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L1과 B1이 보낸 러브레터

다미가 배신을 때릴 줄은 몰랐거든. 졸지에 길거리에 버려진 두 인형, 다미의 사자 인형과 곰 인형은 어안이 벙벙했다. 영원을 약속하며 제 갈기를 빗어줄 때는 언제고. 학교에 데려가 동생처럼 생각하는 곰이라며 통통한 제 뱃살을 꾹 눌러 자랑할 때는 언제고. 올해로 중학생이 된 다미는 얼마 전 새로 산 교복을 입고, 전신거울 앞을 기웃대며 제 모습을 요리조리 뜯어보고는 했다. 사자와 곰은 그런 다미의 모습을 가만 바라보며 꼭 제 누나가 입학이라도 한 듯, 마음 깊이 흐뭇해했다. 다미와 어울려 놀지 못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 둘은 다미가 언제라도 자신들에게 돌아오리라 믿었으며, 그래서 오랜 공백기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미는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놀러 오기 전, 대규모 방청소를 한다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죄다 주섬주섬 모아 내놓았고, 둘도 그 파도에 함께 휩쓸리고 말았다.

"내가 얘랑 같이 버려지다니. 실환가." 다미의 중딩 말투를 많이 닮은 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요즘 노는 순서가 줄었다지만, 너랑 같은 취급을 받을 군번은 아니지." 황당하기는 곰도 마찬가지였다. "야 사자, 네가 최근에 좀 총애를 받고 우쭐한 것 같은데, 다미랑 나랑 같이 산 지가 십 년이야, 임마." 둘은 한참 말다툼을 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묘하게도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자기혐오감. 그래, 어차피 지난 영광인데 말이다. 곰이 화해를 신청했고 사자는 침묵으로 수락했다.

"아직까지도 장난감 가게에서 눈을 빛내면서, 이런 인형은 처음 본다고 말 했을 때가 생생한데 말이다." 축 처진 말씨에, 곰이 말을 이어 받는다. "그래. 새 친구가 생겼다고 우리를 이렇게 내다 버릴 줄은 몰랐어. 우리는 다미랑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까 덜 소중했던 걸까?" 그렇게 시작한 한풀이는 한참을 가서, 두 인형은 더 침울한 기분이 됐다. 둘 다 언급을 피하려고 부던히 애를 쓰기는 했지만, 둘은 모두 자신들이 인형이라는 신세가 끔찍히도 슬픈 것 같았다. 그 때 마침 둘의 시야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강아지 씨가 들어온다.

"동물원에 데려다 달라고?" 강아지 씨는 반신반의해서 되물었다. "그곳에는 왜? 너희 같은 애들이 갈 곳이 아냐." 하지만 엄포에도 굴하지 않는 사자와 곰. "우리 같은 애들이 뭔데?" "우리도 정말 살아있는 게 뭔지 궁금해. 그 곳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온대잖니."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강아지 씨도, 사자와 곰이 하도 조르니, 결국 두 손, 아니 두 앞발을 들게 된다. "그래, 가자 가." 강아지 씨가 조심조심 사자와 곰 씨를 입에 물었다. 바야흐로 여정의 출발이었다.

며칠이 꼬박 걸려서 강아지 씨는 동물원에 도착했다. 담장의 구멍을 조심조심 찾았고, 더러우면 내쫓길까 빗물 웅덩이에 반신욕을 하기도 했다. 마침내 도착한 맹수 우리 앞에서, 강아지 씨는 행운을 빈다며 두 인형을 휙, 안으로 던져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자와 곰은 맹수들의 입에 사정없이 찢어 발겨질 것마저 각오했기에 단추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하지만 천만의 걱정이었다. 맹수들은 공격하지 않았다. 하다 못해 작은 으르렁 소리조차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진 사자와 곰. 주위를 살펴 보는데, 맹수들은 모두 우리의 양 끝 부근에 웅크려 앉아 아무 말 없이 멍만 때리고들 있다. 오래 관찰해도, 먹이를 먹으러 올 때를 제외하곤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사자와 곰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영 시큰둥하다.

사자와 곰은 맹수들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맹수들은 그것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작은 새끼 재규어 하나만이 그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재규어 씨,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데. 너희들은 왜 기뻐 달려나가지 않는 거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사자와 곰은 이렇게 물었다. 해가 다 지는 초저녁임에도 불구 와중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는 고작 한 명에게도 버림 받았는데! 그러자 새끼 재규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좋니? 저런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하루 종일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잖아. 우리가 살아있는 것 외에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뭔 관심이 있는데? 내 이름은 G3이야. 세번째 재규어. 원랜 G4였는데, 울 엄마가 이 우리 안에서 죽었거든. 바로 한 번호를 땡겨 버리더라고." 그 말을 듣고, 사자와 곰은 새끼 재규어를 쳐다보다가,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미가 지어준 자신들의 이름, 도도와 루제,를 가만 떠올렸다. 그 다음엔 우리 밖의 수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교복 입은 소녀들을 헤집으며 눈으로 다미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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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버려진 장난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토이스토리를 떠올려봅니다. 글의 설정은 무난했고, 동물원으로 출발하는 부분까지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온다'는 대사도 좋았고요. 하지만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재규어를 만나고서 사자와 곰이 느낀 감정과 그 변화를 좀 더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이름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마지막에 등장하여 주제가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주제를 생각하며 글의 마지막을 퇴고하면 좋은 글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