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_단편소설_옷] 불량소녀 변태기

 

[소설_2월_옷]

 

 

불량소녀 변태기

 

 

 

김하율

 

 

삽화-불량소녀변태기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다시 아주 작아졌다. 키는 줄어들어 초등학생 같았고 그에 따라 발도 작고 손도 작아졌다.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처럼.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것처럼. 소녀는 아버지의 옷을 허물처럼 벗어 던졌다.
    경찰이 찾아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목격자의 제보로 소녀의 아버지는 경찰에 연행되었다. 살인미수 혐의였다. 아버지는 부인도, 분노도 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집을 나서며 경찰에게 물었다.
    “아직 안 죽었소?”
    “혼수상태로 병원에 있습니다.”
    경찰은 자신이 미처 미란다 원칙을 읊기도 전 받은 도발적인 질문에 당황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경찰에게 부축당하다시피 따라 나가며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소녀는 아버지의 눈빛이 궁금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만났다. 소녀의 예상과 달리 아버지의 눈에는 수치심, 당황, 공포, 분노가 없었다. 그저 텅 빈 공간뿐이었다.

 

*

 

    소녀는 교문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지각생들이 뛰어와 소녀를 앞질러 갔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가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각박하게스리. 어차피 늦은 거 아침부터 뭘 저렇게들 힘을 빼나, 여유롭게 걸었지만 실은 아침을 못 먹은 탓에 소녀는 힘이 없었다.
    지각생들의 뒷모습은 모두 똑같이 생긴 패딩 파카였다. 얼핏 보면 교복의 일부처럼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였다. 똑같은 디자인에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걸 보면 마치 쥐떼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패딩이 아닌 모직 코트를 입은 소녀는 유행에 편승하지 않은 자신의 감각을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쥐떼 행렬에 못 끼는 게 아니라 안 끼는 거라고. 나는 설치류가 아닌 인류, 인류 중에서도 진화한 아주 특별한 인류라고.
    “너, 일루 와봐.”
    학주였다. 웬일로 이 시간까지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학주는 지옥의 수문장처럼 뒷짐을 지고 엄숙한 표정으로 소녀를 내려다봤다. 소녀는 제 몸피보다 한 치수 큰 카키색 낡은 코트 앞섶을 여미며 그 앞으로 걸어갔다. 진화한 인류도 학주 앞에서는 고개가 절로 조아려졌다.
    “코트, 벌려봐.”
    소녀가 학주를 쏘아보듯 올려다봤다.
    “코트, 젖혀보라고.”
    학주의 손에 있는 당구 큐대 끝이 찌를 듯 코앞까지 다가왔다. 백발에 주름진 얼굴의 수학 선생은 소녀의 앞섶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수치심인지 굴욕감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며 코트를 양 옆으로 벌렸다. 한기가 스며들었다.
    “요놈 봐라, 아직도 단추 안 달았네. 너 단추 어디다 팔아먹었어, 엉?”
    당구 큐대 끝으로 정수리를 콩, 찍으며 학주가 말했다. 소녀의 교복 블라우스에는 단추가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흰색 티셔츠를 안에 받쳐 입고 그 위에 블라우스를 걸친 상태였다. 소매 단추도 없었다. 소매 단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키도 작은 게 옷은 왜 이렇게 크게 입냐, 엉?”
    다시 정수리를 콩, 찍으며 학주가 말했다. 소녀는 학주가 정수리를 찍을 때마다 땅에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지는 얼마나 커서……. 소녀는 치켜뜬 눈으로 학주의 키를 어림짐작해 보았다. 요즘 태어났으면 루저 소리를 면치 못했을 키였다. 슬슬 등과 팔꿈치, 무릎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안 돼. 소녀는 긁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한 달 후면 소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지만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았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단 1센티미터도 크지 않았다. 신체검사 결과 153센티미터, 반에서 1번이었다. 키가 크고 팔다리도 길고 얼굴은 작아 팔등신에 육박하는 요즘 아이들과 비교하자면 소녀의 발육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늘씬한 애들은 실루엣이 드러나도록 교복의 상의는 타이트하고 하의는 짧게 입었다. 그에 비해 소녀의 치마는 통이 펑퍼짐하고 길이는 무릎 아래로 내려왔다.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 작아보였다. 코트도 세 살 위의 언니 것을 물려받아 어깨가 헐렁하고 소매는 손가락까지 내려왔다. 소녀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포대자루를 씌워 놓은 듯 후줄근했다.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소녀는 무릎을 벅벅 긁었다. 손톱이 지날 때마다 시원한 쾌감이 느껴졌다. 검정색 타이즈 틈으로 하얀색 비듬 같은 비늘이 번져 나왔다. 이를 본 학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너 자꾸 복장불량이면 벌점이야.”
