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_단편소설_문] 바리케이드와 개구멍

 

[6월 단편소설_문]

 

 

바리케이드와 개구멍

 

 

이서영

 

 

1406_02_바리게이트와 개구멍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고,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것저것 밀어서 문을 막기 시작했다. 무거운 것으로는 감독관의 철제 책상부터, 가벼운 것으로는 너무 오래 먹지 않아서 먹을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운 라면상자까지 총동원되었다. 어디에서 났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나무 작대기들이 잔뜩 문 앞에 쌓여갔다. 철문은 좁았고, 좁은 문에 동원될 수 있는 물리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제 아무리 우르르 밀려온다고 해 봤자 백 명이 힘을 합쳐서 저 문을 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문이 완전히 봉쇄되었다고 모두가 느낄 만큼 물건들이 쌓이자, 사람들은 문고리에 쇠사슬로 물건들을 칭칭 동여맸다. 좁은 문 앞에 높이 쌓인 바리케이드는 마치 거대한 성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해자지. 석원은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오늘만은 불평쟁이 리엔도 열심히 물건들을 들어 날랐다. 좀처럼 웃지 않는 리엔이었지만 억지로 입매를 가다듬어봤자, 눈에서까지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 이름 모를 항성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차단막을 모조리 내렸지만 그래도 항성이 내는 과열된 빛까지 가릴 수는 없다. 일부러 항성 옆을 지날 때를 노려 옥쇄를 시작했지만, 조합원들이 느낄 건강의 부담도 적지는 않을 것이었다. 당분간은 저 자외선과 방사능도 피할 방법이 없다. 창밖의 항성을 말없이 바라보는 현우의 어깨에 석원이 손을 얹었다. 석원은 늘 그렇듯이 구김살 없이 웃어보였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냐. 어차피 맨날 보던 거잖아.”
    현우한테만 한 말이었지만, 워낙에 쩌렁쩌렁한 석원의 목소리는 기관실 전체에 울렸다. 여기저기에서 그렇지, 그래, 이게 뭐 별 거라고,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우리만 죽냐, 외마디 응원들이 튀어나왔다. 석원은 쌓아놓은 바리케이드에 한쪽 발을 올리더니, 턱, 턱, 바리케이드 위로 기어 올라가 그 중간 어딘가 쯤에 걸터앉았다.
    “여러분,”
    하고 석원은 왼쪽 손목을 내려다봤다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허둥지둥 주머니를 더듬었다. 아래에서 눈을 빛내며 보고 있던 리엔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손목시계를 끌렀다.
    “위원장!”
    석원은 아래에서 시계를 흔드는 리엔을 보고 손을 내밀었고, 리엔의 시계는 허공을 날아 정확히 석원의 손바닥에 착지했다. 씨익 웃으며, 석원은 리엔을 향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오후 3시 25분 부로 파업을 선언합니다!”
    함성소리가 운전칸을 가득 메웠다. 처음으로 생긴 노동조합이었고, 처음으로 하는 파업이었다. 리엔의 가슴은 약간 아플 정도로 일렁거렸다. 저 원숭이마냥 촐싹대는 위원장이 무려 자랑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잠도 못 자고 운전대를 돌리고 우주선을 점검하며, 안전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전가 받던 사람들이 신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음 이 우주선에 탔을 때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어떻게든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던 것이었다. 우주선을 운전할 수 있는 정도의 경륜이 있는 것은 늙은 김 씨 한 명 뿐이었고, 그나마 비행기를 운전해 봤던 자, 기차를 운전해 봤던 자, 지하철을 운전해 봤던 자, 뭐라도 기계를 다루어보았던 자들이 별을 탈출해야만 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김 씨의 주변으로, 정확히는 이 기관실으로 몰려들었다.
    백오십만 명을 태울 수 있는 우주선의 운전 장치는 단순하지 않았다. 한두 명으로 처리가 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기계를 조금이라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주선의 정비를 맡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도망쳐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구약시대의 동물들이 짝을 맞춰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듯 가진 것 없이 허둥지둥 우주선에 올라탔다. 가족을 잃어버리고 재산을 놓아둔 채, 몇몇은 울면서, 몇몇은 욕을 하면서. 어서 올라타서 이 별을 떠나지 않는다면 조물주의 대홍수같은 끔찍한 살육전이 펼쳐질 것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인간은 살아남기를 갈망하는 동물이었다.
    다행히도, 선장은 절망에 빠진 백오십만 명에게 젖과 꿀을 보여주었다. 우주선이 출발하자마자 선장이 제일 처음 한 것은 군대를 모집하는 것이었고, 군대 꼴을 조금 갖추게 되자마자 그는 백오십만 국민의 재산을 거침없이 수탈했다. 아끼던 울새를 빼앗긴 노인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다.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들의 마음이 사위어갔다.
    그렇게 수탈한 재산은 시공간 저편의 다른 행성에 팔려 나갔다. 그리고 국민들은 별 것도 아니었던 자신들의 재산이 재화로 화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또 다른 물건을 사들여서 다시 시공간을 이동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국민들 앞에 선 선장은 억척스러웠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울부짖는 사람들 앞에서 선장은 단호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옷가지나 허둥지둥 챙겨 온 금붙이 따위가 실렸던 화물칸에 시간이 갈수록 체계가 생겼다. 베테이르 별에서만 나는 연녹색의 보석, 그레메 별에서 만든 특수한 옷감, 마이누 별의 독특한 향신료가 규칙있게 실렸다. 우주선 안에 제대로 된 집이 생기고, 음식이 생산되고, 재화가 돌고, 경제가 움직이자 사람들은 선장의 용단을 그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희생을 감수한 선장의 용단만이 백오십만 명의 난민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버젓한 무역국가로 성장한 우주선 안에서, 나이든 사람들은 처음 우주선을 탈 때의 절망감을 추억하듯 이야기했다.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선장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염려할 것 없다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들은 삼백광년 떨어진 별의 신상품 인형을 안고서 할아버지의 고향 ‘지구’의 아이들이 아무런 우주 문명의 수혜를 받지 못한 채 얼마나 미개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우주선 초기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면 선장은 곧잘 눈물을 흘렸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자신은 여러분에게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선장의 눈물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가슴이 아팠다. 사람들은 선장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선장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안겨준 사람이었다.
