다. 나랑 전에 만났다고, 그것도 많이 만났다고 하니 뭔가 더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기억에 없는 일인데 상대가 기억하고 있다고 하는 게 제일 싫고 기분 나쁜 법이다. 못생겼으면 더 기분 나쁠 뻔했다.

“아, 예. 그러시군요. 그럼 그런 거겠죠. 그럼 얼른 그 환자 좀 봅시다.”

“커피라도 한 잔 안 하실 건가요? 바로?”

“커피는 서울에서도 마시죠. 그리고 저 커피 별로 안 좋아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우리 503번 환자는 저도 대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지속적인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나아지는 기미가 안 보여서.”

“꼭 지속적인 치료를 해야 하나요? 뭐 물론 당연히 해야겠지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병원비나 받아먹으면서 계속 가둬 놓으면 되죠.”

“그게 곤란한 게, 잘사는 집 아들이어서 얼른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아가지고. 일단 제가 가서 지금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인지 보겠습니다.”

한지혁이라는 사람은 다른 직원한테서 열쇠 꾸러미를 받더니 503번 환자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한참 동안 안 나오길래 잠깐 옆에 있는 직원한테 503번 환자가 어떤 환자인지 물어봤다.

“아~ 여기서 제일 유명한 환자예요~. 나이는 아마 열여덟인가 했는데. 저도 옆에서 보기만 했는데 소름이 돋더라고요. 말로는 안 돼요. 한 번 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얼굴은 멀쩡하게 생겨서. 쯧쯧.”

한지혁이라는 사람은 곤란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와서 나한테 다가왔다.

“예.. 가보시죠. 뭐, 놀라시진 않겠지만 그래도 마스크 쓰세요. 맨얼굴 보여주면 좀 그러니까.”

“무슨 환자인지는 알려줘야죠. 어떤 유형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일단 심각한 물질사용장애, 강박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참. 그렇네요.

“어이가 없군요. 몇 개월 있었죠? 그 환자가?”

“이제 2개월 됐나? 그렇습니다. 이상한 게, 약이 안 들어서 너무 곤란합니다. 가끔 보면 정신계가 아니라 다른 곳에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초인적이에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한 게 있습니다. 친절하게 대하면 일단은 친절해요. 근데 뭘 조금이라도 물어보면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이상한 짓을 해서.. 뭐 그렇습니다.”

한지혁 씨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무슨 이런 정신병원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 하나로 쩔쩔매서 말로 표현조차 제대로 못 하다니. 하긴, 새파랗게 젊은 원장 다음가는 자리에 있다니 그것부터 이상하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겠다. 503번 환자는 얼굴은 평범하게 생겼고, 키도 그 나이대 평균 키였다. 그리고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유리막이 하나 쳐져 있었다.

503번 환자는 나를 보더니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웃는 게 소름 끼쳤다. 입을 끝까지 벌리면서 웃으니까 입안에 있던 열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503번 환자는 떨어진 열쇠를 급하게 주워 입안에 넣어 삼켰다. 열쇠가 꽤 커 보였는데 한 번에 삼킨 걸 봐서는 한 두 번 삼킨 게 아닌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전 이정현 상담사입니다. 특히 청소년 쪽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함이?”

“저는 이지현입니다. 같은 이씨에 현자 돌림이네요. 무슨 이 씨세요?”

“인천 이씨입니다.”

“흐, 나도 인천 이씨. 에라 이씨! 이런 재수 없어 보이는 놈이랑 같은 이씨? 그것도 인천 이씨? 에라 이씨발!”

“말장난 한 번 재밌네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개그가 참.”

“흐흐. 재밌죠? 근데 내 생각엔 제가 님이랑 얘기하려면 뒤에 있는 한지혁 저것부터 뒤지게 패서 쫓아내야 할 것 같은데.”

“뒤지게 패면 전 감옥 가고. 나가라고 하죠. 나가주세요.”

한지혁 씨는 그대로 나갔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야, 잘생긴 형?”

“잘생겼다고 하니 고맙군요.”

“아무튼 무슨 용건인지 말해. 그리고 한지혁 말은 믿지 마. 한지혁 저놈은 말이야, 세상에 개 같은 놈이야. 성추행 논란에, 횡령에 권력 남용, 갑질, 불법 도박, 살인 미수, 군대도 빽으로 면제된 새끼라고. 술만 마셨다 하면 폭력. 저런 개 쌍놈 새끼가 또 없어요.”

“한지혁 씨 얘기는 나중에 하고, 여기에 뭔가 억울한 게 많은 것 같은데, 말해 보세요.”

“억울한 거야 많지. 열쇠 입에 물지 말라고 지랄하고. 내가 원래 갖고 있었던 열쇠를 뺏었어. 그래서 내가 벽에 머리를 박아서 죽으려고 하니까 이 열쇠를 준 거야.”

503번 환자, 이지현은 나한테 가운뎃손가락을 내밀더니 그 손가락을 목구멍에다 넣었다. 웩웩 거리며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 열쇠를 토해냈다.

“이딴 것도 열쇠라고 주다니. 열쇠 갖고 있어봤자 나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문 따고 그런 거 못 하거든. 근데 다 뺏어가고 지랄이야. 내가 어렸을 때는 열쇠 이따시만한 거 열 개씩 입에 넣었어. 입천장 다 까지고, 혀 베이고 난리 났지. 이도 빠지고. 넌 모르지? 열쇠의 굴곡 사이사이의 그 짜고 비릿하고 담백한 맛을? 그 맛과 내 입안에서 나온 피 맛이 함께 어우러지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지. 그럼 종일 그 열쇠들을 입안에서 굴리면서 맛을 보는 거야. 열쇠도 종류마다 맛이 달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열쇠는 조잡한 구조가 많은 열쇠. 날카로운 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제일 맛이 뻔한 거야. 맛대가리 없는 거. 그래도 플라스틱 열쇠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너도 맛 한번 봐볼래? 한 번도 내가 쓰던 건 남한테 준 적이 없는데, 형은 잘생겨서 주는 거야.”

“마음은 참 감사하지만 요즘 침으로 옮는 바이러스가 유행이어서 안 됩니다.”

