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_봄/단편소설] 너무 우아한 나머지



너무 우아한 나머지


전석순(소설가)

 

 

 

 

   미라는 고등어를 노려봤다. 뼈가 드러나는 순간 미라의 눈은 조금 더 커졌다. 엄마는 미라에게 “이게 바로 고등어란다.”라고 힘을 빼고 말했다. 뒤를 이어 아버지는 “고등어도 못 먹일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던 건가.”라고 중얼거렸다. 둘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헛기침을 했다.
   뼈를 잘 발라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미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생선에 원래 뼈가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아버지는 밥을 뒤적였다. 나는 대답처럼 오물거리던 입 안에서 뼈를 빼내 밥상 끄트머리에 올려놓았다. 그걸 본 아버지는 미라의 밥 위에 살코기를 얹어주었다. 그제야 미라는 수저를 들었다.
   사과에는 껍질이 있고 포도에는 씨가 있다는 것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날부터 미라는 신기한 게 많았다. 세 가구가 부엌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는 것도, 아무도 키우지 않은 고양이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도, 밥상은 밥을 먹을 때만 쓰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할 때도 쓰는 것도 모두. 그럴 때마다 미라는 “어쩜” “세상에” “어머나” 같은 말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뱉었다. 그 말은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즉시 출동하는 것 같았다. 미라가 먹어왔던 음식에는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처럼 그런 말도 함께 들어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세계가 분명 있는 것 같았다. 전에는 혹시나, 했지만 미라를 보니 확실한 걸로 해둬도 괜찮았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게 많았다.
   미라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혼자 상상했던 모든 가능성에 탄력이 붙었다.

 

   철물점에 처음 들어섰을 때 미라는 마치 파라오의 모험을 타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자못 은밀하게까지 들렸다. 좁고 언제든 어두침침하고 사방에서 쇳내가 진동하는 게 그것과 닮았을까. 아니면 여기저기 내 키보다 높이 솟은 사다리나 빽빽하게 들어선 공구가 그래 보였을까. 내가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슬쩍 묻자 그건 서울에 있는 거라고만 했다. 좀 더 알려달라고 하자 주말에 가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만 탈 수 있다고, 선심 쓰듯 덧붙였다. 더 캐물어 봐도 그 이상 알려주지 않았다. 심부름을 해주거나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양보하면 그제야 그것에 대해 야금야금 말해줬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게 어떻게 생겼다는 건지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나중엔 더 궁금하지도 않아 우유를 양보하는 것도 그만뒀다. 그때 비로소 미라는 그것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가만히 두면 파라오의 모험만 갖고도 종일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듣고 있으면 유람선이나 동물원 얘기까지도 술술 나올 것이었다. 저걸 다 들으려면 학교 다니는 동안 우유를 전부 양보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라 미라의 목소리가 조금씩 늘어졌다. “그 놀이기구의 하이라이트는 가장 마지막에 있어. 나도 정말 놀랐는데, 거기엔…”까지 말하고 나선 아예 끊어 버렸다. 나는 조급해하는 걸 감추려 애쓰며 “거기엔?”이라고 되물었다. 미라는 고작 “목말라서 말이 잘 안 나온다.”라고만 했다. 나는 다시 미라의 심부름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버지도 그걸 두고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다.

 

