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_단편소설_멍] 친밀한 일인칭 복수

 

[10월_단편소설_멍]

 

 

친밀한 일인칭 복수

 

 

 

박민정

 

 

삽화-친밀한-일인칭-복수

 

    이른 새벽 눈을 뜰 때마다 정은은 두려웠다. 정은은 늘 새삼 놀라며 자신의 작고 말랑말랑한 팔다리를 만져보았다. 그럴 때마다 이건 담요나 베개처럼, 고작 물질일 뿐이라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육체 정도야 언젠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정은은 늘 아이들 중 가장 먼저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보는 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정은이 다시 소망보육원을 찾았을 때에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을 때였다. 정은은 그때까지 경기 모처의 작은 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시외버스터미널에 갔다. 우습게도 서울행 고속버스표를 끊는 일은 너무 쉬웠다. 정은은 경기 모처의 작은 도시에서, 집과 학교만 오갔다. 그동안 작은 상자 속에서 웅크리고 살아온 것처럼 허탈했다. 서울은 가고 싶지 않았고 갈 필요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서울은, 마치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표 값은 사천 원을 넘지 않았다. 정은은 오렌지 주스도 한 개 샀다.

 

    이렇게 쉬운걸.

 

    정은은 창밖에 보이는 풍경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할 듯했다. 버스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오렌지 주스가 아직 남아 있었다.
    정은은 소망보육원에서 일곱 살까지 살았다. 보육원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의 서울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동네였는지 어렴풋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하철역에 내려서도 마을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린 후엔 골목길을 한참 지나 작은 언덕을 올라야 했다. 소망보육원. 약도로는 주택가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마치 꼭꼭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정은은 동네를 둘러봤다. 낡은 연립주택이 빼곡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애완견으로는 보이지 않는 개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은은 오금이 저렸다. 담벼락에 몸을 딱 붙이고 조심조심 걸었다. 다섯 살 남짓으로 보이는 어린애들이 정은의 모양을 보고 깔깔 웃었다. 여기, 동네 전체가 개를 무서워해선 살 수 없는 곳이었구나. 정은은 생각했다. 큰 개가 정은의 교복 치마에 바투 붙어 멍멍 짖었다. 순간 뒷목에 서늘한 느낌이 지나갔다.
    그건 매우 구체적인 감각이었다. 온몸에 돌기 같은 소름이 쫙 돋았다. 딱 이런 조건이었어. 정은은 생각했다. 또렷한 감각으로 몸에 남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몇 있었다.
    흉터가 깊게 팬 정은의 뒷목에 차가운 면도날이 닿았다. 소망보육원 마당에는 언제나 두 마리 개가 함부로 뛰어다녔다. 아이들 대부분 개를 좋아했다. 밥 먹는 걸 구경하고 입을 맞춰대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마당을 가로질러 개의 꽁무니를 쫓으며 술래잡기를 했다. 정은은 아이들의 무리에 낄 수 없었다. 어른들은 그런 정은을 유난스럽다고 야단쳤다. 아이들은 그 말을 따라하며 정은을 놀렸다.

 

    “유난스럽긴.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는 거다.”

 

    여섯 살밖에 안 된 정은의 머리카락은 허리에 닿을 듯 치렁치렁했다. 죄다 배냇머리였다. 보모 아주머니는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닐 때마다 정은을 야단쳤다.

 

    “이렇게 긴 머리카락을 가진 애는 너밖에 없잖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도 정은의 긴 머리카락을 좋아하지 않았다. 보기에도 답답하고 묶어주려니 귀찮다며 보모 아주머니는 짜증을 냈다. 정은은 늘 팔을 뒤로 꺾어 스스로 머리를 땋았다. 발등으로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정은은 눈물을 흘렸다. 뒷목에 면도날이 닿을 때 정은은 실감했다.

 

    다 잘려버렸구나.

 

    보모 아주머니는 정은의 코앞으로 거울을 들이밀었다.

 

    “다 됐다. 깔끔하니 얼마나 이쁘냐.”

