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단편소설_맛] 책상

 

[4월_단편_맛]

 

 

책상

 

 

윤고은

 

 

책상-삽화

 

    ……누구나 책상 하나의 무게는 다 짊어지고 걸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뭔가에 짓눌린 듯한 이 기분을 느끼는 것도 결국은 내게 할당된 양이니 감당해야 한다는 걸 말이죠. 빼면 다시 채우고 빼면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는 저 늙은 선생도 있는데, 나라고 여기서 물러날 수 있겠냐 싶었던 겁니다. 누구나 인생이 몇 조각으로 큼직하게 부서질 수 있지 않을까요, 통으로 붙어 있는 인생은 없다고, 그건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습니다.

 

 

 

    속기사가 한때 유망직종이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한때’가 아니라고 반박할 사람은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나는 두 해 전에 속기사 자격증을 땄고, 그건 어머니의 선견지명에 의한 것이었는데, 속기사 자격증이 공무원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머니와 같은 경로로 판단을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나 봐요. 고로, 나는 아직 공무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속기사 자격증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일을 해야 했고, 그러기에 이 아르바이트는 썩 괜찮은 근무환경을 제공했거든요.
    나는 비서입니다. 내 고용주는 하필 작가고요. 이렇게 말하면 그 작가가 내 말을 딱 끊고 끼어들지도 모릅니다. ‘하필, 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이러면서 말이죠. 무슨 의미긴 무슨 의미겠어요. 많은 직업 중에 왜 하필 작가가 나를 고용했느냐 이 말이죠. 내가 작가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걱정하시더군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작가들의 캐릭터를 좀 보세요, 걱정 안 하게 생겼나. 물론 모든 작가가 성질 더럽고 지저분한 건 아닙니다만, 한 직업군에 대한 고정관념이란 건 아무래도 통계가 어느 정도 바탕이 된 거 아니겠어요? 난 그렇게 믿게 됐습니다. 작가의 비서로 일한 다음부터 말이죠.
    작가 밑에서 비서로 일하는 경우를 보면 작가지망생이거나, 문학을 아주 좋아한다거나, 뭐 그런 특징들이 있나 보던데, 내 경우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를 고용한 작가는 소설을 쓴다고 하더군요. 오래 전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적이 있었다고 하고요. 뭐, 그분 말로는 원래 신춘문예로 등단하면 그 해에 한두 명만 살아남는다던데, 자신이 그 중 한 명이라고 합디다. 난 사실 그쪽 세계의 생존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만, 그게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된 적은 없습니다. 면접 때 내가 작가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 아세요? ‘작가님의 소설은 어떤 건가요?’라든지, ‘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세요?’와 같은 질문들을 했는데,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던 겁니다만, 작가는 썩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런 질문을 엄청 싫어한다더군요. 사실 비서 면접인데 질문은 내가 더 많이 한 셈이었어요. 이렇게 묻기도 했죠.
    “작가님이 쓰시는 소설이 판타지인가요? 에세이인가요?”
    작가는 웃더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방언이 터지기라도 하듯, 엄청난 말들을 쏟아내더군요. 에세이는 소설 아래에 속한 하위개념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건 소설과 대등한 갈래에 있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소설 쓰는 사람에게 당신의 소설이 에세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다, 뭐 그런 얘기들 말이에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사실 그쪽 세계에 대한 관심을 딱 끊었거든요. 그렇지만 그 황당한 질문 때문에 내가 고용된 거랍니다. 작가는 오래 전에 비서를 한 명 둔 적이 있었대요. 그런데 그 비서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해가는 바람에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문학에 무관심한 내가 이 작가에게 일종의 신뢰감을 준 겁니다. 나는 면접 다음 날부터 24인치 캐리어 하나와 박스 세 개를 들고 역삼동에 있는 오피스텔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가의 작업실이었는데요. 방이 두 개 딸려 있어서 그 중에 하나를 내가 사용할 수 있었어요. 숙식이 해결된다는 게 어찌나 좋던지요. 작가는 매일 오긴 했지만 이곳에서 잠을 자진 않았고요. 월급이요? 그런 걸 물으시면 되나. 일단 내가 하는 업무의 양과 성격에 대해 들어보고 판단하세요. 내가 얼마쯤 받으면 될지. 참고로 경력직은 아닙니다만 속기사 자격증이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작가들은 담배 정도 있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지내보니 작가의 작업환경이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결이 필요한 형태였어요. 이 작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담배를 피우려면 오피스텔 건물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작업실로 돌아오기 전에 몸에 향수를 뿌려야 하고요. 담배 대신 작가는 커피나 차를 마시고요. 특이하게도
