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소설_몸] 마쉬

 

[3월 단편소설_몸]

 

 

마쉬

 

 

채현선

 

 

마쉬-소설삽화

 

    모니터 앞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 날들이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절망을 한 데 모아 푸딩을 만들고 그걸 한 입씩 떠먹는 기분이었다. 가슴에 무언가가 꽉 들어차 있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크게, 크게 들이켜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마쉬는 변했다.
    그렇다.
    갓난아기처럼 투실투실해져서는, 숨을 씨근씨근 몰아쉬곤 한다. 그러면 코끝에서 미세한 빛 알갱이들이 부서져 내렸다. 잘 여문 과일 같은 뺨으로 쿡쿡, 자주 웃었다. 그럴 때마다 얼굴에 물결 같은 게 자잘하게 일었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얼굴이었던 마쉬의 몸은 사람처럼, 이제 완전하고 완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누가 마쉬인 너를 불렀는가.”
    나는 굳은 입으로 어둠 속에 누워 마쉬에게 묻곤 했다. 그러면 마쉬는 자기 자신이 이유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수많은 것들 중 하나라 대답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더 묻지 않았다.
    마쉬를 만난 후,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내가 여전히 열여덟 살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많은 날들이 지나간 것도 사실이다.
    마쉬 말대로 열정의 날들이었다.
    수많은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고 믿는다. 초침과 분침이 수천 번 수만 번 교차하고 멀어져가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다시 맞닿는 동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든 나는.
    마쉬가 나와 함께 하게 된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고 느리게 들려주곤 한다.
    그건 내가 일부러 만들어낸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든 언제든 수많은 시침과 분침이 교차하고 멀어지는 동안의 나는, 자주 이렇게 한다.

 

    이를테면,
    마쉬는 노래와 함께 왔다.
    생리통으로 아랫배가 조금 찌릿찌릿하게 아플 뿐 보통의 날과 다름없는 밤이었다. 불을 끄기 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달빛이 기묘하게 흐렸다. 기이하고 묘하게 흐린 빛, 그 느낌을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런 밤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잠이 들었던 나는 기묘한 음률에 눈을 떴다. 날이 밝지 않아 사방이 어슴푸레했다. 곧 별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달이 멀어지는 시각이 다가올 거였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마쉬, 마쉬, 하고 같은 구절이 반복되었다.
    누군가 입김을 불어넣은 것처럼 온기 섞인 바람이 얼굴로 불어왔다. 나는 눈을 떴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마쉬, 마쉬.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한층 더 어두컴컴한 그것이 말했다.
    나는 또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자고 열여덟의 나는 이런 시커먼 것을 불러내 마쉬, 마쉬, 하는 바람 같은 말소리를 듣고 있는가. 나는 어둠 속에 누워 곰곰 생각했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시커먼 그것이 쿡쿡, 웃었다. 입이 있어야 할 곳에서 뜨거운 입김 같은 것이 나와 내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세상의 어딘가에 뜨거운 함박눈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쉬, 마쉬.
    주문을 외듯 그것이 그런 것들을 되풀이했다.
    “그러지 말고 말을 해라, 말을.”
    내가 먼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처음 마주하는 것에 결코 불친절하게 굴 생각은 없었지만 꿈속이라 생각해 말이 그렇게 나왔다. 진심이었다.
    “그럴까?”
    기다렸다는 듯 시커먼 그것이 내 위에서 물러나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분명, 그림자였다. 눈과 코와 입이 없는 얼굴만 빼면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림자 따위라면 무서워할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이니까.
    “단도적으로 말하겠다.”
    “단도직입적이겠지.”
    더구나 불완전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상대라면, 그만큼 빈틈이 많다는 뜻이다. 나는 잔뜩 오므렸던 발가락들을 천천히 폈다.
    “아직 진행 중인 몸이라 그렇다.”
    그것이 말했다. 역시 그림자 따위, 완전하지 않구나.
    나도 그것처럼 일어나 앉아야 하나 어쩌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쑤욱,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응?”
    내가 물었고,
    “가위 바위 보를 하자.”
    그것이 대답했다. 나는 그림자가 내민 손을 누운 채로 멀뚱히 올려다보았다. 검은 손가락들은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한 윤곽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림자가 손가락들을 눈앞에서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그림자 따위와 가위 바위 보라니. 왜.