    늙은 김 씨는 차원을 이동하던 와중,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항성들을 내내 지켜봐야 하는 기관실의 특성상 방사선에 과도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관실에 있는 모두가 알았지만 동력 장치를 한 번 만져본 적도 없는 ‘책임자’는 김 씨의 노환을 문제 삼았다. 차원 이동이 끝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창고에 있는 물건들은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늙은 김 씨의 시신은 모두에게 생소한 그 별의 항구에 묻혔다. 곧 배는 출발해야만 했고, 기관사들은 서둘러서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기관사들이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는 우주선이었다.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한 팀은 24시간 동안 우주선을 운전했고, 다음 24시간 동안 잠을 잤다. 그들이 잠들어 있을 하루 동안 남은 팀이 우주선을 운전했다. 나라는 완전히 제 궤도에 자리하지 못했기에, 필수인력인 기관사들을 늘릴 수가 없었다. 기관사들은 고통스럽게 잠을 줄이며 이해했다. 발붙이고 살던 별에서 쫓겨났을 때에 비하자면 이 정도 고통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기관사들이 허약해지는 만큼 사람들은 행복해졌다. 기관사들의 머리 위에 집이 지어졌고, 공장이 지어졌고, 밭이 생겼다. 방사능이 걸러지는 인조 성층권과 오존층은 단단했고, 기관사들의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을 거침없이 달렸다. 아이들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거나 화가가 되고 싶다거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을 했지만, 가장 많은 경우 상인이 되고 싶다고 말을 했다. 장사란 여러 모로 놀라운 것이었다.
    노동조합에 출마하던 날, 석원은 이솝우화집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아래에서 살아가는 지저인이고,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 눈을 뜨고 깨어있는 귀신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당나귀입니다. 상인의 소금을 버겁게 메고 시장으로 가지만, 상인은 우리에게 채찍질을 하죠. 하지만 상인은 자기 소금을 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다리에서 뛰어내려 강에다 소금을 가져다 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 위에 소금을 싣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뭘 해 왔는지 알려 줄 것입니다.”
    그동안 기관사들은 소중히 다루어왔던 소금이 녹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제 소금은 강물에 던져졌다. 소금을 던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소금만 강물에 던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싸온 도시락을 거의 다 비워갈 무렵이었다.
    “위원장, 담배 없네?”
    “예?”
    “담배 말이네, 담배. 담배 없네?”
    “아, 예. 철남아!”
    석원은 후생복지부장인 철남을 불렀다. 도시락을 배식하느라 아직 밥을 덜 먹은 철남은 도시락을 한 쪽 손에 들고 건들거리며 걸어왔다. 우물거리면서 말하느라 밥알이 몇 개 튀었다.
    “네, 왜요?”
    “담배 어딨냐?”
    “네?”
    밥을 꿀꺽 삼키고서, 철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형님이 그런 거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면서요.”
    “뭔 소리야. 내가 언제.”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고 몇날 며칠 교육까지 해 놓고서 그건 또 뭔 소리랍니까.”
    “어? 그건 술이고.”
    “네?”
    석원이 파업 들어가기 2주 전부터 간부 교육을 세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떤 파업이건 간에 조합원들이 술을 마시고 해이해지기 시작하면 끝장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해 준 것은 늙은 김 씨였다. 늙은 김 씨는 어디든 석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석원과 늙은 김 씨가 함께 다니는 광경을 ‘책임자’도 싫어하지 않았다. 종종 ‘책임자’는 석원에게
    “김 씨는 너무 늙었지. 여기도 이제 슬슬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제일 기계를 잘 아는 네가 하는 게 맞지 않겠니.”
    따위의 말을 건네곤 했다. 그와 늙은 김 씨의 소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노동조합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늙은 김 씨가 끝내 소망을 못 이루고 죽고 난 다음, 석원은 늙은 김 씨와 함께 하던 사람들을 야단스럽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규합했다. 휴게실에서 훌라를 치고, 술을 마시고, 장난을 치면서 석원은 ‘조합’을 이야기했다. 혼자서 소금을 강물에 집어던져봤자 매만 맞을 뿐이었다. 하려면 다함께 해야만 했다.
    늙은 김 씨는 자신이 경험했던 파업을 종종 이야기했다.
    “길쎄 술을 먹으믄 안 되는 거이네. 파업에 드르가믄 심이 들구 씨엄히 불안하니까네 자꾸 술을 먹을라고들 하는 긴데, 기카구 술을 먹으믄 고래고래 고아대고 규율이 없어져서 냉중에는 녹살이 나게 되어 인서.”
    술을 마시고 결국 불안감이 더 커진 사람들이 규율을 어기고 멋대로 경찰에게 덤벼든다거나 파업 대열에서 떨어져나갔다던 김 씨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석원은 파업 날짜를 정해놓은 다음부터는 아주 열심히 교육을 했던 것이다. 김 씨가 경험한 파업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1916년 지구의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에 관련한 책까지 들고 왔다.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들 제정신이어야 합니다. 엄격한 질서가 필요합니다. 분명 사람들은 불안해서 술을 마시고 싶어 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마시지 않고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간부들이 그 역할을 해 줘야 해요.”
    지금껏 제일 열심히 술을 마셔대던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더욱 무게감이 실렸다. 간부들은 작업장의 조합원들에게도 열심히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석원은 당연히 후생복지부장 철남에게 특별히 강조를 했다. 절대로 술을 가지고 와서는 안 되며, 파업에 들어간 조합원들이 취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철원은 석원의 교육을 너무 크게 받아들인 나머지 술뿐 아니라 담배까지 챙기지 않은 것이었다.
    “아, 나, 이래서 담배 안 피우는 새끼들을 신뢰할 수가 없어요.”
    “아우,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다니까요.”
    철남은 멋쩍게 웃었다. 그 정도에서 끝날 일이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처음 세 시간은 괜찮았다. 담배를 들고 들어온 조합원들이 있었고, 그들은 다른 조합원들과 사이좋게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석원도 담배를 얻어 피우면서 멍청하다고 철남을 놀려댔고, 철남은 아이고 형님들, 제가 멍청해서 죄송합니다, 너스레를 떨며 기관실을 돌아다녔다. 바깥에는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려는 본격적 시도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세 시간이 지나자 조합원들은 눈에 띄게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몇 명은 소화가 안 된다고 호소를 했고, 손을 떠는 조합원까지 눈에 띄었다. 심지어 위원장인 석원조차 점점 신경이 예민해졌다.
