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3) 영감땡감

3. 영감땡감

 

바깥 베란다 창고에서 인부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여기 좀 와보세요. 이게 뭡니까?”

 

매직펜으로 ※조심※이라고 휘갈겨 쓴 낡은 박스 두 개를 조심스레 가리킨다.

 

“뭐 그냥 그렇고 그런 거예요.”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려는데 어느 결에 뒤따라왔던지 영감땡감이 깜짝 반색을 한다.

 

“어? 그게 거기 있었어?”

 

인부가 창고에서 나온 짐은 창고짐 쪽에 함께 두는 게 원칙이라고 하자 아무 소리 말고 무조건 갖고 들어오라고 인상을 쓴다. 거실 인부가 짜증스레 뭔데 그래? 묻자 나도 몰라, 아따, 똥깨깨나 무겁네, 끙끙대며 들여놓는다. 영감땡감이 거실 인부의 칼을 집어들었다. 하나라도 묶고 싸기 바쁜 와중에 펼쳐놓고 보겠다니 거실 인부가 얼굴을 찡그렸다. 멀리서 보고 있다 딸년이 눈짓으로 묻는다.

 

“아무 것도 아녀.” 하자 헤쳐 풀다 말고 영감땡감이 성을 냈다.

 

“이 사람이? 뭐가 아무 것도 아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면” 하는데 딸년이 아무소리 말라고 고갯짓을 했다.

 

영감땡감 하는 짓을 심란하게 바라보고 있던 거실 인부가 현관 복도까지 박스를 들어다 놔 줄 태세를 보였다. 

 

“아저씨, 저기 밖으로 갖고 나가서 하시면 안 되겠어요?”

 

영감땡감이 선뜻 그러자 한다. 목발은 떼었지만 아직도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해 절룩대는 걸음으로 영감땡감이 인부 뒤를 따른다. 딸년이 그 뒤를 따라붙다 아버지 걸음이 아직도 그러시네…… 착잡히 말꼬리를 흐려버린다.      

 

영감땡감이 고관절 수술을 받았던 날 영감땡감을 밤새 간호한 사람이 다름 아닌 딸년이었다. 수술 뒤로 24시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영감땡감의 무지막지한 통증을 딸년 혼자 치뤄 냈다.

진통제를 맞고 비몽사몽 앓다 깨어보면 단 한 숨을 안 자고 옆에 딱 붙어 서서 온갖 시늉을 다 받아주더라. 간호는 간호고 평상시 미운 것은 미운 것이라 온갖 미운 소리를 다 쳐도 그저 웃고 말더라.

 

영감땡감의 극심한 통증이 멈춘 담에야 딸년은 부천 공부방으로 허위허위 돌아갔다.

 

딸년이 슬며시 묻는다.

 

“언제까지 저러고 걸으셔야 하는 거야?”

 

“두어 달 더 고생하셔야 하지 않겠냐?”

 

“마음고생이 크시겠네, 생전 저러고 안 살던 양반이……”

 

“말도 마라. 내가 더 죽겠다.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 원.”

 

“누구, 들여다보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쪽 사람들?”

 

“그쪽 사람들? 하이고 잘도. 잘도 들여다보겠다.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않더라.”

 

박스는 시간의 무게만으로도 헐고 닳아 느슨한 매듭 사이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구태여 칼로 자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창고에서 베란다로, 다시 거실로, 현관 복도로 옮겨지는 와중에 이미 한 귀퉁이는 뜯어져 있다.

 

그렇든 말든 영감땡감의 입이 벌어진다.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다.

 

“아 하하하. 어 허허허. 이게 여깄었어! 이게 여깄었어!”

 

겅중겅중 손뼉치며 웃고 절룩대며 웃는다.

 

보고 서 있자니 새치름히 눈이 흘겨진다. 아무리 좋은들 저렇게나 좋을까. 그보다도 실은 한숨이 먼저 쉬어진다. 이제 또 저 놈의 것들을 갖고 새 집에 가서 영감땡감이 어떤 살림을 차릴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방방이 걸어놓고 모셔놓고 자청해 반상회 열어 거들먹거리며 구경시키고 자랑할 게 뻔하다.

 

이래봬도 내가 소싯적에 한 자락 하던 사람이었소.

 

그런들 요새 세상에 누가 들은 시늉이나 하는가. 대놓고 조롱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참말로 한심할 사, 영감땡감이다.

 

박스는 다른 박스들과 뒤섞여 현관 복도에 쟁여진다. 영감땡감도 기꺼이 현관 복도에 껴묻어 앉는다. 어디 감히 한데로 나앉으라는 말이냐고 추상 같던 영감땡감이 아니다. 파카 괴춤에 손을 찔러 넣고 너무도 순한 양처럼 앉아 있다.   

짐이 내려진다. 덩치 큰 짐 말고는 뭐가 뭔지 모르게 뒤섞여 내려진다. 박스를 지키고 앉아있던 영감땡감은 딸년 차에 올라타 있다. 당신 차라면 박스 두 개는 당신 차에 따로 싣고 가자 했을 것을 아무 말도 못하고 몸만 얻어 탔다.

 

영감 할망구 되어 남의 집 전세로 전전하려니 기분도 찹찹하고 인부들 보기도 창피하다. 좁으나마 지금 집은 그런 대로 쓸 만했다. 새로 이사갈 집은 더 비좁고 허름하다. 아직 집을 보지 못한 영감땡감은 가슴이 부풀어 있지만 곧 실망하게 될 거다. 박스 두 개는 영감땡감 품에 안고 살거나 밑자리에 깔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해도 영감땡감은 유구무언으로 할 말이 없을 게다. 이 모든 게 장하게도 영감땡감 덕분이 아니겠는가.

