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_단편소설_물] 준

 

[7월 단편소설_물]

 

 


 

 

정지향(소설가)

 

 

    삼촌이 가라앉은 곳은 수산물 직판장 근처였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처음 그걸 발견했어. 나는 엄마가 흐느끼는 걸 들으면서 그 풍경을 떠올렸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는, 왜 저기에 누가 부려놓은 것처럼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떠 있나, 하고 바다를 내려다봤을 것 아냐. 어떤 과일은 뜨고 어떤 과일은 가라앉잖아?

 

 

삽화_준

 

 

    한나는 피곤을 느꼈다. 몇 시간째 연극을 하듯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나눈 탓이었다. 곁에 앉은 둘도 마찬가지였는지 한참이나 정적이 이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집 안을 살폈다. 반쯤 열린 미닫이 너머로 준이 보였다. 준은 여전히 팔로 다리를 감싸 안은 채 거실 타일 바닥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테라스에 있는 그들이 좀 큰 소리로 말한다면 충분히 들릴 만한 거리였다. 그날 저녁 맥주를 마시기로 한 건 준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준은 끝내 테라스로 나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방충망에 붙은 벌레들이 빛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듯 날갯짓을 했다.
    이따금 술이나 약에 취한 여행자들이 흐느적거리며 테라스 아래를 지나쳐갔다. 양 끝이 둥글게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그 해변은 원래 이름보다는 뉴 문 비치new moon beach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렸다. 섬은 조차가 큰 편이었다. 물이 들어와 백사장의 너비가 줄어드는 밤에는 해변의 모양이 더욱 초승달 모양에 가까워졌다. 파도소리가 발밑인 듯 가깝게 들렸다. 어김없이 파티가 벌어지고 해변 곳곳에 작고 큰 모닥불들이 피어올랐다.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에 마리화나 냄새가 섞여 날아왔다. 늘 섬 공기의 얼마쯤을 이루고 있는 그 냄새는 파티가 절정에 달하는 그 무렵에 한층 더 짙어졌다.
    그곳은 동남아의 섬 중 몇 남지 않은 미개발 지역이었다. 주변의 다른 섬들에 비해 물가가 훨씬 쌌기 때문에 히피 커뮤니티에서는 낙원으로 알려졌다. 뉴 문 비치는 섬 안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의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그들은 해변 한가운데에 있는 레스토랑 건물 이층에서 지냈다. 해변을 둘러싸고 늘어선 방갈로나 식당, 바들은 모두 단층 건물이었기 때문에 그 건물만이 낮은 스카이라인 위로 툭 튀어 오른 모양이었다. 테라스에 불을 켜둔 밤이면 그곳은 뭔가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일을 꾸미는 작은 요새처럼 보였다.
    -네 차례야, 한나야.
    정적을 깬 것은 재민이었다. 맥주병을 만지작거리던 백암도 고개를 들었다.
    한나가 곰곰이 말을 골랐다. 내내 생각해 온 것이었는데도 막상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외삼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우리 작은 외삼촌은 주택가로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과일을 팔았었는데, 그걸 타고선 한밤중에 그대로 바다로 갔어.
    한나가 잠시 말을 멈추고 목을 축였다.
    -난 그때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었어. 수업이 다 끝나고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 엄마는 날 장례식장에 못 오게 하려고 발인이 끝난 뒤에야 연락을 한 거였어. 신고는 아침이 돼서야 들어왔대. 삼촌이 가라앉은 곳은 수산물 직판장 근처였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처음 그걸 발견했어. 나는 엄마가 흐느끼는 걸 들으면서 그 풍경을 떠올렸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는, 왜 저기에 누가 부려놓은 것처럼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떠 있나, 하고 바다를 내려다봤을 것 아냐. 어떤 과일은 뜨고 어떤 과일은 가라앉잖아?
    어쩐지 나는 삼촌 트럭에 어떤 과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했어. 그때는 늦봄이었는데 포도나 딸기, 복숭아가 나왔을 거고 사과, 바나나, 토마토처럼 별로 계절을 타지 않는 것들도 있었을 테고, 수박도 나왔나? 수박이라면 분명 떴을 텐데……, 하면서. 그것들이 밤새 파도에 휩쓸리고, 방파제에 부딪히고, 결국에는 물크러지거나 작게 조각나서는 아침이 되었을 때 거기 삼촌이 있다는 걸 알리듯이 떠 있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따뜻한 기분이 들었어.
    재민과 백암이 한나 쪽으로 손을 뻗었고, 셋은 맥주병을 살짝 부딪쳐 건배했다.
    -죄책감 같은 걸 느끼나?