    초콜릿이 입혀진 해바라기씨를 중요하게 챙기더군요. 내 업무 중의 하나는 작업실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때 구비해두는 거예요. 이를테면 원고지라든지, ‘딥블루’라는 이름의 만년필 잉크, 네스프레소 캡슐이나 초콜릿이 입혀진 해바라기씨 등이죠. 종종 곰 모양 젤리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만년필 잉크 한 번 잘못 주문했을 때 어찌나 짜증을 내던지,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발터벤야민도 작가의 집필도구에 대한 까다로움을 허락했다고 말이죠. 글쎄 발터벤야민이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끼리끼리 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은 그래도 몸은 어쩌겠어요. 작가는 똑같이 생긴 두 대의 만년필을 돌려서 사용하는데, 그 중에 하나를 수리하기 위해 맡겼다가 찾아가던 중에 고비가 한 번 있었죠.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요. 덜컹거리는 틈에 제 열린 가방 틈에서 그 만년필 케이스가 휙 날아가 버린 겁니다. 뒷좌석 등받이 뒤로 떨어졌는데 그걸 줍기 위해서 나는 버스 종점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기어 들어가서 볼펜을 꺼냈을 때는 이미 흰 티셔츠에 검은 자국이 마치 타이어 자국처럼 나 있은 후였죠. 이 작가의 작품에는 확실히 내 땀의 일부가 들어가 있을 거란 겁니다.
    오랜 시간 원고지에 익숙했던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원고지 위에 글을 쓰는데, 그 육필원고를 컴퓨터로 옮겨주는 것도 내 몫이에요. 옮긴 다음 인쇄해서 다시 작가에게 건네주고요. 컴퓨터가 아니라 원고지의 것을 또 원고지로 옮겨놓기도 하죠. 타인의 필체로 쓰인 자신의 글을 읽는 게 꽤 도움이 된다고 하더군요. 작가가 글을 다 마무리하면 그걸 출판사나 잡지사에 보내는 것도 내가 합니다. 내 이름이 아닌 작가의 이름으로 가는 메일인 셈이죠. 우편물이 오면 받아두는 것도, 청탁메일이나 독자와의 SNS소통을 관리하는 것도, 다 내가 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게 내 업무는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작가가 내게 의존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나도 작가의 이름으로 답하는 것이 나름 재미있게 느껴졌고요. 때로는 신문기사를 오려서 작가의 책상 위에 올려두기도 해요. 작가의 구미에 맞을 듯한 기사들을 오려두거나 인쇄해서 모아두는 거죠. 그의 구미에 맞을 듯한 기사들이 뭔지 어떻게 아나,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대충 이 작가의 취향을 알겠더라고요. 그 취향이 이제 내 취향이 된 셈이죠. 어떤 글을 봐도 이제 작가의 취향을 고려해서 반응하게 된다니까요.
    작가는 오피스텔의 다른 방을 집필실처럼 쓰는데, 그 방의 두 면은 코르크 형태의 벽이어서 거기에 온갖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그 메모를 붙여놓는 것도, 이미 사용된 메모를 폐기하는 것도 내 몫입니다. 작가는 모르지만 약간의 질서도 필요하죠. 좌표처럼 위아래 메모의 배열을 보면 이 메모가 생성된 날짜를 알 수가 있어요. 혹시 영감의 재생이 필요한 경우를 위해서 날짜별로 붙여두는 거죠. 재미있는 건 작가가 문장 하나 때문에 소설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다 써놓고 보면 막상 처음의 그 문장이 빠져버린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은 물어봤어요. 그 문장은 대체 언제 소설에 넣을 건지 말이죠. 작가는 날 흘끗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바라기 좀.”
    나는 얼른 초콜릿으로 코팅된 해바라기씨를 대령했습니다. 간장종지 만한 그릇에 담아서요. 그걸 씹으면서 작가가 저 벽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때로 어떤 문장들은 그냥 문 역할을 하기도 하지. 소설에 쓰이지 않아도 말이야. 어떤…….”
    작가의 손이 텅 빈 그릇 위에서 헛스윙을 하는 걸 보고 나는 얼른 ‘리필’을 해드렸습니다.
    “어떤, 호객행위랄까. 그래. 호객행위를 하는 문장들도 있는 셈이지. 이야기를 쓰게 만들고는 사라져버리는 거야.”
    그러더니 방금 자신이 내뱉은 비유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습니다. 한 번 더 곱씹듯 중얼거리더군요.
    “호객행위를 하는 문장이랄까.”
    펜으로든 키보드로든 받아 적는 건 내게 껌이죠. 나는 신나게 받아 적었습니다. 작가는 그날따라 운이 좋았는지 몇 개의 문장들을 연달아 발견해냈죠. 꼭 해변에서 진주알을 줍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두 면의 벽이, 그리고 그 벽에 붙어 있는 수백 장의 메모지들이 해변의 갈매기처럼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는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듯 만년필 펜촉을 집어 들었죠.

