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_단편소설_망] S대

 

[11월_단편소설_망]

 

 

S대

 

 

 

조영한

 

 

삽화-s대

 

 

    대리석 건물 앞에는 빛바랜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간밤에 바람이 불고 겨울비가 내렸던 탓에 천막 위는 납작하게 눌린 데다 빗물이 고여 있었다.

 

    윤오는 천막에 쓰인 글씨들을 읽었다. ‘폐과’, ‘반대’, ‘결사’와 같은 글자들이 가로로 또는 세로로 쓰여 있었다. 글씨는 갓 링에 올라온 레슬러 같은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어딘지 글 모르는 아이가 쓴 낙서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 때면 천막이 부풀면서 글씨들도 바람에 쓸려 어디론가 날아갈 듯했다.
    윤오는 천막에 들어오자마자 토기가 섞인 기침부터 뱉었다. 올여름 일했던 공사판 숙소에 들어갔을 때처럼 남자들이 오랜 머문 자리에서 나는 이른바 ‘홀아비 냄새’가 고여 있었다. 냄새는 양말의 고린내 같기도 했고 거세하지 않고 도축한 수퇘지 고기에서 나는 웅취(雄臭) 같기도 했다. 윤오는 시멘트 포대를 두 개씩 짊어졌던 기억을 떠올린 뒤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던 물건들을 점검했다. 접이식 테이블 두 개와 비품들을 넣은 플라스틱 상자가 보였다. 플라스틱 상자 앞에는 백 리터들이 쓰레기봉투가 엎어져 있었는데, 참이슬 공화춘 핫식스 같은 글자들이 봉투에 어른거렸다. 봉투 안에는 일회용품뿐만 아니라 병이나 플라스틱 같은 재활용 가능한 것들도 들어 있었다. 윤오는 열십자로 묶은 봉투 매듭을 보면서 테이블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전지(全紙) 서너 장과 뚜껑을 열어 놓아 잉크가 마른 매직이 놓여 있었다. 맨 위에 있던 전지에는 펜이 지나간 흔적이 없었고 가장자리에는 라면 국물이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한숨 뱉는 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침낭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 뒤척였다. 침낭은 회색빛 고치 같았고 천막에 스며드는 한기와 습기를 막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두꺼웠다. 침낭 구멍에 머리를 내민 사람들은 눈곱 붙은 눈꺼풀을 깜박이며 마실 물을 찾았다. 그들은 모두 네 명이었고 얼굴에는 애티가 남아 있었다.
    가장 나중에 깬 사람은 머리칼이 이제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대머리였다. 대머리는 밤송이 같은 뒷머리를 긁으며 바닥에만 물이 남아 있는 물병을 마지막 순서로 잡았다. 윤오는 천막 한가운데 있던 난로에 손을 올렸다. 난로는 쇠 종 같은 모양이었는데 천막만큼 오래된 것이라 손바닥을 겨우 간질일 만큼의 열기만 자아올렸다. 윤오는 손을 거두고 위를 보았다. 엑스자로 연이어 교차되어 있는 스틸 살대에는 흐린 빛을 머금은 알전구들이 드문드문 매달려 있었다. 살대 위로 여기저기 내려앉은 천막 가운데와 모서리는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었다. 밤새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는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대머리는 물통에 있던 물을 다 마시고 침낭 지퍼를 내렸다. 침낭 안에는 열기가 가신 핫팩이 일곱 개쯤 들어 있었다. 대머리는 배와 허벅지에 있던 핫팩을 집어 바깥으로 꺼냈다. 다른 사람들도 대머리와 동작을 맞추듯 침낭에 들어 있던 핫팩을 서너 개씩 꺼내 놓았다. 난로 둘레에는 과자 봉지들과 텅 빈 술병들이 널려 있었으며 거기에 뜨거운 흙을 담았던 모래주머니도 더해졌다. 핫팩을 꺼내던 중 누군가 손으로 입을 막으려다 결국에는 웩웩대며 바닥에 토를 했다. 깔개를 여러 장 겹쳐서 깐 바닥으로 토물이 쏟아지자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윤오는 건더기는 없고 거품만 낀 토물을 내려다보더니 메고 있던 륙색을 뒤져 물티슈를 꺼냈다.
    윤오가 토물을 다 닦았을 때 대머리는 윤오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윤오는 젖은 티슈를 난로 둘레에 놔두고 대머리를 따라 천막을 나왔다. 그들 앞에는 올해 새로 지은 대리석 건물이 보였다. 외벽과 계단에 있는 대리석 타일은 물에 싱싱하게 젖어 은회색 빛을 반사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흰색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는데, 천에 그려진 푸른색 마크는 S였다.
    둘은 석조 건물 뒤에 있는 경사가 완만하고 잡풀 깔린 길을 걸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음에도 대머리는 체력이 좋지 않아 땀을 흘리며 헉헉댔다. 예전에 과에서 나누어 준, 철학(哲學)이라는 한자가 프린트된 점퍼 등판은 어느새 땀에 흠씬 젖어 있었다. 윤오는 대머리 곁에서 따라 걸으며 땀에 젖은 글씨를 스쳐보았다.