    백암이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그의 말투는 언제나 좀 무심하게 느껴지는 데가 있었다. 한나는 고개를 모로 꺾은 채 잠시 고민했다.
    -응. 최근에는 그래. 요 며칠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삼촌은 덩치가 큰 편이었어. 키가 백팔십오쯤은 됐을걸. 그런 삼촌이 좁은 트럭 안에서 이리저리 떠오르면서 물을 마셨을 거잖아. 나는 어째서 삼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까.
    한나는 그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유달리 큰 키와 검은 피부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한나의 친척들 중에선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그녀는 삼촌의 삶을 자신이 보았던 몇 가지 장면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탄 채 지리산 언저리에서 닭을 치고 있다가 다음번에는 머리를 깎고 절간에 앉아 있는 식이었다. 한나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에는 고향에 정착해 여자와 살았다고 했다. 그 무렵에는 한나의 부모님이 밤중에 급한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서는 일이 잦았다. 외삼촌이 술에 취해 여자를 때리거나 길에서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결국 그를 감당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때도 한나는 그것이 입원이라기보다는 감금에 더 가깝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른들은 그에 대해 말해주기를 꺼렸다. 그래서 한나는 그가 과일 장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도 그 소식을 들은 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삼촌이 언제 병원에서 나온 것인지, 언제부터 과일 장사를 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갑게 시식용 과일을 건네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너희 삼촌은 외로우셨을 거야. 여기 오셨으면 좋았을걸. 저 히피들 좀 봐. 직업도 없고 술뿐 아니라 온갖 마약도 다 하는데 만날 즐겁잖아. 모여 있으니까 외로울 일도 없고.
    재민이 해변을 가리켰다.
    -느그도 똑같다. 직업도 없고 뭣도 없으면서 기약 없이 놀고먹는 건.
    백암이 답했다.
    -응. 나는 내가 외삼촌을 닮았다고 생각해.
    한나가 진지하게 말했고, 셋은 함께 웃었다. 그리곤 다시 정적이었다.
    준이 말을 하지 않은 지 이틀째였다. 그들은 준이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는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고작 술자리를 마련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열흘 전 그날은 준의 생일이었다. 그들은 평소처럼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슬금슬금 해변으로 내려갔다.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이 아는 체를 했다. 그들은 백사장 위에 내어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맘때의 해변은 한산했다. 전날 새벽 늦게까지 파티를 즐긴 여행자들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을 터였다. 드문드문 비치타월 위에 누워 태닝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백암은 파라솔 아래에 앉자마자 담배를 피워 물었다. 준에게 생일 턱을 내야 한다며 장난을 치던 한나는 문득 그의 표정을 살폈다. 의자에 반쯤 드러눕듯 앉아 있어서 얇은 러닝셔츠 아래로 그의 커다란 배가 도드라졌다. 밤샘 작업을 한 다음 날이면 백암은 눈에 띄게 말이 줄었다. 그는 무협판타지소설 작가였다. 십 년 전 그 장르가 부흥하던 무렵에 데뷔해 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는 부산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물가가 싼 동남아 도시들에 거처를 옮겨가며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 섬에 들어온 것은 일 년 전의 일이었다. 백암은 언제나 한나나 준, 재민처럼 집을 나눠 쓰고 렌트 비를 나눠 낼 여행자들을 찾고 있었다.
    해변을 두리번거리던 준이 얼른 인터넷카페에 가서 메일을 한 통 보내고 오겠다고 말했다. 식당과 방갈로 사이의 샛길을 향해 달려가던 그는 뒤돌아보며 아, 난 게살 카레, 하고 소리쳤다. 레스토랑의 메뉴들 중 해산물이 들어간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두 배쯤 비쌌다. 오, 생일이라고. 한나가 말했다.
    준은 음식이 나오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식당으로 돌아왔다. 모두 그릇을 비워갈 즈음이었다. 그는 식은 카레를 안남미 위에 부어 섞더니 허겁지겁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 맞다. 무슨 사고가 있었다나 봐. 그런데 거의 다 구조되었대. 정말 다행이지.
    그가 입가에 노란 카레를 잔뜩 묻힌 채 말했다.

