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좋은 글을 쓰는 방법

아홉 살 때였을까? 국어 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소설 뒷부분을 창작해서 발표하는 수업을 했는데, 에이포 용지 크기의 종이에 글을 써야 했다. 그 소설을 정말 재밌게 읽어서 뒷부분을 지어내는 일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애초에 쓰고 싶은 것이 많았던데다, 글을 다 쓰고 보니 덧붙일 내용이 생각나고, 또다시 읽어보니 넣고 싶은 내용이 또 떠올라 계속 쓰다 보니 어느새 에이포 용지 한 장이 꽉 차버렸다. 나는 그 글을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했고 선생님께 칭찬과 피드백-다 좋은데 목소리를 조금만 크게 했으면 좋겠다-을 들었다. 

 

이 소설이 내 첫 소설이었지만, 아홉 살 때부터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아마 열 살 때 논술 학원에 다니면서 부터이다. 비록 논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계기는 글쓰기 실력 향상 때문이 아니라 국어 실력 향상이었지만, 나는 그때 원고지 쓰는 법과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법, 백일장에서 잘 먹히는 글을 쓰는 법을 배웠다. 그때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백일장에 보내는 글을 썼다. 그 글들은 대부분 주제를 제시하면 그에 맞춰 후루룩 써내는 시나 수필들이었고 그마저도 선생님이 한번 손봐주신 글들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난 수필이나 소설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글들은 상금-초등학생에게 상금 오만 원은 큰돈이다-을 타기 위해 쓴 작위적인 글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작위적인 글들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쓰는 것을 좋아했고 상을 여럿 받자 칭찬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필을 쓸 때면 내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에 들떴고, 주장문에선 내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열두 살 무렵부터는 아주 유치한 소설을 몇 줄 끄적였지만 항상 거기서 끝이 났다. 어떻게 글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항상 몇 문장 쓰고 구석에 박아버렸고 글들은 슬그머니 내 기억 속에서 잊혔다. 

 

삼 년 동안 어영부영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쓰던 내게, 열세살 무렵 내 머리를 온통 헤집어 놓는 일이 벌어졌다. 일이 벌어진 그때도 여느때처럼 백일장에 가서 글을 썼는데 그날 따라 글이 만족스럽게 써지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제시한 주제 중 주제 하나만을 골라잡아 놓았는데, 막상 그 주제로 글을 쓰려니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저 글쓰기가 막막해서 잠깐 멍을 때렸을 뿐인데 주위를 둘러보니 제출 시간이 임박한 것은 물론이요 친구들은 글을 다 쓰고 천방지축 뛰어노는 중이라 나 혼자만 남아있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아무렇게나 글을 썼고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마감 시간을 이십 분 남기고 겨우 제출했다. 그렇게 엉망으로 글을 써냈으면서 '사람이 적으니 장려라도 받겠지' 하고 오만하게 굴었다. 그 백일장은 당일날 결과가 발표 나서 친구들이랑 좀 놀다가 모두 모여 입상자 명단을 들었다. 장원, 누구누구. 차상, 누구누구. 차하인지 참방인지 온갖 상을 받은 사람들이 호명되다 끝에서야 겨우 내 이름이 나왔다. 장려 윤서호. 

 

그런데 왜인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장려라고 해도 상금은 삼 만원 정도였고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돈을 받으면 쓰잘데기 없는 무언가에 써버려야지, 백일장 가는 길 지하철에서부터 마음까지 먹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차마 쓸 수가 없었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두 나와 외식을 해서 맛난 음식을 양껏 먹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했다. 뭔가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고 불편했다. 흰 봉투에 담긴 빳빳한 만 원짜리 세 장이 내 돈 같지가 않았다. 남의 돈을 훔친 듯한 기분마저 들었었다.

 

집에 돌아와서 고민을 했다. 내가 왜 우울한 걸까. 원하던 상금을 얻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걸까. 일주일쯤 고민하니 답이 나왔다. (아니, 사실은 상금을 받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저 내가 글을 못 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지.)내가 정당하게 상금을 타지 않아서 그런 거다. 잘 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악착같이 타낸 상금은 편하게 쓸 수 있었을 건데, 그냥 참여 인원이 적어 다 주는 상금이라 불편했던 거다. 

 

거의 삼 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그 돈을 쓰지 못했다. 그냥, 그 돈을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돈을 훔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반성하는 마음에서 쓰지 않았다.