    세 시간이 더 지나자, 기관실 내부의 분위기는 곧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술렁였다. 철남은 푹신한 요와 이불들도 많이 준비해 왔지만 잠이 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철남도 불안해서 잠이 들 수 없었고,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관실에서 24시간을 일하는 동안 담배 피우는 거 외에 잠을 깰 방법도 별 낙도 없었던 조합원들이다. 이 사람들을 한 자리에 묶어 놓고서 담배를 가지고 오지 않다니. 끝까지 확인을 하지 않은 자신의 실수라고 자책하면서, 석원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한 대만, 딱 한 대만 피웠으면.
    아무도 잠들지 못하는 여섯 시간이, 철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한 상태로 흘러갔다. 텔레비전에서는 한 시간에 한 번씩 기관실 점거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강경조치, 구속영장, 임의조직 같은 단어들이 경찰청장과 기관실 책임자의 입에서 번갈아가며 튀어나왔다. 긴 침묵을 깬 것은 골초인 황 씨였다.
    “위원장, 우리 멫날 계획으로 들어온 거임둥?”
    “일주일입니다.”
    황 씨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제정신임둥? 일주일 동안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이우까?”
    “아이고, 황 씨 아저씨. 그게 아닌 거는 아저씨도 잘 아시잖아요. 그 일주일 뒤에 그레메 별에,”
    석원이 능청을 떨며 황 씨의 팔짱을 끼려고 하자, 황 씨는 손을 들어 홱 석원의 팔을 뿌리쳤다.
    “내 석원이 니 술도 잘 마시고 담배도 잘 피우고 서글서글하이 사람들 잘 챙기고 착한 거 같아서 뽑아줬지, 사람들 이래 가둬놓고 담배 굶기라고 뽑아 준 기 아이라!”
    석원이 위원장으로 선출되고 나서부터는 꼬박꼬박 석원에게 위원장이라고 존대를 하던 황 씨였다. 늙은 김 씨와 친한 사이였기에 김 씨와 석원의 뜻이 어떤 것인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조합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불같이 화를 내는 황 씨를 보며, 석원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석원 자신도 니코틴이 모자라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황 씨는 목소리를 낮춰서 으르렁대듯 속삭였다.
    “니 우리가 여기 들어오면 편해질 거라고 하지 않았니? 저기 파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다고 하는 아새끼들 니 눈에는 안 보이니?”
    석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다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프락치가 있을 터였다. 기관실을 점거한 기관사들은 모두 823명. 이 많은 사람 중에 프락치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색출해내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구석에서 한참을 소곤거리던 젊은 기관사들이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위원장 님, 솔직히 이건 좀 그렇습니다.”
    “맞아요. 나가자마자 우리 싹 잡아들이겠다고 그러는데, 담배도 못 피우면서 이걸 어떻게 버팁니까.”
    “저는 마음이 도저히 그렇게 되지를 않아요.”
    맞서 싸우자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은 탓에 끌려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온건파들이 노골적으로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 말들이 맞지 뭘.”
    “아, 솔직히 그냥 나가서 감옥 가면 담배는 피울 수 있는 거 아니우?”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파업 준비도 이렇게 안 되어 있는데 파업은 무슨 파업이야.”
    “아, 그냥 나갑시다. 파업 계속 하실 사람들은 하쇼. 우리는 나가서 담배 좀 빨아야겠수다.”
    파업을 안 하는 대신 임금 인상 공약을 걸고 위원장 선거에서 석원과 맞붙었던 정 씨가 바리케이드 앞에 섰다.
    “이 따위 파업을 파업이랍시고 준비한 위원장을 재신임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제정신이에요? 일주일을 들어와 있을 거면서 노조 집행부라는 사람들이 담배 하나 제대로 못 챙겨서 들어와?”
    정 씨 라인의 조합원들이 웅성거렸다.
    “재신임? 파업 중인데 지금 재신임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파업 관두고 도로 나가게 되나?”
    텔레비전에서는 또 다시 책임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이라도 파업을 그만두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근로자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한 명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것 때문에 혹시라도 해고되면, 아내가 통신 일을 같이 해서 이제 겨우 윗층에 자리를 잡은 우리 집은…… 나는 애들도 있고…….”
    “솔직하게 내래 다 모르겠고 너무 심가 들어라. 담배 한 대만, 딱 한 대만 빨았으믄 좋갔는디.”
    “여기에서 나갈 방법은 저 위원장을 재신임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다들 모르시겠어요?”
    듣다 못한 리엔이 삐딱하게 고개를 들었다.
    “정 씨 아바이. 아바이야말로 재신임 결정하려믄 대이원 삼 분지 일 서명을 가디고 와야 하는 거 모르네? 딥행부 몰아낼 생각이믄 서명 가디고 오라우!”
    리엔의 앙칼진 목소리가 쨍하니 울리자, 정 씨는 잠깐 주춤했다. 리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 씨의 앞까지 잰 걸음으로 걸어갔다.
    “못 드덨소? 디금 녀기서 씰데없이 고따우레 소리나 디르디 말고 날래 서명을 받아오씨라요. 디금 녀기 파업 들어온 사람들로 티문 녀기서 반수를 받으믄 되겠시요.”
    리엔이 허리를 곧게 펴자, 큰 가슴이 불필요하게 도드라졌다. 작업복을 입고 있어도 눈에 띄게 글래머러스한 몸매였다. 리엔의 매서운 시선과는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대신 리엔의 가슴에 시선을 둔 채 정 씨는 꿍얼거렸다.
    “계집애가, 싸가지가 죄다 젖통으로 갔나…….”
    정 씨를 따르는 사람들 중 일부가 웃음을 터뜨리려다가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좌중을 훑어보며 리엔은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어드렇게 된 건지 모르겠수다. 규약도 기억 못 하고 니리 머리가 나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내 싸가디 뿐만 아니라 아바이 지능까디 다 내 젖통으로 온 모양이디.”
    그때 철남에게 귓속말을 듣고 있던 석원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모두가 당황해서 석원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우까?”
    “제가 몰래 나가서 담배를 구해 오겠습니다.”
    “석원이, 니 제정신이니?”
    “여덟 시간 안에 구해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이탈하지 말고 참아주세요. 정 씨 아저씨도, 부탁드릴게요. 반드시 여덟 시간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제가 못 구해오거나 못 돌아오면, 그때는 재신임을 하든 뭘 하든 마음대로 하셔도 좋아요. 파업을 푸셔도 좋습니다.”
    “뉘원장, 더거 안 보이우?”
    리엔이 손가락으로 산처럼 쌓인 바리케이드를 가리켰다.
    “대테 나가기레 어데로 나간단 말이네? 앞에 경탈이 쫙 깔려 있는데다가, 뉘원장 잡히문 파업이고 뭐고 다 끝장인 거 모르네? 계속 텔레비전에서 뉘원장 얼굴 나오는 거 못 봔?”
    석원은 엄숙한 표정을 은근슬쩍 풀고, 리엔에게 쪼르르 달려가 귀엣말을 했다.
    “철남이가 그러는데, 개구멍 있다던데?”

