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세 가지 방향으로 흩날리는데

사랑은 하나가 되어 겨울로 흘러갔다.

 

1. 삶은 바람처럼 고요히 엎드리고

얼어버린 바다의 내부에는 얕은 윤슬조차 묻지 않았다. 약한 몸으로 견디기에 턱없이 무겁고 감싸 안기에 허리가 두꺼웠다. 사람들은 심해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생겼다고 믿었다. 나도 그랬고 우리 엄마도 그랬다. 바닷물이 울컥 밀려오면 짠내가 요동치듯이, 우리는 늘 겹겹이 코에 올라선 피비린내에 익숙했다. 두 팔을 벌려도 스치는 것은 양수뿐이다. 부들대는 진동과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은 발끝까지 전이되었다. 열 달간 작은 단칸방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는다. 나는 살덩이가 하루하루 불어 가고 있었고, 미끄러운 촉감에 잠식되었다. 누군가의 심장 아래에 나의 심장이 덤으로 파생되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 ‘목소리’들은 꽤 여럿이 있다. 나는 ‘목소리’가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 도통 알 길은 없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성대의 위치도 가성의 호흡도 몰랐으니까. 내가 빳빳이 고개를 들었던 곳에 몇 번이고 손이 스쳤다 간다. 우리 엄마의 배에 단풍이 몇 번이고 쏟아졌다. 엄마는 곧 겨울이 온다며 태교로 클래식을 듣고, 가벼운 요가를 했다. 남들처럼 눈꽃을 보며,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부모는 나의 계절을 위해 서툰 맘으로 모빌을 미리 사두었다. 그 후 남는 시간에는 많이 울었다. 내 머리 위치가 알맞지 않아 제왕절개를 해야만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엄마는 매번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미안해할 이유도 대상도 없는 넋두리였다. 천장에 목을 맨 인형은 창문을 기웃거렸다. 이제 완벽한 겨울이라고. 태아는 그 와중에도 바쁘게 떠다니는 잔해물이 거슬렸는지, 배꼽에 난 줄을 잡고 발버둥 쳤다. 태어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나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였고, 예측과 달리 차디찬 후회가 날 가두고 있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계절의 향을 느껴왔다. 봄에는 라일락, 진달래 향을 길거리에서 뽑아본다. 여름에는 빗줄기의 텁텁함이 공기 속에 딱딱히 굳어있으며, 가을에는 박하사탕을 입에 털어 넣은 느낌이다. 그리고 겨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바람은 창백한 표정을 했고 나는 그 가운데로 잠수했다.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겨울이 찾아오기 전 복잡한 계절의 냄새를 마주하기 싫었다. 나는 항상 무미건조한 그늘을 지고 햇살로 가득한 운동장을 돌았다. 해의 온기는 점점 갈수록 징그러웠고, 거기에 더해진 냄새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겨울은 고난의 시간을 잠재웠다. 그때는 잠수복을 입지 않아도 눈앞이 파랬다. 색소가 머리칼 사이로 스며들어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 감각을 동경했다. 하늘의 끝에 매달린 산수유 열매에서도 피비린내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붉게 달아오른 나무들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는 일이 많았다. 엄마와 같이 길을 걷다가도 그렇게 멍하니 있는 일이 잦았다. 나는 옷으로 급히 핸드폰의 렌즈를 닦아 카메라 모드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핸드폰의 화면이 번쩍거렸다.

“엄마 이것 좀 봐. 사진 잘 나왔지?”

“한 번 보자, 너 정말 사진을 잘 찍는구나.”

엄마는 내가 사진을 찍으면 그것을 보고 감탄하는 일이 잦다. 나는 입술에 정성스레 립스틱을 바르듯이, 아무 풍경이나 찍고 사진을 그 자리에서 보정했다. 엄마는 그것을 뒤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하나의 일에 매진하는 버릇이 있다. 그 일에 빠져드느라 나는 엄마의 그리고 누군가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것을 버릇이라고 보기에는 철이 없었다.

