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는 사람, 입는 사람

탈의실에서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수영도 배운 적이 있지만, 사실 탈의는 여전히 낯선 일련의 과정이었다. 몸을 드러낼 때마다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문득 느꼈다. 나의 왼쪽 허리에는 흉터가 있다. 한 번 크게 베인 것이 아니라 자잘한 직선들이 겹쳐있다, 누가 난도질한 것처럼. 살면서 이곳저곳 상처가 생겼고 반창고를 붙여도 간지러웠다. 발갛게 변한 부위를 애써 쓸어냈다. 손가락을 살짝 기울이고 손톱을 피부에 맞닿게 했다. 먹잇감이 죽어버린 걸 깨달은 고양이처럼 나는 상처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다. 완전히 방치했다. 피가 굳고 딱지가 올라와도 뜯지 않았다. 그렇다고 솜에 소독제를 묻히지도 않았다. 연고를 짜는 대신에 나는 수영복을 한차례 바꿨다. 허벅지 위쪽이 훤히 드러나는 일체형 대신 일반적인 옷과 비슷한 수영복, 바지와 티셔츠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로써 흉터에 대한 시선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내 옆에 서있는 언니를 알기 전까지, 나는 여름에도 난감해하지 않았다. 간혹 긴팔을 입어서 팔에 무수히 쌓인 자상을 덮으려는 여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늦겨울 밤눈이 한창 내릴 때 보았는데. 특히 그 언니는 손에 잡히는 대로 살갗을 긁었고, 나는 날카로운 도구를 책 사이에 숨겼다. 아무래도 습관 같았다. 짙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마음이었으나 충동이라 부르기엔 너무 오래된 것이었다. 햇볕이 양팔을 쏘아대던 날, 오직 언니만 갈 곳을 잃었을지도. 우린 컨실러를 항상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겉옷을 겨우 입고 다니던 작은 여자애들이라 불렸다. 무능하지만 아직 젊어서 끝이 없다. 솟아오르던 아지랑이는 저 멀리 걸어가는 이들의 형체를 왜곡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마주 보고 있는데 서로의 얼굴이 조금은 찌그러져 있다고 믿게 된 것일까. 나는 언니의 팔에 있는 것들이 잠시라도 녹아내리길 바랐다. 불은 칼자국들로부터 노란 진물이 삐져나올까 봐. 누가 팔을 어루만지다가 거칠게 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항상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 녹는 것은 오직 파운데이션밖에 없는 삶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민했다. 변기에 앉으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나의 허리였다. 다른 이들은 벽에 묻은 얼룩이 괜스레 신경 쓰일 것이다. 어릴 적에는 껌딱지들을 참 이상한 곳에 붙여놓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슴에 진 응어리도 내려놓지 못하고, 무릎에 살짝 걸친 바지로 나의 흉을 다시 가려야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나는 벗어버린 상태에서 매일 괴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벗어야만 하는 연인의 관계는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섹스할 때 불을 꺼야 하나. 파트너의 얼굴을 본다면 나는 늘 끝없는 물고문을 당하는 듯한 느낌일 것 같다. 그 사람에게 몸을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언니를 보며 그저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서로 좋아하는 옷을 추천하고 낡아빠지기 직전까지 그 옷에 의존해보고 싶었다. 애인과 한강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며 잡초가 다시 자라나는 것을 보는 일처럼. 더는 관계가 뒤섞이지 않을 법을 찾아가면 이 두통이 나을 것 같았다. 맨몸을 의식할 때가 가장 클 때는 탈의실이란 공간에 잠시 있을 적이다. 워터파크에서 실컷 물을 튀기고 집으로 가려 했을 때, 우린 사물함을 열고 각자의 옷을 뒤적였다. 그날 나는 남자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니와 같은 사람을 고른 것은 아닐지 되새겼다. 아니면 언니의 결점을 잠시 잊었던 것 아닐까.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남들이 내는 맨발이 찰싹 달라붙는 소리에 묻히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 열 한 살에 나는 물속을 그렇게 좋아했어. 그날도 비슷했지. 근데 수영학원 탈의실에서 누군가 흘린 생리혈 위에, 내가 실수로 수영복을 떨어뜨리고 말았던 거야. 선생님 한 분이 그걸 보며 당황하시더라고. 나는 혼날 줄 알았어. 근데 그 선생님께서는 별말 없이 수영복을 빨아주시더라. 깨끗해진 수영복을 입고, 나중에 둘이 있을 때 그분은 생리에 대하여 잘 말씀해주셨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많긴 해. 하지만 나는 친절한 분을 보면 아직도 눈물 나게 반갑더라고.

지금 워터파크 탈의실에도 누군가 떨어뜨린 생리대가 있을 것이다. 손목에 없는 흉, 갈라진 피부, 맞아서 생긴 멍 자국을 훤히 드러내도 이곳에선 누구든 평범한 알몸이 된다. 나는 스포츠 브래지어를 하고 가슴을 모으며 내 몸에 뭉쳐있는 살이 남들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사실을 그동안 찾아내느라 고달팠다. 이곳에서는 언제든 입는 사람과 벗는 사람이 있다. 입는 사람은 결점을 옷 뒤로 숨기고 나서 공적인 장소로 걷는다. 벗는 사람은 자신을 증명한다. 몸 어딘가에 꼭 상처가 있는 하나의 여성이 된다. 나는 밖으로 나올 때까지 시선을 아래에 고정하는 편이다. 언니도 나처럼 고개를 숙이는 것 같았다. 마침내 밖으로 나온 우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냉기가 흐르게 되었으나 서서히 온도가 올라갔다. 한층 느긋해진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 선생님이 너를 혼냈다면 어땠을 것 같은지. 또 누군가 우릴 상처입히면 어떡할지. 언니는 걱정하는 얼굴로, 걷었던 긴팔 부위를 천천히 내리며 물었다.

우리를 학대했던 모든 것에 반항하기에도 벅찬데, 그런 걱정을 꼭 해야만 할까, 언니. 그 후 말없이 앞에 있는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물이 날아오르다 매끄럽게 아래로 잠수한다. 그때 언니의 옷이 살짝 젖은 것 같았다. 물방울이 간혹 튕겨서, 혹은 벌써 땀이 나서 그런지. 큰 파도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산들거리는 옷쯤은 충분히 적실 수 있었다. 우리도 물과 같았다. 그 후로 언니의 왼팔에 있던 상처는 서서히 옅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처가 이전되었다. 허벅지 안쪽으로. 언니는 자해를 끊지 않았지만, 완전히 아문 팔에는 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타투를 했다. 문구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 꽃들 중 몇몇은 주홍빛을 띠고 있었다. 며칠 전 언니는 메시지로 내가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 말에도 나는 오랫동안 고민해서 답장을 보냈다. 나는 언니의 긴팔을 살짝 당기며 말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꽃말을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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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사랑하마님 안녕하세요.
자해의 흔적을 갖고 있는 두 주인공들의 모습이
신체의 일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여름과 잘 얽혀서 한편의 이야기가 되었네요.
벗는 사람, 입는 사람, 이라는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벗는 행위가 좀 더 부각되면 좋았을 것 같아요.
두 인물이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것으로 결말 지어도 좋을 것 같고요.
상처를 가지고 있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글을 풍성하게 만들어 보는 것도 방법일 듯 합니다.
그럼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