 

    나는,
    ‘그림자를 보았다’라고 첫 문장이 시작되는 소설을 읽었다.
    그러니까 한밤의 그림자 마쉬를 만나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침대에 엎드린 채 허공에서 발을 대롱거리며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단숨에 그 소설을 읽어버렸다. 시작이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림자가 일어선다니.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가령 이렇게 그림자가 일어서는 일이 그렇다.
    소설 속 이야기는 이랬다.
    발끝에 매달려 있다 떨어져 나간 그림자를, 자칫 방심하면 주인이었던 내가 오히려 그 그림자를 홀리듯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죽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몸이든 정신이든, 어느 쪽으로든. 그러나 주인공은 끝내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가 발끝에서 일어서려는 그림자를 잊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유일하게 그림자를 잊게 하는 것은 사랑으로 자신을 인정받는 것. 가족이든 연인이든 또 다른 타인이든. 그것은 외로움이나 고독이라는 단어에서 한 뼘쯤 물러서는 일이라 했다.
    외롭거나 고독하면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인가. 사람은 그런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침이 왔고 나는 아아,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소설책 한 권을 단숨에 읽느라 꼬박 날을 샜지만, 몸이 바람을 타며 가볍게 움직였다. 몸이 가벼운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허공에서 붕붕, 몸과 마음이 이상하게 그랬다.
    어쩐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메일함에 새로 온 메일이 삼백 통이 넘었다. 읽지 않고 휴지통에 모두 버리고 바로 웹진으로 들어갔다. 내가 쓰다가 연재를 중단했던 소설 페이지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마우스에 손을 올려놓고 길게 몇 번 숨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깊게 들이켜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서 숨이 막혀왔다.
    역시 댓글 따위 보지 않기로 한다.
    웹진을 빠져나와 한글 작업창을 열었다. 손끝으로 모든 힘이 빠져나가버린 것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몇 번 더 자판에 손을 올렸지만 변함없었다. 작업창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책을 읽었다. 역시 발끝에 따끔따끔하고 묘한 느낌이 일었다. 시작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아아, 탄식 같은 긴 숨을 내쉬었다. 이야기를 알아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재능 같은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 한 꼭,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도.
    나는 얼마 전까지 인터넷 웹진을 통해 소설을 써왔다. 열여덟의 인터넷 소설 작가, 그게 바로 나였다.
    내 소설에 관한 반응은, 깜짝 놀랄 만큼 폭발적이었다.
    ‘고등학생 작가인 마리가 쓰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내 소설이 기사화되자 온갖 시선들이 나에게로 모이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많은 눈동자들이, 이상할 만큼의 시커먼 눈동자들이 소설을 읽고 반응을 해왔다. ‘마리’라는 가명이 아니라 내 본명으로 나서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게 나예요, 나 여기 있어요, 말하고 싶어 온몸이,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허공으로 툭툭 튀어 오르는 듯했다.
    대단할 건 없었다. 나는 그냥 썼다. 생각나는 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 손가락들이 그런 말들을 받아 적을 뿐이었다. 내가 쓰는 것들이 모두 나만의 독창적인 소설이 되었다. 다음 회를, 또 그 다음 회를, 왜 빨리 올리지 않는 거냐는 항의 댓글을 볼 때마다 등뼈가 움찔거렸다. 독자들이, 세상의 모든 눈 달린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었다.
