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4) 딸년

딸년

 

벌써 점심나절이 지나 있었다. 옛 집에서 실랑이질을 벌인 게 인부들 말대로 아무 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었다. 새 집으로 짐을 올리는 일은 점심을 먹은 뒤라야 될 것 같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박스를 찾은 영감땡감은 입맛이 동해 아까부터 밥 타령이다.

 

“이사하는 날은 자장면도 맛있고 짬뽕도 맛있어.”

아침을 헛손질하다 말았으니 시장할 만도 했다. 그렇다고 체신머리 없이 딸년 앞에서 밥, 밥 해대는 것은 우세스럽다. 어떤 극심한 고통일지라도 제 안에 두고 잘 내색하지 않는 딸년이다 보니 자식이라도 어쩔 땐 어렵다. 사위 일만 해도 그렇다. 그토록 마음고생이 자심하면서도 제 그늘 아래에다만 두었다. 요새 젊은것들 같으면 진즉 친정으로 달려와 사네 못 사네 울고불고 난리쳤을 것이다.

 

딸년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해 반장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반장의 권한은 막강했다. 칠판에 떠든 아이들 이름 적기, 숙제 검사하기, 자율학습 시키기, 청소 감독, 심지어는 체벌까지, 거의 담임 선생의 권한을 대행했다.

 

3월의 어느 하루 청소 시간이었다. 반장에게 청소 감독을 지시해 놓고 담임 선생은 교무실에 가고 없었다. 청소가 끝나갈 무렵 담임 선생이 돌아와 보니 청소 감독이나 하고 있어야 할 반장이 찬물에 걸레 빨아 몸소 물걸레질을 치고 있었다. 정작 물걸레질을 치고 있어야 할  아이들은 편안히 책상 줄이나 맞추고 있으니 담임 선생이 기겁했다. 그 즉시 반장을 불러 호통을 쳤다.

 

“저런 청소는 인마 네가 하는 게 아냐. 애들 시켜. 너는 감독이나 하고 다니고.”

그러자 딸년이 대답했다.

“물 청소를 하는 애들은 가난한 애들뿐인데요.”

“그러든 말든 너는 청소 감독만 하란 말이다.”

 

딸년은 담임 선생 말을 듣지 않았다. 꽃 화분을 사온 애들은 유리창이나 털고 다니고 도시락도 변변히 못 싸오는 애들만 꼭 물 청소를 한다고 불평했다.

그 애들은 몸도 삐짝 마르고 얼굴에 버짐도 폈는데 어떻게 힘든 일을 시키느냐.

 

담임 선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반장 권한으로 가장 쉬운 일인 책상 줄 맞추는 데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학급회의에서 물 청소는 반 아이들이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하는 걸로 정해버렸다. 그런 딸년에게 담임 선생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1학기가 지나고 딸년은 전격적으로 반장직을 사퇴해버렸다. 이후로 두 번 다시 반장직을 맡지 않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딸년이 그 어린 나이에 또 하나 거부했던 게 있다. 기장증 제도라는 것이었다. 일종의 상장과 같은 것인데 옷섶에다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었다. 장려상은 녹색 기장, 우수상은 청색 기장, 최우수상은 황색 기장을 주어 이름표 밑에 호치키스로 줄줄이 이어 박아 옷섶에 매달고 다니게 했다.

 

그 와중에 기장을 너무 많이 받은 아이들이 생겨나고 옷섶을 온통 도배할 지경에 이르자 학교에서는 변형을 꾀했다. 녹색 기장이 세 개 모이면 청색 기장 하나로, 같은 방법으로 청색 기장은 황색으로 바꿔주며 아이들의 자부심을 북돋아줬다.

 

등하교 길에 아이들은 서로를 엿보며 시샘하고 반목하며 패가 갈렸다. 그것 때문에 학부모들이고 애들이고 난리가 났다. 치맛바람이 드세어지고 아이들 새에 간극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졌다. 주렁주렁 늘어 찬 아이와 초록이나 청색 두서너 개 달고 다니는 아이, 이것도 저것도 전혀 없는 아이. 그것은 아이들이 내는 육성회비와도 정비례했다. 오백 원을 내는 아이, 삼백 원을 내는 아이, 백 원 혹은 무상으로 다니는 아이.

