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다언이 오 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은 내가 잘라줬다. 머리에 껌이 붙어서 다른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애지중지 기른 머리를 한순간에 잘라버리는 것의 이유치고는 허탈했으나, 이미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엉겨붙은 껌을 이제 와서 탓해 봐야 소용없었다. 내가 다언을 앉히고 필통에서 가위를 꺼내는 동안 다언은 부주의하게 잘 때 머리를 두는 쪽 가판대 밑에 껌을 붙여둔 과거의 자신을 향해 투덜거렸다.

굵고 까슬까슬한 머리칼은 한 손에 쥐기 버거울 정도로 숱이 많았다. 가위질을 하자 서늘한 소리가 났다. 썩둑 썩둑. 뭉툭한 감촉이 손에 전해졌고 그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끊어지면 무언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 잘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운명의 실타래나 인연의 끈 같은 것이.

잘려 떨어진 머리털은 바닥 위로 흩어졌다. 모든 신체 부위는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징그러워진다. 그건 더는 다언의 일부가 아니라 그냥 새카만 털뭉치였다. 손거울에 짧아진 머리를 이리저리 비춰 보던 다언이 어디선가 읽은 인모 가발 괴담 얘기를 했다. 가발을 사 왔는데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고, 집 안에서 점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뻔하면서도 그럴싸한 이야기. 우리는 그런 얘기를 듣고 오싹해지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바닥을 쓸었다. 쓰레받기에 모아 담은 머리카락은 인적이 드물 때를 틈타 편의점 문 밖 멀리에 버리고 왔다. 그것이 길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썩고 짓무른 발들에 채이고 엉킬 것을 생각하면 메스꺼워졌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후로도 머리카락은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이젠 우리 둘 다 짧은 머리인데도 긴 머리가 자꾸 나왔다. 그동안 우리가 여기서 생활하며 흘리고 다닌 머리카락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딘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텅 비어버린 라면 선반 밑에서 벌레 시체와 한 덩어리가 된 엄청난 양의 머리카락 뭉치를 발견한 날, 우리는 이사를 가기로 했다. 몸통 쪽으로 말려든 죽은 벌레의 다리마다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다. 우리 둘 중 아무도 그걸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차피 거처를 옮겨야 했던 참이었다. 식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사를 가던 날 다언은 조금 신나 보였다.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는 다언의 동선에 끼어들어 선반에 남은 것들을 가방에 쓸어담았다. 마지막까지 아껴둔 에너지바 두 개, 라면 다섯 봉지, 초콜릿 한 통, 반쯤 남은 젤리 한 봉지. 빈 공간이 많이 남아 흐물거리는 가방을 둘러매자 맥없는 털썩 소리가 났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다언, 너는… 즐겁냐 지금?”

“왜 안 즐거워? 너무 심각해지지 마. 걱정할 것 없어. 우린 안 죽어. 새로운 지낼 곳도 찾을 거야. 여길 찾았던 것처럼.”

다언은 항상 그런 재능이 있었다. 모든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 좋게 말하자면 긍정적이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대가리가 꽃밭이다. 그래도 우리 둘의 조합은 지금까지 썩 괜찮은 성과를 보였다. 내가 모든 것을 비관하며 삶의 의지를 잃어갈 때면 다언은 나를 끌어올려 주었고, 다언이 무모한 짓을 하려 할 때면 내가 걔를 붙잡아 주었다.

다언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며 흐느적거렸다. 몇 발자국씩 왔다 갔다 하며 무기력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다언의 신발 밑으로 얼룩이 보였다. 타일 위에 점점이 말라붙은 적갈색 테두리의 찌그러진 동그라미들. 누군가 바닥에 커피를 엎은 것을 걸레로 대충 문지르고 내버려뒀다면 그런 모양의 자국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얼룩은 은은한 커피 향보단 어딘지 비릿한 냄새를 풍길 것만 같은 색을 띠고 있었고, 나는 처음 이 편의점을 찾아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뻔한 비유인 건 알지만 정말 그랬다. 우리는 지치고 목마르고 배고팠고,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편의점은 너무도 깨끗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청록색 간판이 저녁 노을을 반사하며 영롱하게 빛났다. 깨지지 않은 창문과 유리문 너머로 물건들로 가득 찬 가판대가 보였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편의점을 향해 뛰어갔다. 텅 빈 거리에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편의점은 비어 있지 않았다. 밖에서 봤을 때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문을 손가락 한 마디쯤 조심스레 열자 훅 끼치는 썩은 내가 우리보다 먼저 온 누군가가 있음을 증명했다. 텁텁하고 비릿하고 축축하고 어딘가 달큰하기까지 한, 폐를 문드러지게 만드는 것 같은 냄새. 나와 다언은 바짝 긴장했다. 시취는 단순히 역한 냄새가 아니었다. 곧 닥쳐올 위험을 예고하며 콧속으로 밀려드는 신호였다. 우리는 시선을 교환했다.

