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단편소설_말]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3

 

[1월 단편소설_말]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3

― 얼굴 없는 자객의 아이들

 

 

오현종

 

 

 

 

    정의 세상은 오직 칼로 싸우는 자객과 말로 싸우는 이야기꾼의 세상이었다. 칼은 돼지를 잡는 데 쓰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살을 베고 찌르는 데 쓰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병이 아니라, 늙음이 아니라, 칼이어야 했다. 고모가 건네준 이야기책의 글자들은 진작 닳아 없어졌지만, 정은 이야기를 언제든 줄줄 외워 말했다. 이야기는 완전히 정의 말이 되었다.

 

 

 1

 

    미궁에 숨어들어 재상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자객이 있었다. 신분을 감추고자 제 얼굴 가죽을 벗기고 자진했다. 그에게는 집에 남기고 온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이름은 명(冥)과 정(貞). 집을 떠나던 해에 사내아이인 나는 열한 살, 여동생 정은 여섯 살이었다. 정과 나는 고모를 따라 이웃 마을 시장에 구경 간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 아침 밥상에서 고기 조림을 남기고 일어날 적엔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남은 음식을 마저 먹게 될 줄 알았다.
    그날부터 칠 일 동안 우리 남매는 곡식 가게 곳간에 숨어 물과 날쌀만 씹어 먹었다. 주변을 살펴보고 오겠다며 물동이를 넣어주고 나간 고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짝만 쳐다보다가 잠이 오면 눈을 감고, 잠이 깨면 눈을 떴다. 날쌀을 한 줌 입에 넣고 잠이 들었다 깨면 딱딱한 쌀알이 침에 불어 있었다. 나는 먹다 두고 온 고기 조림을 떠올리며 쌀을 삼키곤 했다.
    곡식 가마니 뒤편에 숨어 앉은 정은 처음에 숨바꼭질인 줄 알고 웃다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훌쩍이기 시작했다. 고모가 왜 안 오냐 울고, 시장에서 말을 안 들어서 버리고 갔느냐 울었다. 눈물과 땀과 침이 범벅이 되어 울었다. 하룻밤이 지난 뒤부터는 곳간 구석에 싸놓은 똥오줌 냄새가 싫다고 울었다.
    어둠 속에서 정과 나를 꺼내준 사람은 낯선 사내였다. 사내는 뱃속이 말라붙은 우리에게 흰죽과 젓갈을 먹이고, 육포와 말린 과일을 넣은 등짐을 지워 줬다. 칼잡이를 시켜 강과 사막을 지나 산과 산으로 겹겹이 싸인 골짜기로 보내주었다. 골짜기에는 우리가 숨어 살아갈 「장주사」가 있었다.
    장주사는 우리가 살던 집보다 밤이 긴 곳이었다. 승려가 여섯인 작고 조용한 절이었다. 찾아오는 불자도 드물었다. 주지인 노승을 제외한 젊은 승려들은 날이 밝자마자 칼이며 창을 손에 잡았고, 밤이 깊도록 염불을 읊었다. 승려들은 그들 자신과, 혹은 자신의 쇠붙이와 대화하느라 바빠 우리 남매의 아비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장주사까지 흘러든 제 이력도 풀어놓지 않았다. 적게 먹고 적게 말하는 그들은 겉으로 평온해 보였다.
    절 안에서의 시간은 고요해서 검은 점같이 고여 있는 듯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나는 곳간 어둠 속에서 칠 일 만에 나온 후로 비밀을 한 가지 갖게 됐다. 이전엔 듣지 못한 많은 소리들이 귓속으로 들어왔다. 어둠은 나를 밤에 숨은 짐승처럼 귀 밝은 소년으로 만들어주었다. 장주사에서 남의 칼을 빌려 손에 쥐어 본 다음부터 쇠붙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민해진 귓속으로 쟁쟁쟁 쇳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날이 선 소리들은 분노로 들끓었고, 때론 용서를 말했고, 저물녘엔 주어진 운명에 대해 속삭였다. 칼은 그의 주인이 말하지 않은 슬픔까지 대신 전해주곤 했다. 나는 귓속으로 들락거리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내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곤 했다. 나는 태어날 때 얼굴에 피가 묻었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어머니가 나를 낳던 밤, 물을 끓여가지고 산파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고모의 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피가 묻었으니, 사람 죽일 팔자를 타고난 거지.
    뒤늦게 장주사로 찾아온 고모는 우리에게 쌉쌀한 쑥떡을 먹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때 고모는 안됐다는 표정이 아니라 살짝 흥분에 찬 눈빛이었다. 고모는 앞니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웃었다.
    나는 고모가 웃을 때마다 정과 내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동안 어디에 가 있었냐고 묻고 싶었다. 어째서 돌아오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고모가 우리를 버렸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확인받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고모가 광인이기 때문이었다고 믿고 싶었다. 실제로 고모는 이상하기도 했다.
    봄가을로 찾아오던 고모가 내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발을 끊은 뒤로는 동생 정(貞)이 똑같은 말을 따라했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피가 묻었으니, 오빤 사람 죽일 팔자를 타고난 거야.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고모는 반 미친 사람인데.
    아무리 말을 해도 정은 들어먹지 않았다. 고모의 말을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의 목소리가 가랑가랑한 고모 목소리를 똑같이 닮아 잊어버리래야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몸이 허약해서 자주 앓는 정은 고집 센 아이였다. 고모가 광인이라는 데도 동의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찾아올 때마다 자객과 미궁과 살육과 복수에 대한 소리만 늘어놓은 여자인데도 그랬다.
    -사람이 집착이 심해지면 분별을 잃을 수도 있는 법이란다.
    칼 쓰는 법을 처음 가르쳐준 늙은 스님에게 고모가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 물어봤더니, 그렇게 대답해주었다. 고모의 병이 고모에게서 그쳤더라면 좋았으련만, 그것은 무병처럼 정에게 내려앉고 말았다. 정에게 병이 완전히 옮아간 건 고모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찾아온 해였다.
    그해 봄, 고모는 쑥떡 보따리 안에 책 한 권을 넣어 가지고 왔다. 벙어리가 쓴 이야기책이었다. 책 안에는 미궁에 숨은 재상과, 재상의 의붓아들과, 재상을 죽이러 미궁 안으로 들어간 자객과, 재상의 의붓아들에게 잡혀가 죽임을 당한 자객의 아내가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기록하는 혀가 잘린 여자도 있었다. 언젠가 고모에게 들은 이야기와 닮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이야기였다. 기이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는 명과 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객의 아이들이 나왔다.
    나는 이야기책이 사실인지 아닌지 묻고 싶었으나, 고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모는 보고 싶지 않을 때 찾아오더니, 필요할 때 오지 않았다.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고모에게 왜 곳간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고, 어머니였다면 절대로 혼자 도망가지 않았을 거라고 진작 말하지 못해 억울했다. 비난할 기회를 잃어버려 억울했다.