 

    그런데 문장을 잃어버린 겁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며칠 전 나는 그 ‘문’이라 부르던 벽의 한 부분이 땜통 마냥 비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물론 저 벽에는 여백들이 있고 새로운 메모를 붙일 공간은 확보해야 했지만 저런 방식으로 땜통이 생길 수는 없거든요. 날짜별로 붙이기 때문이죠. 좌표, 내가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런데 저기 저 수많은 메모지 사이에 땜통처럼 나 있는 그것이 뭐란 말입니까. 마치 교통사고가 난 도로 위에 흰 테두리로만 남은 사람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죠? 그 자리에 붙어 있던 메모지가 사라진 겁니다. 메모를 고정했던 압정도 사라진 채 구멍만 남아 있는 걸 보면 벽에서 떨어진 모양인데 말이에요.
    이게 최악의 경우입니다. 이런 사유로 내 이전의 비서가 해고되었고, 알고 보니 그 비서는 문장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훔친 거였어요.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랬습니다. 5년간 자신의 비서로 일했던 사람이 책을 냈을 때, 그 책의 첫머리에 작가가 아는 그 문장, 그러니까 작가의 문장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라는 문장이었는데요. 이게 처음 이 작가의 것이었단 걸 증명할 만한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죠. 오로지 작가의 주장 하나뿐이었으니까요. 먼저 문장을 쓴 사람이 임자 아니겠습니까. 첫 문장 말고 나머지는 그 비서의 문장들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도죄가 덜어지는 건 아니죠. 작가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거든요. 소설의 첫 문장이란 금싸라기 땅의 쇼윈도와 같다고.
    잃어버린 문장이 뭐냐고요? 그걸 알면 지금 이러고 있겠습니까. 난 진짜로 훔친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라니까요.
    처음에 그것이 비어 있다는 걸 알고 나는 생각했죠. 이 방 안에 있어, 반드시 이 방 안에 있다고. 대청소만 하면 돼. 청소만 하면 나올 거야. 그게 문제였습니다. 나는 밤새 그 방을 샅샅이 청소하기 시작했고, 메모지를 청소 끝에 발견하긴 했으나 그게 그 위로 잉크를 쏟은 후의 것이었다, 그 말입니다. 이 작가 양반은 왜 잉크 뚜껑을 열어 둬가지고! 진남색의 잉크가 메모지 위의 글자들을 이미 지워놓은 후였고요. 그걸 말리거나 다리거나 어떤 방식으로 해도 그 이전의 글자를 판독하긴 힘들었습니다. 작가가 올 시간이 다 되어가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일단 아무 말이나 적어서 그 땜통 자리를 메우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다 제 필체로 쓰인 것들이니 쓰는 건 문제가 아니었는데 문제는 내용이었죠. 아무 말이나 적자, 고 마음을 먹었는데도 그 아무 말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적었냐고요? 그냥 넘어가지요. 확실한 건 그 짧은 순간, 내게도 해바라기씨가 필요했다는 겁니다.

 