“하나가 아니면 어쩌지?”

다언이 속삭였다. 그러나 우려 섞인 말과는 다르게 다언은 이미 가방에서 소방도끼를 꺼내들고 날에 끼워둔 고무 안전장치를 빼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언의 물음은 동의를 구하는 것에 가까웠다. 싸움을 우리 손으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동의. 냄새나는 체액을 사방에 흩뿌려야 할 테고,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동의.

“여럿이면 뭐, 이 사랑스러운 편의점이랑 저 안에 가득한 먹을 것 다 버리고 도망가게?”

나는 삽을 고쳐쥐었다.

다언이 편의점 문 위쪽에 매달린 종이 울리지 않도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을 열었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 재빨리 종을 손 안에 쥐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적어도 종 안에 든 쇠구슬이 금속을 때리며 우리의 등장을 청명한 소리로 동네방네 광고하지는 않도록 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가게 바닥의 시뻘건 얼룩이 보였다. 사람 몸통 정도의 넓이에, 피에 젖은 무언가를 이리저리 질질 끌고 다닌 것처럼 보이는 자국이었다. 형태가 그리 온전치 못해 보이는 손자국도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숨막히는 적막이 흘렀다. 우리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공기가 흐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다언이 가게 안쪽으로 한 발을 내딛자, 끼익. 운동화 바닥과 편의점 타일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움찔 놀랐고 다언은 손가락 마디가 하얘지도록 소방도끼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그러나 편의점 안에선 어떤 기척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냄새는 분명 여기 무언가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가게 문 바로 앞에 놓인 가판대 양쪽 복도로 각자 조심스레 전진해 갔다. 그러다 다언이 뭔가를 발견했다. 나도 동시에 바닥에 엎어져 있던 그것의 뒤통수를 보았지만, 다언은 생각하기 전에 말이 먼저 나오는 편이었다.

“야, 이거 그냥 시체…”

목소리를 들은 그것은 별안간 고개를 쳐들었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썩어빠진 양팔로 땅을 짚으며 내게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의 하반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는 부패한 내장들이 검붉은 흔적을 만들며 질질 끌려왔다. 검게 곰팡이가 핀 입술이 쩍 벌어진 것을 보니 그것이 좀비 특유의 신음과 비명 중간쯤 되는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한 것 같았지만, 그 소리는 내 비명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김민채 조용히 해!”

다언이 최대한 크게 속삭이며 도끼를 들고 가판대를 돌아 내게로 오려 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비명을 지르며 그것의 머리를 삽 모서리로 내리쳤다. 삽이 빗나가 두피가 죽 찢어져 벗겨지며 그것이 땅에 턱을 박았다. 그러더니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또 아악, 하며 좀비의 정수리를 삽으로 때렸고 그것은 다시 땅에 얼굴을 박았다가 일어났다. 함몰된 턱뼈 틈새로 썩어서 흐물해진 혀가 비어저 나온 모습이 언뜻 보였다. 나는 목구멍까지 밀고 올라온 토악질을 참으며 다시 삽 모서리에 온 힘을 실어 그것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단단하고도 축축한 질감이 삽을 든 손에 전해지며 삭은 두개골이 힘없이 부서졌고, 뇌인지 다른 무엇인지 모를 검붉은 곤죽이 속에서 흘러나왔다. 좀비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언은 내게 더는 도움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는지 어느새 편의점 문가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미친 듯이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었다. 내 비명을 듣고 좀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들의 신음이 도처에서 들렸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벌벌 떨리는 팔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창가로 가 블라인드를 마저 내렸다. 햇볕이 들어 환하던 편의점 안이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졌다.