    내일까지 단추 달아서 검사 받으라는 엄포를 받은 후에야 소녀는 학주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래, 난 불량이다. 평범하지 않거든. 교실로 올라가며 소녀는 중얼거렸다. 소녀는 정말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을 넘어 비범해진 사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 모녀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다. 꽤 유명했지만 신문이나 뉴스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이다.
    신세를 비관한 한 가장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두 딸에게 몰래 수면제를 탄 오렌지 주스를 먹인다. 그리고 안방에 모두 누이고 연탄가스를 피운다. 자신도 눕는다. 시간이 지나 일산화탄소가 방안을 가득 채울 무렵, 숨이 막히고 구토가 나는 가장은 참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간다. 어렴풋이 아빠가 나가는 것을 보고 막내딸이 일어난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엄마를 불러보지만 엄마는 움직이지 않는다. 언니도 깨어나지 않는다. 왈칵 무서워진 막내는 기어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병원이었다. 막내가 눈을 떴을 때, 가장은 사라진 후였다. 세 모녀만 남겨졌다. 첫째 딸은 막내보다 늦게 깨어났다. 이미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이자 가장의 아내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살인미수 사건이 아니라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이다. 이 이야기가 꽤 유명했지만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아무도 제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그저 쉬쉬 묻고 지나가길 바랐다. 형식이나 원인, 결과 등을 놓고 봤을 때 이 사건은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은 불행한 이야기이다.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 시작된다. 이것은 결코 흔하다고 말할 수 없는 매우 드문 사건이다. 그날 이후 막내에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키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키가 153센티미터에서 173센티미터로 커져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20센티미터가 크다니. 그에 맞춰 손도 크고 발도 커졌다. 2014년 기준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표준 신장 사이즈가 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키와 같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 가장 말이다. 처음엔 이런 상황이 좀 당황스러웠지만 막내는 곧 적응했다. 손가락을 의지대로 움직이듯이 마음먹은 대로 신장조절이 가능해졌다. 다만 피부가 늘어나면서 온몸이 간지러웠다. 손톱을 세워 한바탕 긁고 나면 바닥에 허연 살비듬이 떨어졌다. 각도에 따라 반짝, 빛이 났다. 설탕 같기도 했고 소금 같기도 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하얀 가루를 혀끝으로 가져갔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아주 작은 비늘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교실은 조용하다. 다들 각자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앉은 친구와도 스마트 폰 메신저로 대화를 했다. 그러다 두세 명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교실 문을 열고 나간다. 메신저로 화장실이나 매점을 같이 가기로 합의가 된 것이다. 행동만으로 반 애들의 상황을 유추해야 한다. 저절로 눈치가 빨라졌다. 소녀는 스마트폰이 없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메신저를 할 수 없고 메신저를 못 하니까 교류가 없고, 무리에 끼지 못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쉬는 시간은 틈틈이 잠을 보충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교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가면 밤 열시가 넘었다. 어제처럼 옆집 남자가 개가 되는 날이면 그나마도 잠을 설치게 된다. 옆집 남자는 술만 들어갔다 하면 개가 되어 애를 개 패듯이 패기로 유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이 일대에서 유명했으나 어떤 이웃도 그 유명세에 개입하려 들지 않았다. 삼일에 한 번 꼴로 옆집에선 비명과 흐느낌이 들려왔고 옆집 아이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아이가 하루하루 새롭게 시들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소녀는 아침마다 아이가 궁금했지만 한편으론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자신이 의아했다. 왜?