    ‘균열은 아주 작은 틈새로 스며든다’라는 문장을 읽은 날이었다.
    “어, 오. 나 이거 아는 얘긴데. 식상하네.”
    이런 댓글이 내 소설 밑에 달렸다. 그 문장이 모든 것들을 바꿔 놓았다. 아무것도 아닌 글자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 문장이 모든 것들을 휘저어놓았다. 그 댓글 밑에 다른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네가 만들어낸 얘기를 써라,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얘기는 집어 치우고 너만의 이야기를 해라. 사기 치는 고딩이라는 말부터, 거짓말쟁이나 식상한 얘기의 달인이나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 섞인 말까지. 흐름이 한 번 그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자 물결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소설 연재를 중단해야 했다. 내 소설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적으로 변하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니터 앞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 날들이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절망을 한 데 모아 푸딩을 만들고 그걸 한 입씩 떠먹는 기분이었다. 가슴에 무언가가 꽉 들어차 있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크게, 크게 들이켜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학교에 내리 결석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종일 소리를 지르거나 친구들의 전화나 메시지들을 모른 척했다. 밥도 방에서 혼자 먹었다. 엄마가 방문을 두드리면 한 시간 동안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아무도 찾아오지 앉았다. 나는 내 방에 나를 가두고 완전한 혼자가 되었다. 그러고 나면 숨쉬기가 조금 편해졌다. 방문 앞에서 손으로 입을 막고 울음을 우는 엄마와 아빠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내가 먼저 살아야 했다. 열여덟 살이었지만, 나는 이미 백 살까지 시간을 살아내 버린 노파처럼 늙었다. 온몸이 주름으로 쭈글쭈글했다. 내가 거울로 보는 내 모습은 그랬다.
    나는 몇 달 동안을 노파로 살고 있었다.
    누구라도 소설을 써준다면. 그래서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천천히,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새벽의 거리로 뿌연 안개 같은 것이 밀려오는 게 보였다. 멀리서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골목은 깊게 어두웠다. 창문을 닫고 방안의 불을 끄자 절망의 푸딩을 떠먹던 나의 하루가 함께 꺼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 파일을 열어 무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절망의 푸딩이 함께 꺼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어둠이 다 물러가지 않은 새벽.
    그림자 같은 시커먼 것이 나를 내려다보며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왜.
    나는 일어나 앉으며 그림자에게 묻는 것도 나에게 묻는 것도 아닌 혼잣말 같은 질문을 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하자.”
    그림자 같은 그것이, 얼굴이 없는 채로 말했다. 반들반들한 게 꼭 새까만 조약돌처럼 보였다. 그것이 다시 검은 손가락들을 내 눈앞에서 천천히 흔들었다.
    “이유는 애기해 줘야지. 어떤 일이든 순서가 그렇잖아. 생각해봐라. 난 지금 충분히 황당하다고.”
    말이 술술 나왔다. 한동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내 모습이었다.
    “그런가.”
    내 말에 금세 그것이 주눅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것의 말대로라면, 그림자 같은 그것은 내 등뼈에서 솟아났다.
    “나는…”
    하더니 작게 숨을 골랐다. 그것의 새까맣고 반반한 가슴이 풍선처럼 후욱, 솟아올랐다 내려앉았다.
    “뭐래.”
    나는 다시 한 번 뭐래, 하면서 손으로 내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등뼈가 찌릿찌릿했다.
    “이름. 마쉬.”
