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구는 평평한가?-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시속 1600km로 자전하는 구체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 구체는 시속 110,000km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그 태양계는 시속 880,000km로 움직이면서, 은하를 가로지르고. 그 은하는 시속 수백만 km로 우주를 누비지만 우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시겠죠. 실제로 우리가 있는 곳은, 거대한 플라네타리움이자 테라리엄이면서 사운드 스테이지 겸 할리우드의 야외 촬영지입니다. 여러분과 지금까지 살면서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죠.”
-마크 서전트-

행성과 항성의 자전 및 공전이 없는 세상. 낭만적이게도 상식적인 지식을 선택한 사람과 평면 지구인은 각자 다른 땅에서 다른 물리적 현상을 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흥미로운 상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 실험하고 가설을 세우며 연구의 방향을 끝없이 고쳐야 한다. 이는 평범한 사고 속에도 적용된 일종의 규율이다. 행동에 적용된 지침은 일상에서도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나는 아는 언니와 사이를 더 돈독하게 하려 마카롱을 준비하고는 했다. 마카롱은 식용 색소에 완전히 담긴 듯한 강렬한 색채를 지녔다. 가공된 식품이므로 크기가 일정하며 모양새가 아기자기했다. 그러므로 나는 ‘예쁘다’는 가치 판단 끝에 마카롱을 언니에게 주었다. 그러나 언니는 카페인이나 단 음식을 먹으면 끼니를 잘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언니에게 청포도와 딸기를 주었다. 이 작은 변화에도 사고는 서로 얽히다가 나중에 현실과 타협하는 형식으로 발전한다. 언니와 친해지고 싶다는 의지, 언니가 다른 사람들처럼 마카롱을 좋아할 것이라는 일반화, 마카롱을 선호하는 자세, 심지어 언니에게 괜한 음식을 주었다는 후회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언니를 기쁘게 하려는 목적 아래에서 나는 간식의 종류를 바꿀 수밖에 없다. 이렇듯이 최종 변화를 이끄는 일반의 논리와 문제없는 감정의 흐름을 통해 우리는 일반적인 사고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논리가 비약하면 그 사람의 사고에 장애가 있는지부터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확인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감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문제가 잠시 동안 발현하는 것이라면 기분 관련 장애, 일종 대상에 대한 포비아 증상이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논리와 감정의 부재가 동시에 생길 수 있다.
나는 평면 지구설(Flat Earth Theory)보다, 평면 지구인(Flat-Earther)의 태도가 지닌 허점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그들의 논리와 감정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과 일치할까? 해나로어 걸링던스모어(천체물리학자), 조 피에르 박사(심리학 교수), 스피로스 미칼라키스(물리학자), 스콧 켈리 사령관(전 나사 우주비행사)의 교차편집으로 나타난 그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해나로어, 스피로스는 평면 지구설을 매혹적이고 그럴싸하다(fascinating, it’s something)라고 포장하였다. 스피로스 학자는 매혹이라는 단어, 그 앞에 ‘증명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붙였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증명 불가능이 평면 지구인의 인식을 떨어뜨리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조, 스콧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평면 지구인의 존재를 다시금 상기했다.

