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합체 리바이어던(Levi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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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신합체 리바이어던(Leviathan)

 

 

 

"개체이면서 개체가 아니고 집단이면서도 개별적인 자아를 희생하지 않는 독특한 집단 무의식 상태에서, 하나로 합체된 로봇들의 신경계가 개발자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특이한 방식으로 하나의 의식으로 재조합되는 거죠. 네. 물론 아까 말한 것처럼 증명은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냥 현장에서 조종사들이 느끼는 느낌은 딱 그런 거라는 걸 말씀드리려고 한 이야기예요. "

 배명훈

 

(음성변조)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그 사람들도 몰랐을 거예요. 아시잖아요. 이쪽 엔지니어들이 예전부터 변신이나 합체 이런 거에 관심 많은 거. 왜 궤도연합군 소속 머신들이 변신을 하고 합체를 하기 시작했는지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이 들으면 좀 어이없는 질문이거든요. 사실 그렇잖아요. 두 발로 걷는 로봇 병기라는 거, 전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아무 필요도 없는데 엔지니어들은 그거 못 만들어서 안달이었잖아요. 조종사들이요? 그쪽도 그래요. 똑같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요. 엔지니어 애들이나 조종사 애들이나 그냥 원래부터 로봇은 두 발로 걸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두 발 달린 로봇만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걸 분석하고 연구하고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장에서는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거지.

그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연합군 병기창 엔지니어들이 꼭 그렇게까지 변신 기능이 있는 머신을 출시하려고 애를 썼어야 했나 하는 건 현장에 있어본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문제 같아요.

잠깐만요. 그런데 이거 음성변조는 확실히 해주시는 거죠? 누가 알아보면 큰일 나는데. 허가 안 받고 이런 거 하는 줄 알면 위에서 난리가 나거든요.

아무튼, 변신하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지나고 나니까 병기창 엔지니어 애들 쪽에서 합체 이야기가 슬슬 흘러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게 바로 유행은 안 됐죠. 왜냐하면 그 전에도 그런 소문이 퍼진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그런데 걔들 입장에서도 합체하는 건 쉬운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왜냐고요? 그게, 만날 똑같아요. 문제는 달라도 답은 똑같은 게, 신경공학이 따라 주느냐 아니냐가 관건이거든요. 변신기술 유행할 때도 사람 모양 기체에 대응하게 돼 있는 신경조직을 변신한 다음 형태에 대응하게 재배열하는 게 제일 힘든 부분인데, 합체는 그것보다 더 어렵죠. 완전히 분리돼 있던 신경계인데 그걸 하나로 연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거의 사랑이거든요. 하하하하하(깔깔거리는 웃음).

그래서 그게, 솔직히 쉬운 문제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때부터 뭔가 쓸 만한 애들이 나오기는 했어요. 제일 유명한 게 제이-엑스라는 기계였는데, 이때부터 합체가 됐어요. 제이 알파랑 제이 베타가 합체해서 한 개가 되는 식이었는데, 솔직히 그 두 개를 따로 놓고 보면 완전 웃겼거든요. 알파는 허리 위만 있고 베타는 허리 아래만 있었으니까요. 합체시키면 다른 것보다 딱 두 배쯤 큰 로봇이었는데 그 두 개를 따로 출격시켜 놓으면 완전 바보였죠. 관제사들은 완전 어이가 없어서 막, 그건 때려 죽여도 합체 로봇이 아니라 분리 로봇이라고 그랬거든요.

근데 엔지니어들은 또 지들 자존심 때문에, 지구가 두 쪽이 나도 그건 합체 로봇이라고 우기는 거예요. 하지만 솔직히 관제사들 말이 맞잖아요. 그게 무슨 합체로봇이에요. 그냥 반으로 잘라도 안 죽는 로봇이지. 근데 더 웃기는 게 뭔지 아세요? 궤도연합군 사령부에서 그 어이없는 기체를 차세대 주력 기종으로 개발하는 계획에 승인했다는 거였어요. 저는 완전 사령관이 미친 줄 알았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 같은 후방 기지에서는 바르다비르디 종족이나 마무나마루니 같은 대형 외계 종족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전방 쪽에서 그런 큰 놈들이 출현하는 바람에 궤도연합군 쪽에서도 기체를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합체로봇 개발 계획을 승인한 거죠. 아예 처음부터 큰 로봇을 만들지, 작은 걸 만들어서 굳이 합체를 시켜야 할 이유가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건 좀 아니었어요. 외계 지형이라는 게 워낙 방대하다 보니까 작은 기체가 필요할 때도 있고 큰 게 필요할 때도 있는데 작은 거랑 큰 걸 필요한 숫자만큼 다 만들어 두려면 돈이 두 배로 들잖아요.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는 걸 만들어 두는 게 좀 더 수지가 맞겠죠.