나는 어렸다. 곧 부러질 가지처럼 여렸다. 초등학교 때 난 비비탄을 모으는 버릇이 있었고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데 몇십 분 넘게 걸렸다. 가끔은 특이한 분홍 비비탄을 줍기 위해 한 시간 넘게 그 일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항상 그 비비탄을 버리지 못하게 엄마에게 으르댔다. 엄마는 똑같이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비비탄을 남겨둔 엄마에게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혼잣말했다. 비비탄과 함께 굴러가는 누군가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하고. 내리막길로 멀어져가는 마음조차 부르지 못했다. 수집가 역할에서 벗어날 무렵 엄마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조목조목 여러 상처를 입은 상태였고, 원초적인 두려움을 품었다. 아직도 하늘이 출렁이는데 언제 얼어붙는 거야. 스키도 스케이트도 못 타지만 꼭 그 위를 걸어보고 싶어.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그녀의 미소를 찾기 위해 툭툭 말을 건넸다. 엄마는 유기견 같은 눈을 가졌다. 아빠에게도 몰래 다가가 직접 만든 곱셈 문제를 주면, 그는 텅 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 몰래 계산기를 두드리고는 했다. 어렵사리 만든 나의 방, 그곳에서 몇 캔의 술을 마시던 아빠는 안주를 내게 건냈다. 딱히 먹을 게 없는 날에는 말린 오징어에 손이 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질긴 걸 먹어요. 맛도 없는데. 그들은 위태로운 행동으로 나의 숨통을 조였다. 둘 다 울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도록 눈물이 없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뉴스에서 보았던 수많은 이름을 떠올렸다. 하루마다 사라지는 삼십 명의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출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나는 뱃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태아처럼 무지했다. 나는 아홉 살이 되어야 세상으로 쫓겨났다. 학교의 창틀 곁에 선 채로 공상에 빠졌고, 사람들이 늘 말하던 방랑자들을 찾았다. 혼자서 동그란 눈물을 툭툭 떨구었다. 스스로 배낭도 없이 여행을 떠났구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구나. 거대했던 하루, 그 아래서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엄마는 날 떠나지 않을 거지. 근데 꿈속에서 엄마 아빠가 날 버렸어.”

“절대로 우린 주원이 안 떠날 거야. 걱정하지 마.”

부모는 세상에 내던져진 후, 갈피를 찾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들의 어깨는 흠칫할 정도로 작아 보였다. 나의 예측은 사실이었고 우리 가족은 머지않아 사라질 거라며 나는 밤마다 베개를 적셨다. 아빠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헛웃음을 뱉었다. 힘들어서 콱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가장 단단한 버팀목은 이 세상에 없다. 분명하다. 자비로운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는 의미 없이 찬 바람이 분다. 그리고 홀연히 내 곁을 떠난다. 얇은 옷을 입고 있으면 베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썰리는 심장과 함께 영혼이 토막 나기도 한다. 그래도 살 만했다. 나는 초승달 같은 보조개를 입가에 묻히고 다녔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 이동수업을 들어야 할 때 선생님들은 간혹 날 멈춰 세우고 묻는다.

“너 어디 아프니?”

나는 계속 살 만했지만, 안색은 좋지 않았다……. 어쨌든 아니라고 말해.

“아니요, 전 괜찮아요.”

엄마도 아빠도 나를 사랑한다. 세상에서 떠나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지. 하지만 누구도 이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점점 그들은 안정되어갔다. 이제 그들은 간혹 텔레비전에서 영정사진과 장례식 현장을 보면 완전히 남들 세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유서를 몇 번이고 펼쳤다. 그 뒤로 죽음이 비쳤다. 부모는 숨을 헐떡이지 않는다. 그리고 신의 짓궂은 장난처럼, 나는 안정감을 잃어갔다. 때로는 사진을 찍는 일처럼, 때로는 가방을 메고 공원을 도는 일처럼 나는 그런 일상에서도 쉽게 쓰러졌다. 더불어 잠에 들지 못한다. 바퀴 달린 침구가 요란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불면증은 아니다. 다만 내가 잠든 모습을 엄마에게 보일 수 없었다. 엄마가 다시는 내 이름을 여러 번 부르게 만들 수 없었다. 울부짖게 할 수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새하얗다. 그가 입은 옷의 소매가 눈에 스치는 걸까. 해독제를 내 몸에 서서히 주입하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엄마는 바위처럼 굳어있었다. 나는 코를 고는 법을 배운다. 더는 오해받기 싫어서. 더는 겨울의 구름처럼 누워있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가을이 지나갈 때, 울먹이는 하늘을 보면 무엇이 내릴지 기다린다. 차고 무감각한 몸이 심히 불편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날씨이다. 나는 흘러가게 놔둔다. 죽음과 가까운 과거의 공간과 시간을 반듯이 접어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래야만 덜 아프니까.

그래야 엄마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니까.