 

    -준아, 이제 네 차례다.
    백암이 문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준의 등이 반동하듯 두어 번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그 자리였다.
    재민이 테라스 바닥에 늘어두었던 맥주병을 손가락 마디마다 잔뜩 끼워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준 앞을 쌩하니 지나 그것들을 싱크대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재민은 준이 아주 입을 닫은 뒤로는 그를 이해하는 것을 반쯤 포기한 듯했고, 문득문득 화를 감추지 못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했다. 내내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던 백암이 그럴 거면 모두 방갈로를 얻어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 그날 낮의 일이었다. 돌아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나는 모두를 위해 그 자리가 꼭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재민은 여섯 개들이 캔 맥주 팩을 가지고 다시 테라스로 나왔다. 그리고는 빈 의자 위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준 몫으로 내어두었던 의자는 테이블이 된 지 오래였다.

 

*

 

    한나는 자신이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삼일을 채우지 못하고 섬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막 도착했을 때 그녀는 뱃멀미 때문에 한 걸음도 더 내디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선착장에서 버스를 잡아탔지만 어느 해변으로 갈 것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야 했다. 등에 짊어진 배낭과 피부를 뚫을 듯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정신은 점점 더 아득해졌다. 딛고 선 모래사장이 물결치는 듯했다. 한나는 결국 왈칵 신물을 토해냈다. 그제야 천천히 해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숙소를 찾아 걷는 동안 그녀는 커다란 야자수와 맑은 물빛, 거리낌 없이 하늘로 가슴을 내어놓고 누운 여자들, 문신을 하고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꼬아 내린 히피들을 꿈결인 듯 바라보았다. 한나는 스스로가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때까지 자신이 걷고 있는 그 섬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한나는 선배들과 함께 방콕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선배들은 여행 내내 방송국에서와 다름없이 그녀를 막내 작가로만 대했다. 그들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한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당장에 네 명을 동시에 받아줄 마사지 숍을 찾으러 다녔고, 스마트 폰을 붙잡고 밤잠을 설치며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클럽을 검색해야 했다. 애초에 한나의 여행에 끼어든 것은 그녀들이었다. 한나의 잘못이라면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는 회의가 있던 날 그 여행 계획을 말한 것뿐이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동안 한나는 자신이 언젠가는 작가가 되리라고 믿었다. 총 세 번 주요 문예지의 신인상과 신춘문예의 심사평에 이름이 언급되었다. 곧 졸업이 찾아왔다. 취업을 미루며 등단에만 매달리는 선배들이 있다는 얘기가 간간이 들려왔다. 한나는 그들보다 아주 약간 더 현실적이었다. 그녀는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소개로 공중파 방송국에 들어갔다. 그리고 끝내는 정규 방송으로 자리 잡지 못했던,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드는 육 개월 동안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소진했다. 한나는 전화가 걸려오면 남자친구와 막 모텔에 들어갔다가도 택시를 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헐레벌떡 회의실로 들어서는 그녀에게 담당 피디는 깜빡 유에스비를 놓고 왔다며 기획안 파일을 좀 달라고 말하곤 했다. 선배 작가들을 비롯해 예능국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젊은 여자들은 다이어트 약을 먹었고, 연예인들을 무시하면서도 그들의 외모 평가와 세세한 뒷이야기로 쉬는 시간을 보냈다. 한나는 그 나날 동안 오 킬로그램을 뺐다가 다시 십오 킬로그램을 얻었으며, 대학 친구들 전부와 삼 년을 만난 남자친구를 잃었다. 그녀는 삼일 만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팔 차선 도로 한가운데서 택시기사에게 욕을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택시는 한나의 몸에 살짝 닿은 채 멈춰 서 있었다. 