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너가는 봄 그리고 밤

우리 집에는 해바라기 액자가 벽에 걸쳐있다. 노트북을 보면서 눈이 건조할 때마다 늘 보는 해바라기였다. 비뚤어진 꽃잎과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을 달고 있는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삐딱한 고개를 들고서 단체로 나를 바라보는데, 때로는 불량아들의 눈치를 본다는 착각이 든다. 나는 무조건 겁에 질려있어야 했다. 겁이라는 건 후퇴를 부르고 그 덕에 나는 살 수 있는 거였으니까. 해바라기는 그것도 모르고 고개를 내빼고 있다. 나는 그들이 보기 싫을 정도로 밉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이 무서웠을 뿐이다. 뿌리로 거머쥔 온화한 흙마저도 내게 있어 폭력 같았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빗었고 대강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확인하며 5분, 10분 늘어나는 시간을 보았다. 눈을 뜨기 버거운 햇빛이었고, 하늘은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실명될 것만 같은 밝기를 좋아하는 꽃들이 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스스로 낮아지려 했지만, 태양과의 거리가 약간 멀어지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떠올린다. 나는 죄책감에 쓰러질 때가 많다. 그리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얼굴에 굴복할 때도 있다. 불행히도 나는 많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써놓았다. 그리고 나는 몸서리도 치지 못한 채 벚꽃의 향에 잠식되어갔다. 목련에 들러붙어 길거리 위로 떨어지고 썩게 된다. 보도블록에는 풍선껌이 까맣게 변해 일종의 얼룩이 되어있었다. 머리 부분이 잘려나간 제비가, 도로에서 납작하게 누워있는 강아지가, 다시 살아날 듯이. 햇빛과 마주 설듯이 보였다. 하지만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그들에게는, 나의 기대심이 저주처럼 보였을 수밖에 없겠지.

내딛는 걸음마다 오월의 공기가 발등을 스친다. 나는 흰색 양말을 신고 신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양말에 묻는 것을 확인한다. 짙은 고동빛의 흙만 묻어있다. 육교 계단을 올라가며 잠시 나무들보다 높아질 수 있었다. 폭신거리는 육교의 바닥은 너의 손등 같았다. 곧 있으면 만나지 않을까. 이 높은 자리에서 발을 떼는 것은 막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뛰어내리고 싶으니까. 높은 곳에서 하강하는 기분의 굴곡이 나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육교에서 내려오면 나의 키가 반절 넘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내 발바닥은 공원에 달싹 붙어있었다. 나는 가로수 옆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나뭇잎 틈새로 빛이 아른거린다. 시야는 금방 붉어졌고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오게 된 이유가 뭐야?”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앞에는 긴 머리의 한 여자애가 서 있었다. 환상과도 같은, 누군가의 어린 시절 같은. 한 번쯤 부딪혀보고 싶은 그 모습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기지개를 피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기필코 그 애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쥐어짜듯이 말을 건넨다. 한 번만 이 공원을 돌아보자. 나는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나뭇가지의 그늘은 나를 점투성이로 만들었다. 한편 그 애의 얼굴은 말끔한데 조금 어두운 감이 있었다.

“아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 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받아쳤다.

“나는 너와 이름이 같은데, 그냥 주원이라고 똑같이 부르면 안 돼?”

“……안 돼. 일단 널 주희라고 부를게. 그리고 넌 나를 언니라고 불러.”

주희는 가명을 달고 나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서 제자리에서 마구 뛰는 걸 보니 이름은 마음에 썩 들었나 보다. 우리는 손을 잡고 길거리에 핀 들꽃을 구경하였다. 그러나 갈수록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웠다. 주희는 민들레의 하얀 머리를 보면 난데없이 그것들을 불고 다녔다. 주희에게 있어 숨을 다시 쉴 시간은 없었다. 그 애는 울타리 너머의 민들레를 불기 위해 나에게 떼를 쓴다. 그러더니 주희는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울타리를 넘으려 하다 어지러운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는 주희를 일으켜 세우며 한숨을 쉬었다. 그 애는 나를 보고 두 뺨을 부풀린다.