 

    8백 명의 조합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철남은 기관실 안쪽에 용도를 알 수 없이 늘 놓여있던 스티로폼 조각을 걷어냈다. 마른 사람 한 명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게…… 이게 뭐이레. 대테 언제부터 이런 기 있언?”
    “술집 배달부가 왔다갔다하는 개구멍이래.”
    “술……?”
    리엔의 얼굴이 확연하게 일그러졌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기관실이야말로 이 우주선 안의 모든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기관사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지켜야 할 규칙 중 하나였다.
    “그라문, 디금까디…….”
    석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24시간 2교대 제도로 근무하는 대부분의 기관사들은 잠을 깨기 위해 각성제를 먹고, 잠이 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운전을 하는 틈틈이도 약간씩은 마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순간들을 석원도 알고 있었다.
    “아저씨들, 지금까지 들킨 적은 한 번도 없죠?”
    조합원들은 살았다는 듯이 너도나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고, 석원은 대충 손짓을 했다.
    “그럼 됐어요. 앞으론 이러지 마요, 파업 끝나면 구멍 막을 거예요.”
    리엔이 빽 소리를 질렀다.
    “뉘원장, 디금 뭐라고 핸? 이런 거는 누가 팠는디 어드렇게 된 건디 파악을 해 봐야 하디 않간?”
    “리엔, 지금은 파업 중이잖아.”
    “하, 파업을 하믄 규틱이 없어디간? 파업할 적에는 규율이 더 엄격해야 된다고 얘기한 거래 누구였드랬나?”
    석원은 리엔에게 사무국장을 맡긴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뛰어난 인사였다고 생각했다. 사무국장을 하기에 아주 적합할 만큼 피곤한 여자였다. 위원장을 포함해서 아무도 이 사무국장의 꼼꼼한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자, 리엔한테 혼나실 분들은 마저 혼나시고. 저는 이만 다녀오겠습니다.”
    “뉘원장, 이 째깐한 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겠네?”
    “쑤셔 넣으면 못 들어갈 게 어딨어. 여러분, 혹시 제가 못 돌아오더라도…… 부디 우리가 뭘 위해서 이러고 있었는지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했는지.”
    조합원들의 표정이 조금 숙연해졌다. 황 씨가 석원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석원은 싱긋 웃으며 작업용 조끼를 벗고, 넓은 어깨를 옹송그려 구멍 안에 몸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심지어 몇몇은 울먹이며 위원장의 위험한 외출을 지켜보았지만, 그 숙연함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어깨까지는 어떻게든 쑤셔넣어졌는데, 문제는 엉덩이었다. 석원의 큼지막한 엉덩이가 개구멍에 결국 끼고 말았던 것이다. 정 씨 무리들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개구멍 속에서 석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왔다.
    “리엔, 엉덩이 좀 밀어 줘!”
    리엔은 정말이지 낯부끄러워서 울고 싶어졌다.
    “내레 못 들어갈 것 같다고 하디 않았네…… 뉘원장 때문에 살 수가 없소…….”
    리엔은 있는 힘껏 석원의 엉덩이를 밀기 시작했다. 석원은 엉덩이에 가해지는 압력에 당혹스러워 하며 쑥쑥, 밀려올라가기 시작했다. 리엔의 팔힘은 무지막지했다. 저 가느다란 팔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괴력이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할 수도 없는 석원은 지금 자신의 엉덩이를 밀어대고 있는 게 사실 리엔이 아니라 흉측한 거인 같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였다.
    “아, 미티겠네. 아딕 멀었네?”
    “빛이 아직 안 보여.”
    “뉘원장은 뭐 니렇게 엉뎅이만 컸지 올라가디를 못 하서.”
    “대체 그 술집 배달하는 애는 어떻게 여길 왔다갔다 한 거래냐…….”
    “내레 지금 발 디딜 데 다 밟고 올라가고 있는데, 알고 인? 뉘원장, 나무도 못 타는 거 아닌?”
    “야, 내가 서울 출신인데 나무를 탈 일이 어딨냐.”
    “하이고, 잘났시우.”
    리엔이 머리로 엉덩이를 떠받쳐서 쑥쑥 미는 것을 느끼며, 석원은 무거운 서류를 아무렇지 않게 옮기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바리케이드를 칠 때도 리엔은 거침없이 기계들을 덤쑥 들어 옮겼다. 대체 이런 천하장사가 같이 일하고 있었는데도, 왜 지금까지 몰랐지. 쑥, 리엔이 한 번 더 힘을 주자, 갑자기 급격한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힘차게 밀어 올리던 반동으로 리엔까지 내리막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석원이 겨우겨우 머리를 들이민 것은 끈적끈적한 술집 바닥이었다. 바닥에서 사람 머리가 튀어나오자 술집 주인 여자는 놀라지도 않고 석원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얘, 지금 거기 파업 중이라 들어가 봤자 소용없어.”
    “예?”
    “에그머니나!”
    주인 여자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다가 실수로 조리도구들을 엎어버릴 뻔 했다. 주방에 달린 아주 작은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주인 여자는 어, 어…… 어……를 연거푸 중얼거렸다. 텔레비전에는 석원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석원은 가살스럽게 양 손을 비비며 비굴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아이고, 이모님. 안녕하셨어요?”
    석원이 덥썩 주인 여자의 손을 잡았다.
    “아, 어…… 석원이……가 아니고 위원장이지?”
    주인 여자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빼내고는 치마폭에 슥슥, 닦았다.
    “아이 그게 참, 내가 기관실에 있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 맨날 우리 술 팔아주는 사람들 아니야. 그런데 여기까지 이렇게 올라오고 그러면 나도 신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주인 여자의 손을 석원은 냉큼 다시 붙잡았다. 주인 여자는 다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이번엔 석원도 녹녹치 않았다. 으스러져라 꼭 손을 붙잡고, 석원은 비굴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는 몸을 배배 틀었다.
    “아유, 이모님도 차암. 우리가 하루 이틀 보는 사이도 아니고오.”
    주인 여자는 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석원이. 여기 석원이가 있다가 들키거나 하면 우리 집 장사는 대체 어떻게 되겠어. 선장님한테 위원장을 숨겨줬다고 걸리기라도 하면…….”
    몸서리를 치는 주인 여자의 손을 쭉 끌어당기더니, 석원은 주인 여자의 몸을 180도 회전시켜서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댔다. 아까보다 훨씬 콧소리가 들어간 목소리로, 석원은 교태롭게 어깨 너머로 주인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주인 여자는 아이고, 왜 이래, 왜 이러누, 라고 몇 번 주워섬기다가 얼떨결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것 봐요, 이모님은 나 좋아하잖아. 왜 자꾸 막 내칠라고 그래요.”
