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른이 될 우리는

지금 내 방에서 탄내가 올라온다. 나는 줄곧 이곳에서 다리를 꼰 채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쓴다. 안 그래도 질식할 것 같은 선풍기 바람을 옆에 두는데, 여름의 향인지 누가 담배를 피우는 것인지 코가 자주 텁텁하다. 냄새로부터 한층 민감해졌다. 비염은 많이 나았고 몸이 클수록 비강이 넓어져 그렇다고.

우린 자랄 때마다 피부가 너무 아프다. 찰흙 메꾸듯 불어 가는 몸집이, 문짝의 높이를 넘을까 봐 불안하다. 그리고 냄새는 거꾸로 쌓여만 간다. 나의 머리는 방바닥보다 천장에 가까우므로. 두통이 자주 일어나고 숨 쉬는 것을 잊으려고 한다. 아니 잊고 싶은 게 아닐까. 내 방의 창문을 무심히 열었다. 산소가 들어와 불에 타죽는 상상을 한다. 새시를 바꾼 지 얼마 안 되어서, 철이 닳는 날카로운 소리가 없다. 긁힌 흠 없이 매끄러운 창틀을 쓸어본다. 창의 입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날벌레들이 흩뿌려져 있다. 그런 걸 보니. 컴컴한 밤에 누워있는 별들도 모두 불타버린 사체와 다를 바 없겠지.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코끝을 지나 고개를 내미는 바람이 맵다. 등 뒤에 있던 의자에 주저앉는다. 아파트 밖으로 주정뱅이의 헛웃음이 들린다.

“이 미친놈이 진짜, 죽고 싶냐.”

그래, 주정뱅이가 아닐 수 없다. 이름을 외치며 간혹 열중 쉬어 차렷, 하고서 웃는 사내들. 맨정신으로 막아야 하는 소리를 취기에 잠시 풀어둔 것이 분명하다. 사내들은 양팔을 마구 휘저으며 놀이터 한 바퀴를 돈다. 이내 컥컥대더니, 마이크를 잡듯이 주먹을 쥐고 입가에 가져다 댄다. 딸꾹거리는 노랫소리가 날아간 것을 보며. 사실은 반년 후인가. 나 또한 술을 마실지 모르겠다는 미래가 문득문득 보였다. 아주 잠시 그랬다. 나는 내 뺨을 힘껏 갈궜으니까. 스스로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몸이 휘청거린다. 손을 더듬어 책상 모서리를 겨우 잡는다. 거울에 비치는 익숙한 장면. 중학생 때 목을 매달아 놓으며 지었던 표정이다. 곧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보니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계속 맞는다. 그것도 나에게. 스스로 머리칼을 쥐어뜯는 순간에도. 아득히 취한 정신을 어딘가에 맡겨두고 싶다. 전에 살았던 빌라든, 학교의 빈 교실이든 간에.

 

빌라의 좁은 집 한편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맥주를 마시던 아빠의 허리는 비틀어져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가장 오래 버티기 쉬운 자세였다. 그가 내어준 말린 오징어는 질겅거렸다. 쉽게 끊기지 않을 것들이었다. 술은 질긴 위장을 잡아당기는 대신 교묘히 그 안을 뒤섞어 놓은 듯했다. 변기 커버를 잡고 그는 몇 번이고 토했다. 이제는 지겹다, 더럽다 하면서 바깥으로 도망치는 상상을 했다. 아빠가 구역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베개를 접어 두 귀를 틀어막았다. 밤잠을 설치고,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특강을 들었다. 다른 학교도 늘 그렇듯이 금연, 금주를 권하는 캠페인이었다. 강사는 컴퓨터에 꽂은 몇 미터짜리 전선을 교실 내 티브이에 연결하려 했다. 티브이 화면은 지직거릴 뿐이었다. 그는 연결이 되지 않으니 불량이라며 회장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전선을 넘겼다. 일종의 설교가 흘렀다.