   미라가 자신의 몸과 거의 맞먹는 가방과 함께 온 날, 나는 당연히 나보다 서너 살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서로 동갑이니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덧붙이기 전까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흠치르르한 에나멜 구두나 인조보석이 박힌 머리띠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보였는지도 몰랐다.
   이종사촌이라고는 해도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엄마는 아주 어릴 때 둘이 잘 놀았다고 우겼지만 나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미라도 눈을 내리깔며 “제가 얘랑 놀았어요?”라고 물었지만 일부러 모로는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엔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만약 아버지가 말했다면 끝까지 믿지 않았을 것이었다. 엄마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미라는 처음으로 내 얼굴을 힐끔거렸다.
   아버지는 미라의 가방을 받아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라는 아버지에게 그 가방은 드는 게 아니라 끄는 거라고 나긋나긋하게 일러줬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건 주눅이 든 목소리일 수도 있었는데 그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미라는 사뿟사뿟 아버지를 따랐다. 가방 밑에 달린 바퀴를 만져보고 아버지는 천천히 가방을 굴렸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내가 가방을 보고 “우와…”라고 하자 그 말을 미라가 받아쳤다.
   “그치? 네가 보기에도 좀 우아하지?”
   복도에 들어선 미라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자신이 쓸 방은 어딘지 물었다. 대답이 없자 방문을 하나하나 가리키기 시작했다. 거긴 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방이었다. 미라는 누가 사냐고 물었지만 사람들이 수시로 바뀌어서 어떤 사람이 산다고 딱 꼬집어 일러줄 수 없었다. 그중 우리가 쓰는 방은 하나뿐이었다. 셋이 누우면 딱 그만큼의 공간이 남는 방이었다. 미라는 그 방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뭔가 미심쩍어서 움직임이 더딘 것일 텐데도 그땐 눈치 채지 못했다. 다만 어쩜 저렇게 살랑살랑 움직일 수 있는지 의아했다.
   안에는 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미라의 가방이 한가운데 서 있었다. 미라가 가방에서 제일 먼저 꺼낸 것은 향수였다. 그걸 들고 방안 여기저기 뿌리기 시작했다. 한쪽에 쌓아둔 이불 위에도 플라스틱 서랍장 위에도 손바닥만 한 창문에도 한 번씩. 뿌릴 때마다 꽃냄새 같기도 하고 호박엿냄새 같기도 한 게 가득 찼다. 나는 또 “우와”라고 할 뻔했다. 미라는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향수를 뿌렸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지만 눈을 붉히며 꾹 참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두 달만 참으면 되리라 생각했다. 미라에게 밥상을 양보하고 정작 난 엎드려서 숙제를 해야만 하는 것도 미라가 씻고 난 다음에 씻다 보니 종종 뜨거운 물이 모자라 찬물로 머리를 감아야 하는 것도. 하지만 엄마가 일러준 날짜가 지났는데도 미라는 떠나지 않고 우리 집에서 계속 남았다. 미라가 언제쯤 떠나는지 묻고 날짜를 세던 나도 어느 순간 흐지부지해졌다.

 

 

*

 

   제주도에 있는 한 호텔은 일찌감치 예약이 완료됐다. 일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장소 중 하나가 그 호텔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일주일 만에 예약이 끝났다고 했다. 남은 방이 있어도 가격이 만만찮거나 일식이 잘 안 보이는 방이었다. 일식이 나타나는 날이 주말이라 더 몰린 건지도 몰랐다. 올봄 꽃샘추위가 매섭다는 일기예보도 별 소용없어 보였다.
   그 중엔 미라가 벼르던 곳도 있었다. 그 호텔은 아니지만 근처에 있는 펜션이었다. 그래도 경치가 꽤 쓸 만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거기도 이미 남은 방은 없었다. 일식을 볼 수 있는 날짜를 알고 나서는 그날에 맞춰 미리 예약해둘까 싶었지만 망설이는 사이 방은 다 나갔다. 남자친구는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성인이 된 후 처음 맞는 봄이잖아…”라고만 하곤 뒤에 말을 잇지 않았다. 대기자 명단에라도 이름을 올려둘까 생각하다 겨울방학 내내 둘이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을 합쳐도 부족하다는 걸 알고선 그만뒀다. 그때까지 미라가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22일에 시작되는 부분일식은 아침에 시작해서 열한 시쯤 절정에 이르고 정오가 되면 끝날 것이라고 했다. 1948년 이후 태양이 가장 많이 가려진다고 해서 주변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아버지는 이때다 싶었는지 평소보다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아버지와 내가 호들갑스럽게 일식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을 때도 미라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돌이켜보면 미라가 소란스럽게 무언가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몇 년을 같이 살았어도 미라가 싫어하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건 뭔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대낮에도 별을 볼 수 있겠다고 대꾸하자 미라는 그쪽으로 조금 돌아앉았다. 아버지는 일식이 일어났을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해준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남부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 잘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미라는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서 하는 말 같았지만 나는 미라가 웅얼거리던 숙소이름을 들었다. 정확하게 발음할 수는 없었지만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럴 돈이 어디 있나 싶었지만 모르는 사이 이모가 다녀갔을지도 몰랐다. 엄마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미라의 씀씀이를 보면 엄마가 주는 용돈만으로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식은 아직 며칠 더 남았다. 그전에 미라가 들어올까. 정말 제주도로 간 건가.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살다가 이제 와서 집을 나가는 건 뭐람.

 