    오늘 아침만 해도 아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슬아슬하긴 했어도 지각은 면했을 거였다. 잠결에 알람을 껐는지 소리를 못 들었다. 소녀는 대충 세수만 한 후 교복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급하게 열고 구겨진 운동화의 뒤축을 펴고 있을 때 옆집 문이 열렸다. 소녀가 살고 있는 3층짜리 빌라에는 한 층마다 두 집이 있으니까 총 여섯 가구가 살았다. 문을 연 것은 소녀의 옆집에 사는 아홉 살짜리 아이였다. 소녀는 무심한 눈빛으로, 하지만 재빨리 아이의 전신을 훑었다. 어제도 입었던 목 늘어난 꾀죄죄한 티셔츠. 그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쇄골. 소매 끝이 까맣게 때가 탄 주홍색 얇은 점퍼. 하얗게 버짐 핀 푸석한 얼굴. 눈 아래 짙게 깔린 다크서클. 눈빛은 여전히 어둡고 눅진한, 표정만 봐서는 아홉 살이 아니었다.
    죽진 않았군. 순식간에 스캔을 끝낸 소녀가 중얼거렸다. 간밤 난동에 가까운 남자의 주정과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오늘은 죽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밤이 되면 아이의 아버지는 개가 되고 아이도 개가 됐다.
    “누나”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우울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네 가족이 옆집으로 이사 온 지는 반년이 되어가지만 대화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소녀는 아이가 자신을 부른 것이, 게다가 ‘누나’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나?”
    아이는 아무 대답 없이 무언가를 건넸다. 소녀는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다. 아이가 건넨 것은 한 장의 그림카드였다.
    “뭐야, 이게?”
    “절대카드”
    아이의 말대로 카드에는 ‘절대카드’라고 쓰여 있다.
    “이걸 왜 날 줘?”
    “제일 쎈 거야. 끝판왕 물리칠 때 쓰는 거.”
    아이의 말대로 ‘끝판왕 108요괴 물리침’이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난 이제 필요 없어.”
    아이의 말에 소녀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왜 필요 없다는 걸까? 표정을 보니 아이에겐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도 필요 없어.”
    소녀는 짝다리를 집으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살면서 108 요괴를 만날 일이 있겠나. 게다가 끝판왕을 깬다니, 생각만 해도 피곤해졌다.
    “난…….”
    12월의 아침,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가 불었다. 뒷목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이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하얀 목이 추워 보였다. 투명한 유리 같은 표정에 아이의 감정이 비쳤다. 뭔가를 말하고 싶지만 말하는 순간 쏟아질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저울질하는 표정이었다.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소녀는 교복 치마 주머니에 아이의 절대카드를 쑤셔 넣었다. 이런 걸로 아이를 울릴 수는 없지 않나. 아이가 눈물 흘리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아이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 하필 왜 나에게. 소녀는 아이에게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빌라에서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멀어져갔다.
    소녀는 문득 의문이 일었다. 왜 저 아이는 제 아버지에게 매일 맞는지. 저 집에는 왜 엄마가 없는지. 왜 아무도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지. 그러는 가운데 보폭이 성큼성큼 커졌다. 신발이 꽉 껴서 발이 아파왔다. 다시 뒤축을 구겨 신었다. 감정조절이 안 될 때면 키가 커졌다. 감정조절과 더불어 신장조절도 안 되는 것이다. 소녀는 헐크를 떠올렸다. 봉두난발 헤어스타일에 꽉 끼는 반바지를 입고 항상 분노에 차 있는 남자. 하필이면 그 녹색 괴물이랑 같은 과라니. 소녀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허나, 부인할 수 없었다. 공통점이 또 하나 있기 때문이다. 키가 커지는 순간 소녀는 부끄럽게도 힘이 장사가 되었다. 그 순간, 어릴 적 딸만 둘이라고 푸념하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소녀는 아버지와 팔씨름을 한 판 해보고 싶었다. 이번엔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쉬는 시간, 책상 위에 엎드려 최대한 팔이 안 저리면서 숙면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기 위해 꿈지럭대다가 카드가 떠올랐다. 절대카드. 교복 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카드를 꺼냈다. 