“그래서 그다음 질문은? 너도 알겠지만 난 선 넘는 사람을 싫어해서, 네가 나한테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무서운 걸 보여줄 거야.”

“흠. 선이라. 저도 선 넘는 사람은 싫죠. 일단 여기 왜 갇히게 되었는지 말해 보세요.”

“우리 아버지가 반성 좀 하라고 가둬놨지. 내가 자는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직원들 데리고 와서 억지로 끌고 갔어. 거의 뭐 중범죄자 강제집행하는 수준으로 말이야. 내가 뭘 했다고. 다른 재벌 아들들처럼 약하고 차로 사람 치기를 했어, 여자를 데리고 놀기를 했어, 힙합을 했어?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입이 헐도록 열쇠를 빨아 재끼니까 미친놈이라 생각하신 거지. 그래도 뉴스에 나오는 그런 놈들보단 내가 낫지 않냐?”

“아버지라.. 그럼 혹시 열쇠를 빠는 거 말고 다른 취미는 없나요?”

“초등학생까지는 축구도 하고 게임도 하고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좀 나이를 먹은 뒤에는 밥 먹고 열쇠만 물고 있게 되더라고.”

“그걸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도 있겠지만, 끊어 보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너 같으면 스마트폰을 끊을 수 있냐? 폰을 쓰는 건 취미에 한하는 행동이 아닌, 살기 위해 필수로 필요한 행동이지. 사람이 해야 할 필수적인 일을 끊는다는 건 아주 이례적인 상황이 아닌 한 생길 수 없어.”

“굳이 끊자면 끊을 수는 있죠. 안 끊는 것뿐이지. 그럼 끊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아니. 안 끊고 싶은데. 애초에 끊는다는 소리는 왜 하는 거야. 그러니까, 굳이 왜 끊냐고.”

“저도 뭐 그렇습니다. 늦게까지 유튜브 보는 것도 끊어야 하는데 못 끊죠. 아니, 안 끊는 거겠죠. 그럼 이만 시간도 됐고 오늘 상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른 건 괜찮은데, 딱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대화한 내용을 머릿속에서 세 번 정도만 더 생각해 주세요. 그럼 이만.”

나는 방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그렇게 못 다룰 정도의 환자는 아니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근처에 먹을 게 있나 싶어 한지혁 씨에게 가봤다. 아까 이정현 환자가 한 말을 생각해보니 찜찜해졌지만,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걸 제외하더라도 별로 사람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한지혁 씨는 나를 보고 곧장 다가와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저녁 먹을 곳은 있나요? 이 산골에.”

“있죠. 제가 잘 아는 맛있는 곳이 있어요.”

“저는 택시 타고 와서 다시 타고 시내로 나가려는데..”

“택시는 그냥 가시라고 하죠. 제 차로 태워드리겠습니다.”

거절할까 고민하다가 배 나온 50대 아저씨랑 얘기하느니 젊고 얼굴도 좀 괜찮은 남자랑 얘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수락해버렸다. 한지혁 씨의 차는 벤츠 s 클래스로 아무나 타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차를 보니 더더욱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아까 말이죠.. 저를 자주 봤다고 했었는데 좀 궁금하네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아.. 5년 전에 일하실 때 제가 화장실 미화원으로 일했거든요. 그때 자주 뵈었습니다. 화장실 미화원이라도 오가는 얘기는 다 들리거든요. 누가 대단한 사람이고 누가 못난 사람인지. 하하! 그때 선생님이 변비가 있으셨나.. 되게 화장실에 자주 오셨어요. 급하게 들어오다가 저랑 눈 마주쳐서 부끄러워 하셨는데.”

“아.. 좀 기분 나쁘네요. 화장실 미화원이셨다는 분이 지금 이렇게 병원 원장 다음가는 지위에 벤츠 s 클래스까지 갖고 계신다니 상당히 질투가 나네요. 게다가 변비? 제가 화장실 갈 때마다 그럼.. 좀 많이 기분 나쁘군요.”

“하하하! 아 뭐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뭐 많이 궁금하세요? 화장실 청소부가 갑자기 이렇게 성공한 거? 그렇게 성공한 것도 아니에요.”

“원래부터 돈이 많았거나 어쩌다 굴러 들어온 걸 안 놓치고 잡은 거겠죠.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말도 안 되긴 하지만 노력만 해서 올라왔다거나.”

“저는 딱 이세현 선생님만을 목표로 올라왔습니다. 아주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공부할 때 받쳐주긴 충분했죠. 그때 제가 열아홉 살이었으니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노력만이라면 노력만으로 온 거긴 한데 아버지께서 많이 도움을 주셨죠.”

“왜 저를 그렇게 롤모델로 삼으신 거에요? 이해가 안 가네. 당시 저도 스물한 살 정도였고 얼마 일하지도 않은 신입이었는데. 그리고 선생님이라 하지 마세요.”

“그럼 그냥 선배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아, 여기 이 식당이에요. 들어가서 마저 얘기하시죠.”

한지혁 씨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썩은 식당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정말이지 이런 식당은 처음이었다. 메뉴는 된장국과 청국장이 끝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맛은 괜찮았다. 버섯 향이 진했고 쌈장이나 고춧가루를 아예 안 넣었는지 하나도 안 매웠다. 청국장도 엄청 진해서 나름대로 맛있었다. 마스크를 벗은 한지혁 씨의 얼굴을 봤는데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감탄이 나올 뻔했다.

“맛있죠? 서울엔 이런 곳이 절대 없어요. 근데 선배님.”

“네, 맛있네요. 왜요?”

“선배님은 취미 뭐 있어요? 커피도 안 좋아하고 담배도 안 피우면 술을 좋아하시려나?”

“술 담배 싫어해요. 취미는.. 주말에 늦잠 자는 거랑 fps게임 정도.”

“오오.. 근데 직장인이 커피 술 담배 다 싫어하면 무슨 맛으로 사시려나.”

“저는 그 셋 중 하나를 좋아하는 멍청한 직장인이 아니어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선배님을 존경하는 거죠.”

“왜 존경하게 된 거예요? 화장실에 들락날락 거려서 존경스러웠나? 딱히 그때 잘한 일도 없는데. 그리고 기왕 존경해서 같이 일하고 싶은 거면 서울에서 일하시지 굳이 왜 산속에서?”