 

    정은은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머리카락은 귓불까지 깡총하게 잘려 있었다. 면도칼로 함부로 잘라낸 머리카락이 들쭉날쭉했다. 정은은 발밑을 봤다. 새카만 머리카락들이 수북했다. 시체에 구더기가 모여들듯 떨어진 머리카락 주변을 둘러싼 개들이 으르렁댔다. 뭐 좋은 구경났다고. 너무 우울해서, 처음으로 개가 무섭지 않았다. 정은은 이를 악물며 발을 굴러보였다. 개들이 더욱 사납게 으르렁댔다.
    그 개새끼들. 이제 죽었겠지. 정은은 소망보육원 문 앞에서 침을 찍 뱉었다. 언제나처럼 단정한 교복 차림이었지만 가능한 만큼 반항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당연히 원장은 정은을 기억하지 못했고, 정은은 보자마자 과거의 원장을 떠올렸다. 현우를 부르듯 의미 없는 호명으로 오래 전 ‘아버지’라고 부른 인간이었으므로. 자신의 느린 발걸음에 맞춰 낮고 거칠게 흐르던 그 숨소리까지, 정은은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정은은 원장의 캐비닛 속에 그간 소망보육원을 거쳐 간 애들의 리포트가 보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굳이 그곳을 찾아간 까닭은 그것이었다. 원장은 정은이 한때 자신의 수많은 딸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세를 풀었다.

 

    “콩알만 한 게 제 발로 걸어 나가서 지금껏 잘 살아놓고는 웬 부모타령이냐?”

 

    “부모를 찾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내 기록이 아무 데나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 찜찜해서요.”

 

    정은은 아무 데나, 를 힘주어 발음했다. 원장은 정은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주실 때까지 올 거예요.”

 

    “마음대로 하거라.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정은은 다시 고속버스를 탔다.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벌써 익숙했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논밭이 이어졌다. 다시 공장, 간혹 아파트, 늘어선 모텔, 어느새 또 논밭. 그 길 주변은 도시라고 할 수도 없고 촌이라고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고속버스가 아니라면 오갈 수 있을까. 서울에서 그 도시까지, 혹은 그 도시에서 서울까지. 정은은 이 풍경을 앞으로 얼마나 더 보게 될지 짐작해보았다.

 

    도망가려는 것이 아니야. 여전히 갈 곳이 없어.

 

    현우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정은은 감히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마음먹어본 적도 없었다. 정은은 언제나 현우의 세계 안에 얌전하게 존재해왔다. 그때까지 정은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과 개발에 따른 분명한 구획을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고속도로 주변의 풍경은 정은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정은은 맥락 없이 이어지는 풍경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소망보육원 아이들은 한바탕 불려나가 손님을 맞곤 했다. 강보 속에서부터 손님을 맞던 아이들이었다. 정은도 그랬다. 언젠가 각그랜저를 몰고 온 부부는 아이들이 모인 앞에서 말했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할 줄 아는 아이가 있니?”

 

    아이들은 갸우뚱했다. 여태껏 그건 외국 사람들이 왔을 때나 하던 짓이었다. 통역을 대동하고 앉은 외국인들이 손가락으로 한 명씩 지목하면 그때 일어나서 떠듬떠듬 지껄이는 게 영어란 거였다. 아이들은 외국이라면 미국밖에 몰랐다. 정은도 외국인은 전부 미국인인 줄 알았다. 아이들은 ‘미국 사람들’ 오는 날에 대비해 영어를 공부했다. 그 중 유독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애들은 자기가 좀 설명을 해보겠다고 설치며 아이들을 모아놓고 엉터리 영작문을 판서하고는 했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은 대개 성실하고 예의바른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당연히 눈치도 빨랐다. 집단이라면 어디에든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라면 어린애들 집단이라고 다를 것 없었고, 보육원이라고 특별할 것 없었다. 자기 처지를 정확하게 인식해 재빠르게 가능한 최선과 차악을 구분해내는 아이. 그런가 하면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날마다 우울해하는 아이. 정은은 후자에 속했다. 영악하지 못한 평범한 아이였다.