    안 될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필 그날따라 작가가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더니 내가 아까 써서 붙인 그 메모를 떼어달라고 하더란 말입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메모를 떼어냈죠.
    “이 말을 내가 언제 했던 거지?”
    “3월 1일에 말씀하신 거예요.”
    “3월 1일? 그날 내가 뭘 했더라?”
    나는 달력을 보고 대답했습니다.
    “3월 1일엔 밤늦게 작업실에 오셨고요. 2월 28일 저녁에 고교동창 모임에 가셨고, 1일 아침에 귀가하셨죠. 바로 댁으로요.”
    “아아, 그랬지. 맞아, 그날 아침에 자네가 날 데리러 왔었지. 내가 지하철을 타자고 했고, 출근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던 중에 뭔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기억이 나.”
    사라진 문장이 그 경로로 태어난 게 분명했습니다. 나도 기억이 났죠. 다만 그 문장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뿐이었고요. 작가는 또 한 번 벽을 바라보았어요. 다행히도 3월 1일에는 수십 개의 메모가 붙어 있었어요. 그걸 바라보며 작가는 저 중에 교대역에서 떠올렸던, 지하철에 대한 문장이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그걸 다 모아달라고.
    “시간 안에 가시려면 이제 출발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작가는 1박 2일로 열리는 문학캠프에 참가해야 했고, 그 문학캠프가 내겐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어요. 아까 작가의 기세는 당장이라도 그 메모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확인할 기세였거든요. 뭔가 문장이 기억난 듯한 표정이기도 했고요.
    작가의 차가 저만치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서둘러 교대역으로 나갔습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출근시간대였어요. 내 동선을 보시겠어요? 교대-강남-역삼-다시 강남-교대-방배-사당-다시 방배-교대-남부터미널-양재-다시 남부터미널-교대-고속터미널-잠원-다시…예, 그만 하죠. 나도 정말 그만하고 싶습니다. 교대역을 중심으로 두고 십자 모양으로 줄곧 이동 중인데 이렇게라도 해야 그때 그 문장이 기억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내 손은 기억하지 않을까요? 지하철 안에서 작가의 말을 받아 적었을 당사자는 내 손이니까요. 그 문장을 다시 생각해내지 않으면, 문장을 잃어버렸다는 게 발각되면, 나는 가차 없이 해고당할지도 모르고요.
    작가 비서 못 해먹겠다고 할 땐 언제고 왜 그렇게 자리에 집착하느냐고요? 아까 말했지만 난 입주비서 아닙니까. 갑자기 잘려버리면 당장 갈 곳이 애매해지거든요. 게다가 작가가 좀 변덕스러운 성격이긴 해도 좋을 때는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거든요. 그 주기만 잘 파악하면 꽤 살 만하고요. 가끔은 요리도 해준다고요. 요리의 여운도 꽤 있는 편이죠. 사흘이 지난 후부터 벽 틈새에서 말라비틀어진 애호박이라든지 국수 면발 같은 걸 발견하는 기쁨이란! 굳은 골뱅이의 단면 같은 걸 싱크대 서랍 틈새에서 보게 될 때는 뭐랄까, 고생대의 화석을 발견한 것 같은 희열마저 느껴진답니다. 담배연기에는 질색을 하지만 술에는 관대한 편이고요. 작업실에서는 비싼 캡슐커피도 매일 한두 잔씩 먹을 수 있죠. 게다가 작가는 가끔 내 얘기를 들어줍니다. 나는 내 얘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작가는 이상하게도 그런 것에 관심이 많고요. 억지로라도 얘기를 풀어내면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도 같았고요. 몇 장면, 내가 말한 것들을 소설에 써먹기도 한 것 같더라고요. 그가 쓰는 건 결국 내 손으로 옮겨지니까요. 그에겐 비밀이지만 내가 영감을 준, 내가 시작이 된 소설은 마르고 닳도록 몇 번이나 읽어봤다니까요.
    제 발로 그만두면 몰라도 절도죄로 잘리고 싶진 않아요. 작가는 기억력이 안 좋거든요. 엄청 안 좋아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가 어쩌다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 그 등단이란 거라도 하게 된다면, 내 문장 하나하나 시비를 걸면서 그때 그 벽에 걸려 있었던 문장이라고 우길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구 비서가 궁금해지네요. 그분은 정말 문장을 훔쳐간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저와 같은 단순실수로 덤탱이까지 쓰게 된 걸까요. 덤탱이가 아니라 덤터기라고! 작가는 이렇게 말할 게 분명합니다만 전 역시 ‘탱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지하철이 멈춰 섰습니다. 또 새로운 사람들이 우르르 탑니다. 난 2-1이라는 숫자가 적힌 문 앞에 서 있지만 보이는 건 앞 사람의 뒤통수뿐이죠. 그날도 이렇게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에 우리가 섞여서 타고 있었는데, 겨우 자리 하나를 확보해서 내가 작가를 앉혔죠. 작가는 신나게 졸았습니다. 술 냄새가 폴폴 풍기는 머리통을 좌우 사람들에게 기대기도 하고, 튕겨지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술을 먹고도 그 작가가 택시 아닌 지하철을 타자고 해서 내가 황당해했던 기억도 나요. 출근길 사람들에게 그게 뭔 민폐랍니까. 가장 큰 민폐는 그 와중에 작가가 영감을 받았다는 거죠. 결국 그 때문에 지금 내가 이 고생 아닙니까.