그녀는 저가 항공사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특가로 뜬 방콕행 편도 표를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어느 밤 그녀는 이불을 헤치고 앉았다. 자신이 방송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점차 선명해졌다. 한나는 곧장 선배들의 캐리어 사이에서 자신의 낡은 배낭을 찾아 메고 호텔을 나섰다.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 방콕 거리는 투어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여행자들로 묘한 활기를 띠었다. 여행자들은 가이드를 따라 걷거나 곳곳에 줄을 서서 미니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한나는 비틀비틀 걷다가 어느 무리에 섞여 들었고, 그들과 함께 벤에 올랐다. 그녀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벤이 국경을 넘고, 모두가 내려서 말레이시아 입국심사를 받고, 다시 반나절을 달려 어느 선착장 앞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그녀에게 티켓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한나는 처음에 그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배감. 일 년째 해변에 머무르고 있다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짐을 푼 값싼 방갈로의 주인이며, 옆 방갈로의 여행자 커플, 레스토랑의 서버들, 길가에서 코코넛을 깨 파는 아이까지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한나가 코리아를 다 발음하기도 전에 그 이름을 댔다.
    배감이 아니라 백암(白暗). 하얀 어둠이래요, 하고 알려준 것은 준이었다. 무릎 위에 펼쳐 둔 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해변을 내려다보던 그는 마침 테라스에 나타난 한나가 반가운 눈치였다. 준은 ‘백암’이 판타지작가인 그의 필명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킬킬 웃었다. 그리곤 동의를 구하듯 한나를 쳐다보았다. 한나는 멋쩍게 미소 지었다. 우스꽝스럽다고는 생각했지만 모르는 사람을 비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좋은 형이에요. 좀 어두워서 그렇지.
    준이 정색하며 덧붙였다.
    그는 하와이안 패턴의 주황색 수영복 차림이어서 마른 몸이 온전히 드러나 보였다. 한나는 그런 준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얇게 펼쳐져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바닷물 위로 노을이 한없이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하루 중 해변이 가장 붐비는 때이기도 했다.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거나 산책을 하며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라스는 한 평 남짓했는데 누렇게 변색된 타일 바닥 위로 쓰레기통이며 재떨이, 스무 권은 될 듯 한 책과 생수병 따위가 잔뜩 굴러다녔다.
    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 한 편에 켜켜이 쌓여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빼 건넸다. 한나는 빈 공간을 만들어 받아든 의자를 놓았다. 준은 그곳에서 한 달째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여기 오는 한국인들이 많아요?
    한나가 물었다.
    -거의 어쩌다가 오게 된 사람들일 거예요. 전에 있던 사람들도 그랬어요. 저랑 동갑인 스무 살짜린 말을 심하게 더듬었어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요. 걘 그걸 고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낭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대요. 근데 터미널 직원이 그 애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여기로 오는 표를 끊어준 거예요. 같이 있는 동안 말더듬도 좀 좋아졌는데, 끊어 둔 비행기 표 때문에 싱가포르로 갔어요. 또 평생 꿈이 세계 일주였는데 돈을 500만 원밖에 못 모아서 이 년째 동남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할아버지도 있었죠. 좀 이상한 사람들만 오나 봐요.
    한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내 긴장해 있던 마음이 풀어지는 듯했다. 한나는 자신이 그곳에 오게 된 일을 얘기해주었다. 준이 역시, 하는 얼굴로 한나에게 주먹 인사를 건넸다. 한나는 얼떨결에 주먹을 쥐곤 그의 주먹에 맞부딪혔다.
    둘은 이내 말을 놓았다.
    -누나도 여기로 와. 방갈로 반값밖에 안 돼. 거실을 쓸 거면 더 적게 보태도 될걸. 사실 지금은 방이 없어. 나 말고도 한 명 더 있는데 누나랑은 동갑이야. 독일인 여자친구랑 여행 왔다가 하필 여기서 차여가지곤 우리랑 같이 지내고 있어. 한 일주일 됐나.
    준이 갸웃거렸다.
    -그럼 너는?
    한나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난 뭐 별거 없지.
    준이 다리를 쭉 뻗었다가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