 

그래서 나온 게 제이 브이였는데, 솔직히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날 우리 중대장이 저한테 진지한 얼굴로 이걸 타라 그러는데, 아, 진짜 난감하더라고요. 저는 하반신 쪽을 조종했는데요, 생각해 보세요. 하반신밖에 없는 로봇에 조종석이라는 게 들어갈 데라고는 딱 한군데밖에 없잖아요. 네. 딱 방광쯤이요. 그게 얼마나 싫던지. 갓 스물밖에 안 된 여자가 남의 방광에 앉아 있고 싶었겠어요? 상반신에 태워 달라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때 그 상반신 언니가 우리 중대장이 꽤 애지중지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래도 그 제이 브이라는 물건이, 좀 답답해 보이기는 해도 실전에 들어가니까 웬만큼 무기 구실은 하더라고요. 사소한 결함이 있기는 했는데. 음, 사실은 싸우다가 가끔 허리가 부러지곤 했거든요. (웃음) 그러면 또 금방 붙여서 싸우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싸우다가 허리가 분리되면 진짜 큰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우리 조종사들이야 좀 당황하면 그만이었지만 저쪽 외계인들한테는 그게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황당한 쪽보다는 당황한 쪽이 그래도 좀 나은지 전투 결과는 꽤 좋은 편이었어요. 현장 일이라는 게 필요한 만큼 다 갖추고 싸우는 게 아니니까 일단 결과가 좋으면 아무도 뭐라고 못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완전히 인간 형태를 갖춘 로봇 두 대가 합체해서 다시 인간 형태를 갖춘 대형 로봇 한 대로 변신하는 식의 기체는 한참 뒤에나 나왔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참 곤란했던 게, 이때부터 합체한 로봇은 조종석도 한 군데로 모이게 됐거든요. 남들은 그게 뭐 어떠냐고 막 그러는데, 그거 때문에 조종사들이랑 변신합체 디자이너들이 참 많이도 싸웠어요.

쉽게 말해서 조종사들은, 합체한 뒤에도 각방을 달라는 거였거든요. 근데 디자이너들한테는 씨알도 안 먹혔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는 공간을 최대한 줄여야 변신 메커니즘을 디자인하기가 쉬워지잖아요. 어쩌겠어요. 명색이 군인인데 사령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죠. 그래서 다들 뜻하지 않게 룸메이트가 생겨버린 거예요.

솔직히 그 전술 자체는 효과가 있었어요. 분리해서 따로 작전을 수행하기도 하고 합체해서 화력을 집중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서 대형 외계인들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매뉴얼대로만 하면 대충은 이길 수 있는 분위기인데다가, 경력이 쌓일수록 임기응변 능력까지 다들 웬만한 수준 이상으로 향상되면서 전쟁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게 됐어요.

게다가 그 사랑이라는 게요. 완전히 독립된 기체들의 신경계를 하나로 연결할 때 생기는 묘한 상승작용 때문에 기체 성능이 세 배 이상으로 향상되는 효과가 있었거든요. 직접 기체를 조종하는 조종사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안 부르면 도대체 뭐라고 부르냐고들 했는데, 엔지니어들은 그렇게 안 불렀어요. 나치오 시너지(Natio Synergy)라고, 그게 걔들이 붙인 이름이었는데, 조종사들은 그 뒤에도 쭉 그냥 사랑이라고 불렀어요. 어차피 엔지니어들도 그런 현상이 정확히 왜 생기는지 잘 이해를 못했거든요. 그냥 1 더하기 1이 2보다 커진다는 뜻으로 시너지라고 부른 거죠.

 

그런데 전쟁이 쉬워지다 보니 슬슬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거예요. 룸메이트 문제요.

기혼이세요? 그럼 아시겠네요. 다른 사람이랑 한 방 쓴다는 게, 진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끼리도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 일이잖아요. 그냥 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다가도 같은 방에서 살아보면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그런 건데. 그러니 조종사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요. 생각지도 않던 룸메이트가 생기다니.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는 진짜 말도 아니었어요.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잘 안 맞는 사람끼리는 평생 원수로 남은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로봇을 합체시켜 놔도, 왼쪽 반이랑 오른쪽 반이 다 따로 노는 거 있죠.

 저요? 저라고 왜 안 그랬겠어요? 이게 또 참 난처한 게, 한 번 정해진 룸메이트가 1년이고 2년이고 그대로 가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작전 상황에 따라서 어떤 파트너하고 합체해야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참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났죠. 어땠냐면, 작전 중에 담배 피우는 인간들도 있었는데요, 그런 기체랑 합치는 순간에는 진짜 괴로웠죠. 조종석에 냄새가 잔뜩 배서 빠져나가지를 않는 거예요. 임무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면 머리카락에 냄새가 막 배서 사람들이 제가 담배 피운 걸로 오해하는 것 같은 느낌 있죠. 그렇다고 저쪽에서는 묻지도 않는데 제가 먼저 나서서 저 담배 안 피웠어요, 그럴 수는 없잖아요.

특히 남자 조종사들이랑 같이 임무를 해야 될 때는 곤란한 경우가 많았어요. 임무 전에 하는 브리핑 시간이 여자 조종사들한테는 거의 화장하는 시간이었으니까 말 다 했죠.

그래서인지 두 대씩 합체하는 방식은 사령부에서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얼마 안 가서 세 대씩 합체하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그러면 또 둘이서 하나를 왕따시키는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꼭 그래요. 사람들이 막, 본성이 꾸질꾸질해서 그런가, 셋을 갖다 놓으면 꼭 하나가 바보가 돼요. 넷을 같이 몰아넣으면 둘씩 편 갈라서 싸우고. 그래서 결국 다섯 대가 합체하는 방식이 표준이 된 거예요.

