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_시_옷] 여벌

 

[2월_시_옷]

 

 

여벌

 

 

김종연

 

 

 

 

섬 뒤로 돌아간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음지에 핀 꽃을 골라 따던 날들

 

그러다 매번 바치기 직전에 깨어나는 꿈

 

아무 것도 상실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외롭지 않게 불행해졌다

 

 

 

● 작가의 노트

 
    저는 지금 런던에 와 있습니다. 이곳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변하는 곳이라 두꺼운 옷 보다는 얇은 옷을 여러 겹 입는 것이 좋고 그래서 여벌옷 또한 많이 필요합니다. 이곳을 다르게 은유한다면 두꺼워서 몸을 다 덮어주고 가려줄 만한 관계보다는 자주 갈아입을 수 있는 얇은 관계들이 더 환영받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가끔씩 무언가에 홀린 듯 몰두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위험이나 불합리한 것들을 모두 감수하면서 온몸을 투신하게 되곤 하는데, 그런 것들은 대부분 꿈에서 깨어나듯 한순간에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립니다. 그런 순간에도 어떤 상실감이 들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생각보다 자주 그렇습니다. 굳이 맹목이나 종교, 이데올로기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믿고 싶은 걸 보게 됩니다. 그러나 본다는 것이 꼭 믿음을 증거하지는 못하겠지요. 우리가 자주 목격하게 되는 역설들-희망에 찬 사람이 이야기하는 절망과 절망에 찬 사람이 이야기하는 희망 등-은 항상 우리에게로 혐의를 돌리곤 합니다. 믿음에 대해, 희망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순간들이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자주 사랑하기에 외롭지는 않지만 불행해지고 마는 나날들입니다.
    이번 원고의 테마는 옷이었습니다. 백일장에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이후 오래간만에 받아보는 테마였습니다. 그때에는 그런 테마 없이는 잘 쓰지 못하겠더니 이제는 한 줄도 써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몸이 자란 건지 옷이 자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맞지 않는 옷의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전에도 지금에도 옷장에 걸린 옷들을 보면서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뭐든 입을 수 있겠지만 아무거나 입을 수는 없겠지요. 저는 앞으로도 제게 맞는 옷을 찾아나갈 계획입니다. 이 시는 청소년 분들이 읽게 될 거라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작가소개 / 김종연(시인)

1991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2011년 월간 《현대시》 등단

 

 

   《글틴 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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