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아래

 

겨울바람이 좁은 골목을 스쳤다. 또 한 철의 생명은 버려지고 뼈대만 남은 가지가 길 위에 드리워 사람의 마음을 위태롭게 하는 듯했다. 보름에 떠오른 달은 설경을 묵묵히 비추어 오래된 집들이 오목조목 늘어서 있는 길모퉁이에 한껏 녹아들었다. 

돌담에 붙은 그림자를 따라 하얀 눈 위를 메마른 발걸음으로 걷던 남자는 어느덧 하천 변두리 길에 도달해 있었다. 산 아랫마을은 도심과 달리 낙후되어 있어 밤이 긴 겨울은 유독 고단했다. 그런 촌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군청에서 따로 수리를 하지 않는 탓에 골목의 가로등은 십중팔구 꺼져있거나 불안하게 깜빡여 그마저도 몇 없는 행인을 쌀쌀맞게 대했다. 추위에 온통 굳어버린 두 손을 주머니에 감춰두고 걸음을 재촉하던 찰나, 남자는 저 앞 가로등에 홀로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무언가를 안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얀 이불에 쌓인 아기, 그것은 분명 살아있는 아기였던 것이다. 어느샌가 그는 눈이 밟히는 소리도 죽이고 조심스레 다가가고 있었다. 시린 겨울에도 얇은 티만을 걸친 여자는 하얀 이불 속을 진득하게 바라보다 품에 안았다. 어깨의 들썩임과 흐느끼는 소리로 여자가 울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삼십 대의 젊은 나이로 보이는 그녀는 분명 가난하지만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지워버린 순수함과 선함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오랜만에 비현실적인 단어들로 누군가를 거리낌 없이 예찬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여자다, 그리 생각했던 것인가. 안면도 없는 이를 향한 측은지심은 살을 에는 추위를 잊을 만큼 강하게 타올라 남자를 삼켰다. 그런 애매모호한 연민보다 고단한 몸을 뉠 집이 급했다면 좋았을 것을, 한마디로 철저하게 이기적이어야 했음을 우매한 남자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불을 마주한 불나방이 따로 없는 듯 가로등 아래의 광경은 그를 끌어들였고, 결과적으로 월야의 행인은 필라멘트에 타 죽은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여자는 끌어안고 있던 하얀 이불에 쌓인 아기를 가로등 아래 종이 박스에 눕혔다. 그 순간, 애매하게 눈밭에 떨어지지 못한 남자의 왼발이 길을 잃은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끓던 무언가가 맹렬히 기세를 달리하고 있었다. 다각형 눈의 모서리에 찔리는 것만 같은, 손은 땀을 쏟아내고 당장 도망가고 싶은 기분에도 남자는 어쩐지 그 가로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에서 익숙한 이들을 보았다. 그것은 몰상식한 옆집 부모와도 닮았고 그의 다혈질인 부친과도 닮았고 부하 직원의 이기와, 친구들의 스스럼없는 가식과도 닮아 있었다. 말하자면 세상 모든 추악함을 담은 얼굴이었다.  가로등 아래, 작은 생명과 여자, 그리고 이들을 비추는 눈은 발끝에서 시작되는 그림자의 화폭이었으며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고요하고 매서운 그녀의 앞날을 예견하는 복선이 아닐까, 종이 박스에도 꼭 잘 맞는 아기가 1월의 추위를 견딜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살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단지 일평생 따라다닐 죽은 혼의 무게를 덜고자 하는 일일지라도,  그의 안쓰러운 마음은 다시 기어 나와 병적인 인간 혐오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따지고 보자면 여자는 가로등 아래서 흉측하게 변모한 것이 아니라 본디 살아가는 것이 황혼을 향해 걷는 일이라, 그림자는 자연스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느새 연민과 증오의 교차로에서 두리번거리는 풋내 나는 객이 되었다. 가로등 불은 깜빡이며 사람의 마음에 무심하게 동전을 던지는 듯싶었다. 앞면은 강렬하게 타오르며 하루살이가 빛에 그러하듯 맹목적인 희망에 머리를 처박는 여자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다가도 그것이 등을 돌리면 아이의 울음소리와 섞인 여자의 고해성사가 그의 귀를 더더욱 애처롭게 파고들다 어둠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어느새 눈이 그치고 달은 밤의 중턱에 걸려 있었다. 감정을 추슬렀는지 여자는 굳어있던 발걸음을 돌려 하천의 다리로 향하여 죽은 듯 조용한 물살과 얼어붙은 잡초를 지나 타박타박 신을 끌었다. 묘하게도 기억에 강렬히 남을 것 같은 소리였다. 걸음이 산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주춤거리던 남자는 주머니에 처박혀 있던 구겨진 메모지를 꺼내며 가로등에 다가갔다. 시간이 늦어 서두르지 않으면 슈퍼에서 세제나 휴지를 구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찌 되었든 그에게는 살아갈 나날이 다섯 손가락을 다 접을 만큼 남아 있었고 아기와 여자를 목격한 것은 전혀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털어내리라 다짐을 했음에도 문제의 박스를 지나칠 때에는 폐에 가득 찬 숨을 내뱉지 못하였다. 슬쩍 보이는 흰 이불이 남자를 더더욱 괴롭게 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죄의식을 가슴에 새겼다 할 뿐이지, 필요 이상으로 아이의 삶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새 여자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 건너 어둠이 거미줄을 친 골목에서 그가 마치 새로 설비한 가로등이라도 된 양 굴었다. 누군가 발견할 때까지 밤새 아이를 달래는 가로등. 거리가 벌어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희망에 차 있을 여자의 얼굴에 속이 뒤틀려 아기를 향해 뻗으려 했던 손은 애꿎은 메모만 구기며 주머니로 돌아갔다. 그녀는 남자의 시선에 끈질기게 따라붙어 사정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모난 마음은 비뚤어지는 것이었다. 그녀를 단죄하고자 하는 괴상한 정의감일까, 가로등의 누런빛에 눈이 물들 때마다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아, 정말 스스럼없이 여자를 외면할 수 있었다. 그는 근 삼 일간 알코올은 입에 대지 않았는데도 한껏 도취된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기를 향한 일말의 애틋함은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되어 겨울 바닥에서 차츰 썩어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탓이었다. 

여자의 긴 치맛자락만이 눈치도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망연한 정적은 하천 너머와 가로등 사이를 메웠다. 비로소 단념한 것인지 타박타박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다시 골목에 부딪혔다. 멀어지는 여자를 곁눈질로 흘겼다가 발견한 처연한 등이 산통을 깼다. 남자는 하천을 따라 구부정한 길을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었다. 점멸하던 가로등을 벗어났는데도 차가운 빛은 눈에 사람의 그림자를 녹일 만큼 일렁이고 있었다. 따라오는 음영은 길게,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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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오전 5시님 안녕하세요.
가로등 아래의 겨울밤 풍경이 생생히 와닿는 글, 잘 읽었습니다.
추위가 마치 발 아래까지 찾아온듯 섬세한 묘사가 좋았습니다.
또 작은 사건을 포착하여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낸 것이
짧은 분량의 글과 딱 맞아 떨어지는 호흡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에 대해 언급하자면,
아기를 버리는 어머니라는 인물은 이렇게 짧게 다루기에 너무나 큰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서사를 품은 인물을 그리려면 더 긴 분량, 더 큰 스토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더 사소한 사건을 그려도 괜찮습니다.
소소한 일상, 미묘한 분위기, 그런 것들이 가로등 아래의 풍경으로 그려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