    곳곳에 서 있는 삼나무와 소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워 공원은 해질녘처럼 어슬했다. 공원 어귀에 세워진 팻말로 목란공원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글씨 테두리로 낙서나 래커가 칠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팻말을 지나 비에 약간 젖은 벤치에 앉았다. 윤오는 륙색을 뒤져 따뜻한 캔 커피 두 개를 꺼냈다. 대머리는 물을 마음껏 마시지 못한 갈증이 남아 있어서 단숨에 커피를 마시고 알루미늄 캔을 우그러뜨렸다. 윤오는 값싸고 고무 타는 냄새가 나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마치 라디오에서 나오는 오래된 방송 같은 얘기를 들었다.
    학과 통폐합이 결정된 네 달 전만 해도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일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이용해 곤경을 널리 알렸고, 일부는 수업에 빠진 뒤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정문이나 본관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는 마스크를 쓰고 총장실 건물 앞에 잇대어 앉아서 침묵 농성을 했다. 다음과 네이버에 한동안 S대라는 이름이 빈번히 오르내렸던 덕에 언론의 보도도 한두 차례 있었고 유명한 인사들의 지지나 격려도 뒤따랐다. 시위를 하는 광경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오 천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 예전 일이잖아.”
    윤오는 대머리의 발을 밟고 조용히 말했다. 대머리는 검고 여린 싹이 자라나는 듯한 옆머리를 박박 긁었다. 일주일 전 결의를 새로이 다지는 뜻에서 머리를 밀었는데 군데군데 붉은 흉터가 나 있었다. 결의를 제대로 보여야 한다면서, 전동식 바리캉도 놔두고 낡은 이발소에서나 쓸 법한 수동식 바리캉으로 거칠게 머리를 민 탓이었다. 모두가 머리를 밀어야 한다고 제안한 사람은 그였으나 머리를 민 사람은 그 혼자였다. 대머리는 머리에 난 흉터를 만지며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욕했다. 그 중에는 교수동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윤오는 대머리의 입에서 나오는 된소리 도드라진 발음보다는 솔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솔잎 끝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바람에 쓸려 떨어지는 소리가 사람이 뱉는 말보다 정겹게 들렸다. 윤오는 간간이 머리와 어깨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대머리의 입매를 눈여겨보았다. 누군가의 소극적 태도를 비난하는 것인지 아니면 혼자서만 머리를 민 원망을 내뱉는 것인지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한꺼번에 벤치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머리를 흠뻑 적시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오는 내용물이 남은 캔을 풀숲에 던지고 어깨와 머리에 묻은 물을 털었다. 대머리는 윤오에게 담배를 빌리더니 좀 전보다 흥분이 가신 목소리로 미국 날씨는 어떠냐고 물었다. 윤오는 하늘 가린 소나무 잔가지들을 보다가, 그만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윤오는 돌계단을 밟으며 벽돌 건물로 올라갔다. 디귿자로 생긴 건물은 벽돌 빛이 바란 데다 여기저기 줄눈이 닳아 벽돌 몇 장이 빠질 듯 앞으로 돌출돼 있었다. 윤오는 유리문 한가운데 있던 단말기에 출입증을 찍었다. 기계음과 함께 유리문이 열리면서 나사 모양으로 비비 꼬인 회백색 계단과 높이가 낮은 철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윤오는 계단을 오르려다 키 작은 철문에서 나오고 있는 세 명의 아주머니들을 보았다. 모두들 체형이 나직한 편이었는데도 허리를 한껏 굽혀 철문을 지나더니 문 옆에 늘어서 있던 빗자루나 대걸레를 하나씩 잡았다. 제법 추운 날씨임에도 그녀들이 입은 하늘색 유니폼은 얇았고 왠지 촌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그것은 올해 학교에서 그들에게 새로 나누어 준 것이었다.
    위층 복도는 아래층 복도보다 어두웠고, 시멘트를 바른 벽마다 가늘거나 굵은 금이 가 있었다. 위층에 감돌고 있는 냉기는 벽에 난 금에서 나왔다. 윤오는 화장실과 마주하고 있는 철문에 다다르자 평소 습관대로 문에 붙어 있는 자보를 읽었다. 열흘이 넘게 붙어 있던 자보에는 연봉 오 퍼센트 인상과 노동 시간 단축, 주말 근무 폐지와 같은 내용이 반듯한 인쇄체로 써져 있었다. 자보 아래에는 각 과 조교들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는데 윤오의 이름은 없었다.