받을 때는 몰랐는데 유심히 보니 네 모퉁이가 닳아서 종이 결이 일어나 있었다. 미세한 주름들 속에서 종이의 빳빳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부드러운 가죽의 질감이 느껴졌다. 아이는 이 카드를 오랫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108요괴를 물리치는 절대카드라고 쓰여 있는 앞면엔 아리송한 캐릭터가 소녀를 보고 있었다. 뭐야, 되게 못 그렸네. 암만 봐도 이게 영웅이라는 건지, 요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캐릭터들의 특징이다. 자신의 정의가 명확하고 확실한 슈퍼맨보다 내적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배트맨이 요즘 트렌드에 맞다. 악당도 멋지구리해졌다. 단순히 못돼서 나쁜 게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과 개성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소녀는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위에 악당은 많았지만 영웅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카드의 뒷면에는 사랑 애(愛)라는 한자가 쓰여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인 천자문을 이용한 학습만화였다. 서점에서 책은 본 적이 있지만 카드까지 나온 줄은 몰랐다. 악당을 향해 주인공이 바람 풍(風)을 외치면 손에서 장풍이 나가고 전기 전(電)을 외치면 번개를 칠 수 있으며 가둘 수(囚)를 외치면 보이지 않는 프레임에 가둘 수 있다는 좀 어이없는 설정이었지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절정이었다. 그런데 끝판왕을 깨는 최종 한자가 사랑 애라니. 소녀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기독교적인 마인드를 봤나. 요괴를 사랑으로 감싸서 어떻게 깬다는 거야. 문득, 소녀는 자신의 등 뒤에서 아이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뭐였을지 궁금해졌다.
    “나, 어제 오빠랑 새벽 3시까지 메신저했어.”
    “대박. 열정이심.”
    뒷자리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오빠가 오십일 선물 기대하래.”
    “대박. 좋으시겠음.”
    “나, 선물 사주려고 주유소에서 알바하고 있대.”
    “대박. 멋있으심.”
    소녀는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대박 시끄럽네. 연애하느라 밤을 새서 피곤하다는, 오십일 기념 선물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야기는 스마트폰보다 더 먼 세상 같았다. 소녀는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정부에서 언니의 장애 보조금과 한부모 지원 보조금 등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가로채 갔다. 다시 재기하기 위해서라고, 너희를 책임지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옆집 남자처럼 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죽었어야 했을까. 소녀는 생활이 고단해질 때면 종종 그날을 생각했다. 그때 만약 죽었더라면 어땠을까.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혼수상태에서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했던 엄마. 결국 영원히 잠들고 만 엄마.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빚은 엄마의 병원비보다 적었다. 집을 팔아 빚잔치를 하고 병원비와 장례를 치르고 나니 방 한 칸짜리 월세 보증금이 남았다. 더불어 남은 것은 장애인이 된 언니와 점점 증발하는 아비, 그리고 불량이 된 소녀.
    “종 쳤다. 일어나라.”
    목소리와 더불어 소녀는 뒤통수를 콩, 찍는 통증을 느꼈다. 그래, 그때 죽었더라면 이런 아픔도 못 느꼈겠지.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수학 선생님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동네에 대형 가전제품 전시장이 생기면서 한 달 남짓, 홍보를 위해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 시간대와 보수가 좋아서 소녀는 원래 하던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옮겼다. 그런데 왜 하필 둘리 탈을 선택했을까. 제일 인기 없는 캐릭터라 분명 대여료가 저렴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둘리가 초록색 개 혹은 초록색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우르르 몰려들어 꼬리를 잡거나 개중에 키가 좀 큰 녀석들은 혓바닥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그보다 큰 중학생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기를 걸곤 기습적으로 가슴을 만지고 도망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공룡은 기껏해야 화난 척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거나 삐진 척 팔짱을 끼고 흥, 고개 돌리는 시늉을 하는 게 전부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전단지를 돌리는 도우미 옆에서 이러저러한 포즈를 취하고 가끔 사람들의 팔을 잡아당기는 호객도 한다. 캐릭터 인형이 하는 호객에 사람들은 비교적 관대하다.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이어도 인형탈 안에서는 모락모락 열기가 피어났다. 집에 갈 무렵 소녀의 얼굴은 땀범벅이 된다.