 

운 좋게도 작위적인 글에 대해 반성하던 시기와 우연히 글틴을 만난 시기가 겹쳐서, 그때부터 조금은 진실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던 희미한 생각 몇 개를 잡아 꾸준히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쓰고 싶어 하는 글은 무엇인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공책에 손으로 쓰다, 오래 쓰니 손이 너무 아파서 집에 있던 칠 년도 더 된 노트북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한 번 키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 고물 노트북이지만, 한바탕 글과 씨름하고 나면 눈이 피로했지만 아무렴 좋았다. 첫 소설을 쓰는데 반년 가까이 걸렸다. 그 소설을 글틴에 올리는데 긴장되어서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는 사람에게 글을 보여주고 평가를 부탁하는 게 부끄러워 단 한 번도 주변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터라 더욱 떨렸다. 너무 못 썼다고 욕먹으면 어쩌지? 중학생 짜리가 글 쓴다고 비웃으면 어쩌지? 하는 황당한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왜 그럴까 고민을 했고 그 회의감은 크게 네 가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고, 꿈은 큰데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고통스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막 쓸 때는 몰랐는데 제대로 잘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니까 오히려 글이 안 써졌다. 소설을 쓸 때는 내가 복선은 잘 깔아두고 있는 건지, 지금 내 글이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지, 기승전결이 뚜렷한지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고. 수필에서는 아 또 설명문처럼 가는 거 아냐 지금 내가 쓰는 게 일기인 거야 수필인 거야 고민하고 따져보니 다 성에 차지 않았다. 문서의 반쯤 채우고 묵혀둔 수필과 소설과 시를 조금씩 번갈아 가며 쓰다 보니 영 진척이 없었다. 거기에 시험 기간이 겹치다 보니 (사실 공부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시험 기간이라는 핑계를 대고 하루에 한 번도 문서를 열지 않는 날이 늘어만 갔다. 글을 잘 쓰려면 겪어야 하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게 괴로웠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픔과 직면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냥 문서를 열지 않고 태블릿을 가만 내버려 두며 한 달가량을 보내버렸다.

 

고작 한 살 더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글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한번 문서를 열면 시간 단위로 사라지는 시간이 낭비는 아닐지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내년에는 벌써 고등학생인데, 이렇게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있어도 되는 건가? 중학생 때 전교권 들어도 인서울 대학 갈까 말까인데 전교권도 아닌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도 문서 여는 것을 주저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글을 대하는 내 안일한 마음가짐 때문에. 어떤 소설가는 문장 쓰는 법을 알기 위해 얼음 밥을 깨 먹으며 잠도 자지 않고 꼬박 글만 썼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 용기도 기력도 없는 내가 글을 써도 되는지,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 전 세계에서 글을 쓰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아닌지 고민이 됐다. 자기합리화나 하고 또다시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해 버렸다는 점에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회의감은 두려움으로 발전해서, 심지어 두 달 정도 글 쓰는 걸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일종의 슬럼프인 셈이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사실은, 글을 쓰기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종종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길을 걷다 발견한 전선줄이 오선지와 비슷하고 그 위에 앉아있는 참새들은 음표처럼 보인다는 사실(그리고 그걸 어떻게 시로 쓰면 좋을지), 샤워하다 문득 생각난 새로운 소설에 관한 아이디어, 자전거를 타며 느낀 해방감을 시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수필과 일기는 어떻게 다르고 내 '수필'은 수필이 맞는가에 관한 것들. 이 사실을 자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딱히 없었고, 그냥 어느 순간 '어, 내가 또 글 생각을 했네.' 하고 생각한 게 계기였다. (그때는 아마 일기와 수필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글은 내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다시 태블릿을 붙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삼 일에 한 번 몇 분이라도 의식적으로 글을 쓰려 노력했던 까닭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마음을 편히 먹으려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조건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하나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생활이라 생각하니 다시 글쓰기가 재밌어졌다. 여전히 내 글이 옳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생각이 결국 내 글에 도움을 줄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덜 고통스럽다.

 

그러고 보면 내가 글쓰기를 잘하고, 꾸준히 쓰던 때는 내가 글쓰기를 즐기던 때와 일치했다. 첫 소설을 썼던 아홉 살 때도, 백일장에서 매번 상을 타던 초등학생 때도, 시력과 글 몇 문단을 맞바꾸던 중1 때도 글을 즐겨서 꾸준히 쓴 것이었다. 단순히 잘 쓰고 싶어 글을 쓰는 것보다 뭐든 즐기면서 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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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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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윤서호 님 안녕하세요. '꾸준히 좋은 글을 쓰는 방법' 잘 읽었습니다. 글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을 잘 담고 있네요. 아홉 살 때 소설을 썼다고 하니 먼저 대단하네요. 논술학원에서 글쓰기를 배워서, 아마도 주장을 선명하게 나타내려고 하나 봅니다. 논술과 문학 글쓰기는 많이 달라요!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초등학생 때는 책을 많이 읽다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독서를 끊는 원인이 바로, '내년에는 벌써 고등학생인데, 이렇게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있어도 되는 건가?' 이 문장에 답이 있죠. 중학생부터는 학교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 대학에 들어가면 바로 레포트 쓰기를 하고 시험 대신 레포트 쓰기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그러려면 청소년기에 글쓰기 실력을 키워야겠죠? 문제는 청소년기에 수능… 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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