나치오 시너지라는 게, 분명히 두 대가 합체한 것보다 세 대가 합체했을 때 더 효과가 크고 숫자가 많아질수록 더 나아졌으니까 사령부에서는 아마 일곱 대쯤 합체시키고 싶었을 텐데, 그러면 조종이 복잡해지거든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큰 거 한 대를 만들 수도 없었던 게, 그래 가지고는 나치오 시너지를 얻을 수 없었으니까요. 무조건 처음에는 독립돼 있던 신경체계들을 합치는 방식으로 가야 됐어요. 개체를 희생시키면 안 된다는 거였는데. 그래서 그냥 다섯 대 선에서 타협을 한 거죠.

하지만 일곱 명이 로봇 한 대를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니, 책임 순위가 정해져 있다고는 해도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조종은 한 명이 하고 나머지가 한마디씩 거들기만 해도 그 로봇은 결국 자폭해 버릴지도 몰라요. 그럼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조종사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전장이라는 데가 좀 그랬어요. 사령부에서 생각하는 거랑은 전혀 다르죠.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호기심이었어요. 그냥 이렇게도 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겠죠. 엔지니어들도 모르고 사령부에서도 몰랐을 거예요.

조종사들이요? 당연히 모르죠. 엔지니어가 모르는 걸 조종사가 어떻게 알겠어요. (깔깔대는 웃음)

 

근데 진짜 진짜 웃기는 게 뭔지 아세요? 처음 합체로봇이 나온 지 5년도 안 돼서 진짜로 그게 등장한 거였어요. 로봇 일곱 대가 합체해서 만들어진 거대 로봇이요. 하긴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걸었으니까요.

기간토기구타라는 외계 종족이었는데, 그때까지 전장에 출현한 적들 중에서 제일 큰 놈들이었어요. 숫자가 많지는 않았는데, 제압하기가 영 까다로웠죠. 다섯 대 합체하는 것 가지고는 약간 버거울 정도였는데, 그해 가을부터는 그놈들이 전장에 쫙 퍼지기 시작했어요. 잘못하면 전선 전체가 뒤로 밀릴 판이었거든요.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합치고 볼 수밖에.

그 일곱 대 짜리 로봇이, 이름도 레인보우 매드라고, 아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물건이었거든요. 합체하기 전에 합체에 적합한 부위로 변신을 해야 하는데 그때 기계장치 일부가 조종석 안쪽으로 쓱 돌출해 들어오는 게 아주 기분이 나빴어요. 조종석 배치도 주로 조종하는 애가 약간 앞에 앉고 나머지 여섯 명은 뒤쪽에 앉게 돼 있었는데, 그러면 뒤에서 조종하는 애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다 보이는 거 있죠. 그래서 결국은 조종을 막내가 맡게 되는 시스템이었어요. 나머지는 그냥 뒤에서 잔소리나 하는 거죠.

그런 식이다 보니까 그나마 잘 돌아간다는 팀에서도 다 문제가 있었어요. 조종사가 일곱이나 되다 보니 최소한 두 명은 남게 되잖아요. 그런데 얘들이 막, 전투가 한창인데도 딴 데 정신이 팔려서 놀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이게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거예요. 솔직히 상황이 아무리 급해도 조종사가 일곱 명까지 필요한 경우는 없었으니까요. 팔다리에 몸통까지 한 명씩 맡아서 조종해도 다섯이면 충분하잖아요. 그럴 일도 없고.

그렇다고 남는 조종사들을 잘라버릴 수도 없는 게, 그래 봬도 우리 로봇들이 아주 섬세한 신경공학 장치로 조종하게 돼 있어서요, 적어도 분리되어 있을 때는 한 대에 하나씩 사람이 꼭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는 사령부에서 차라리 뜨개질이나 하라고 실이랑 바늘까지 주고, 그걸 또 일부러 유행시키고 그랬어요. 저도 목도리 몇 개를 떴는데, 뭐 아무튼.

저기요, 근데 미안하지만 이런 개인 신상은 좀 삭제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음성변조도 꼭 해 주셔야 되고요. 성문분석(聲紋分析) 안 되게 해 주셔야 되는 거 아시죠? 네. 감사합니다. 네.

 

아무튼 그러고는 곧바로 군비경쟁 비슷한 게 시작됐어요. 외계인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거든요. 민간인들한테는 공개된 적 없는 정보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우리가 좀 밀렸어요. 나라모노라미급 초대형 종족들이 나왔거든요. 그 나라모노라미급이라는 이름 자체가 나라모노라미라는 종족에서 나온 건데,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위험했죠. 진짜 아무 예상도 못 하고 있다가 레인보우 매드보다 한 열 배는 큰 놈들이 전장에 나타나니까, 어떻게 해 볼 수가 있어야죠. 전선이 뒤로 쭉 밀렸는데 그걸 보고 궤도연합군 사령부에서도 바짝 긴장을 한 것 같았어요.