    도처에 검은 뒤통수만 가득해서 눈을 어디로 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들 목적지가 있겠지요. 나처럼 이렇게 목적지가 어떤 영감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시선을 저 위 지하철노선도에 고정했죠. 하릴없이 역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런 구도로 저 노선도를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았어요. 최근에 말이죠. 작가가 분명 저 노선도를 보고 뭔가 한 마디 한 것 같았어요.
    ‘지하철 노선도를 보지 말라. 그 끝이 올가미처럼 너의 목을 조일지도 모른다.’ 방금 이 문장이 떠올랐는데 네, 이건 아닙니다. 이건 내 휴대폰으로 좀 전에 찍어둔 그 벽에 이미 붙어 있는 거네요. 이 문장이 떠오른 이유가 있지요. 정말 지금 그런 심정이니까요. 문장을 생각해내지 못하면 정말 이 열차 칸칸이 올가미가 되어 내 목을 휘감을지도 모른다니까요. 작가는 언젠가 지하철을 두고 혁대 같다고 말한 적도 있었죠. 채찍 같다고 말한 적도 있었고요. 그러나 이 문장들은 모두 저 벽에 그대로 붙어 있거나 이미 소설 속에 활용된 비유였어요. 그러나 지하철 노선도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뭔가 잡힐 것도 같았어요. 정말 그 무형의 문장이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그만 손에 잡힐 것 같던 그 문장을 놓치고 말았어요. 지하철 문이 열릴 때 어떤 각진 어깨와 부딪히는 바람에, 그 어깨가 내 옆구리를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방금 주워들 법했던 그 문장을 다시 잃어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각진 어깨는 사람이 아니라 책상이었어요. 책상은 학교 교실에서 쓰는 형태의 1인용이었고요. 각진 어깨가 치고 지나간 옆구리가 나 하나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죠. 복잡한 만원지하철이니까요. 출근 시간대에 웬 책상을 운반하는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꽤 술렁였습니다. 대놓고 매너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지하철은 다시 미끄러지듯 출발하기 시작했고, 나는 차창 밖으로 조금씩 작아지는 그 책상에게서, 책상을 든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얼핏 스친 옆모습이, 뒷모습이 어딘가 낯익었거든요. 순간적으로 떠오른 느낌은 ‘기암’이라는 거였어요. 기암이라니. 기암은 내 고등학교 때 물리교사였죠.
    책상 든 실루엣에 대해 떠올리다가 어느 순간 지하철이 강을 건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미 지하철은 금호역에 닿아 있었죠. 내릴 곳을 잊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비로소 교대를 중심으로 한 그 사각의 동선에서 벗어난 것 같아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금호역에서 나는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매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 사각형 책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암을 닮은, 아니 기암이 분명한 그 사람이 들고 있던 그 책상 말입니다. 기암은 내가 고등학교 때 물리를 가르쳤던 선생이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암은 그의 호였죠. 그분이 지으신 겁니다. 그가 물리를 가르치긴 했지만 그에게서 배운 것 중에 기억나는 건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관성의 법칙’ 둘 뿐이었고, 지금 와서는 그 둘만으로도 세상의 힘에 대해 설명하는 건 무리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사실 그의 과목은 그 자신이었다고 봐야 하죠. 그는 ‘나 기암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겼고, 우리는 그 ‘기암’에 대해 듣고 또 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세계 8대성현 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거였죠.
