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2) 딸년

 
2. 딸년
 

 

어제는 무슨 비가 그리도 여름 장마비처럼 쏟아지던지. 다행히도 오늘은 해가 나, 날이 쨍하기는 하지만 비 끝에 바람이 차다. 나무들마다 잎새를 죄 떨구고 가지 사이가 텅 비어 있다. 그 하루 비에 맥을 못 추고 그 좋던 이파리들이 절단 나버렸다. 은행잎은 노래서 예쁘고 갈잎들은 붉어서 예쁘더니 부귀영화가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꼭 영감땡감 짝이다. 잎들이 지고 나니 그 동안 나뭇잎에 가려 뵈지 않던 것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헌 침대, 고장난 청소기, 깨진 유리, 스티로폴, 썩어 한 줌 흙도 못 될 기구한 운명들 일색이다. 닳고 헐고 고장나 버림받은 것도 서러운 판에 풍찬노숙에 시달려 하고 있는 꼬락서니들이 거지꼴이다.

 

그 중에서도 아파트 주차장에 맞닿아 쌓아진 교회 담벼락이 제일 보기 흉하다. 아파트 주민들의 보행을 차단하고자 철조망까지 둘러쳤던 담벼락. 철거한다고 한 지가 언젠데 여태도 저렇게 흉물스레 방치해 두고 있을 줄이야. 쉬 철거 못할 것 같으면 덩굴장미라도 사다 심어 덧씌울 일이지 참 무심하기도 하다. 교회 담이 세워지기 전 그 길은 아파트 주민들이 출퇴근 시간에 바삐 질러 다니던 지름길이었다. 영감땡감이 다리뼈에 철심을 이식해 박기 전 아픈 다리를 마냥 절뚝거리며 이끌고 다니던 길이기도 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느닷없는 협조요청서가 날아왔다. 말이 좋아 협조요청서이지 아파트 주차장과 맞닿은 길에 교회 담을 쌓을 예정이니 주민들의 통행을 삼가 달라는 일방적인 통고서였다. 며칠 전 새벽에 어느 모를 손에 의해 교회 성금함이 감쪽같이 털렸던 모양이다. 이쪽 아파트 주민들에게 의혹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불가피하게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다. 귀찮고 번거롭다는 뜻도 은근히 내비쳤다.

 

그 당장 아파트 주민들이 웅성거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코앞에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에돌아 다니게 생겼으니 가만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파트 주민 대표들이 교회를 찾아가 애원도 해보고 사용권을 놓고 분쟁도 일으켜 봤으나 눈 하나 꿈쩍 안 했다. 그리고 뚝딱 시멘트에 돌 자갈을 섞은 담벼락이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아파트 주민들은 설마 했다. 담은 둘러쳐도 적어도 출퇴근시간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숨구멍은 터 주겠거니 했다. 허사였다. 일부에서 도둑고양이처럼 담을 타넘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회에서 담 위에 철조망을 데굴데굴 둘러쳤다.

 

영감땡감이 다리를 접질러 엎어져서 도로 시멘트 바닥에 온통 얼굴이 할퀸 사고를 당한 게 그 무렵이었다. 지름길을 버젓이 두고도 먼 길을 돌아가자니 절룩대는 걸음에 몹시도 힘겹고 고통스러웠던가 보았다. 피딱지 진 영감땡감 얼굴 꼴을 본 주민들 감정이 겉잡을 수 없이 사나워졌다. 교회 안으로 질러 다닐 때에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없는 신심이 다 일었는데, 담을 친 다음부터는 도둑질하러 월장하는 듯한 묘한 기분을 들게 하더니, 그 위에 철조망까지 한 겹 더 둘러쳐지자 실제로 죄인이 만들어져버렸다.

 