 

    준은 유령처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자꾸만 힐끔힐끔 안쪽을 살피던 한나가 기척을 냈다. 재민과 백암도 말을 멈추고 준을 돌아보았다. 준은 한 번도 테라스 쪽을 바라보지 않고 곧바로 걸어가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작은 소리가 났다. 백암이 탄식을 내뱉었다. 한나는 한참이나 더 군데군데 흰 칠이 벗겨져나간 그 문을 보고 있었다. 내내 등 뒤의 준을 의식하고 있던 그녀는 허탈함과 동시에 작은 해방감을 느꼈다.
    새벽이 깊어가는 중에도 해변 파티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다만 점점 작은 무리로 나눠질 뿐이었다. 모닥불들은 차츰 사그라졌고, 그 희미한 불빛들 사이로 모여 선 사람들이 보였다. 여행자들이 옷을 잘 입지 않는 것은 꼭 태닝을 할 때만은 아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내어놓은 가슴과 어깨가 어둠 속에서 하얗게 번져 보였다. 그들이 휴대용 스피커로 틀어둔 레게나 테크노, 일렉트로닉 음악들이 희미하게 섞여 테라스로 날아들었다. 마지막까지 장사를 하던 해변 바들도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다.
    -형은 그래도 준이랑 좀 오래 지냈잖아. 걔가 뭐 말했던 거 없어? 오히려 한나처럼, 잘 아는 누가 바다로 갔다면 저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재민이 말했다. 그도 막상 준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기가 죽은 눈치였다.
    -생각해보면 준이는 유독 자기 얘기를 안 한 것 같다. 근데 너희도 몰랐제. 준이 지 얘기 안 하는 거. 만날 정신없이 까불어댔으니까.
    백암이 말했다.
    한나는 원을 그리고 서서 어깨동무를 한 채 모닥불을 빙빙 도는 여행자들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작 보름 전에 준을 만났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마포에 산다거나, 얼마 전 결혼한 누나가 한 명 있다거나, 대학에 떨어지고선 여행을 다니고 있다거나 하는 단편적인 정보들뿐이었다. 그녀는 준이 일부러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들이 연애나 가족, 친구 같은 사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준은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고개를 숙인 채 이빨로 손톱을 뜯었다. 그녀는 준을 채근할 생각이 없었다.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꽤 긴 시간을 보낸 백암마저도 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듯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곁에서 웃어대던 준이 아득히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나는 고개를 젖혀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그리곤 과자 봉지에 손을 넣었다. 뭔가가 손가락 마디를 타고 올랐다. 그녀가 놀라 허공에 손을 털어댔다. 개미였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잘한 개미가 아니라 몸체가 꽤나 통통한 붉은 것들이었다. 개미들은 줄지어 봉지를 빠져나와 의자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계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재민이 일어나 난간 아래로 봉지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그곳에서는 요깃거리로 사놓은 과일도, 빵도, 어떤 것이라도 언제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작은 것들의 몫이 되거나 상해버렸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한나 역시 당황하거나 미련을 갖는 대신 재빨리 그것들을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현지인들은 그곳의 날씨를 핫hot, 핫터hotter, 핫티스트hottest로 구분했다. 백암은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지내다보면 시간 개념이 희미해진다는 말을 하곤 했다. 몇 개월 전에 함께 지냈던 이들의 얼굴을 어제 본 듯하고, 새삼스레 누군가 그리워지거나 하는 일도 잘 없다고 했다. 한나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 일에 대해 알기 전까지,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별로 다를 것 없이 매일 반복되었다.

 