    기암은 수업 내내 자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빴고, 수능과 관계없는 무언가로 가득 찬 수업이 계속 유지될 리 없었죠. 어느 날 기암이 잘렸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정말 우리 수업도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그 해고가 어떤 형식의 것인지는 자세히 몰랐지만 확실한 건 교무실에서 그의 책상이 빠졌다는 사실이죠. 기암이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 책상을 직접 운동장 구석의 폐자재 놓는 곳에 옮겨둔 애들이 증언을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기암의 책상이 다시 교무실에 등장했다는 얘기가 돌더군요. 결과적으로 그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가 되었어요. 교무실에서 기암의 책상을 빼면, 기암이 다시 책상을 들고 교무실로 꿋꿋이 걸어온다더라, 그런 식으로요. 기암은 본인이 설명하던 그 관성의 법칙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꾸 돌아왔죠.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이야깁니다. 그런데 지금, 기암이 여전히 책상을 들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 겁니다. 십 년이 지난 시점, 그것도 지하철에서 말이죠. 기암은 그나저나 왜 아직도 책상을 들고 있는 걸까요.
    신기하게도 강을 건너서인지, 그 3월 1일의 기억이 언뜻언뜻 떠올랐습니다. 몇 장면이긴 하지만요. 그때 작가는 엄청 취해 있었고요. 서 있었지만 사실상 내게 체중을 다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의 술 냄새가 내 귓구멍으로 직통으로 들어올 법한 구도였죠. 술 냄새보다도 주변의 시선이 더 괴로웠는데요. 출근길에 악취를 풍기며 지하철을 탄 우리를 멸시하는 듯한 눈빛들이었습니다.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죠. 정말이지 마치 한 몸처럼 내게 엉겨붙어 있는 이 인간을 버리고 싶었어요.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오싹하더군요. 그가 너무 내게 기댄 나머지 내 머리는 보이지 않고 그의 머리통이 먼저 보였거든요. 마치 몸은 내 것인데 그 위에 그의 머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양새였습니다. 그것 참 기묘하고 이상하더라고요. 내 몸에 작가의 머리라. 그런 채로 우리는 몇 정거장을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작가가 내게 메모를 하라고 말을 했겠죠. 아니, 생각해보면 그날 작가는 듣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말할 기운조차 없었죠. 그날 메모를 한 기억은 있는데, 그 문장은 어쩌면 내 머리 속에서 나온 걸 수도 있단 말입니다. 이 생각이 왜 지금에서야 나는 거죠? 그러니까 내 손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뇌가 기억할 가능성도 조금은 있는 거네요. 내 머릿속에서 나왔던 문장이라면 말이죠.
    그러나 내가 어떤 경로로 그 문장을 기억하게 되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만 거기엔 내 것이 아닌 작가의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수첩 속에 메모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일정관리를 딱히 하지 않은 지도 오랩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끄적끄적 무언가를 쓰긴 했지만 그것 역시 내 생각이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모두 작가의 계정을 활용해 작가의 목소리를 대필한 것이었으니까요. 사소한 메일 확인조차도 나는 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자주 들어갔던 건 작가의 몫으로 된 아이디와 비밀번호였죠. 어쩌면 이렇게 흔적이 없을까요.
    나는 다시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아래로 남은 계단들이 오선지처럼 보이기도 하더군요. 종종걸음으로 내려놓는 발들이 음표처럼 보이고요. 어느 순간에는 그 오선지가 가지런히 줄이 새겨진 대학노트처럼 보이기도 했죠. 문득 이런 노트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딥블루 색상의 잉크로 채운 만년필도요. 그렇다면 노트 위에 뭔가를 메모할 수도 있을까요? 일기를 써본 기억은 아주 오래 전에 머물고 있을 뿐, 최근에는 특별히 뭔가를 써본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수많은 문장들을 썼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작가의 것이었죠.
    출근시간이 약간 지났는지 지하철 안은 훨씬 한적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맞은편 차창에 비치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죠. 내 목 위에 붙은 건 내 머리인데, 자꾸만 다른 얼굴이 내 목 위로 기어 올라오는 듯했어요. 작가의 머리일 수도 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머리일 수도 있었죠. 나는 그 머리를 손으로 몇 번씩 밀어냈지만 그건 마치 빼도 빼도 다시 되돌아오던 기암의 책상처럼 자꾸 내 머리 위로 되돌아오더군요. 그래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어디였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내려버렸죠.