    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가끔 마쉬, 마쉬, 하고 중얼거렸는데, 그건 자기가 자기에게 붙여준 이름이라 했다. 이름의 이유를 묻자 그냥 마쉬,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처음에도 마쉬, 마쉬 하는 소리와 함께 왔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름이 마쉬라는 그것은 믿기지 않겠지만 자기가 내 그림자인 모양이다, 라고 말을 이었다. 내 그림자면 그림자이지 그림자인 모양은 뭔가, 하고 묻자 그것은 자기도 그런 건 잘 모르는 일이라 했다. 자기는 아직 진행 중인 몸이라 하며,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 하며, 독립적으로 여기 앉아 있긴 하지만 자기가 왜 왔는지, 자기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며.
    “됐고.”
    내가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데도, 그림자답지 않게 징징 곧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너의 등뼈에서 태어났으니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 가위 바위 보를 하자.”
    그것의 검은 입이 말했다. 작게 열려 뻐끔거리던 입이 조금씩 열리는가 싶더니 검은 잇몸에 하나둘씩 작은 치아들이 주르륵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곧 죽는댔다. 몸이든, 정신이든, 아무든 어느 쪽으로든.”
    나는 그것, 그러니까 마쉬의 눈이라고 짐작되는 부분을 피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냐하하하.
    그것이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며 한참 동안 웃었다. 배 부분을 벅벅 긁기도 했다.
    “그건 소설일 뿐이다. 말이 되는가.”
    “그럼,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하는 내 등뼈에서 솟아난 그림자인 내 앞의 너는 말이 되는가.”
    내 말에 마쉬라는 이름의 그것이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런가?”
    그러더니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자동차가 길 위를 미끄러지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비가 내리는 모양이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하고 나면 분명 내가 열정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너는 여기에 스탬프를 찍는다.”
    마쉬의 검은 손가락이, 그보다 한층 더 새까만 품속에서 바둑판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그 옆에 사각의 작은 스탬프 도장이 함께 놓였다. 앙증맞아서 사랑스러운 도장이었다.
    마쉬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나는 마쉬, 마쉬, 하고 부르면 된다. 마쉬가 나타나면 하나의 칸에 스탬프를 찍는다. 그러면 마쉬가 내가 원하는 일을 대신 해준다.
    “하지만 나는 널 부른 적 없어. 내 등뼈에서 솟아났다고는 하지만 내 기억에 그런 일은 없어. 나는 널 따라가지 않을 거야.”
    “나를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조금씩만 나눠 갖자는 거다, 너의 몸을. 사실 긴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그건 별일도 아니지 않은가. 너는 나의 원본이고, 나는 네 등뼈에서 생겨난 너의 그림자니까 아주 조금만 함께 하자는 건데.”
    마쉬가 말했다. 그것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린 듯 가위 바위 보도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마쉬는 주먹을 내고 나는 보를 냈다. 내가 이겼는데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건 그냥 규칙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어떤 일의 시작 같은.
    마쉬, 마쉬.
    마쉬가 주문처럼 자기 이름을 다시 중얼거렸다. 눈이나 코나 입 같은 게 선명하지 않아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크게 두렵진 않았다. 그것의 말대로라면 내 등뼈에서 솟아난, 그래서 내 그림자가 된 나의 일부라 생각하면 무서울 것도 없었다. 어디선가 작은 바람이 밀려와 얼굴을 간질였다. 나는 다시 발가락을 오므리고 침대에 누웠다. 예상보다 잠은 쉽게 몰려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절망의 푸딩 같은 하루하루가 똑같은 날들로 이어졌다.