    오후 동안 직사광선을 받은 집 안의 공기는 뜨겁게 끓어올랐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백암이 선착장 가의 에어컨이 있는 카페에 작업을 하러 가고 나면 한나는 재민, 준과 함께 해변으로 나갔다.
    그들은 식당에서 빌린 파라솔을 들고 잠시 걷다가 사람이 없는 곳을 발견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한나는 모래에 몸을 반쯤 파묻은 채 누워서 파라솔에 난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원래는 원색이었을 그 파라솔은 강한 햇볕 때문인지 하얗게 빛이 바래 있었다. 곧 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나가자.
    준이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면서 말했다. 곧장 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나는 원피스를 벗어 모래 위에 놓고는 그들을 따라 바다로 걸어갔다.
    처음에 한나는 늘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준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그저 배고플 때 뭘 찾아 먹거나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는 것처럼, 더울 때는 언제나 바다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한나도 하루 종일 속옷 대신 수영복을 입고 다녔다. 샤워를 하기 전 빨아서 햇볕이 드는 곳에 널어두면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바싹 말라 있곤 했다. 반듯하게 옷을 챙겨 입고 다니는 재민마저도 언제나 바지 아래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어릴 때 수영을 배웠다는 준은 부드럽게 허리를 튕기며 바다를 횡으로 가로질렀다. 한나는 몇 번 자맥질을 한 뒤 발이 닿는 곳에 서서는, 돌고래처럼 맑은 물 아래로 들어갔다 나오는 준을 지켜보았다. 준은 한나와 재민이 선 곳으로 돌아와서 헥헥, 숨을 골랐다.
    -준아. 너 할 거 없으면 수영강사 해. 인기 많대.
    재민이 놀리듯 말했다.
    -응. 제일 가슴 큰 여자를 꼬셔.
    한나가 덧붙였다. 한나가 웃자 준이 따라 깔깔댔다.
    -아, 너무 정들면 안 되는데.
    문득 웃음을 멈추고 준이 말했다.
    -또 그 말.
    한나가 정색하며 준의 말꼬리를 잡아챘다. 준이 양손을 모아 높이 뻗어 올리는가 싶더니 금세 다시 물살을 헤치고 멀리까지 나아갔다.
    곧 해변에서 백암이 나타났다. 그는 커다란 구식 노트북을 겨드랑이에 끼고선 느릿느릿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한나와 재민이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준이가 말했던 그거 있잖아, 보통일 아닌 것 같던데.
    백암이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해변에 하나뿐인 인터넷카페는 여행자로 가득했다. 열 대 남짓한 컴퓨터와 국제전화 부스는 모두 사용 중이었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와이파이를 쓰는 사람들 때문에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들은 입구에 자리를 잡고 서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원래 인터넷 사정이 나쁜데다 공유기에서 멀리 서 있기 때문인지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이 다 뜨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렸다. 기사 제목들과 사진들이 몇 초쯤 시간 간격을 두고 하나하나 떠올랐다. 준은 한나의 어깨 너머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샤워를 하겠다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나는 계속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화면이 어둡게 보였다. 그것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일이 일어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한나는 사람들을 비집고 카페로 들어갔다. 여행자들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여행 사진을 올리며 떠들어대거나 전화기 너머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각기 다른 리듬의 언어가 카페 안을 가득 채웠고,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둥근 소리로 웅웅 울렸다. 곧 한 전화 부스에서 사람이 나왔다. 한나가 곧장 들어가 전화번호를 눌렀다. 한참이나 신호가 이어지고 나서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나의 엄마는 그녀의 전화를 반가워하면서도 회사에 있어 길게 통화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나가 안부를 묻는 와중에도 엄마는 종종 누군가의 말에 대답을 했고 무언가를 찾느라 부스럭 소리를 냈다.
    한나는 조금씩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그 소음들이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있고, 다들 잘 지낸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언젠가 아빠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삼촌의 장례식 때도 쓰러진 고모를 챙기고 식장을 돌보느라 삼일 내내 뛰어다니고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딸 그런데 거기 좋아? 이제 좀 와.
    한나의 엄마는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한나는 망설이다 그저 응, 하고 대답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음 날 점심을 먹는 동안에는 다들 별로 말이 없었다. 한나는 앞에 앉은 준과 백암, 재민을 차례로 살피면서 앞에 놓인 달걀 볶음밥을 뒤적댔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한 서양인 남자가 그들 테이블 가까이에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미안해.’ 유감스럽다는 뜻에 더 가까웠을 그 영어 단어가 한나에겐 어쩐지 그렇게 들렸다. 그는 눈을 감고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인도식으로 인사를 하고선 멀어져 갔다. 한나는 숟가락을 들고선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준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침대에 누워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나와 재민은 하는 수 없이 그를 내버려 두고 둘만 해변으로 나갔다. 파라솔 아래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몇 번 그런 일이 벌어졌다. 여행자들은 살짝 고개를 들이밀고 한나와 재민의 얼굴을 살핀 다음 그 인사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진심을 전하려는 듯 미간을 찌푸렸는데 그것은 어딘가 화가 잔뜩 난 이의 표정처럼 보였다. 한나는 혼나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몸을 고쳐 앉았다. 그녀야말로 누군가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그곳의 바다는 나쁜 것이라고는 무엇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그저 발랄하게 푸른빛이었다. 그 위로 지붕같이 둥글게 내려앉은 하늘이 보였다.
    재민이 문득 얼굴에 덮어두었던 수건을 젖히고는 수영을 하자고 했다. 한나는 얼떨결에 그를 따라 일어섰다. 준이 없기 때문인지 물에 몸을 담그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재민은 물을 잔뜩 먹으면서도 열심히 개구리헤엄을 치며 그녀 앞을 오갔다. 한나는 문득 한기를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와 뜨거운 모래에 몸을 묻었다. 곧 재민도 곁으로 왔다. 둘은 말없이 누워 있었다. 다시 한 번 누군가 파라솔 아래를 기웃거렸을 때, 재민은 모래를 한 움큼 집어 공중에 흩뿌렸다. 그리고 번쩍 일어서서 파라솔을 뽑아들었다.
    종일 사과를 들은 것은 한나와 재민뿐만이 아니었다. 백암은 작업은 하나도 하지 못했고 종일 그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말을 듣다 온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나는 차가운 타일 바닥에 다리를 맞대고 앉아서 좁은 거실을 돌아보았다. 준의 방문은 닫혀있었다.
    그들은 그 이후로 집 안에만 머물렀다. 한나는 일부러 사람들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굳이 해변에 나가 그런 상황을 견딜 자신도 없었다. 재민과 백암도 별말 없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면서도 누군가 먼저 가자는 말을 할 때까지 미적거리다가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 재빨리 밥을 먹고 오고는 했다. 오전 일찍 한 번, 해가 진 뒤에 한 번 인터넷카페에 다녀온 것이 지난 이틀간 한 외출의 전부였다. 그맘때의 인터넷카페는 조용했다. 한나는 한 기사를 다 읽은 뒤, 다른 기사를 클릭해 내용이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전에 그곳을 찾은 것이 몇 시간 전이었는지 손으로 꼽아보았다. 사건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휴대폰 속에는 다른 문장들로 쓰인 같은 내용의 기사들만 가득했다.