    장주사의 늙은 스님은 고모가 건네준 이야기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렸을지 몰랐다. 나는 늙은 스님이 젊은 스님을 꾸짖는 광경을 엿본 적이 있었다. 늙은 스님은 복수가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라 말했다. 젊은 스님은 복수가 순리를 따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은 각기 달랐지만, 목소리는 다 슬펐다.
    -미움도 병이라고 했잖느냐.
    노스님이 말했다.
    -약이 아니라 병이 저를 살게 합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죽은 자와 마찬가지지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때도, 쫄깃한 떡을 씹을 때도, 아무 표정 짓지 않는 젊은 스님 곽이었다. 정과 나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 적도 없는 스님이었다. 앞니가 검게 썩어서 웃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고른 앞니가 하얬다. 정은 그런 곽을 잘 따랐고, 나는 그것이 이상했다. 산에서 돌멩이를 주워도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비뚤어진 모양만 줍는 여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은 떡을 빚어도 매끈한 모양이 아니라 찌그러진 모양으로 빚어 스님들의 잔소리를 들었다.
    -잊어버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
    -누구를 위해 잊어버려야 합니까?
    젊은 스님이 물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너 자신을 위해 잊어버리라는 말이다.
    -틀렸습니다. 잊어버리든 잊어버리지 않든 제 인생은 달라지지 않아요. 제가 잊어버려서 좋을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스님 말씀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저에게 왜 칼을 주셨습니까?
    -세월이 칼날을 날카롭게 했으나, 너는 순해지지 못했구나.
    -세월을 알수록 너그러워진다고 하지요. 거짓입니다. 세월을 알수록 너그러워지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겁니다.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죽음을 가벼이 여겨야 하는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무겁게 여기고 있어요. 죽음이 두려워서 눈을 감고 있어요. 모두가 틀렸습니다. 저는 세월을 따라가지 않겠어요. 증오가 저를 한 곳에 머물게 합니다.
    나로서는 그들의 얘기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책이 복수를 말한다는 것은, 늙은 스님이 싫어할 얘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노스님에게 이야기책을 펼쳐 보일 수 없었다.
    늙은 스님은 내가 고모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스님 말로는 고모가 방물장수가 되어 국경을 떠돈다고 했다. 귓속에서 쇳소리가 나 머리를 앓는 바람에 집 밖을 헤매게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는 쇳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바람소리를 불러와야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도 쇳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바람소리를 불러와야 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혹여 고모를 닮게 될까봐 겁이 났다. 어릴 적 아버지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미워하면, 미워하는 사람을 닮게 된다고. 아버지의 말이 옳다면 나는 고모를 닮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도 파리의 각을 뜨는 자객도 아니고, 지혜로운 어머니도 아닌 광인을 닮게 되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세상 모든 소리가 와글와글 들어오는 귀가 돌연 두려웠다. 귓구멍을 솜으로 틀어막고 싶었다. 바람소리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쇳소리를 잠재울 수 있을까. 겁이 나서 뒷산 비탈을 달려 오르고 달려 내려왔다. 다리를 단련한다는 핑계로 겉옷이 젖도록 뛰어다녔다. 물지게를 지고 백팔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돌계단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에 스민 「목소리」들엔 각기 사연이 있었다. 사연은 저마다 길었으나, 결국엔 복수를 말하고 있었다. 복수의 대상도 다르고, 복수의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그 소리가 집요해서 또 겁이 났고, 이불솜을 뜯어 양쪽 귓구멍을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귀가 너무 밝아 솜으로 틀어막은 구멍 속으로 복수를 말하는 「목소리」가 스며들어왔다. 솜옷을 적시는 빗물처럼 속속 스며들었다.
    집요한 것은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글자를 늦게 깨우친 열 살의 정은 온종일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책만 되풀이해 읽었다. 이야기책은 어린 정의 경전이었다. 몇 차례 더 읽으면 책 속의 글자가 지워져 달아날 것 같았다. 나는 장주사에서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바깥으로 나갈 날이 두려워졌다. 산 속으로 숨어들어오기 전에 살던 집은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했다. 자객이었던 아비의 얼굴도 또렷하게 그릴 수 없었다. 아비를 생각하면 삶은 달걀처럼 눈코입이 지워진 하얀 얼굴이 떠올랐다. 아비의 얼굴이 영원히 기억나지 않았으면 싶은 밤도…… 있었다. 나는 그러나 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단에서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정이 열두 살이 되면 함께 장주사를 떠나야 한다는 약속에 대해서도 미리 말하지 않았다. 두려움은 칼을 쥐고 있을 때에만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칼에게만 고백하고, 그것에 의지했다. 노스님은 칼만큼 정직한 사물이 없다고 가르쳐주었다.
    나와 반대로 정은 장주사 밖으로 나갈 날을 꿈꾸었다. 여섯 살에 장주사로 들어온 정에게 절 바깥은 구덩이에 묻힌 기억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책 속의 세상이었다. 부모도 친구도 없는 장주사에서의 유년은 정의 머리를 기억의 구덩이에 파묻게 했고, 상상의 배에 올라타게 했다. 정은 절에 숨어사는 고아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그렇지 않아, 오빠. 이건 진짜야. 이 책이 우리한테 온 이유는 바로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야. 우리 것이기 때문에 우리한테 왔다고.
    -정말 그럴까. 이야기가 우리에게 복수를 말하는 걸까. 그게 아니면 안 된다고?
    -세상에 우연이란 없댔어. 모든 일에는 그래야 하는 이유가 정해져 있는 법이라고.
    -누가?
    -젊은 스님이.
    -그의 말을 믿어도 될까?
    -그가 말했어. 우연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내가 우연을 이해하게 되는 때, 모든 우연은 필연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어.
    이야기에 들린 여동생과 칼에 들린 오빠는 같은 대화를 수도 없이 나눴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책을 썼는지, 이것을 고모가 건네준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운명은 복수가 되었다. 복수를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 가늠하기 전부터 나는 손에 칼을 쥐어왔고, 쥐고 보니 칼로써 행해야 할 일이 보다 분명하게 다가왔다.
    잉잉 잉-
    나는 칼의 말에 귀 기울였다. 결국 칼의 「목소리」를 그렇게 이해했다. 자객의 아이들은 증오를 삼키고 뼈와 살을 불려갔다. 그것만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2

