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소설_못] 나사

 

[5월 단편소설_못]

 

 

나 사

 

 

조우리

 

 

삽화-나사

 

그럼 절대로 구할 수가 없는 건가요?
혹시 모르지, 어딘가 안 팔리고 남아 있을지도. 그런데 워낙에 오래 되어가지고. 아무래도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냥 새로 구멍을 내고, 새 나사를 넣는 게 나을 텐데.
그럴 수가 없어요. 제 의자가 아니거든요. 제가 함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J는 언제부터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잠들었을까.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고 곤한 잠을 자고 있는 J의 등은 태아처럼 웅크려 자는 버릇 탓에 고래처럼 둥글었다. 손을 뻗어 J의 등에 손바닥을 붙였다. 검지로 척추의 뼈들을 천천히 더듬어보았다. J는 깨지 않는다. 뒤척이지도 않는다.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앉을지도 몰라. J의 등을 노크하듯 두드려보았다. 여전히 J는 잠 속에 있다. 아주 먼 곳에. 나는 J에게서 등을 돌려 슬그머니 내 등을 J의 등에 맞대었다.
    어쩌면 지난주 금요일부터일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는 제법 크게 다투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고 말하자 J는 나에게 근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근성? 근성이라고? 내가 소리를 질렀고 J는 입을 다물었다. 그 일주일 전에도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하니 J가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 말을 해봐, 무슨 말이라도. J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내 눈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제발, 제발, 이라고 내가 말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J의 등에 집중한다. J와 나의 호흡이 같은 박자를 갖게 되도록. 숨을 참기도 하고, 조금 길게 내쉬기도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J는 언제나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잠들었다고.
    J의 잠든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J의 몸을 돌려 그 얼굴을 확인하는 대신, 나는 감은 눈꺼풀에 힘을 준다. 절대로 눈을 떠서는 안 되는 것처럼. 절대로 눈을 떠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나사를 찾아야 한다. 나사, 나사, 라는 단어를 마법의 주문처럼 되뇌면서.

 

    의자는 침대 옆에 있다. 등받이가 없고, 둥근 받침에 세 개의 다리가 붙은 나무 의자다. 겨우 무릎 높이 정도로 작고, 낡았다. 받침은 노랑, 다리는 각각 빨강, 파랑, 초록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지만 반쯤은 벗겨졌다. 언제부터 그 의자가 J의 침대 옆에 있었을까. 짐작할 수 있는 건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뿐이다. 내가 J를 알지 못했을 때에도, 그 의자는 J의 침대 옆에 있었다.
    J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나는 많은 질문을 했다. 왜 창문은 왼쪽으로만 여는지, 수건은 어째서 전부 파란색인지, 식탁은 네모난 것 대신 둥근 것을 고른 이유가 있는지, 유리컵은 하나도 없고 두터운 머그컵뿐인 건 혹시 설거지를 할 때 손이 잘 미끄러져서인지. 쫑알쫑알 참견하는 나를 J는 귀엽다고 했다. 배가 고픈 참새 같네. 그 말이 좋아 더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지저귀었다. 이 의자는 어릴 때부터 쓰던 거야? 특별한 추억이라도 있어서 간직하는 거야? J는 심드렁하게 그냥, 있으니까, 하고 대답했다.
    J의 대답은 대부분 그냥, 이었지만 사실은 그저 나에게 말하지 않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른쪽 창문을 열면 불안해했고, 새로 사온 흰 수건은 쓰지 않았다. 계절이 바뀔 때, 기분전환을 하자고 가구 배치를 바꾼 적이 있었다. J가 돌아와서 보면 깜짝 놀라겠지, 하고 열심히 움직였다. 침대 옆에 있던 의자를 발치로 옮기고 그 자리에 긴 스탠드 조명을 놓았다. 샤워를 하는 사이 J는 내가 반나절을 씨름해 옮겨 놓은 집 안의 모든 가구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욕실 문을 열자 J가 서 있었다. 내 머리에 감긴 수건을 풀어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주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멀끔한 집 안을 곁눈질로 보며 깨달았다. 식탁이, 책상이, 탁자가, 그리고 그 의자가 모두 제자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J의 집에서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건 나뿐이라는 사실도.
    J는 그 의자 위에 잠들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읽은 책을 올려놓곤 했다. 책갈피 대신 티슈를 한 장 끼우고, 책을 덮고, 의자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안경을 벗어 놓았다. 침대 머리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아 책을 보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덮고는 손을 뻗어 의자 위에 올려놓는 J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게 기술을 성공시키는 체조 선수의 몸동작과 비슷했다. 망설임 없는 직선, 매끄러운 포물선.
    나사는 그 의자의 파란색 다리를 고정하고 있었다.