“다들 나를 싫어해. 아무도 민들레를 같이 불어 주지 않아.”

“그래도 주희야 적당히 해야지.”

멋쩍은 듯이 주희는 땅만 보고 있었다. 어릴 적 나는 특이한 행동을 하는 감이 있었고 혼자서 씩씩대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주희는 여전히 심술이 덜 풀린 채로 중얼거린다.

“사람들은 민들레를 좋아하는 게 맞을까? 우리 동네에 있던 피아노 학원 이름도 민들레였잖아.”

비명 같은 바람이 지나고, 내 이마를 누가 바늘로 찌른 듯이 아렸다. 두통이 온몸으로 퍼졌다.

“주희야, 주희 여덟 살 맞지?”

“응, 근데 왜?”

“피아노 학원, 온사랑으로 바꿨나 싶어서 알고 싶거든.”

“응 바꿨지. 근데 나는 예전에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더 좋아. 그때 원장님이 엄청 친절했잖아.”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주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시금 해바라기인지 민들레인지 그 미묘한 것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있는 골목은 민들레 투성이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해바라기가 있었고……. 나는 아직도 그 학원의 원장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속으로 끓어오르는 말 한마디.

‘그건 친절이 아니야.’

나는 6살에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비행기 동요를 배울 때 다른 언니 오빠들은 체르니와 소나타를 배웠다. 들려오는 화음은 내 귓가에 내려앉았고 나는 언니 오빠를 동경했다. 특히 당시 피아노 원장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 안에서 30분 씩 피아노를 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피아노 방 안에서 잠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일어나니 여느 선생님과 원장은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원장은 나를 따로 불러 자신의 옆에서 자라고 요구했다. 그의 옆에서 자는 척하며 나는 그가 정말 따스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날수록 그가 나에게 바라는 요구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그에게 간단한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의 볼에 얼굴을 비비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거절은 없었다. 내가 싫다고 하면, 머리를 통째로 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중년의 힘에서 당시의 나를 구할 만한 힘도 없었다. 그가 한 번은 아깝다며 머리를 잡고 연속적으로 입맞춤을 했을 때. 나는 사랑받는다는 추측으로 버텼다. 흐트러진 머리는 다시 빗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선을 침범했다. 그 학원에는 2층에 바이올린을 배우는 공간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언니의 바이올린 솜씨를 보았다. 날카롭지만 품위 있는 소리에 매료되었던 그 순간에도, 원장은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런 식으로 추행이 생길 때는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는 내가 사랑스러워서 만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으니까. 오히려 원장에게 화내는 그 순간에는 내 잘못이 되어버리니까. 나는 여전히 원장을 따랐다. 하루는 통증으로 쓰러진 나는 그를 째려보았다. 그는 제대로 몸을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라면서, 차갑게 혼을 냈다.

‘개새끼.’

나는 휘청거리며 걸었다. 주희는 별말 없이 나를 따라온다. 감정이 복받쳤다. 해는 서쪽으로 향한 내 얼굴을 짓궂게 쏘았다. 그동안 나의 표정은 주름이 많이 잡혔다. 나는 8살 이후에도 그런 일을 몇 번 더 겪는다. 주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 도망갈 수도 없었다. 울타리에 위태롭게 앉았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주희도 내 옆에 따라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배배 꼬았다.

“언니, 울고 있어?”

“미안해, 주희야. 나 괜찮은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괜찮으면 안 울어야 하는 거잖아.”

내 손을 툭툭 주희가 건드렸다. 그러더니 휴지를 쥐여준다. 나는 급하게 젖은 눈가를 닦는다.

“내가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건데 잘 가져왔지? 언니.”

“잘했다. 우리 주희…… 주원, 최고다.”