“실제로 우리가 있는 곳은, 거대한 플라네타리움*이자 테라리엄*이면서…….”
*플라네타리움: 반구형의 천장에 설치된 스크린에 달, 태양, 항성, 행성 따위의 천체를 투영하는 장치. 천구(天球) 위에서 천체의 위치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네이버 국어사전)
*테라리엄: 밀폐된 유리그릇, 또는 아가리가 작은 유리병 안에서 작은 식물을 재배하는 일. (네이버 두산백과)
(평면 지구인이 일식을 본 후) “일식이 영화에 나온 특수효과 같아서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태양이 저절로 모습을 가리는 것 같았어요. 3차원적인 물체가 태양 앞을 태양 앞을 가리는 것 같진 않았죠…… 그래서 일식을 보면서 저렇게 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평면 지구설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역사의 길 한편으로 사라진 이론으로 자주 조명되었던 이름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뒤집은 쿠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그 외 갈릴레오, 티코 브라헤 등의 인물로 지구의 모양은 안정을 찾아갔다. 그럼에도 평면 지구인은 일말의 가능성으로 지구가 구형이 아닐 거라고 이견을 낸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의문을 가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지구가 구형인 것은 의심하기에 누구도 모르지 않는 자명한 사실이다. 적확한 실험 끝에 증거가 많이 확보된 이론은 지독한 비평을 받을 기회가 서서히 사라진다. 물론 회의적 의문을 던지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잦은 검토는 곧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이론을 점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진보를 위해 지식의 검증 순서가 차례차례 생겼다. 지구 모양의 논쟁은 우선 순위 뒤로 또 뒤로 넘어간 것이다.
평면 지구인은 이 현황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일식을 바라보면서도 자신들의 가설을 주장한다. 달의 역광이 영상에 보였으나, 이들은 커다란 돔 형식의 디스플레이 기기가 하늘과 같다고 주장한다. 마치 지구는 ‘트루먼 쇼’에 나오는 세트장과 같다며(마크 서전트) 우리가 속고 있음을 깨우치고 벗어나는 것을 중심으로 둔다. 속이는 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종교에서 신의 정체를 샅샅이 알 수 없듯. 그들은 절대다수가 아직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평면 지구설을 믿어, 거짓된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와도 속임수의 출처를 모르는 것이 매한가지이지만. NASA의 영악한 계획과 정부의 얍삽한 거짓을 직감한 자신(평면 지구인)에게 안도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은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속임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는 의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짓밟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평면 지구인에게 있어, 그들의 진리 탐구 과정의 자세가 나의 견해와 다소 엇갈렸다. 나는 계곡에서 돌을 던져 물수제비 횟수를 예상하고, 어설픈 실력에 맞추어 목표를 계속 조절하는 아이를 떠올렸다. 과학은 그 아이가 물수제비를 시도하는 과정처럼, 혁신을 이루는 그 순간까지 혹은 그 이상으로 이론 수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론은 긍정적 힘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음모론은 음침하거나 사악한 것’도 아니다. 과학은 사실 파악의 학문이므로 우리의 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해서 학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다만 기술과 과학을 윤리적으로 역이용하는 세대를 막기 위해 모라토리엄을 잠시 외치는 것뿐이다. 지구가 구형이라고, 과학이 우리를 위협하고 싸워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 다큐멘터리에서 평면 지구인의 가장 큰 맹점으로 보였다.

“개인 맞춤 번호판의 문구는 부정적이면 안 돼요…… 평면 지구 활동을 시작한 뒤로 온갖 물건들이 오고 있어요. 가끔 이렇게 책도 보낸답니다. 평면 지구 시계, 차 번호판의 초대형 버전, 평면 지구 테이블.”
“우리가 과학을 상대로 이기고 있는 이유는, 과학이 수학뿐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보여주잖아요. (바다 건너편에 있는 육지를 가리키며) 저기 시애틀이 보여요. 그게 중요해요.”
-마크 서전트-