 

    머리맡에 작게 칸이 나뉜 종이와 스탬프 도장이 놓여 있지 않았더라면 꿈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변화 없는 날들을 보내며 나는, 그 밤의 마쉬를 종종 잊었다. 가끔은 내 발끝에 매달린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는데, 그것은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에 내 키보다 두 배쯤 길게 방바닥 위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면 마쉬, 마쉬, 하고 귓가에서 바람이 작게 일렁였다.
    “마쉬.”
    그림자를 바라보다 마쉬를 부르는 때도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그림자 따위,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하는 건가.
    꿈이었나. 내게 잘못 찾아왔다가 자기의 진짜 원본이 짠, 하고 나타나 그곳으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마쉬를 자주 잊었다.
    며칠이 더 지나자 나는 내가 만든 절망의 푸딩을 떠먹느라 진정, 그 밤의 마쉬를 잊었다. 사실이었다. 진심이었다.
    “독립적인 밤이다.”
    하고,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내가 말했는지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는지 따져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독한 잠이 밀려왔다. 이어폰을 꽂은 채 누워 있던 내 몸이 서서히 어둠의 바다 속으로 내려앉았다.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창문에 어린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런 것 같았다. 가느다란 선 같은 나뭇가지들이 창문을 조그맣게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우리집은 12층의 아파트인데 어디서 저런 나무가 자라나 창문을 긁어대나, 하면서도 눈이 감겼고 다시 떠지지 않았다. 삼 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던 내게 지독한 잠은 빛처럼 몰려왔다.
    마쉬, 마쉬, 하고 귓가에 따뜻한 바람이 일렁였고 동시에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독립적인 밤이다.”
    마쉬가 쪼그려 앉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둠보다 한층 더 새까만 덩어리의 마쉬 몸이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한 빛으로 반들반들했다.
    “부르라니까.”
    “불렀어.”
    “스탬프를 찍어야지. 열정을 담고 불러야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그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는가.”
    마쉬가 나뭇가지 같은 검은 손가락을 뻗어 내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몽글몽글한 강아지 털에 한껏 얼굴을 묻는 느낌이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하자.”
    마쉬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누운 채로 그것과 가위 바위 보를 했다. 이번엔 마쉬가 이겼다. 기분이 좋았는지 흥흥 콧바람을 내뱉으며 웃었다. 스탬프를 찍고 나자, 호기심이 가슴 안에서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이상하지.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마쉬는 마치 검은 ‘졸라맨’처럼 생겼다. 나와는 다르게 생긴 내 등뼈에서 솟아난 나의 그림자라니.
    찾아보기로 한다.
    나는 단발머린데 마쉬의 머리는 민둥했다. 일어섰을 때 나도 일어나 눈으로 대충 키를 재봤더니 나와 비슷했다. 자판을 치는 손가락 굵기나 길이도 마찬가지였다. 허리사이즈를 재볼까, 한 번쯤 손으로 만져볼까, 그러다 그만두었다. 온통 새까만 그림자 따위를 만지는 건 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마쉬를, 예상했던 것보다 자주 불렀다.
    마쉬, 마쉬, 부르면 마쉬가 어디선가 나타난다. 처음엔 홀로그램 같은 흐릿한 모습이다가 점점 선명해지는 식이었다. 마쉬가 완전한 마쉬가 되면 나는 스탬프를 찍는다. 간단했다. 마쉬만 있다면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았다. 정말로 내 등뼈에서 솟아난 내 그림자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처음의 나는 마쉬가 했던 말들을 믿지 않았었다.
    내 등뼈에서 솟아오른 그림자라니. 보통 그림자라는 건 발끝에 매달려 있거나 등 뒤에 따라오는 것이고, 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건데. 내 몸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는 것인데. 나와 모습도 생각도 다른 독립적인 그림자라니.
    “또 영영 못 쓰겠는가.”
    “그래.”
    나는 모니터에서 물러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어느새 마쉬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옆으로 와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마쉬는 심각할 정도로 조용하게 움직이는 그림자였다. 내 옆에 앉아 있는가 싶었는데 눈을 한 번 끔뻑이고 나면 저만치 멀어져 방구석에 가 있는 식으로 움직이곤 했다. 나타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스르륵 다가왔다 스르륵 멀어졌다.
    “자, 열정적으로 써보자.”
