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붙어서 기뻤던 이야기

대학 붙어서 기뻤던 이야기

  오히려 수능 전날밤은 바로 잠들었는데, 어제는 잠들기 전 무심코 실시간 인기검색어를 보고 만 탓에 잠들 수 없었다. 내가 지원한 대학교들이 서열대로 검색어 순위를 점령한 것이다. 정해진 발표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각이었다. 정해진 발표일자보다 일찍 합격자를 발표한 작년의 선례 탓이다. 클릭했지만 아직 합격자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합격 여부를 새벽에 본다 한들, 주변 사람들에게 합격 전화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고, 대학 입학이냐 재수 학원이냐를 미리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 아침에 보자는 결정은 분명 올바랐다.
  누워서 모든 것에 대한 끈을 놓고있으면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나는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어날까 말까 하는 것은 충분히 고민할만한 일이었다. 요즘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을 샌다면 나는 곧바로 몸살에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을 아까워하는 조바심에 가슴이 죄어왔다. 수험의 상처는 수능 한 달이 지난 아직도 남아있던 것이다. 몸살에 걸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든, 이렇게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든 다를게 뭔가 싶다. 오히려 몸살에 걸리는 쪽이 가만히 있다는 것에 대한 조바심과 죄책감을 덜 수 있으니 좋은 편이다.

  일어나서 수험생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쓴 글들을 보니 역시 합격자 발표를 한 곳은 없었다. 나보다 정력적인 학생들은 대학 입학처에 전화했다. 어찌나 시달렸을지(진절머리가 났을지), 잠시 후 입학처는 홈페이지에 발표 예정 시간을 진한 글씨로 올려놓았다. 잠은 오지 않고 합격자 발표는 적어도 오늘 새벽까지는 날 것 같지 않았다. 이것저것 허둥지둥 대며 뭔가 헛되지 않은 일을 찾다가, 그것에 실패하자 영화를 봤다. 영화는 내 상태와 관련없이 정해진 시간동안 나를 꽉 채워줄 수 있어서 좋아한다.

  겨우 잠들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확인해봤지만 아직 발표는 없었다. 또 영화를 봤다. 지루해질 쯤 실시간 검색어를 스을 봤다. 검색어 순위는 어색하게도 서열과 관계없이 짬뽕되어있었다. 그 범벅의 순위를 따라 클릭을 했다. 합격발표 페이지로 갔다. 기대했던 학교인데 나는 불합격이었다.

  부모님께 불합격을 알려야할까. 아버지는 회사에 계시고 어머니는 방에서 컴퓨터로 새로 살 장롱을 보고 계실 것이다. 아버지께는 나머지 대학도 합격하거나, 나머지 대학 중 가장 좋은 학교에 합격한다면 그 때 전화를 걸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방에서 잠시만 걸어나오면 계시기 때문에 충분히 말씀드려야 했다. 그래도 그냥 영화를 봤다. 나는 불효막심하게도 어머니가 걱정하실 때의 높은 목소리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후 어머니께서도 실시간 검색어를 보셨는지 수험번호를 내게 물어보셨고, 그제 불합격을 말씀드렸다.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대로 꽉찬 상태로 있을텐데, 불합격을 확인한지 한시간 후, 새로 살 장롱을 보고 계셨을법한 어머니께서 갑자기 울었다. 위의 학교가 떨어졌기 때문일 리는 없었다. 대신, 내가 이것만은 붙겠지 하고 보험으로 넣은 딱 하나의 전형마저 불합격처리된 줄, 그걸 어머니께서 조회하신 줄 알았다. 근데, 다른 학교의 합격이었다. 보통 입시의 승리자로 분류되는 학교 중 하나였다. 얼떨떨했다. 이게 무슨 기분일까.

  기쁨이다. 솔직히 기쁨이다. 하지만, 너무나 식상한 구호가 되고말아 지금도 말하기가 껄끄러운 대학 서열화, 학벌주의를 나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더러워하고있었다. 나는 단지 부모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그 더러움을 느끼지 못한 적은 없었다고 변명하고싶다. 친구들이 나를 SKY입학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제일 차갑고 결국은 무의미한 것을 어떠한 거리낌도 상실한 채 목표해온 아이로 본다면 오해다. 수험 생활동안, 그 불쾌한 감정을, 나의 내성적이고 불안한 정신증 탓으로 돌리며 억지로 더러움을 회피한 것은 반대로 내가 여전히 그 더러움에 부닥쳐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상하게도 승리의 학교가 나를 뽑았다. 나는 그것을 기뻐하고있었다. 학벌은 싫었지만 그 주인공이 내가 되는 것은 좋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기분일까. 어쨌든 나는 분명 합격을 원하고 있었고, 합격에 웃었다. 합격을 알리는 전화기에 웃음의 소리를 흘려보냈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 때의 나의 웃음은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것과 달리 진짜 웃음이 아니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됐다. 나는 내가 내 미래의 불확실성이 다소 가벼워졌다는 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과외선생이 되어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는 점에 기뻐하는 것을 용인했다. 하지만 '승리'를 자랑하고 그것이 기특해지는 것에 내가 기뻐하는 것은 내 밖의 내가 스스로를 쳐다보기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내가 승리의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어째서 실없는 축하와 쑥쓰러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또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어젯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어쨌든 통화음은 들려오고 나는 암묵적으로 기꺼이 주변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보은을 웃음과 식상한 감사인사로 전달하는 수 밖에는 없다고, 자부심을 거부하는 것은 합격에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볼 때 모순이 아닌가 의심하고는 통화 중간중간에 부끄러운 웃음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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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부의 벽

아……전 이제 수시원서를 써야 하지만 공감되었어요, 왠지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