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아스팔트

하지만 령, 언니는 너무 어리잖아. 너는 령 언니가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나는 격조했던 큰언니의 출산 소식을 접한 것과 더불어, 몇 년 만의 장마에 조금은 혼란스러운 때였다. 물젖은 버스의 창문은 빗방울로 가려져 버스 내부가 제법 좁고 답답해 보여서인지, 큰 언니의 출산이 막막한 일이라 느꼈기 때문인지. 더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며칠째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며 익어가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기운을 죄다 잃은 하늘만이 우중충하게 세상을 뒤덮었다. 너는 령 언니가 남편 없이 애를 키우기로 했다며 작은 입술을 오물대며 말했다.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던 남자는 네 말에 고개를 들어 잠시 우리네를 쳐다보는가 하더니, 이내 곧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우산 끝에서 고여있던 빗물이 똑똑 떨어져, 발가락 새로 스며들었다. 나는 발을 움츠렸다. 양 허벅지가 조금씩 아려왔다. 아려오는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뱃속에 있는 아이를 먼저 떠올렸다. 덜컥 아이가 생겨 혼인 신고까지 마친 나와는 달리, 령 언니는. 큰 언니 본인의 삶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남편이 없으면, 엄마의 나이도 너무 젊은 것이라 – 아니, 젊은 것 이전에 어린 것이라 평가절하 되는 걸까, 응 랑아? 랑에게 물었다. 랑은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 것과 어린 것은 분명 다르잖아. 사람들은 너무 우매해. 나는 생각했다. 버스는 덜컹이며 아스팔트 위의 웅덩이를 지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포물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너는 어느새 이어폰을 꼽은 채로, 음악 듣기와 인터넷 서핑에 빠져 있었다. 령 언니 집을 먼저 들렀다 갔을 엄마를 떠올렸다.

징글징글한 삶의 숙주를, 아이는 어쩌면 떼어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동안은 그렇게 시간을 흘려 보냈다. 배가 부르고 입덧을 하고, 좋아하던 것을 멀리하고. 싫어하던 것을 가까이할 때. 나는 비로소 아이가 내 몸에 '기생'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이에게 기생이라니, 매정한 어머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아이에게 예쁘지 않은 언어를 붙여준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그렇게 사랑할 수 없는 까닭에 조용히, 뱃속에 아이를 미워한다. 령 언니도 그럴까. 령 언니는 그러지 않았을 거야. 어려서부터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큰 언니가 아이를 지우지 않는 까닭을 차분히 나열하는 사이에 버스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한다. 미끄러지듯 하차하는 사람들. 버스는 입을 쫙 벌리고 비에 젖은 사람들을 태운다. 꿉꿉한 공기가 웃돈다. 민소매를 입어서인지 바깥으로 드러난 어깨라인과 팔꿈치, 손목까지 전부. 타인의 체취와 내 체취, 그리고 비에 젖어 묘한 향기로 뒤덮인다. 랑과 나는 조금씩 걷는다. 우산 밑으로 살포시 드러나는 랑의 입술과 턱이 묵묵해 보인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은 죄다 묵묵한 걸까 – 랑이 걷는다. 비탈길 군데군데 파인 아스팔트 속으로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랑은 그곳을 장난스레 밟으며 지났다. 다 큰 어른이 웅덩이를 장난스레 밟고 지나는 건 썩 좋아 보이는 행위는 아니었고, 나는 풋 –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빗소리에 묻혀 흩어질 웃음을.

큰 언니는 좁고 낮은 집에 살고 있었다. 반쯤 바닥에 가라앉았으나, 얼핏 보면 1층이라 부를 수도 있는 반지하 구조의 다가구 주택이었다. 어릴 적 살던 다슬기 집과 흡사했다. 우리는 다가구 주택에 억지로 만들어놓은 듯한 포즈를 취한 반지하 – 등을 바위에 철썩 붙은 다슬기와 비슷하다 해서 다슬기 집이라 부르곤 했다. 억지로 기생하는 집 – 다슬기 집. 다슬기 집은 비가 잘 들어왔다. 장마가 불어닥친 여름이면 창문을 열 수 없었고, 텁텁한 냄새가 집 안 가득 차올라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하는 수없이 화장실에 딸린 좁은 창문을 열곤 했다. 령 언니를 보자 모든 게 생생히 돌아왔다. 정확히는 큰 언니의 집을 보니 그랬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살짝 눌린 주먹코와 기다란 속눈썹은 언니를 닮았는데, 다른 구석은 영 아닌 게. 제 아빠를 닮은 게 틀림없었으나 구태여 물어보진 않았다. 근데, 언니는 애 혼자 키우면 안 힘들어? 랑이 끼어들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령 언니는 찬찬히 입을 떼어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할 때 나오던 버릇도 여전했다. 어 – 길게 발음하는 것, 입술을 쭉 빼는 것.

나는 굳이 남편이 있어야 하나 싶어서. 그래서 결혼하지 않았어.

요즘 같은 시대에 홀로 선다는 것, 여자 혼자 애를 키운다는 것,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본인이 직접 했다는 것. 모든 게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녕, 너도 임신했잖아.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당연한 걸 왜 묻는 거야? 당연한걸.. 그러니까 내 말은.

언니는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주어를 말할 수 없는 심정. 언니는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혼인신고했어. 사실 아이를 크게 낳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없으면 조심하지 그랬어.