    방에는 레게머리를 한 여성이 의자에 앉아 난로를 쬐고 있었다. 열흘 만에 방에 온 레게는 의자에 붙였던 엉덩이를 살짝 떼고 인사를 하더니 팔걸이에 걸었던 담요로 무릎을 덮었다. 윤오는 자기 책상에 륙색을 놓고 쿠션이 꺼진 의자에 앉았다. 레게의 등 뒤로 책들이 가득 꽂힌 무늬목 책장들이 한쪽 벽을 가리고 있었으나, 맞은편 벽에는 반달형 테이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윤오는 벽에 새로 난 듯한 금들을 스쳐보고 나서 륙색을 열어 캔 커피를 꺼냈다. 레게는 윤오가 주는 캔을 받기는 했으나 마개만 열어 놓고 마시지 않았다. 윤오는 혀에 밴 담배 맛을 지우려 커피를 급하게 마셨다.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레게는 시선을 난로에 둔 채 오늘 점심에 김리와 총장이 석조 건물에서 만날 거라는 말을 더듬거리며 했다. 윤오는 밤색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코밑에 카이젤 수염을 기른 남자를 생각했다. 본명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난쟁이 캐릭터와 닮았다고 해서 김리라고 불렀다. 윤오는 내용물이 아직 남은 캔을 우그러뜨렸다. 캔에서 나온 커피에 손이 조금 젖었다.
    레게는 담요를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마는 여름에 입어도 될 만큼 짧았고 치마 아래로 올이 나간 스타킹이 보였다. 윤오는 난로에서 번진 불빛이 스타킹에 비껴드는 것을 보았다. 시선을 더 아래로 옮기니, 굽 높은 벨벳 구두의 앞코에는 나비 모양의 리본이 장식되어 있었다. 레게는 오늘 하루 잘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구두 굽이 바닥을 디디는 소리가 방 안까지 어렴풋이 들려왔다. 윤오는 레게에게 향했던 난로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열기가 몸으로 전달되긴 했어도 한 사람이 방에서 나가니, 추위가 느껴졌다.
    레게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키 크고 마른 사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일 층에 있는 강사 휴게실에 난방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오는 언제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는 사내에게도 커피를 주었다. 사내는 커피를 받자마자 마개를 열어 한 모금 마시더니 가장자리 색이 바라기 시작한 토트백을 테이블에 놓았다. 다리 하나가 짧았던 탓에 테이블은 토트백이 놓인 쪽으로 다소 기울었다. 사내가 김 서린 안경을 닦는 동안, 윤오는 레게가 앉았던 의자를 끌어 테이블 옆에 놓았다. 사내는 고개를 반쯤 숙이고 의자에 앉더니 가방을 열어 가제본 두 권과 스프링 공책 하나를 꺼냈다. 가제본 한 권은 무미하게 느껴질 만큼 궁서체 글씨 두 글자만 표지에 쓰여 있었고, 다른 한 권에는 앞머리가 드물고 퍽이나 예민하게 생긴 헤겔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두 책의 종이 사이사이에는 포스트잇들이 잔뜩 붙어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사내는 필기로 가득 채워진 노트를 펼쳐 혼자만 알아볼 수 있게 쓴 손 글씨를 되풀이해 읽었다.
    윤오는 저번 학기를 떠올렸다. 그때는 마지막 학기를 다니느라 수업을 적게 들었는데 그 중에는 사내가 지도하는 수업도 하나 있었다. 학습량이 많아 아는 건 많은 듯했으나 아는 걸 말로 풀어내는 솜씨는 그리 빼어나지 못했다. 사내는 말을 자주 더듬었는데, 아는 게 얕아서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천성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서 말이 어눌한 듯했다. 사내는 수업이 끝나거나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건물 뒤편으로 가서 말보로 담배를 서너 개비씩 피웠다. 윤오는 사내와 여러 번 같이 담배를 피웠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드물었다. 어쩌다 흘려들은 말에는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며, 담배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내는 일주일에 두 번 아침에 학교로 왔고 점심이면 교내 편의점에서 빵 한 봉지와 탄산수 한 병을 산 뒤 세거리로 내려가 버스를 탔다. 그리고 이번 학기에는, 금요일 오후 하루만 나오고 있었다.
    사내는 눈길을 노트에 쏟으면서도 손으로는 토트백 안을 더듬었다. 윤오는 사내가 앉은 쪽으로 난로를 돌려놓았다. 사내는 토트백 안에서 담배가 얼마 남지 않은 담뱃갑을 꺼냈다. 디스플러스였다. 베이지색 바탕에 고래가 그려진 담뱃갑이 윤오의 눈에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보였다. 피우고 있다는 기분만 내려는 듯 불붙지 않은 담배를 문 사내에게 윤오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피우시죠.”