 

    어느 순간부터 내 동선은 잃어버린 문장을 찾는 것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무 지하철에서 내려 내키는 대로 걷다보니 고등학교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 이 근처는 내 고등학교가 있던 곳이었고요. 학교는 그대로 있었어요. 내가 교문을 통과하려고 하자 경비아저씨가 나를 막아섰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나는 학교 구경을 왔노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요?”
    예기치 못한, 고압적인 자세였죠.
    “그래서 운동장까지만 들어갔다가 나와도 되겠습니까?”
    “외부인은 출입 금지예요.”
    “여기 졸업생이거든요. 좀처럼 올 기회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지나가다가 왔어요. 뭐가 바뀌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구차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궁금할 게 뭐 있어요, 만날 여기 있던 걸.”
    내 표정에서 약간의 짜증을 읽기 시작한 경비가 다시 물었죠.
    “언제 졸업하셨는데?”
    “칠 년쯤 됐나?”
    “별 거 없어요, 그냥 나무나 좀 더 자랐지. 나무들 칠 년 있어봐야 얼마 자라지도 않아. 나머진 다 똑같아요. 들어가봐야 뭐 볼 게 있나요, CCTV에나 찍히지.”
    나는 그만 돌아서려다가 퍼뜩 뭔가가 생각나서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경비는 귀찮은 듯, 내게 교사를 뵈러 왔으면 방문일지를 쓰면 된다고 했어요. 기암이 아직도 여기 있을까요? 사립학교라 한 번 있는 교사들이 대부분 계속 있는 편이긴 하지만, 기암은 교장 눈 밖에 난 사람이라 늘 아슬아슬했죠. 지금은 또 어떤지 모르지만요.
    “본관 앞에 의자 있잖아요. 책 읽는 의자. 아직도 있어요?”
    “책도 많고, 의자도 많죠.”
    “의자 위에 책 놓여 있는 것도 있어요? ‘책 읽는 의자’인가 그랬는데.”
    “글쎄요.”
    경비아저씨는 외부인의 시선이 저 교문 안으로 침투하려고 하는 것까지 저지하려는 것 같았지만 나는 교문 안을 뚫어져라 바라봤습니다. 교문 너머 쭉 뻗은 길은 그대로인데, 그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그 의자가 나올 것 같았어요. 지금도 있다면 말이죠. 정말 나무만 좀 더 자랐다면 의자는 그대로 있을 수도 있겠지요.
    책 읽는 의자는 두 개가 있었어요. 긴 의자 위에 일정기간 책을 올려두는 거였죠. 일종의 도서관 같은 거였다고 해야 할까요. 의자 위에서 책을 읽는 방식이었어요. 책에 쇠줄이 달려 있거나 하진 않아서 분실이 늘 염려스러웠죠. 문예부 아이들이 시작한 거였는데, 근처 중학교 한 곳에서 시작한 후 어떤 유행처럼 퍼졌던 이벤트였어요. 종종 책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졸업할 때까지 그 의자 도서관은 꽤 잘 이어진 편이었습니다.
    나는 선생도 아이들도 대부분 떠난 학교에서 한 시간 쯤 갇혀 있다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내가 갇혀 있던 곳은 운동장 끝, 그 버려진 책걸상을 보관하던 창고였죠. 버려진 칠판도 있었고 버려진 대걸레와 버려진 사물함들이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버려졌다기보다는 잠시 필요 없어진 물품들이라고 해야 되겠지요. 그날 나는 버려진 칠판 앞에서 버려진 대걸레로 맞았습니다. 대걸레가 마치 성냥처럼 부러진 날이었죠. 대걸레의 부러진 단면이 칠판에 박히기도 했어요. 나를 때린 애들은 나 역시 버려진 무엇처럼 봤던 거죠. 맞아서 퉁퉁 부은 입술보다도 다른 게 걱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일 학교에 또 와야 할지 아닐지, 그걸 알 수 없었던 겁니다.
    그때는 그렇게 철저한 경비아저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버려지긴 했어도 여전히 유효했던 그 문의 잠금장치가 풀린 후 나는 폐자재 창고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로등 아래 긴 의자로 가서 앉았지요. 그냥 아무 의자나 공간이 필요했던 것뿐인데 그게 바로 그 책 읽는 의자였던 겁니다. 내 의자 옆자리에 책이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놓여 있었죠. 그걸 집어 들었습니다. 첫 장을, 둘째 장을 넘겼죠. 그 안에 있던 글씨보다도 먼저 들어왔던 게 여백이었습니다. 사흘에 한 번 꼴로 소나기가 오던 여름이었고 늘 의자 위에 놓인 책들은 비닐커버가 되어 있어도 종종 젖곤 했습니다. 내 눈물이 그친 것처럼 책도 눈물을 그친 후처럼 보였어요. 울었다가 다시 마르느라 우글쭈글해진 그 책장들과, 내 뻗친 까치머리처럼 위쪽으로 휘어져 굳어 있는 책의 귀퉁이를 보면서, 나는 이 의자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 밤, 고요한 학교를 빠져나가기 전에 그 장면을 목격한 건 덤이었습니다. 저기 사각으로 펼쳐진 운동장을 누군가가 대각선으로 느리게 가로질러 가는 걸 봤던 거죠. 확인할 것 있나요, 그는 기암이었습니다. 기암이 운동장 모퉁이 창고에서 자신의 책상을 꺼내 들고 마치 몸과 집을 함께 이동시키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건 아주 일상적이고 우직하고 반복적인 행위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누구나 책상 하나의 무게는 다 짊어지고 걸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뭔가에 짓눌린 듯한 이 기분을 느끼는 것도 결국은 내게 할당된 양이니 감당해야 한다는 걸 말이죠. 빼면 다시 채우고 빼면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는 저 늙은 선생도 있는데, 나라고 여기서 물러날 수 있겠냐 싶었던 겁니다. 누구나 인생이 몇 조각으로 큼직하게 부서질 수 있지 않을까요, 통으로 붙어 있는 인생은 없다고, 그건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습니다. 그 밤, 책 읽는 의자 위에 앉아 기암을 목격했던 그 순간은 내 인생의 조각과 조각 사이에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나는 날아올라 다음 조각으로 넘어갈 수 있었죠.