우리는 창문을 등진 채, 머리가 부서지고 허리가 잘린 좀비의 사체를 마주보고 나란히 앉았다. 뇌가 파괴되었으니 더는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끔찍이도 그 광경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야 바깥에 두면 썩은 몸뚱아리가 금방이라도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다가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민채…”

다언이 속삭였다. 블라인드를 투과한 옅은 햇빛과 창밖에 몰려든 좀비들이 어지럽게 드리우는 그림자 때문에 일어난 착각일까. 아무리 잔인한 광경을 봐도 끄떡없던 다언은 왠일인지 조금 창백해 보였다.

“왜?”

“이 동네 허진영 살던 데 아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긴 정적이 흘렀다. 블라인드의 색이 회백색에서 혼탁하고 짙은 파란색으로 변할 만큼 긴 시간동안. 다언의 눈동자는 내내 한 곳에 붙박여 있었다. 걔의 시선을 쫒자 좀비 시체가 입고 있는 옷이 눈에 들어왔다. 찢기고 뜯어지고 피와 시체 썩은 물에 젖어 있었지만, 그게 청록색 편의점 브랜드 컬러가 가슴과 어깨를 뒤덮는 직원용 조끼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나와 다언과 진영은 친했다. 여자애들 셋이 붙어 다니면 꼭 한 명은 소외된다는 공식은 대체로 잘 들어맞지만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같은 독서실을 다니며 쉬는 시간마다 주변의 상가를 배회했다.

“야, 나 머리 자를까? 단발 어때?”

삼각김밥이 전자레인지 속에서 데워지길 기다리며, 떡볶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혹은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다언은 으레 시시콜콜하고 귀찮은 질문들을 던졌고,

“너 우리한테 오백 번 물어보고 한 번도 안 잘랐잖아.”

그 질문들에 일일이 대답해 주는 것은 거의가 허진영의 일이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나 컵밥을 먹을 때면 허진영도 수저를 들고 전투적으로 동참했지만, 편의점에 가면 진영은 음료수만 쪽쪽 빨았다. 매일 저녁에서 늦은 밤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출출해서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음식을 먹을 일이 많고, 그러기 위해선 편의점 음식에 질리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영은 매번 알바 시간 때문에 일찍 독서실을 나섰다. 우리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멀어져 가는 허진영의 뒷모습에다 대고 또 새벽에 진상 손님이 오면 유리병 주둥이로 머리를 후려쳐 주라고 소리치곤 했다.

 

가게 밖에 모인 좀비들이 흩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밤이 깊으면 시체를 치울 계획이었지만, 우리는 창문을 등지고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다언이 나를 깨웠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뻐근한 허리와 어깨를 쭉 펴자 관절에서 뚜둑 소리가 났다. 어슴푸레한 푸른빛에 물든 블라인드를 살짝 들춰 보니 바닥에 검붉은 발자국들만 가득하고 가게 앞은 텅 비어 있었다. 간밤에 좀비들은 모두 제 갈 길을 찾아 비틀비틀 가 버린 모양이었다.

우리는 편의점 창고에 있던 청소 용품을 꺼내들었다. 손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맨손으로 좀비를 만지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고무장갑이 두 쌍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쌍밖에 없었더라면 좀비의 양 팔을 붙잡고 질질 끌어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가 시체를 버리러 간 길을 따라서 넓은 붉은색 자국이 길처럼 생겨날 것이 뻔했다. 나쁜 마음을 먹은 생존자에게 그 흔적은 풍부한 물자와 희생양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보일 터였다.

우리는 좀비 시체를 통째로 들어서 치우기로 했다. 누가 내장이 흘러나오는 몸통 아랫부분을 잡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가위바위보로 해결했다. 내가 져서 씨발 하고 읊조렸고, 다언은 웃었다.

다언이 좀비의 어깨와 팔뚝 부분을 단단히 잡고, 내가 몸통 아랫부분을 최대한 내게서 멀리 떨어뜨려 받친 채로 우리는 종종걸음쳐 가게 밖으로 나갔다. 부서진 좀비의 머리는 축 늘어져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까딱거리며 액체를 뚝뚝 흘렸다.