 

2. 얼어버린 땅에도 수선화가 필 때

언니는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었을 거야. 작은 다방이 열렸어. 이미 내 안에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지. 다들 내 얼굴을 보면 놀라겠지만, 나는 언니의 얼굴을 보면 혈관이 미세하게 흔들려. 놀라는 걸까. 이 병명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 특별한 줄 알았던 이별을 노래하는 것도, 그 가사를 읊어보며 턱을 괴는 것도. 가끔 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가리고 웃는 것조차 지치는 순간이 있어. 언니 건너편에는 작은 창이 있었어. 나는 그 뒤로 펼쳐진 도시를 흘금흘금 봤던 거야. 자동차의 매연이 배기관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도해. 언니는 일어나서 내가 마신 밀크티 값까지 지불하겠다며 카드를 꺼냈어. 그리고 언니는 다시 앉았어. 카드를 가방에 넣었네. 나의 바람은 가볍게 현실이 되었어. 정말로 버스가 후진하는 거 있지. 나는 삐져나온 웃음을 지울 수 없었어. 바람이 어딘가로 모이고 있어, 쌓인 눈이 다시 풍만한 모습을 하고 있어. 눈이 부스러기가 되어 솟아오르고, 나는 배를 부여잡고 울음을 내질러. 그리고 다시 눈을 감는 거야. 나는 곧 있어 깨닫지. 이 모든 건 내 상상에서만 허용되는 자연법칙이라고. 그래서 가능했던 거야. 언니가 나를 다시 만난 것도 말이야. 이 다방을 자주 찾던 나는 약도를 잊지 않았더라고. 카페인이 든 음료만을 판다고 쓰인 메뉴판 앞에서, 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웃었어. 그때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좁은 길가로 나와. 언니 앞에서 내 얼굴이 붉어졌던 이유는 건조한 공기 때문에 피부가 망가졌기 때문이야. 그리고 말을 더듬었던 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마법에 걸렸기 때문이야. 하지만 지금도 달라진 건 없어. 여전히 얼굴이 발갛고 목이 턱턱 막혀. 사람으로서 나는 언니를 동경했고 언니는 나를 선교사로 불렀어. 주님의 전달자라고. 우리는 신의 기적 안에서 만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지. 다행인 건 언니와 나는 너무나도 나이차가 컸고, 오직 나만 앓았던 거야. 그래서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죽지는 않았던 것 같아. 우리가 자주 오던 다방에는 기억이 쌓인 지 오래되었고, 주방 한편에는 곰팡이가 자리를 텄네.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할 곳을 옮겨야 해, 가자.

언니의 생일은 내가 유토피아에 발을 들인 날과 같았어. 언니는 우리가 만난 걸 보니 참 신기한 인연이라고 했잖아. 팔목에 묶어놓았던 풀리지 않은 매듭이 있어. 언니가 다시 내 이름을 부른다면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도 꼬인 삶을 풀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멍청한 망상이 가장 재미있다는 걸 알잖아, 그치. 언니는 눈이 내려앉는 풍경을 참 좋아했어. 언니에게 있어 축복이 쏟아지던 날들이라고. 배경음악처럼 퍼지는 박동. 그 위에 겹치던 또 다른 박자.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지 않아. 대신 그날 눈이 오면 우리는 꼭 울었어. 언니는 그때 왜 울었던 거야. 나는 눈 내리는 것이 두근거리던 순간이 있었어. 캐럴이 하나둘씩 귓가에 앉으면, 쓸데없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지.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선교사가 될 수 없었던 거야. 어설픈 인간들의 노래에 휘둘리고, 입김을 마음대로 낭비했으니까. 그런 삶은 선택 받을 수 없는 거야.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구원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으려 했어. 나는 이타적이라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이기적이라서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거야. 그게 기억나. 우리가 처음으로 자기소개를 했을 때 말이야.

“언니는 취미가 뭐예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림 보여드릴게요.”

나는 은근 쑥스럽게 내 그림을 언니에게 무더기로 내밀었어. 언니는 나와 그림을 번갈아 보았지.

“와 정말 대단해. 얼마나 노력을 해야지 이게 가능한 거야? 나는 보타니컬 아트를 좋아해.”

“보타니컬 아트요?”

“응,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 그냥 색연필로 그리는 꽃그림이라 생각하면 돼. 내 이름은 박선화, 잘 부탁해.”