   미라가 사라진 일은 고여 있던 집안을 들쑤셔놓았다. 처음에는 누구도 미라가 가출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맨 처음 가출이라고 단정 지은 것은 아버지였다. 엄마와 나는 동시에 뭐 때문에 가출을 하겠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허술했다. 다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부였다. 엄마와 내가 돌아서자 아버지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소식은 없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니 아버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엄마를 막아선 아버지는 꼭 찾을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괜히 동네 시끄럽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이모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신고하면 제일 먼저 이모에게 연락이 갈 것이었다.
   아무래도 날짜를 좀 미뤄야 할 것 같았다. 하필 이럴 때 나가버릴 건 뭐지. 얼마 전 미라는 장소가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라 근처에 있는 고깃집인 걸 듣고는 거기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장소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랬으니 그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둘 다 대학에 가게 되었으니 다 같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에 남자친구를 데려올 참이었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남자친구는 절대 안 된다던, 그러면서도 너 같은 게 무슨 재주로 남자친구를 만들 거냐고 묻던 엄마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만나는 동안 남자친구에게 미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은근히 난감했다. 나이가 같으니 동생이나 언니라고 할 수도 없었고 쌍둥이라고 밀어붙이기에도 마땅찮은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모 얘기부터 꺼내야 하니 그것도 썩 내키진 않았다.
   그동안 남자친구에게 미라를 보여주지 않았다. 설명하기 번거로운 것보다 그 애가 미라에게 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학교 다닐 때에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미라에게 따져도 미라에겐 잘못이 없었다. 그래도 설마, 싶었지만 여전히 미라는 상상했던 모든 가능성에 탄력이 붙여줬다.
   미라는 정말 장소가 고깃집이라서 나가지 않겠다고 한 걸까. 자기가 나보다 더 낮은 대학을 간다는 게 화가 났을까. 미라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다 미라가 나갈 만한 이유가 되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나와 미라가 대학만 합격하면 당장 철물점을 정리하라고 했다. 아버지가 종일 앉아 있긴 하지만 손님이 자주 드나드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부터 집수리를 맡기는 일도 뚝 끊겼기 때문이다. 두 명의 등록금을 벌려면 뭔가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있다가 들어왔다. 가게 문을 열 때마다 안에 있는 저울이나 공구들을 밖으로 내놓고 닫을 때면 다시 안으로 들여놔야 했다. 아버지는 이제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은 눈치였다. 까딱하다간 내놓고 들여놓을 것 없이 종일 철물점 문을 열어놓아야겠다고 할지도 몰랐다.
   엄마는 이제껏 철물점을 그냥 두고만 봤다. 집안에 입시를 치러야 하는 애가 둘이나 있었으니 괜히 어수선하게 철물점을 정리하고 다른 걸 시작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되기 전 근처로 이사를 마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 얘기가 나왔을 때 미라는 철물점을 계속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미라의 말을 자르고 적자만 내는 철물점을 끝내 반대했다. 나는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 앞에서 둘은 팽팽하게 맞섰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미라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았다. 혹시 미라는 여기서부터 맘이 상했던 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돋보기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제법 묵직해 보이는 파이프로 방바닥을 짚었다. 철물점에서 들고 온 것 같았다. 파이프로 방바닥을 콕콕 찍으며 돋보기로는 방안을 살폈다. 기어이 뭐라도 하나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움직임에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아버지가 움직일 때마다 장판에는 파이프가 지나간 자국이 생겼다. 서랍장 안과 텔레비전 위를 지나 돋보기가 내 앞에 멈췄다. 아버지의 눈만 과장돼 보였다.
   “이렇게 보니 너도 미라만큼 예쁘구나.”
   한참을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눈만 보여서 마치 눈꺼풀이 움직이면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이렇게 보니 아버지의 눈이 예쁘다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벽지에 핀 곰팡이로 돋보기를 막 가져가려던 때 뒤에서 엄마가 소리쳤다. 장판에 생긴 자국을 본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냉큼 파이프를 들어 눈에 가져갔다. 두 손으로 파이프를 들고 엄마가 소리치는 곳을 향했다. 달려오던 엄마도 반대편으로 눈을 가져갔다. 그 안에서 둘이 뭔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두 팔이 금세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파이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다시 장판에 깊은 자국을 냈다. 엄마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아버지에게 다시 소리 질렀다.
   엄마 목소리가 좀 잦아들고 나서야 함께 방안을 뒤졌다. 바닥에 귀를 바짝 대고 장롱 아래도 살펴봤고 서랍도 모조리 열어젖혔다. 뒤에서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들었다가 놓았다. 끙끙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벌게졌다. 뒤지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미라가 작정하고 가출한 것임을 깨달았다. 미라의 물건이 잔뜩 들어 있던 서랍은 텅 비어 있었고 텔레비전 아래 숨겨놓았던 아버지의 비상금과 장롱 아래에 테이프로 단단하게 붙여놓았던 엄마의 곗돈이 몽땅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미라 대신 “세상에… 어쩜!”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방안을 나올 때 아버지는 돋보기와 파이프를 챙겨 나왔다. 엄마가 눈을 흘기자 파이프 끝을 들어 장판에 닿지 않게 했다. 앞서 나가던 나는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무 작아서 비밀처럼 들렸다.
   “내가 먼저 집을 나가려고 했는데… 미라, 요 앙큼한 게 선수 쳤어.”