 

    난 미국에 가고 싶어. 공주 같은 잠옷을 입고 예쁜 침대에 누워 있으면 엄마가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이마에 입맞춰주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정은은 그런 말을 기억했다. 하루에 한 번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모여 앉아 사십 분 동안 드라마를 봤다.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호사까지는 누리지 못해 모두 똑같은 걸 봐야만 했다. 당시에 유행하던 어린이용 외화 드라마에서는 그런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온갖 인형과 장난감들, 작은 미끄럼틀이 있고 그네까지 걸려 있는 호화로운 방에서 분홍 천으로 만든 헤어캡을 쓴 소녀가 제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드는 따위의 장면. 아이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가까운 미래라도 되는 것처럼 와아 입을 벌리고 드라마를 시청했다. 보육원에서 길러지는 여자애들의 환상에 걸맞은 장치를 의식하기라도 한 양, 그런 장면은 매일같이 나왔다.

 

    그러나 자막이 올라가면 곧장 돌아가야 하는 곳은 몸을 뒤척이며 잔다는 것도 사치인 좁아터진 공동 침상이었다. 자장가는커녕, 보모 아주머니와 고등학생 언니들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숨죽여야 했다. 아이들은 국방색 담요를 뒤집어쓰고 언젠가 분홍 레이스 캐노피가 달린 침대에서 잠들 날을 꿈꿨다.
    소망보육원에는 외국인들이 자주 찾아왔다. 나를 저 인형 가득한 방으로 데려가 줄 사람들. 대부분 겁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 대부분 그들에게 입양되어 떠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입양이 결정된 아이들은 보육원에서의 마지막 날, 의식처럼 머리카락을 잘랐다. 보모 아주머니의 이발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토록 많은 아이들의 머리카락에 손대봤을 거였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언제나 면도칼로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들쭉날쭉 함부로 잘라놓곤 했다. 다소곳하게 보자기를 목에 맨 아이들은 보모 아주머니가 결딴낸 머리카락을 본 개들이 방방 뛰어다니는 마당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건 뭔가에 도취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이야. 안녕 소망보육원과 너희 개들. 난 미국으로 가. 목에 맨 이발용 보자기가 곧 소공녀의 망토로 변신할 날을 상상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었다.
    정은은, 당시 일곱 살밖에 안 되기도 했지만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설치는 아이들 중 하나가 정은의 팔을 잡아끌며 같이 영어공부를 하러 가자고 해도 뿌리치곤 했다. 오히려 정은은 뭔가를 닮고자 하는 아이들이 무서웠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정은에게 다만 환상이었다. 현실과 화해할 수 없는 아이들은 환상을 탐했지만, 정은은 그것이 자신의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걸 슬퍼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는, 정은에게 환상은 결코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것이었다.
    정은은 국방색 담요가 깔린 공동 침상의 풍경이 온전하게 계속되길 바랐다.
    이른 새벽 눈을 뜰 때마다 정은은 두려웠다. 정은은 늘 새삼 놀라며 자신의 작고 말랑말랑한 팔다리를 만져보았다. 그럴 때마다 이건 담요나 베개처럼, 고작 물질일 뿐이라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육체 정도야 언젠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정은은 늘 아이들 중 가장 먼저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보는 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정은은 부주의하게 반쯤 열린 문틈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자신의 얼굴을 목격하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분신이 나타난 것이 어느 날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정은은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조그마한 몸을 만져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정은에게는 자신의 근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체 세계가 처음부터 없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않고 그런 생각에 열중하는 일에 내려진 벌처럼 어느 날 자신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게 미국 인형이래. 정말 예쁘지 않니?”

 

    아이들은 외국이라면 미국밖에 없는 줄 알았지만 사실 인형의 출처는 프랑스였다. 한 달 전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아이가 보육원으로 인형을 한 아름 보낸 것이었다. 군데군데 박음질이 터진 못생긴 곰돌이 봉제인형밖에 모르던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우와. 진짜 아기같이 생겼어!”