 그러고도 한 1년 동안 계속 전선이 뒤로 밀렸는데요, 그때 연합군 병기창에서 급조해낸 로봇들 중에 제일 쓸 만했던 게 바로 그 유명한 100기 합체로봇, 묘비였어요. 원래 실전에 배치할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니고, 말하자면 합체기술 발달사 기념비 같은 거였어요. 100대 합체기종 개발기념으로 출시된 로봇이었거든요. 당연히 공식 명칭이 묘비는 아니었죠. 한때 조종사들 사이에서 그 이름 외우는 게 유행이었는데요, 뭐 이런 거였어요.

“슈퍼 울트라 다이나믹 하이퍼 파워, 네오 그레이트 코스모 마하 제트, 프라임 바이오-티타늄 일렉트로-나노-뉴로 플래티늄, 알케인 소닉 메타피지컬 드라이브, 자이언트 아쿠아 가디언 다이노 메카닉 블레이드, 제로비트 그라비티 트랜스스피릿 나치오 시너지 부스팅 엔진 V!”

여기서 포인트는 마지막에 나오는 브이를 약간 경박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해 주는 거예요. 브이! 네? 네. 맞아요. 운율이 있어요. 띄어 읽기를 잘해야 돼요. 다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냥 막 지은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 자체가 로봇 변신합체 기술 개발사(開發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이름들을 쭉 나열한 거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그게, 우리 눈에는 아무리 봐도 기념비가 아니라 묘비처럼 보였어요. 엔지니어들이 날려먹은 기술들 아니면 기계 이름들을 쭉 적어 놓은 묘비요. 아마 걔들도 대놓고 말은 못 했어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100기나 합체를 했으니 둔하지 않았냐고요? 네. 좀 그렇긴 했어요. 그런데 상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공격 한 번 한 번이 재앙 수준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움직임이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서 잘만 대응하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게 뭐였는지 아세요? 나치오 시너지였어요. 기계들끼리 느끼는 사랑 말이에요. 불륜인가? 아무튼 엔지니어들이 그걸 뭐라고 설명하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사람들은 그게 뭔지 감도 못 잡을걸요. 그 현상에 관해서는 현장에 있는 조종사들이 더 잘 알았을 거예요.

 

아흔 네 대쯤일 거예요. 합체하는 로봇들의 숫자가 그 정도에 도달하면 나치오 시너지가 원래 로봇들이 갖고 있던 출력을 합한 것의 120배 정도가 되거든요. 그 선을 경계로 해서 나치오 시너지의 크기가 확 뛰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프로 그려보면 딱 아는데 그 지점에서 120배였던 나치오 시너지가 갑자기 600배 정도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요.

조종사들은 그 순간 기체가 느끼는 전율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거든요. 아, 뭐랄까. 온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 아니, 그런 거라기보다는, 새로운 세계가 밀려들어오는 느낌 같았어요. 기체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신경계들이 낯선 신경계들을 만나서 하나의 새로운 신경계를 만드는 일 자체만 해도 진짜 기계들의 마음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기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건,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 하나가 통째로 존재 안에 각인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역시 불륜인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라고요? 아, 엔지니어들이 그렇게 말하죠? 맞아요. 그 말대로예요. 사실 조종사가 그걸 직접 느끼지는 못하죠. 기계들이 진짜로 그렇게 느끼는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그걸 꼭 센서로 확인해야 확인이 되는 건가요? 그냥 아는 거잖아요. 표현할 수는 없지만 상대가 뭘 느끼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네. 그러니까, 제 말이. 그게 사랑이잖아요. 네? 아니, 그렇다고 제가 무슨 불륜 같은 걸 해 봤다는 건 아니고요.

아무튼 그 사람들은 그걸 잘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사랑이라 그러잖아요. 기계들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면서 갇혀 있던 존재의 봉인을 풀고 새로운 존재로 각성하는 순간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않았어요.

개체이면서 개체가 아니고 집단이면서도 개별적인 자아를 희생하지 않는 독특한 집단 무의식 상태에서, 하나로 합체된 로봇들의 신경계가 개발자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특이한 방식으로 하나의 의식으로 재조합되는 거죠. 네. 물론 아까 말한 것처럼 증명은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냥 현장에서 조종사들이 느끼는 느낌은 딱 그런 거라는 걸 말씀드리려고 한 이야기예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자동반응이라는 현상이 나타나요. 합체되고 나면 그 하나하나의 개체들은요, 새로 만들어진 자기네 집단 자아를 정말 끔-찍하게 사랑하거든요. 그래서 그 집단 자아가 손상을 입는 걸 참지를 못해요. 합체한 로봇을 누가 아주 살짝만 건들어도 확 달려들어서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붓는 거죠. 정말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순식간에 상대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린다니까요. 짐승 같았어요. 짐승.

나치오 시너지라는 말도 사실은 거기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나치오라는 건 나라[nation]를 가리키는 옛날 말에서 따온 거거든요. 같은 말을 쓰는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 말이에요. 물론 나라라는 게 여러 가지 속성이 있었겠지만, 나치오는 딱 그 부분만 가리키는 거였어요. 나라라는 이름의 집단 자아 같은 거 말이에요.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누군가가 아주 조금만 상처를 입혀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의 절대선에 가까운 집단 자아 같은 거 있잖아요. 자동반응이라는 건 딱 그런 식의 절대자아가 스스로 기체를 보호하는 현상이거든요.