    처음 전시장을 방문해서 아르바이트 구인광고를 보고 왔다고 하자 남자 매니저는 여학생이 하기엔 힘든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소녀는 할 수 있다고 졸랐다. 마지못한 듯 매니저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뭐, 키를 보니 사이즈가 맞긴 하겠네.”
    그리곤 옆에 서서 소녀와 키를 얼추 맞춰 보았다. 이 사람도 인형탈을 쓴 적이 있었던 걸까. 소녀는 매니저와 수평으로 눈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소녀와 신장 사이즈가 비슷한 매니저는 여자치고 키가 크다는 둥 요즘 애들은 발육이 참 남다르다는 둥 말하며 소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렸다. 정확히 브래지어 훅부터 꼬리뼈까지. 매니저의 손이 닿았던 부위가 근질근질해졌다. 소녀는 팔을 등 뒤로 돌려 쓱쓱 긁어댔다. 비듬 같은 비늘이 팬티 속으로 들어가 엉덩이까지 간지러워졌다.
    아르바이트할 때는 큰 키가 유리하기 때문에 소녀는 일을 할 때 신장을 늘였다. 키만 커지는 게 아니었다. 가슴둘레와 팔, 다리, 발 등이 비율적으로 함께 커졌다. 교복은 평상시보다 한 치수 크게 입어야 키가 커졌을 때 맞았다. 운동화는 꺾어 신었다. 블라우스만은 큰 사이즈를 구할 수 없어서 걸치고만 다녔다.
    그날 이후 소녀는 학교가 끝나면 인형탈 속에서 살았다. 패스트푸드점보다 일하는 시간은 더 짧으면서 보수는 두 배가 더 좋았다. 소녀는 오래도록 둘리 안에서 지내고 싶었다. 땀범벅이 되는 게 흠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들어가자.”
    같이 일하는 도우미가 소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45분 근무 15분 휴식이 이 업계의 관행이었다. 그동안 화장실을 다녀오고 음료수도 마시며 땀을 식혔다.
    “얘는 머리통이 너무 작아. 머리통 큰 애들은 거기다 물수건도 넣고 음료수도 넣을 수 있던데.”
    소녀가 땀을 닦느라 벗어 놓은 둘리 머리통을 보며 도우미가 말했다. 음료수를 어떻게 넣는다는 거지? 어떤 캐릭터면 그게 가능할지 생각하는데 도우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요즘 애들이 둘리를 아냐? 참, 너도 고딩이지. 너는 알아?”
    같이 일한 지 보름이 넘어가며 도우미와 소녀는 제법 친해졌다. 도우미는 의외로 나이가 많은지 소녀에게 ‘내가 착실한 학생이 아니었더라면 너 만한 딸이 있다’라는 말을 곧잘 했다.
    “공룡이잖아요. 엄마를 잃어버린. 그래서 한국인한테 얹혀사는.”
    도우미가 나누어 준 샌드위치 한쪽을 받아먹으며 소녀가 말했다.
    “어라? 알고 있네?”
    “제가 원래 파충류를 좀 좋아해요.”
    자신도 뱀피나 악어가죽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좋아한다며 도우미가 소녀의 말에 깊은 동감을 표했다.
    “그런데 가만, 둘리가 파충류였니?”
    도우미는 ‘어머, 걔가 그런 줄 몰랐어.’라는 충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조류라는 설도 있긴 해요.”
    “조류? 하긴 파충류든 포유류든 알게 뭐야. 실제로 본 사람도 없는데.”
    둘리 머리통을 사이에 두고 앉아 도우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15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러 버렸다. 소녀는 파충류인지 조류인지 모를 머리통을 영장류인 자신의 머리통에 장착하며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조류가 맞을지도 모른다. 파충류라면 그렇게 쉽게 멸종되진 않았을 거다.
    보아뱀이 동면상태에서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에 대해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자신의 몸무게만하거나 혹은 더 무거운 먹이를 뱃속에 담고 어떻게 소화불량에 안 걸리는지 또, 한 겨울 동면에서 어떻게 아사를 면할 수 있는지를. 그 비밀은 파충류 위에 존재하는 온오프 전원 버튼이었다. 사용할 때만 켜고 사용을 안 할 때는 꺼둔다. 그래서 소화가 안 돼서 죽거나 위산 때문에 위에 구멍이 나서 죽는 일은 없다. 그것은 파충류가 오랜 세월을 통해 진화한 결과였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버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는 정말이지 놀라운 능력이 잠재해 있다.
    둘리는 건널목 저편에서 아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걷는 게 아니라 유령처럼 흘러 다니고 있었다. 정처 없고 목적 없이 배회하는 아홉 살 아이는 이 도시의 밤에 이질적인 존재라 눈에 쉽게 띄었다. 절대카드를 잃은 아이는 약해 보였다. 아기 공룡은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폴짝 폴짝 뛰었지만 아이의 시선은 저 너머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소녀는 머리통 안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에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이는 여전히 앞으로 앞으로 흘러갔다. 머리통의 무게 때문에 어깨에 통증이 왔다. 찡그린 소녀의 얼굴에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물이 흘렀다. 혓바닥을 메롱 내밀고 있는 아기공룡 안에서.