 

 

*

 

   미라와 나는 학교 갈 때도 집에 올 때도 같이 다녔다. 처음에는 좀 떨어져서 걸었지만 번번이 나란히 걷게 되었다. 엄마는 미라와 내게 똑같은 옷을 사주고 똑같은 책가방을 들려 보냈지만 둘이 서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미라가 좀 나아 보였다. 교묘하게 더 좋은 옷이나 가방을 미라에게 사준 건 아닌지 의심했지만 끝내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나와 미라에게 똑같이 했다. 심지어 머리도 똑같이 잘라줬고 목욕탕을 가는 것도 늘 함께였다. 미라만 특별히 머리에 신경을 더 쓰는 것도 아니고 목욕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미라만 점점 도드라졌다. 엄마는 미라와 내가 자매 같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니었다. 멀리서도 똑같은 옷을 입고 뛰어오는 미라와 나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게 딸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나와는 확연히 다른 미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딱 한 번 아버지가 나와 미라를 헛갈려한 적이 있었다. 황사가 막 잦아들던 늦봄이었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런지 하루에 한 번씩 돌던 방역차가 며칠 전부터 두 번씩 돌기 시작했다. 방역차가 돌 때면 늘 학교에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돌기 시작하니 집에 있을 때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쯤 나는 엎드려 숙제하던 것에서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하는 걸로 형편이 좀 나아졌다. 그렇게 앉아서 책을 보니 조금은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미라는 새로 산 입식책상에서 숙제를 했다. 둘이 책상을 번갈아가면서 썼는데도 나에겐 앉은뱅이책상에서 공부했던 기억만 남았다. 거기서 고개를 돌리면 미라의 매끈한 종아리만 보였다. 그때마다 나는 다리를 책상 안에 잔뜩 구겨 넣어 불편한 자세로 다시 숙제를 했다. 그것만이 그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둘의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멀리서 방역차 소리가 들리자 먼저 뛰어나간 것은 미라였다. 그전엔 한 번도 그렇게 방정맞게 뛰어나간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남자애들이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면서 낮게, 결국 나중엔 거의 비명처럼 이름을 불러도 미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미라가 신고 나간 건 내 운동화였다. 같은 운동화인데도 미라의 것은 항상 깨끗하고 내 것은 여기저기 구정물이 튀어있어 지저분했다. 종일 거의 같이 있는데도 내 것만 그랬다. 그럴 땐 정말 미라에게 “넌 누구니?”라고 묻고 싶어졌다. 내 운동화를 신고 나간 걸 보면 급하긴 했던 모양이다. 나는 할 수 없이 미라의 운동화를 신었다. 바닥에 뭘 덧댔는지 발에 닿는 느낌이 폭신했다.
   대문까지 나갔을 때 미라가 발을 구르며 방역차가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꺾어 신은 운동화를 바로 신으려는 순간 미라는 방역차 연기 안으로 쏙 들어갔다. 쭈그려 앉은 내게는 튀어 오르는 미라의 운동화만 보였다. 미라가 신은 운동화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는 운동화를 제대로 고쳐 신지도 못하고 미라를 따라갔다. 방역차 뒤를 바짝 붙어 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도 이랬었는지 올해 유난히 소독약을 세게 내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뒤에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우리 말고 몇 명 더 그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미라는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 미라의 목소리 같은 게 간간이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으니 연기가 몸으로 스며들어 내가 소독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러운 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깔끔하게 씻겨주고 있었다. 구정물이 튄 운동화도 까무잡잡한 얼굴도 차례차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앞에서 미라의 얼굴이 살짝 보였다가 다시 사라졌다. 미라는 부드럽게 뛰어가며 가끔 높이 튀어 오르기도 했다. 나중엔 나지막하게 노래까지 불렀다.
   “어때? 가수 같지? 아니면… 아! 발레리나?”
   나는 못 들은 체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뿌연 연기 속에 있으니 미라는 왠지 더 우아하고 예뻐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해주긴 싫었다. 속으로는 뿌연 연기 속에서만이라도 미라가 나보고 예쁘다고 말해줬으면 싶었다. 그럼 나도 미라를 발레리나라고 불러줄 수 있었다.
   미라가 튀어 오를 때마다 뒤에서 따라오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참을 뛰어가고 있을 때 그 사이로 아버지의 굵직한 목소리가 꽂혔다. 누굴 부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곧 우렁차게 변했다. 방역차가 벌써 아버지의 철물점 근처까지 온 게 틀림없었다. 집에 들어가란 것까지 알아들었는데 누굴 불렀는지는 결국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 쪽으로 몸을 틀며 이제 그만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부연 연기 속에서 갑자기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은 망설이지 않고 내 팔목을 단단히 잡았다. 위를 올려다봤지만 얼굴은 희끄무레한 윤곽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 말곤 생각나는 얼굴이 없었다.
   “미라야, 이렇게 위험하게 다니면 안 돼.”
   팔목을 잡힌 채로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씩 연기가 사라지고 누군가 도화지에 그리는 것처럼 아버지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아버지도 내 얼굴을 조금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얼굴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방역차 소리도 이미 아득해졌다. 아버지 뒤로 철물점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미라가 보였다. 그 자리엔 봄볕이 웅크리고 있었다.