언니는 끝내 아이를 지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낙태의 리스크를 아는 걸까. 하지만 어째서. 낙태를 하면 그게 잔인한 '모' 가 되며, 엄마가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한 여자에게 돌아가는 걸까. 내가 고민하던 사이, 랑은 접시 위에 사과를 다 비웠다. 큰 언니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한 팩을 내왔다. 엄마가 왔다 갔었어. 엄청 화난 얼굴을 하고선 – 엄마가 왔다 갔었어. 령 언니가 말했다.

나더러 이제 어떻게 할 거냬.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어. 화가 난 사람 같았어.

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더운 열기가 피부에 맞닿았다.

엄마는 분명 화가 나 있었어. 남편을 데려오라고 화냈어. 하지만 난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어째.

성을 내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가슴께를 쥐뜯을 엄마.내가 못 산다며 발을 동동 굴리는 엄마. 큰 언니를 똑똑하고 성공한 여성으로 키우고 싶어했던 엄마, 누구보다 빛나는 삶을 살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길 원했던 엄마. 본인이 못 이룬 업적을 큰 언니가 이루길 바랐던 엄마. 빈 허공에 엄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말고, 편부모 가정으로 자라날 령 언니의 아이를 보았다. 엄마나 아빠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아이의 성장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걸까, 싶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와 랑은 아빠 없이도 건강하게 잘 자라났으니까.

*

아가, 집으로 가는 길에는 목련 나무를 보았어. 죽어 있는 나무였어. 하지만 꽃은 죽어있지 않았어. 목련 나무를 실은 트럭이 골목 새를 조용히 지났어. 빗물에 젖어난 아스팔트에서 찰방 찰방 소리가 났어. 아마 너도 들었을 거야. 나무 뒤를 따르는 빗물이 어쩐지 조문객의 행렬 같았어. 나무는 어디로 가는 걸까, 싶었어. 따라가진 못 했어. 랑은 풍선껌을 씹었어. 딸기향이 났어. 큰 언니는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 이랬는데. 그럼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엄마는 잘 모르겠어. 엄마는 아직 세상이 어려워. 비가 너무 많이 오네. 항상 예쁜 얘기 못 해 줘서 미안해.

비가 쏟아진다. 하늘에는 구멍이 뚫렸다. 구멍은 아주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아이가 생긴 것도, 예고된 일이었다. 섹스를 하고 사정을 하고 임신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그러도록 만들었으니까. 내가 너를 낳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 너를 흡수하지 못해도, 너를 흡수할 자신이 없어도. 내가 너를 낳는 게 당연한 일이니. 아빠를 갖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이니.

아가는 답이 없었다. 차들이 도로를 지난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파장 소리가 한 데 뒤엉킨다. 아스팔트는 빗물을 흡수하지 못 했다. 그대로 웅덩이가 생겨났다. 고인물은 계속해서 고일 뿐이었다. 가정의 형성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큰언니. 어쩌면 나 역시 아이를 받아드리지 못하니까. 둘 다 똑같은 게 아닐까. 하지만 뭐가 어때서.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목련 나무가 장례식을 치른다고 말하면, 모두들 나를 독특한 사람이나 음유시인이라 보겠지만, 도대체 왜. 아이가 내 몸에 기생한다고 여기는 내 생각을 말하면, 그건 매정한 엄마가 되는 걸까. 무언가 꽉 막힌 것 같다. 빗소리를 뚫고 흐르지 못하는 나의 울음처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벽이라는 게, 꼭 있는 것만 같다. 언니의 세계에는 비가 내리고 있을까. 비는 꽃들에게 좋다. 어린 아이에게도 좋다. 때 묻지 않은 모든 것에게 비는 좋다. 참 이상한 일이다. 비가 오면 때가 씻겨나가고 그러니까 비가 오면 더 좋아야 하는 건 검은 때가 곳곳에 묻어난 어른들 아닐까? 나는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심장 박동을 되짚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다. 그 새에 커다란 화물차 한 대가 교통 법규를 준수하지 않은 채 골목을 달린다. 아스팔트 위에 낭자한 빗물이 내쪽을 향해 날을 세운다. 나는 그 뾰족하지도 그렇다고 결코 말랑하기만 한 건 또 아닌 물을 한껏 듸집어쓴다. 운 나쁘게 토양이 아닌 아스팔트 같은 곳에나 떨어진 빗물은 흡수되지 못 한다. 그러나 빗물이 조준, 사격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따지면 언니도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이가 조준, 사격을 해서 생긴 게 아닌 사람들. 내 자궁벽이 아스팔트가 되어 단단해진 것처럼, 빗물에 잔뜩 젖어난 원피스가 뱃가죽에 딱 달라붙어 서서히 말라붙는다. 싫다. 싫은 기분이다.

세상은 혼란스럽다. 무지하게 시끄러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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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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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우주디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어느새 [고등부]가 되셨네요! 축하(?) 드립니다! 오늘 글도 잘 읽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우주디님의 평소 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언니의 등장, 너라는 2인칭 대상 등등. 그렇게 쭉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부분의 묘사에서 감탄하였습니다. 아스팔트에 내리는 비를 여러가지 이미지와 상황에 빗댄 것이 좋았습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의 묘사가 따로 떨어져 있으니 시작과 동시에 아스팔트의 이미지를 조금 더 넣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앞부분에서 너와 내가 령언니(큰언니가 맞나요?)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다소 혼란스러워서 비에 대한 묘사가 휘발되는 듯 해요. 우주디님께 강화길 작가의 「가원」을 추천드립니다! 즐거운 독서는 물론이거니와, 여성과 가부장제에 대한 사유에 대해서도 좀 더 넓게 생각할 요소가 많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