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_시_면]서교동 술집의 마스크들

 

[8월_시_면]

 

 

서교동 술집의 마스크들*

 

 

석지연

 

 

 

 

 

콜롬비나Colombina
단 한 번도 빛나는 로맨스는 없었다
나는 하녀근성을 타고나서
양복 차림의 백발노인에겐 자장가를 불러주고
가슴에 파묻히려 들면 팁을 요구하게 돼
치와와처럼 눈을 빤짝이고 썩은 이빨을 드러내며
선생님 같은 분은 안 늙으실 줄 알았는데…
연민은 가난한 웨이트리스가 내오는 디저트일 뿐
당신이 술잔을 엎질러도 에이프런은 내 원피스가 아니다

 

아를레키노Arlecchino
쉽게 사랑에 빠지는 자는 유머를 압니다 쇼를 벌일 줄 알아요
거울에 머리를 박아 대며 꼽추를 흉내 냅니다 그럴 때
계집애들의 모성이란 제 배를 찌르는 흉기처럼 발휘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누구의 연인입니까 핏줄을 세우며 했던 굳은 맹세들은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견과류가 되었습니다 다만
재밌어졌습니다 맞은편 소공녀의 표정이 호두처럼 일그러지면
우리는 지루한 나머지 거짓말이라도 고백합니다

 

도토레Dottore
낯모를 친구여 병난 위장에는 독한 술이 필요하네
어느 저명한 의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술주정꾼이 염치없는 것은
위장이 단단하기 때문이라네 조로(早老) 역을 맡았다 파경에 이른 배우처럼
피나는 연습을 한 탓이지 날마다 조금씩 얼굴빛을 검게 바꾸며
떠드는 걸세 세상이 아직 자신을 조명하지 않은 무대란 듯이
허구를 진실이라 믿어야 자네가 불행해지지 않을 테니까

 

카피타노Capitano
나도 너처럼 유언이 야망인 양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용담을 늘어놓기 위해 허리춤에 소설집을 끼고 살았지
때로 눈먼 애인들은 손뼉을 치며 울기도 했어
말장난에 지친 벗들이 더 이상 안부를 묻지 않는 동안
나는 용병(宂兵)처럼 끝없이 첫차를 기다렸다 끝없이 기다리면
아무도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다

 

   *   이탈리아 즉흥극「Commedia Dell’arte」의 가면들

 

 

 

작가소개 / 석지연(시인)

1992년 서울 출생. 2012년 『작가세계』로 등단.

 

 

 

   《글틴 웹진 8월호》

 

kaka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