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1.

제임스는 린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잖아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아버지? 제임스 아버지 핑계대지마. 넌 그냥 그런 인간인거야.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서 남들이 어렵게 얻어낸 결과물들을 부러워하지. 노력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서 자존심만 남았어. 나조차도 너가 질리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

 

“평생 그렇게 살아. 그냥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마.”

 

 

“S! 이번에 하는 교내 백일장 나랑같이 하자! 너도 글쓰는 거 좋아하잖아 ”

 

“나는 참여 안 할건데.”

 

“왜?”

 

“그렇게 잘 쓰지도 못하고 백일장까지 나갈 수준도 안돼.”

 

“에이 그런게 어딨어 그냥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지. 같이 하자! 같이 하자아아아. 나 너랑 같이 하고 싶단 말이야.”

 

“… 알았어 한번 준비는 해볼게.”

 

“진짜지? 너 하기로 한거다. 반장! S랑 나 교내 백일장 신청서 줘!”

 

 

 

제임스는 눈을 감았다. 꽉 깨물었던 입술에서 피맛이 났다. “나라고 노력을 안해봤겠어? 해도 안되는걸 어떡하라고! 애초에 이 세상은 재능있는 놈들만 주시받도록 되어있잖아. 린다, 넌 몰라 세상이 내 것이 아닌 기분을.” 짓씹듯 중얼거리는 제임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오 이게 이번 백일장에 낼 소설이야?”

 

“어 근데 아직 손봐야 할 곳이 많아”

 

“무슨 내용인데?”

 

“그냥 주인공이 악역인 이야기?”

 

“뭐? 그게 뭐야”

 

“있어 그런게,”

 

“됐다 안 알려줄거면 말아라. 대신 내 것 좀 봐줘 중간까지 쓴 건데 몇 번 고치긴 했어도 여전히 구멍이 많은 것 같단 말이야.”

 

“야 내가 너 소설을 몇 번이나 봤는데 너 진짜 잘 써 지난번에도 대회에서 동상 받았었잖아. 넌 진짜 재능있다니까.”

 

삭삭삭

 

제임스는 나이프를 갈았다. 작은 나이프를 갈고 갈았다. 날이 벼려진 칼날에 대고 손가락을 그었다. 상흔에서 떨어지는 피가 바닥에 닿았다.

 

“그래? 난 잘 모르겠어. 그냥 몇 번을 고쳐써도 다 똑같은 것 같고.”

 

“그럼 나한테 가져온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

 

“넌 조언을 잘해 주잖아! 그리고 너가 봐줘야 뭔가 안심이 된단 말이야.”

 

“알겠어 줘 봐 봐줄게.”

 

4.

 

진작에 네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잖아.

그럼에도 놓기 싫어서 아득바득 붙잡고 있던 건 너의 선택이었어.

 

린다, 사실 나는 어쩌면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이 세상은 불공평 하다는 걸.

 

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6.

 

“S야 밥 먹어야지”

 

“조금만 있다가요.”

 

“너 또 글쓰니?”

 

“…..”

 

“엄마가 누누이 말했지. 네가 취미로 글쓰는 건 말리지 않겠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안가게 하라고.”

 

 

제임스는 기다렸다. 완벽한 때와 시기를. 손가락의 상처가 쓰라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제임스의 머릿속에 남은 단 한가지는, 열등감이었다. 잘난 놈들, 잘난 놈들, 잘난 놈들. 제임스는 중얼거리며 작은 나이프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칼날에 빛이 반짝였다.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발로 지우면서 제임스는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제임스는 자신의 어릴 적을 기억했다. 꿈과 희망이 있던 시절, 하고 싶었던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시절,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 징 징 징 일렉기타의 소리가 뇌 속을 헤집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빌어먹을 나이프 하나만 남기고 모든 것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해놓았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던 글귀를 읽고 또 읽었다. 글자들이 조금씩 닳아갈 무렵 제임스의 마음도 서서히 단단해졌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나는 음악에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나만큼 부르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는데, 나만큼 하면서 작사작곡도 하는 사람들만도 저렇게 넘친다는데.

 

이렇게 부르는게 아니었나봐.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6.

 

“너 백일장 제출했어?”

 

“어 했지.”

 

“아 너무 떨린다. 와 아까 슬쩍 봤는데 애들 많이 냈더라.”

 

“그럼 이번에도 상은 물건너 갔네.”

 

“야 그래도 혹시 모른다. 동상이라도 받게 될지.”

 

“나는 그냥 재미삼아서 한번 내본거지. 기대는 안해.”

 

 

제임스는 기억 한켠에 있던 오래된 추억을 떠올렸다. 막연한 불안감과 답답함을 청춘이라 치부하며 밀어내왔던 모든 것들을.

 

그래….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어쩌면 내게도 재능이 조그만 씨앗정도라도 있지는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제임스는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같이 백일장 나갈거지?

 

당연하지

 

S! 나 글좀 봐줘 너무 떨려서 아직 메일 못보냈어 어떡해..

 

뭘 그렇게 걱정해 너 글 잘쓰잖아

 

그래도….