 

    아버지는 눈을 감고도 파리의 각을 뜨는 칼솜씨를 지닌 자객이었다. 그가 살의를 품고 달릴 때는 너무 빨라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를 닮기 위해,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밤낮으로 칼날을 갈았다. 작은 방 안에 십수 마리의 파리를 가두어두고 칼로 몸통을 베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파리는 짐작보다 빨랐다. 작았다. 앵앵 앵. 저마다 아우성치는 소리에 칼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파리는 사람을 놀리듯이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여동생인 정은 파리의 각을 뜨라고 단물을 만들어 부지런히 잡아왔지만, 나는 한 번도 파리의 각을 뜨지 못했다. 내가 사팔뜨기인가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또 봤지만 검은자위는 멀쩡했다. 한가운데 박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정에게는 파리를 여섯 갈래 티끌로 갈라 마당에 묻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장주사의 젊은 스님들과 목검으로 대련을 해서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고백 또한 하지 않았다. 내 칼이 각 뜰 수 있었던 건 느리게 벽을 타고 기어가는 돈벌레뿐이었다.
    열두 살이 된 정과 나는 약속대로 장주사를 나오기로 하고, 가까운 골짜기에 초막을 짓기 시작했다. 노스님은 우리 남매가 아랫마을로 내려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길 바랐으나, 나는 산을 떠날 수 없었다. 파리의 각을 뜨고, 빠른 새처럼 허공에 몸을 띄울 수 있기 전에는 세상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아비의 원수가 세 치 혀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미궁은 담이 높았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 원한 없는 사람들이 우리 말을 들어줄 리 없어. 우리를 이해해줄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고.
    정 역시 아랫마을로 내려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이 아는 세상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러 먹고사는 산 밑의 마을이 아니었다. 정의 세상은 오직 칼로 싸우는 자객과 말로 싸우는 이야기꾼의 세상이었다. 칼은 돼지를 잡는 데 쓰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살을 베고 찌르는 데 쓰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병이 아니라, 늙음이 아니라, 칼이어야 했다. 고모가 건네준 이야기책의 글자들은 진작 닳아 없어졌지만, 정은 이야기를 언제든 줄줄 외워 말했다. 이야기는 완전히 정의 말이 되었다.
    -정은 이야기에 들린 아이다.
    늙은 스님이 말했다. 불상을 보고 돌아앉아, 내게는 구부정한 등만 보였다. 구부정해서 더 완고하게 보이는 등이었다.
    -그것도 병인가요?
    정은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유일한 핏줄이었다. 우리의 운명은 한 갈래였다.
    -병이라면 그것도 병이겠지. 하지만 이야기에 들린 병에는 약도 없다. 약이 있다는 풍문은 들어보지 못했어.
    스님이 대답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절에 드나드는 사람 가운데에는 곡식을 지고 나르는 아랫마을 가게 주인이 있었다. 정은 그에게 이야기책을 부탁해 얻어 읽었다. 복수이거나 인과응보를 담은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오래 삭은 이야기 위에 새로운 이야기가 덧씌워졌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구분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정은 말했다. 모든 이야기는 한 길로 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정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님의 염려대로 점점 깊어지는 동생의 병이 걱정스러웠다.
    짐 보따리를 싸서 절에서 아주 나오던 아침은 볕이 좋았다. 천문을 볼 줄 아는 스님이 길일이라고 정해준 날이었다. 노스님은 오래 전에 맡아놓은 물건이라며 은전과 약간의 패물을 건네주었다. 초막에 이불 보퉁이를 내려놓고 방에 불을 넣자마자 정은 풀을 쑤어 집안 곳곳에 종이를 붙였다. 새 집에서 잡귀를 쫓는 단사(丹砂) 부적이 아니었다. 검은 먹물로 글자를 적은 네모진 종이였다. 정은 옷 보따리에 넣어가지고 온 스무 장의 종이를 기둥에도 붙이고, 반닫이에도 붙이고, 문짝에도 붙였다. 간신히 비만 피하도록 작게 지은 집이라 문을 열었다 닫았다, 앉았다 섰다, 몸을 움찍거릴 때마다 종이와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도 종이를 피할 도리가 없었다.