 

   미라가 처음 왔을 때 엄마는 불쌍한 애니까 무조건 잘해줘야 한다고 했다. 미라가 왜 불쌍한지는 나중에 엿들었지만 그때는 금방 잊었다. 단지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니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나보다 미라의 이름을 더 자주 불렀던 것까지도.
   며칠이면 다시 떠날 것처럼 짐도 풀지 않았던 미라는 점점 서랍 한 칸을 차지하고 자기 수저를 따로 챙겨놓고 빨래도 자기 것은 따로 빼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미라의 속옷이나 치마는 빨래 사이에서 눈에 확 들어왔다. 엄마는 그걸 따로 손빨래했다. 그쯤 미라가 신기해하는 것도 차츰 줄어들었다.
   미라는 나와 나란히 같은 중학교에 다니더니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다. 그렇게까지 되고 보니 미라가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쌍둥인지 아니면 둘 중 하나가 학교를 늦게 들어온 건지 수군거렸지만 미라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우아하게 말하는 방법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을 놓고 봤을 때 쌍둥이란 의견은 터무니없었고 학교를 늦게 들어왔다면 당연히 성적이 나쁜 나일 거란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누가 미라에게 대놓고 물으면, 미라는 다만 사정이 있어 우리 집에 잠깐 머물러 있는 것뿐이라고만 했다. 그러면 또 듣는 애들은 시들해져서 다른 얘기를 거창하게 지어냈다. 그중에는 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미라에게 다 맞춰주고 미라가 하자는 대로 다 하고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때 미라에게는 정말 그래 주어야만 할 것 같은 게 있었다. 단지 사정을 듣고 불쌍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게 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집을 나가도 내가 나가야지 지가 뭐가 부족하다고 나가.

 

 

*

 

   미라가 사라지고 나서 아버지는 아침마다 방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일어나보면 눈앞에서 아버지의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젊었을 때나 그렇게 좀 하지 이제 와서 무슨…” 이러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딱히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지 아버지를 말리진 않았다. 철물점 얘기가 들어가자 아버지는 숨이 좀 틔는 듯 보였다. 대학을 간다고 내게 아버지가 필요 없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입학식이 다가올수록 “너 대학 가면 나는 이제 뭐하니”라고 묻는 횟수가 늘었다. 거기에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철물점을 두고 하는 얘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매달 월세도 뽑기 어려웠지만 점점 희미해지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엄마는 철물점을 그대로 둘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말 미라가 나가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먼저 집을 나갔을까. 그러면 엄마가 철물점 계속하라고 할 것 같아서?

 