 

    정은은 물 건너온 인형들을 보고 다른 의미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건 정말 사람과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얼추 눈코입을 그려놓은 싸구려 관절인형들과 차원이 달랐다. 이마와 볼, 턱의 혈색이 조금씩 달랐고 머리카락도 부드러워 손가락에 착 감겨들었다. 말랑말랑한 볼을 꾹 누르면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벌렸다. 벌린 입 안에 하얗고 조그만 앞니까지 두 개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정은은 경악했다. 아이들은 헤어캡을 쓴 아기인형을 달래준답시고 품에 안아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젖을 준다고 앞가슴을 풀어헤치는 둥 엄마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정은은 그 인형들이 무서웠다. 정교하게 만들어져 사람의 아기인 듯 보이는 형상이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정은에게는 그런 감정조차도 익숙하고도 낯선 것이었다. 간혹 나타나는 분신으로부터 느낀 감정이었으므로.
    아이들은 그것이 정말 아기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대했다. 그때껏 인형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이 명확하게 구분해내던 삶과 죽음의 지점이 무너졌다. 인형은 사람을 흉내 내고 있지만 무생물임이 분명한 형상이었다. 아이들은 함부로 걷어차고 쥐어뜯으면서 그것이 다만 인형일 뿐이라는 걸 확인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미국’ 인형에는 좀처럼 그러지 못했다. 정은은 공동 침상에 끼어들어 제 몫의 자리를 더 좁게 만들기만 한 인형들을 피해서 살금살금 걸어다녔다.
    그날도 아이들은 한 데 모여앉아 인형의 몇 줌 없는 머리카락을 빗기며 놀았다. 정은은 마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방방 뛰어다니는 개들이 무서웠지만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왜 다른 애들처럼 안 될까. 정은은 생각하고 있었다. 인형도 개도 무서워하는 자신이 등신같이 느껴졌다. 고아 주제에 뭐 이렇게 무서운 게 많아. 그건 고등학생 언니들이 정은을 꾸짖으며 늘 한 말이기도 했다. 여윈 나뭇가지로 땅바닥을 하염없이 긁고 있던 정은의 눈에 낡은 모카신 한 켤레가 보였다. 보모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은은 의아했다. 수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보육원의 잡다한 살림을 도맡았던 그녀는 성마른 여인이었다. 어지간해서 아이들에게 웃어주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답답하다고 유독 구박해온 정은을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 따라오너라.”

 

    보모 아주머니는 정은의 목에 보자기를 동여맸다. 아이들은 무던하게 보모 아주머니의 면도칼에 머리카락을 내맡기곤 했다. 하지만 정은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뭐든 양보했고 좀처럼 떼쓰는 일이 없었던 정은의 유일한 반항이었다. 정은은 머리카락을 자르자고 하면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어대기만 했다. 꾸짖고 달래던 보모 아주머니도 머리카락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마치 당연하다는 듯 보모 아주머니는 정은의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있었다. 정은은 어안이 벙벙해 가만히 그녀를 쳐다봤다.

 

    “너도 오늘만큼은 얌전하구나. 그래. 다 잘라내 버리고, 새 부모님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거야. 그 나라에 가면 좋은 구경거리도 많을 거란다.”

 

    정은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정은이 네가 꼭 인형처럼 예쁘게 생겼다고 그러시더라. 사랑받는 아이가 될 거야. 모두 다 잊어버려라. 네가 고아였다는 사실까지도.”

 

    정은은 누군가 모르는 새에 보모 아주머니의 면도칼 밑으로 자신을 떠밀어다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들은 전부 이런 식으로 보내진 걸까? 정은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컨베이어 벨트를 떠올렸다. 기다란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인형처럼 순서대로 하나씩 바구니에 떨어졌던 걸까? 이제 내 순서인 걸까? 정은의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가득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은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내내 눈물만 흘리다 용기를 내서 물었다.

 

    “저, 보모 아주머니. 제가 가는 곳은 미국이에요?”

 

    “어이구. 정신머리 하고는. 원장 아버지랑 다 이야기했잖니. 불란서라고. 거긴 미국만큼 큰 나라란다.”

 

    불란서. 그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불란서, 정은은 가만히 발음해보았다. 정은은 그간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같은 나라에 가서 지금처럼 말하면 안 된다고 아이들은 떠들어대곤 했다.

 

    “그럼 우리는 쓰레기통 속에 구겨 넣어지게 되는 거야. 말을 못해 쓸모가 없으니깐.”

 

    설치는 애들 중 하나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정은은 목 밑에 칼을 겨누듯 바짝 긴장하며 자신에게 질문했다.