 

    그날 밤, J는 침대 머리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아 책 대신 다음 날 만날 고객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나는 J의 어깨에 턱을 얹어 놓거나, 자세를 바꿔 J의 종아리를 베개 삼아 베거나, 팔과 다리를 아무렇게나 J의 몸에 늘어뜨리고 콧노래를 부르거나 하고 있었다. J는 내가 아주 가볍다는 듯이, 그래서 내 무게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이, 마치 내가 없는 듯이, 팔락팔락 종이를 넘겼다. 있잖아, 일주일 동안 일한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내가 일주일 동안 늦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그건 받을 수 있을까. J가 하품을 섞어 말했다. 근로계약서는 썼어? 나는 J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았다. 졸려? 졸리면 자자.
    중요한 일이야. J가 내 손에서 다시 서류를 가져갔다. 사고가 났어. 사고가 났는데, 또 사고가 났어. 그리고 또 사고가 났지. 세 번이나 같은 사고가 났단 말이야. 천을 재단하는 공장인데, 같은 재단기에 다른 사람 셋이 다쳤는데 너무 똑같은 사고란 말이야. 셋 다 같은 병원에서 같은 진단을 받고 나란히 입원을 하고. 일주일 새에 세 사람이 말이야. 나는 J의 고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너무 많은 사고들이 있었다.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카페에서도, 편의점에서도, 비디오대여점에서도 쓴 적 없어. 난 그런 계약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단 말이야. J가 이번에는 하품을 하지 않고 말했다. 써야 해. 써야 하는 거야.
    J는 보험회사에서 심사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는지, 그렇게 중요한 서류가 있다는 걸 왜 J는 나에게 알려준 적이 없는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근로계약서 없이도 나에게 돈을 주었던 많은 사장들은 특별하게 선량한 사람들이었던 건지, 그런 걸 묻는 대신 J에게 키스했다. J는 나의 입술을 피하지도,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러면 그 공장 사람들은 입원을 하고, 재단기는 어떻게 됐어?
    계속 돌아가고 있지.
    세 사람이나 다쳤는데 또 돌리는 사람이 있나?
    글쎄.
    아르바이트생 구하지 않으려나.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J의 몸 위로 올라가 J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붙였다. 그때였다. J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허리를 감싸 안기 위해 서류를 그 의자에 올려놓았을 때, 나는 파란색 다리를 고정하고 있던 나사가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추락이 아니라 의도된 자유낙하 같았다. 오로지 이때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것처럼, 소리도 없이 바닥에 착지한 나사는 데굴데굴 굴러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나는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굴러가는 나사보다 모처럼 뜨거워지는 J에게로 신경을 돌렸다. 오랜만이었다. 나사는 내일 아침에, 찾아보면 되겠지. 침대 밑이나, 서랍장 아래나, 문 뒤쪽, 그런 구석진 곳을.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여자는 세 개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그 중 어느 보험에도 피보험자가 아니었다. 남편의 이름으로 두 개, 아이의 이름으로 하나의 보험이 있었고 여자는 그저 계약자일 뿐이었다. 여자의 통장에서는 다달이 보험료가 인출되었지만, 여자가 남편과 함께 일용직으로 고용된 건축현장에서 천장에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을 때, 여자는 보름간의 중환자실 입원비를 비롯한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보험 셋 다 상해 특약도 들지 않았으니, 뭐. 우리 회사 고객인 건 맞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J가 식탁 위의 달걀찜을 헤집으며 말했다. J는 고등학교 동창인 Y가 고객센터 상담원이었다고 했다. 구내식당에서 Y를 만났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 동네에 여전히 Y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여자가 동네 사람이라 더 마음이 쓰인다는 Y에 대해 이야기했다.
    J는 Y와의 점심식사에서 들은 이야기를 몇 가지 더 했는데, 비슷비슷한 사연이었다. Y는 정이 많고 눈물이 헤프다고 했다. 안타까운 건 맞지만 피곤한 일이지. 없는 답을 찾겠다는 사람하고 문제를 들여다보는 건. 종일 그런 전화를 받고 있다니, 고생이 많겠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했다. 대체 나사가 어디로 간 거지?
    J가 출근하고 난 뒤, 방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나사는 발견되지 않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손걸레로 바닥을 꼼꼼히 훔쳤지만 없었다. 이불을 털어내고 침대 커버까지 벗겼지만 찾지 못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의자는 나사가 없이도 멀쩡해 보였다.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의자를 살짝 흔들어보았다. 나를 비웃듯이 파란색 다리가 툭, 떨어져 나왔고 세 다리 중 한 다리를 잃은 의자가 기우뚱,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범행현장에서 중요한 증거를 완벽히 인멸하기 위해 고심하는 범인처럼 파란색 다리를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파란색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을 대신해 의자를 받친 채로 한참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사는 왜 빠진 걸까. 나는 J가 없을 때 그 의자에 발을 걸치고 발톱을 깎았던 일이나, 라면 냄비를 받침도 없이 올려놓았던 일, 바닥 청소를 할 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의자를 발로 밀어 이쪽저쪽으로 굴렸던 일을 떠올렸다. 의자 다리를 고정하던 나사가 점점 헐거워지고 마침내 빠져버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인 것만 같았다.
    띠, 띠, 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컸다. 내가 흔들기 전처럼, 의자 받침에 파란색 다리를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겨우 중심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J가 방으로 들어왔다.
    뭐해?
    청소.
    어쩐 일이야. 방이 너무 깨끗하네.
    J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뒤늦게 쥐가 난 다리를 절룩거리며 부엌으로 갔다.
    달걀찜과 달걀말이를 한 상에 올려놓고 참치통조림과 김을 꺼냈다. 아침은 J가, 저녁은 내가, 점심은 각자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규칙이었다. 설거지는 J가, 빨래는 내가, 청소는 번갈아 했다. 너무 하네, 이 밥상. J가 말했다. 달걀국도 끓일까 하다가.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은 어쩐지 달걀이 너무 좋아서. J가 달걀말이를 베어 물었다. 뭐 하느라 바빴어? 달걀말이가 덜 익었는지 J의 입가에 달걀물이 새어 나왔다. J가 인상을 찡그리기 전에 얼른 달걀말이 접시를 들고 전자레인지로 갔다. 아, 뭐, 새 아르바이트도 알아보고 하느라고. 10초를 세 번, 띠, 띠, 띠, 눌렀다.