동맹을 맺은 이후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어. 우리는 기도를 했고, 거대한 손이 내 등을 토닥였거든. 도로를 무참히 밟고 지나가는 어른들도 그냥 틈을 비집기만 하면 끝이었지. 질투 많은 추위도 나의 온기를 빼앗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낯선 길을 피하고 싶을 때, 저 아파트 건너편에서 노을과 함께 검은 구름이 둥둥 떠오를 때. 나는 여행을 떠나는 거야, 좀 더 깊숙한 세계로. 이젠 땅거미가 지는 시기마다 난 배낭을 메고 있어. 기차 좌석에 앉듯이, 발을 가지런히 태양의 등 위에 올리고 잠에 빠져. 그래서 밤이 오는 침묵을 듣지 못했지. 가로등이 눈을 깜박이는데. 눈을 꽉 감으면 이상한 문양이 보여. 그 검붉은 무늬가 가슴 속으로 사그라들어.

하나둘씩 불빛이 가라앉는 새벽. 나는 가장 어두운 시기에 잠을 설치고, 반쯤 감긴 눈으로 사람들에게 말했어.

“어젯밤에 정말 푹 잤어요.”

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며 절대자를 믿든 신경 쓰지 않아. 내 육체가 화장된다고 해도 목련을 남기고 홀연히 떠날 인연인걸. 그래도 나는 그들을 믿었어. 그리고 믿고 있어.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들아, 나는 너희들을 잊을 때 되면 다시 떠올리곤 해. 혼자서 연극을 펼치고, 팸플릿을 버린 이들은 관객이 되어주지 않았지. 그래도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은 꺼져버린 무대 뒤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언니일 줄 알았어. 정말 그 자리에 없더라고. 텅 빈 자리에 적힌 이름을 잊지 못했다는 사실에 목이 막혀. 때로는 누가 숨어서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니가 퍼머넌트 옐로 색연필을 들고 그리던 길쭉한 꽃 한 송이를 떠올리면, 그 똑같은 꽃이 길가에 떳떳이 서 있는 걸 보면. 나는 입술을 깨물곤 해. 그 뒤에는 떡볶이 분식점이 있었고, 나는 그 가게를 일부러 찾아가고는 했지.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봉오리들도 많았기에 그들이 너무 연약한 살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하지만 길가를 계속 건너다보면 내 가슴에 어느덧 한 뭉텅이의 뿌리가 엉켜있더라. 억지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아직도 그리고 있구나. 종이에서도, 마음속에서도, 이 길가를……. 그래서 여기는 어떤 것 같아, 언니.

언니는 달콤한 음식이나 커피를 마시면 제대로 된 식사를 통 못한다고 했지. 나는 그걸 몰랐고 계속 마카롱과 홍차 맛 우유를 언니에게 주었어. 이런 어긋난 표현에도 나는 후회감을 느껴. 차라리 수선화가 피어있는 우리 동네 떡볶이집에 데려갈 걸 그랬다. 다방은 분위기가 좋지만 그건 오해의 상징이잖아. 내가 사줄 테니까, 순한 맛 떡볶이 2인분과 튀김이나 순대도 나중에 집에 들고 가서 먹고. 비록 눈발이 약간씩 날려도. 아무 운동장에서나 터벅터벅 걸어보고. 시간이 흐르면 그 누구와도 반드시 헤어질 걸 알았으니까. 우리의 유토피아는 무너지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결말 하나라도 세련되기를 바라. 나도 그랬어. 공터를 한 바퀴 돌며, 파편이 되어버린 우리의 대화는 귓불에 매달려있지.

“근데 언니는 왜 아직 남아있어요? 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

“내가 그려준 것들은 잘 보관하고 있어요? 나 다시 혼자가 되었는데, 모두가 날 그렇게 떠났어요.”

“…….”

아무 말 없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걷는 거야. 예전부터 쭉 전하고 싶었던 편지를 속으로 읊조리며.

‘내가 몇 번이고 도화지에 그려주었던 수선화가 아직도 고개를 팔랑거리며 울까 봐 걱정돼. 거친 색연필 가루가 꽃잎 위에 나란히 앉아있을까, 끊어질 듯한 줄기는 구름처럼 번지지 않았을까. 한 번쯤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서 내 꿈속에 이미 피어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가 아직도 선화의…… 부드러운 얼굴을 못 본 거야.’