 

    버려지지 않을 수 있어? 난 말을 못해 쓸모가 없는데.

 

    보모 아주머니는 정은의 코앞으로 거울을 들이밀었다.

 

    “다 됐다. 깔끔하니 얼마나 이쁘냐.”

 

    “……보모 아주머니.”

 

    “그래. 정은이 너도 막상 떠나려니 아쉽지?”

 

    “저를 데려가주실 분들은 좋은 분들이에요?”

 

    보모 아주머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얘가 자꾸 왜 엉뚱한 소릴 해. 너 그분들과 몇 번이나 만났잖니. 원피스까지 얻어 입고 온 게 바로 며칠 전이었잖니.”

 

    “전 그 분들을 본 적이 없어요. 보모 아주머니.”

 

    보모 아주머니는 뒷덜미를 훔쳐내던 푸석푸석한 걸레로 정은의 등을 툭 쳤다.

 

    “너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그만 들어가거라.”

 

    정은은 다시 마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이들과 개들이 함께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운이 없었다. 정은은 소망보육원을 떠난 아이들을 생각했다. 개중 정이 들어 친하게 지낸 아이들도 간혹 있었다. 넌, 보모 아주머니 말대로 좀 답답하구나.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며 새침한 척 그따위 말을 하던 애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난 너랑은 달라. 우리 아빠가 돈 벌면 데리러 온댔어. 그렇게 말하던 아이를 데려간 사람은 외화 드라마에서 정원수를 깎아대던 미국 배우와 꼭 닮은 배불뚝이 백인 남자였다.
    아이들은 결국 다양한 방식으로 외로움을 표현하며 살아내는 거였다. 정은은 곁에 붙어 꼼지락꼼지락 몸을 만져대며 “난 네가 좋아” 말하던 아이를 떠올렸다. 그 애가 떠날 때도 정은은 결코 울지 않았다. 보모 아주머니는 떠나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은 유독 짧게 잘라놓았다. 그간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는 듯 나름대로 석별의 정을 표현하는 건지도 몰랐다. 동화책에서 보던 몽실언니마냥 촌스럽게 바짝 잘린 그 애의 머리카락을 보며 정은은 생각했다.

 

    떠날 때가 됐구나. 너도.

 

    그 생각은 이런 말이 되어 정은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못난이 인형 같아.”

 

    그 애는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베이지색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떠나는 아이가 승용차에 오를 때 아이들은 한 데 모여 ‘석별의 정’을 불러주곤 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시도 때도 없이 부른 노래였지만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아이는 없었다. 정은은 멍하니 입을 벙긋대며 머릿속에서 어절을 딱딱 끊어 생각해봤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 그 중 무엇도 와 닿는 말이 없었다. 소망보육원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종의 규칙이었다. 여느 때보다 바짝 잘린 머리카락, 석별의 정, 앞으로 부모님이라고 불러야 할 어른들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것.
    정은은 드디어 떠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정은의 생각에 머리카락을 바짝 짧게 자르는 것은 이제 그만 떠나라는 원장 아버지의 지시였다. 일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모두 정은이 소망보육원을 떠난다고 알고 있는 듯했다.

 

    불란서로 떠나는 게 내가 아니라는 걸 알면 모두 실망할 거야.

 

    정은은 시체가 되어버린 긴 머리카락 몇 올을 꼭 쥐며 생각했다.

 

    정은은 조금 실망했다. 소망보육원 밖으로 나가는 일이 너무 쉬웠다. 정은은 그때껏 제 발로 소망보육원을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바깥세상은 마치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견고해 보이던 철문은 단 한 번 슥 밀었을 뿐이었는데 순순히 열렸다. 정은을 가로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은 오히려 평소보다 소망보육원에 사람이 많았다. 가끔 찾아오는 교회 사람들이 그날따라 한바탕 들이닥쳐 왁자지껄했다. 아이들도 여전히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보모 아주머니와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누구도 정은이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듯했다.
    정은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봤다. 시퍼런 지폐 한 장을 꼭 쥔 손에서 비실비실 땀이 났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소망보육원을 나간 아이들 중 누구도 그렇게 큰돈을 손에 쥐어보지는 못했을 거였다.
    평소 원장 아버지의 사무실에는 갈 일이 없었다. 정은은 복도를 서성이며 사무실 쪽을 흘끔거렸다. 사무실은 아이들이 사는 곳과 같은 건물에 있었지만 왠지 낯설었다. 혼자서라도 소망보육원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던 정은은 밤새 고민해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은 지금껏 불란서로 입양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원장 아버지에게 똑똑하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나, 불란서 가는 거 맞아요?