 

    난 좀 더 잘게. 이상하게 자꾸 졸리네. 출근하는 J의 등에 대고 괜한 말을 했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듣고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J는 별 말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복도를 걸어 계단을 내려가는 J의 발소리가 멀어지길 기다렸다. 침대에 눕는 대신 샤워를 했다.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 처음 하는 외출이었다. 일주일 새에 날이 많이 따듯해져서,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셔츠 안으로 땀이 흘렀다.
    철물점은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서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다. 언젠가 화장실 전구를 사러 간 적이 있다. 겨우 한 사람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선만을 남겨둔 채 사방을 빽빽하게 물건으로 채워둔 철물점은 작은 미궁 같았다. 통유리 벽과 유리문을 갖고 있는데도 빛이 잘 새어들지 못할 정도로 물건들이 쌓여 있어 어둡고 서늘했다. 그 어딘가에 나사 하나쯤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다만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 것은 철물점으로 가는 길의 사거리, 바로 그 사거리에 내가 일주일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호프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호프집에는 세 명의 사장과 세 명의 아르바이트생, 한 명의 주방장, 스물다섯 개의 테이블이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다가 나란히 명예퇴직을 한 사장들은 퇴직금을 모아 호프집을 차렸다. 하루에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카운터를 지켰다. 세 명의 아르바이트생 중 한 명은 오픈을 하고 두 명은 마감을 했다. 사장 중 한 명이 기독교였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키가 큰 사장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당구를 치러 다녔고, 머리숱이 없는 사장은 유독 설거지에 잔소리가 심했다. 얼굴이 까만 사장은 영업시간 내내 1번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셨다. 한 사람은 웃을 때 꼭 침을 튀겼고, 한 사람은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재채기가 잦았다. 내가 첫 출근을 하던 날 카운터를 지키던 사장은 내가 손님인 줄 알고 ‘어서 오십시오’하고 인사를 했다. 셋 중 누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갔을까.
    주방 옆 창고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을 때, 빈 맥주잔을 양손에 들고 카운터 옆을 지날 때, 손님이 남기고 간 마른 오징어에서 다리를 하나 슬쩍 뜯어낼 때, 허리에 묶는 앞치마 끈이 풀렸을 때, 사장 중 한 명이 내 엉덩이를 더듬는다거나 실수로라도 웃어줄 수 없을 저열한 농담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손님에게도, 호프집 자체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움직이기 전에는 꼭 신음 같은 한숨을 쉬었다.
    대신 사흘 동안 같은 손님이 시비를 걸었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족도 없다고 알려진 사내였는데, 항상 동네의 누구든 붙잡고 형님, 아우, 하며 술을 얻어 마셨다. 그는 나에게 못 보던 얼굴이 왔다며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몇인지, 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이미 취해 있었으므로, 나는 대강 대꾸했다. 이름은 홍길동이고, 나이는 서른셋이며, 아버지를 찾기 위해 돈을 번다, 그런 식으로.
    사내가 호프집을 떠나고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데 그날의 사장이 나를 불렀다. 그 사내는 호프집의 단골손님이며 이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를 무시하지 말고 공손하게 대하라고 했다. 다음 날 사내는 나를 테이블 옆에 불러 세워놓고 노래를 불렀다.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시켰다면 화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자기가 노래를 부르고 들으라고 하니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노래가 다 끝난 뒤에 그의 일행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더니 그날의 사장은 나에게 화를 냈다. 저런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하라고 했다.
    사흘째에 사내는 팁이라며 만 원짜리 한 장을 접어 손에 쥐어주었다. 만 원짜리를 쥔 내 손을 한참 쥐고 있었다. 나는 그가 만 원어치만큼 손을 잡고 있으려나 생각했다. 내 시급은 오천 원이니, 그럼 두 시간 동안 잡고 있을 셈인가. 공손하게 뿌리쳐야 할지 얼굴에 만 원짜리를 던져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날의 사장이 왔다. 형님,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얼마나 드셨냐, 오늘 기분이 좋으시냐, 안주가 부족하진 않으시냐, 하며 내 손을 빼내주었다. 사내의 테이블에 땅콩과 김을 가져다주라고 했다.
    사내와 일행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비틀거리며 호프집을 떠난 뒤, 사장은 나에게 와서 오천 원짜리를 한 장 내밀었다. 그리고 사내에게서 받은 만 원을 달라고 했다.
    J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J는 왜 내 시급이 오천 원이냐고 물었다. 호프집 유리창에 그렇게 쓰인 공고가 붙어 있었고 그걸 보고 찾아가 일을 하겠노라 했으니 오천 원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알아?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왜 몰라?
    그렇게 다 챙겨서 주는 곳이 어디 있다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고 제대로 취직을 좀 해.
    J는 나를 한심해 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은 다른 사장이 나와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겼다며 나에게 오천 원을 받아간 사장이 나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앞으로도 손님에게서 무언가를 받게 되면 자신에게 꼭 말하라고 했다. 맥주잔을 나르면서도, 치킨을 주문 받으면서도, 테이블 밑에 떨어진 포크를 주우면서도, 계속 그 말이 생각났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장’이라고 저장된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만두겠습니다. 세 명의 사장 중 누구에게 그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을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넌 그냥 참을 생각이 없는 거야. 그게 뭐든. 아무것도 무릅쓰려고 하질 않는 거지. 넌 근성이 부족해. 그래서 뭘 할 수 있겠어?
    그날 다른 사장이 나와 있었다면 나는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나에게서 만 원을 전부 가져가 버렸더라면. 마치 공범에게 보내는 은밀한 신호처럼 나를 향해 웃지 않았더라면. J에게 설명하는 대신 나는 소리를 질렀다.
    호프집은 아직 영업시간이 되지 않아 닫혀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구함. 시급 오천 원. 성실하게 오래 일하실 분. 추가된 마지막 줄은 삐뚜름하게 아래로 치우쳐 있었다.