    마쉬가 말했다. 내가 무언가를 묻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자 검은 얼굴에 자잘한 물결이 일었다. 마쉬의 얼굴에 어떤 변화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열정이라는 말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거든.”
    무조건 ‘다’로 끝나곤 했던 말투가 언제부턴가 한결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그런가.”
    심드렁한 얼굴로 내가 말했다. 그러자 마쉬는 열정이라는 말에는 한여름 들판의 바람 같은 냄새가 스며 있고, 강 위로 부서져 내리는 푸른 달빛이 어려 있고, 콜라를 마시고 청룡열차에 탄 것 같은 짜릿함이 숨어 있다고 했다. 그 한 단어가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다고도 했다.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말이었다.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달라고 했더니 마쉬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긴 줄 알았는데, 아주 길게 말이 없었다. 굳게 입을 다물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만 했다. 이미 이십 회 분량의 소설 파일이 웹진 운영자에게 건네졌다.
    무서울 정도로 일이 간단하고 쉽게 풀렸다.
    연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모든 게 마쉬 덕분이라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이십 회의 소설을 완성한 건 분명 나였다. 등뼈가 꿈틀꿈틀, 또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좀 마음이 사나워졌다. 손바닥으로 등뼈를 쓱쓱 문지르고 나서 책상 한쪽에 놓인 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주근깨가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있던 콧등의 주근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아침에 일어나 무심결에 다리를 만져보고 고개를 갸웃, 했던 일이 떠올랐다. 손끝에 닿은 감촉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나는 손으로 다리를 쓸어보았다. 말랑말랑한 아기 얼굴을 만지는 듯했다.
    “눈을 감으렴.”
    마쉬가 말했다. 누운 채로 올려다보니 어쩐지 마쉬가 훌쩍 커져버린 것 같았다. 어른처럼 말하는 마쉬는, 한밤에 깨어나 듣는 빗소리처럼 아득하게 멀고 낯설었다.
    나는 마쉬를 부를 때마다 한 시간씩 잠을 잤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어떨 때는 한 시간씩 네 번을 잔 적도 있었다. 처음으로 마쉬를 네 번이나 불렀던 날이었다. 한꺼번에 시간을 몰아서 자면 편하겠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규칙을 지키고 싶었다. 그날 나는 네 번 깨었다 네 번을 다시 잠들어야 했다.
    “이제 자면 되는 거야.”
    마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귓속으로 뜨거운 입김이 훅,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동안 자고 일어나면 되는 일이었다. 옆으로 돌아누우려는데 어딘지 모르게 몸이 헐거운 느낌이었다. 나사가 하나 빠져버린 것처럼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 내 몸이 내가 주인 같지 않은 것처럼 헐거운데도, 내 안 어딘가에서 지독한 졸음이 몰려오다니.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마쉬가 무얼 하는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단 한 번도.
    규칙대로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마쉬는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
    눈을 떠보니 마쉬는 여전히 모니터 앞에 있었다. 소설을 다 썼는지 손은 멈춘 채였다. 축 처진 어깨로 조금 지친 듯 숨을 천천히 골랐다.
    마쉬는 내가 쓰다가 손을 놔버린, 그러니까 커서가 멈춘 곳에서부터 소설을 풀어나갔다. 마쉬가 하는 이야기는 어느 땐 한 장 안에 끝날 때도 있고, 세 장이 넘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 마쉬가 써놓은 이야기 분량에 따라 내가 쓸 이야기를 조정해 한 회분 소설을 완성했다. 새로 쓰는 소설의 배경은 펜션과 탐정사무소를 동시에 운영하는 곳이다. 주인공은 영혼으로 남은 여동생의 혼령을 등에 매달고 살아가는 팔십 살 먹은 탐정 할머니였다. 그녀가 펜션과 탐정사무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해나간다는 설정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정말 독특하게 다른 전개와 감각, 그것이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이었다.
    “마음에 들 거야.”
    마쉬는 매번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인지 순식간에 내 고민을 해결해냈다. 사냥개처럼 새로운 이야기들을 물어왔다. 그러고선 사탕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의 미세한 변화들을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매번 사실이었다. 재미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빠져들게 했다. 다 읽고 나면 온몸의 모든 털들이 일어섰다. 묘한 기운으로 손끝이 저리고 발가락이 저절로 꿈틀거렸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웹진창을 들여다보던 마쉬가 침대에 누운 내 쪽으로 모니터 방향을 틀어주었다.
    ‘이야기에 관한 독창적인 감각을 지닌 작가 마리, 당신의 새로운 커밍에 축하를!!’