“여기서 일하게 된 건 사정이 있어요. 한때는 선배님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죠. 이제 여유가 좀 생겨서 오랜만에 얼굴이 보고 싶더라고요.”

“화장실에 급하게 갈 때의 얼굴이 보고 싶으셨나요?”

“아하하하!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다니. 그럼 저도 노골적으로 이유를 말해야겠죠. 그냥 멋졌어요. 처음 얼굴 봤을 때 너무 잘생겼고, 멋있으시더라고요. 나중에 직원들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새로 들어온 신입이 너무 일을 잘 한다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는데 그게 선배님인 걸 알았죠. 맨정신에 말하니까 힘드네요.”

“저 그때 일 잘 못 했는데. 잘생기지도 않았고 패션도 엉망이었고.”

“화장실 미화원으로 일하고 나서 몇 달 뒤에 진급해서 사무실 정리를 하게 됐거든요. 이제 말씀드려서 죄송한데 선배님 책상을 좀 뒤져봤어요. 그래서 더 선배님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죠.”

“그거 범죄 아닌가요? 책상을 뒤질 정도로 머릿속이 저로 가득 찼다고요?”

“아하하, 저도 그래서 그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오늘은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여기 민박도 하니까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전화 주시면 태워드리러 오겠습니다. 아, 저 부르실 때는 편하게 불러주세요. 여기 전화번호.”

“민박이 뭐에요?”

“아, 여긴 다른 펜션이랑은 조금 달리 개인이 운영하는 집 겸 식당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 숙박 시설도 같이 운영하는 걸 민박이라고 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시골 촌구석에나 있는 시스템인 거네요.”

“네! 맞습니다. 저 이제 가봐야 해서.”

한지혁 씨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나를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자로 보는 것 같았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도 1년 남짓 되었고 슬슬 새로운 인연을 찾으려고 했는데 마침 얼굴도 괜찮고 성격도 괜찮아 보이는 남자가 알아서 다가오니 이런 횡재가 없다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시골 촌구석의 아침은 의외로 기분 나빴다. 머리맡에 작은 진드기들이 기어 다니고 갈라진 벽 틈 사이로 거미가 들락날락거렸다. 공기가 도시랑은 달라서 잠이 더 개운했다는 건 그냥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난 심리 상담사여서 그런지 전혀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아침은 공짜라고 어제와 똑같은 메뉴를 주셨지만, 밤에 먹었던 것과는 또 다르게 맛있었다. 사실 나는 다니던 병원을 관두고 심리치료사에서 심리 상담사가 되어 청소년센터에서 일을 쉬엄쉬엄하고 있었다. 집안에 옛날부터 쌓인 재산이 있는지라 월급이 적어도 가족 모임에서 어깨를 못 펴는 것 외엔 사는 데 문제없었다. 이번 출장은 차비, 식비와 숙박비도 병원 측에서 다 내주니 이지현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한 번 지내볼 생각이었다. 일단 병원과 이지현 환자의 아버지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한지혁 씨에게 전화를 했다.

“예, 선배님. 잘 주무셨어요?”

“목소리가.. 이제 일어나셨나 봐요? 벌써 여덟 시인데. 지금 저 병원으로 가려는데 와주세요.”

“아, 네네. 바로 갈게요.”

목소리만 들으니까 전에 오줌 싸고 있는데 신경 쓰이게 옆에서 바닥 닦으면서 전화하던 그 목소리였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목소리는 좋았지만, 좋지는 않은 기억이었다.

“이지현 환자 아버지가 부자라고 하던데, 여기 병원이랑 무슨 관계길래..”

“아.. 이 병원 후원자세요. 저랑도 일면식이 있고. 사실 이지현 환자가 공부를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계속 방안에서 열쇠만 물고 있으니 저 같아도 환장하겠어요. 그래서 제발 우리 지현이 좀 치료 좀 해달라 부탁을 받아서 입원한 지 세 달이 넘었습니다. 하나도 나아진 게 없고요. 돈은 돈 대로 받고 있는데 나아진 게 없으면 뵐 면목이 없는 거죠.”

“그래서 고민하던 중 제가 생각 나서 부르셨구나. 근데 기왕 부를 거 더 유명한 분을 부르시지 굳이 저를? 차라리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부르시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제가 몰랐겠어요? 하하. 정신과 의사들도 다 똑같아요. 대충 자기 맘대로 약 처방하니까 아직 저 모양인 것도 있고.”

“지혁 씨는 의사 아니었나요? 정신과.”

“아니에요. 서열이 원장 다음이라는 것만 빼면 심리치료사죠. 의사 처방에는 관여를 못 하니까 좀 답답하고. 선배님도 안 그러세요? 가끔 정신과 의사들 하는 거 보면 정말 답이 없어요. 의사니까 뭐 내가 함부로 할 수도 없고.”

“그쵸. 근데 사실 여기 사무장병원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 제가 높다고 한 건 아버지가 원장이셔서 그런 거예요. 실질적으로는 아버지께서 다 운영하십니다. 저는 이제 선배님 같은 분 부르는 거나 각종 사무처리를 맡죠.”

“아.. 아버님이 하시는 거구나. 죄송해요, 제가 불법에 좀 예민해서.”

“아뇨, 충분히 오해할만했어요. 처음부터 아버지가 운영해서 제가 그만큼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말하면 되는데. 사실 그동안 노력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한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아빠 찬스에요.”

“그 아빠 찬스도 마냥 쉬운 건 아니죠. 그럼 된 거죠. 아빠가 내 친구도 아니고 뭐든 턱턱 다 해주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아버지 밑에서 배우고 일하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남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대상이죠..”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또 한숨이 나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병원에 도착하였다. 어제와 비슷하게 넓은 공간에 비해 매우 한산했다. 나는 바로 이지현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가려다가 어제 들은 말이 신경 쓰여서 살짝 물어봤다.

“근데 503번, 이지현 환자는 지혁 씨를 왜 그렇게 싫어해요?”

“하하, 좋아할 리가 있나요. 자기 아버지가 나더러 꼭 부탁해달라 하는데 당연히 밉상이죠. 세상에는 아무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는 법인데, 조금이라도 이유가 있으면 얼마나 더 싫겠어요. 조만간 선배님도 싫다고 할지도 모르죠.”