 

    집에 들어서니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악취가 콧구멍을 찔렀다. 이 집에는 먹고 싸고 벗어 놓는 사람들만 있다. 소녀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서도 집에 와 설거지, 빨래, 밥을 해야 한다. 언니는 하루 종일 앉아서 침 흘리는 게 일상의 전부고 아버진 자고 있거나 자는 척을 했다.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딱히 달라진 것도 없었다. 소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다녔고 해를 넘기면 학년이 올라갔다. 고지서가 날아오면 공과금을 납부했고 찬바람이 불면 두꺼운 옷을 꺼냈다.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을 자살 및 살인미수 사건으로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 소녀의 아버지는 없었던 게 되었다. 가장이 퇴근 후 문을 열었을 때, 매캐한 연기 속에 나란히 누워 있는 세 모녀를 보고 119를 불렀다고. 한동안 소녀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자신이 본 게 모두 꿈인지도 모른다고. 집으로 돌아와 쓰레기통에서 닭 뼈를 봤을 때 입안을 가득 채운 시큼하고 기름졌던 맛이 떠올랐다.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아버지의 눈빛에는 부끄러움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그 길로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수중에 남은 마지막 돈을 주식으로 다 잃고 다시 돌아왔을 때, 소녀의 아버지는 오히려 건강한 모습이었다. 소녀는 실망스러웠다. 그 후 아버지는 자신의 막내딸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매일매일 밥처럼 술을 마셨다.
    소녀는 집에 오면 자신의 내부에 있는 전원을 켰다. 이 두 식충을 돌보기 위해서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는 소녀를 못 알아봤다. 풀린 눈으로 늘 아가씨는 누구냐고 물었다. 나중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인사까지 했다. 아가씨, 또 왔네.
    처음 소녀의 비밀을 보았을 때 언니는 괴물이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소녀가 언니의 침 냄새에 익숙해졌듯 이제는 언니도 소녀의 모습에 적응해 도망을 가진 않았지만 여전히 괴물이라고 불렀다. 설거지를 끝내고 밥을 안친 후 소녀는 언니의 푹신한 배를 베고 누웠다. 시린 손을 언니의 겨드랑이 사이로 끼워 넣었다. 풀린 눈동자, 개기름에 떡진 머리, 저렇게 많은 타액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언니의 입에선 끊임없이 침이 흘렀다. 지금은 붙박이 인간 침구가 되었지만 원래 소녀의 언니는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특히, 아버지를 무서워해서 아버지 말이라면 말대꾸 한 번 없이 따랐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 밤, 소녀는 아버지가 안 보는 틈을 타 자기 앞에 놓인 주스를 언니 컵에 더 따랐다. 애플 주스라면 모를까 소녀는 신 주스를 싫어했다. 어쩔 수 없이 동생 몫의 오렌지 주스를 다 마신 언니는 그 밤, 깨어나지 못했다.
    곧 의식을 잃은 엄마와 언니, 소녀를 안방에 나란히 눕혀 놓고 아버지는 엄마 옆에 누웠다. 소녀는 가수면 상태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느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서서히 머리가 아프고 숨이 막혀올 때쯤 비로소 아버지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니와 엄마는 꼼짝하지 않았고 소녀는 점점 숨이 막히고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눈앞이 노래지던 순간,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문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느껴졌다. 소녀는 필사적으로 열린 문을 향해 기어갔다. 아버지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그날 소녀는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간절히 원했다. 살고 싶다, 정말 살고 싶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다시는 그렇게 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소망은 절박하고도 치열한 것이었다. 소녀의 그 간절한 바람이 스스로 진화를 만들어 냈다. 뼈가 자라고 살이 자라고 피가 자랐다. 누구도 함부로 나를 대할 수 없게, 다시는 나를 죽일 수 없게. 힘이 세졌다. 때론 소녀나 아이와 같이 불행한 자들에겐 진화가 더 빠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제 소녀는 옆집 아이가 자신에게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옆집이 오늘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을 느꼈다. 손에서 땀이 배어났다. 손에 쥔 절대카드가 축축해 졌다. 연약한 날짐승의 가죽을 쥔 느낌이었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현관과 싱크대 사이, 거실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공간에 옹송그리며 누워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예전에 비해 체구가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알코올이 피와 살을 조금씩 휘발시키고 있었다. 작아진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소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돌보지 않으면, 내가 없으면 죽을 게 뻔한 미물들.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단지, 보다 크다는 이유만으로.