   “혹시 와서 데리고 간 거 아닐까?”
   “그럼 연락이라도 줬겠지. 우리 몰래 데려갈 이유가 없잖아.”
   “우리가 그동안 키워준 대가라도 바라는 줄 알고…”
   엄마가 눈을 흘기자 아버지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이모에게 먼저 연락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엄마가 “그러다 아니면?”이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는지 방바닥만 바라봤다.
   미라가 스스로 나갔다는 것에 모두 동의한 후에는 서로 미라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각자 과거를 되짚어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아버지에게 졸지 말라고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생각 중이라고 했다. 어느새 아버지는 일어나 방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수돗가로 나가서 맴돌았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미라에게 잘못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았다. 한참 있다가 대문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엄마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미라니?”했다. 아버지가 대문으로 들어왔다. 어느 틈에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들어와서 나와 엄마 사이에 끼어 앉았다.
   내가 미라에게 잘못한 게 뭐가 있을까. 미라의 향수를 몰래 뿌려본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엄마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날 선 소리가 났다. 엄마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였다. 뒤돌아보니 거기엔 아버지가 있었다. 엄마도 아버지 쪽으로 함께 시선을 보냈다. 아버지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어쩜, 이 집에서 나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냐.”
   어째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와 미라가 학교 다닐 때 사실 미라의 도시락에 소시지를 덜 넣어줬다는 것이었다. 소시지가 홀수로 들어 있는 바람에 늘 누군가에게 하나 더 넣어줘야 했던 것도 함께 덧붙였다. 아버지와 나는 그런 일로 이제 와서 집을 나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것 말고도 엄마의 고백은 몇 개 더 이어졌지만 이거다 싶은 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몰래 나에게만 용돈을 준 일을 고백했다. 나는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아뒀으니 그걸 미라가 알았을 리 없었다. 모아둔 걸 알았다면 아마 내 돈도 들고 나갔을 것이다. 괜히 그 고백 때문에 엄마에게 나만 한소리 들었다.
   엄마와 나는 미라가 갑자기 집을 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미라가 오래 전부터 좀 이상했다고 했다. 어디가 이상하다고 야무지게 말할 순 없지만 아버지가 보기엔 분명 그렇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나는 아버지에게 시선을 거뒀다.
   “나중에라도 와서 찾으면 어떡해.”
   “벌써 몇 년째 소식도 없는데, 뭐. 이사한 것도 모를걸.”
   엄마와 아버지의 대화 사이에 나는 사실 미라 향수를 종종 썼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일 때마다 냄새가 사방팔방 진동해서 엄마와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미라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부터 몰래 써오던 걸 두고 이제 와 집을 나가는 것도 석연찮았다.
   아무리 셋이 돌아가면서 잘못을 고백해 봐도 미라가 집을 나갈 만한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미라가 집을 나갈 만큼 잘못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마지막 한숨에 섞어 말했다.
   “미라가 하도 물어서 수능 끝나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집을 나가기 얼마 전 미라는 새로 선글라스를 샀다.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수능이 끝난 기념으로 누가 사줬다고 했다. 일식을 한 달쯤 앞둔 날이었다. 다행히 일식 날은 꽃샘추위도 가시고 황사도 평년보단 적을 거란 보도가 있었다. “낮에 태양이 사라진다니 어떤 풍경일까?”라고 하는 내게 미라는 태양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려지는 것뿐이라고 또박또박 정정해주었다.
   “사라지는 건 없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니야. 어딘가 숨어서 보이지 않는 거지.”
   미라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일식이 아니라 딴 얘기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엔 거의 혼잣말처럼 속삭였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진짜 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곧 다시 나타날 거야.”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선글라스를 사준 건 이모였을까. 내가 빤히 보고 있자 미라는 주말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랑 비슷하냐고 물었다. 중얼거린 게 드라마에 나온 대사인 모양이었다.
   잠깐만 쓰고 있어도 사방이 어두컴컴해서 금방 어지러운 걸 미라는 잘도 쓰고 있었다. 심지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방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것도 나를 가운데 두고 마치 얕은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맴돌았다. “어때? 선글라스까지 쓰니까 더 우아해 보이지 않아? 부잣집 딸 같지?”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미라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라는 새 옷을 입었을 때도 향수를 뿌릴 때도 새로 산 구두를 처음 신을 때도 나에게 물어왔다. 다른 건 다 양보할 수 있어도 그 말은 끝까지 해주기 싫었다.

 