그래서 그게 전세(戰勢)에 도움이 됐냐고요? 도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전세가 완전히 뒤집어졌죠. 뭐 어쩌겠어요.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외계 침략자들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괴물이 우리 편이었는데.

 

하지만, 그 성스러운 순간에 조종석에 앉아 있는 조종사들이 다 경건한 마음으로 있었던 건 아니에요. 솔직히 거기 분위기는 거의 시장통에 가까웠죠. 크기가 아무리 커도 로봇 한 대 조종하는 데 조종사가 백 명까지 필요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노는 조종사들 숫자가 어마어마했거든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조종실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근데 군비경쟁에서 우리가 완전히 우위를 점하면서 외계인들한테 빼앗긴 전선을 거의 다 되찾을 때쯤 되니까 아예 장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 있죠. 술도 팔고 오징어도 팔고. 그래도 되냐고요? 그러면 안 되는데 그 무렵에 연합군 사령부가 기술개발에 꽤 신경을 써서 합체한 로봇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벌써 900대씩 합체하는 형태가 나왔으니까요. 외계인들도 그만큼 더 크고 무시무시한 놈들을 내보냈기 때문에 그때 궤도연합군 병기창에서 그 속도로 기술개발을 해내지 못했으면 아마 지금쯤은 지구 언저리까지 전선이 밀렸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할 일을 다 한 건데요, 조종실 사정은 완전 별로였어요. 만 대 합체 기념호가 나왔을 때쯤에는 조종실에서 아예 떡볶이도 팔고 라면도 팔았다니까요.

싫어할 것 같죠? 근데 라면 냄새 같은 게 조종실에 한 번 퍼지면 결국 100명 중에 80명이 다 컵라면을 먹고 있다니까요.

 

아무튼 계속 그런 상황이 쭉 이어졌어요. 결국 그게 나올 때까지요. 궁극의 기체라던 리바이어던 말이에요. 무려 52만 대짜리 합체 로봇이었는데, 사령부도 그 이상은 기술개발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쯤에는 우리가 군비경쟁에서 완전히 이겼거든요.

외계인들도 더 이상은 예전보다 큰 놈들을 보내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아직 평화가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 로봇들의 그 어마어마한 나치오 시너지 때문에 전쟁은 다시 매뉴얼대로만 하면 그럭저럭 이길 수 있는 쉬운 일이 됐어요. 그 상태대로라면 리바이어던 같은 건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는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었어요. 외계인 침략자들이랑 교전을 해보면 얘들이 퇴각은 하고 있어도 아직 전의를 상실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사령부에서도 리바이어던까지는 실전에 배치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이요. 드디어 저쪽에서도 리바이어던을 맞상대할 궁극의 괴물을 전선으로 끄집어낸 날이었죠. 그쪽에서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건 많이 갖고 있을 수가 없었는지, 전선에 나온 건 딱 그거 한 마리밖에 없었어요. 한 마리? 그걸 뭐라고 세야 되죠? 한 개? 한 명?

아무튼 연합군은 전 병력을 이끌고 그게 출현한 곳으로 날아갔어요. 그리고는 먼저 도착한 기체들부터 합체를 시작했는데, 다 합체하는 데만 거의 여섯 시간이 걸렸어요. 그냥 딱 보기에는 지루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합체하는 동안 나치오 시너지 효과가 상승하는 걸 보면 그런 말이 안 나왔어요. 거의 4700만 배까지 올라갔거든요.

하긴 합체하는 동안 궤도연합군 군악대가 무슨 리바이어던 주제가라나 뭐라나 그런 걸 틀어댔는데, 그거 한 여섯 시간 듣고 있으면 머리가 텅 비는 거예요.

아무튼 그 지점이 바로 나치오 시너지 상승곡선이 다시 한 번 다음 단계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데였어요. 그 다음 단계부터는 아예 이름부터가 달랐죠. 울트라 나치오라고, 나치오 시너지의 자동반응 체계하고는 또 다른,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한 각성 상태였죠.

어떤 식이냐면, 이건 누가 건들면 폭발하는 식이 아니라, 먼저 상대를 공격해서 없애버리는 식이었어요. 엔지니어들은 그걸 예방공격이라고 그러던데, 위협이 될 만한 소지가 있으면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위협 요소를 제거해 버린다는 개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진짜 파괴력이 엄청나서, 연합군 사령부도 아무 때나 울트라 나치오가 발현되지 않도록 기체 내에 제어장치를 심어 놓을 정도였어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그 제어장치를 해제하는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어요. 그래도 사령부는 울트라 나치오 자체를 영원히 봉인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것도 결국은 실전에서 써먹으려고 만든 거였으니까요.