체험 위주 강습이라고, 아이들은 우드락 판에 사람 폐 모양을 닮은 종이를 붙여놓고 안을 새카맣게 칠해놓았다. 간 모양의 종이에는 힘들어하는 표정을 그리기도 했다. 눈 코 입이 그려진 몸의 기관들은 항상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애들은 강사가 중학생을 어린아이 다루듯 한다며 수군거렸다. 나는 그러든 말든 틈틈이 네임펜으로 낙서를 했다. 감흥 없는 특강이 끝나고, 종례를 마치고. 그날 청소 당번이었던 나는 잘린 색종이들을 애써 치웠다. 손톱만 한 것들도 쓸어 담아 교실 뒤편에 모아두었다. 손이 느려 언제나 교실에 홀로 남았고 당시에도 다를 건 없었다. 나는 뿔테 안경을 쓴 긴 머리에 말수가 적은, 반에 한둘 있을 법한 이방인이었다. 기다려주는 친구도 없다. 교탁에 남은 열쇠가 전부였다.

걸음마다 삐걱대던 교실은 그 소리로 울리곤 했다. 나는 양팔로 감싸야 할 만큼 커다란 쓰레기통 앞에 섰다. 가만히 무릎을 꿇고 쓰레기통의 입구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 안을 뒤적였다. 땀이 속눈썹 위에 엉겨 붙어 눈이 따가웠으나 차마 얼굴을 닦을 수 없었다. 우유갑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손바닥에 내용물이 묻었다. 학습지에 베이고, 볼펜에 찔릴 뻔했다.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손에 종이 조각과 지우개 가루가 더불어 묻어있었다. 난 봤는데. 회장이 분명 이곳에 버렸어.

“씨발, 씨발……. 전선이 왜 없는 거야. 왜 맘대로 죽지도 못해.”

무릎뼈가 닳아버린 듯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분명 그 길이와 굵기이면 몸을 매달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정신을 차릴 때마다 교탁의 열쇠를 쥐고, 교실의 문을 잠그고 있었다. 평소처럼 딱딱한 복도의 바닥을 밀어내며 나아갔다. 계단 손잡이를 잡고 1층으로 내려가며 햇볕에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손잡이 아래에는 손잡이 모양의 그림자가 생겼다. 나의 내면은 아직 밤이라서 그런지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새벽은 너무 길었다. 동이 트기 직전은 가로등조차 졸고 있었다. 나는 한 칸씩 낮아지며 땅에 가까워졌다.

하마터면 계단에 배를 내놓고 죽은 매미를 밟을 뻔했다. 매미는 빛을 보는 순간 찢어지는 울음을 낸다. 몇 년의 세월을 땅속에서 보내고. 처음 보는 빛줄기가 다 큰 매미의 등에 쏟아져, 날개 부위를 무겁게 누르겠지. 매미의 배 안쪽은 소리를 내기 위해 비어있다던데. 고작 소리를 퍼뜨리기 위해 몸속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지 싶었다. 하긴 죽어가는 속도가 다를 뿐. 나도 아침에 태어났는데 분명 매미처럼 울었을 것이다. 사람들도 죽으면 보통 등을 깔고 눕기 마련이다. 죽은 매미를 발끝으로 툭툭 쳤다. 미동도 없다. 학교 후문으로 내려와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묵묵히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열기가 발목을 감쌌다. 한창 이어지는 더위로 발을 내미는 걸 주저했다. 구름 아래만이 탁해서인지, 땅은 얼룩져있었다. 다 말라버렸을 베개의 젖은 부분이 겹쳐 보였다. 전날, 넥타이로 목을 조였는데. 두 손으로 끈을 풀어헤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돌돌 말린 넥타이를 팽개치고, 안방 침대에 누워 베개를 끌어안았다. 침대 시트를 완전히 구겨놓았다.

