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

너를 물에 씻으니 녹아내린다 아마 너는 사탕가루로 된 솜사탕인가 보다 물에 잠긴 신체의 말단부터 천천히 사라진다 아래쪽이 가루가 되어 녹고 그럼 위는 다시 아래가 되고 그리고 녹고… 너는 네가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놓아야 하는 것을 놓지 않았거나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았거나 아니면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였거나…… 나를 사랑하여 네가 사라지는 게 아니기를 바란다

너는 네 집행관이 나라서 기쁘다고 말하고 가슴까지만이 아직 물에 녹지 않아 욕조를 둥둥 떠다니면서 웃는다 샤워기를 대고 물을 뿌려야만이 네 얼굴을 울상으로 흘러내리게 만들 수 있고 그 때문에 거꾸로 뒤집어진 네 속이 보일까봐 나도 재빨리 눈을 가린다

모든 것이 끝나고 너는 물 속에서 피도 없이 파스텔톤이다 옷가지를 건져내어 거두고 가루만 남겨 간직할 생각에 네가 담긴 욕조를 창가에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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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규 시인

갖바치 학생, 안녕하세요. '너'를 '사탕가루로 된 솜사탕'으로 비유한 것이 신비롭고 재미있네요. 이런 경우에는 애매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너는 사탕가루로 된 솜사탕이다'처럼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는 편이 독자에게 전달되기 효과적입니다. 애초에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인 것처럼 표현하는 방향이 주제를 드러나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