 

아이들은 등하교 길은 물론이거니와 집에 돌아와서도 기장증을 찬 채 뛰어 놀았다. 학부모들은 기장의 수로 아이들의 친구를 정했다. 기장이 없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열패감을 맛보았고 눈빛이 차가워져갔다.

 

그 아이들과 친구하고 싶었던 딸년은 제 이름표 밑에 달려있던 것들을 오드득 쥐어뜯어 버렸다. 호치키스 박음질 자국으로 곰보딱지가 된 이름표만을 덜렁거리며 딸년은 그들이 사는 천변으로 멀리 걸어가 친구해 놀았다.    

 

인부들은 밥보다도 짐부터 올려야 한다고 고개를 젓는다. 고가사다리차를 쓰기로 계약한 시간이 있어 시간 내에 어서 쓰고 보내야 한다고 정신없이 서둔다.

 

자발맞게 보채대던 영감땡감도 기다리고 아침밥을 거르고 여태 빈속일 딸년도 기다린다. 아버지 모시고 먼저 가서 한술 뜨고 와라 해도 딸년은 괜찮다며 마다 한다. 허기는 인부들이 더할 텐데 식구들끼리만 먼저 배를 채우러 간다는 게 미안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낡고 닳은 새 집은 건물 연치가 무려 삼십 년이 넘었다. 바닥에 난방 코일이 안 깔려 있어 코딱지만 한 라디에이터를 난방으로 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아파트를 처음으로 시범 삼아 지으면서 서양식 침대 문화와 소파 문화와 슬리퍼 문화를 흉내내 지어 그렇다. 여름에야 별 상관이 없겠지만 겨울에는 얼어죽을 판이다.

 

건물 연치가 오래되다 보니 나무들이 좋다. 선 굵은 사내처럼 크고 굵고 실하다. 나뭇가지들도 듬직하니 봄 되고 여름 되어 잎새 무성해지면 운치가 그만일 성싶다. 계약 전에도 오늘처럼 복도에 서서 나무들만 보다 간 기억이 난다.

무엇에고 마음 둘 데 있으면 또 살아지려니……

 

이제 짐은 얼추 다 올라왔다. 올리는 데만 급급해 짐들이 아무렇게나 쟁여져 있다. 박스 짐들은 뭐가 뭔지 하나도 구별 못하겠다.  

 

자장, 짬뽕으로 통일시켜 배달된 밥들을 바닥에 펼쳐놓고 인부들과 함께 구부정히 둘러앉아 먹는다. 영감땡감은 자기 밥을 들고 틈새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인부들하고의 겸상을 피해 달아났다.

 

인부들 앞서 식사를 끝낸 영감땡감이 이 방 저 방을 훑고 다닌다. 아무렇게나 쟁여져 있던 짐들이 영감땡감 발길에 채여 포대자루 쓰러지듯 넘어진다. 인부들 나름으로 경계지어 놨던 것들이 헝클어진다. 인부들이 멀리서 보고 질겁한다.

 

“아저씨, 뭐 하시는 겁니까?”

영감땡감은 일언반구 대꾸조차 없다. 더욱 거칠게 박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인부들이 서둘러 담뱃불을 비벼 끄고 들어왔다.

 

“뭐 하시는 거예요?”

 

“아, 보면 몰라?”

 

“뭘 찾으시는데요?”

아까 그것, 내 것.”

 

순간 거실 인부가 아! 했지만 가늠이 안 잡히는 눈치다. 동료들에게 “아까, 저쪽 집에서 복도에 따로 있던 것,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묻는다. 

 

“뭔데 그래?”

 

인부들이 영문을 몰라 둘레둘레 한다.

 

영감땡감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까 짐 실을 때 보니까 책상 밑에다 집어넣더니만.”

 

영감땡감이 책상 밑을 들춰 보려하지만 어림없다. 책상은 농짝 건너 이불짐 건너 한 귀퉁이에 처박혀져 있다.

 

거실 인부가 영감땡감을 달랜다.