밤마다 열리는 호프집은 우리 가족을 잊은 것 같았다. 간판이 깜박이는데 취객들을 세뇌하는 것 아닐까. 인생은 술보다 달다면서. 그게 아니라면 더 쓴 술을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근처 빌라에서 잤다. 노상 방뇨하다 걸려서 바지를 주춤거리던 아저씨는 골목 쪽으로 사라졌고. 한편 오물을 집 앞 텃밭에 뿌리는 아주머니와 엄마가 실랑이했다. 그럴 때마다 아주머니의 개가 컹컹 짖으며 그 밭으로 가려던 게 아닌가. 그녀는 목줄을 짧게 고쳐잡고 신경질을 부리며 갈 길을 갔다. 줄곧 생각하니 나는 대문이 깨진 빌라에 산다는 것에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언제는 101동에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넓은 피웅덩이를 점심시간이 한창일 때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에도, 다음 날에도 우리 가족은 살기 위해 라면을 먹었다. 사람이 죽었다고 우리까지 굶을 수는 없듯이. 부모님은 내 손을 잡고 다른 집 이곳저곳에 들렸다. 주변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낯선 집에 들락거렸다. 부모님은 보금자리 정도로 불릴 만한 집을 찾았다. 가로등의 불빛이 취침에 방해되지 않을 곳이었다.

아파트 20층으로 이사 왔고. 엘리베이터의 진동에 덜컥 겁먹었기에, 엄마는 밤마다 들리는 기계음이 뭔지 설명해주었다. 엘리베이터의 소음에 익숙해질 무렵,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던 친구를 집에 몇 번 초대했다. 그 애는 집이 깔끔하고 탁 트였다고 말했고. 이번에는 진심인 것 같았다. 둘이서 침대 위에 누워 각자의 만화를 읽다가, 친구를 근처 집까지 배웅해주었다. 콧물이 살짝 나오고 눈이 간질거렸다. 낯선 칭찬을 많이 들어서일지. 아토피처럼 몸에 퍼져나가는 전율과 몇 방울의 안도감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아무래도 새집 알레르기 같았다.

 

열아홉이 된 지금도 가위눌리기 일쑤다. 엘리베이터 소음에 벌떡 일어난다. 방금도 그랬고, 꿈속의 사람들은 내 팔다리를 압정으로 고정하여 실컷 괴롭힌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숨만 거칠게 쉰다. 깨어나면 다시 현실이지, 현실은 너무 어둡다. 멀미가 나고 머리에는 열이 난다. 체온계를 이마에 가져다 대고, 세수도 하며 분을 삭인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화장실에서 나오면 다시 고요해진다. 베란다 문도 닫아놓은 상태라 집 안이 꽉 막힌 동굴 같다. 유일하게 디지털 시계가 빛을 뿜고 있다. 머리는 금방 식었다. 커튼을 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우리 동네에 전혀 빛이 들지 않았으니 열어봐도 변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작업실에 들어가 조용히 불을 켰다. 글을 쓰려고 하였으나, 책상에는 필기구가 굴러다니고 책들이 무분별하게 쌓여있다. 필기구를 대강 필통에 넣고 지퍼를 잠근다. 한 아름 책을 안고 옮기려다 몇몇 종이가 틈새로부터 빠져나간다. 나는 그 종이들을 주워 툭툭 털어내고 훑어본다.

‘고마워, 네 존재는 언니에게 감동이었다.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달아가는 하루하루가 되길.’

한때 정신병동에서 친했던 예원 언니의 편지이다. 나는 잠시 노트북을 덮고 그것들을 더 읽어내린다. 아는 이름들을 삼켜낼 때마다 나는 점점 무표정이 된다. 내일이 다가오는데 눈두덩이가 붓는다면, 단지 눈 안쪽이 간지러워 그 주위가 붉어졌다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 속으로는 이미 죽어있는 것들이 많다. 어느 아이가 끝까지 부모에게 맞다가 숨을 잃을지, 웃으며 담요를 나눠 쓰던 십 대들이 투신할지,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난 청년이 오늘 발견될지. 통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런 사건들은 날이 밝으면 더 잘 들리는 법이다. 아침 뉴스, 일간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속보들. 그 빌라에서도 다시 피를 흘리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응급실에 실려 갔던 열여덟의 겨울, 약을 한 주먹 들이켰다. 바닥이 파도처럼 울렁였다. 변기에 속을 게우려고 했지만 침밖에 나오지 않았다. 방바닥에 쓰러진 채 엄마에게 발견되었고. 실려 가면서 심장 박동도 느려지고 있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꿈을 꾸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햇살의 부드러운 어깨에 잠시 기대는 환영을 마주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버스였으나 그 안은 포근했다. 그때 담당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무얼 잘못 먹은 게 아닌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환상에서 끄집어냈고, 나는 약을 많이 먹었다고 힘겹게 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내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내어 갤러리를 뒤졌다. 갤러리에는 내가 모아두었던 약물 사진이 찍혀있었다. 그대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뭐하러 그랬는지. 마치 취조받는 것처럼 엄마의 눈빛은 무겁게 내 심장을 눌렀다. 내 안이 부글부글 끓었다. 무슨 오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럴 거면 약 더 먹고 죽어버릴걸, 소주라도 함께 마셔버릴걸!”

