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엄마의 잔소리가 하도 듣기 싫어서, 결국 몇 주 동안 미루어 두었던 방 청소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어디부터 치워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바닥청소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에 내 물건과 쓰레기를 구분해서 물건만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큰 쓰레기는 쓰레기대로 치우고,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닦고 대충 정리하니 말끔해졌다. 하지만 책상은 정말 위태로워 보일 만큼 책이 많이 쌓여있어서 어떻게든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결국 책을 들어내고, 정리를 하고 하다가 이참에 대청소나 하자는 생각에 평소 별로 건드리지 않던 책장 맨 위엣 칸 까지 청소했다.

하얗게 먼지가 쌓인 채로 나에게 잊혀져 가고 있던 여러 가지 책들과 초등학교 때 숙제로 쓰던 일기장이 보이 길래 반가운 마음에 들고 있던 걸레는 내팽겨 치고 일기장을 꺼내들고 하다 보니, 먼지가 쾌쾌하게 묵은 조금 작은 박스가 나왔다. 뭐가 들어있을까 하는 마음에 상자 먼지를 밖에다 털어내고 열어보니, 내가 예전에 가장 아꼈던 여러 가지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남자애에게 고백하려고 썼다가 결국 전해주지 못한 편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나와,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사진이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앞머리를 내고, 겨우겨우 익숙해져 갈 즈음에 학교 숙제로 사진을 찍던 반 친구가 필름이 남았다며 교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다가 몰래 찍힌 사진이어서 웃느라 정신없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지금과는 또 사뭇 다른 모습에 생소해서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가 나랑 단 둘이 팔짱을 끼고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는 사진을 찾았다. 이 사진이 녀석이랑 내가 유일하게 함께 가지고 있는 사진이었다. 필름의 주인이었던 친구가, 다른 애들한테는 한 장씩 다 뽑아 주지 않았지만, 너희는 특별하니까 뽑아주는 거라며 한 장씩 손에 쥐어줬더랬다. 손에 받아들고 서로 얼굴을 비교해가면서 내가 웃기니, 네가 웃기니 서로 장난만 쳤었는데 그날 돌아와서 곧장 이 상자 안에 넣은 뒤로 한번도 보지 못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문득 이 녀석도 이 걸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예민해져있던 때가 있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서로 멀리했다. 왜 그런지 는 몰랐다. 그러던 중 두 달 동안 녀석하고 내가 나누었던 이야기가 다섯 마디도 채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게 너무나 슬퍼서 무작정 녀석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었다. 여보세요, 하고 받는 목소리에 괜히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야. 하고 울음이 묻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는 한마디도 못하고 숨만 죽여가면서 울었더랬다. 그런데 맞은편에서도 숨죽이고 간혹 훌쩍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였다. 그게 또 서럽고, 어설픈 화해의 길을 걷는 우리의 모습에 안도가 되어서 엉엉 수화기만 붙들고 울었다. 녀석도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전보다 더 소중한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 * *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겨울방학이라는 시기를 거쳐 가고 있는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졸업보다도, 고등학교 입학이 걱정 되나보다. 배치고사를 잘 보아야 한다는 막연한 압박감과, 은연중에 다가오는 어른들의 기대가 배가되어 마음을 짓누른다. 그 것에 이기지 못해 어디에든 마음을 털어놓고 기대고 싶어지지만 초라해 질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 두기로 하고 버텨 왔다. 그러던 도중 그 녀석한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시간 있냐고 물어 보기에 있다고 대답했더니 우리 집으로 놀러오겠다고 했다. 내가 청소하는 도중 부모님은 밖에 나가셨는지 마침 집도 비워져 있어 대뜸 놀러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몇 분 뒤 정말로 녀석이 놀러왔다.


“뭐야. 엄청 빨리도 왔구만.”


“야. 친히 이 몸이 와주셨는데 환영은 못할망정 어디서 천대야!”


 녀석은 낄낄대며 웃더니 다짜고짜 집안으로 들어왔다. 와아 너희 집 오랜만이다. 한마디 하더니 거실의 바닥에 자리 펴고 앉아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마치 제집인양 앉아있는 걸 보니 괜히 웃음이 나서 왜 소파 놔두고 바닥에서 그러냐며 장난스레 핀잔을 줬다. 그런데도 아무 대답 없이 TV만 보는 녀석이 야속해 괜히 툭 쳤다.


“야야, TV 볼 때는 개도 안 건드려.”


“언제 밥에서 TV로 바뀐거냐? 근데 갑자기 웬일이야? 뜬금없이.”


“엉? 그냥. 갑자기 보고 싶더라고.”


 녀석이 날 보고 씨익 웃더니 다시 TV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보고 싶었다라. 그만큼 확실한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보고 싶어진 걸까. 혹시 이 녀석도 집에서 물건 정리하다가 뭔가 발견한 게 아닐까.


“졸업. 얼마 안 남았잖아.”


TV만 보고 있는 녀석의 옆모습만 무의식중에 바라봤었나 보다. 눈도 떼지 않고 그냥 말하는데 처음엔 혼잣말인가 했다.


“응.”


“진짜. 입학한지 아직 1년도 안된 것 같은데.”


 시간은 나이가 들 수 록 빨리 지나간다. 녀석은 TV를 끄더니 나한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눈을 잠시 내리 깔았다. 보통 아이들보다 긴 속눈썹이 여드름도 나지 않은 볼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워냈다. 내가 부러워했던 긴 속눈썹. 속눈썹.


“있잖아. 고등학교.”


녀석은 무릎에 얼굴을 묻더니 입을 열었다.


“나. 가지 말까봐.”

