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 99%

그런 날이 있다. 습한 하루, 24시간이 습기로 가득하다 못해 바람 하나 불지 않아 습기로 꾹꾹 눌러져 그런 것들로 채워진 그런 날 말이다. 실제 습도는 55%정도여도, 다른 이들에겐 보송보송한 하루일지라도 나에게만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고 무거운 그런 하루말이다.
그런 하루의 특징은 시간이 참 길다. 아무리 무엇에 열중해도 시간은 흐르지도 않고 이상하게 속은 울렁인다.
마치 어항 속 금붕어가 된 양 갇혀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습함의 정체를 제대로 안 적은 없지만 이 습기를 줄이는 방법은 알고 있다. 개인마다의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의 습기를 대하는 방법이 있다.

얼마 전 내가 가장 좋아했던 TV 프로그램인 '말하는대로'를 다시 정주행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가수,정치인,작가등을 비롯한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 이종범 웹툰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생각을, 습기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바꾸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도망가지 말고 정면으로 이겨라'라는 말을 평생 들었기에 아무도 이겨내란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노출치료를 하려하고, 이겨야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살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었다. 나 또한 별 다를 것 없이 이겨내려고 했고, 부끄럽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겨내란 말을 수없이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찌보면 이상하기도 한 것이 나도 결국 이겨내지 못하면서 나에게 이겨내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겨내라 말한 내가 모순적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 스스로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습기를 어떻게 해야할까?' '맞서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다. 이 습기들을 남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더 신중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긴 고민 끝에 나는 내 나름대로 습기를 대하는 방법을 확립시켰다. 우선 그런 날이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것, 동네 친구와 약속을 잡던, 혼자서 돌아다니던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를 가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거나 서점에 간다던지 내가 밖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아하는 일들을 했다. 그러다보면 내 주변을 멤돌던 습한 기운들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결국 내가 습기라는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은 맞서기보다 도망치거나 피하는 방법이었다. 썩 나쁜 방법은 아니란 생각에 나는 내가 습도 99%로 가득 찰 때면 습기를 피해가거나 도망친다. 잠시 이런다고 해서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고, 뭐라고 하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금이 좋고 말이다. 이런 생각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도망칠 구석을 남겨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다 내 편이 될 수 없는 세상 속 유일하게 내가 편히 쉴 수 있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곳,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한 구석이 필요하다고 느끼곤 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나의 이 방법들이 틀렸다고 할지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습기를 이겨내려고 맞서려고 했던 것이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듯이, 지금 나의 방법 또한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찾은 나의 최선의 방법이니 이 방법으로 습도를 적절히 유지시키는 게 지금의 나에겐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kakao
....

1
댓글남기기

로그인 후 사용해주세요.
1 Comment threads
0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1 Comment authors
문부일

pm1108to 님 안녕하세요. 부지런하게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습도 99%' 잘 읽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네요. pm1108to 님은, 지난 번에 올린 글 '나를 인정할 것'도 그렇고,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잘 담고 있네요. 독자들에게 큰 힘과 위로, 나도 저렇게 해야지! 이런 긍정적인 힘을 주네요. '어항 속 금붕어가 된 양 갇혀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문장이 와닿아요. 누구나 이럴 때 있잖아요.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 때! 습기를 이겨내려는 방법도 참 좋네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소박하게 기분 전환하는 방법. 저도 참고할게요! 꿀팁 감사 다만, 왜 감정의 습도가 99%가 되는지 그 이유를 좀 스스로…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