    종이마다 적혀 있는 글자는 오로지 「와신상담(臥薪嘗膽)」이었다. 와신상담.
    와신상담이라는 말을 이야기책에서 배웠냐고 정에게 물었더니, 웃지 않는 스님 곽을 통해 알았다고 대답했다. 곽이 밤새 기척도 없이 절을 떠난 날 그의 방 안에 들어가 보았다고 했다. 주인 없는 방 바닥에 길게 누워 천장을 올려보았다가 그 글자를 발견했다고 했다. 와신상담. 방의 주인은 천장에 붙여 놓은 종이를 누울 때마다 보지 않았겠냐고 정이 물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보았던 글자, 아파서 누워 앓으며 올려다본 글자가 와신상담 아니었겠냐고 물었다.
    -그랬겠지. 그래서 그 말을 배웠구나. 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절대 잊지 않겠구나. 미궁에 들어앉은 살인귀를 잊고 살지 않겠구나.
    그 밖에는 동생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생각이 많은 정은 밤에 잠이 없었다.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했다. 오라버니의 칼날이 달빛을 가르게 해달라고, 원수의 염통을 찢게 허락해달라고 기원했다. 내가 태어날 때 얼굴에 피가 묻었다니 반드시 살인자가 될 팔자이고, 그러니 미궁 담을 넘어 악하디 악한 재상을 죽일 수 있으리라 장담했다. 정의 말이 너무 단호해서 때론 어린 동생이 두려웠다. 만약에 재상과 의붓아들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대신 죽게 될 것 같았다. 정이 분하고 악에 받쳐 펄펄 뛰다가 자고 있는 내 목에 녹슨 칼날을 찔러 넣을 것 같았다.
    -칼은 쓰라고 만든 거지, 칼집에 넣어두라고 만든 거냐!
    고모를 닮은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치면서 오빠를 죽일지 몰랐다. 정은 그러고도 남을 아이였다.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나는 파리의 각을 뜨는 데 집착했다. 초막에 사는 파리도 장주사에 사는 파리만큼 빨랐다. 날벌레조차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칼잡이들을 이기겠는가. 파리의 각을 뜨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정은 끈기 있게 단물로 파리를 잡아 방 안에 넣어주었다. 파리가 도망치지 못하게 방문 틈에 문풍지를 발라주었다. 그렇지만 독 안에 든 쥐도 경우에 따라서는 놓칠 수 있는 법이었다.
    앵앵 앵. 파리들은 날개에 불붙은 듯 빠르게 날고, 그들의 「목소리」가 귓속을 어지럽혔다. 와신상담. 와신상담. 파리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다 어지러우면 칼을 잠시 내려놓았다. 자객에겐 칼과 구분이 가지 않게 쇠처럼 강한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쇠 솥에 뜨거운 모래를 담아 손으로 찌르며 단련했다. 솥에 담은 모래를 달구는 일도 정의 몫이었다. 어린 정은 몸이 약해 자주 앓았지만, 해야 할 일을 버려두는 법은 없었다. 날이 좋으면 뒷산에 올라가 몸에 좋다는 약초를 캐다 저는 먹지 않고 나에게만 먹였다. 자객에게는 칼의 움직임을 칼보다 먼저 읽는 빠른 눈 또한 필요했다.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응시하며 물방울 수를 세는 연습을 했다. 칼잡이와 맞서 싸울 때, 번쩍이는 날에 눈이 부셔 칼이 가는 길을 놓치면 끝이었다. 칼날보다 빨리 떨어지는 물줄기를 눈으로 낱낱이 읽도록 단련해야 했다.
    그런데 실상 나는 복수는커녕 주먹으로 호두알도 깨지 못했다. 주먹은 장주사의 스님들보다 큰데 단단하지가 않았다. 겉보기만 멀쩡했다. 가부좌를 하고 아무리 폭포수를 노려봐야 물방울이 동그란지 세모난지 보이지가 않았다. 순리대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소리는 요란했다. 단조로운 물소리를 듣다보면 눈꺼풀이 감겼다.
    어째서 내 몸은 곤봉보다 느리고, 녹슨 칼날보다 무딘가. 조바심이 났다. 정의 염원이 너무 간절해서 두려웠다. 부모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가는가, 정의 염원을 풀어주기 위해 칼을 가는가, 내가 살기 위해 칼을 가는가. 만일 정이 없었대도 복수가 내 전부였을까.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알 수 없는 밤도 있었다. 다행히 지친 몸은 목침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는 북풍을 타고 나는 솔개가 되어 미궁의 담을 넘었다. 검은 두건 쓴 자객이 되어 기왓장 위를 빗방울보다 가볍게 달렸다.
    쟁쟁-
    챙챙챙-
    책책책책 책책-
    내 칼이 적의 칼에 부딪치는 소리가 장마철 낙수 소리보다 빨랐다. 나는 좁은 복도를 달리며 베고, 적의 머리를 가랑이로 뛰어 넘으며 베었다. 수직으로 바로 선 벽에 표창을 연달아 날려 그것을 밟고 칼잡이들을 타넘었다. 검은 두건 쓴 자객의 칼날은 매번 재상의 방 장지문을 꿰뚫는 찰나 부러졌다. 그 다음은 없었다. 차디찬 어둠이었다.