 

    철물점 문은 잠겨 있었다. 간판도 켜져 있고 안쪽에 조명도 다 켜져 있었다. 잠긴 문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여자가 젖은 손을 바지춤에 닦으며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하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나사 하나 주세요.
    어떤 걸로 드려요?
    나사요.
    어떤 나사요?
    작은 나사예요.
    얼마나 작은 나사?
    글쎄요. 아주 작은데요.
    젊은 아가씨가 정신이 없네. 아주 작다고 하면 하염없이 작아요. 눈에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작은 나사도     있다니까. 대충 어느 정도다, 싶은 것도 없어요?
    아마 이 정도, 하면서 엄지손톱을 보여주었다. 여자는 한쪽에 쌓여 있는 상자들 틈에서 노란 비닐봉투를 꺼내고 다시 그 속에서 나사 세 개를 꺼냈다. 이 중에 어떤 게 맞는 것 같으냐고 나에게 물었다.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어서 모르겠다고 말했다. 데굴데굴 굴러가던 나사의 궤적만 떠올랐다. 아니, 그조차도 희미했다. 오른쪽이었나, 왼쪽이었나, 확실하지 않았다.
    대충 이 정도이기는 해요?
    아마도요.
    그럼 일단 셋 다 가져가서 끼워보고 안 맞는 건 바꾸러 와요.
    이 중에 하나는 맞겠죠?
    그럴 거예요. 나사 크기는 규격이니까.
    주머니 속 나사 세 개를 만지작거리며 철물점을 나섰다. 하나는 다른 것들보다 조금 가늘고, 나머지 두 개는 길이가 달랐다. 왔던 길을 되짚어 가려다가 호프집 앞을 지나고 싶지 않아 몸을 틀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호프집 앞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는 대신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반대쪽으로 걸었다.
    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목련, 벚꽃, 개나리, 철쭉이 영역싸움을 하듯 한꺼번에 피어 있었다. 순서로 모르고 막 피었구나. 흰 철쭉들이 너무 환해서 목련 꽃잎은 낡아보였다. 흰 철쭉 사이로 군데군데 분홍 철쭉이 끼어 있었다. 지난봄에 이 길을 J와 함께 걸었다. 운동 삼아 밤마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걸었다. 철쭉과 진달래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아? J는 휴대폰으로 식물도감을 검색했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오지만 철쭉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핀다는데? J가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그거 말고 더 확실한 차이점이 있어. 나는 꽃송이를 하나 뜯어 J의 입에 집어넣었다. 가만히 보다가 화전 부쳐 먹고 싶어지면 진달래, 아니면 철쭉이야.
    담장 안쪽에서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골키퍼 없는 골대 앞에 공을 세워 놓고 한 줄로 서서,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한 명씩 달려가 공을 차고는 줄의 맨 끝에 가서 섰다. 아이들은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열심히 다리를 휘둘렀지만 공은 그물을 흔들기는커녕 겨우 골라인을 넘었다. 아이들은 제가 찬 공이 어디까지 가는지 끝까지 쳐다보지도 않고 도도도 달려 줄의 맨 끝에 섰다. 공들이 비슷비슷한 자리에 멈춰서는 바람에 나중에는 당구처럼 서로를 밀어냈다.
    초등학교 옆에는 편의점이, 편의점 옆에는 약국이, 약국 옆에는 미용실이, 미용실 옆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에 J가 있었다. 나는 J와 마주 앉은 사람이 Y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사는 어느 것도 맞지 않았다. 처음 돌리기 시작할 때는 얼추 맞는 것도 같다가 이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셋 중 가는 나사는 미묘하게 헛돌았고 나머지 두 개는 아귀가 맞지 않았다. 가는 나사와 다른 나사의 중간 두께 나사가 있다면 맞지 않을까 싶었다. 왜 그 나사는 주지 않은 것인지 철물점 여자가 원망스러웠다. 아귀가 맞지 않는 나사 중 짧은 나사를 괜찮지 않을까 우기며 돌리다가 나사 구멍에서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깜짝 놀라 그만두었다. 제자리가 아닌데도 꾸역꾸역 자리를 잡은 그 나사를, J가 꼭 알아볼 것만 같았다.