 

알았어 내가 봐줄게.

 

진짜로 너 이번에 상탈거 같아.

 

진짜?

 

어 그니까 빨리 보내 나도 보내게.

 

알았어….

 

하나 둘 셋하면 같이 확인하는 거다?

 

하나

 

 

 

8

땀이 흥건했다.

 

역겨움이 올라온다.

 

혐오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이 나올것만 같이 입을 다물었다.

 

팔을 피가 나도록 긁는다.

 

생채기가 나는 팔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웅크리고 앉아 30부터 거꾸로 헤아려간다.

 

이번에도 무너진다면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는데,

 

막연한 불안감과 불안정한 기분이 요동치며 식은땀이 난다.

 

“………”

 

새벽 세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밤이 너무나 길었다.

 

9.

 

“S! 뭐해 여기서?”

 

“왔어?”

 

“엥? 나 기다린거야?”

 

“같이 갈라고.”

 

“웬일이래… 그건 그렇고 오늘이 백일장 발표날이지?”

 

“그렇지”

 

“아 완전 떨린다 내이름 있었으면… “

 

“있을거야 네이름은.”

 

“그걸 어떻게 아냐?“

 

“그냥, 넌 글 잘쓰잖아.”

 

10.

사람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은 생각 외로 작은 일이었다.

금이 가있는 벽에 대고 주먹질 한번이면 다 무너져내리는 것 처럼.

 

린다는 생각했다.

내가 제임스에 대해서 너무 몰랐던 걸까?

그렇게 곪아가고 있었는데….

 

음악밖에 없는 사람인데…..

 

사실 그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몰아간거 아니었을까?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

 

린다는 제임스를 도저히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동안 지내온 세월이 얼마인데 무 자르듯이 감정을 잘라서 끊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이야기 해보자. 함께 노력해보자고 설득하자.

린다는 희망을 품었다. 린다 스스로도 부질없을 것임을 알고 있는 희망이었지만

사람의 감정은 간사하게도 이기적인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11.

하루종일 기분이 멍했다.

 

백일장 수상자를 확인하러 가는 길은 시끄러웠다.

 

기대감에 차있는 목소리,

 

시끄러운 수다 소리

 

뛰어다니는 발소리

모든 소음들은 하나로 합쳐져 고막속에서 웅웅 울리는 진동처럼 남았다.

 

제임스, 린다, 제임스, 린다.

머릿속에서 중얼거리는 그들의 이름이 아득했다.

 

12.

린다는 제임스에게 찾아가기로 했다.

 

제임스가 조금 진정이 되고 나면,

그러면,

찾아가자.

 

언젠가,

제임스도 후회할 날이 올거야.

 

일주일이 지난 후에

린다는 제임스의 집 문앞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제임스 나 왔어. 우리 얘기 좀 하자.

 

거실은 텅 비어있었다.

 

얘가 어딜 간거야?

 

부엌을 지나

 

방을 지나

 

창고를 지나

 

터벅 터벅 터벅

 

제임스?

 

이윽고 제임스가 잘 쓰지 않던

 

안방에 다다랐다.

 

경첩의 긁는 소리가 귀를 벤다.

 

제임스?

 

그 방안에는

그 천장에는

그 바닥에는

 

빨간색 빨간색 온통 빨간색.

 

심장이 울린다.

 

경악감이 손을 지배한다.

 

눈알이 터질 것만 같다.

 

13.

잠식될 것만 같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에 화장실로 달려간다.

 

왜 너는 이것마저 나에게 주질 않는 거지?

 

다 가졌잖아.

 

나는 왜 포기를 못하는 거지?

 

싫어. 싫어.

 

사실 나도 알고 있어.

14.

 

제임스는 처음으로 친구의 노래를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제임스 설마 너 내 곡 베껴 쓴 건 아니지?

 

아니잖아 제임스 대체 왜…..

 

넌 다 가졌잖아.

 

난 왜 단 하나 내게 주어진 것 조차 포기해야 해?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 한거지?

 

이건 절대로 내 탓이 아니야.

 

절대로.

 

15.

 

S가 말했다.

 

난 평생 네 뒤에 있게 되겠지

 

뭐?

 

나는 절대로 변하지 못할 거야.

 

무슨 말이야 그게

 

차라리 너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

 

나는……

 

나는……

 

네가 부러워.

 

함박눈이 내린다.

 

얼어붙은 땅은 부드러운 눈에 덮여 깨끗해졌다.

 

겨울이란 본디 생명이 죽는 계절이라 하던가.

 

그런 말을 생각해 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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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is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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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끝님 안녕하세요. 액자 구성 형식의 이야기는 오랜만이라 신선했습니다. 게다가 현실과 허구의 이야기(어떤 것이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가 예고없이 교차로 이어진다는 것도 좋았어요. 다만 서사가 구성만큼 매력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일단 제임스와 린다 – 나와 S의 이야기가 너무 1:1로 대응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술 작업이라는 것이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서사 이전에 나만의 사유가 존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퇴고 하실 때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인물들의 다른 면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