 

 

 3

 

    빨리 나는 새처럼 미궁 담을 넘은 꿈에서 깨어난 새벽, 나는 정에게 긴 인사를 하고 보따리를 쌌다. 절간에 들렀다가 소금장수에게서 강 건너 산중에 숨은 도인에 대한 풍문을 들은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정은 문간에서 오른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집 걱정에 이것저것 당부하는 내 등을 떠밀었다. 「와신상담」이라고 기둥에 붙여 놓은 종이를 한 장 떼어내 등짐에 쑤셔 넣어주었다. 먼발치서 돌아본 정의 모습은 못 만난 지 오래된 고모 같았다. 정의 키가 자란 만큼 나 역시 변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 아이들이 아닌가 보았다.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게 두려웠다. 아주 느리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간절함이 깊으면 길이 생긴다고 했던가. 나는 지도도 없이 산줄기를 넘고, 강을 건넜다. 길을 잃지 않고 가장 가까운 길로 더듬어 갔다. 일 년 내내 안개로 싸인 무궁산(無窮山)의 도인은 과거 삼지창 하나로 열 명의 칼잡이를 물리친 고수라고 했다. 근동에 맞서 싸울 적수가 없어지자 겨울 산에 올라 얼음굴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닦았는데, 마침내 불사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니야.
    소금장수가 말했다.
    -주문을 외우면 칼 든 검객이 앞을 보지 못하고, 칼을 뽑으면 바람이 먼저 허리를 굽힌다네. 눈이 마주치면 혼을 뺏긴다나.
    -무슨 주문인가요?
    -그걸 알면 내가 날아다니지. 여기까지 소금을 짊어지고 올라오나.
    도인은 얼음굴에서 강맹한 몸을 얻은 대가로 언 발을 자르게 되었다고 소금장수는 덧붙여 말했다.
    -양발을 자른 앉은뱅이 몸이라도 접근할 자가 없어.
    천하제일의 검객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가? 자신에게 귀한 것,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불사의 몸이 되는 대신 발을 내놓아야 한다면 나는 어땠을까. 내놓았을까 불사의 몸을 포기했을까. 나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 내 팔과 다리? 여동생? 아니면 복수심? 나는 겁먹었다는 사실을 소금장수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안개로 싸인 무궁산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복수를 속삭이는 목소리도 용서를 말하는 소리도 잠잠했다. 너무 고요해서 기이할 정도였다. 나는 정이 보따리에 넣어준 토끼고기 육포를 씹으며 날쌔게 산을 올랐다. 오늘밤 안에 도인을 찾지 못하면 영영 그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조바심이 났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풍문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길을 가면 갈수록 확신이 생겼다. 다리가 아플수록 도인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겼다. 그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죽은 아버지의 얼굴보다 더 보고 싶었다.
    장주사의 스님들은 기다림만을 말했다. 복수의 길이 지나치게 멀었다. 나는 꼭 버드나무에 뛰어오르기 위해 깡충거리는 개구리 같았다. 기다린다고 개구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오르는 날이 오지는 않으리라. 앉은뱅이 고수가 목침 안에 숨겨두었다는 비전(秘傳)을 물려받고야 말 작정이었다. 비전을 얻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노라 정에게 말해두고 떠난 길이었다.
    무궁산. 뻑뻑한 안개로 둘러싸인 산골짜기에서 마침내 앉은뱅이 고수의 집을 찾았다. 흰 수염을 배꼽 아래까지 기른 고수는 목침을 베고 마루에 모로 누워 있었다. 그의 얼굴에 부채질 하던 소년이 그는 지금 멀리 다른 곳에 가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멀리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나는 마룻바닥에 슬며시 발을 올리고 물었다.
    -만 리 밖의 자객과 겨루고 계십니다.
    소년의 말투는 단호했다.
    -자객과요?
    -스승님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일각의 순간에 삶과 죽음이 오가는 법입니다. 자객을 물리치면 이곳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과연 듣던 대로 신의 경지에 이른 고수로구나, 걸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 소식을 정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신묘한 무공을 그대로 배운다면 무궁산에 앉아서도 칼을 띄워 재상의 목을 벨 수 있으리라 믿었다. 소년이 도인을 스승님이라 부르니, 그 역시 무공을 배우기 위해 머무는 제자가 틀림없었다. 나보다 먼저 온 제자를 앞에 두고 경계심이 일었다. 소년의 칼은 얼마나 빠를까. 소년은 파리의 각을 뜰 수 있을까. 뜬다면 두 개? 네 개? 열두 개?
    -오오, 도사님은 손오공과 같군요.
    나는 짐짓 친근한 척 소년에게 말을 붙였다. 도인에 대해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손오공이라니, 어찌 스승님을 한낱 원숭이에 갖다 댄단 말이냐.
    그때 마당 안으로 젊은 남자가 불쑥 들어서며 말했다. 얼굴이 뾰족하고, 목소리도 날이 서 있었다. 소년은 그를 보고 도인의 첫 번째 제자인 남가라고 말해주었다. 소년의 성은 송이라고 했다.
    송가 소년은 말을 하면서도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비전을 한 사람에게만 물려줄 텐데, 경쟁자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장주사 안에서만 살아 세상을 너무 몰랐다. 쉽게 생각했다. 장주사와 달리 이곳에선 다른 제자와 길고 짧음을 겨뤄야 한다는 사실에 긴장이 됐다. 그러나 쉽게 얻는 것 가운데 쓸모 있는 게 있던가. 도인이 얼음을 삼키라면 삼키고 불을 등에 지라면 질 각오였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집을 떠나왔으니 맨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가 돌아가면 정은 짐 보따리부터 풀어볼 것이었다.
    나는 도인이 깨어나기 전에 문간에 무릎부터 꿇었다. 앉은뱅이 고수에게 명운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밤은 파리의 각을 뜨는 꿈을 꾸지 않을 것 같았다.