언니는 보폭을 넓히더니 이내 달렸고,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만 보았어. 선화 언니는 이름처럼 꽃답게 살아왔는데. 그 말도 꺼내지 못했네. 영원 속에서 딱 한 번만 이루는 만남 때문에 남은 세월을 얼어붙은 채로 살 수 없다고 했지. 신 앞에서 우리는 떳떳해질 수 있을까. 나도 알아.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질 수밖에. 나는 무작정 뒤돌아서 달려가고 있어. 집에 들어가면 안방 바닥에 붙어버린 물방울이나 긁어내야겠다. 다방도 이 떡볶이집도 전부 무너뜨리면 돼. 앞으로 흐느끼는 건 우리가 아닌 나 혼자일 거야. 희뿌연 매연이 배기관에서 나오고 바람은 흩어져. 나는 주의 사랑을 갈구하던 찬송가에 발을 맞추었고, 자꾸만 들려오는 음계에 몸을 미세하게 떨게 되었어.

 

3. 나는 은하수의 시린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방관자의 위치에 섭니다. 오늘도 밤은 어두웠고요. 여느 울음이 간혹 들릴 때가 있습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분유를 타서 먹는 것도 어려운 애를 가엽게 여기죠. 나는 길쭉한 검지를 그 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깰 수도 허물 수도 없는 이상한 질감의 벽이 우리 사이에 있습니다. 망치로도 날카로운 원망으로도 상처 입힐 수 없는 시절의 벽이 허리를 폅니다. 그 애는 우주를 참 좋아했는데. 아이가 만든 우주선은 이 벽을 넘어갈지도 모르죠. 아니, 이미 아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의 일부는 침식된 채로 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뜯어지고 구멍 난 문서들을 끌어안고 나는 오열했습니다. 어느 종이는 반절도 남지 않아 읽는 것이 무의미했어요. 남은 종이들을 넘기느라 검지가 수십 번 베어서 피가 뚝뚝 고였습니다. 나는 엉망이 된 문서들을 모았습니다. 어느 것은 희극이었고, 어느 것은 비극이었죠. 하지만 이것들을 전부 읽어내린 나에게는 단 하나의 감정이 남았습니다. 떠나야겠다는 의지. 나는 다시 천문학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너머로 아이가 날 보고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처음 접하고 나는 며칠을 고민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험 중, 과거가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오고 현재가 내 눈을 향해 직진할 때…… 나는 왜 과거를 더 빨리 보았던 것일까요. (1) 현재를 부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하게 아무도 알 수 없는 주관이었죠. 추상화에서 정답을 정하는 일과 다름없었습니다. 그 애가 크레파스로 그렸던 머리가 큰 사람들을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결론이지만, 조그마한 마음에 아른거리는 영혼은 폭죽이 되어 저마다의 공간을 넓히겠죠. (2) 영혼의 속도와 빛과 비교하는 것 자체는 언제까지고 쓸모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눈에는 사람들은 늘 놀이터에 모여있었나 봅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난 매일 홀로 주먹다짐을 했습니다, 물론 허공에. 내가 전달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그래도 우주의 다리를 끝까지 건너고 싶었습니다. 공간과 시간의 확장을 그려놓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보면 피식할 정도로 무의미한 질문을 공기 사이마다 박아놓고, 나는 공식을 외웠습니다. 이따금씩 피어오르는 주관을 배제할 수 있었죠. 그리고 호기심은 점점 흐트러졌습니다. 시선 방향과 수평인 쌍성의 주기를 아는 것, 별을 일곱 단계로 분리하고 특징을 아는 것. 혼자서 별자리의 고도를 외치는 것. 그런데 나는 아직도 아이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 쪽으로 가는 방향을 찾지 못했고, 그게 당연한 이치가 되어버린 세계였습니다. 나는 가끔 무릎을 꿇고 오래된 소파를 부여잡았어요. 거기에는 아이가 앉아있어야 했는데.

“나는 널 기억하고 있어. 네가 흉내 내던 소리를 다시 듣고 있어.”

한낮이 되면 어린이집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예민해서 차마 쉽게 잠들지 못했는데, 그럴 때마다 온전히 햇살의 형태에 몸을 끼워 맞추었나 봐요. 눈을 감고 창틀에 남은 눈꽃 자국을 생각합니다. 정신이 깜박거릴 때는 우스꽝스러운 상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왔어요…….”

