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_시_밑]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12월_시_밑]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이소연

 

 

 

 

이것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악이다
한 떨기 꽃대로 가는 붉은 시간과 여백으로 지워지는 냉의 시간이
선연한 막(膜)을 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음악

 

얼굴 없이 죽어가는 소녀들을 생각하는 밤,
나는 천천히 죽어갈 꽃잎이 필요하다

 

품이 큰 잠옷을 입고 강가로 가서
쉽게 찢어지고 쉽게 갈라지고 쉽게
입을 다물고 있는 물속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다

 

소녀는 소녀로 살기 위해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내 가랑이 밑에서
햇빛 좋아하는 사자(使者)를 부른다

 

저 물밑 세상으로 건너가고픈 소녀의 마음이
내 몸을 입는다
강물은 빛을 집어먹으며
그늘을 지배하고 있다

 

밑바닥과 물 밖 어둠이 멀다
종탑의 종소리 그러나
어깻죽지 위에 걸쳐 입은 밤이 물빛으로 사라지고
죽기 직전의 소녀는
강물이 움켜쥔 그것이
자신의 신전(身前)임을
한눈에 다 알아본다.

 

없지도 있지도 않는 세상이, 밑에 있다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물 위에서 일렁이는 검은 얼굴이
물 밑에 있다고 쓴다, 내 밑엔 죽음 이후의 사물들이
흘러가고, 흘러가고, 하나의 그림자가 번져간다

 

 

 

 

작가소개 / 이소연(시인)

1983년 포항 출생. 2014년 한국경제 청년 신춘문예에 시 「뇌태교의 기원」으로 등단.

 

 

   《글틴 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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