    그 밑으로 긴 글 하나가 더 이어졌다. 며칠 전부터 단순한 댓글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별한 감상을 적는 독자의 글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자세히 읽어보고 싶었다. 다시 한 번 일 년 전의 새까만 눈동자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빨리, 어서 일어나 모니터 앞으로 가야 했다.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몸이 한쪽으로 휘청, 기울었다.
    발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내려다보니 바짓단이 한 뼘쯤 늘어나 있었다. 티셔츠도 마찬가지였다.
    “놀라워라. 자고 일어나 보니 한 뼘씩 자라 있는 옷들이라니. 마쉬, 이것 좀 봐.”
    마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러나 금세 조용해지고 방금 전보다 더 깊은 고요가 찾아들었다.
    “성질 급한 그림자 같으니라고. 내 등뼈에서 솟아난 그림자 주제에 항상 자기 마음대로라니까.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지. 사라질 때도 나타날 때도 내 허락을 구해야지.”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말하며 방바닥에 발을 디뎠다. 이번엔 슬리퍼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 방에서 나만 신는 건데 도대체 누가 가져간 걸까. 나는 바짓단을 질질 끌며 책상으로 걸어갔다.
    모니터 화면의 커서가 어떤 신호처럼 깜빡거리고 있었다.
    내 소설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감각, 깜짝 놀랄 만큼 새로워진 마리의 감각. 종일 마리가 만들어내는 소설을 기다렸다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주르륵 매달린 새까만 단추 같은 글자들이 끝없이 긴 선으로 이어졌다.
    바로 나야. 내가 만들었어. 댓글들 밑에 이런 말들을 달아놓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등뼈가 심하게 가려워졌다. 의자 등받이에 대고 등을 박박 문질렀다. 껍질이 벗겨졌는지 살갗이 쓰라렸다. 요즘은 툭하면 피부가 벗겨지곤 한다. 아기의 여린 피부처럼 어딘가에 슬쩍 스치기만 해도 피가 배어나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번 달에도 이번 달에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걱정해야 하는 걸까, 곰곰 생각했다. 브래지어가 헐거워 끈들을 바짝 조인 후에 다시 입었다. 생리 따위야 뭐, 하고 생각하자 내 안 어딘가에서 별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나는,
    내가 그림자일지 모른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혹시라도 정말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거라면 나는 꿈같은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쓰는 나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마쉬, 마쉬.
    하고 마쉬가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쉬는 이제 사라지지 않는다.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혼자 나타나 소설을 써서 웹진 운영자에게 보내고 소설에 달린 댓글들을 읽으며 흥흥, 하고 웃는다.
    소설은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이제 삼 회분이 더 건네지면 연재는 끝난다. 마쉬가 해준 말대로라면 그랬다. 연재가 끝나는구나.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넌 무얼 하지?”
    사방이 어슴푸레해서 밤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나? 내가 무얼 하냐고?”
    어둠 속 어딘가에서 마쉬가 다시 물어왔다.
    “그래,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넌 무얼 하느냐고. 나도 알고는 있어야지. 내가 원본이고 너는 내 등뼈에서 솟아난 것일 뿐인데 나한테 그럴 권리는 충분히 있어야지.”
    나는 마쉬의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말했다. 한참 귀를 기울여도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 침묵의 어둠 속에 나는 있었다.
    예전엔 별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달이 멀어지는 일 따위를 보지 않고서도 알아맞힐 수 있었는데. 예민한 감각이 부르는 것들은 모두 내 것이 되곤 했는데. 이불이 몸 위를 미끄러지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낸다든지, 방안의 물건들이 조금씩 어긋나며 내는 소리라든지, 열어둔 창문에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는 커튼의 미세한 소리라든지, 12층의 아파트이지만 나뭇가지 따위가 창문을 긁어대는 소리라든지 초침과 분침이 교차하고 다시 멀어지는 소리쯤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고 들을 수 있었는데. 같은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내 방문 앞에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는 엄마 아빠의 울음소리쯤은 아주 쉽게, 듣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소리들이었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마쉬에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입에서만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말이었다. 나는 아주 검고 작아졌다. 이제는 계속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몇 달의 시간을, 어쩌면 몇 년의 시간을 이렇게 침대에 누워 지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여기.”