나는 어설프게 보조개를 드러낸다. 넌 어느새 땅바닥에 떨어진 잎새를 세고 있었다. 나는 가장 모양이 예쁜 잎사귀를 찾아 건넸다. 너는 그 잎사귀를 들고 손을 마구 흔들었다. 나는 평화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볕에서는 너의 얼굴이 쉽사리 잘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 평평할 것 같던 네 삶에는 이미 수차례 꿰맨 자국이 있었다.

“너는 고민 같은 거 있어?”

“친구가 없어. 다들 날 아프게 해. 애들이 때리고 어른들이 소리지르는 거 그만했으면 좋겠어.”

“내가 직접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건 말해줄 수 있어. 우리 주원이는 가장 씩씩하게 자랄 거야.”

“그렇지만 언니는 방금 전에도 울었잖아.”

“씩씩한 사람도 잘 울어. 그리고 약속하자, 난 네가 팔 깨물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머뭇거린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억울해한다.

“팔 깨물면 마음이 덜 아픈데.”

나는 너의 이마에 엉킨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리고 포옹한다. 우리의 어깨는 서로의 눈물로 젖어갔다. 안마를 받은 것처럼 목덜미까지 시원해졌다. 꽃내음은 서서히 시들었다. 땅거미가 저물어가고 가로등같이 우뚝 선 삶은 서서히 단단해진다. 낮달은 하얗게 분칠을 하기 시작한다.

“근데 팔을 스스로 깨물면 주원이만 아파, 지금의 주원이도 과거의 주원이도 다치게 돼.”

“그럼 어떡해?”

“그림으로든, 글짓기를 하든, 너를 소개해줘. 그걸 우리는 표현이라 불러. 표현해주렴.”

공원은 한 줌의 그림자가 되었다. 뼈가 툭툭 튀어나온 사람은 있지만, 그것을 꺼내어 만질 수는 없는 것처럼. 나의 어린 시절은 도드라졌지만 직접 고칠 수 없었다. 결국, 이 거리에는 나 혼자만이 남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 애는 어느새 밤중으로 사라졌다. 허탈한 발걸음은 자국을 새겼다. 꽃가루가 코를 간지럽히고, 육교의 계단은 거친 기침을 내뱉게 한다. 여전히 뛰어내릴까 고민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도로에서 나는 경적을 듣고, 다시금 정신을 들고 간다. 죽은 제비와 강아지가 아직도 있으면 묻어줘야겠다. 밤으로 돌아오는 하루, 봄을 떠나보내는 계절. 나는 아스팔트의 텁텁한 매연을 들이마셨다. 민들레는 여전히 나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몸짓을 했다. 해바라기는 솜털을 쫓는 내가 비겁하다며 내려다본다. 그래, 꽃들이 뭐라 하든지 주원이는 지금도 잘 산다. 가끔 세상을 등지고 싶지만, 죽지는 않았고. 특별해지고 싶었지만, 결국 평범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너도 사람이니까. 조금 무겁지만 삶을 가방에 담아 매는 사람이므로, 계속 걷는다. 집에 돌아가면 부당했던 기억들과 눈싸움을 해야겠다. 끝까지 째려본다는 마음으로. 나는 오직 나만이 될 수 있다고. 동시에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팔을 깨무는 대신 농담이나 뱉었다. 우리는 그렇게 밤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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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사랑하마님 안녕하세요. 묘사가 참 아름다운 글을 올려주셨네요. 그리고 제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봄과 밤 모두 제가 좋아하는 단어거든요. 주인공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밤, 그 밤을 주인공이 잘 통과하길 바라며 읽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주인공이 과거의 나를 맞닥뜨리는 장면이 갑작스럽다는 점이었습니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어떤 흐름이나 느낌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그와 더불어 주인공이 과거의 나에게 이름을 붙어주는 장면에도 좀 더 의미나 사유가 들어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라는 것은 한 사람을 규정짓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부분까지 봄과 밤을 잘 끌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처음 장면 묘사보다 봄과 밤이 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