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피그가 되고 싶던 햄스터

 

옥탑 실선에 걸어둔 빨래는 국기처럼 흩날렸고

고장 난 고물 삽니다 트럭 아저씨가 틀어둔 트로트

애국가라도 된 마냥 가슴이 웅장해졌다

역시, 나는 한 왕국을 다스리는 왕인 것일까

 

녹는 여름 창을 투과한 햇볕에 바짝바짝 말라가는 장판은

이상하게 뜨겁고 끈적 끈적 달아올랐다

산기슭에 핀다던 다년초 끈끈이주걱이 방 안을 뒤덮은 듯

나는 벌레라도 된 마냥 장판에 눌어붙어 일어날 수 없었다

그건 내 탓이 아녔다

바닥에 핀 끈끈이주걱 탓이었지 내 탓이 아녔다

 

고장 난 고물을 산다던 트럭 아저씨가

미리 녹음해둔 테이프를 틀었다

사체가 경직하기 5초 전을 바라본 사람의 목소리처럼

영혼의 무게가 사라져 텅 텅 비어가는 소리였다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이름 없는 그녀가 산다던 물건을 방 안에서 훑었다

왕의 손과 발끝이 닿는 물건들이니까 당연 비싸겠지

 

두터운 냉장고가 북을 쳤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명령했는데도 북을 쳤다

나는 화가 나서 전선을 뽑아버렸다

 

그러니까 이제는 개수대의 수도꼭지가

톡, 톡, 톡

난데없이 물을 주었다 나는 또 화나 나서

바락바락 악을 썼다

 

브라운관 티브이 18번 채널이 멈춰버렸다

잔, 잔, 잔, 자잔, 잔, 하고 흔들렸다

고장 난 태평양이 작은 브라운관 안에서 요동쳤다

나는 화가 나서 18번 채널을 외쳤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저씨 티브이 좀 사 가세요 냉장고도요

돈을 그것밖에 안 줘요? 됐어요 안 팔아요

 

방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참, 상도덕도 모르는 신하들과 백성들

기가 차서 고함을 질렀는데

끈끈이주걱에 붙어버려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정적이 흐르고 끈끈이주걱에 붙은 햇살은

이도 저도 못 한 채 멍청하게 잡혀 있었다

이놈, 왕을 태워 죽일 셈이냐 싶었는데

 

쳇바퀴가 탈, 탈, 탈 열심히 돌아가는 소리가 나

간신히 기울인 시선 끝에는

햄스터 녀석이 공처럼 둥글고 작은 몸으로

쳇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돼지같이 부푼 몸

넌 기니피그냐 햄스터냐

물었고

 

왕이 되는 꿈을 꾼 것도 같았다

 

와하하 터지는 박장대소

 

이내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역시, 웃음도 잡혀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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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옥탑방 생활 속에서 자기가 왕이 된 것마냥 생각하는 것이 너무 흥미로워요!!..!

발의토

발상이 참 좋네요

조해주

안녕하세요, 우주디님. 시 잘 읽었어요. “창을 투과한 햇볕에 바짝바짝 말라가는 장판은 이상하게 뜨겁고 끈적 끈적 달아올랐다“ ”쳇바퀴가 탈, 탈, 탈 열심히 돌아가는 소리가 나 간신히 기울인 시선 끝에는 햄스터 녀석이 공처럼 둥글고 작은 몸으로 쳇바퀴를 굴리고 있었다“와 같은 구체적인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산문적인 감이 있어 아쉽습니다. 시에도 물론 서사가 있지만 시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우주디님이 보기에 줄일만한 부분이 남아있지 않다면 오히려 산문시의 형태로 행갈이를 하시는 게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고민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