 

“아저씨, 그거 그렇게 급한 거 아니잖아요. 제가 곧 찾아드릴게요.”

 

영감땡감이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무조건 그것부터 찾아내라고 억지를 썼다. 인부들이 모두 눈살을 찌푸린다.

 

나이든 인부가 신경질을 부리며 인부들을 질책했다.

 

“뭐야, 뭔데 그래? 중요한 거야? 중요한 거면 미리 따로 챙겼어야지. 그 책상 아까 어느 방에서 나왔어?”

 

“책상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건데요. 베란다 창고에 그냥 쟁여져 있던 거였어요.”

 

“하여간 누가 챙기긴 챙겼을 거 아냐?” 하는데 아무도 챙겼다는 사람이 없다. 이사가 늦어져 사다리차 기사가 신경질을 부리는 통에 내리고 올리기에만 급급했다고 발명한다.

 

나이든 인부가 이번에는 영감땡감에게 힐책한다.

 

“그렇게 급하고 중요한 거였으면 미리 말씀하셨어야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세 찾아드릴 테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생긴 박슨 줄 아세요?”

 

“보면 알 것 같은데……”

 

자신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영감땡감 얼굴이 시무룩하다.

 

“지켜보고 섰다 나오면 바로 말씀하세요.” 하니까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한쪽으로 비껴 선다.

 

그러나 정작 인부들이 덩어리 큰 짐부터 자리 찾아 들고나자 다시 절룩절룩 박스 사이를 뒤집고 다닌다. 가슴 높이께로 번쩍 들려진 농짝 모서리에 얼굴이 좌악 긁힌다. 핏방울이 옷 솔기 이음땀처럼 도도도 맺힌다. 그 새를 못 참아 얼굴에 ꡐ기스ꡑ를 내니 절룩이는 다리에, 싹둑 잘라진 머리에 밉살스럽다.

 

덕분에 박스를 더 일찍 찾기는 찾았다. 피까지 맺힌 극성맞은 영감땡감을 보고 인부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그 박스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결국에는 찾아낸 것이다. 영감땡감이 작은방으로 옮겨다 달라니 옮겨다가도 줬다. 마저 풀러까지 주려는 것을 영감땡감이 손을 흔들어 막는다. 그저 놓고만 가라고, 나중에 와서 보라고 손을 내젓는다.

 

박스 개봉을 앞두고 새삼 무슨 감회에나 젖는 듯 영감땡감 눈이 붉어진다. 거친 비질이나 한 번 스쳤을 뿐, 걸레질도 안 친 방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어느새 목장갑도 하나 얻어 끼고 임하는 자세가 참으로 비장하다. 그 아픈 다리까지 억지로 반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판에 딸년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딸년은 벼르고 벼르던 집안 어른 한 분을 만났다. 영감땡감에게 당숙이 되는 어른이었다. 우연히 만난 건 아니고 서로간에 한번 만나고자 염을 해오다가 하루 날을 잡은 것이다. 올해 여든 줄에 이르신 당숙어른이 먼저 와 자리잡고 계시다 딸년이 들어서자 벌떡 일어서 맞으셨다.

 

“니가 은정이냐?”

 

성큼 손부터 잡아들이는 당숙어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예, 할아버지. 제가 은정이입니다.”

 

딸년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들은 눈물 고인 눈으로 웃음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느라 앉을 줄을 몰랐다.

 

“아이고 아재, 어서 자리하세요.” 해서야 서로들 파드득 깨어나며 아쉽게 손을 놓고 자리잡아 앉았다.

 

“어쩌다 스쳐 지나가는 말씀으로 듣기는 했어도 뵙기는 처음인데, 할아버지, 제 절부터 받으셔야지요.” 

 

당숙어른의 만류를 무릅쓰고 딸년은 절부터 곱게 한 자리 올렸다. 당숙어른이 허리 숙여 반절로 답례하였다. 

나도 니 말은 가끔씩 들었다.”

 

“예, 할아버지.”

 

그리고 또 그들은 한동안 웃음지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오래도록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이들이 만나 정회를 푸는 것 같은 묘한 신비감이 일었다. 