    소녀는 잠든 아버지 옆에서 옷을 훌훌 벗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아버지의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었다. 아버지가 작아지기 전의 옷들이어서 얼추 맞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운동화를 신고 아버지의 장갑을 꼈다. 등산을 갈 때 쓰는 것들이다. 소녀의 아버진 노동은 하지 않았지만 운동에 게으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담배를 오래 피기 위해 마라톤을 한다는 사람의 논리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스스로를 오래도록 파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관리한다는. 아버진 낮에는 야트막한 뒷산에 올랐고 밤엔 술을 마셨다. 소녀는 아버지가 산을 오를 때마다 발을 헛디뎌 낙상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비 온 후 미끌미끌한 낙엽이 아버지의 운동화 바닥에 붙는다. 하필 맨 꼭대기 돌계단에서 낙엽은 초록색 이끼를 만난다. 이쯤에서 밑창이 닳은 운동화 바닥과 낙엽과 이끼가 조우해 뜻밖의 성과를 만들어낸다.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는 아버지. 떨어지며 한 바퀴를 구른 후 바위에 머리를 헤딩하는 아버지. 와작, 하고 상큼한 소리를 내며 목뼈가 부러지는 아버지. 상상이 끝날 즈음 아버지는 무사히 귀가한다. 한 손에 소주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서.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신중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쉬운 방법으로는 벌을 받을 리 없다. 소녀는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빌라는 복도형으로 외부에 서면 각 호수별 현관문이 보였다. 소녀의 집 건너편에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이 있다. 그곳의 3층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쌍둥이를 둔 부부가 산다. 아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부부와 외출하는 것을 가끔 본 일이 있다. 쌍둥이는 이란성 남자, 여자아이였다. 요즘 쌍둥이 돌풍을 일으키는 연예인들처럼 저들 부부도 인공수정을 했을지 소녀는 궁금했다. 다들 저렇게 부모가 되고 싶은 걸까.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옆집 아이의 아버지도 한때는 아이를 원했던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쌍둥이 아빠는 골초였다. 수시로 창문을 열어 놓고 담배를 폈다. 여름에 더워서 문이라도 열어 놓을라치면 그가 피우는 담배 냄새가 바람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문을 열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쌍둥이 아빠와 종종 눈이 마주쳤다. 주로 흰색 러닝셔츠를 입은 모습이었다. 아버진 자신에게는 관대했지만 타인에게는 인색한 사람이었다. 담배 연기에 대한 항의로 아버지와 쌍둥이 아빠간의 다툼이 있었고 그 이후로는 눈이 마주치면 서로 문을 걸어 닫았다.
    부엌의 쪽창문 틈으로 맞은편 3층 창문을 살폈다. 아직 불이 켜져 있다. 소녀는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창밖을 주시했다. 곧이어 창문이 열리고 입에 담배를 문 쌍둥이 아빠가 나타났다.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 바람을 막은 채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소녀는 속으로 열을 센 후 현관문을 열었다. 모자챙을 눈썹 바로 위까지 깊이 눌러 썼다. 옆집 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상한 공기가 바닥에 깔렸다. 현관문 손잡이를 당기니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마치 누군가 열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옆집 남자는 굴러다니는 술병들 속에서 이미 골아 떨어졌다. 냄새의 성격만 다를 뿐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는 아이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소주 냄새를 베이스로 신 김치 냄새와 습한 벽지에서 나는 텁텁한 곰팡내가 섞여 알코올 중독자의 뱃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열려 있는 방에는 아이와 아이의 동생이 오래된 빨랫감처럼 구석에 처박힌 채 잠들어 있었다. 운동화를 신고 들어갔어도 불을 때지 않은 골방의 한기가 발바닥에 느껴졌다. 아이의 짧고 낡은 내복 아래로 가느다란 팔목과 발목이 드러났다. 동생은 형의 팔에 매달려 있다시피 했다. 6살 아이가 이 지옥에서 필사적으로 의지할 것이라곤 저 야윈 9살의 팔뿐이라는 듯이. 세상은 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날, 누군가 한 번쯤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소녀는 생각했다. 번개탄과 테이프를 사서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내를 한 번쯤 의심했더라면, 퇴직 후 재취업에 실패하고 있는 가장의 조바심을, 아내의 두려움을, 아이들의 천진함을 세상이 알았더라도 상황은 같았을까.
    그날 소녀의 아버지는 닭을 사왔다. 길거리 트럭에서 파는 만 원에 세 마리. 보기 드물게 저렴한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저렴한 이유로 닭들은 먹을 게 별로 없었다. 아주 어린 영계인 듯 아버지의 주먹만 했다. 그래도 엄마와 언니, 소녀는 집요하게 살을 발라내고 씹었다.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닭을 먹어치웠다. 소녀의 아버지는 세 마리 닭을 뜯고 있는 세 모녀를 보고만 있었다. 소녀는 종종 그날의 닭을 생각한다. 먹잘 것도 없이 바싹 마른. 엄마는 전기구이 통닭이 이번 생의 마지막 식사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날, 일산화탄소에 취해 소녀는 바닥을 기며 닭을 모두 게워냈다. 위산에 섞여 시큼하고 기름진 붉은색 토사물이 식도를 타고 역류했다. 그날 이후 소녀는 닭을 먹지 않는다.
    어둠 속 아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났다. 소녀는 바지 주머니에서 절대카드를 꺼내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 놓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죽지 마.”
    아이들이 있는 방 문을 닫고 소녀는 남자 앞에 섰다. 남자는 사지를 함부로 부려놓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다. 소녀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숨 쉴 때마다 썩은 내가 났다. 이 집에 스며 있는 악취의 근원이었다. 악취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기라도 하는 듯 온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목덜미와 옆구리, 허벅지, 팔꿈치 할 것 없이 근질근질했다. 소녀는 손톱을 세워 긁어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남자가 몸을 뒤척거렸다. 오늘 아침만 해도 끝판왕 따위 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베개를 집어 들었다.