“제가 감히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청소년들은 절 싫어하는 애들이 없었습니다. 제 정신상태가 청소년이어서 그런지. 최대한 잘 얘기할 거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끝나고 점심 드시러 같이 가시죠.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이지현 환자가 있는 병실로 갔다. 503번 환자는 열쇠를 절겅절겅거리며 씹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이지현 씨.”

“집에 간 거 아니었어?”

“가고 싶은데 이지현 씨 치료하기 전까지는 갈 생각이 없네요.”

“그럼 나 치료하지 말고 가. 애초에 치료할 병도 없어.”

“나는 몇 가지 테스트를 할 그림들을 갖고 왔다. 가방에서 그 그림들을 꺼내려고 하는데 이지현 환자가 말했다.”

“형 게이지? 게이네.”

“무슨 근거로..”

“딱 보면 알지. 입는 옷에 하는 손짓 발짓에 목소리까지. 왠지 그런 낌새가 너한테서 느껴진다고. 게이 끼가 느껴져.”

“겉모습으로 사람의 성 지향성을 판단하는 건 좋지 않아요. 아쉽지만 전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이지현 환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얼굴을 아크릴 벽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아닌 척하지 마. 어차피 여기는 우리 둘만의 공간이라고. 그냥 솔직히 터놓고 말해. 난 호모포비아가 아니니까.”

“제가 상담을 받으려고 온 게 아니라 제가 이지현 씨의 상담을 해주러 온 겁니다. 오늘은 간단한 테스트를 몇 개 하려고 하는데..”

“맞지? 맞네! 왜 내 질문을 피해? 응?”

“아까 동성애자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그런 얘기는 주 상담 끝나고 나서 부가적으로 해요. 지금은 주 상담에 집중하고.”

이지현 환자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지현 씨도 잘 알 거예요. 이런 그림들 가지고 네 심리 상태는 이렇다, 이걸 생각하면 싸이코고, 저걸 생각하면 정상이다 같은 그림 심리 테스트죠. 저는 이 그림 테스트를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지현 씨 같이 남을 속이고 싶은 사람은 엉터리로 대답하고 그러거든요.”

“시끄러, 말이 존나게 기네, 할 말이 뭐야.”

“그림 테스트로 당신 심리를 알 수는 없지만 그림 테스트를 하려고 얘기를 같이 하면 이지현 씨 심리를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그림 테스트를 빙자한 여러 이야기를 하는 거죠.”

“어 뭐 대충 뭔 얘긴지 알겠어요. 근데 뭔 개소리야.”

“서론이 길었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이 그림이 어떻게 보이나요?”

“뭐야, 그딴 질문이 싫다면서 그딴 거 하네. 굳이 대답하자면 네가 되지도 않을 심리 테스트 한다고 이런저런 의미 없는 질문 하면서 있어 보이게 그림 하나 틱 던져 놓는 거로 보인다. 너희 상담사들이 사람 맘 쉽게 읽을 수 있을 줄 알고 깝칠 때 쓰는 도구지. 그리고 형은 내가 이렇게 말할 걸 알고 있었겠지? 다른 상담사보다는 좀 똑똑해 보이니까.”

“맞습니다. 뭐 제가 다른 상담사보단 똑똑한 건 동의해요. 이 정도면 굳이 겉으로 보이는 테스트는 안 해도 될 것 같고.. 아까 말한 부가적인 상담을 주 상담으로 바꾸는 게 이지현 씨도 더 좋아하고 저도 더 편할 것 같네요.”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역시 형은 잘생기고 머리도 좋네.”

“아까는 이지현 씨가 먼저 질문했으니까 이번엔 제가 질문하죠. 자위하세요? 했어요? 꾸준히 해왔나요?”

“뭐야 이거, 게이 맞잖아. 갑자기 웬 자위야, 애들도 아니고.”

“다들 부끄러워서 쉬쉬 하지만 자위만큼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수단도 없죠. 하고 나면 현타가 와서 좀 그렇긴 하지만 쾌감과 해방감으로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전부 날려버리죠.”

“뭐 형이 말하는 딸딸이는 초딩 때부터 해왔지. 근데 형도 알겠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달라.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게임을 선택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지. 나도 그런 종류고. 그러니까 자위는 내 열쇠 음미와는 아예 다른 장르야. 그럼 이제 내가 질문한다. 한지혁한테 반했지? 내가 분명 더러운 놈이라고 경고했는데.”

“저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잘 안 반해요. 호감은 가는 사람이지만 연애대상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거짓말하고 있네. 인터넷에서 봤어. 거짓말을 하면 시선이 어디로 간다거나, 괄약근에 힘을 주게 된다거나 그런. 근데 그런 거 다 안 봐도 그냥 눈빛만 봐도 거짓말이야. 그리고 진짜 안 반했다면 ‘내가 남자를 왜’ 같은 소리를 했겠지. 근데 아주 자연스럽네?”

“계속 그런 상상을 하는 거 보니까 평소에 열쇠 무는 취미 외에 bl물을 보시는 취미가 있었던 게 아닐런지.. 싫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의외네요. bl 좋아하는 남자는 적거든요.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취미가 많다는 건 좋네요.”

“이 새끼가..”

“아니, 놀리려던 건 아니었고. 그럼 다시 제가 질문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랑 평소 사이는 어땠나요?”

“아버지랑은 뭐 나쁘지 않았어. 열쇠 물고 다니기 전까지는. 정확히는 열쇠 물고 다니다가 내가 학교 안 가게 된 뒤로부터 안 좋아졌지.”

“정확히 몇 살부터 열쇠를 그렇게 물고 다니신 건지?”