 

 어떤 면에서 리바이어던은 그래도 솔직했던 게, 조종사 52만 몇 천 명 중에서 조종에 관여하는 사람은 공식적으로 299명밖에 없었어요. 쓸모없는 조종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 거죠. 물론 실제로 조종에 관여하는 사람 숫자야 그것보다도 훨씬 더 적었지만,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에 관한 결정권을 위임받은 사람까지를 실질적인 조종사로 간주하면 그 숫자가 딱 299였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루소주의라고 해서, ‘기체는 합체할 수 있어도 조종사의 조종권은 대표될 수 없다’는 원칙이 있기는 한데요, 사실 299명도 적은 숫자는 아니었으니까 권한을 위임했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네? 아, 나머지는 뭘 했냐고요? 뭐, 그냥 놀았어요. 어차피 할 일도 별로 없었거든요. 뜨개질하는 애들도 있고, 구석에 모여서 술 마시는 애들도 있었죠. 가끔 메인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일이 어떻게 돼가고 있나 살펴보기도 했지만 별로 관심은 없었어요. 누가 이길지를 놓고 돈 거는 애들 아니면 그쪽은 별로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권한도 없었으니까요. 기체 이름이 리바이어던인지라, 조종실 한쪽에 세련된 필체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막상 그 아래 펼쳐진 광경이 그렇게 험악하지는 않았어요.

 웃긴 게, 사람이 52만 명이나 되니까 별별 모임이 다 생기거든요. 어차피 할 일도 없고 하니까 웃기는 사조직 같은 걸 막 만드는 거죠. 독서 모임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고상한 모임도 있었지만, 대개는 동창회나 무슨 팬클럽 같은 시시한 것들이었어요. 그때 또 한창 유행했던 모임이 부위별 모임이라는 거였거든요. 모임 이름이 막, 삼겹살, 등심, 안창살, 갈비, 이런데, 합체할 때 자기 로봇이 어느 부위로 들어갔는지에 따라서 모임을 만든 거예요. 조종실에 고기 반입하려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는데, 그 부위별 모임들이 세가 대단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성기 모임 애들은, 어휴. 하는 짓이 완전 성기였죠.

아무튼 그러고 놀았어요. 조종사 생활이 지구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다 멋있는 건 아니었어요. 우리는 그냥 합체할 장소까지 각자 자기 기체를 데리고 갔다가 작전이 끝나면 다시 분리해서 본부까지 무사히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몫은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머지는 나치오 시너지가 알아서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어요. 저도 딴짓하다가 잠깐 메인 모니터를 흘끗 들여다봤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날 우리는 분명히 외계 침략군의 마지막 개체와 싸우기 위해 거기에 모인 거였거든요. 마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우주 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튼 우리는 그런 걸 상대하려고 날아간 거였어요. 그런데 화면에 비친 적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니, 저게 무슨 악마야? 하고 말이에요.

그건, 그 사람은, 그 분은, 뭐라고 불러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건요,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마왕이라니, 말도 안 됐어요. 괴물은 더더욱 아니었고요. 제가 여기서 이런 말 한 게 새나가면 진짜 곤란해지겠지만, 그건요, 아름다웠어요. 솔직히 악마가 아니라 천사에 가까웠거든요.

아, 물론 크기만 보면 천사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겠죠. 리바이어던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으니까요.

분명히 사람처럼 두 발로 서 있었고, 사람처럼 생긴 모양이었어요. 팔다리가 있고, 머리도 제자리에 딱 붙어 있었고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걸 구별해 보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그게 얼마나 사람에 가까웠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잖아요.

신이 있다면 꼭 그런 모습일 것 같았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좀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렇잖아요. 그건 도대체 정체가 뭔지, 이제껏 내가 싸워온 존재의 참모습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건 아닌지.

물론 제가 혼자 막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거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잠깐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문제는 됐을 거예요. 그만큼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외양이었거든요.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여전히 마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막, 괴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적어도 제 눈에는 그랬어요.

뭐, 그러다가 갑자기 본모습을 드러냈을 수도 있어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 권한을 가진 299명 중에서도 아마 절반 이상은 바로 그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느 한 순간 그 아름다운 존재가 자신의 추악한 본색을 드러내면서 리바이어던을 향해 사악한 이빨을 드러내는 거 말이에요.

 왜냐고요? 글쎄요. 무서우니까?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어서 빨리 그 일이 일어나서 울트라 나치오를 가동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그런 일은 안 일어나더라고요. 좀 더 놔뒀으면 결국 그런 꼴을 보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솔직히 그만큼 오래 기다려 주지도 않았거든요.

 

그 사람들은, 네? 네. 그 대표 조종사 299명이요. 그 사람들은 별로 기다려주지도 않고 곧바로 전투를 강행했어요. 사실 그 사람들 일이 그거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었죠. 거기는 전장이었고 그 사람들은 따로 선별된 조종사들이잖아요. 판단력보다 반사 신경이 더 중요한 데가 바로 전장이었으니까 무작정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 사람들이 일일이 조종을 하는 건 아니었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중요한 부분은 기체 신경망이 다 알아서 하니까요. 물론 나치오 시너지에서 나오는 자동반응 현상이랑 울트라 나치오에 딸린 예방공격 개념 때문이죠.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은 나치오 시너지냐 울트라 나치오냐를 선택하는 것뿐이었어요.

 솔직히 결론은 이미 다 나와 있는 거나 다름없었던 게, 어차피 리바이어던이라는 기계가 울트라 나치오를 쓰려고 만든 기계지 그걸 봉인하려고 만든 기계는 아니잖아요. 개발 이념 자체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최후의 전쟁’인데 망설일 이유가 뭐였겠어요?