    “내가 아까두 기관실 사람들 좋아한다고 했잖아. 근데 진짜 이거 잘못 걸리면 우리 굶어 죽어, 석원이. 응? 내 사정도 좀 이해해주라.”
    “아, 아주머니. 파업 무슨 천년만년 하우? 우리 딱 일주일 할라 그랬어. 일주일 지나면 예전처럼 술도 계속 다 사 먹을 거야. 끝나면 우린 뒤풀이도 안 한답니까? 내가 파업 끝나고 달려 가면은 빵에 들어가는 사식은 죄다 이모님 집 안주 싸오라고 할게. 응? 좀 봐주세요.”
    그 사이 기어 올라온 리엔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두 사람을 보다가 말을 거들었다.
    “파업 이기문, 죄 월급도 올라서 더 많이 마시겠수다.”
    리엔의 말을 듣자 주인 여자는 눈을 빛내며 천천히 계산을 하는 표정이 되어 갔다. 신이 나서 석원은 리엔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니까! 거기다 이번에 우리 요구 조건이…… 뉴스 봐서 알죠? 고용 인원 늘리라는 거. 사람은 더 늘어난다니까요? 진짜 잘만 되면은 이모님 아주 돈방석에 앉는 거야. 우리가 어디 퇴근하고 나서만 사먹나? 아시잖아요, 계속 마시는 거.”
    리엔이 도끼눈을 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석원은 주인 여자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계속 조잘거렸다. 주인 여자는 생각해보니 역시 이 술집의 지리적 위치상 가장 큰 수입원은 하는 수 없이 기관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제 오늘 뉴스를 보니, 석원은 80퍼센트가 넘는 조합원의 지지를 받아서 당선되었다고 했고, 이런 위원장을 경찰한테 갖다 줬다가는 자신의 장사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조잘대는 석원의 말을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넘기면서 한참 생각한 결과, 주인 여자는
    “그래서, 점거파업한다는 양반들이 여기까지는 뭐 하러 나왔어.”
    라고 물었다.
    “그게, 내가 잘못해서 담배를 안 들고 들어갔어요…….”
    “담배 때문에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다고? 미쳤어?”
    “아이, 그게 참 그렇게 됐네. 이모, 어디서 담배 좀 구해줄 수 없나?”
    “우리 가게는 담배 안 파는데. 얼마나?”
    “어……”
    800명 남짓한 조합원이 일주일 가까이 피울 양이라면,
    “560보루 정도……?”
    “뭐?”
    주인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신고는 안 할 수 있겠는데, 그건 못 구해주겠다. 그건 네가 알아서 구해라.”
    리엔이 불쑥 입을 열었다.
    “에미나이, 디금까디 불법 개구멍으로 팔아묵은 술이…….”
    석원은 소리를 지르면서 손으로 리엔의 입을 틀어막았다. 리엔의 몸이 뒤로 젖혀지며 가슴이 위 아래로 흔들렸다. 석원이 급박하게 입을 막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 여자의 귀에 불법 개구멍이라는 단어는 들어가고야 말았다.
    “아가씨, 지금 뭐라고 했어?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모님. 얘가 좀 성격이 이상해서…… 죄송합니다. 네? 이모님은 우리 얼굴 모르시는 거고, 우리는 쩌기 화장실 갔다 오는 척 하고 자리에 앉아서 술이나 마실게요. 담배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혹시나 걸려도 절대 이모님 얘기는 안 할 테니까 염려 마시구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리엔을 끌고 나가는 석원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주인 여자가, 두 사람을 다시 불러세웠다.
    “석원이 너 혼자 오려고 했나보지?”
    “네? 아…… 네, 그렇긴 한데…… 그건 왜…….”
    주인 여자는 턱으로 리엔을 가리켰다. 그제야 석원은 리엔의 작업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차림으로 들어가면 기관실에서 왔다고 광고하는 거지.”
    “아이고, 이모님 없었으면 우린 어떡할 뻔 했어, 그래.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모님. 아이고…….”
    과장되게 넙죽넙죽 고개를 숙이는 석원을 턱 끝으로 보면서, 주인 여자는 부엌 구석에 걸려 있던 치마와 티셔츠를 리엔 쪽으로 던졌다.
    “우리 홀 종업원 복인데. 아직 안 뽑혔으니까 오늘만 입어. 돌려줘야 된다.”
    리엔이 얼떨결에 옷을 받아들고 고개를 반쯤 숙였을 때, 주인 여자가 싱크대 앞에 기대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언니야, 너도 담배는 사러 못 가. 네 얼굴도 벌써 다 알려졌거든.”
    석원이 필사적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화장실 앞에 서 있는 동안, 리엔은 옷을 갈아입으며 신경질을 냈다. 치마가 너무 짧다고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끊임었이 들렸다.
    “네 다리 아무도 안 보니까 신경쓰지 말고 제발 빨리 나와라. 응?”
    “남들이 계속 보문은 어드렇게 할 거네. 뉘원장이 술 백 번 사나?”
    “아, 백 번 살게. 산다고. 알겠으니까 빨리 좀 나와.”
    화장실 밖으로 나온 리엔을 보자마자, 석원은 설마 진짜 백 번 사야하는 것은 아니겠지, 염려하기 시작했다. 리엔의 왼쪽 다리에는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이어지는 길고 흉측한 흉터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술집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석원과 리엔은 객쩍은 표정으로 맥주를 시켰다.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석원의 거의 리엔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면벽을 하고 있었다.
    “지금 뭐하네?”
    “혹시라도 들키면 어떡하니.”
    리엔은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것수다. 그래 겁재기가 어드렇게 담배를 구하갓네? 술이래 좀 드시면 쌍판이 조금은 두껍어져서 구하기에 돟을 지도 모르갓소.”
    “넌 뭐 말투가 늘 그렇냐.”
    “내래 이 고운 양지로 험한 세상을 살다보니까네 니렇게 됐수다.”
    석원은 기막혀 하며 리엔을 흘겨 보았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으로 리엔은 상당한 미녀였다. 기관실에 처음 리엔이 들어왔을 때, 모든 기관사들이 넋을 놓고 리엔을 보던 것을 석원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찬바람이 쌩쌩 불어서 아무도 그녀에게 접근하지도 못했지만. 어떤 회식자리에도 참석하지 않고, 누구랑도 친하게 지내지 않던 그녀가 석원이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이야기에 먼저 석원을 찾아왔었다. 내래, 노조 일 좀 맡겨주씨오. 잘 할 자신이 있소. 큰 눈에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결기가 서려있어, 석원은 흔쾌히 같이 일하자고 리엔을 붙잡았었다. 리엔은 갑자기 석원의 팔을 잡고, 옆 테이블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옆 테이블에서는 파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석원은 천천히 맥주를 마시면서 귀를 기울였다.
    “미친 놈들 아니야? 무역길이 아주 망할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러니까. 지들 피곤하다고 아주 사람들을 다 굶겨 죽일 셈인가.”
    “운성이는 이번에 그레메 별에 도착하면 거기에 눌러 살 생각이었다던데.”
    “무슨 연고가 있대?”