 

    정은은 몇 번이고 그 말을 연습했다. 꾸벅 인사를 하자마자 말을 꺼낼 심산이었다. 선뜻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정은에게 원장 아버지는 낯선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라고 불리긴 했지만 아이들 모두에게 소망보육원에서 가장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볼 일도 별로 없었고, 그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정은이 아는 아버지는 원장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닐까도 정은은 생각했다. 있긴 있지만, 한없이 낯설고 멀기만 한 사람. 그런 사람을 통틀어 대개 아버지라고 부르는 건지도 몰랐다. 원장 아버지가 나를 알기나 할까? 정은은 그와 독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은은 용기를 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뗐다.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일정한 박자를 가진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건 마치 정은의 느린 발걸음에 맞춘 듯도 했다. 정은은 자신이 발을 뗄 때마다 내쉬는 숨소리가 누구의 것일까 생각했다. 누구의 것이든 간에 그 소리는 지나치게 낮고 처절했다. 정은은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너무 더운가. 어디 아픈가. 마침내 사무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 소리는 마치 정은의 귓가에 대고 지르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정은은 곧 원장 아버지에게 할 말을 생각하느라 낮은 숨소리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 불란서 가는 거 맞아요, 원장 아버지?”

 

    정은은 냅다 사무실 문을 열고 꾸벅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외쳤다. 정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누가 봐도 영락없이 연습해온 말을 내뱉는 모양이었다. 정은의 외침에 낮은 숨소리는 딱 멈추고 말았다. 정은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때 정은이 본 것은, 현실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텔레비전에서도 결코 볼 수 없었던 그런 희한한 장면이었다.
    정은은 영원히 잊지 못할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 세 가지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둥글게 말린 앞머리.
    후크가 풀어져 덜렁대던 크림색 브래지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커피색 스타킹.
    정은은 또, 세 가지가 참 이상했다. 그건 엄청나게 싫은 것 같기도 했다.
    원장 아버지 가슴팍에 수북한 털.
    보모 아주머니가 마당을 청소할 때마다 잡고 흔드는 낡은 호스같이 생긴 원장 아버지의 시들시들한 고추.
    원장 아버지가 무릎팍을 짚고 있던 굵은 손가락에 끼워진 누런 반지.
    정은은 눈을 깜빡였다. 여자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원장 아버지는 바지 지퍼를 올렸다. 여자와 원장 아버지는 눈을 맞추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원장 아버지는 곧 무섭게 눈을 홉뜨며 정은을 다그쳤다.

 

    “얘야, 너는 노크도 안 배웠니?”

 

    정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원장 아버지.”

 

    “얘가 뭘 안다고 또 죄송이래!”

 

    여자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은은 왠지 여자의 얼굴이 낯익었다. 교회 사람들이 한바탕 들이닥칠 때마다 본 듯한 여자였다. 아이들은 여자를 언니, 라고 불렀다. 정은의 생각에도 이런 여자가 원장 아버지랑 벌거벗고 노는 건 좀 이상한 일 같았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여자를 보며 정은은 참 예쁘다, 고 생각했다.

 

    “나가거라.”

 

    원장은 시퍼런 지폐 한 장을 정은의 손에 쥐어주었다.