 

    오후 두 시가 넘어 윤오는 서류철을 들고 교수동에 들어왔다. T자로 나 있는 복도를 따라 여기저기 설치된 라디에이터에서 금속 달구는 냄새가 물씬 올라왔다. 윤오는 얼굴에 닿는 쇠 비린내 섞인 공기의 감촉을 느끼며 복도 끝으로 걸었다. 119라 쓰인 나무문을 여러 번 두드리니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들어오우, 라는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 나왔다. 윤오는 문을 열고 들어와 중역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노인은 책상 고무판에 괴었던 양 팔을 떼고 가는 눈으로 윤오를 보았다. 낮잠을 자는 바람에 눈이 충혈되어 있었는데 잠을 깨운 사람을 향한 원망기가 언뜻 보였다. 윤오는 책상 맞은편에 있는 원탁에 서류철을 놓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았다. 창문이 나 있는 벽을 제하고 세 면의 벽에는 키 높은 원목 책장들이 세워져 있었으나 책은 한 권도 꽂혀 있지 않아 서가는 단출했다. 창가 아래에는 청색 테이프로 단단히 봉한, 책들을 욱여넣은 부피 큰 사과 상자들이 두어 개 부려져 있었다.
    노인은 커피포트에 남아 있는 물을 확인하고 서랍을 열어 반투명한 차통과 둥근 찻잔을 꺼냈다. 차통에 있던 유자를 찻잔에 담고 온수를 붓자 쇠 냄새가 나던 방 안에 서서히 귤 냄새가 섞였다. 윤오는 노인이 주는 찻잔을 받고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마셨다. 달고 깊은 맛이 혀끝에 녹으니 앞으로 인스턴트커피 따위는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접었다. 노인은 꿀은 읍내에서 사고, 귤은 손수 재배를 했다며 자랑 섞인 어조로 말했다. 노인은 퇴임을 두 해 앞둔 작년에 인적 드문 시골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했다. 개 한 마리를 기르며 농사 흉내를 내고 있다는 노인의 웃음 띤 목소리를 들으니 윤오는 입에서 쓴맛이 도는 것을 느꼈다.
    윤오가 찻잔을 한쪽으로 밀어놓았을 때, 남교수와 여교수가 방으로 들어왔다. 여교수는 잠을 잘 자지 못한 듯 안 그래도 거칠던 피부가 더욱 거칠어져 있었다. 갓 임용되었을 때만 해도 둥글었던 얼굴이 이제는 삼각형에 가까워 보였다. 남교수 역시 피곤해 보였지만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은 수수한 옷차림 덕분인지 조금은 쾌활한 모습이었다. 둘은 윤오가 방 안에 들어왔을 때처럼 노인에게 깍듯이 허리를 굽혔다. 노인은 근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보더니 찻물을 더 끓이기 시작했다.
    회의는 세 시가 넘어 열렸다. 학과장인 여교수는 가져온 서류를 꺼내 보이면서 주로 말을 했고, 노인과 남교수는 회의가 진행될수록 점점 그늘진 표정을 지었다. 윤오는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필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볼펜을 놓았다. 여교수가 말하는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당국과의 협상은 이미 교착 상태에 빠진 데다, 학생들도 점점 현장에서 이탈하고 있다. 교육부에 두 차례 탄원을 넣기는 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학교의 정원 감축에는 불합리한 성격이 없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피치 못할 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행정처에서 만든 평가 지표를 근거로 학과의 저조한 취업률과 교수들의 미진한 연구 실적, 전임 교원의 부족 등을 문제 삼고 있다. 그 중에는 학교의 잘못도 있고 학과의 잘못도 있으나 그 모든 크고 작은 잘못들은 누구의 책임으로 빚어졌는지 쉽게 구분되지 않았고 다만 학과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는 명제만이 오롯하게 떠오르고 있다. 윤오는 서류철을 뒤져 한 달 전에 자신이 쓴 회의록을 찾아 꼼꼼히 읽었다. 그때와 달라진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은 앵무새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비눗물로 만들어 허공에 띄운 공기 방울처럼 금방금방 사라졌다.
    여교수가 다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삼십 분 동안 이어졌던 얘기는 끝났다. 남자들이 말할 차례였지만 노인과 남교수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노인은 아까 방 안에 들어온 두 사람을 봤을 때처럼 근심에 찬 기색을 보이긴 했으나 그러한 표정에는 곤경에서 다소 비껴나 있다는 안도감도 어려 있었다. 모두의 잔에 찻물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노인은 찻물을 부러 끓이기 시작했다. 남교수는 팔짱을 낀 채 쓴웃음만 지었다. 수수한 옷차림이 주던 밝은 느낌이 한결 옅어져 있었다. 여교수는 물 끓는 소리만 보글보글 들려오는 주위를 살피더니 원탁에 놓았던 종이들을 모아 서류철에 넣었다. 노인은 갓 끓인 찻물을 모두의 찻잔에 부어주고 나서 창가에 있던 질그릇 화분을 만지작거렸다. 희미한 햇볕이 흙만 남은 화분과 창가 아래 있는 사과 상자에 떨어졌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나온 윤오는 여교수를 따라 118호 방에 갔다. 방은 노인이 머무르는 방보다 비좁았는데 책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데다, 담배 냄새와 금속 달구는 냄새가 섞여 악취에 가까운 냄새가 났다. 여교수는 종이 뭉치들이 쌓인 책상에 서류철을 놓고 창가에 있던 담배 보루를 뜯었다. 윤오는 여교수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책상 모서리에 있던 베이지색 종이 액자를 집었다. 세게 쥐면 구겨질 듯 질감이 얇은 액자에는 배경이 어두운 흑백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여교수는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는 흰 린넨 블라우스를 입고 마른 팔뚝으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라 머리털이 없고 살갗은 쭈글쭈글했다. 귀엽기보다는, 자투리 천을 잇고 꿰매서 만든 부피 큰 봉제인형 같았다. 여교수는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 든 채 정면을 보고 있었는데, 눈빛은 도전적이기도 했고 어딘가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윤오는 액자를 내려놓고 책상과 소파에 흩어져 있는 책들과 종이 낱장들을 힐끔거렸다.