편의점에서 이십 미터쯤 떨어진 골목 안에다 시체를 털썩 내려놓는데 땡그랑 소리가 들렸다. 다언이 아무렇게나 던지듯 내려놓은 좀비의 팔 근처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굴러가고 있었다. 반지였다. 짓무르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손가락에 용케도 잘 걸려 있다가 방금 떨어진 모양이었다. 제자리에서 점점 작은 크기의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반지를 응시하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작은 은색 하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완벽한 동그라미를 이루고 있었다. 판도라 하트 링이었다.

 

허진영한테는 다른 학교를 다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영은 언제나 여자친구를 걔라고 불렀으니까. 박현서, 박영서, 뭐 그 비슷한 이름이었다. 걔라고 불렀다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진영이 말하는 걸 직접 들어보지 못했어야 할 수 있는 얘기다. 진영이 얼굴에 가득 퍼지는 웃음을 참으려는 표정으로 “걔가 말이야…” 하면서 수줍어하는 모습을 봤어야 한다. 태어나서 연애란 것을 한 번도 못 해본 내 입장에서는 그 꼴이 그저 아니꼬울 뿐이었지만, 긴 생머리에 키가 큰 진영과 뒷목을 간신히 덮을 정도로 짧은 머리를 한 아담한 키의 영서가 같이 서 있으면 정말 잘 어울리긴 했다.

진영은 여자친구에게 오백일 기념으로 커플링을 맞춰 주고 싶어했다. 반지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가 뷔페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커다란 꽃다발을 안겨주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다언과 나는 프로포즈하는 것도 아니고, 둘 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너무 많은 걸 해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지만 진영의 결심은 확고했다.

진영이 어느 날 갑자기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것도 그 계획 때문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다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TV에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혀를 차는 부모님께 어느 날 갑자기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며 손을 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래도 부모님께 언젠간 말씀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진영은 말하는 날 자신은 영서와 헤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마 호적에서 파이든지 교회 동성애 치료 캠프로 끌려가든지 할 거라고 답했다. 우리 셋 모두 그런 결말은 바라지 않았기에 각자의 핸드폰에 구인구직 앱을 깔고 적당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야, 이거 봐. 17세 이상, 남녀 상관 없음. 너네 집 근처 편의점인데? 주 5일 근무고, 시간대도 적당하다. 경력자 우대긴 한데 찾아가서 어떻게 잘 좀 해봐. 너 그런거 잘하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언이 완벽한 일자리를 찾아냈다. 다언의 말대로 진영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데 재능이 있었다. 진영은 반듯한 눈썹과 콧대 덕분에 선하고 올곧아 보였고 웃는 눈이 예뻤으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싹싹하고 쾌활하게 대할 줄 알았다.

진영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다언이 알려준 편의점으로 갔고, 다음 날 우리에게 취업 기념 음료수를 돌렸다.

“축하는 하는데, 너 정말 이벤트 하나 하자고 알바까지 뛰어야겠어?”

내가 묻자 진영은 대답했다.

“걔는 나랑은 다르게 집이 넉넉하잖아. 그래서 뭐 먹을 때나 데이트할 때도 항상 걔가 사줬고, 선물도 내가 받은 게 훨씬 많아서 그래.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물론 손편지 같은 것도 좋고 감동적인거 알아. 그렇지만 이번 한 번만은 나도 뭔가 물질적으로 멋진 걸 해주고 싶어.”

다언이 툭 끼어들었다.

“네, 이상 수능 여섯 달 남은 허진영 양의 발언 잘 들었습니다.”

진영은 아, 닥쳐! 하고 소리친 후 엄숙하게 덧붙였다.

“너네가… 사랑을 몰라서 그래.”

우리 모두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진영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았다. 나와 다언이야 걔가 데이트하는 곳까지 따라갈 수 없으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드디어 내일이면 오백 일이라며 신나서 금요일의 학교를 뛰쳐나간 진영을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봤을 때, 걔의 왼손 약지에선 은빛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우와, 예쁘다. 이거 어디 거야?”