게다가 그 대표 조종사 299명의 성향을 보면 이미 결론은 뻔했어요. 170명 가까이가 궤도연합군 제3군사학교 출신이었거든요. 호전적인 것도 그렇지만, 거기는 위에서 시키면 다들 그대로 하니까 170명이든 1700명이든 의견은 딱 하나밖에 없었어요. 어떤 때 보면 아예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지, 뇌가 딱 하나뿐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 사람들 하는 짓이 좀 웃겼거든요.

그 중 제일 경력이 많은 한 명이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 하고 소리치면 나머지도 다 똑같이 “봉인 해제!” 하고 외치면서 막, 동시에 봉인 해제 버튼을 누르는 거예요. 걔들은 진짜 타이밍도 똑같이 맞춰서 누르거든요.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건 안 봐도 뻔한데, 그런데요, 막상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 절차가 시작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꽤 많았어요. 대표 조종사들이 모여 있는 쪽이 갑자기 웅성웅성하더라고요.

299명을 뺀 나머지 52만 명은 처음부터 임무에는 별 관심도 없고 다들 딴일 하느라 바빠서 그쪽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해서 관심을 기울이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그때는 그래도 사람들이 관심을 좀 보이더라고요. 다들 뭔가 이상하기는 했던 거죠.

얼마 안 돼서 그 전쟁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는데요, 근데 그게요, 인간과 외계 침략군 사이의 전투가 아니었어요. 대표 조종사들과 또 다른 대표 조종사들끼리의 싸움이었거든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궤도연합군 제3군사학교 출신들이 주조종석 주위를 둘러싸더라고요. 잘은 몰라도 다른 대표 조종사들이 주조종석으로 못 가게 하려고 그러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반대편에서는 그 방어벽을 뚫으려고 애를 쓸 수밖에요. 그렇게 두 패로 편을 가르고는 자기들끼리 소리를 막 지르면서 싸워 대는데, 그래도 좀 있으니까 결국 예상대로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 절차가 진행이 되더라고요.

봉인 해제 절차가 총 다섯 단계거든요. 주조종석에 앉아 있던 조종사 한 명이 “파워 필드 전개!” 하고 소리를 치니까 주변에 있던 170명이 똑같이 “파워 필드 전개!” 하고 복창하면서 각자 자기 조종석에 달린 빨간색 버튼을 누르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한 단계가 지나가는 거예요.

그 다음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치오 시너지 봉인!”

 “나치오 시너지 봉인!”

 “계통별 출력 총량 제한 해제!”

“계통별 출력 총량 제한 해제!”

“신경망 전환 승인!”

“신경망 전환 승인!”

그렇게 네 번째 단계까지 진행이 완료되고, 드디어 주종종석에 앉아 있던 조종사가 마지막 단계에 들어갔죠.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

그러니까 또 나머지 170명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 그러는데, 그 순간 조종실에 있던 52만 명 중에서 한 30만 명 정도가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거예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장관이 펼쳐지는데, 바로 그 순간에 리바이어던의 집단 자아가 나치오 시너지 자동반응 모드에서 울트라 나치오 예방공격 모드로 바뀌는 게 느껴졌어요. 정말 엄청난 전율이 리바이어던의 신경망 곳곳을 훑고 지나가면서, 리바이어던을 구성하는 52만 개나 되는 개별자아들의 마음속에 완전히 새로운 우주를 주입해 넣은 거죠.

 

전투 자체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어요. 리바이어던은 단 3초 만에 상대를 향해 날아갔어요. 거대한 신을 닮은 우리의 표적은 꼼짝도 하지 않고 리바이어던이 다가서는 것을 보고 있었죠. 방어동작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소리예요.

네. 이상했어요.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어요. 방어할 의사가 없었다는 건 저쪽이 우리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한 번 봉인이 해제된 울트라 나치오는 쉽게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리바이어던의 거대한 팔이 상대의 목을 향해 날아갔어요. 꽉 움켜쥔 주먹이 온통 눈부신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어요. 엔지니어들도 조종사들도 사령부도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신경반응이었죠. 리바이어던은 그 번쩍이는 팔을 들어 상대의 목을 가격했는데, 그 순간 리바이어던의 손을 감싸고 있던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폭발이 일어나듯 강렬한 섬광이 조종실 모니터 너머로 튀어 나왔어요. 그리고 거의 0.2초 만에 다시 한 번 리바이어던의 손이 위로 번쩍 올라가더니 상대의 머리를 강타하더라고요.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말았어요. 빛이 사라지자 섬광에 가려져 있던 게 눈에 들어왔거든요. 뭐가 보였냐고요? 뭐였겠어요. 피였지. 새빨간 피가, 외계인 침략자들한테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붉은 피가 우리 시야를 가득 덮었어요.

네. 맞아요. 그건 정말 전혀 아름답지 않았어요. 아무리 아름다운 색깔을 하고 있었어도 그건 피였으니까요.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리바이어던한테는 마음의 눈이 없는지, 한참동안이나 공격을 멈추지 않더라고요. 그게 뭐였든 벌써 한참 전에 죽었을 텐데 말이죠. 리바이어던은 신이라도 죽여 버릴 기세로 상대의 시신을 무자비하게 난자했어요. 그 정도면, 실체도 없고 그저 관념에 불과한 신이라고 해도 목숨을 잃고 말았을 거예요. 관념까지 뜯어먹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기세였으니까요.

