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달리는 사람

도서관에서 시간을 예상보다 너무 많이 허비해 병원 가는 걸음을 빨리했다. 시계를 보니 3시 50분, 5분 거리 병원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었고 병원 건물 일 층 약국을 흘끗 보니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진료와 약 처방까지 십 분 안에 끝마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최고층에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입한 병원은, 세상에, 만원이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내 앞에 대기 중이었다. 6시면 학원을 가야하고 최소한 5시 4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숙제도 덜했기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계획이 전부 어긋나고 있었다. 다급히 엄마에게 전화해 내일 병원에 들르면 안 되겠냐 물었지만, 엄마는 단호했고, 하는 수 없이 이십 분 동안 덜 끝낸 영어 숙제를 했다. 프런트에서 돈을 낼 때는 너무 서두른 나머지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해 간호사 선생님이 잡아주시기도 했다. 진단서를 받고 가방 지퍼를 잠그며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엘리베이터에는 할머니 두 분과 아저씨 한 분이 타고 계셨다. 입구 자리에 내가 타고 있었기에, 아마 내가 먼저 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문이 열렸고, 내 옆 엘리베이터 입구 근처에 서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먼저 내리셨다. 할머니가 내리시고 내가 뒤이어 내리려 했으나 앞서 내리신 할머니 뒤에 계신 할머니가 따라 내리려 하셔서 할머니와 나는 엘리베이터 문에 끼이고 말았다.

상황 자체로도 참 민망한 상황이었으나, 할머니 뒤에 서 계시던 아저씨가 할머니를 잡으시며 '좀 이따 가도 될 것을….'하고 작게 말씀하셔서 더 민망해졌다. 귀가 확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황급히 약국으로 향했고 약을 받아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한참 어린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가려고 하다 자기와 끼인 것도 황당하실 텐데, 사과조차 안 하고 도망가 버려 할머니는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또 '고작' 좀 이따 가라는 말을 들은 것뿐이었지만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나쁜 짓을 했다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그게 잘못한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고 할머니에게도 잘못이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누가 나갈 건지 눈치만 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상황을 겪은 적 있기에 그걸 피하려 한 것이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나를 발견하고 기분이 더 나빠졌다.

집에 오는 길을 걸 때만 해도, 나는 오늘 하루가 최악의 하루라고 생각했다. 멎지 않는 콧물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고 점심을 먹은 직후엔 식곤증 때문에 졸음이 와 손등을 꼬집으며 잠을 참은데 다, 병원에서 시간을 그렇게 썼고 서두르다 면박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하루를 되짚어보니 그렇게 나쁜 하루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서두름은 항상 실수를 만든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학교에 늦었다고 깜빡이는 신호일 때 횡단보도를 뛰다 트럭에 치이는 순간 '서두름은 실수를 낳는다'는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날 이후 내 삶에 여유라는 것을 추가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우선 학교에 지각할까 봐 이십 미터 거리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로 가는 대신 차 없을 때를 골라 무단횡단하는 짓을 멈췄다. 아직 교통사고를 당할뻔한 적은 없지만, 무단횡단 그 자체로도 범법행위인데다 위험한 행동이니까. 운동한다 생각하고 횡단보도로 가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공부할 때도 조급증을 억누르려 노력했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문제를 덜 틀리는 것 같다. 특히 계산 실수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의 실수가 줄었다.

애초에 살아오기를 다급하게 살아온 나인지라 처음에는 이런 여유가 솔직히 달갑지만은 않았다. 빨리 해치워버리면 시간도 노력도 절약할 일을 질질 끌어 두 마리 토끼를 놓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예전의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고 있었다. 수학 문제를 더 많이, 더 짧은 시간 내에 풀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다급히 풀다 천천히 풀었으면 맞췄을 문제를 절반 넘게 틀리기도 했고, 병원에서도 고작 몇 분 절약하려고 할머니를 앞지르는 무례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으니까. 두 마리 토끼를 놓칠 바에는 한 마리 토끼, 여유라는 토끼라도 붙잡는 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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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윤서호 님 안녕하세요. 꾸준하게 수필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포근한 봄날, 어떻게 지내세요? '너무 빨리 달리는 사람' 잘 읽었습니다. 제가 성격이 급하거든요. 장단점이 있어요. 일을 신속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반대로 빨리 처리가 안 되면 답답해하죠. 물론 빨리 서두르면 실수할 확률도 더 높아요. 그래서 이 글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라서 재미가 있네요. 병원에서의 경험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서두르면 실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찾는 과정도 좋네요. 다만 ' 순간 '서두름은 실수를 낳는다'는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에서 천천히 해야겠다고 깨달았는데 그 이후 2개의 단락도 비슷한 내용이라고 보여집니다. 조금만 더 삶을 넓게 바라보는 에피소드면 어떨까요? 세상과 교감하면서 삶의 반경을 넓히는 과정들. 천천히 하면서 경험하는…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