 

 

 4

 

    -비기자(非器者)는 부전(不傳)이다.
    앉은뱅이 고수는 말했다.
    신뢰할 수 없는 자에게는 비전을 물려줄 수 없노라고 스승은 덧붙여 말했다. 신뢰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일찍 제자가 된 남가와 송가, 그리고 가장 늦게 온 나. 셋 중 누구에게도 비전을 물려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말도 보탰다. 나는 그 말이 가장 무서웠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비전을 찾아왔는데, 비전을 얻기 위해 또 다시 시간이 필요했다. 무궁산에 마지막으로 온 나는 남가와 송가에 비해 불리하기까지 했다.
    새로운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산에서 열매와 솔잎을 따고, 약초를 캤다. 나무를 팼다. 사형보다 먼저 일어나 물을 길었다. 쇠 덫을 놓아 토끼를 잡았다. 화전(火田)을 일구었다. 남가와 송가는 빈둥거리는데 나만 일이 많다고 해서 불평하지 않았다. 막내라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다만, 비전을 물려받을 사람이므로 그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수제자가 될 수 없었다.
    문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칼을 손에 쥘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칼집에 든 칼날이 녹슬었는지 아닌지 꺼내볼 여유조차 없었다. 무궁산에서의 하루는 장주사에서의 한 달보다 길고 지난했다. 약수와 약초를 장복한 스승의 몸은 날로 강맹해지는 것 같았다. 얼굴빛도 어린아이처럼 맑아졌다. 나는 앉은뱅이를 지게에 진 채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넜다. 지게는 언제나 늦게 온 제자 몫이었다고 스승 대신 남가가 일러줬다. 스승은 과거 맨손으로 잡은 호랑이의 다리뼈를 부숴먹고, 구리를 갈아 약에 타먹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도인의 몸은 절구를 얹은 것만큼 무거웠다. 지게가 무거워서 내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스승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방을 같이 쓰던 송가 소년에게 하소연을 해보았다.
    송가는 대수롭지 않게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네가 뭘 모르는구나. 빨라야 자객이지. 길다고 자객이 아니야.
    -그런가?
    -길게만 만들면 명검이래? 키는 안 커도 돼.
    -하지만 요즘은 통 칼을 뽑아보지 못했어. 난 본래 칼솜씨가 부족한데.
    처음으로 내 칼을 쥐게 된 날, 장주사의 노스님은 하루도 쉬지 않고 칼과 함께 하라고 당부했다. 종국엔 내 목구멍을 타고 나오는 소리처럼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목소리의 떨림을 바로 느끼듯 칼의 상태를 기민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몸이 위험할 때 악- 하고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듯, 적의 비수가 날아들 때 칼이 먼저 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거든 칼이 내 살과 피와 맥(脈) 같아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문 밖에서 갓난아기의 울음 같은 짐승소리가 넘어왔다. 그 밖에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무궁산에 들어선 뒤로 내 귀는 어두워졌다. 풀잎들이 바람과 살을 섞으며 속삭이는 소리, 돌멩이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토해내는 신음, 어느 것도 귓전을 어지럽히지 않았다. 노스님의 독경소리가 그리운 밤이었다. 나는 눅눅한 요를 펴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온몸에 쑤시지 않는 데가 없었다. 궂은일은 밤낮으로 내 몫이었다. 송의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어려도 막내는 나였다.
    -넌 아직 사람이 안 됐어. 불만이 많다는 건 수련이 부족하다는 소리야. 말 많은 고수 봤어? 그리고 네가 예전에 배운 게 무술이야? 나쁜 습관이 빠지고 새 사람이 되어야 뭐든 배울 수 있다고. 약도 독이 빠져야 쓸 수 있단 말 몰라? 넌 배울 준비가 안 됐어.
    송가는 내가 깔아놓은 요 위에 냉큼 누워 이불을 덮었다. 곧이어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송가는 밤마다 나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그는 걱정 없는 사람이었다. 송가의 비난을 듣고 나면, 또 그의 말이 옳은가 싶었다. 무궁산은 장주사와 달랐다. 장주사가 세상의 기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았다.
    다음 날, 앉은뱅이 스승은 지게 위에 보퉁이를 하나 더 올려놓았다. 보퉁이에 뭐가 들었는지 평소보다 무거웠다. 오른발을 앞으로 떼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힘드냐?
    지게에 올라앉은 스승이 물었다.
    -예.
    -잘됐다. 힘이 들어야 잡생각이 사라지는 법.
    지게 위에서 훈계가 이어졌다.
    -걸음이 느리구나. 무사에게 보법(步法)이 중요함을 모르느냐. 개울로 뛰어라.
    나는 스승을 개울가에 내려놓고 멱을 감아주었다. 앉은뱅이에게 물을 끼얹어주는 내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몸을 씻은 스승은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깔아 목침을 베고 누웠다. 나무와 흙의 기를 받고, 내공을 닦는 수행이라고 했다. 그 사이에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씻으며, 앞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칼집에 대고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낮이고 밤이고 지게를 지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스승의 다리가 됨으로써 그처럼 칼날이 침범하지 않는 몸을 갖기를 소원했다. 스승을 업을 때마다 얼음굴에서 꽁꽁 얼어붙은 발을 상상했다. 언 발을 제 칼로 잘라내는 고통에 비하면 견딜 만한 괴로움이라 여겼다. 아내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얼굴 가죽을 벗겨내는 아픔에 비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저울 위에서 고통은 보상보다 가벼웠다.