“…….”

그렇게 왼편의 커튼을 보며 웅얼거리다, 오른편에 앉은 엄마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그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초점 없는 눈이었다. 나는 말을 줄였다. 그다음 날 정신병동에 입원한 후에는 악몽을 꿨다. 보호자 신분으로 같이 들어온 엄마는 나를 매만졌다. 나의 눈에 수건을 덮어주었고, 내가 잠들면 그 수건을 다시 치워놓았다. 가끔 엄마는 낮에도 홀로 졸다가 잠들어버렸다. 나는 엄마에게 담요를 몇 장씩 덮어주었다. 난 이렇게 살아남았는데. 엄마는 이대로 내 곁을 떠날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죽지 않으면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는 작은 움직임도 없이 옆구리를 침대에 꾹 붙이고 있었다. 누가 등을 두드리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았는데. 같은 병실을 쓰는 예원 언니였다. 우리는 가만히 병동 복도로 나와 산책했다.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예원 언니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머리를 묶었네요.”

맞아. 예원 언니는 자신의 묶음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잘 풀리지 않게 묶었다며 멋쩍게 웃어보았다. 일반적인 폐쇄병동에서는 짧은 끈은 허용되지 않아. 여기는 뭉툭한 연필까지도 허용되지만. 특히 환자를 책임질 수 있는 보호자도 이곳에 올 수 있잖아. 환자 이외의 일반인은 병동에 들어가는 게 힘들거든. 나는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언니는 걸음을 멈췄다. 나는 그런 언니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예원 언니는 단단해진 목소리로 내게 당부했다.

“너는 꼭 너희 엄마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

“꼭 그래야만 해요?”

“응, 무조건 부모가 좋다는 법 없는데 너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약이다.”

나는 그 말에 꼭 동의하지는 않았다.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았으니,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조금은 덜 아프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거리가 필요했다. 적어도 관통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지만 남들 사이에 그어진 선을 올곧게 지키지는 못했다. 내가 불행하다는 것을 떠벌렸다. 억울한 서사를 언니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 사는 게 아니라 벌 받는 거라고 말했던가.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 환자였다. 스스로 울부짖기에도 바쁜 사람들이었다.

한편 엄마는 평소처럼 다시 일하기 위해 보호자 역할을 그만두고 병동에서 완전히 나가버렸다. 난 한동안 엄마 찾는 꿈을 꿨으나, 방황했던 시기는 금방 지났다. 복도의 등이 하나둘씩 꺼지면 우리는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때때로 그것을 어기고 다른 병실의 세희 언니와 야밤의 산책을 했는데. 사실 병동 카운터만 밝고 다른 곳은 빛이 잘 들지 않았다. 티브이도 꺼두고 러닝머신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둘의 목소리만 들렸고,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면 슬며시 보이는 서로의 얼굴이 맑았다. 세희 언니의 탈색된 노란 머리는 부스스했다. 반대로 정갈한 언니의 눈동자에서 나를 발견했다. 나의 상체가 둥그런 모양새로 그 안에 담겨있었다. 밤마다 정해진 거리를 넘어, 서로를 본다는 것이 언니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나는 물음을 곱씹었다.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던 우리는 얼굴을 다시 보일 수 없었다. 병실 안은 늘 전면 소등이었으니. 햇살이 눈을 스치는 순간이 다시 찾아오려면 좀 더 깊이 잠들어야 했다.

