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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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립트 : Script. 방송대본. 게임제작에서는 게임 안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어로 바꾼 대본을 말한다. ※스크립터 : 스크립트를 짜는 사람.)

1.


입력 “안녕하세요.”

출력 “안녕하세요.”

 

“23년 만이로군. 이곳에서 외지인을 보는 건.”

남자가 말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큰 사내였다. 검은 피부에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었다. 검은 물감으로 눈 주위를 칠하고 뺨에는 두 줄의 문양을 내었고, 머리는 땋아 뒤로 묶었고 검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손으로 무두질해서 만든 듯한 가죽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느질이 꼼꼼했고 문양이 섬세했다. 등에는 활과 활통을 차고, 허리에는 단검과 장검을 양 옆에 하나씩 차고 있었다.

“그렇게 늙어 보이지 않는데요.”

여행자가 말했다.

“외모는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어. 자네도 내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자네에게 동전이라도 몇 개 던져주고 신경을 껐을 거야.”

여행자는 왜소한 체격에 갸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검댕으로 얼룩덜룩했고, 머리는 까치집처럼 덥수룩했다. 맨발이었고, 낡은 거적에 머리와 팔이 들어갈 구멍만 내어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1레벨이라서요. 직업이 ‘거지’더군요. 구걸기술만 있어요. 주인이 쫓아내려고 해서 들어오는 데도 애를 먹었어요. 양복이라도 입고 올 생각이었는데, 그 비슷한 옷이라도 입으려면 20레벨까지 올려야 하더군요.”

“무슨 소리지?”

“아아, 미안해요. 다들 선생님께 게임용어를 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선생님은 아주 완고한 롤 플레이어( ※역할에 몰입하여 게임을 하는 사람)고, 세계관에 맞지 않는 용어를 쓰는 사람과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주점은 낡은 목조 건물이었고, 천장에 매달린 등불이 그네를 타며 어둑어둑한 내부에 주홍 색채를 입히고 있었다.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구석에 서서 현을 뜯는 악사, 연신 맥주잔을 부딪치는 세 술꾼과 접시를 닦는 주인, 구석에 서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를 하나하나 비추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악사는 하염없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세 술꾼은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술을 부딪치며, 주인은 반짝거리는 접시를 하염없이 닦고, 입김을 불고, 안경을 들었다 놓는다. 모두 서로의 색채를 해치지 않기 위해 미리 약속을 하고, 가장 적합한 색깔과 분위기의 옷을 입고 와 앉아 있는 듯하다. 공기 중에도 물감이 섞여 있어, 같은 색조로 사람들의 몸 위에 한 번에 붓질을 한 것 같다.

주인이 거칠게 맥주잔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것만 먹고 꺼져. 남의 동네에서 물 흐리지 말고.”

여행자는 씩 웃었다.

“구걸기술이 성공했네요. 열 번에 한 번쯤은 되는 것 같아요. 레벨이 낮으니까 사람들도 불친절하네요.”

사냥꾼은 대답하지 않았다.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켠 여행자는 으웩 하고 토하는 얼굴을 했다.

“쓴 커피 맛이 나네요. 여기 음식들은 다 쓴 맛이에요. 미각 구현이 엉망이라니까요. 하긴, 엄청 옛날 게임이니까요. 기술이 좋지 않았죠. 당시에는…….”

여행자는 눈을 감고 잔을 손으로 쓱쓱 쓸었다.

“촉각 현도 섬세하지 않아요. 만지는 것만으로는 나무인지 철인지 종이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아요. 요즘엔 좀 더 잘 만들어요……. 맥주잔의 결도 자세히 보면 그냥 그림이에요. 이거 깨지지도 않겠죠.”

세 술꾼이 잔을 부딪치며 한바탕 웃었다. 그 중 한 명이 바 한쪽에 기대 서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