“여섯 살인가, 그때부터 몰래 핥고 빨고 했는데 열다섯 살이 넘어서는 하루종일 입에 넣지 않으면 미치겠는 거야. 그래서 밥 먹을 때도 입에 넣은 채로 먹고, 집 안의 열쇠들을 계속 입에 넣고 다니니까 아버지가 날 미친놈이라 생각하신 거지. 3년 동안 잘 참으셨어. 내 요구대로 학교에 안 가게 하고, 나랑 대화도 하셨고 날 때리기도 하셨는데 내가 말을 못 할 정도로 열쇠를 입에 물고 있으니까 여기다 넣으셨지. 아마 최후의 수단이라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그가 열쇠를 입에 넣게 된 것에는 분명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 철을 핥으면 살짝 짭짤하고 비릿한 맛이 좋아 핥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개인에 따라서 나이가 더 들어서도 위생개념이 없다면 그걸 핥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매일 불편함과 아픔을 감수하고 계속 입에 넣는다는 건 분명 뭔가 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찾는다면 치료를 빨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잠깐만, 너 왜 질문 두 개나 해. 죽을래?”

“두 개라뇨. 한 개잖아요.”

“두 개잖아! 아버지랑 사이 어떠냐 물어보고 언제부터 열쇠 빨아 재꼈냐고 또 물어봤잖아.”

“아, 네네. 그럼 이지현 씨도 두 번 질문하세요. 괜히 또 애들 같이 ‘누구 좋아하냐’ 이런 거 묻지 말고.”

“너야말로 아버지랑 사이 어때? 흐흐. 좋을 것 같진 않은데.”

“음.. 아버지와의 사이라.. 당연히 안 좋죠. 원래 독립해서 나가면 더 사이가 안 좋아지는 법이에요. 이지현 씨도 커서 따로 살면 당연히 보는 일도 잘 없고, 성인이니까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일이 없어서 필요로 하는 일이 적어지겠죠. 그러다 보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져서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가끔 만나면 서로 달라진 생각에 서로가 너무 놀라 이해를 못 하죠.. 지금 저희 아버지도 그래요. 근데 독립하기 전, 10대 때에 사이가 나쁜 건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지현 씨가 생각하기에 왜 본인이 아버지랑 사이가 나빠진 것 같나요?”

“내가 열쇠를 입에 물고 빨고 하는 게 잘못하는 거라면 전적으로 나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아진 것이지. 근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남들은 이해 못 해. 만약 내가 다른 애들처럼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잘 사귀었으면 당연히 뭐 보시기에 만족했겠지. 야, 근데 너 왜 네가 또 질문하냐.”

“이제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얘기하세요.”

“그래 그럼 편하게 얘기할 거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씨 씨 붙이지 말고 말해. 속으로는 애새끼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만 씨 씨 붙이고 지랄들이야 다들. 그러니까 씨 붙이지 마. 반말로 해.”

“그래. 근데 그러면 아버지랑 사이가 나빠지는 게 좋지는 않았을 거 아냐? 사이가 좋아지고 싶진 않았어? 노력을 해봤다던가..”

“온갖 지랄들을 다 하시더라고. 날 데리고 상담센터에도 가보고, 가족 상담도 받고 교회도 가봤는데 내가 달라질 리 있나. 달라질 수 있는 건가? 바꾸려고 바꿀 수 있는 거야? 그야 지금처럼 의사가 주는 약 꾸준히 먹으면서 세뇌를 시키면 바꿀 수 있겠지. 근데 그게 내 본래의 모습이야? 그렇게 바꿔버리면 진짜 나는 없어지는 거야.”

할 말이 없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사실은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아.. 그렇지. 바꿀 수는 없지. 어떻게 바꾸겠어, 그걸.. 내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원래 그런 걸 어쩌겠어.”

“맞는 말이지? 그러니까 한지혁이 날 다루기 힘들어하는 거야. 날 이해를 못 하고, 졸지엔 싫어진 거지. 한지혁 말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고. 크게 생각해보면 내가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이 문제인 거지. 야~ 명언 아니냐. 자, 그러면 본인은 아버지랑 왜 사이가 멀어졌는지, 그걸 바로잡을 생각은 없는지?”

“나는 열일곱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뒤로 서먹해졌지. 최근에 뵈었는데 표정이 별로 안 좋으시더라. 근데 내가 하는 말을 들으시고 더 표정이 안 좋아지셨어.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제일 나았을 텐데.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더라. 8년도 넘게 지난 일이니까 슬픔도 좀 쓸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봤는데 아니었어.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네? 자기가 성소수자라고 했다거나..”

“그땐 성소수자나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같은 말들을 몰랐지. 그런 말을 알아서 썼다고 해도 전혀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아, 이거 내가 헛짚었네~ 왜 머릿속에서 바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지? 트렌스젠더 느낌은 아니었으면 양성애잔 건데. 근데 어쨌든 간접적으로 알아맞혔다. 진짜 대단하지 않냐?”

“이재서야 알아챈 거지. 자신 있게 게이라고 하더니 헛다리 짚었던 거잖아. 그리고 지금 점심 시간이야. 먹고 나서 다시 올게. 나도 좀 쉬어야지.”

“형도 마찬가지야! 다들 우리 같은 사람을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들 생각하잖아? 우린 같은 신세인 거야. 그리고 내 생각엔 여기서 우리 얘기는 끝인 것 같은데. 난 오늘 오후부터 건강 검진이 있거든.”

“아,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병실에서 나왔다. 괜히 이지현 환자가 하는 말들이 내 지금 상황과 겹쳐서 다시 아버지가 떠오르고, 불안하고 갑갑해졌다. 한지혁 씨가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보세요, 참 다루기 힘든 환자죠? 선배님도 쉽진 않을 거예요.”

“다루기 힘들다 못해 제가 다뤄질 뻔했네요.”

“다뤄지는 척하면서 다루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죠. 그래도 진전은 있었나요?”

“아주 많았습니다. 약 처방에 관해 따로 달라질 건 없지만 걔 생각이 어떤지 좀 알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우리 또 된장국 먹어야 하나요?”

우린 시내로 나갔다. 시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볼품없고 조용했지만 역 안에는 먹을 게 좀 있었다.

“선배님 표정이 안 좋네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걔 때문에 표정이 안 좋은 건 아니에요.”

“역시 표정 안 좋을 때도 멋있으시네요.”

“이지현 환자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 예의만 좀 가르치고 각종 병명 대면서 겁 좀 주면 열쇠 무는 것도 나아질 거예요.”