    여교수는 페트병을 잘라 만든 재떨이에 네 번째로 피운 담배를 넣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비는 그쳤으나 돌풍이 불었다. 천막 위에 고였던 물이 완만하게 경사진 빗면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천막 근처에는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이마에 수건을 맨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 길이만한 쇠 집게를 들고 물에 젖은 피켓과 전지, 스티로폼 용기를 주웠다. 집게에 잡힌 쓰레기는 바퀴가 달린 둥근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가끔가다 곁에 물세례가 떨어지고, 쓰레기가 바람에 쓸려 날아가도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이보다 심한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변하지 않을 듯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윤오는 아주머니가 떠나고 나서 천막에 들어왔다. 아침보다 실내 공기가 맑았으나 찬 기운은 좀 더 심해져 있었다. 안에는 아침에 있던 인원보다 두 명이 더 와서 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잡담을 나누는 중에도 대머리는 홀로 테이블 앞에 선 채 말라붙은 잉크가 잘 나오게끔 매직을 흔들고 있었으나 글씨를 쓰려는 것 같진 않았다. 그저 매직을 쉼 없이 흔들어대는 것으로 무료함과 불안을 쫓으려는 듯이 보였다. 윤오는 아무런 말없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카드를 놓았다. 대머리는 왼손으로 매직을 계속 흔들면서 오른손으로 카드를 주워 난로를 향해 던졌다. 아침에 토를 했던 남자가 카드를 줍더니 많이 시키지는 못하겠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학과장 호봉이 제일 적잖아.”
    윤오는 난로 앞에 앉더니 이내 침낭을 베고 드러누웠다. 불빛이 흐려진 전구와 아침보다 더 내려앉은 천장 가운데가 보였다. 윤오는 웅덩이가 생겨 만들어진 크고 넓은 곡면을 보면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들 얼마 전 끝난 드라마와 새로이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윤오는 티브이를 일부러 집에 놓지 않았고 컴퓨터를 하더라도 게임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일을 많이 하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건 집에 있으면 웹 서핑만 잠깐 한 뒤 죽은 듯이 자기만 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더라도 몸에 쌓인 피로는 가시지 않았고 도리어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한 느낌만 들어 담배만 내내 피워댔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힘에 부치면 논문을 쓰는 데 읽어야 할 전공 도서나 몇 권 들추다가 다시 잠들었다. 윤오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꺼려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신이 어느 섬에서 홀로 살다가 온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윤오는 자기가 잘 모르는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관두었다.
    오토바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천막에 들어온 사람은 반투명 우의를 입은 중키의 남자였다. 중키는 난로가 있는 곳까지 들어와선 철가방에 들어 있던 음식들을 꺼내 놓았다. 모두가 점심 식사를 이미 한 뒤라 탕수육이나 깐풍기와 같은 안주에 알맞은 음식들이 많았다. 중키는 카드를 받더니 단말기를 꺼내 결제를 시도했다. 두 번 긁었으나 단말기 상단에 난 틈에서 영수증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접시 비닐을 벗기려다 말고 카드를 든 중키의 손만 바라봤다. 중키도 몹시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누워 있던 윤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평소에 쓰는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결제가 끝나기도 전에 난로 옆에 눕더니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뱉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했으나 나중에는 평소 때처럼 화기애애해졌다. 누군가 농담조로 여교수의 꺼칠해진 얼굴과 이혼 경력을 얘기하자 사람들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금방 사라졌다.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보였다. 윤오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대머리가 가끔씩 주는 술잔만 받아 누운 채로 마셨다. 배부른 느낌은 별로 없었으나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윤오는 여섯 번째로 준 술까지 마시고는 일어나 머리맡에 있는 카드와 영수증을 챙겼다.
    교수동에 왔을 때, 윤오는 유리문을 열고 나오던 남교수와 마주쳤다. 남교수는 윤오를 불러 세우더니 교수동 뒤쪽에 있던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금요일 오후라 남아 있는 차들은 많지 않았다. 남교수는 검고 오래되어 보이는 레토나 앞까지 와서는 차창에 묻은 빗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윤오는 언제나 그러했듯 남교수에게 담배를 건넸다. 디스플러스였다. 남교수는 오늘도 왜 이리 맛없고 싼 담배만 피우냐며 웃음 섞인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서 있던 윤오에게 학부 시절에 대출받은 학자금은 얼마나 갚았는지, 조교 일은 할 만한지, 천막에는 자주 다녀오는지를 물었다. 윤오는 가능한 단답으로 대답하거나 아니면 잘 모르겠다는 듯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남교수는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는 노인이 지난가을, 서울에 있는 학술회에 참석하느라 학교로부터 출장비를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윤오는 그 돈은 노인이 과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남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이 웃었다.
    “이번에도 그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남교수는 오른손으로 윤오의 귀를 살짝 꼬집었다. 윤오는 표정 관리를 하느라 일부러 크게 웃었다. 남교수는 레토나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군용 차량처럼 생긴 레토나는 주차선을 빠져나와 곳곳에 나 있는 웅덩이를 밟아 물을 튀기며 정문으로 내려갔다.
    윤오는 교수동에 들어와서는 118호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니 희고도 옅은 연기가 보이면서 담배 냄새와 피아노 음향이 함께 밀려나왔다. 책상에는 엎드려 자는 여교수와 잠을 유도하는 소리를 쏟아내는 스마트폰이 보였다. 창가에 있는 재떨이는 좀 전보다 많은 꽁초들이 꽂혀 있었는데 연기는 거기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윤오는 방으로 들어와 피아노 치는 손이 나오는 핸드폰 속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두 손이 건반을 느리게 오가고,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마치 불면증에 걸린 이들에게 들려줄 법한 자장가 같았다.
    여교수가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자 윤오는 카드를 돌려주었다. 얼마가 나왔냐는 물음에는 잠시 뜸을 들이다, 영수증에 쓰여 있던 액수에서 약간 낮추어 불러 주었다. 여교수는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고 굳이 영수증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하품을 하더니 다시 잠들었다.