    맞지 않는 세 개의 나사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내일 다시 철물점에 가야겠다고. 이 나사와 이 나사의 중간 크기의 나사를 달라고 해야겠다고. 이제 파란색 다리를 받침에 괴어 중심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어서, 의자는 멀쩡해보였다.
    나사들을 셔츠 앞주머니에 넣고, 셔츠를 벗어 옷걸이에 반듯이 걸었다. J가 작년 여름에 샀다가 이제는 입지 않는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J는 가끔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샀고, 무리해서 몇 번 입다가 곧 옷장 깊숙한 곳에 방치했다. 그런 옷들은 결국 내 차지가 되었다. 이 티셔츠는 세 번 정도 입었을까. 아직도 소매 끝이 빳빳해 새 옷 같았다. 저녁 식탁엔 달걀 반찬을 올리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사, 하고 외치며 일어났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머쓱했다. 꿈에서 술래잡기를 하듯 도망치는 나사를 따라 뛰어가다 깨었기 때문이었다. J가 돌아올 시각이었다. 부랴부랴 매운탕을 끓였다. 다행히 얼려둔 생선이 있었다. 두툼하게 썬 무를 깔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와 멸치액젓을 넣었다. J가 좋아하는 미나리는 항상 냉장고에 있다. J와 함께 살기 전엔 미나리와 다른 나물들을 구별하지 못했다. 시장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미나리가 이 중에 어떤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오늘 미나리 없어요, 하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었다. 이제는 미나리를 손질하다 달팽이가 나와도 아무렇지 않게 한쪽에 두었다가 집 앞 화단에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내일은 철물점에 가 맞는 나사를 찾고 시장에 가야겠다, 철물점 여자에게 왜 그걸 빠뜨리셨느냐고 한 마디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었다. J는 매운탕이 다 식을 때까지, 한 번 더 끓여 바짝 졸아들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식탁에 앉아 다른 반찬은 꺼내지도 않고서 짠 매운탕과 식은 밥을 먹었다. 설거지까지 다 끝내도 J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전화도, 문자메시지도 없었다. 전화를 걸까 하다가 J가 야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려다가 J가 회식을 하거나 해서 답장을 빨리 하지 않으면 괜히 더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가만히 J를 기다렸다.
    자정이 다 되어 J가 현관문을 열었다. 손에는 식은 통닭이 든 봉투를 들고서. J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회식을 하고 돌아올 때면 늘 누군가에게 불만이 가득한 채여서 무슨 말을 해도 짜증으로 대꾸하던 J가 순순히 내가 좀 늦었지, 술을 좀 마셨어, 얼른 씻고 자야겠어,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문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은 통닭 봉투에는 낯선 상표가 적혀 있었다. 내일 아침에 매운탕 먹을래? 샤워기의 물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는지 J는 대답하지 않았다. 있지, 내일 아침에 매운탕을 먹을래? J가 대꾸했다. 뭐라고? 물소리가 사라졌다. 뭐라고 했어? J의 목소리가 꿈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하게 울렸다. 매운탕,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다시 물소리가 들렸다. 그래, 좋아. 나도 좋아.