“아, 벌써 해답이 나온 건가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걔 기를 완전히 죽이고 약물을 미친 듯이 투여해서 입에 열쇠 안 물게 하는 대신에 멍하고 생기 없게 살게 하는 방법. 조금만 교육을 시키고 아버님과 상담을 한 후에 열쇠를 꾸준히 물게 하고 서로 합의하며 살아가게 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은 애가 많이 고통스러울 테고, 두 번째 방법은 아버님이 많이 힘드시겠죠.”

“우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선배님.”

“아버님이야 당연히 첫 번째가 좋으시겠지만, 결국 후를 보면 아버님한테도, 이지현한테도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죠. 두 번째는 이지현의 기도 살짝 죽이고 아버님의 기도 살짝 죽여서 서로 합의 하면서 살게 하는 건데 아버님이 무조건 힘들 거예요. 그래도 이지현은 열쇠를 계속 물 수 있어서 나쁘지 않겠죠. 지혁 씨 생각은 어때요?”

“의사의 소견대로라면 당연히 첫 번째겠죠. 멍하고 생기 없이 사람 같지 않게 사는 거야 자기 알 바 아닐 테니 고치면 되는 거니까 무조건 뜯어고치는 쪽으로 하려 하겠죠. 근데 전 의사가 아니어서. 약물도 안 좋아하는 편이고.. 제 입장에서는 두 번째 방법이 낫죠.”

“지혁 씨가 두 번째 방법으로 하자고 밀어붙이면 원장 아들의 힘이 있어서 의사가 한발 물러나긴 하겠죠. 문제는 이지현 아버님이에요. 첫 번째 방법이라고 아버님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겠지만 두 번째 방법은 아버님이 보시기에 매우 불만족스러울 테고, 자기 나름대로 고통스럽겠죠.”

한지혁 씨가 머리를 감싸 쥔 내 두 손을 잡고 천천히 머리에서 때면서 말했다. 언뜻 웃는 게 좀 잘생겨 보였다.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천천히 하세요. 제가 아는 걸 더 말씀드리자면 아버님은 이미 반 포기하셨어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만족하지 않으실까 싶네요. 제 아버지한테도 말씀드려서 얘길 잘 해보면 좀 더 괜찮을 듯싶고.”

“지혁 씨.. 오늘 저랑 술 마실래요?”

“네? 술 안 좋아하신다고..”

“사람이랑 말할 때는 술이 들어가야 해요.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고, 이지현같이 어려운 사람 상대할 때는 제가 오히려 상담을 받고 싶어요. 그러니까 술도 마시고 싶고.”

“아, 저야 당연히 좋죠! 그럼 오늘 상담 끝나고 제집으로 가시죠. 근처에는 마땅히 마실 곳도 없으니까.”

“고마워요.”

 

“정현아. 이게 뭐니.”

어머니는 내 휴대폰을 보고 계셨다. 게임이나 내가 몰래 깔아 놓은 각종 미디어들을 보고 계셨다면 안도했겠지만 내가 제일 우려하던 것을 보고 계셨다.

“뭐가요? 갑자기 왜 제 휴대폰을 보고..”

“아닌 척하지 말거라. 진성이는 남자애 아니니? 너 이거 뭐니.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야..”

이미 망했다는 걸 알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엄만 널 믿고 공부도 시키고 학원도 보냈는데 정현이 넌 엄마를 배신했구나. 조만간 병원에 좀 가야겠다. 전에 사귀던 여자애는 뭐니? 갑자기 왜 남자애랑 사귄다고 그러는 거야? 여자랑 사귀어도 공부 방해 때문에 못 할 짓인데, 이런 문란한 짓을 한다니.”

당시 나는 양성애자나, 바이섹슈얼 같은 말을 몰랐다. 여자 좋아하면 그냥이고, 남자 좋아하면 게이고 그게 다였다.

“너 지금 네가 정상이라 생각하는 거니? 남자만 좋아하면 그렇다 쳐, 남자만 좋아해도 치를 떨겠는데 뭐 둘 다 좋다고? 너 제정신이니? 엄마가 이렇게 아픈데 더 아프게 해야겠어? 이게 지금 잘한 거야?”

어머니는 대장암 말기로 정말 아프셨다. 내가 성적이 더 잘 나오는 게 어머니를 돕는 길이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도대체 얼마나 더 해야 어머니의 기대치를 넘고, 만족시킬 수 있냐고. 나는 받는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나한테만 받으려고 하냐고, 내 연애에까지 참견하냐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고 얼마 가지 않아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항상 일 때문에 바쁘셔서 원래 볼 일도 잘 없었지만, 그 뒤로는 더 볼 일이 없었다. 내가 학원에 가게 돈도 주셨고, 대학 등록금도 내주셨지만, 항상 제대로 얼굴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술만 드셨다. 형이 결혼하고 애를 낳은 뒤로 아버지는 눈에 띄게 얼굴이 좋아지셨다. 하지만 아직 나를 보실 때의 얼굴이 썩 좋지 못했다. 바로 며칠 전에 가족 모임이 있었을 때는 나를 보고 잘 왔다며 웃어주셨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간 쌓인 말들을 했는데, 다시 아버지의 표정이 안 좋아지시면서 자기 기분을 망쳤다는 이유로 온갖 욕을 들어야 했다.

“지금 그게 네가 내 앞에서 할 소리냐? 돈 벌어서 학원 보내고 대학 보내놨더니 상담사 같은 허접한 일만 하면서 네가 남자 좋아한다는 게 지금 자랑이라고 말하는 거냐? 어머니가 너 때문에 열 받아서 쓰러지신 거 아냐! 지금 그게 자랑인 거냐? 뭐, 여자도 남자도 하나도 아니고 둘 다 좋아한다는 게 자랑이야?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냐? 정신적으로 정상이야?”

무턱대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술기가 올라 다들 기분도 괜찮았고 형과 다른 사람들은 가고 나와 아버지만 남은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아버지와 얘기를 하던 중에 슬며시 꺼냈는데 갑자기 뭐라 하시니 그대로 성질을 참지 못하고 상을 걷어차 버리고 나왔다. 사흘이 지나자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거셨다. 무슨 말을 전하시려고 전화를 건 걸까 해서 받지 않고 전원도 꺼뒀다. 설령 사과하려고 전화를 거신 것이라 할지라도 받을 맘도 없었고 받아봤자 기분만 더 상할 것 같았다.