 

영감땡감이 뇌물수수죄로 옥살이를 하기 전 지방자치제 선거 공천에 나섰다. 시장은 어림없고 군수 자리였다. 군수 자리 하나를 놓고 영감땡감을 포함해 도합 여섯이 덤볐다. 옆 지역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박가, 공과대 학장 출신 정가, 로터리클럽 회장 윤가, 시의원 하는 심가, 시민단체 출신 홍가. 누가 봐도 영감땡감이 우세하다고 점쳐졌다.

 

입바른 사람들은 공천은 떼 논 당상이라 여겼다. 양 의원 지역구이자 영감땡감이 평생 공들여 놓은 지역이었다. 공천 신청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호형호제하던 오늘의 동지들이 적으로 샅샅이 흩어졌다. 자리 하나를 놓고 피 말리고 피 터지는 싸움이 펼쳐졌다. 은밀하게 주고받았던 정치자금이 공공연히 까발려졌다. 내밀하게 오갔던 얘기들이 소문을 달고 날았다.

 

누구는 어디다 어떻게 투기를 했네 마네.

 

누구는 정치 자금을 얼마나 빼돌렸네 마네.

 

누구는 어디를 얼마만큼 봐주고 얼마만큼 받아 처먹었네 마네.

 

누구 마누라는 둘째고 본 마누라는 어디다 처박아뒀네 마네.

 

나중에는 누구는 죽일 놈이네, 누구도 죽일 놈이네, 누구도 죽일 놈이네…… 살릴 놈은 하나도 없고 모조리 죽일 놈이 되어갔다.

 

그 와중에 살 판 난 사람은 단연 양 의원이었다. 자신의 심복이라고 자청하던 자들의 비리를 낱낱이 챙겨 들고 앉아 충성도를 시험하며 공천을 줄 듯 말 듯 뺑뺑이를 돌렸다.

 

떼 논 당상이라던 군수 자리가 영감땡감에게 쉽사리 쥐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영감땡감이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다. 영감땡감이 지역구 건설업체 사장에게서 받아 챙긴 정치자금이 첫번째 문제로 불거졌다. 건설업체 사장이 공과대 학장 출신 정가와 시의원 심가의 사주를 받아 양 의원에게 직접 민원을 호소하였다. 양 의원과 7대 3 혹은 8대 2로, 영감땡감은 심부름이나 해주고 겨우 떡고물 정도만 챙겼음에도 양 의원은 일절 모르쇠로 일관했다. 다음날 아침 바로 영감땡감이 물먹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그 다음날로 여기저기서 영감땡감의 비리를 고발하는 고발장이 접수되는데 겁이 날 정도였다. 세상 인심이라는 게 그처럼 변덕스럽고 야박한 것임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영감땡감도 그냥 앉아 당할 수만은 없어 급기야 포문을 열었다. 건설 하청업체 사장을 매수해 정가를 덕망 있는 대학교수가 아닌 건설현장 뒷배나 봐주고 뒷돈 챙기기에 급급한 파렴치한으로 즉각 몰아부쳤다. 로터리클럽 회장이자 택시사업을 하는 윤가는 깡패들을 어용노조 기사로 채용해 합법노조를 단칼에 작살낸 악덕 고용주로 몰아세웠다. 공천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호텔 사장 박가는 세금포탈 혐의로 고발했으나 되려 명예훼손혐의로 역고발당했다. 아쉽게도 그 자는 소문은 무성했으나 양 의원과 항상 직접 대좌를 해 영감땡감 손에 이거다 하고 잡힌 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자는 아들, 사위, 사돈이 법조계에 포진해 있는 법조인 가족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두 패로 갈렸다.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데 이왕이면 아는 놈, 팔이 안으로 굽는 놈을 뽑아주자는 패와 집안이고 재산이고 빵빵한 놈이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패로 갈렸다.

 

다른 후보들은 일찌감치 탈락시키고 영감땡감과 호텔 사장 박가를 두고서 지구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양 의원은 둘을 경쟁시키며 동시에 둘 다 소모시키는 소모전을 썼다. 얻어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만들어 자기 수하에 묶어두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차 뇌물 수수혐의로 양 의원이 검찰에 불려 들어갔다. 곧이어 불법 선거 자금 수수혐의도 추가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역구가 발칵 뒤집혔다. 영감땡감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는 사이 법조인 가족 박가가 서울을 오르내렸다.

 

어느 날 양 의원 처가 은밀히 다녀갔다. 이번에 양 의원 대신 들어갔다 나오면 차기 군수자리는 확실히 보장해주겠다는 거래였다. 영감땡감이 망설이자 양 의원 처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뇌물은 양 의원이 받지 않고 부위원장이 받은 거 아니냐고 앙앙거렸다.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갔든 액면 그대로의 사실만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다른 비리도 폭로할 수 있다고 양 의원 처는 협박했다. 차기가 아닌 차차기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거래였다. 양 의원 처가 거래 끝에 주고 간, 박가 놈이 양 의원에게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것 같다는 은밀한 정보는 영감땡감을 더 절망시켰다. 병도 주고 약도 줄 수 있는 뒷심이란 정치판에서 매우 효용가치가 큰 비장의 무기가 아니겠는가.

 

영감땡감 옥살이 동안 뒤를 봐줄 줄 알았던 지역구에선 첫 공판 때만 코빼기를 내비치다 이내 말았다. 양 의원도 비서관을 시켜 두어 번 면회를 오고선 나 몰라라 했다. 그 때 그 떡고물은 대관절 어디다 다 발라놨는지 재산은 석회가루 부서지듯 부서지고 영감땡감은 다리뼈가 괴사되는 병을 얻어 출감했다. 파렴치범으로 몰린 영감땡감에게 양 의원이 보장한 차기란 그림의 떡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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