“이다언 이 속물적인 새끼. 브랜드가 제일 궁금하지, 넌?”

진영이 핀잔을 주자 다언이 항변했다.

“아니, 너 이거 사겠다고 알바까지 시작했잖아. 궁금해서 그러지.”

“판도라 거야. 걔가 좋아하는 브랜드.”

작은 하트들이 진영의 희고 기다란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다. 진영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반지의 작은 굴곡들이 빛을 튕겨내며 반짝였다.

 

차츰 잦아드는 반지의 진동을 바라보던 나와 다언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다언의 눈동자 안쪽 깊은 곳에 검고 단단한 공포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언은 악몽에서 막 깨어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악몽 속이라는 것을 막 깨달은 사람의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언은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건 그냥 흔해빠진 반지일 뿐이야.

우리는 편의점으로 돌아와 좀비가 기어다니며 사방에 남긴 핏자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

 

편의점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자, 텅 빈 식료품 가판대가 백화된 산호처럼 흰 골격만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가자.”

다언이 내 등을 툭 쳤다. 우리는 편의점 문을 밀고 구름이 두껍게 낀 하늘 아래로 나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로 가볼 생각이었다. 창고가 가득 차 있는 대형마트 같은 것이 기적적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숨막히는 침묵을 헤치며 걸었다. 보통 이렇게 지낼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면 적막을 깨기 위해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를 하곤 했었지만 이번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 둘의 신경은 모두 저 뒤편, 편의점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안쪽에 쏠려 있었다.

시체를 갖다 버리고 편의점을 청소한 이후로 우리는 다시는 그 좀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내내 좀비의 존재는 머릿속에서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다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상이 망한 이후로 우리의 일상은 끝없는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하루에 10시간씩 잠을 자고, 스프를 뿌려서 잘게 부순 라면 한 봉지를 두 시간동안 먹고, 근처에 좀비가 없다 싶으면 은신처 주변을 돌며 산책을 하고, 서로에게 자신이 봤던 영화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시간을 보내도 하루는 너무 길었다. 항상 남는 시간이 생겼다. 그럴 때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생각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그 좀비에게로 흘러갔다.

어쩌다 좀비가 되었을까. 어쩌다 그런 꼴이 되었을까. 사라진 손가락들과 하반신은 어디로 갔을까. 먹혔을까. 허리가 끊어지고 손가락이 잘려나갈 때까지 살아 있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런 생각들이 줄줄 이어지다 보면 머릿속에선 자꾸만 어떤 영상이 재생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손님이 없어 핸드폰으로 SNS를 하던 중 미친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할퀴고 물어 대고 있다는 글을 본다. 첨부된 사진은 급하게 찍은 것처럼 흔들려 있지만, 도망치려는 사람들과 달려드는 사람들의 형체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게시글은 실시간으로 공유 수와 댓글 수가 쭉쭉 올라간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있는 곳도 그렇다며 두려움을 토로한다. 사람이 죽은 것 같다는 오타 투성이의 댓글을 읽은 알바생은 스크롤을 올려 원 게시글의 사진을 다시 확인한다. 달려드는 사람들의 입가가 벌겋다. 슬슬 무서워진 알바생은 집에 전화를 해보려 SNS를 끈다. 그때 재난문자가 도착한다. 치명적인 전염병 확산 중. 체액을 통해 전염. 물린 상처가 있는 인물과 절대 접촉하지 마시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문을 잠그시오. 알바생은 편의점 문을 잠그고 집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지만, 점장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망설인다. 그러다 누군가 편의점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본다. 피에 흥건히 젖은 그 사람의 목덜미와 상의를 보고 겁을 먹은 그는 편의점 문을 잠그려 하지만, 달려오는 남자는 필사적이다. 제발 살려달라며 마구 밀고 들어오는 남자를 막기엔 힘이 부친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피가 뚝뚝 흐르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휘청거린다. 알바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괜찮으세요? 하고 묻지만 입 밖으로 꺼내고 보니 그 질문은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이 들린다. 남자는 갑자기 고개를 홱 쳐들더니 문을 잠가야 한다고 절규하듯 중얼거리며 편의점 문 위쪽 잠금장치를 더듬거린다. 알바생은 계속 헛손질을 하는 남자를 밀어내고 자신이 문을 잠그려 한다. 그러나 그의 손이 닿자마자 남자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진다. 몸을 뒤틀며 경련하는 남자의 목덜미에 선명한 이빨자국이 보인다. 알바생은 뱃속에서 얼음이 자라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곧장 편의점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 하지만 열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울부짖으며 달려든다. 그 누군가의 이빨 틈새에 고인 피가 보인다. 알바생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 가게 문을 쾅 닫는다. 그의 뒤편에서 바닥에 쓰러졌던 남자가 서서히 일어선다.