 

    사내는 방에서 텀블러 크기만한 컵에 든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윤오는 사내가 생수나 자판기에서 파는 커피 이외의 음료를 마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사내는 오늘이 종강이라 수업을 일찍 끝냈다고 하더니 성냥갑 하나를 내밀었다. 탐앤탐스라는 로고가 새겨진 성냥갑 옆면에는 적린(赤燐)이 두껍게 입혀져 있었다.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니 입 안에 황 냄새가 밀려들면서 윤오는 술기운 때문에 느꼈던 두통이 약간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내는 다리를 꼬고 앉아 라지 사이즈의 커피를 마시며 갖가지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오늘 하루만큼은 원두 향이 짙은 커피를 마시며 다소간의 여유를 즐기려는 듯했다. 사내는 몹시 눌변이던 수업 때와는 달리 오늘따라 자신의 신상을 털어놓는 데 있어서는 달변이었다. 윤오는 어울려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사내가 풀어놓는 얘기를 듣고 몇 번은 감탄사를 뱉는 것으로 호응을 했다. 군대 간 아들이 하나 있고 딸은 재수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그리 특별할 것도, 재미날 것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윤오는 듣기 싫다는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사내는 점점 말이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아껴 마셨던 커피도 생수 들이키듯 급하게 마셨다. 니코틴이 배인 손에는 아침과는 달리 노란색 필터가 달린 말보로 담배가 들려 있었다. 윤오는 청각이 예민하지 못했던 탓에 받침이 있는 낱말이나 술어가 없는 문장들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사내가 마지막에 뱉은 말만 겨우 알아들었다.
    “여기서는 사십일 만원 받았지요, 한 달에.”
    사내는 흩어져 있던 꽁초들을 모아 종이컵에 담았다. 윤오는 방 안에 고인 연기를 빼려 창문을 열었다. 사내가 악수를 청하자 윤오는 손만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손은 올여름에 만졌던 십장의 손처럼 마디가 깊었고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사내는 토트백과 종이컵을 챙겨 방에서 나갔다.
    사내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레게가 자보를 든 채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방 안에 남은 연기와 테이블 옆에 있던 의자를 보더니 눈웃음치듯 내리고 있던 눈초리를 위로 올렸다. 입으로 뱉고픈 화를 억지로 참는 표정이었는데 어딘지 매섭기도 했고 한편으로 요의를 견디는 아이처럼 안쓰럽게도 보였다. 윤오는 반쯤 열었던 창문을 더 열고 건물에는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레게는 아무런 말없이 자보를 찢어 휴지통에 넣더니 콧등에 잡았던 주름을 조금 풀었다. 윤오는 사내가 깔고 앉는 바람에 눌려 있던 담요를 들어 각 잡아 접는 시늉을 했다. 때마침, 활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비린내 머금은 바람이 밀려와 레게의 책상에 있던 몇몇 종이들을 마구 흩뜨렸다. 레게는 책상 밑까지 떨어진 종이들을 바삐 줍더니 결국에는 에이씨, 라는 소리를 내며 화를 냈다. 윤오는 레게의 입에서 나오는 센 말을 가만히 듣다가, 그만 쓰게 웃고는 책상에 있던 륙색을 챙겼다.

 