    “아니, 저번에 갔을 때 옷감 파는 아가씨랑 이…….”
    “하이고! 구르는 재주도 있네!”
    “아무튼 그 놈은 이틀 내내 파업만 욕하고 있지 뭐. 그르메 별에도 파업 소식은 벌써 갔을 거 아냐.”
    “경찰은 왜 앞에서 지켜 서고만 있는 거래?”
    “내 말이.”
    석원은 다시 얼굴을 가렸다. 약간 어두워진 표정을 눈치 챈 리엔이 가볍게 석원의 어깨를 쳤다.
    “파업하믄 뇩 먹을 거 몰랐네?”
    “아니, 알았지만…….”
    “기러게, 서울 출신 도뎐님이 대테 니런 우주선은 뭐한다고 타셔서 이 고생이네?”
    “도련님 아니야. 엄마가 황해도 출신.”
    “2세? 2세 정도면 도뎐님이 왜 아니네.”
    아직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적당히 눈치를 보던 주인 여자가 맥주 두 잔을 더 가져다 놓고 빈 잔을 챙겼다. 석원의 귀에 계산은 꼭 하라고 소근대고서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 엄마는…… 그때 끌려갔고.”
    “그러믄 오마니도 같이 탔네?”
    “그때 너무 맞아서, 타기 전에 돌아가셨지.”
    “으응…….”
    리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이번엔 반대쪽 테이블에서 떠드는 파업 이야기가 들려왔다.
    “거 하루 종일 잠도 못 잔대잖아.”
    “우리도 그거야 마찬가지 아임둥.”
    “그러니까 상황은 좀 이해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지.”
    “그라믄 우리도 내일부터 그냥 일 때려치우고 나오지 않는 게 좋겠수까? 다 월급 받아 가믄서 일하니까 할 수 있는 개짓거리 아이겠소.”
    “사람이 인정머리가 없냐…….”
    석원은 발끝으로 리엔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응?”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리엔은 오른손으로 다리를 쓱쓱 문질렀다.
    “아,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네? 벨 거 아니우. 그래 보기가 나쁘네?”
    “아, 아니…….”
    “내레 여기서 일하기 전에는 화물 쪽에서 일해서. 솔직하게 말하자믄 여기보다 화물칸가 적성에는 더 맞디 않았나 싶어. 내레 팔힘이 좋아서. 덕분에 이것저것 달도 날라서. 아바이들 데대로 옮기지도 못하는 아딕 가공 아니한 보석 원석들도 서울 에미나이들 클러치 백 드는 것 마냥 들어대었지.”
    “너 아까 나 미는 거 보니까 그랬겠더라. 완전 식겁.”
    “근데 어느 날은 덩신이 나갔는디 화물 감독관가 말도 아니 되는 것을 들라고 하디 않간?”
    “어떤 거?”
    “그것도 보석 원석이어서. 둘레가 내가 팔로 네 번은 둘러야 둘러지고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원석.”
    “그걸 들라고 했다고?”
    “내래 기랬지. 기중기는 없냐고. 근데 그게 무슨 보석이라서 기중기로 들었다가 흠이 가면은 손해가 난다고 하더라고.”
    “여럿이서 들 수도 있잖아.”
    “그날 출근한 사람이 그리 많디가 않았는데 생각디 못하게 큰 물건이 있었던 것이라.”
    “그래서……?”
    “뭐, 떨어뜨렸네. 돌이 다리 위로 떨어지믄서 박살이 나서, 내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감독관은 그게 딘짜 보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 다리는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어찌나 심하게 찢어졌는지 근육이랑 뼈가 통째로 들다 보이고. 감독관은 나도 병원에 보내야 되고, 가짜 보석 때문에 화가 나는 건 어드렇게 할 수가 없어서, 딘짜로 덩신을 잃을 지경이었드랬지.”
    리엔은 키들거리며 웃었다.
    “물건을 떨어뜨렸다고 잘렸디. 더욱이 아무 보상도 못 받아서.”
    “……항의했어?”
    “매일 아츰마다 창고 앞에 서 있었디. 한 달 꼬박 서 있었는데도 감독관은 한 번도 나랑 눈이 마주친 적이 없어서. 한 달가 지나니 돈이 없어서 그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디. 일을 해야 하니깐.”
    옆 테이블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사람들이 피곤해서 우주선이 잘못 돌아가기라도 하면 우린 모조리 떼죽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흘깃거리면서 리엔은 멍하니 턱을 괴고 술집 무대에서 라이브를 하는 밴드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석원은 모르는 노래였다.
    “봄이 왔다고 제비들도오 고향에에 갔으려어언만 고향으으으로오 가고파아아도 갈 수 없는 이이 사여어언을”
    “연변 노래야?”
    “기렇소. 어레인지가 아주 재미가 있네.”
    “어?”
    “드더 봔. 코드는 그대로 가져가는데 보컬이 아주 울부짖듯이 하이톤을 뽑아서 분위기레 아주 묘해지지 않안? 기타는 하드록 리듬으로 더렇게 둔탁하게 만들었네.”
    석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나오는 음악에 대해 속삭이던 리엔은 간주부분에서 고개를 번쩍 들고 밴드 쪽을 홱 돌아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석원은 리엔이 우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이쪽을 흘끔거리는 것 때문에 사색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벌써 맥주가 세 잔 째였다.
    “왜…… 왜 그래? 리엔, 취했어?”
    “이 멜로디, 닐 영이어서.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뭐… 에브리바디 이즈, 뭐?”
    “닐 영이라고, 닐 영!”
    리엔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술집 안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리엔과 석원을 돌아봤고, 석원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조그마한 소리로 리엔에게 물었다.
    “그게 뭔데?”
    리엔은 입을 딱 벌렸다.
    “사람으로 태어나 닐 영을 모를 수가 있네? 사람이 어드렇게 교양이 없어도 그럴 수가 인?”
    “몰라, 몰라. 조그맣게 좀 말해.”
    “와…….”
    리엔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캐나다의 어느 가수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고, 그 사이 밴드는 연주를 마쳤다. 리엔은 네 명의 밴드가 모두 넋을 놓고 리엔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석원은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가리고,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리엔의 말을 반쯤은 듣고 반쯤은 흘리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순간 옆 테이블에서 상이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관실의 파업 이야기를 하다가 곧 싸울 분위기였던 테이블이었다. 사이좋게 기관실 파업에 대해 욕하고 있던 테이블에서도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고만 좀 하소. 내 그 사람들 힘든 거 몰라서 이럼둥? 내 삼춘이 그 기관실 구석에 백혀서 그 노무 파업을 하고 있단 말임매! 아조 노구를 이끌고서 뭐 그렇게 좋다고 씬이 나가지고서…….”
    함경도 사투리. 조합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석원은 울음을 터뜨린 나이 어린 남자를 힐끔 보았다. 누구의 조카인지 추정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남자는 뚜렷하게 황 씨를 닮아 있었다. 언젠가 술에 취한 황 씨에게 노가다판에서 일하는 조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석원의 나이 또래라면서, 아새끼래 기술을 배울라고 안 해서 큰일이지비…….