 

“…갑자기 왜?”


 혼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다시 입을 꾹 다문다. 고개를 푹 숙인 녀석의 동그란 정수리가 보인다. 왠지 오늘따라 어려보이는 그 정수리가 괜히 안쓰러웠다. 꼼지락거리는 손을 잡아주자 잠시 움직임을 멈추다가 내 손을 문지른다.


“아빠 회사가… 부도가 났대.”


 녀석네 아버지는 중소기업의 사장님이셨다. 그렇게 유명한 업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잘 운영해 오셨던 걸로 알았는데 가을 초부터 조금씩 안 좋은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더니 결국 부도가 났나보다.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해줄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녀석을 꼭 안아주자, 녀석이 내 어깨에 고개를 푹 묻더니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어깨가 들썩이더니 엉엉,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울었다.



 아무 말 않고 그저 토닥여 주기만 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휴지만 한 움큼씩 뜯어서 건네주고, 그게 다 젖으면 다시 뜯어주고를 반복했다. 한참동안 울다가 벌게진 눈으로 날 바라보던 녀석이 씨익- 힘없이 웃었다. 나도 마주보고 씨익- 하지만 녀석이 나를 보고서라도 힘을 낼 수 있도록 그렇게 웃었다. 우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 손만 꼭 잡고 그렇게 앉아있었다. 우린 만난지 그렇게 오래 된 친구는 아니지만 정말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손만 꼭 잡고 있다가 괜히 눈물이 나서 내가 훌쩍 거렸다. 졸업… 이게 끝이 아닌데도 그냥 슬펐다. 너랑 내가 이젠 함께 지낼 수 없다는 게 날 슬프게 해. 날 서럽게 해. 마지막이 아니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내가 널 더 소중하다고 여기지 않게 될 까봐, 그게 무서워. 네가 날 지금처럼 생각해 주지 않을 까봐 그게 겁이나. 이렇게 네가 힘든데 널 도와줄 수 없는 내가 한심해.


“왜 울어. 놀러왔다가 괜히…오지 말걸 그랬나?”


“웃겨, 너나 울지 마”



 내 양손을 잡고 흔들던 녀석이 말했다. 나 오늘 너랑 처음으로 찍은 사진 발견했어. 근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대… 너도 엄마가 더럽다고 청소하라고 했어? 내가 너냐? 나도 사실 오늘 너랑 찍은 사진 봤어. 통했다. 응. 통했네. 이렇게 사소한 것도 통하는 거 보면 너랑 나랑 천생연분인가 보다. 으엑, 싫다. 장난스럽게 잡은 손을 뿌리치면서도 웃는다. 눈물이 고여서 웃는다. 녀석한테 처음으로 힘든 시간이 닥쳤다. 비록 아무 것도 해줄 수는 없지만 옆에서 이렇게 말없이 손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라서, 녀석이 날 찾아와서… 기뻤다. 나는 이렇게 너한테 소중한 존재구나. 너는 이렇게 나한테 소중한 존재구나.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맙다고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잘 안돼서 크흠 크흠 목만 가다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잣말 하듯이 말했다.


“그거 알아? 사람이랑, 사람이랑 만나는데 있어서 제일 어려운 게 서로가 서로한테 주고받는 마음이 같은 거래. 그게 제일 어려운 거래.”


 사람은 욕심이 정말 끝이 없어서, 내가 이만큼, 상대방한테 마음을 주고는 생색을 낸다? 상대방이 내가 준 마음보다 1g이라도 부족하다고 느끼면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그래, 근데, 너랑 나는 서로 주고받는 마음에 정말 0.0001만큼의 오차도 없는 것 같아. 그러니 우린 얼마나 행복하니. 녀석은 무슨 뜻인지 다 알겠다는 듯 쑥스럽게 고맙다고 대답했다. 나도 고맙다고 대답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가면서 힘낼게, 아자! 하고 말해서 나도 힘내라, 아자! 하고 대답했다.



* * *



 막상 졸업식이 닥쳐오니까 마음이 차분해졌다. 졸업식 당일 날은 오히려 즐겁기 만해서 사진기를 들고 이리저리 사진만 찍으면서 다녔다. 하지만 졸업식이라서 그랬는지 만나는 친구들마다 다 소중했다. 평소에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던 친구도 친구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애틋해졌다. 졸업식을 하는 내내 친구들은 드디어 지긋지긋한 학교가 끝이라며 즐거워했다. 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마지막에 교가를 부르는 데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즐거운데, 즐겁기만 한 게 아냐. 이상해. 눈물이 날 것 같아. 마지막이라는 말은 처음이라는 말에 다가왔던 설레임, 딱 그만큼의 아쉬움을 담고 있다. 오늘 이렇게 이 교복을 입고 이 노래를 하는 날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났다. 옆에 있던 친구가 운다, 운다 하며 놀렸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녀석은 결국 장학생으로 발탁 되어서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고등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의 아버지께서도 조금씩, 조금씩 재기를 위해 노력하시고 계신다. 녀석과 나는 비록 다른 학교를 가게 되었지만 괜찮다. 어차피 서로 다른 길을 갈 거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처음에는 헤어짐이라는 것에 서로 슬퍼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시 만나 게 될 그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있을 서로의 모습을 그리며 노력하기로 했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마음도 멀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서로 멀어져 있는 그 시간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주었던 그 마음만 오롯이 간직하면, 그걸로 되는 거다. 졸업식 날 마주잡았던 손처럼 따뜻한 온기를 서로의 가슴에 안고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보다 헤어짐을 가슴에 품고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헤어짐에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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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합니다. 따뜻한 느낌이 잘 전해져 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