    마쉬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말했다. 귓가에 이는 뜨거운 바람에 온갖 반찬 냄새들이 섞여 있었다.
    “밥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배가 고프지 않아.”
    “당연하지, 내가 먹는걸.”
    “도대체 무얼 하는 거야?”
    마쉬는 대답하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기 전 나는 마쉬가 하는 일들을 희미하게라도 볼 수 있었다. 마쉬는 엄마 아빠와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나는 열린 문으로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곤 했다. 내 발뒤꿈치와 닮은 발뒤꿈치를 하고서 조용히 거실을 가로질렀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외면해버렸던 나의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라 했다. 내가 놓아버렸던 나의 시간을 살아간다 했다. 엄마 아빠와 자연스럽게 안고 인사하며 다려놓은 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녀왔다.
    “엄마, 그건 마쉬예요. 내 등뼈에서 솟아난 내 그림자일 뿐이에요.”
    마쉬의 머리카락을 따뜻한 눈으로 긴 시간동안 빗어주는 엄마에게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 몸은 이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온통 검고 손톱만큼 작아졌다. 마쉬는 그런 나를 작고 부드러운 손수건에 올려놓았다.
    “조금 더 작아져야 해.”
    마쉬는 날마다 손수건 속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왜? 나는 지금 충분히 손톱만큼 작아졌다고. 네가 내 몸을 다 차지해버렸잖아.”
    “네 몸을 내어주는 스탬프를 규칙적으로 찍은 건 바로 너야.”
    나는 고개를 갸웃, 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규칙을 만든 건 너잖아?”
    “처음부터 규칙 같은 건 없었어. 네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믿고 그렇게 했을 뿐이지.”
    마쉬가 대답했다. 나는 흥흥, 마쉬의 웃음 같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마쉬는 변했다.
    갓난아기처럼 투실투실해져서는, 숨을 씨근씨근 몰아쉬곤 한다. 그러면 코끝에서 미세한 빛 알갱이들이 부서져 내렸다. 잘 여문 과일 같은 뺨으로 쿡쿡, 자주 웃었다. 그럴 때마다 얼굴에 물결 같은 게 자잘하게 일었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얼굴이었던 마쉬의 몸은 사람처럼, 완전하고 완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마쉬가 검지로 손수건 속에서 나를 집어 올렸다.
    나는 아주 작고 검은 씨앗으로 변했다. 이렇게 작아져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좀 사나워졌다.
    “밤인가?”
    “밤이야.”
    마쉬가 대답했다. 내 발뒤꿈치를 닮은 발뒤꿈치를 하고서 고양이처럼 조용조용 걸어 안방 문을 열었다.
    “너는 이제 또 다른 마쉬로 살아가면 돼. 그러니까 이름이 마쉬란 걸 잊어버리면 안 돼.”
    마쉬가 엄마의 다리 사이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나는 엄마의 다리 사이로 굼틀굼틀 기어갔다. 엄마의 질은 따뜻하지만 축축했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나는 머리를 있는 힘껏 밀며 엄마의 자궁을 향해 올라갔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엄마의 굳게 닫힌 자궁 속으로 쏙, 골인하고 나자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리고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열정의 날들이었다. 수많은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고 믿는다. 초침과 분침이 수천 번 수만 번 교차하고 멀어져가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다시 맞닿는 동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엄마의 자궁 안에 웅크리고 누워 나를 키운다. 하지만 뼈가 굳고 살이 자라나는 동안엔 조금 외로울 수밖에 없어서, 또 할 수 없이 마쉬와의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누구에게든 언제든 수많은 시침과 분침이 교차하고 멀어지는 동안의 나는, 자주 이렇게 한다. 엄마 자궁 속의 나는 아주 검고 작고 반들반들한 씨앗이므로 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중간 중간 나의 또 다른 나인 마쉬를 부른다. 나는 영영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마쉬가 되고 싶어 열정적으로 부른다. 마쉬, 마쉬, 하고.

 

 

 

   《글틴 웹진 3월호》

 

kakao
....

1
댓글남기기

로그인 후 사용해주세요.
1 Comment threads
0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1 Comment authors
기린꿈

와 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