 

    일어나니 J가 없었다. J가 옆자리에 누웠던 흔적조차 없어서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J가 어젯밤 돌아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게 다 꿈이었나. 부엌에 가니 식탁 위에 통닭 봉투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매운탕은 지난밤 내가 먹고 남긴 그대로였다.
    낯선 상표의 통닭 봉투를 열어 보니 한 마리라기에는 부족하고 반 마리라기에는 다리가 두 개인, 먹다 남은 것을 포장해온 통닭 조각들이 있었다. 나는 차가운 고기를 씹으며 생각했다. 날개가 없구나. J가 좋아하지 않는 날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먹었구나.
    철물점에는 여자 대신 노인이 있었다. 깡마른 몸에 얼굴이 길었고 정갈하게 다듬은 흰 콧수염이 눈에 띄었다. 노인은 철물점 깊숙한 안쪽의 때가 탄 1인용 가죽소파에 앉아 효자손으로 발목을 긁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노인의 앞에 설 때까지 나를 알은체하지 않다가 저기요, 하고 부르자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어서 오세요, 하고 말했다.
    저 어제 나사를 샀는데요.
    그런데요?
    세 개를 가져가고 맞지 않으면 바꾸러 오라고 하셨어요.
    아주머니가요, 하고 덧붙이자 노인이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게 맞던가요?
    그게, 하나도 맞지가 않아서요.
    나는 셔츠 앞주머니에서 나사 세 개를 꺼내 노인에게 내밀었다. 나사 세 개는 조금 미지근했다.
    이거랑 이거, 중간 정도 두께의 나사가 있으면 맞을 것 같은데요.
    그건 없는데요.
    그러면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런 건 없는데요.
    네?
    그런 크기의 나사는 없어요. 그런 건 없어요.
    확실한가요?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없죠, 정말. 그렇게 힘주어 말하면서. 그리고 내 손에서 나사 세 개를 가져가고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어쨌든, 맞는 게 없다고 하시니까 바꿔드릴게요. 나는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들고 고민했다. 나사 하나에 삼백 원씩을 주고 샀는데 지금 나에겐 거스름돈 백 원이 없었다. 어쨌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중간 크기의 나사가 원래 있었던 자리인데요.
    어디가요?
    의자예요. 나머지 다리는 아직 붙어 있으니까, 나사를 한 번 좀 봐주세요.
    그럴 리가 없지만 그럽시다.
    나는 노인에게 천 원짜리를 다시 건넸다. 일단 제가 의자를 가져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어쩐지 같은 팔과 같은 다리가 동시에 나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철물점을 빠져나왔다. 노인에게 언제까지 돌아오겠노라 하지 않았고, 노인도 언제까지 꼭 오라 다그치지 않았는데도 나는 달렸다. 달리다보니 속도가 붙고 멈출 수가 없어져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전력으로 달렸다. 현관 비밀번호를 두 번 잘못 누르고,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다.
    의자를 집어 들었다. 파란색 다리가 툭 떨어졌다. 맞다. 이 다리가 떨어졌다. 나사가 사라져서 이 다리가 의자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렇게 되짚으며 다리를 주웠다.