   미라는 맑은 날을 골라 선글라스를 쓴 채 햇빛을 정면으로 바라봐봤다. 내가 물으면 일식을 보려고 미리 연습해두는 거라고 했다. 잠깐 그러고 있다 눈이 시린지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비볐다. 잔뜩 충혈된 눈 끝으로 눈물이 몇 방울 엉켜 있었다. 그러다 다시 괜찮아지면 또 쓰고 햇빛을 바라봤다. 나중엔 아예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햇빛을 오래 봐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몇 번 반복하던 미라가 나도 한 번 써보라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햇빛을 봤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 시리진 않았다. 옆에서 미라는 역시 되게 이상해 보인다며 소리 나게 웃었다. 눈을 흘겨봤자 선글라스에 가려 미라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도 미라의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선글라스를 더 쓰고 있었다. 놀린 다음에는 낚아채갈 만도 한데 미라는 그저 웃기만 했다. 계속 듣고 보니 그 소리는 웃음이 아닌 것도 같았다. 나는 미라가 달라고 할 때까지 계속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런 얘긴 왜 했어? 미라가 곧이들으면 어쩌려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엄마 언제 오냐고 물어서 그랬지.”
   엄마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금방이라도 아버지를 향해 달려들 듯했다. 괜히 아버지는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너도 참, 돈 드는 일도 아닌데 그냥 한 번 말해주지 그랬어?”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다. 그렇게 땅땅거리며 큰소리칠 때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던 것이 작아지니 귀 기울이게 되었다. 더 작아지면 더 귀를 기울일 것이고 그땐 날 부르는 건지 미라를 부르는 건지 구분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젠 엄마도 아버지가 말할 때마다 그쪽으로 자세를 고쳐 잡아야 했다. 예전에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은 철물점에 손님이 들 때였다. 얼마 전 내가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놀라서 그만 걸음이 엉켜버렸다. 나인 걸 알아보자 아버지는 철물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가장 안쪽엔 빛이 아예 들지 않아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본 아버지의 모습이 넘겨버린 책장(册張) 같았다. 그때 미라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사라진 게 아니라 안쪽에 숨어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미라가 말한 게 일식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내가 밖으로 나간 줄 알았는지 아버지는 슬그머니 다시 나타났다. 마치 어둠을 툭툭 털어내고 나오는 사람 같았다.
   그새 엄마와 아버지와 내 그림자가 제법 길어졌다. 그림자가 마당을 가득 채운다 싶을 때면 해가 완전히 져서 바닥에 스며들듯 사라질 것이었다. 이제껏 돌아가면서 미라에게 잘못한 것을 고백했지만 그 중 이거다 싶은 건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선글라스까지 알뜰하게 챙겨 나간 걸 보면 미라는 정말 일식을 보러 떠난 것일지도 몰랐다. 그림자는 점점 길어지고 부풀어 올랐지만 누구의 것도 서로 겹쳐지지 않았다. 그림자가 마루를 지나 마당을 채우기 시작할 때까지 나는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만약 미라가 나 때문에 집을 나간 거라면 아무래도 그것밖에는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던 미라는 키가 작다는 둥 눈매가 날카롭다는 둥 몇 가지 내키지 않는 부분을 말했다. 그때마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가면서 사이사이 내 표정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미라는 또 다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도 알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미라에게 듣고 나니 왠지 걱정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재수생이란 얘기까진 하지 않았다.
   나는 미라의 남자친구를 두고 한 번도 안 좋은 점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어떤 남자든 미라 옆에 서면 뭔가 더 그럴 듯해 보이는 것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단점을 캐내려고 작정을 하고 덤비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인데도 미리 준비한 것처럼 미라에게 쏘아붙였다.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니? 그래 봐야…”
   나는 숨을 몇 번 몰아쉬고 덧붙였다. 미라를 맡기고 다른 남자와 떠난 이모에 대해, 동시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이모부에 대해, 그리고 몇 달만 맡아달라더니 이제까지 연락이 없는 이모에 대해 모두. 한참을 쉼표도 없이 말하다 나는 뚝 멈췄다. 이모가 일부러 너를 찾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했으니 더 해줄 말도 없었다. 미라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다음 할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얘기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기가 팍 죽을 것 같았는데 미라는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미라는 단 한 번도 불쌍하지 않았다.
   “정말…”
   미라는 그렇게 말하고선 잠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는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넌 참 우아하다고 해줘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든 미라와 눈이 마주쳤다. 미라의 입이 느릿느릿 벌어졌다.
   “정말, …로맨틱하다.”
   듣고 보니 미라는 정말 드라마의 여주인공쯤 된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이제껏 악역을 뒤집어쓴 게 됐다. 만약 집을 나갔다면 이 얘기를 듣고 나갔을 것이다. 그럼 미라는 일식을 보러 떠난 게 아니라 이모를 찾아 떠난 게 되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미라가 결혼할 때쯤이나 말해줄 거라고 했으니 그걸 내가 먼저 해버렸다고 고백할 순 없었다.
   아버지가 마루에 형광등을 켰다. 일순 주변이 환해지면서 일어선 아버지와 아직 눈을 감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미라가 다시 돌아온다면 이제는 네가 어렸을 때부터 참 우아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밤이었다.

 

 

*

 