직원 휴게실에서 세 시간 정도 자다 일어났다. 머리가 좀 아팠다. 나는 물을 좀 마시고 다시 이지현의 병실에 갔다. 이지현은 자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치열이 엉망인 걸 제외하면 건강한 청소년이었다. 담당 의사가 나한테 오더니 검진결과를 말해주었다.

“이번에 출장 오셨다는 분 맞죠? 예.. 이지현 학생은 구내염이 몇 번씩 낫고 생기고를 반복하다가 이번엔 결국 구강암에 걸렸네요. 이때까지 열쇠를 많이 빨았다고 하는데 이제야 이런 게 심각해지는 게 기적입니다. 젊으니까 이 정도로 멀쩡하지, 이 학생 말로는 자기가 열쇠를 한가득 넣고 그랬다는데 그거 당연히 문제 생깁니다. 최근에도 이 하나가 흔들린다고 그러던데. 일단 그렇게 크게 퍼진 건 아니니까 치료하면 나을 것 같긴 합니다. 빨리 발견하기도 했고.”

“계속 열쇠를 지금처럼이나 지금보다 더 입에 넣으면 어떻게 되나요?”

“예.. 당장 죽진 않겠지만 이런저런 병 때문에 오래 못 살 겁니다. 열쇠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 때문에 입에 상처가 나면 병이 생기기 쉽죠. 열쇠를 소독하고 입에 넣는다고 해도 지금 같은 구강암 같은 게 걸립니다.. 애초에 이 학생은 왜 열쇠를 입에 넣는 건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니까..”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뭔가 아버지가 나한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성 지향성과는 다른 문제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실 때의 시선을 내가 갖게 되는 것 같아 무서워졌다.

“뭐 때문에 오신 건진 모르겠지만 이 학생 담당 정신과 의사가 약물처방을 더 하겠죠. 선생님은 뭐, 더 상담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옆에서 한지혁 씨도 듣고 있었다.

“구강암이라고 하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두 번째 방법 같은 건 소용이 없을 것 같네요. 죄송해요, 선배님.”

“아니 죄송할 건 없고, 그냥 약물 처방만 해야 하나요? 그, 두 번째 방법은..”

“저도 어렴풋이 몸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네요. 일단 지금 이지현 아버님한테 연락을 해볼게요. 지금은 상담도 불가능할 것 같고 일단 선배님은 휴게실에서 쉬고 계세요.”

별수 없었다. 상담사는 어디까지나 상담만 할 뿐, 직접적인 치료에 관여하지 않는다. 한지혁 씨도 마음이야 약을 최대한 안 쓰고 싶었겠지만, 상황이 급해져서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이 시골 촌구석까지 멀미하고 고생해서 온 의미가 없어질 것이었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니까 한지혁 씨와 의사, 이지현의 아버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상태가 심각한가요.”

“초기지만 암이란 게 그렇습니다. 어떻게 더 심해질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빨리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럼 빨리 좀 해주십시오. 왜 여기 입원시킨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나아지는 게 없는 겁니까? 빨리 치료하면 될 거 아닙니까.”

한지혁 씨가 대답했다.

“약물 양을 더 늘리기로 담당 의사분과 얘기하겠습니다. 약으로 안 되는 건 없죠.. 부작용이 생길 수는 있지만 죽을 것도 아니고, 암 치료도 해야 하니까 먼저 열쇠부터 안 물게 해보겠습니다.”

“도대체 여기 의사가 몇 명인데 이렇게 일을 못하는 건지!”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차마 볼 수만은 없어서 말을 꺼냈다.

“미성년자라서 아버님이 원하시는 대로 다 할 수는 있지만 그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방금 이지현 학생과 상담을 했는데, 더 열쇠를 못 물게 된다면 그건 죽는 거나 다름이 없는 거라고 했습니다.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한 상태고, 열쇠에 목을 매고 있는데 강제로 그 열쇠를 없애면 머리에 악영향을 줄 겁니다.”

“그럼 어쩌라고요? 애가 암 걸렸는데 심리 치료만 하고 있을 거예요? 지가 죽는다고, 열쇠 계속 입에 넣을 거라고 발버둥 치는 건 지 사정이고, 저는 애 아빠로서 그렇게 안 놔둘 겁니다. 열쇠 안 문다고 죽어요? 열쇠 계속 물어서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한 거 아닙니까?”

한지혁 씨는 내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놀란 것 같았다.

“제가 학생한테 잘 말해 보겠습니다. 암 치료를 받을 때까지만이라도 열쇠 입에 넣지 말고 자해도 하지 말라고. 그리고 암이 완치되면 열쇠를.. 어느 정도 몸에 영향이 안 가게만 물게 같이 합의를 하시는 것이..”

한지혁 씨가 아버님을 진정시키고 나한테 와서 작게 속삭였다.

“선배님, 아버님한테도, 의사들한테도 그런 말은 안 통합니다. 이지현 학생한테도 안 통하고요. 정말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저한테도 안 통합니다. 아버님도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하셨고 학생도 상태가 안 좋은데, 낫는다고 해서 열쇠를 다시 물게 하자는 건 지금 와서는 말도 안 돼요. 아시잖아요? 선배님이 의학에 대해 아예 모르시는 것도 아니신데 그냥 첫 번째 방법으로 갑시다. 이지현 학생은 그냥 정신병이 있는 거예요. 그 병을 고치기만 하면 되는 거고. 안 죽어요.”

한지혁 씨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희망 사항을 말해 본 것이다. 애초에 내가 양성애자여서 아버지한테 욕을 먹은 것과 이지현이 열쇠를 입에 쳐넣고 그게 원래 그런 건데 아버지가 뭐라 한다고 난리를 치는 건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성 지향성이 다른 것뿐이고, 이지현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맞다 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나는 한지혁 씨의 차를 타고 그의 집에 갔다. 혼자 사는 집 치고 너무 넓고 쾌적한 게 잘 사는 집 아들다웠다.

“선배님, 혹시 기분 나쁘셨어요?”