 울분에 찬 어느 주민이 교회 안으로 벽돌을 던져 유리창을 여럿 박살내고 만 사건이 터졌다. 교회의 신고를 받고 파출소에서 출동을 하고 범인 색출에 앞서 목격자 확보에 나섰다. 늦은 밤에 순식간에 그랬으므로 주민들 누구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경비로부터 잠깐 뵙자는 인터폰이 올라왔다. 무슨 일인가 하여 내려가 봤더니 경비 옆에 낯선 사내 하나가 빙글대며 서 있었다. 교회 바로 옆 동에 근무하는 경비라고 경비가 사내를 소개했다. 딸년이 그날 사건의 용의자라며 사내는 차 번호와 딸년 인상착의를 대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어 차 번호도 맞고 인상착의도 맞지만 여기에 살지도 않고 어쩌다 다니러 오는 애가 무슨 할 짓이 없어서 그런 짓을 했겠느냐고 언성을 높이자 사내는 자신이 그날 밤 목격한 현장 상황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그날 밤 사내는 아파트 주차장에 불법 주차된 외부 차량을 단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무 그늘지고 어두컴컴한 교회 담 밑에서 뭔가가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도둑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어줍잖고 도둑인가 하여 사내는 바짝 긴장해 손전등 불을 죽이고 주차된 차들 틈새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곧 어둠에 눈이 익고 움직이는 게 여자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챘다. 여자가 야밤에 저 어두운 데서 무얼 하고 있는가 궁금해 사내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몰래 쓰레기라도 내다버리는 경우라면 재빨리 손전등을 켜고 현장을 급습할 요량이었다. 여자는 교회 담 밑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골라 주워 나르고 있었다. 교회 담 밑에서 주워 올 거라곤 담 공사할 때 쓰고 남은 자갈들이나 벽돌뿐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단을 꾸민다고 더러 집어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그런 걸 집어 나르는 거라면  도와줄 생각으로 사내는 손전등을 켜주려다 말고 멈칫했다. 발소리를 죽여 교회 담 밑으로 슬그머니 다가선 여자가 교회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교회 안은 현관 비상등만 켜둔 채 이미 모두 소등한 채였다.

 

순간 온몸이 오싹, 도둑이다 싶었다. 경비 생활 20년에 그렇게 머리칼이 쭈뼛 서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저런 간 큰 짓을 하는 걸까. 저걸 당장 쫓아가서 박살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감히 교회를 털 생각을 다 하다니. 그것도 남자도 아닌 여자가.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나. 벼라별 생각이 다 드는데 정작 사내는 괜히 오금이 질려 마른침만 삼켜졌다.

 

 

드디어 여자가 행동을 개시하려나 보았다. 두리번두리번 사위를 둘러 살피더니 발치에 쌓아 둔 벽돌을 집어들었다. 여차하면 벽돌을 무기로 사용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닌 성 불렀다. 얼른 달려가 경비들을 죄 불러올 걸 잘못했구나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그런데 설핏 포즈가 이상했다. 다리 가랑이 벌어지는 것하며 팔 벌어지는 것하며 암만 봐도 담을 타 넘으려는 포즈가 아니었다. 담을 타 넘으려면 적어도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야 했다.

 

저거 혹시 미친년 아냐? 하는 순간 와장창, 소리가 났다. 뭐야 ? 무슨 소리야? 사내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연달아 창, 창, 창, 터졌다. 그리고 여자가 냅다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행동이 잽싼지 사내는 그저 우두망찰했다. 재빨리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 여자는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정말,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었다.  

 

사내는 그날 밤 근무일지를 증거자료라며 내놓았다. 증거자료라 해 봤자 고작 그날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외부차량번호 기록일지에 불과했다. 딸년 차 번호 밑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을 뿐 사내가 특별히 증거라고 내세울 건 없었다. 경비도 같은 생각인지 사내에게 따져 물었다.

 

“아, 글쎄, 자네가 그 여자와 그 차를 직접 붙잡아 놓고 확인하지 않은 이상 그게 무슨 증거냐고?”

 

“내가 봤대도 그러네. 하도 후닥닥 도망치는 통에 차 번호는 못 봤지만 나중에 그 차가 빠져나간 자리에 가서 확인해 보니까 이 아주머니네 집을 방문한 차더라니까 그래.”  

 

“아니 이 사람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우리가 근무일지 쓸 때에 외부차량 있으면 그냥 기록만 하고 다니지 어느 자리에 어느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고까지 쓰고 다니나? 참 답답한 사람일세. 아, 그만큼 말했으면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아, 내가 봤으니까 봤다고 하지. 아무렴 보지도 않고 증거도 없이 공연한 소리를 하겠어?”

 

“그래도 이 사람이? 그럼 당장 신고하지 여태 뭐 한 거야? 교회에서 얼씨구나 할 텐데?”

 

“알아 봤더니 교회에서는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분위긴가 보더라고.”

 

“그럼 잠자코 가만히 있어. 여기 사모님 바깥양반 되시는 분이 뉘 신지 알기나 해?”