나는 전수받은 기억 중 그런 쓸데없는 내용이 있다는 것에 흠칫 놀랐습니다. 무언가 오류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틀린 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상은 했다만 그 애는 나보다 우주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겨우 태양계의 행성들과 명왕성이 퇴출당한 이유만 알고 있었는데. 나는 펼쳤던 책을 덮었습니다. 되돌아가서 은행잎의 표면처럼 보드라운 나의 시절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희미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때 놀이터 바닥에 널브러진 담배꽁초가 떠오릅니다. 손톱만 한 불길은 금방 타올라 이내 내 마음을 집어삼켰죠. 나는 주먹을 다시 쥐고 산산조각낼 수 있을 것 같은 거울을 노려보았습니다. 불은 잿더미를 가져왔고 나는 털썩 앉아요. 주저앉아요. 눈동자에서 거울에 반사된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눈물샘을 막던 울타리에서 금이 갈라졌습니다. 나는 한순간 수도꼭지가 되었습니다.

숨이 막혔고 세상이 둘로 쪼개져 보였습니다. 난 어릴 적 익사하기 직전에 보았던 것이 있었죠. 수영장에서 놀다가 튜브가 뒤집힌 바람에 물에 빠졌을 때. 나는 죽음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파란 물결이, 반짝이던 수면이 요정 같다고 편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래서 기절하기 직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나를 물속에서 꺼낼 때까지 요정과 함께 놀았습니다. 지금은 두려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소멸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말라버린 잎새가 완전히 커버린 나의 등을 눌렀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널 구하겠다는 거였어. 근데 난 그럴 힘이 없네, 지금.”

‘왜 없는데?’

“난 너보다 겁이 많거든. 그래서 난 안 돼. 네가 어떻게 자랄지 뻔히 알면서도 구할 수 없는 게 한이야.”

‘내가 어떻게 자라는데?’

그저 비겁한 어른으로 자랄 거야.

나는 여전히 기억의 방관자입니다. 슬쩍 고개를 들어 기울어진 집안을 보았습니다. 내 쪽으로 하염없이 쏠리는 죄책감. 조금 열린 창 안으로 봄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주 얇은 봄이 겨울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나는 기억하는 게 많았습니다. 내가 만든 눈사람이 부서진 일도, 그래서 속상했던 것도. 가끔은 눈사람을 들고 집에 들이면 어떨지 고민하던 순간도……. 형광등 아래에서나 햇빛 아래에서나 눈덩이는 녹아버리는 게 당연한 건데. 참 순수했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참 미련이 많았네.’

나는 나를 감싸고 가만히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했어요. 하늘의 별이 부서지고 벚꽃이 떨구어지는 모습을 그립니다. 우리 삶이 결점으로 뒤덮여있어도 괜찮을까요. 어린 나를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나요. 이제는 온몸이 풍화되어도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 파도를 헤쳐나갈 거라 믿어요.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불러 세웠던 과거의 시간은 발이 꽁꽁 묶인 상태였습니다. 나는 발꿈치를 바닥에 밀착하고 비틀거리며 일어섭니다. 나를 호명합니다. 이제 그 아이를 돕지 않기로. 아니, 1초 전의 나 자신도 돕지 않을 겁니다. 겹겹이 쌓아놓은 주마등을 보면, 삶의 모든 면이 반짝였다는 현실을 마주하겠죠. 더불어 어린 나의 묶음 머리도 끝없이 사랑할 겁니다. 나는 저 가로수처럼 자랄 거예요. 한 달 후면 싹이 날 것이고요. 사랑스럽다 못해 모든 연인의 손금을 내 손에 묻히고 다니며. 그리고 밤하늘 한가운데에서 휘파람을 불겠죠.

“가끔 네가 보고 싶으면 고즈넉한 사막에서 기다릴게. 낯선 별자리들 사이에 낀 너를 보며 손도 흔들어 줄래. 달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 일기에 오늘도 아무 이상 없는 하루였다고 적을게. 그리고 나눠마실 사랑이 있다면 꼭 녹인 후, 휘저어야 해. 춥거든. 별이 특히 잘 보이는 곳은.”

 

(1): 아인슈타인의 동시성 패러독스의 패러디이다.
(2): 공간의 팽창과 빛의 속도는 공간 안팎이라는 각자 다른 조건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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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사랑하마님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문장 하나 하나를 정성들여 쓰신 것 같아 감동 받았습니다.
또한 눈발이 흩날리는 이미지를 세 장면으로 나누어서 쓴 것도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아쉬운 점에 대해 살짝 언급하자면,
분명히 인물이 존재하는데 그 인물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모호하다면 모호해도 됩니다.
다만 독자가 작가의 서사를 따라갈 수 있을만큼 모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명료해져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타임라인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독자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은 사랑하마님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글 써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