 

    오후에 이상한 뉴스를 하나 봤습니다. 뉴스에서는 익숙한 실내구조가 등장했습니다. 간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테이블의 간격이나 벽에 붙은 달력만으로도 그 집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죠. 그 집은 지난 2년간, 오피스텔 근처에 있어서 내가 거의 모든 점심과 저녁을 먹었던 음식점이었어요. 나는 늘 백반을 먹었는데, 그 집이 지난밤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는 거였죠. 식품위생법 위반, 이라고만 말하면 굉장히 깔끔하지만 세부내용을 들어보면 그곳이 식당이라기보다는 공장이라고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요. 나는 생각했습니다. 공업용에탄올과 파라핀을 2년간 매일 복용하면 체내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에 대해서. 아마 오늘 작업실에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그 음식점에 갔을 겁니다. 전혀 의심하지도 못했죠. 그 집 맛은 꽤 일반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새로 찾아야 할 것이 단골식당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 동선은 틀어진 마당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튈지도 모르거든요. 이미 그러고 있고요. 작가가 소설에 써두었던 몇 가지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어떤 공간에서 탈출하면 나아질 것 같지만 막상 탈출하고 나면 오히려 진공상태에 놓인 것처럼 막연해진다고 말이죠.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그런 질문들이 우박처럼 쏟아진다고요. 만약 내가 그 안락한 작업실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진공상태에 놓인 것처럼 막연해지겠죠?
    그렇지만 한순간 그런 생각도 듭니다. 원래 나는 그런 존재감 없는 것, 진공상태에 놓인 막연함,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 작가는 지금쯤 캠프에 도착했겠군요. 어떤 문장을 적어놓더라도, 작가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내가 사실대로 메모를 청소하다 훼손해버렸다고 고백한다면 작가는 의외로 쿨하게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문장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은 작가와 관계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더 절실해지더군요. 그래서 나는 걷기로 했죠. 밤이 올 때까지 말이에요. 문장을 찾을 때까지 말이에요. 걷다보면 뭔가 단서들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걷다가 길 끝에서 기암을 다시 마주친 것도 단서가 될까요? 그를 다시 본 건 어디에나 있을 법한 대로변이었는데요. 기암 선생은 여전히 책상을 들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아직도 들고 계세요?”
    나는 이것이 꿈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꿈이 아니었나 봐요. 현실의 결말은 이랬습니다. 기암은 나를 흘끗 보고는 그냥 지나쳐갔습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물론 내가 그에게 인사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요. 거리 위 신문가판대의 아주머니가 기암에게 뭐라고 하더군요. 거기 서서 동선을 막고 있으면 어떡하느냐, 와 같은 말들. 기암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한 발치 물러섰고,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렸어요. 기암은 책상을 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책상과 그는 한 몸 같았어요. 마치 한 번도 땅에 내려놓은 적 없는 것처럼요. 칠 년째 저렇게 걸었던 걸까요.
    기암을 지나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의 벽에 붙어 있던, 그 메모지 말이에요. 오늘 나를 거리로 내몬 그 메모지의 분실. 메모지 속 문장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건 언젠가 작가가 말했듯이 어떤 호객행위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를 쓰게 만들고는 사라져버리는 거죠. 그 문장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 문장이 사라진 공백 때문에 나는 오늘 하루를 평소와 다른 동선으로 맴돌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동선 끝에 이런 장면과도 마주치게 된 거죠. 오래전 그 학교의 창고를 연상시키는, 그러나 전혀 낯선 골목 끝에 수많은 책상이 엉망으로 쌓여 있는 장면 말입니다. 얼핏 보면 그 밤의 책상더미는 마치 탑이나 거대한 설치미술품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조금 더 멀리서 보면, 작가의 방에 있던 그 두 면의 코르크벽처럼 보일 것도 같더군요. 나는 그 책상더미로 다가가서 하나씩 그것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건 마치 사라진 메모지 한 장을 찾기 위해 메모로 가득한 벽을 하나씩 살펴보는 일과 비슷했습니다. 여기 어딘가 내가 찾아야만 하는 책상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손때 묻은 책상 위에는 깨알 같은 낙서들이 적혀 있었죠. 그건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록들이었어요. 나는 일단 그것들을 옮겨보기로 했어요. 그 거대한 책상더미의 깨알 같은 글을 어떻게 옮길 수 있냐고요? 말했잖아요. 내가 속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걸 잊지 말라고. 나는 밤의 한 조각을 그 이야기들을 옮겨 적는 데 할애했습니다. 그건 아주 오랜만에 내가 나만의 관심으로 옮겨본 기록이었습니다.
    참, 내가 고백 하나 할까요? 속기사 공부를 했던 건 사실 어머니 때문이기도 했지만 빨리 기록하고 빨리 타자할 수 있다는 게 내게는 꽤 통쾌한 행위였기 때문이기도 하죠. 분초에 얽매이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내 글자들을 보면 어릴 때의 몇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달리기를 그리 잘하진 못했거든요. 누군가가 나를 마구 쫓아와도 가뿐하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을 만큼, 지금의 내 손가락은 지금 빠르잖아요. 나를 따라오는 게 글자들이라면 말이죠. 나는 키보드 위에서도 탭댄스 추듯 달아날 수 있죠. 단순히 말을 옮겨 적는 게 아니에요. 말로부터 도망을 가기도 하고, 말을 유인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문장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찾았냐고요? 뭐, 다시 찾으러 가야죠. 보이지 않는 책상을 양손에 들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문장을 주워든다고 해도, 처음의 그 문장은 아닐 겁니다. 아까 말했잖아요, 그건 일종의 호객행위였다고. 그럼 어떤 이야기를 데려왔느냐고요? 일단, 해바라기 좀 주시겠어요? 딥블루 색상의 잉크도요. 아, 줄이 같은 간격으로 그어진 대학노트도 부탁합니다.

 

 

 

 

윤고은 (소설가)teen_yge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피어싱」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무중력증후군』으로 1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글틴 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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