그리고 모든 상상 속에서 알바생은… 언제나 진영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상상을 멈추려 머릿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알고 있는 모든 동물의 이름, 과일의 이름, 야채의 이름도 떠올려 보았다. 노력은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해서 나는 계속 좀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로 걸음을 옮겼다.

소모적인 일이었다.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니까? 그 좀비가 진영일 리 없었다. 좀비 사태가 발발하던 날 밤 진영이 알바를 했다는 보장이 없다. 가족의 생일이어서 휴가를 쓰고 집에 갔을 수도 있다. 데이트를 했을 수도 있다. 설령 알바를 했더라도 단지 진영의 동네에 있는 편의점이라는 이유만으로 진영이 거기서 일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건 비약이다. 편의점이 얼마나 흔한데. 그 동네에 편의점이 우리가 들어간 곳밖에 없진 않을 것이다. 판도라 하트 링 역시 흔하디흔한 반지다. 우리 학년에만 해도 그걸 끼고 다니던 애가 둘은 더 있었다. 우리가 좀비 사태 이후로 1년이 다 되도록 길을 떠돌다 발견한 편의점이 우연히 진영이 알바를 하던 바로 그 곳일 리 없다. 애초에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시각이 정오에서 오후로 향해갈 즈음 뭔가를 발견했다. 꽤 멀리서부터 그 검은 형체가 보였다. 처음에 우리는 그것이 길에 굴러다니는 까만 비닐봉지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나뒹굴고 있는 긴 머리 좀비의 머리통이거나.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의 정체는 확실해졌다.

그 덩어리가 발 앞에 올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우리는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그건 새카맣고 기다란 머리카락 뭉치였다. 굵고 거칠거칠한 모발은 길바닥의 흙먼지가 잔뜩 엉겨붙어 군데군데가 잿빛이었다. 분홍기가 희미하게 남아도는 회색 껌이 썩은 뇌처럼 우글거리는 형상으로 머리카락들을 한데 붙들고 있었다. 다언의 머리카락이었다. 한참 전에 잘라서 갖다버렸던 건데,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온 머리카락. 잘린 줄 알았던 운명의 실타래. 그러나 다시 이어진 인연의 끈. 희박하지만, 그래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눈앞에 나타나 버린 가느다란 확률.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고 맴돌았다.

부정하려던 사실이 마침내 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머리카락 뭉텅이를 내려다보며 숙인 우리의 목덜미 위로 투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날씨를 확인하려 고개를 들다가 다언과 눈이 마주쳤다. 하늘은 짙은 회색 구름에 덮여 우르릉거리고 있었다. 공기가 축축하고 무거웠다. 다언의 눈동자가 불안정한 대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김민채… 너도 알지. 우리,”

순간 세상이 하얗게 표백되었다. 다언이 말을 멈췄다. 곧 지구가 쪼개지는 듯한 천둥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얗게 부서지는 빗방울에 둘러싸인 다언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허진영 비 맞겠다. 가서 잘 눕혀주고 올까.”

내가 묻자 다언은 눈가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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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소낙님 안녕하세요.
좀비라는 소재와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전개시켜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특히 진영이라는 인물과 편의점이라는 배경이 잘 버무러져 실제로 주인공이 되어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꽤 긴 분량임에도 호흡도 안정적이었고요.
다만 아쉬운 점은 민채와 다언만 남게된 배경 설명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과
다언의 머리카락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채와 다언의 대화나 상황으로 둘만 남게 된 배경을 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고,
다언의 머리카락이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글이 좀 더 풍부해 질 것 같습니다.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