 

*

 

    천정에서 팟, 하는 작은 소리가 나며 백열등이 나갔다. 놀란 재민이 맥주 캔을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오른쪽에 앉은 한나의 다리가 흠뻑 젖었다. 재민과 백암이 일어나서는 뭔가 닦을 것을 찾기 위해 테라스를 오갔다. 집 안쪽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완전히 어둠 속에 갇히기라도 한 듯 우왕좌왕했다.
    백암이 사둔 전구가 있을 것이라고 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싱크대에 달린 천정을 죄다 열어젖혀댔다.
    재민이 손을 뻗어 한나에게 건배를 청했다.
    -나 곧 한국 갈 생각하고 있었어. 백암한테만 말했는데.
    한나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내려앉은 그림자가 그의 표정을 더욱 심각해 보이게 했다. 한나는 대답 없이 물방울이 맺힌 맥주 캔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로서는 언제 그곳을 떠날지에 대해서도, 떠난다면 여행을 계속할 것인지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난 네 삼촌 얘기 좋았어. 너는 어쨌거나 네 방식대로 깊게 생각했던 거잖아.
    재민이 입가에 캔을 가져다 댄 채 말을 이었다.
    -뭔가 이상해. 있잖아, 나는 내가 그걸 진짜로 슬퍼하는지 어쩌는지 잘 모르겠어.
    그가 웅얼거렸다.
    -나도 그래. 준이 하는 걸 보면 내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한나는 재민 역시 내내 어제 오후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잠을 자는 줄 알았던 준은 어느새 테라스에 나와 있었다. 그는 거기에 앉아 있던 그들을 지나쳐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주황색 수영복은 멀리서도 한눈에 띄었다. 준은 허리가 잠기는 곳까지 걸어간 다음 앞으로 엎어져서는 물살을 헤치기 시작했다. 주황빛이 점점 작아졌다. 한나는 준이 너무 멀리까지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곁에 앉은 재민이 손을 뻗어 한나의 팔을 꼭 붙잡았다. 한나는 점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참이 지나서야 준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나아갈 때보다 현저하게 느린 속도로 팔을 저어오고 있었지만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침내 해변까지 나온 준이 무릎을 짚고 수그린 채 숨을 골랐다. 그제야 한나의 팔목을 잡은 재민의 손에서도 힘이 풀려나갔다.
    -야. 작게 말해도 거실 끝까지 다 들리더라.
    백암이 커다란 손전등을 하나 들고 테라스로 나왔다. 백암은 난간 가운데에 그것을 세워 놓고 불을 켰다. 손전등에서 나온 불빛은 넓게 퍼지지 못하고 천정을 향해 기둥처럼 치솟았다. 재민이 일어나 손전등을 여기저기 옮겨 놓아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없는 벽이나 백암의 허벅다리, 바닥이나 빈 술병들을 의미 없이 환하게 비출 뿐이었다. 그는 그것을 원래대로 천정을 향해 놓아두었다.
    -너희 다 가면 나도 이제 다른 데로 옮기든지 해야겠다.
    앞을 오가는 재민을 바라보던 백암이 중얼거렸다.
    아렴풋이 섞여 들리던 음악소리 중 하나가 조금 커진 듯했다. 귀를 기울인 채 집중하면 다른 소리들과 다름없이 희미했고, 잘못 들었나 싶을 즈음엔 선명해지길 반복했다. 곧 소리는 분명하게 점점 커지면서 테라스 가까이로 다가왔다. 한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빼들었다. 행렬이었다. 드문드문 횃불을 든 이들이 있어서 발밑이 환해졌다. 허리에 아프리칸 타악기를 맨 남자를 선두로, 통기타를 맨 여자, 트럼펫을 든 남자, 그리고는 열쯤 되는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하듯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 뒤로 이어졌다. 그들은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연주는 약에 취한 듯 리듬이 각각 제멋대로였다. 늘 보던 것이었는데도 횃불 때문인지 그들의 헐벗은 몸이나 레게머리, 문신으로 뒤덮인 팔, 내놓은 젖가슴 따위가 원시부족의 그것처럼 기괴하게 느껴졌다.
    여행자들은 테라스 앞에서 멈춰 서서는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한나는 난간을 짚고 서서 귀를 기울였다. 한나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내용을 알아듣기는커녕 도무지 어떤 나라말로 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스페인어처럼 동그란가 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아랍어처럼 늘어졌다가 다시 포르투갈어처럼 단단해졌다. 한나가 들어보지 못한 언어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이제 테라스 쪽을 향해 일렬로 멈춰 섰다. 한나는 그 여행자들이 손전등 빛기둥 너머로 자신들의 얼굴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재민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꺼져, 꺼져. 그는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듯 커다란 소리를 냈다. 몸을 잔뜩 아래로 기울이고 그들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백암이 그를 뒤에서 꼭 붙잡아 껴안았다. 놈팡이들 주제에, 뭔지도 모르면서, 재민이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를 껴안은 백암의 팔이 손전등을 쳤다. 손전등은 팽그르르 돌며 여기저기를 비추다가 이내 모래 속으로 푹 파묻혔다. 하지만 노래는 멈출 기미 없이 이어졌다. 한나는 고개를 돌려 닫힌 준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