 

    “오늘 본 건 너만 알고 있어라. 무슨 말인지 알지?”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은 자신의 약한 손힘에도 곧장 열리고 마는 철문이 그간 왜 그렇게 견고해 보였을까 생각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정은은 거의 뛸 듯이 빠르게 걸었다. 느린 걸음에 맞춰 낮게 울리던 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그건 소리에만 머물지 않고 정은의 귓바퀴를 후끈 덥히기까지 했다. 정은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자꾸 걸었다. 개들이 왈왈 짖었다. 그것들이 설마 날 쫓아온 걸까?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이 나가는 걸 모르는 와중에 개들은 눈치 채고 쫓아온 것이 아닐까, 정은은 생각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야 정은은 알았다. 소망보육원 마당이 아닌 바깥세상에도 함부로 뛰어다니는 개가 많다는 것을.
    정은은 마을버스가 오자마자 올라탔고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 곳에서 내렸다. 지하철역이었다. 정은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여긴 누구 집일까. 내가 들어가도 좋은 곳일까. 지하철역 앞에 돗자리를 깔고 불그죽죽한 대야에 한 가득 담긴 삶은 달걀을 팔던 젊은 여자가 정은을 불렀다.

 

    “얘, 왜 거기에 그러고 섰니? 엄마 어디 가셨니?”

 

    “엄마 없어요.”

 

    “엄마가 없어졌다고?”

 

    “아뇨.”

 

    “쟤 좀 봐. 울지도 않네.”

 

    정은은 삶은 달걀을 물끄러미 봤다. 여자는 머릿수건을 쓰고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고 있었다. 여자의 등에 업힌 갓난애가 앙앙거렸다. 정은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시퍼런 지폐를 만져봤다.

 

    “달걀 스무 개만 주세요.”

 

    “뭐야? 엄마 심부름 왔니?”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다 먹으려고요. 배가 고플 것 같아서요.”

 

    여자는 비닐봉투에 달걀을 가득 담아서 내밀었다.

 

    “아줌마가 두 개 더 넣었어. 맛있게 먹어라.”

 

    여자는 시퍼런 지폐 한 장을 받고 붉은 지폐 아홉 장을 정은에게 주었다. 정은은 새로 생긴 돈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꽉 찬 주머니가 든든했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은은 여자 옆에 앉았다. 여자가 정은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정은은 달걀 하나를 깨서 오물오물 먹었다.

 

    “소금 주랴?”

 

    “아줌마. 저 계단 내려가면 뭐가 나와요?”

 

    “응. 지하철. 지하철 모르니?”

 

    “몰라요.”

 

    “그걸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지하철역 이름만 알면. 열차를 타고 가다가 거기서 내리면 되지.”

 

    “이름이요?”

 

    “한 번도 안 타봤나? 신도림역, 낙성대역, 압구정역. 이런 이름 몰라?”

 

    여자는 조그맣게 웃었다. 정은은 여자가 열거한 이름을 가만히 중얼거려봤다. 신도림역, 낙성대역, 압구정역. 사람들은 거침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정은은 언젠가 책에서 본 앨리스의 토끼굴을 떠올렸다. 한 것이라고는 소망보육원 바깥으로 나온 것밖에 없는데 온통 설레는 일뿐이었다. 아기를 업은 아줌마. 고소하고 맛있는 달걀. 어디든 갈 수 있는 열차가 지나다닌다는 지하세계. 정은은 여자가 새로운 사람에게 달걀을 팔고 있는 사이 일어나 지하철역 안으로 내려갔다.
    정은은 개찰구 앞에서 우물쭈물 망설였다. 사람들이 하는 모양대로 기다란 막대기를 밀어도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나는 누군가 정은을 번쩍 들었다 내려놓았다. 그 사이에 정은은 개찰구 너머로 넘어와 있었다. 정은은 두리번거렸다. 자신을 옮겨준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원래 이런 건가? 정은은 의아해하며 열차를 탔다.
    신도림역, 낙성대역, 압구정역. 정은은 똑똑하게 외고 있었다. 정은은 귀 기울여 방송을 들었다. 무엇이든 셋 중 하나의 이름이 들리면 그곳에서 내릴 생각이었다. 정은이 탄 열차는 3호선이었다. 정은은 달걀을 먹으며 이름이 들리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창밖에 한강이 지나가더니 곧 압구정역, 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정은은 당연한 듯 그곳에서 내렸다. 이제 어떻게든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요령을 알았으므로 개찰구 앞에서 정은은 망설이지 않았다. 정은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서 개찰구를 넘어갔다.
    정은은 밝은 세상으로 나갈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다 오르자 정은의 눈앞에 큰 건물 하나가 보였다. 여태껏 본 것 중에 가장 큰 건물인 것 같았다. 문 앞에 다가가자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정은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인사했다. 하얀 레이스장갑과 입술에 칠한 빨간 루주가 예뻐 보였다. 가슴을 출렁거리며 원장 아버지와 놀고 있던 여자랑 닮은 듯도 했다.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4천만 국민에게 박수를 드립니다. 백화점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상고를 돌리는 호랑이 인형이 사람만큼 커서 정은은 깜짝 놀랐다. 저게 뭐였지. 분명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멜빵바지를 입은 남자애가 온몸으로 정은의 어깨를 쳤다. 정은은 중심을 잃고 휘청했다. 제 엄마의 손을 잡은 남자애는 혀를 쏙 내밀며 지껄였다.