 

당숙어른에게 백세주 한잔을 올리려는 순간 당숙어른이 술병을 달라하였다.

 

“질부는 가만 있으소. 오늘은 내가 먼저 은정이한테 한 잔 줄라네.” 

 

한사코 먼저 올리겠다는 딸년의 청을 물리치고 딸년에게 먼저 한잔 가득 부어주었다. 

 

“질부, 자네도 한잔 받으소. 야 키우느라고 애썼네. 고맙네.” 

 

술잔을 마주치며 그 둘은 또 마주보고 하하, 웃었다.

 

당숙어른과 딸년, 그들의 관계가 뭔가. 이 세상에서 단 한번도 안 마주치고 지나갈 연일 수도 있었다. 당시 좌익활동을 하던 당숙어른이 장성군 당위원장과 함께 사형을 당하셨다면  만날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런 그들이 서로를 들어 알고 있다며 보고 또 보고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너를 보니 니 할아버지가 헛고생하시진 않으셨구나!”

 

당숙어른의 뜬금없는 말에 딸년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예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니 할아버지, 몰라?”

 

설핏 말뜻을 모르겠는지 딸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렸을 때 뵙기는 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너 그럼, 시골 지석, 니 할아버지네 집은 기억나냐?”

 

“기억나지요. 나길 거기서 났는데요. 초등학생 때 방학이면 더러 놀러도 가고.”

 

딸년이 회상했다.

 

할아버지 집 뒤란엔 딸기와 먹감나무와 대나무 숲이 우거졌지요. 비가 흠씬 내리고 난 다음날이면 죽순이 우수수 자라 있었어요. 증조할머니는 곧잘 죽순을 따다 집 앞 방죽에서 잡은 우렁이를 넣고 무쳐주셨어요. 어린 입에도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생각만으로도 지금도 침이 괴어요. 대나무 숲엔 아주 오래된 개구멍이 하나 있었어요. 멀쩡한 대문 놔두고 늘 그 개구멍을 뚫고 나와 집 뒤 목화밭 두렁을 타고 올라 야산을 뛰어 다녔지요. 야산을 타고 넘어가면 고창과 장성, 무장, 영광으로 닿는 신작로 길이 나온다 했어요. 그 야산엔 키가 훤칠한 소나무들이 많았어요. 바람이 불 적이면 나뭇가지들이 휘잉 휘잉, 바람을 타는데 소리가 마치 하늘 끝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방학 때 놀러 가면 이따금 할아버지 손을 잡고 그 야산을 오르내렸어요. 그 야산의 소나무들처럼 할아버지의 키가 훤칠하셨지요. 그런데 참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어요. 늘 어딘가, 뭔가를 아련히 내다보시던 기억이 나네요.

 

딸년의 회상을 묵묵히 듣고 있던 당숙어른이 단숨에 말했다. 

 

“그 집이 육이 오 나기 전 전북 도당들의 아지트였다.”

 

“예에?”

 

“당시 니 할아버지는 전북 도당들과 교류하고 있었어.”

 

“예?”

 

딸년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르고 있었나 보구나. 고창, 영광, 무장, 장성, 함평 군당 위원장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지.”  

 

“그럼 당시, 저희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일본 유학을 다녀오셔서 좌익이 되신 건가요?”  

 

“아니. 니 할아버지는 천상 선비셨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인정이 많으셨어.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날 때면 니 할아버지는 동네사람들한테 곳간을 풀었다. 굶어죽는 사람 없게 하라고. 서운하게 듣지 마라, 지금의 니 아비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셨다.”   

 

“아, 할아버지!”

 

딸년 눈에 눈물이 꽉 차더니 뚝뚝 떨어졌다.

 

“그런 줄 몰랐어요. 전혀 몰랐어요. 전혀. 아버지가 할아버지 때문에 집안 망했다고 해서 그 좋은 인물에 계집질이나 하고 다닌 한량이신 줄만 알았어요. 여태.”

 

당숙어른도 눈물을 글썽였다.    

 

그날 딸년은 당숙어른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벅찬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리고 연신 중얼거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아버지라……

 

아무 것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겠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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