    “우리 삼춘이…….”
    황 씨의 조카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은 가만히 테이블을 정리하고, 그의 어깨를 차분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알아, 무슨 말인지.”
    “나는 다 싫구마…….”
    “그거 알아? 나는, 나도 기관사들처럼 말하고 싶더라.”
    그 사이 무대 위에 있던 드러머가 주춤주춤 우리 테이블 옆에 와 있었다. 옆 테이블의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던 리엔은 옆을 돌아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니……!”
    “간만이네, 리엔.”
    “니 여기 들어왔드랬어? 살아있었네?”
    “나는 리엔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걸 봤디.”
    “파업?”
    리엔은 개구쟁이 사내아이처럼 부끄럽게 머리를 긁었다.
    “계속 음악하고 있었네?”
    “응. 일이래 통신 짝에서 하고 있디. 그래도 계속 음악은 하고 있드랬디. 저 틴구들은 다 통신실에서 만난 동료들이야.”
    “기렇구나, 기래!”
    “통신실에서도 기관실 파업이래 열심히 보고 있어. 대드리싸움을 하는 형씨가 어버리크다고 말들이 많슴네다.”
    드러머는 갑자기 시선을 석원 쪽으로 옮기더니 석원에게 말을 건네 왔다. 석원은 얼결에 고개를 숙이고서는 드러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반갑습니다. 석원입니다.”
    “저도 반갑습네다. 저는 년변에서 리엔이랑 같이 밴드를 했었씨요.”
    “밴드라니…….”
    리엔이 석원을 향해 웃어보였고, 석원은 곧바로 드러머에게 고개를 숙였다.
    “노조 집행부만 같이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밴드라니. 몸에서 사리 나오셨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드러머는 키들거리며 석원에게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라문요. 리엔이 승질머리가 진해 더럽디요? 형씨도 고생이 많으십네다. 기건 기렇고, 파업 중인 뉘원장께서 어드렇게 여기까디 올라오셨습네까?”
    그제야 석원은 술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석원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담배…….”
    “네?”
    “담배를 안 들고 들어가서……. 사람들이 담배가 필요하다는데…….”
    순간, 번개처럼 황 씨의 조카가 석원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고,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황 씨의 조카를 부르며 말리기 시작했다. 석원은 지금 이 술집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근처의 공사장에서 온 인부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 이 종간나새끼, 쓸데없는 뽐뿌질을 해서 우리 삼춘이 너 때문에!”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제가 황 씨 아저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임매!”
    석원은 황 씨 조카의 주먹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놓으십시오, 좀 삽시다, 우리는 살면 안 됩니까!”
    석원이 소리를 치는 순간, 리엔은 이젠 진짜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곧 경찰이 오고 석원은 잡혀가고 파업은 끝나고 정 씨 중심의 집행부가 새로 들어설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석원이나 리엔 같은 집행부들은 징계를 받을 것이고, 어쩌면 석원은 새로 직장을 구해야만 할 수도 있었다. 리엔의 염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석원은 혼자서 무슨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내내 운전을 해야 해서, 화장실은 다섯 시간에 한 번씩 겨우 갈 수 있습니다. 웜홀을 지나려면 항성의 위치를 관찰해야 해서, 방사선에 다 노출되면서도 차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걸 하루 온종일 받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잠이 오지를 않아서 술을 마십니다. 워프를 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어도 그게 방사능 때문이라고 아무도 인정해주지를 않습니다. 사람처럼 좀 살게 해달라고 했더니만, 월급을 올려달라면 올려주겠답니다. 왜 우리 피를 빨아먹고 우리 등골 위에다가 돈을 쌓고 집을 짓는 겁니까? 왜 우리는 살면 안 되는 겁니까!”
    침묵.
    “신고하려면 신고하십시오, 나가서 여기 파업의 주동자가 있다고, 우리를 다 굶겨 죽이려는 새끼가 있다고 말씀하시라고요.”
    역시 침묵. 석원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것을 리엔 역시 말없이 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밴드는 정말로 닐 영의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를 느릿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매 순간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꿈 꿔. 시원하게 산들바람이 불겠지. 지금 당장 내가 거기 있으면 좋겠지만, 그저 시간이 흐를 뿐이야. 곡이 끝날 쯤 되면 다시 처음부터 연주가 시작되었다. 몇몇 노가다 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술집을 나갔고, 이제 곧 경찰이 올 것이었다. 황 씨의 조카는 멱살을 놓고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었고, 석원은 남은 맥주잔을 다 비웠다. 쓸데없이 맛있는 맥주라고, 아마 상황 때문이겠지, 석원은 씁쓸하게 웃었다. 리엔은 천천히 석원의 손을 잡았다. 석원은 장난치듯 리엔을 향해 웃어 보였다. 세 번째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가 끝날 무렵, 술집 문이 다시 열렸다. 석원은 각오를 하고 문을 돌아보았다.
    문 앞에는 담배를 스무 보루씩 든 공사판 인부들이 서 있었다. 맨 앞에 선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거기 잡아 놓나. 인간적으로 살자면서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되지.”
    석원은 인부들이 사 온 담배를 보고 반쯤 웃고 반쯤 우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도 디스플러스 피우는데.”
    부엌 쪽에서 주인 여자가 손뼉을 쳤다.
    “이리로 와요, 여기에 넣으면 돼요.”
    밴드가 계속해서 닐 영의 노래를 연주하는 동안, 노가다꾼들은 차례차례 부엌으로 들어가서 좁지도 넓지도 않은 개구멍에 담배를 밀어 넣었다. 560 보루까지는 택도 없이 모자랐지만 분명 200 보루는 넘는 양의 담배였다. 수많은 담배들이 떨어지고 나서 석원과 리엔이 떨어지자, 기관실에서는 탄성이 울렸다. 기관실은 아주 안온하고 포근한 너구리굴이 되어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철남이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기침을 하고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공중으로 하얗게 연기가 떠가고, 조합원들은 눈을 지긋이 감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파업 사흘 째였다.