 

    “뭐야 너. 꺼져.”

 

    남자애의 엄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정은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엄마 어디 가셨니?”

 

    정은은 왜 있지도 않은 엄마를 자꾸 찾아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 없어요.”

 

    “엄마, 나 오렌지 주스 먹을래.”

 

    남자애가 제 엄마를 잡아끌며 칭얼댔다. 남자애와 남자애의 엄마는 곧 저만치 사라졌다. 정은도 목이 마른 것 같았다. 그새 달걀을 여덟 개나 까먹은 참이었다. 정은은 아직 남은 달걀과 자잘한 껍데기가 수북한 비닐봉투를 들어 한참을 봤다. 목은 점점 더 말랐고 가슴께가 답답해오기 시작했다. 정은은 하얀 레이스장갑을 낀 여자를 붙잡고 물어봤다.

 

    “물을 파나요?”

 

    “어머, 엄마는 어디가고 혼자. 저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마실 것이 있단다.”

 

    정은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오렌지 주스를 사먹었다. 주머니 안은 여전히 넉넉한 것 같았다. 정은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며 놀았다. 한참을 놀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싫증도 났다. 정은은 터벅터벅 걸었다. 여기는 놀이동산인가? 제 부모 손을 붙들고 돌아다니는 애들 꼴을 보니 놀이동산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 놀이기구는커녕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 물건들만 잔뜩 있었다. 재미없다. 재미없어. 정은은 중얼거리며 정처 없이 걸었다. 정은은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나는 사람들은 정은이 보이지 않는 듯 함부로 밀치고 지나갔다. 이리저리 떠밀려 걷던 정은의 눈에 문 하나가 보였다. 문을 열자 익숙한 어둠이 밀려들었다. 그곳은 정은에게 안전해 보였다. 정은은 비상계단 한편에 앉아 잠이 들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정은은 꿈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석별의 정’을 불렀다. 검은 승용차에서 갈색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남자와 여자가 내렸다. 깡총하게 잘린 단발머리를 한 여자애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잘린 머리카락에 옷은 예쁘장한 새것이었기 때문에 여자애의 뒷모습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풍겼다. 갈색머리 여자는 여자애를 안아들었다. 미국 사람들이야? 정은은 곁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나봐. 좋겠다. 정은이는. 정은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정은이는 나잖아? 그때 여자애가 뒤돌아봤다. 갈색머리 여자에게 안겨 웃고 있는 여자애는 정은이었다. 정은은 악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노래는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는 소망보육원이 아닌데. 사방은 어두컴컴했고 등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정은은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손 하나가 불쑥 정은을 향해 다가왔다.

 

    “꼬마야. 엄마 어디 갔니. 백화점 문 닫을 시간인데.”

 

    “엄마 없어요.”

 

    “엄마 잃어버렸니?”

 

    “아니, 난 엄마가 없어요. 혼자 왔어요.”

 

    커다란 손은 정은을 덥석 안아들었다.

 

    정은은 그렇게 두 번째 아버지인 현우를 만났다.
    원장 아버지를 부르듯 의미 없는 호명으로, 정은은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정은은 그의 딸이자 애인이 되어 그에게 감금되었다.
    누군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놓은 걸까.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에, 정은은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작가소개 / 박민정(소설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와 동 대학원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작가세계》신인상에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가 있다.

 

 

 

   《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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