    윤오는 교내 편의점에 들러 캔 커피와 담배를 사고 정문으로 나왔다. 정문 앞은 술집이나 외양이 다방에 가까운 카페 일부를 빼면 건물이 드물었다. 건물이 없는 너른 빈터에는 버려진 지 오래인 판자 쪼가리와 토막 난 철근과 각목들, 간밤에 누군가 버려 놓은 쓰레기봉투들이 한데 널브러져 있었다.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던 고양이들이 어둠 속에서 몇 번이나 길게 울었다. 윤오는 고양이 소리를 들으며 정류장 표지판이 있는 세거리에 도착했다. 정면에는 추수가 끝난 지 오래인 밭과 아스팔트가 덮이다 만 차도가 보였고, 우측에는 나직나직한 빌라들이 세워져 있었다. 빗물에 젖어 있는 밭은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져 아득한 인상을 주었다. 윤오는 청기와를 얹은 빌라에 들어갔다. 계단참에는 벌거벗은 여자들이 프린트된 전단지와 다방이라 쓰인 명함들이 흩어져 있었다. 윤오는 명함 몇 장을 주웠다가, 이내 버렸다.
    집 안은 바깥만큼 써늘했고 비 온 뒤끝이라 습기가 차 있었다. 윤오는 보일러를 켜고 불을 밝힌 뒤 매트리스에 누웠다. 피곤하긴 했으나 속이 쓰리고 이마에 열이 올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윤오는 자리에서 뒤척이다가 결국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웹 서핑을 했다. 바둑 사이트에 들어가기도 했고 프로레슬링 팬 카페를 둘러보기도 했으며 실시간 이슈에 떠오르는 낱말이나 문장들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했다. 시선은 화면에 있다가도 가끔은 뚜껑이 열린 밥솥이나, 화장실 문 앞에 있던 고지서에 닿았다. 윤오는 문득 주소창에 커서를 만들어 글씨를 입력했다. 글자들로 가득했던 배경이 하늘빛을 보듯 파랗게 바뀌면서 몇 장의 컬러 사진들이 세로로 떠올랐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백악관의 전경만 그나마 알아볼 수 있을 뿐 공원 잔디밭 풍경이나 도시의 야경을 담아낸 사진은 그에게 낯설었다. 윤오는 바다 건너에 있는 풍경들을 보면서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맨 밑에 있던 사진에는 해변가가 나와 있었다. 모래밭 뒤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녹색과 파란색을 반반씩 섞어서 색을 낸 듯한 바다가 보였다. 모래밭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발자국이 군데군데 나 있고 야자수 잎들이 태양 무늬를 그리듯 보기 좋게 포개져 있었다. 윤오는 하늘 오른쪽에 있는 태양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를 잠깐이라도 만지고 싶다는 욕구와 그저 몸의 찬 물을 빼고 싶다는 욕구가 함께 밀려왔다. 두 가지 욕구는 예전에는 확연히 구분되었지만 지금은 구분 없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 윤오는 마지막 해변가 사진을 오랫동안 보다가 다시 맨 처음 보았던 백악관 야경을 담은 사진으로 되돌아갔다. 사진은 오십 장이 채 되지 않았기에 다 보는 데는 이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오는 사진을 되풀이해 들여다보면서 입술에 담배를 물었다.
    여자는 지난 팔월에 빌라로 찾아왔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한 윤오는 예고 없이 찾아온 여자를 보면서 의아해했다. 그녀도 도어 록 비번을 알고 있었지만 그도 모르게 집에 찾아왔던 적은 없었다. 여자는 한동안 윤오와 연락을 잘 하지 않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것이었다. 윤오는 온종일 신었던 흙투성이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상추와 삼겹살이 든 봉지와 소주 두 병이 쥐어져 있었다. 여자는 윤오가 주는 봉지를 받았다가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냉장고 아래 칸에 넣었다. 윤오는 세면과 세족만 마치고 나서 저녁상을 준비했다. 바람이 부는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교자상을 놓은 뒤, 상 위에는 버너와 불판을 올렸다. 아침에 먹다 남은 찌개를 물 부어 끓였고, 갓 사온 상추도 흐르는 물에 씻었다. 포일을 깐 불판에 고깃점을 올리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윤오는 그동안 일한 돈을 받았고 다음 학기부터는 조교를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 손은 전보다 검어진 모습이었고 가늘거나 굵은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긁히거나 갈라진 상처도 조금 보였다. 여자는 윤오에게 몇 번 쌈을 싸서 주기는 했으나 받아먹는 적은 많지 않았다. 윤오는 고기와 밥을 별로 먹지 않았고 술만 따라서 계속 마셨다. 음식을 씹는다는 일에 흥미나 의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여자는 윤오와 달리 술은 마시지 않고 고기와 밥을 많이 먹었으며 나중에는 그가 남긴 밥도 먹었다. 윤오는 검게 탄 포일을 걷어내고 나서 두 번째 포일을 깔고 남은 고기를 마저 구웠다.
    둘은 밤늦게까지 함께 있었다. 윤오가 그릇을 씻는 동안 여자는 샤워를 하고 나와 손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빛깔은 파란색이었다. 윤오는 설거지를 마친 다음, 휴지를 찢어 둥글게 말아 여자의 발가락 사이에 끼웠다. 체구가 나직하고 팔다리도 가는 편이었는데 손발은 여느 남자만큼 컸고 살이 쪄 있었다. 매니큐어가 다 마를 때쯤 여자는 실내가 더우니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본관 뒤에 있는 공원 산책로는 여름에는 솔바람 불어 시원했고 방학에는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아 고즈넉했다. 윤오는 별다른 말없이 그저 쓰게 웃기만 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진종일 서 있고, 걷느라 두 다리에 아무런 힘도 감각도 없었다. 대화가 서로 간에 잘 이어지지 않자 실내에 정적이 흘렀다. 빌라 둘레에 서 있는 은행나무에서 울리는 매미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여자는 미국에 간다는 얘기를 꺼냈다. 출국 날짜는 구월 둘째 주 월요일이었고 직행으로 가는 요금이 비싸서 홍콩을 경유해서 간다고 했다. 이 년쯤 뒤에 돌아올 거라고 말했지만 나중에는 학위를 받아야만 귀국할 수 있다고 고쳐 말했다. 윤오는 자기보다 일곱 살 어린 여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여자의 얼굴에는 낯선 곳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남다른 기회를 겨우 얻었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기대가 큰지 아니면 불안이 깊은지는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윤오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파에 지나지 않으며, 지금 자신에게 별다른 보탬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가슴이 불 덴 듯 뜨거워졌다가 차디찬 생수로 씻어낸 것처럼 이내 무감각해졌다. 여자는 그런 신파적인 대답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으나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자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듯 입매가 잔뜩 비틀려 있었다.
    “나, 여기서 졸업하긴 싫어.”
    여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오는 며칠 전부터 발바닥에 너덜거리고 있던 각질을 잡아 뜯었다. 힘주어 뜯는 바람에 발바닥에 피가 조금 번졌다. 여자는 매트리스에 벗어 놓았던 옷을 하나씩 입더니 스팽글이 달린 핸드백을 어깨에 멨다. 윤오는 세거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으나 여자는 정중한 말투로 사양했다.
    담배를 피운 뒤 블로그 창을 닫으니 파일이 몇 없는 바탕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윤오는 화장실 문 앞에 떨어진 고지서들을 가져왔다. 이번 달에 나온 것도 있었고 한 달 치 미납된 것도 있었다. 납부해야 할 것들 중 가장 액수가 많은 것은 난방비였다. 집에 들어온 지 꽤 됐는데도 바닥은 따뜻하지 않았고 한밤이 되어도 그리 따뜻해진 적은 없었다. 견디기 약간 버거울 정도로, 추위를 잊을 만큼의 온기만 매일매일 바닥에 깔렸다. 윤오는 등산용 양말을 정강이까지 당기고 인터넷을 열어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월급날이 며칠 지났는데 돈은 아직 입금되어 있지 않았다. 윤오는 좀 전에 사진을 볼 때보다 주의 깊게 잔액을 보고 다른 누군가의 통장에는 돈이 들어왔을지 궁금해졌다. 머리가 아팠고 심장 두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속도 몹시 메슥거렸다. 윤오는 컴퓨터를 끄지 않고 매트리스에 눕더니 토기가 섞인 기침을 뱉었다. 얼굴이 땀으로 젖어들 때쯤 바깥에서 겨울비 내리는 소리와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베개 옆에 놓았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오는 낡은 슬라이드 폰을 잡더니 전화를 받았다. 대머리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음성보다 빗소리가 크게 들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윤오는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충 뜻을 알아차리고 전화를 끊었다. 눈을 돌려 베란다를 보니 비가 여느 때보다 많이 내려서 어둠이 묽게 보였다.