 

    한나는 거실 소파에서 눈을 떴다. 곧바로 양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옅은 숙취였다. 실링팬도 켜지 않고 잠들었던 탓에 땀이 잔뜩 배어 나와 소파에 몸이 쩍쩍 달라붙었다. 햇볕이 꼬리를 길게 빼고 거실 타일 위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서로 다른 높낮이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세 개의 방은 모두 열려 있었다. 그녀는 냉장고로 가 생수를 꺼내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곤 그것을 든 채로 천천히 준의 방 앞으로 갔다. 한나가 손잡이를 밀자 반쯤 열려 있던 문이 끼익 소리를 냈다. 방 안에는 준도, 준의 배낭도 없었다.
    백암과 재민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테라스가 말끔했다. 어젯밤 마신 술병들이 나란히 모여 서 있었고, 재떨이며 쓰레기통이 물기를 머금고 거꾸로 엎어져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도 모두 차곡차곡 쌓인 채였다. 어제의 일이 모두 꿈결인 듯 느껴졌다. 어김없이 조용한 해변의 아침이었다. 어느새 저 멀리 물러난 바다 위로 자잘하게 햇볕이 부서졌다. 가게 오픈 준비를 하느라 쓰레기봉투를 옮기고 테이블을 내어놓은 사람들만이 분주했다. 테라스를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준의 수영바지가 걸려 있었다.
    늙은 히피 한 쌍이 멀지 않은 곳에서 아침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어서면 허벅지까지 물에 잠기는 지점을 따라서 수영을 했다가 몇 걸음 걸으며 쉬기를 반복했다. 한나는 그들이 항상 같은 때에 팔을 젓는 일을 멈추고 일어서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들 몸 곳곳에 있는 문신은 모두 빛이 바래 있었다. 각기 한참 시간을 두고 새긴 것인지 어떤 것들은 보다 선명했고 어떤 것들은 보다 희미했다. 준의 수영 바지에서 떨어진 물이 한나의 머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톡톡 건드렸다. 한나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준이 왜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것인지, 언제 어디로 간 것인지, 말없이 떠나면서 왜 수영바지 따위는 놓고 간 것인지, 질문들은 두서없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 질문들을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반복해 바라보게 되리라는 선명한 예감이 들었다. 한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기 물살을 가르는 오래된 커플을 향해 한참이나 서 있었다.

 

 

 

 

작가소개 / 정지향(소설가)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재학중이다. 장편소설『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로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했다.

 

 

 

   《글틴 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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