과학은 수학과 떼어낼 수가 없다. 수량 및 공간의 성질에 관한 공식과 값은 자연현상의 기호였다. 연주시차는 시차의 2분의 1이라는 간단한 계산부터, 포그슨 방정식과 빈의 변위 법칙처럼 조금 복잡한 공식까지도. 솔직하게 나는 마크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크 서전트의 가설이 평면 지구인을 늘려가고 있긴 하나. 물리가 너무 수학적이고 가시적이지 않다는 마크는, 보이지 않는 요소에 대해 각종 귀납법과 다양한 학문으로 새로운 시야를 타파하려는 시도를 제쳐놓는다. 논리는, 사실이며 확고한 근거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크가 강조하는 ‘가시적인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거울 앞에 선다면 그 거울 안에도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겉보기 운동을 있는 그대로, 정치적 종교적 색을 띠지 않는 사실 근거의 융합 없이, 무턱대고 믿는 것은 오류 가능성을 더 높힐 수밖에 없다. 네이선 톰프슨(평면 지구인)은 성경에 나오는 내용에 알맞는 평면 지구설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태양 중심설이 태양 숭배 사상이며, 전문가들이 지구의 나이가 60억 년이었던 것을 140억 년으로 바꾸었다는 말을 하였다. 일단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 년이다. 60억 년은 오차로 14억년이 더해진 값이며, 140억 년은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큰 오류이다. 애초에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이므로, 그의 말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천체의 궤도는 신성한 원형이 아닌 이심률에 영향을 받는 타원형이었다. 당시 종교적 가치 판단을 제어해서 찾은 사실이다. 과학이 퍼지기 전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이가 소수자였다. 종교의 선을 뛰어넘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결코 다수가 아니었다. 특히나 종교적으로 평면 지구설을 주장하는 것.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의심의 과정이 바로 선구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평면 지구인의 구호, 언젠가 자신이 마주할 진실을 기다리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각박하지만 소수자에게 무조건 이 세상을 뒤집는 권위가 따르는 건 아니다. 다만 오늘의 과학이 발달하여,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소수의 의견이 오늘의 다수가 된 것은. 그 이론이 매우 단단하며 논리적인 동시에 현상 일치도가 크기 때문이었다. 어느 현상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스피로스(물리학자)는 음모론자들이 자신의 가설을 반박하는 증거물을 바탕으로 주로 반문하기를 선택한다고 소견을 냈다. 반대쪽의 의견에 의문을 던지는 것 이후에는, 자신의 논의를 지키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증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늘 움직이고 있다. 평면 지구인 중 몇몇은 평면 지구의 굿즈 즉, 차 번호판, 테이블, 현수막을 만들며 친근감의 요소를 이용한다. 그 인상은 생각보다 매우 부드럽다. 마크는 평면 지구 국제 회담에서 여느 평면 지구인 노부가 쓴 편지를 읽었는데. 그 노부가 손주들에게 평면 지구설을 알려주었고, 손주들은 지구 평면설을 그들의 친구들에게 설명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오류 가능성이 높은 지식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생각하여 개인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구가 한 방향으로 24시간 내내 회전한다면, 1시간마다 15도씩 회전한다는 뜻이죠. 지구 어느 곳에서든 자이로스코프*를 확인해보면……(자이로스코프는 아주 정밀한 실험 도구로써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낼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 자이로스코프는 지구가 1시간마다 15도씩 돌아가고 있다고 반증함.) 그래서, 물론 다들(평면 지구인) 당황했어요. 심각한 문제인 거잖아요?”
-(평면 지구인 엔지니어)-
“(평면 지구 모임에 과학자는 있니?) 아니요, 있을 리가 없죠. 교육의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그때부턴 교육에 소속되어 버려요. 제약들이 생기죠. 선생님을 보세요,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하잖아요. (너의 지구 평면설을 따르는 그런 교육자가 있니?) 아니요.”
-마크 서전트-
“(휴스턴 우주 센터에 가보는 거였어요.) 사상을 주입받으려 나사에 가는 중이에요…… 적진(우주 센터)이 아주 가까워요, 입 냄새가 느껴질 정도예요.”
-페트리시아 스티어-