    낮이 길어지고, 다시 줄어들었다. 지게가 전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산길도 발에 익었다.
    -복수는 일편단심을 아는 사람의 것이다.
    스승이 말했다.
    -때를 기다려라. 내가 칼을 부르는 게 아니라, 칼이 나를 부른다.
    스승은 그렇게도 말했다.
    스승에게서 배운 무공은 하나도 없지만,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주워 담은 것만으로도 복수의 반은 이룬 기분이었다. 무공은 비전을 손에 넣은 뒤 닦아도 늦지 않으리란 믿음이 생겼다. 복수가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하지만 앉은뱅이의 다리로 산 지 이 년이 가까워오자, 혼자 두고 온 여동생이 보고 싶었다. 초막에 쌓아둔 땔나무도 곡식도 진작 떨어졌을 게 틀림없었다. 지난겨울, 산에서 만난 약초꾼을 통해 편지를 전했더니 정은 아무 걱정 말라고 안부를 전해왔다. 노스님에게서 받아둔 은전으로 쌀을 들여놓고, 겨울옷을 장만했다고 했다. 장주사의 스님들이 오며가며 돌봐주어 어려운 일이 없다고도 했다. 희생 없는 복수가 어디 있겠는가, 정은 썼다. 정의 마지막 당부는 역시 「와신상담」이었다. 천장이며 대들보며 붙여 놓은 종이 가운데 떨어진 낱장이 한 장도 없다고 했다. 이것이야 말로 하늘이 우리의 뜻을 알아준다는 표시가 아니겠느냐 물었다.
    정의 당부가 야무지더라도 산에 눈이 쌓이기 전에 동생을 만나고 오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고 해도 정은 고작 열세 살 아이였다. 팔다리가 자라기도 전에 머리만 단단해진 아이였다. 고단한 몸으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던 밤, 어쩌면 죽은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보다 산 동생을 돌보는 일이 우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죽은 부모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미궁 안 재상의 얼굴은 본 적도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집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꺼냈다. 스승은 짐작대로 심하게 꾸짖었다. 고수가 되기 위해 발을 버리는 사람도 있는 터, 한낱 핏줄의 인연에 연연해 어떻게 비전을 물려받겠냐는 꾸중이었다.
    -과거를 버리고, 있는 자리에 충실해라.
    -…….
    -비전만을 생각해라. 그러면 너는 누구도 이기지 못할 검객이 된다.
    스승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핏줄의 인연을 무시한다면 무엇을 위해 복수를 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제 얼굴 가죽을 벗기고 죽은 자객이 아비가 아니라면, 무슨 까닭에 앉은뱅이를 지고 다니는가. 쥐떼에게 뜯어 먹힌 자객의 아내를 모른다면, 무슨 이유로 비전을 물려받으려는가.
    과거가 없다면 복수도 없었다. 과거를 돌려놓으려는 의지가 없다면 복수를 위해 칼을 갈 이유가 없었다. 스승의 말은 틀렸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의 말을 거역해도 좋을까. 거역한다면 비전은 필시 남가나 송가의 소유였다. 이제와 비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간의 고생을 허사로 돌릴 수 없었다. 정을 계속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복수는 정과 나, 두 사람의 운명이었다. 나 혼자 해서도 안 되고, 정 혼자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칼날이라면, 정은 칼자루였다.
    나는 스무 살도 지나지 않았지만, 앉은뱅이 스승보다, 미궁 안의 재상보다 더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복수의 칼을 세우기도 전에, 칼날을 부러뜨린 기분이었다. 기다릴 수 없었다. 조금 더 참으라고 한다면 고모같이 세상을 떠도는 광인이 되어버릴지 몰랐다. 오직 내게 주어진 명분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자 거리낄 일이 없었다. 스승이 입버릇 삼아 말하던 「때」가 지금이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때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때를 빼앗아 올 수밖에 없었다. 마침 스승보다 더 스승인 척하는 남가도 무궁산에 없었다. 남가는 나와 달리 스승의 허락을 받고 집에 다니러 간 참이었다. 산 너머 상인의 서자라는 남가는 종종 집에 다녀왔다. 돌아올 때마다 고기며 솜옷이며를 등에 짊어지고 왔다. 어째서 나는 안 되고, 남가는 되는가. 앉은뱅이를 등에 지기엔 남가의 뼈가 튼튼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앉은뱅이의 지게는 평생 내 몫이란 말인가. 지게를 짊어지게 하려고 비전을 물려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스승이 말하는 「때」란 그가 세상을 하직하는 때일지도 모른다. 비전의 주인이 죽기만을 소원하면서 앉은뱅이의 다리가 되어 살 수는 없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심이 확고해졌다. 칼을 뽑아야 할 때 머뭇거리는 자는 검객이 아니라고 배웠다.
    문제는 앉은뱅이 스승의 목침을 훔치는 일이 왕의 목침을 훔치는 일보다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노상 목침을 가까이 두었다. 방에서는 늘 목침을 베고 누웠다. 뒷간에도 가지 않고 나에게 요강을 비우게 시켰다. 지게에 올라탈 때는 보퉁이 속에 목침을 집어넣었다. 비전은 풍문대로 목침 안에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스승의 머리를 치고 목침을 뺏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침만 훔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비전을 연마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을 거였다. 정과 살던 오막살이로 돌아가 비술을 익혀도 될 일이었다. 지게를 등에 지지 않고 정이 지어주는 더운밥을 먹으며 한 줌의 모래로 적의 눈을 멀게 하는 법을 익힐 것이었다. 소리 내지 않고 기왓장 위를 달리는 법을 연마할 것이었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복수가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미궁 안의 늙은 재상이 스스로 죽게 버려둘 수는 없었다.