그때 조종사들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리바이어던을 다시 52만 개의 개체로 분리하지 않았더라면 리바이어던은 아마 적의 시체를 분자 수준까지 분해하고 말았을 거예요.

리바이어던에서 떨어져 나오는데 제 로봇이 아직도 격한 감정에 온몸을 떨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아마 분노였을 거예요. 저는 덜컥 겁이 났어요. 그리고 눈물이 났죠. 나치오 시너지의 본질은 분명 사랑이었는데, 어쩌다가 그 사랑이 저렇게까지 변했을까요.

처음부터 그렇게 이상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건 그냥 우리도 다 아는 그런 평범한 사랑이었거든요. 특별하지도 않았어요. 사람도 아닌 주제에, 두근거리고 불완전하고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같이 있는 게 훨씬 좋은, 그런 아주 인간적이고 흔해빠진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그런 돼 버리다니.

네? 하긴. 맞아요. 그게 사랑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르죠. 사랑이란 건 늘 엇나가게 돼 있으니까요.

 

궤도연합군 사령부는 그날 있었던 일을 지구에 알리지 않았어요. 대신 종전을 선포하고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죠. 하지만 그런다고 그날의 진실이 가려질 리 있겠어요? 목격자가 무려 52만 명인데.

그리고 이건 진짜로 비밀인데요. 사실 저는 리바이어던이 때려잡은 존재의 정체가 뭔지 알아요. 그런 추측이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그게 그때까지 우리가 상대하고 있던 적은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이요. 그 중에 이런 설이 있었어요. 그 존재가 우리의 적들이 있던 세계에서 온 구원자였다는 설이요. 그곳에서 그 구원자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그 적들과 싸우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적들이 우리와 교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를 도우려고 구원자를 보냈는데 그게 그만 어쩌고 저쩌고 했다는 이야긴데요.

들어본 적 있으세요? 네. 그러실 것 같았어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니까.

근데 진짜로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제가 그 증거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 이거요. 혈액 샘플에서 추출한 유전정보예요.

그럼요. 누구 피긴 누구 피겠어요? 리바이어던한테 살해당한 그 사람 피지. 말했잖아요. 그날 목격자가 52만 명이라고. 52만대나 되는 로봇에 그 피가 골고루 튀었거든요. 그런 어마어마한 진실이 가려질 리 없죠.

그쪽에서 찾으시는 것도 결국 이런 거 아닌가요? 한 번 조사해 보세요. 모르긴 몰라도 궤도연합군 사령부가 요즘 새로 발견했다는 그 우호적인 외계종족 생체 정보하고 비슷할 거예요. 크기는 무시하세요. 걔들도 어차피 우리랑 싸우던 종족들처럼 원래 자기네 종족 안에서도 크기 차이가 많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네. 그날 우리는 우리 구세주를 패 죽인 거예요. 울트라 나치오 봉인 해제! 하면서 말이에요.

아무튼요, 그날 일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리바이어던은 이미 분리됐고, 그런 괴물은 역사상 딱 한 번밖에 만들어진 적이 없고, 또 궤도연합군 사령부가 제정신이라면 다시는 그런 걸 만들 일도 없을 거라는 거예요. 끔찍하지 않아요? 그런 걸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거.

뭐, 하여간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죠. 저도 이제 가 봐야 되니까요. 아 맞다. 아까 제일 처음에 물어보신 게 뭐였죠? 아. 그거였죠. 네.

 음. 저보고 그런 걸 다시 탈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저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드리겠어요. 그 짓을 왜 또 하겠어요? 그리고요, 그런 건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리바이어던이라니. 이제는 전쟁도 끝났고, 외계인들도 사라졌고, 세상은 그저 평화롭기만 할 거예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됐죠? 그럼, 음성변조 하는 거 잊지 마시고, 앞으로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나가는 문 어딘지 아시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저는 이만.

                                                   <끝>

 

———————————————————-

*필자소개*


배명훈

 

소설가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 당선.

 웹진 거울, 《판타스틱》 등에 단편을 수록하며 활동 .

『누군가를 만났어』 등 다수의 단편집에 참여 .

2009년에 연작소설집 『타워』 출간.

 

*작품후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파워레인저 엔진포스〉라는 걸 봤다. ‘악당들이 세련됐군.’ 전에는 그런 걸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일본 합체로봇들은 조종석을 도대체 왜 저렇게 처리하는 걸까. 이미 세 대가 합체해서 만들어진 로봇 셋을 합체해서 더 거대한 로봇을 만들었더니 조종석에 사람이 아홉이나 앉아 있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관한 일본식 해법인가. 아무튼 참 특이하다 싶었다. 다음날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다가 영감이 떠올랐다. 뼈대를 짜는데, 10여 년 전에 객기로 읽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써먹었다. 학술용어사전 비슷한 재미없는 책인데, 읽고 나서 솔직히 이걸 왜 읽었나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걸 써먹는 날이 오다니. 소설가란 참 신비한 직업이다. 평소에 청소년들로부터 성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딱히 뭘 가르쳐야 된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 글이 바탕에 깔고 있는 문제는 10년 20년 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어차피 이 문제에 관한 한 여러분과 나는 같은 세대다. 그러니 기성작가의 글이라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생각이 뻗어나가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하며 읽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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