 

    사람들의 평온한 잠을 깨운 것은 철문을 울리는 굉음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졸린 눈으로 멍하니 철문 쪽을 바라보았다. 철문 너머로 틀림없는 드릴과 굴삭기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릴은 철문을 뚫고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철문 앞에 쌓여 있던 철제 의자와 책상들이, 나무조각들이, 거침없이 회전하며 밀고 들어오는 드릴의 힘에 맥없이 뚫려나갔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웅성거리며 바리케이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무너진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묶어놓은 쇠사슬이 끊어졌다. 단단하게 묶어놓은 쇠사슬은 있는 힘껏 당겨놓은 노력이 무망하게 한 순간에 끊겨 나갔다. 작은 물건, 큰 물건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고 철문이 안쪽으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중구난방으로 밀려나갔다. 그 틈으로 굴삭기의 웅장한 버켓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공들여 쌓아놓은 바리케이드를 버켓이 무자비하게 밀어내자, 그 틈으로 밀려들어오는 경찰복을 입은 사내들이 밀려들어왔다. 리엔이 던져놓은 거대한 쇳덩이 하나를 가볍게 버켓으로 밀어내자, 그 쇳덩이 뒤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신히 몸을 가누고 서 있는 책임자가 보였다. 책임자는 버켓이 쇳덩이를 밀어주어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몇 번 비틀거리다, 바리케이드 산 위에서 넘어질 뻔 했다. 간신히 쇳덩이를 짚고 넘어지지 않은 책임자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묻은 기름때를 문질러 닦았다.
    경찰 중 조금 직급이 있어 보이는 사내가 냉큼 의자를 가져다가 책임자의 엉덩이 밑에 가져다 대 주었다. 책임자는 연신 땀을 닦으면서 의자 위에 앉았다. 책임자를 향해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저 개새끼가!”
    경찰들은 책임자의 앞쪽으로 순식간에 대열을 이루었다. 책임자는 천천히 숨을 돌리더니, 의자 위에 올라서서 경찰들의 머리 너머로 손가락질을 시작했다.
    “저, 머리 짧고 체크무늬 남방 입은 사람이랑 저, 노랗게 머리 물들인 사람이랑 저기, 가슴 큰 여자랑…….”
    조합원들은 집행부 앞에 경찰들처럼 대열을 이루어 섰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이 아니었다. 워낙 뉴스에서 계속 얼굴을 비추어 준 탓에 석원은 굳이 책임자가 짚어 줄 필요조차 없었다. 책임자는 아직 석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도, 먼저 석원을 발견한 경찰들은 그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가슴 큰 여자로 지목된 리엔은 자신의 팔을 붙잡는 경찰 한 명을 거칠게 밀쳐냈다. 리엔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경찰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기껏해야 경찰 한두 명 정도는 리엔의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철남이 사지가 붙들려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리엔은 잠시 고민하다가 석원을 향해 달려갔다. 석원은 웃지도 울지도 않고 묵묵히 서 있었고, 석원을 향해 휘두르는 곤봉들을 리엔은 손으로 잡아 던져버렸다. 리엔만이 아니었다. 황 씨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석원의 주변에 보호막이라도 형성할 듯이 몰려 서 있었다. 석원의 근처까지 오지 못한 조합원들은 경찰을 향해 정비할 때 쓰는 렌치를 집어 던졌다. 경찰의 목표가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누군가는 바리케이드의 산 위에 올라, 그 잔해들을 경찰을 향해 집어던졌다. 화들짝 놀란 경찰들이 둥그렇게 비켜서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철제 책상이 기관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경찰들의 손은 그럼에도 낙지 발판처럼 석원에게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리엔이 길고 늘씬한 다리를 뻗어 그 손가락들을 발차기로 끊어내는 순간, 곤봉 하나가 리엔의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눈앞이 순간 깜깜해졌고, 리엔은 비틀거리면서 옆에 있는 누군가의 어깨를 붙잡고 쓰러질 찰나였다. 석원의 양팔에 경찰복을 입은 팔들이 끼워지자, 멀리에서 누구의 목소린지 모를 절규가 들려왔다.
    “무역이고 보석 장사고 옷감 장사고, 어차피 너희는 우리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해. 아무 것도 못 한다고!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리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야!”
    경찰들이 석원의 발을 들었다. 이 파업이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석원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기관실로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석원이 사지가 들린 상태로 멍하니 기관실 천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사이 정신을 차린 리엔이 석원을 끌고 가는 경찰들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 순간,
    우주선이 바로 옆의 항성에서 강렬한 플레어가 일어났다.
    모두의 눈앞이 잠깐 뿌옇게 흐려졌고, 그 강렬한 빛 속에서 긴 포물선을 그리며 하얀 담배 한 갑이 날아들었다. 리엔은 문득 고향의 노을빛 한 가운데로 날아들던 동네 아이들의 야구공을 생각했다. 석원은 붙잡힌 와중에 아주 천천히, 그리고 길게 손을 뻗어 캐치볼을 하듯이 담배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석원은 웃고 있었다.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는 얼굴을 보자, 리엔은 어쩐지 노곤하게 몸에 힘이 풀렸다. 리엔의 양쪽 팔에도 경찰의 팔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팔짱을 끼는 우악스런 손들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리고 리엔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파업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끄지 않은 텔레비전에서, 큰 손실 없이 기관실의 파업이 진압되었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나직하고 차분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작가소개 / 이서영(소설가)

1987년 대구 출생. 안양예술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를 졸업했다. 환상소설이나 운동권소설, 혹은 환상적 운동권소설을 쓴다. 단편집 『악어의 맛』이 있다.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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