겨울의 밤은 건조했다. 자고 일어나면 여드름이 나고 피부가 벗겨졌는데. 예원 언니는 로션을 직접 추천해주고 나의 얼굴에 발라주었다. 그 덕에 피부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화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 되었다. 세희 언니는 자신의 입술이 마치 죽은 사람의 것처럼 창백하다며 씁쓸히 웃었다. 예원 언니가 립밤을 꺼내려 했는데, 다른 환자들의 환호성이 차츰 커졌다. 복도로 나가서 보니 눈의 결정이 창틀에 맺혀있었다. 세희 언니는 창을 부수자는 농담을 꺼냈고 예원 언니는 한 번 주먹을 쥐어보려다 말았다. 우리는 바깥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환자복을 벗고 롱패딩을 입는 것. 길가의 눈을 밟아보며 추위를 온몸으로 이겨보고 싶었다. 흰 이불을 덮고 자는 우린 매일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침대 위에서 자꾸 웅크리던 나는 금방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들은 슬라임을 가지고 놀았다. 그 아이들이 슬라임을 바닥에 흘릴 때 나는 손을 뻗어 한 덩이를 잡았다. 그것은 실처럼 늘어나거나 뭉쳐놓으면 서서히 그 모양새가 퍼지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유동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어느 사람이든 딱 맞고 부드러운 성격, 때마침 나보다 어린 하연이가 그랬다. 그 애는 한 움큼의 슬라임을 들고 다녔다. 하연이는 나와 같은 병실에 있었는데,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처음이었던 그 애의 비명은 단숨에 귀에 박혔다. 구급차의 사이렌처럼 울음은 끊기지 않았다. 안정실에 업혀 갔을 때의 하연은 꼭 사람의 등에 붙은 슬라임 같았다. 그 애는 마음이 묽지만 어떻게든 끈끈한 점성으로 살아갔다.

나는 하연이와 안정실 침대에 앉아 바닥을 바라보았다. 하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애는 말 몇 마디를 흘리곤 했는데. 술 취한 사람의 고함이 무섭다고……. 하연이는 비포장도로를 맨발로 걸어오듯 살았다. 하연이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아파, 아파, 내지른다. 우리는 흐느꼈다. 간혹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짐승이라 불러도 화가 끊이질 않는 놈이 있다. 우리는 빌라서 살았다. 지금은 우리 둘 다 이사 왔지만, 겨우 일곱 살이었던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다. 안전을 이유로 피해야만 했던 비슷한 순간들. 난 하연의 손을 잡았다.

“하연아, 우리는 생존자야. 우리는 살아있는 게 대단한 거야.”

나는 하연이를 안았다. 등을 토닥여주었다. 난 벽이 살짝 허물어진 빌라를 떠올리면 입술을 꽉 깨물곤 했다. 그 애는 다시 병실로 걸어들어왔다. 나는 안경에 묻은 눈물을 닦고, 개인 냉장고를 뒤적이며 우유갑 두 개를 꺼냈다. 양손에 우유를 들고 움직일 때는 찰랑거리는 내부가 느껴졌다. 전자레인지에 그것들을 넣고 돌렸다. 얼마 안 가서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오른손으로 전자레인지를 끄고 왼손으로 황급하게 문을 열었다. 연기가 나지는 않았으나 우유갑의 바닥 면이 살짝 그을렸다. 나는 서랍을 열어 겹겹이 쌓여있는 종이컵들을 꺼냈다. 그 안에 우유를 따르고 같은 병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연이는 그새 지쳐서 잠들었다. 이불조차 제대로 덮지 못하고. 나는 하연이의 책상에 조용히 우유를 두고 복도로 나갔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우유를 홀짝홀짝 마시며, 어른이 되어도 술을 마시지 않기로 다짐했던 것 같다.

통창 유리 너머를 막연히 지켜보았다. 노을은 전자레인지 내부 같았다. 타는 냄새가 이부자리처럼 흐트러졌다. 작열통이 이어졌다. 우리는 점점 아려오는 몸을 지탱하기에는 연약했다. 하연이와 나는 그야말로 사람이었으니까. 며칠 뒤, 감정이 격해진 나는 집에 약이 아직 남아있다며. 퇴원하면 완벽하게 죽어버리겠다고 환우들과 보호자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또 실패하더라도 옷장에서 넥타이를 찾아 목을 맬 것이라고 악을 썼다. 중심에 끼어있던 하연이는 나의 외침을 들어주더니, 양팔로 나를 감쌌다.