 

그 일은 결국 영감땡감이 그 둘에게 돈을 얼마 집어주는 걸로 입막음했다. 딸년에게 영감땡감 불벼락이 떨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날만큼은 딸년도 불벼락을 고스란히 감내했다. 다만, 왜 그랬는가 물었을 때 그것만큼은 입을 꽉 다물고 대답을 안 했다.

 

그 뒤로 교회측에서 자발적으로 철조망은 걷어내겠다고  낸 것이 저렇게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딸년이 왔다. 아침 일찍 오겠노라 하더니 정말이었다. 가만히 걸어오질 못하고 또 한달음에 뛰어온다. 딸년은 가만가만 걸어다니질 못한다. 노상 뜀박질에 달음박질이다. 조신하지 못하고 덜렁대서 그러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바쁠수록 돌아가고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라는 걸 딸년이 모를 리 없다. 양반걸음 흉내내고 다닐 시간이 없단다. 하긴 딸년 사는 걸 보면 이러니저러니 탓할 것도 못된다. 저러고도 사는가 싶어 입이 딱 벌어진다.

 

딸년은 부천에서 방과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말이 좋아 방과후 공부방이지 숫제 전천후 탁아소였다. 동네 아이들이란 아이들은 죄 모아놓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끌어안고 살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맞벌이 부모가 태반인 동네였다. 아니면 부모 중 어느 한쪽이 가출하거나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때문에 딸년은 늘 피로에 절어 허덕였다. 돈이면 다고, 돈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요즘 세상에, 왜 그러고 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거기는 어쩌고 벌써 오냐?”

 

“걱정 마. 알아서 다 해놓고 왔어.”

 

딸년은 들어서자마자 이 방 저 방 둘러보며 인부들한테 인사부터 챙긴다.

 

“고생하십니다. 고생하십니다……”

 

젊은 여자가 생긋생긋 웃으며 돌아다니자 인부들 표정이 확 달라진다. 

딸년을 먼저 보고도 영감땡감이 오냐는 소리도 없이 고개를 홱 돌린다. 뒤늦게 영감땡감을 발견한 딸년이 “추운데 왜 거기 그러고 계셔요? 제 차에 가 앉아 계셔요” 해도 들은 체도 안 한다. 딸년이라고 속이 없을까마는 한두 번 당하는 일도 아닌지라 웃어넘기는 듯하다. 

 

얼마 전 그 잘난 사위가 병문안이랍시고 코빼기를 내비치고 간 뒤로 영감땡감은 부쩍 더 딸년을 못마땅해 한다. 사위가 보수야당에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한 모양인데 딸년이 그 앞길을 막는다는 것이다. 절대절명의 시기에 딸년이 이혼을 하자 한다고 사위가 일러주고 갔다. 

자고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거늘!

 

영감땡감이 노발대발이 났다. 딸년 일하는 부천 공부방까지 몸소 납시어 달래고 어르고 다그치고 호통까지 쳐댔지만 소용없었다. 되려 딸년 서슬이 파랬다.

 

“그깟 국회의원 마누라 하자고 노동운동 뒷바라지한 것 아닙니다.”

 

어미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그대로 보고만 있을 거냐고, 영감땡감이 발을 굴려대는 통에 딸년 속을 한번 떠보기는 했다. 그 동안 딸년이 차마 말 못했던 속내를 듣고 나니 장 서방 그놈, 사위도 뭐도 사람도 아니었다.

 

그 동안 활동하네, 뭐 하네, 온갖 개폼은 다 잡고 다니면서 여자 문제에 돈 문제로 말썽이 잦았다. 결국 조직 내에서 배척당하고 축출당하게 생기자 제도권 안으로 말을 갈아타는 것이다. 노동운동 하다 정계로 들어간 인사들 치고 제대로 된 인사가 누가 있냐. 딸년은 그 출신 인사들을 매섭게 질타했다. 

 

딸년 속내를 전해들은 영감땡감은 더더욱 야단이 났다. 사내대장부한테 여자 붙고 돈 따르는 것은 당연하거늘, 그럴수록 사내 허물은 계집이 열두 폭 치마로 덮어가야 하거늘, 으흠! 딸년한테 덕이 없는 거라고, 큰 사람을 못 섬길 년이라고 야단야단했다. 잘하면 사위 덕에 늘그막에 지구당 하나 꿰차고 앉겠는데 딸년이 말을 들어먹질 않으니 사뭇 환장하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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