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불투명한 시트지 너머, 유리창에 달라붙은 빗방울이 보였다. 자그마한 물방울들이 저들끼리 합쳐지다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창을 보다 말고 정수기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냉수는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정수기가 며칠 전부터 말썽을 부렸지만, 사장은 말로만 수리사를 부른다고 했지, 정작 수리 센터에 전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뜨거운 물을 받았다. 장마철에 마시는 믹스 커피는 딱히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온몸에 전이되는 따듯함을 느끼기에, 컨테이너 안은 이미 충분히 고열감을 떠안겼다. 사장은 책상에 다리 한 쪽을 올린 채, 삐딱하게 안아서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말했다. 유정 씨 조금 이따 사람 오기로 했으니까, 나가서 커피 좀 사 와. 나는 고개를 느슨하게 끄덕였다. 머리를 바짝 올려 묶었는데도, 목덜미에선 땀이 한 바가지 쏟아져 내렸다. 컨테이너 밖을 나가자 한산하고 습한 온기가 맨 팔을 감싸 쥐었다. 길을 걷는 잠깐 새에 목덜미를 흐르던 땀이 서서히 말라붙는다. 나는 투명한 비닐우산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았다. 얽히고설키는 방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온통 뿌옇게 질려 있었다. 장마가 한차례 맴도는 여름의 중순이 온 것이다. 천둥번개의 조짐과 함께 발 걸음은 어느덧 카페에 다다랐다. 프랜 차이즈 카페치고 어딘가 허름한 구석이 있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에어컨에서 뿜어져 내오는 냉기가 서서히 뺨에 스몄다. 오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에 공사를 철수한 인부들은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사무실 근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모른 체 고개를 돌렸다. 테이크 아웃 커피가 만들어지는 원두기 소음 너머로 그들의 수다 소리가 한 데 뭉쳐 들려왔다. 설계도면에 문제가 생겨서, 공사가 몇 달 미뤄질 수도 있다며. 장마도 장마지만.. 참. 수다를 엿듣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사장이었다. 나는 사장의 다그침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웅덩이에 발이 빠져, 구두 속에 물이 고이는 지도 모르면서.

컨테이너 안에 들어서자, 웬 왜소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빠글빠글 파마머리 새로 듬성듬성 허연 두피가 드러나 보였다. 나는 간단한 다과 상과 함께 테이블 위로 싸 온 커피를 올려두었다. 나이 든 여자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장은 아파트가 곧 완공될 예정이라며 갖가지 설명을 늘어놓았다. 최대한 빨리 입주해야 해서요. 여자가 말했다. 사장은 걱정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창 너머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골리앗과 포클레인은 미동도 없이 멈춰 있었다. 여자는 장마가 빨리 지나야 할 텐데, 하며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사장은 대답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자 거센 빗소리가 강하게 들이닥쳤다. 여자가 남긴 아메리카노는 어느덧 점점 흐려져 색을 잃어간다. 나는 여자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완공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을 텐데, 괜찮으려나. 사장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하지 마, 유정 씨. 괜찮아 괜찮아. 나는 컵 속에 담겨가는 온수를 멍하니 응시하다 말고 입을 열었다. 마음속에 호우 주의보가 발령된 것처럼, 무언가 일렁였다. 아뇨, 그래도 말은 해줘야죠. 사장은 웃음기가 가신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유정 씨, 언제까지 컨테이너에서 일할 거야? 상가로 이전할 때 나랑 같이 가야지. 안 그래? 목소리에는 웃음이 담기지 않았지만, 사장의 입가는 분명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컨테이너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 같았다. 무너질듯 무너지지 않는, 그러나 온전하다고 볼 수도 없는 세계. 나는 컵을 내려놓았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센 장마는 컨테이너를 강타했다. 컨테이너가 퉁명스럽게 울었다. 사장이 퉁명스러움을 뚫고 말문을 열려던 찰나, 나는 컨테이너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머리 위로 찬 빗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모든 게 흠뻑 젖어든다. 사장의 큰 목소리가 쏟아지는 빗소리에 흐릿하게 찢겼다. 나는 비 사이를 걸었다. 협소한 컨테이너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셔츠가 흠뻑 젖어들며 살갗에 들러붙는다. 볼록 솟은 배의 형태가 드러난다. 고개를 들자 보인 골리앗은 여전히 멈춰있다. 구두굽이 흙모래 새로 파고든다. 질펀 질펀한 모래 구덩이에 발자국이 찍힌다. 모래 위로 꽂아둔 펜스는, 빗물에 흘러내린 모래에 뒤섞여 옆으로 비스듬히 기운다. 기울고 기울다 이내 곧 아예 드러눕는다. 안전 주의 펜스 위로 빗물이 쏟아진다. 멀리서 본 컨테이너는 곧 무너질 것처럼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 칠이 벗겨진 컨테이너는 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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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우주디님 안녕하세요.
이번 글엔 정황이 많이 들어나 있어서 읽기 좋았습니다.
상황을 이용한 감정묘사는 언제나 좋다고 생각했으나
열감과 대비되는 장소로 카페를 설정한 것이 특히 좋았습니다.
정황을 적당히 드러내는 방법을 적용하게 되셨으니 이제는
우주디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나 소재를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회적 사건이든 일상의 사소한 순간이든 우주디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