“아뇨. 제가 했던 말이 후회되네요. 존경하는 선배가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아니에요~ 그나저나 의도치 않게 선배님이 여기 계실 필요가 없게 됐네요. 죄송해요, 괜히 촌구석에 불러내서 이틀 동안 고생시키고.”

“아뇨, 괜찮아요.”

“가시는데 제가 먹을 거라도 좀 드릴까요? 이 지역은 무화과가 진짜 맛있거든요.”

“무화과는 좋죠. 공짜로 주시면 가져갈게요.”

우린 계속 잡담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 한지혁 씨가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병원 상태가 좀 안 좋아요. 수요가 없어요.”

“안타깝네요. 아버님이 여기다 지었다고 하셨나?”

“아버님이 지어놓으시고 저더러 운영을 맡기다시피 하셨는데 망할 위기죠. 환자도 없고.. 정신과만 있는 건 아니라서 다른 환자도 오긴 하지만 해봤자 등산하다 넘어진 환자들이죠. 노인들은 다 요양원에 가니까 늙은 연령층도 별로 없고..”

“그럼 기왕 망한 거 저랑 같이 서울 가서 그쪽 상담센터에서 일하실래요? 나름 괜찮아요. 청소년들 상담해주는 거. 이지현 같은 애들 없어요.”

“망하기 전까지는 계속 여기 있어야죠. 망하고 나서도 아버지 밑에서 일해야 하는 신세라..”

“그리고 혹시 상담사라고 하셨으니까 성 소수자 분들 상담해보신 적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저도 애들 상담해주다 보면 간간이 나오거든요. 많이 얘기해봤지만, 아직 그쪽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할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저도 몇 번 상담해봤는데 다 그렇듯, 상대 마음을 제가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지. 싫진 않지만 그런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특히 자기들 말로 자기는 무슨 섹슈얼이고 무슨 로맨틱이고 그러는데 그딴 거 왜 그렇게 따지는지도 잘 모르겠고.”

“저도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그래도 그 사람들이 나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남이 어떻게 나를 이해하겠어, 라는 심정을 갖고 있다는 건 알죠.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지혁 씨처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한지혁 씨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내가 한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우리 둘은 취기가 많이 올라 있었다. 나는 한지혁 씨의 눈을 마주쳤다.

“오늘 이지현이 나더러 그러더라고요. 내가 게이 같다고. 물론 그건 틀렸지만 좀 가까운데 답이 있었어요.”

“아.. 그러니까.. 선배님이 양성애자시다 이 말씀이시구나. 늦게 알아채서 죄송하네요. 아니 잠깐만요.”

한지혁 씨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을 전화하는 척을 했다. 하는 행동을 봐서 전혀 이쪽이 아니었다. 방에서 나온 한지혁 씨는 어색하게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다며 나도 잘 가라며 차로 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내 불찰이었다. 그렇게 나는 빈손으로 그 시골 촌구석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지혁 씨의 행동이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본인은 나름대로 최대한 나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고, 상담센터에서 애들 상담을 해주니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리에서 잊히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일도 점점 잊게 되었다. 그 날도 흔한 가출청소년 한 명에게 따뜻하지 않은 말 한마디를 건네주고 집에 왔는데 집 앞에 아버지가 서 계셨다. 너무 화가 나는 동시에 눈물이 막 흘렀다. 추운데 적어도 삼십 분은 서 계셨던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때까지 한 번도 못 봤던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 표정에 너무 죄송해지고 부끄러워졌다.

“추운데 왜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들어가세요.”

나는 울음을 참고 아버지를 안에 모셨다. 아버지는 내 집을 몇 번 둘러보시고 내가 커피를 타 드리자 앉으셨다.

“전화를 하는데 안 받길래.. 너 형한테 주소 알아내서 갑자기 찾아왔다. 미안하게..”

“아뇨, 제가 죄송해요. 안 미안하셔도 돼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내가 했던 행동들에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연세가 드신 아버지 앞에서 상을 차고, 휴대폰 사용하시는 법도 잘 모르셔서 형한테 물어봐서 겨우 전화하셨을 아버지의 전화도 안 받은 내가 너무 후회스러웠다. 유치하게 굴어도 너무 유치하게 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네 마음도 모르고 말을 막 하고.. 내가 네 엄마 생각만 나면 힘들고, 화도 나서 그런 것 같다. 니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막 그래서.. 나중에 너 형한테 들어보니까 요즘은 또 남자들끼리 좋아하는 게 유행이라카더라 그래서 니는 이상한 게 아니구나 싶더라.”

“아뇨, 제가 죄송하죠. 제가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해야 되는 건데..”

“내가 니 직업도 무시하고 그랬는데 그것도 미안하다.”

“죄송해요, 진짜.. 왜 오셨어요.”

아버지는 날 한번 다독이시더니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아시고는 금방 가셨다. 그렇게 가고 나신 뒤에도 나는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가 날 질책하시던 때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얼마나 더 힘드셨을지 상상도 못 해봤다.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도 뼈 빠지게 일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 뒤로 나는 별문제 없이 잘 지냈다. 아버지 덕분인지 형 덕분인지 친척들과도 자주 만나게 되었고 나름 정신, 심리 업계에서 좀 유명해져서 가끔 강의도 다녔다.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정신병원은 폐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산중에 병원을 차려놨으니 잘 될 리가 없었다. 도시에 병원을 개원해도 쉽게 폐업하는 일이 많은데, 그 시골 촌구석 산 한가운데 병원을 지어놨으니 폐업이 안 되면 이상한 것이다.

나는 이지현은 어떻게 되었나 찾고 싶어서 이리저리 아는 곳을 다 뒤져보고 연락해봤으나 이지현과 관련된 것들은 일체 찾을 수가 없었다. 한지혁 씨한테 전화해보면 알 수 있었겠지만 그건 싫었다. 어차피 찾아봤자 좋을 것도 없을 것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다.  두 번 다시 이지현 같은 환자는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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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열쇠를 물고 있는 캐릭터에 눈길이 많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성소수자의 모습이 다소 피상적으로 그려진 점, 대부분의 서사가 대화로만 이루어져 장면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이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구강암은 낮은 생존률의 암이라고 알고 있는데 모든 인물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어 몰입을 방해하였습니다. 장면 하나를 긴 호흡으로 끌고 가보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