증거가 없는 지식 전이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강압적으로 그들을 누르는 시도는 위험부담을 높이며,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과 멸시가 정당화될 수도 있으므로, 평면 지구설을 선택한 이들을 완전히 사회에서 배척할 수 없다. 해나로어(천체물리학자)는 아직 평면 지구인들이 큰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사상에 대한 믿음으로 뭉친 이들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언이지만. 한편 평면 지구인 캐미 노들은 ‘평면 지구 모형이라는 건 다양한 가능성이 한데 모여 섞이는 것을 뜻한다며’ 다양한 지구 모형을 떠올리는 이들의 화합을 요구했다. 파벌들이 되어 내분을 일으킬 것에 대한 그들의 우려를 보여주는 대목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마크 서전트와 자신이 평면 지구설의 창시자라고 소개하는 맷 보일런은 서로의 입지를 위태롭게 바라보며 경쟁의 구도를 보였다. (참고로 맷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나오지 않았다. 제작 후 이익 창출의 12%와 25~50%의 분량을 요구하였고 마크 대신 자신의 일정 사상에 동의해야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겠다고 포고하였고. 제작진은 결국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평면 지구설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상일지 궁금했다. 평면 지구 모임에 과학자도 교육자도 없을 거라 단언하는 마크, ‘우주 센터’를 ‘적진’이라고 보며 다소 혐오적인 발언을 하는 페트리시아는 논리와 감정의 중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까. 평면 지구인들은 분열 속에서도 평면 지구 국제 회담을 여는 데에 성공하였다. 음모론에 진심으로 열광하는 이들의 내면을 이 필름에서 다루는데, 나는 그들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리곤 했다.
과학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이 현상을 사람 대 사람으로서 바라보겠다. 조 피에르 박사(심리학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개성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를 타인과 공감하고 싶어 한다’라는 소견을 말한다. 더불어 평면 지구인들이 확증 편향에 푹 잠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맹렬한 비난은 지양하고 사회에 다시금 소속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의 생각에 일정한 자유를 주는 것’에 대하여 입을 모았다. 마크가 공동체에 속해있음은 안도감을 주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때 나는 음모론자(더불어 소외감을 심히 느끼는 개인)의 고독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 가족과 연을 끊은 평면 지구인, 어쩌면 외로운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과 닮은 이를 찾는 것은 가장 행복한 결말일지도 모른다. 평면 지구인들은 졌고,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믿는 이들이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이 글과 다큐멘터리의 결론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논리와 감정의 차이가 분명 있다. 비록 어렵지만 조화의 영역을 찾아야 하고, 이는 과학의 이름을 빌려 더 단결하고 싶어 하는 그들의 심리를 직접 마주해야 한다. 그들이 비폭력 속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유지된다면, 소외된 자로 인한 사회의 위험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개인의 전문성에 차질이 생기겠지만, 이를 다그치며 망신을 주는 것은 학제적 성격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우리의 시야를 더 넓힐 이유가 생긴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부분에서 평면 지구인들은 지구의 만곡을 부정하기 위해 실험을 준비한다. 동일한 높이로부터 각각 하나씩 구멍이 있는 두 개의 판이 세워져 있다. 두 개의 판의 구멍에 나란히 빛을 쏘았을 때, 전등의 높이인 5.2m의 빛이 그 안으로 일정히 들어가면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7m의 높이까지 전등을 올려야 빛이 일정히 들어간다면, 이는 지구에 만곡이 있다는 소리이다. 결과를 본 평면 지구인은 아래의 반응을 보였다.

“흥미롭네요. 흥미로워요.(Interesting, Interesting there.)”

전등의 높이는 몇 미터인가, 지금 당신의 지구도 평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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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교

사랑하마 님의 소개로 저도 이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되었어요. 보면서 여러모로 웃기기도 했고 동시에 심각해지기도 했습니다. 조금 서치를 해보니 지구평평론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증명이 안되는 사안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과학을 부정하는 이러한 현상을 최근 미국에서는 로 많이 분석하기도 해요. 미국은 또한 음모론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평평론자들의 논리를 학력주의와 관련한 반지성주의로 치부한다면 그 또한 엘리트주의적 해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저는 듭니다. 사랑하마 님께서도 이들에게서 관찰되는 사회적 소외의 특성과 이 컬트 집단이 주는 소속감에 대해 말해주셨듯이 과학적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의 교육 조건에 대한 분석이나 음모론이 쉽게 번성하는 정보국의 불투명성 같은 것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과학자들이 모인 펍에서…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