“죽지 마.”

하연이가 죽지 말래. 나는 눈물 몇 줄기를 흘렸다. 몸에 힘이 풀려서 하연이에게 잠시 기대었다. 죽지 말랬잖아.

 

이마로 밤을 뚫고 가는 것은 어렵다. 드리우는 그림자가 넓어서 내 몸이 푹 빠져버릴 지경이다. 나는 아직도 노트북에 글을 쓰며 다리를 꼬고 있다. 어깨는 앞으로 치우쳐있고 허리가 비뚤다. 공원마다 하나쯤 있는 기울어진 나무처럼, 낮게 포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난 자주 넘어진다. 다만 병동에서 받은 편지지들을 넘기며 어렴풋이 쓰러질 방향을 잡는다. 특히 세희 언니가 준 편지들이 보일 때는, 밤이 그렇게 조용하지만은 않구나 홀로 속삭여보고. 열아홉의 나는 찬물을 마시며 남은 편지지들을 힐끔 곁눈질한다.

다시 산책하는 우리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우린 좀 더 넓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병동의 깔끔하고 각진 복도는 그만 걷고, 가로수마다 드리우는 그늘에서 잠시 쉬어보자. 내가 아는 파스타 집에서 해산물 리조또도 먹어보면 좋겠다. 새로운 기억은 나의 보호막이다. 이 아파트 외벽을 기어오르는 담배 연기쯤은 참을 수 있게 돕고. 빌라가 기와를 떨어뜨리며 떼쓰는 것을 달랠 수 있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러나 골목 거리마다 놓여 있는 막걸리병을 보면 하연이에게 주었던 그 우유 한 컵이 꼭 떠오르는 것이다. 안방부터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귓등에 부딪힌다.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꺼내두었던 소주, 살기 위해 깠던 아빠의 맥주까지. 술의 존재는 아끼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둘 부른다.

‘하지만 나는 술 마신 사람을 싫어하잖아.’

길가를 더 가다 보면 붉은 담배꽁초의 끝부분이 흩어져있다. 늘 장애등처럼 깜박이면서도. 어른들에게 자주 밟히는, 땅에서 식어가던 옅은 불이다. 나는 앞으로도 발 앞쪽에 묻을 자국에 늘 담담할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여느 아저씨들은 씁 들이마시고 후 연기를 뿜는다. 한숨을 번갈아 쉬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손가락 끝으로 재를 툭툭 털어내면, 자꾸만 수그러들던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자라면 담배를 입에 물지 않을까. 적어도 화장실의 환풍기가 누렇게 변색 되지 않을 정도로. 위층 이웃이 베란다에서 고함을 내지르지 않을 정도는 지켜야겠지. 그저 숨이 붙어있을 정도만 사는 거야.

아침의 공기는 참 짙다. 누구는 된장찌개를 끓여서 그런지 구수한 향이 깔려있다. 온갖 밥 냄새가 모인다. 냄새를 볼 수 있다면 앞이 흐렸을 것이다. 아마도 안경알에 달싹 붙어 시야를 가리겠지.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차지하던 그림자들은 알아서 흩어진다. 나는 주변 동네까지 걸어 본다. 빌라 단지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이 들린다. 예쁜 소리마저 들을 줄 아는 것일까. 간혹 주인과 뛰어다니는 강아지의 얼굴이 내 다리에 스친다. 외진 길가에서는 아직 탄내를 맡지만, 밤의 화상 자국은 아침이 밝았다고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 시간이 필요하다. 연고를 주름 잡힌 상처에 바른다. 살이 피어나는 과정을 이겨내며,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남은 편지도 다시 읽어보고, 엄마가 깨어났는지도 보고. 하루가 일어났는지 보는 거겠지. 어른들은 어른에 가까워진다. 스무 살 넘겨도 우리 무릎은 똑같이 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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