 

 

 5

 

    입동(立冬)이었다. 바람이 더 매서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미리 짐 보따리를 싸서 개울가에 숨겨놓고, 아궁이며 바싹 마른 지붕이며 군데군데 불을 붙였다. 불은 내 편이었다. 불이 시원하게 타올랐다. 낮은 담 뒤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더니, 아버지, 하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송가가 건넌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낮잠 자던 앉은뱅이를 등에 업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내가 어디 있는지는 찾아보지도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아버지라니. 송가가 스승의 아들이었던가. 스승의 성은 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부자 사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스승과 제자로 속였을까. 순간, 발밑에 밟고 있던 죄책감이 달아났다. 나에겐 아버지가 없었다. 남의 아버지를 걱정해 줄 여유 따위 없었다.
    젖은 이불을 머리와 등에 뒤집어쓰고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문지방을 넘자 스승이 수족처럼 가지고 다니던 목침이 방바닥에 내버려져 있었다. 나는 불붙은 천장이 내려앉기 전에 재빨리 목침을 들고 빠져나왔다. 주지 않는다면 빼앗는 게 마땅했다. 나는 비전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었다. 죄가 아니었다. 공짜로 가져가는 게 아니었다. 몇 번이고 목구멍 안쪽에서 중얼거렸다.
    목침은 짐작보다 가벼웠다. 개울가로 뛰어가 숨겨놓은 보따리에 목침부터 쑤셔 넣었다. 젖은 이불을 뒤집어써서, 겉옷이 젖었지만 불똥에 크게 덴 데는 없었다. 추위 속에 젖은 옷을 갈아입을 경황도 없이 산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서, 아니 앉은뱅이를 지게에 지지 않고 내려가는 길이라 발이 빨랐다. 입술 사이로 뜨거운 김이 새어나왔다. 누구도 뒤를 쫓아오지 않았다. 앉은뱅이에게 갑자기 발목이 자라나 쫓아올 것도 아니었다. 내 칼이 아무리 무디다 한들 잠만 자는 송가는 상대가 못 되었다. 혹여 스승이 분신술을 써서 바람을 타고 쫓아온다면 목침에 불을 붙여 나도 죽고 비전도 재로 만들 작정이었다. 불에 타 죽어서라도 비전을 가져갈 작정이었다. 한참을 달려 내려오다 문득, 목침 안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보따리 안에 든 목침을 빼앗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등의 땀이 식었다. 나는 허리 굵은 나무 아래 멈춰 섰다. 반석을 골라 걸터앉았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한 목침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목침 모서리를 깔고 앉은 바위 위에 세게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그러진 목침의 뱃속에서 둘둘 말린 책이 창자처럼 비어져 나왔다. 그것의 주인은 나였다. 얼굴 없는 자객의 아들이었다.
    비전(秘傳).
    앉은뱅이의 다리가 돼주고, 팔이 돼주고, 도둑이 되어 훔쳐낸 비전이었다. 나는 이것에 명운을 걸었다. 내 복수의 길이 검은 먹물로 새겨 있을 거였다. 이 안의 글자와 그림이 몸을 빠른 새처럼 띄워줄 것이며, 미궁 안의 어둠으로 직진하게 이끌어 주리라. 과거를 되돌리는 일은 시간 문제였다. 나는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사각대는 소리를 들으며 비전을 펼쳤다. 흰 종이에 먹물로 그려진 그림을 골똘히 내려다보았다. 그림들은 비밀스러웠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겨보면 볼수록 어려웠다. 숲 속, 뿌리와 열매가 제각기 다른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서로 팔을 비벼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소리는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떠나온 숲에서 자주 듣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비비비 비-
    비비빗-
    비비비-
    흑-흐흐흐흐흐-
    들려오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책등을 갈라 쭉 찢었다. 교성이 멎었다. 검은 먹물로 그린 그림을 알아볼 수 없게 책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비전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책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앉은뱅이와 나, 둘뿐이었다.
    눈을 꼭 감고, 미궁 담을 넘어 어둠에 칼날을 꽂는 자객을 상상했다. 검은 두건 쓴 자객이 되어 기왓장 위를 빗방울보다 가볍게 달리던 꿈이 오늘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뜨듯한 것이 흘러내렸다. 곳간의 어둠에서 빠져나온 날부터 내 운명은 복수에 삼켜져버렸다. 아버지를 위한 복수인지, 정을 위한 복수인지, 나 자신을 위한 복수인지, 분간조차 어려웠다. 분명한 건 복수의 대상, 한 가지였다.
    비전의 그림 속에서는 복수의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원수의 얼굴을 대면할 수 없었다. 목침 안에 숨어 있던 자들은 맨몸을 뒤얽고 있는 이름 모를 여자와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한통속으로 몸을 섞고 있었다. 찢어발긴 춘화 조각 위로 묽은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그 다음엔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속았다. 속고 살았다. 무궁산에 미궁 담을 넘을 묘안은 없었다. 비전 같은 건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비밀은 비밀을 믿고 싶은 자의 마음속에만 존재했다. 나는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다. 삶을 되돌려 받지 못한다면, 복수로 갚아줄 생각이었다. 그것만이 과거를 위로할 방법이었다. 거짓말쟁이에게 앙갚음을 해야 했다. 앉은뱅이는 스승이 아니었다. 복수의 대상은 잠시 바뀌어도 상관이 없었다. 안 그래도 나는 복수에 오래 주려 있는 자였다.
    올라가는 길은 내려온 길보다 조금 더뎠다. 서둘러 산길을 오르는 동안, 그간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나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디뎌 밟으며, 내 운명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태어날 때 얼굴에 피가 묻으면 살인자가 될 팔자라고 했던가. 살인자가 될 줄은 알았어도 누구를 죽이게 될지는 몰랐었다. 어쩌면, 귓속에서 와글거리는 쇳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방물장수가 된 고모같이 국경을 떠도는 객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귀가 시렸다.
    집으로 돌아가면 정에게 내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아무래도 정은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정이 꿈속에서 날마다 침을 꽂는 자가 아닌 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면 절망할 거였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지도 몰랐다. 오늘 일은 죽는 날까지 비밀로 할 셈이었다.
    거짓은 때로 진실보다 몸이 더웠다.
나는 등에 아무것도 지지 않아 가벼운 몸으로 안개 낀 산길을 뛰어올랐다. 빨리 나는 새처럼, 아기 울음소리처럼 산등성이를 넘었다. 갈 길은 아직 멀고, 해가 저물어갔다.

 

 

 

   《글틴 웹진》

 

kaka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