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어느 날 저녁, 우체통을 확인해보니 동연에게서 편지가 와 있었다. 동연의 장례식에 다녀온 지 꼭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헛것을 본 게 아닌가 고민했고, 그다음에는 누군가 장난삼아 편지를 보낸 것이라 생각했다. 편지 봉투 겉면에 쓰인 ‘느린 우체통’이란 글자만 없었더라면, 뜯어보기도 전에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을지도 몰랐다.

조심스레 봉투의 겉면을 살펴보았다. 앞면에는 동연의 이름이, 뒷면에는 바닷가의 풍경과 전망대에 놀러 오라는 짤막한 홍보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작년에 동연이 혼자 여행을 다녀온 후 그렇게나 자랑했던 전망대였다. 천천히 봉투를 뜯자 편지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동시에 익숙한 동연의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편지지에서는 희미하게 짠 냄새가 났다. 비린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것 같기도 한, 그 경계에 모호하게 걸친 짭짤한 향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단순했다. 1년 후에 보면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너도 이곳에 놀러 왔으며 좋았을 텐데, 라는 진부한 이야기, 그리고 작년에 실컷 들었던 여행 이야기가 전부였다. 고작 글씨일 뿐인데도 어쩜 그리 동연이 쓴 티가 팍팍 나는지 몰랐다. 문자를 주고 받을 때도 어울리지 않게 이모티콘을 서너 개씩 붙여 쓰더니, 편지에서도 온갖 이모티콘이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괜스레 웃음이 나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내려가다, 문득 어느 문장에서 눈이 멈추었다. ‘내년 이맘때에는 같이 놀러 가자.’ 하는 짧은 문장. 나중에 한번 밥 먹자는 형식적인 인사나 일기 끝에 쓰던 또 놀러 가고 싶다는 상투적인 문구와 다를 바 없이.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 확실했지만, 왜인지 그 문장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냥 지나쳐도 상관 없을 문장에서 자꾸만 시선은 벗어나기를 거부했다.

동연도, 나도.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었다. 이 편지가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동연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그 형식적인 약속조차 지킬 수 없으리란 사실을. 여전히 동연은 일주일 전에 멈춰 있었고, 나는 그 일주일 만큼 나아갔다. 그 공백은 메워지지 못한 채 자꾸만 벌어지고, 틈을 비집고 들어온 편지는 다시금 그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어느새 짭짤한 냄새는 저 멀리 달아났고, 그 대신 장례식장에서 맡았던 향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급작스레 터져나온 헛웃음이 목을 타고 떨리다가 끝내는 부서져내렸다. 그 편지가 1년이 지나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도, 하필이면 도착한 날이 동연의 장례식이 끝난 뒤라는 것도.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고, 동시에 현실이란 자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등골에 쫙 돋은 소름은 자꾸만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1년. 그 짧은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동연은 죽었다. 편지가 다다르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동연은 사라졌다.

겨우 숨을 삼키고 다시 편지에 시선을 돌렸다. 급하게 쓴 건지, 끝 부분의 글씨는 앞의 것보다도 훨씬 흐트러져 있었다. 글자가 잘 들어오지 않아 보이는 것만 대충 훑었다. 얼른 가야 하는데, 쓰다 보니까 자꾸만 편지가 길어지네. 그 뒤에 붙은 이모티콘이 우는 이모티콘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단숨에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자, 유난히도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러니 너도 편지로 답장해줬으면 좋겠어. 느린 우체통 말고, 직접 전달하는 우체통 알지?

편지를 내려놓은 채. 겉옷 주머니를 뒤져 동전 지갑을 찾아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사다리타기로 받았던 동연의 선물이었다. 동연의 장례식 이후로 외출하는 게 얼마만이더라, 생각하다가 기억이 없다는 걸 알고 그만두었다. 동전 지갑 안에서 동전이 짤랑였다. 오랫동안 연필을 쥐지 않아 말랑해져버린 손가락의 굳은 살이, 다시금 딱딱하게 아려오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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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멜론소다님! 항상 31일에 글을 올려주시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감정묘사도 무리가 없었고 사건을 드러내는 방식에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에 대해 굳이 말하자면, 멜론소다님의 글이 다른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윤성희 작가님께서 쓰신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글을 쓰는 마음 가짐에 대해 잘 드러나 있어요! 모쪼록 저의 추천도서가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