   사람들은 대부분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길을 가던 사람도 일제히 하늘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자 같은 쪽을 바라봤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도 몇몇 보였다. 개중에 수수깡으로 만든 안경에 알록달록한 셀로판지를 붙여 쓰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안경이 헐렁한지 아이들은 몇 번씩 고쳐 써야만 했다. 그래도 시선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도 부리나케 아버지의 철물점으로 향했다. 잘하면 아버지와 함께 일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봄볕이 사방에 웅크리고 있는 걸 보니 미라가 이미 도착해 다리를 꼬고 앉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동안에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시선을 두진 않았다. 시선을 잠깐 트는 사이 일식이 시작될 수도 있었다.
   철물점 안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군데군데 밝힌 알전구가 유난히 약해 보였다. 그 주변만 조금 밝을 뿐 다른 곳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미라가 왜 철물점을 두고 파라오의 모험을 타는 것 같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남자친구와 다녀왔기 때문이다. 조심해서 들어간다는 것이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자 안에서 아버지가 “잠깐만요.”라고 외쳤다. 나는 놀라지 않고 안에 대고 있는 힘껏 큰소리를 냈다. “나예요.”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사이 일식이 시작될까 철물점 안과 밖을 몇 번 드나드는데도 아버지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선글라스라도 쓰고 나오시나 생각했는데 곧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났다. 낡은 운동화부터 툭 튀어나온 무릎이, 그리고 가는 허리와 팔이 차례차례 보였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싶었는데 아버지가 머리에 뭔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용접마스크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사방을 더듬거리며 더딘 걸음으로 철물점 안을 빠져나왔다. 밖에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된 모양이었다.
   나는 손으로 차양을 만들고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로 하늘을 봤다. 주변이 어둑해지는 건 선명했지만 막상 해가 가려지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용접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더니 아버지는 결국 꾹 눌러쓰는 쪽을 택했다. 아무래도 쓰고 보는 게 훨씬 괜찮은 모양이었다. 한 손으로는 용접마스크를 잡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버지는 곧 뭐라고 소리 질렀다. 간간이 감탄사가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용접마스크를 쓰고 있어 잘 들리진 않았다. 셀로판지라도 구해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용접마스크를 쓰고 일식을 보고 싶어 아버지 쪽을 바라봤지만 선뜻 그러자고 말하지 못했다. 용접마스크로 다 가려지지 않은 아버지의 턱 끝에 땀방울이 몇 개 매달려 있었다. 거기에 뭐가 섞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주면 철물점이 문을 닫을 것이었다.
   시선을 돌려 다시 눈을 가늘게 떠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처음엔 일식이 벌써 절정에 다다랐나 싶었는데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았다. 아버지가 뒤에서 내 얼굴에 용접마스크를 대주었다. 해가 점점 사라지는 모습이 훨씬 잘 보였다. 해는 이미 반쯤 가려졌다. 해가 거의 가려질 때까지 보고 있자니 점점 답답해졌다. 숨도 거칠어지자 아버지에게 벗겨달라고 말했다.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내 목소리는 용접마스크 안에서 맴돌아 아버지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 잠깐만, 이라고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접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울퉁불퉁했다. 나는 답답해도 좀 더 용접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엄마는 일식 얘기를 하자 그제야 아침에 잠깐 어두워졌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버지는 이제 평생 일식을 볼 수 없겠다며 엄마를 놀렸다. 엄마가 좀 아쉬워하는 눈치를 보이자 아버지는 사실 2035년에 또 있다고 했다. 엄마가 반색하자마자 아버지는 그건 평양에서나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동네에서 보려면 구십 년도 더 기다려야 했다. 우리 모두 그때까지 살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러니까 미라도. 평생 볼 수 없는 걸 봐버렸다고 생각하니 원래 먹어야 할 것보다 좀 더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
   미라도 어디선가 선글라스를 쓰고 일식을 보고 있었을까.

 

   남자친구와의 자리는 신통찮았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일어나서 나가는 틈에 남자친구가 내게 나직하게 말했다. “이런 자리인 줄 모르고 나왔어.” 내가 대답을 고르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사이 남자친구는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하지만,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뭔지 생각해봤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러자 미라가 정말 우아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었던 건지 아닌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건 아닌지, 왜 이렇게 늦게 신고했냐고 하면 뭐라고 둘러댈지 고민하는 동안 아버지는 혼자 있을 때 미라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짧은 통화였고 미라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말을 마친 아버지는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미라가 쓰던 서랍에 뭘 넣어둘지 궁리했다. 예전엔 미라의 서랍 하나 때문에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막상 빈 서랍에 무얼 채워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크기를 가늠해보려고 서랍을 아예 빼내는데 안쪽에서 무언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내가 종종 몰래 훔쳐 쓰던 미라의 향수였다. 서랍을 싹 비워 나가면서도 이건 잊고 나갔나 보다. 그러다가 문득 일부러 두고 나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로 사라진 게 아니라 숨어 있어서 내가 보지 못하는 거라면.
   미라와 내가 함께 쓰니 향수는 금방 줄어들었을 것이다. 새로 사고 나서도 금세 다시 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라는 나에게 별말을 하지 않았다. 혹시 미라가 듣고 싶은 말은 향수에 대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듣고 싶었던 말은 내게 다 듣고서 집을 나간 것일 수도 있었다. 정작 우아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 미라가 아닐지도 몰랐다.

 

   향수를 허공에 대고 한 번 뿌렸다. 향기가 번지자 어딘가 서서히 미라가 나타날 것 같았다. 서랍장 위에도 한 번 뿌려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방바닥에 만든 자국에도 군데군데 속살이 드러난 장롱에도. 뿌리는 자리마다 희끄무레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텔레비전 위에서 가느다랗게 솟아오르던 연기는 천천히 몸을 부풀리더니 그 주변이 부옇게 뭉개졌다. 근처로 가서 한 번 더 향수를 뿌리자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지고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끝이던 방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내 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렸다. 몇 겹으로 감싼 것처럼 희미한 미라의 목소리였다. 보이진 않아도 미라가 내 옆에서 사뿐사뿐 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라를 놓치지 않으려 나도 함께 뛰었다. 얼핏 미라의 얼굴이 스치는 것 같았다. 그쪽으로 움직이자 반대편에서 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대답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라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 그건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면, 나와 미라를 구분할 수 있을까. 이제 막 열아홉을 지난, 스무 살의 봄이었다. 이제 그것만이 미라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알고 있다.

 

 

   《글틴》

 

 

 

kaka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