 

    이 나사는 이제 없어요.
    없어요?
    이게 아주 예전에는 나오던 나사인데, 언제부터인가 만들지 않게 되어서 이제는 없어요.
    그럼 절대로 구할 수가 없는 건가요?
    혹시 모르지, 어딘가 안 팔리고 남아 있을지도. 그런데 워낙에 오래 되어가지고. 아무래도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냥 새로 구멍을 내고, 새 나사를 넣는 게 나을 텐데.
    그럴 수가 없어요. 제 의자가 아니거든요. 제가 함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요, 그래. 이 나사를 썼으면 오래된 의자일 텐데,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꽤 아끼는가 봐요.
    노인은 파란색 다리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쯔쯔, 하고 혀를 차고는 다리가 원래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어보았다가 떼어보았다가 하면서 어쩌다 이게 빠졌누, 하고 말했다. 꼭 의자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새가 우는 소리가 났다. 노인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응, 그래, 응, 그래, 하고는 끊었다. 저기,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는 노인에게서 의자와 다리를 받아들었다. 어쩔 수 없지요.
    노인은 철물점 문을 잠그고, 셔터를 내리고, 택시를 잡았다. 노인이 탄 택시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나사가 사라지기도 하는구나. 다시는 구할 수 없게 되기도 하는구나. 나사라는 건 너무 많은 곳에 너무 많이 있어서 언제든 나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 없는 일도 있는 거구나. 그렇게 나사에 대해서 생각하며 걸었다. 아주 큰 나사가 쓰이는 곳, 아주 작은 나사가 쓰이는 곳, 그냥 나사가 쓰이는 곳, 그런 곳들을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다리에는 나사가 없었던 게 아닐까. 나사가 없이도 어떻게든 붙어 있다가 이제는 안 되겠다, 하고 떨어져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하며 시장에 갔다. 대구를 한 마리 토막 내어 사고, 쑥갓을 한 단 사고, 두부를 한 모 샀다. 의자를 어깨에 걸쳤다가 왼손에 들었다가 오른손에 들었다가 결국 옆구리에 끼고 다리는 쑥갓이 든 비닐봉지에 넣었다.
    의자를 침대 옆에 놓았다. 파란색 다리를 감쪽같이 끼워두는 건 이제 너무 쉬운 일이다. 조금만 조심하면 J는 나사가 사라졌다는 걸 영영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실수로 다리가 떨어져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나을까. 어쨌든, 이제 와서 다리가 떨어졌다고, 나사가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맞는 나사를 다시는 구할 수 없다고는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렵겠지만.
    새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 집에서 먼, 낯선 동네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동네 철물점을 다니며 나사를 찾고, 없으면 또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철물점을 돌아다니는 거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나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J가 알아채기 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슬쩍 끼워두고는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전까지는 조금 두근거리겠지. J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말면, 내 말에 바로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겠지. 나사, 하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졸아 붙은 매운탕을 버리고 새 매운탕을 끓였다. 청양고추를 살걸, 하고 조금 후회했다. 더 얼큰하게 끓였으면 좋았을걸, 싶었다.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 냄비에 쑥갓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불을 끄고 숨이 죽기를 기다렸다. 마침 띠, 띠, 띠, 하고 J가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작가소개 / 조우리(소설가)

1987년생. 서울 출생.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학과,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제10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글틴 웹진 5월호》

 

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