 

    윤오는 등산화를 끌며 정문으로 걸었다. 우산을 쓰고 있었으나 바람이 세찼기 때문에 외투와 바지가 빗물에 젖었다. 빈터에서 고양이들 우는 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가로등 몇 개가 꺼져 있어 거리가 어두웠는데 유독 술집 한 곳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왔다. 나무로 만든 반원형 테라스가 나 있는 술집은 상호가 나눔이었고 빗소리만큼 큰 소음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윤오는 얼룩진 통유리에 비친 사람들과 아크릴 간판 가운데에 쓰인 S라는 글씨를 번갈아 보았다. S는 학교 이름이기도 했고 이곳의 지역명이기도 했으며 어딘지 거칠고 생경한 외지의 느낌을 주는 낱말이기도 했다. 윤오는 우산을 접고 줄무늬 차양 아래에 있는 테라스에 올라와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 잠시 망설였다. 실내에는 술병이 많아 보였고 온백색 불빛이 들어차 있었다.
    문을 여니 얼굴에 비릿한 훈김이 끼치면서 축제의 절정에 들어선 것처럼 소음이 여러 겹으로 들려왔다. 술집 가운데와 오른편으로 낯익은 사람들이 서너 명씩 모여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왼편에는 점퍼나 파카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윤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테이블로 다가가 빈자리에 앉았다. 대부분 머리가 얼얼해질 만큼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취해 보이는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아기 머리만한 맥주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밤색 스웨터에 카이젤 수염을 기른 김리였다. 김리가 주목이란 말을 외치자 몇 명은 고개를 돌렸으나 다수는 원래 하던 행동을 계속했다. 김리는 연설을 하는 듯 긴 말을 꺼냈지만 소음에 그만 묻혔고 결국에는 위하여, 라는 말을 크게 외치는 것으로 들떠 있던 분위기를 좀 더 북돋웠다. 윤오는 큰 잔에 담긴 맥주가 김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엉겁결에 상에 있던 맥주병을 하나 집었다. 마시지는 않고 그냥 들고만 있었다.
    누군가 윤오의 팔을 툭, 치더니 친근감 어린 목소리로 지금 왔느냐고 물었다. 윤오는 안경을 쓰고 머리를 짧게 친 상대를 보면서 그의 이름이 자보의 두 번째 줄에 있던 것을 기억했다. 성이 나 씨인지, 남 씨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다지 친했던 사이도 아닌데 취기 때문인지 안경은 붙임성 좋은 사람처럼 윤오에게 살갑게 굴며 마늘 냄새가 나는 입으로 계속 떠들었다. 윤오는 상대가 들고 있던 빈 유리잔에 맥주를 붓고 자기도 병에 남은 맥주를 마셨다. 차가웠던 몸이 더 차가워지는 듯했으나 곧 뱃속에 온기가 돌았다. 안경은 윤오 옆에 앉더니 시킨 술이 많으므로 늦게까지 마시자고 했다. 윤오는 트림을 뱉고는 정문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천막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시 세우는 데 일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안경은 비명인지 트림인지 모를 억, 소리를 뱉더니 또 무너졌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멋쩍게 웃었다. 윤오는 피곤한 나머지 눈을 반쯤 감더니 이번이 벌써 두 번째라고 알려주었다. 빗소리가 커지면서 번개 치는 소리가 우릉우릉 들렸다. 윤오는 물 묻은 외투 소매와 옷깃을 털면서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러다 우리…… 모두 망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어요.”
    가게 한구석에 있던 티브이 음향이 높아졌다. 안경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리모컨을 든 채 음악 방송이 나오는 채널을 틀고는 버튼을 계속 눌러댔다. 주사선이 한두 줄 그어진 화면으로 바이올린 켜는 소리와 드럼 치는 소리가 나와 새로운 소음을 만들었다. 유리벽에 금연 표지판이 붙어 있었으나 다수가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연기는 무럭무럭 피어올라 천장에 있던 큼직한 갓등에 닿았다. 왼편에 있던 중년 여성들이 기침을 하더니 안주가 제법 남아 있음에도 소지품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퍼나 외투 안에 받쳐 입은 하늘색 유니폼이 어른어른 보였다. 윤오는 병 속에 남아 있는 맥주를 다 마시고 목젖이 아리게 신트림을 뱉었다. 어느 따뜻하고 조용한 데로 가서 오랫동안, 아예 영영 쉬고 싶었다. 윤오는 진동하고 있던 핸드폰 배터리를 빼더니 월급은 받았냐며 안경에게 물어보았다. 안경은 대답 대신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윤오도 쓰게 웃고 나서 다시 배터리를 끼우고 화면을 밝힌 뒤 1번 버튼을 꾹 눌렀다.
    십장의 전화번호가 떴다.

 

 

 

작가소개 / 조영한(소설가)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글틴 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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