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름의 작가들

여름 잘 보내고 계시나요? 날씨가 제멋대로이죠.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는 한쪽 어깨가 젖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우산을 쓰며 걷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열아홉이 지나고 그럴 기회가 더 없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다들 우산쯤은 잘
챙기고 다니는 것일까요. 편의점에서 투명 우산을 사거나, 집까지 홀로 달려갈 수도 있겠지만요.

사람들은 크면 다 그런 걸까요. 아무쪼록 제가 글틴을 졸업한 지도 어느덧 8개월 정도가 흘렀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요. 작년까지만 해도 글틴에 거의 매일 출석했었던 걸로 기억했는데요.

살다 보면 한 번쯤은 고립을 경험했을 겁니다. 비록 강도와 지속성 등의 차별점이 있겠지만요.
그 시기에, 저는 운 좋게도 여기서 글을 썼습니다. 이 사이트를 추천해준 분께 밥 한 끼 사드리고 싶네요.
물론 저의 비관적 사고가 말끔히 낫지는 않았지만, 제 삶에 있어서는 충분히 유의미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이트에 들어오면 잠시나마 저를 드러낼 수 있었죠. 당시엔 솔직해져도 괜찮구나 싶었습니다.

 

글쓰기를 하는 동안에는 제가 참 특별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입시미술을 했을 때,
항상 걱정했던 것이 레터링(lettering)이었습니다. 형태가 뭉그러지거나 균형이 안 맞으면 끝장이었죠.

글씨를 잘 모방하기 위해서는 사각형의 칸을 그려주어야 하는데요, 이 담화를 꺼낸 이유는 거의 모든
글자의 모양이 한정적인 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워서였습니다. 그림은 소통 수단이 되었으며,
의미 있는 단어가 생성되었고, 깊은 뜻이 담긴 문장과 문단이 나타났습니다. 글은 외적으로 유한합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무한합니다. 숫자로 표현되어도 정확한 값을 알 수 없는 원주율처럼요. 그래서 저는
내면의 정서를 글로써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나의 가능성과 가치도 무한해 보였거든요.

 

여기서 정서가 담긴 글을 많이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좌절도 하고 우울에도 빠져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수십 가지의 극복 서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은 저였습니다.
따라서 자주 후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의 존재와 아예 관련 없는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제가 쓴 글이 재미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득 슬퍼지기도 합니다. 자기 전 몸을 눕히고
하나님께 기도를 해보았죠. 글 속의 인물이 더는 냉혹한 현실에서 성장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만약 제가 중세 시대 로맨스 판타지를 좋아했더라면 조금은 괜찮았을까요. 그랬다면 비록 가끔이라도,
글을 쓰고 읽는 일을 극도로 무서워하고 피하지는 않았을까요. 괜히 제 마음을 마주하기 어렵더라고요.

요금 근황이랄 것도 없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간혹 퇴고하는 중이에요. 글쓰기 과외도 끊었고,
5개월 가까이 글쓰기 대학 연합 동아리에서 활동했으나 현재는 나온 상태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꺼냈는데요. 그렇다고 울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자주 웃는 편이죠.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대학 생활도 나름 즐거웠고, 다른 친구들과도 최근에 영화를 보고 왔어요.

예전에 비해 타인을 많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너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동시에,
씁쓸함을 지울 순 없었어요. 그 느낌이 계속 이어지면 어쩔 수 없이 글이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가 써온 글을 보면, 상황과 배경에 대한 묘사보다는 독백이 더 우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 최근에도 어느 작가분께 피드백을 들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가 언급한 두 부류의 ‘태양의 작가’, ‘달의 작가’ 중에서 제가 보여드린 글은
‘달의 작가’에 아주 근접하다고요. 태양의 작가는 네루다처럼 다른 사람들을 향해 글을 쓴다면, 달의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향해 글을 쓴다고 합니다. 물론 다양한 작가들의 스펙트럼을 두 부류로 나눈다는 것이
자칫하면 일반화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납득했습니다. 저는 제가 없는 글을 쓴 적이 없었으니까요.

열여섯에 절필을 선언했고, 열여덟을 앞둔 겨울에 시를 다시 썼을 때 저는 태양의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교류하는 일은 굉장히 근사하거든요. 특히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큰 축복 같습니다.
누군가 저를 햇빛이라고 착각해 주길 바랐지만, 지금은 나의 문장으로 사람들의 밤이 더 푸르게 물들었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글틴에서 제17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을 했더라고요. 수상자분들 정말 축하드립니다.
다들 이번 경험을 통해서 글과 더 가까워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봐요.

청소년이거나 이제 성인이 되신 분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짧은 시기에 최선을 다한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머지않아 이 여름이 끝나서 장맛비가 멎고 매미들이 제자리를 떠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들 여러분이
남긴 오늘의 열정은 절대로 식지 않을 거예요. 여름의 작가분들, 미래에 어떤 꿈을 좇더라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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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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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일

사랑하마 님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입니다. 또 여름이 왔네요. 시간이 정직합니다. 한 달이 지나면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나겠죠?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양의 작가, 달의 작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글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보다 세상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죠. 사람 성향이 무의식적으로 글에 나타나겠죠? 저는 매일 신문, 다큐, 역사, 정치 등 논픽션을 픽션보다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풍경을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너무 논픽션을 좋아해서 제 글이 경직되어가는구나, 느끼기도 하지만 성향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죠. 그 안에서 장점을 찾고 더 키우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은 친구와 우산을 함께 쓸 때가 많은데 어른이 되면서 우산이 없으면 편의점, 다이소에 가서 우산을 사서 혼자 쓰게 되네요.…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