 

*

 

    “몇 살이니?”
    아버지가 가고 난 후 경찰이 물었다.
    “이제 곧 열여덟이 돼요.”
    “어이쿠, 네 또래에 비해 한참 작구나. 너, 밥 좀 많이 먹어야겠다.”
    경찰은 놀란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벌을 받게 되나요?”
    소녀의 질문에 경찰은 흠,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죄가 있다면 벌을 받겠지.”
    경찰은 뭔가 더 말을 하려고 머뭇거리다가 단념한 듯 문단속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소녀는 벽에 기대 앉아 있는 언니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이제 언니는 인간 쿠션이 되었다.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이부자리처럼 퀴퀴하고 고리타분한 냄새를 풍겼으나 오래되어 익숙한, 몸에 착 감기는 맛이 있었다. 언니는 소녀의 머리를 긁어준다. 뭉뚝한 손톱이 두피에 길을 내며 지나갔다. 시원해. 소녀는 언니의 배 쪽으로 머리를 좀 더 밀착시킨다.
    “개애물”
    언니가 침을 흘리며 말했다.
    “괴물은 아버지야.”
    언니가 흘린 침이 언니의 푹 퍼진 가슴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소녀가 말했다.
    “개애물”
    “괴물은 옆집 남자야.”
    언니의 가슴팍에서 쉰내가 났다. 침이 말라붙어 나는 냄새였다. 쉰내를 폐 깊숙이 들이 마시며 소녀는 눈을 감았다. 경찰의 말은 틀렸다. 벌이 있어야 죄도 있다.
    소리가 들렸다. 스스스… 스스스… 뱀이 배를 끌며 지나가는 소리. 비늘이 바닥을 스치는 서늘하고 축축한 소리. 파충류의 최강자, 아마존의 끝판왕인 보아뱀이 암흑 속에서 두 눈을 빛냈다. 배가 고픈 보아뱀은 혼자 있는 아기코끼리를 본다. 눈이 먼 녀석은 무리에서 도태되어 길을 잃었다. 파충류의 최강자, 아마존의 끝판왕인 보아뱀은 놈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공들여 천천히 뱃속으로 집어넣는다. 아기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실루엣은 어린왕자가 그린 것과 같은 모자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보아뱀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면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기코끼리가 위산에 의해 천천히 삭아 사라질 때쯤 보아뱀은 문득 생각한다. 내 안에 뭐가 있었지? 생각에 잠긴 보아뱀은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든다.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보아뱀에게 지난 계절은 이미 위산에 녹아버렸다. 스스스… 보아뱀이 지나간 자리마다 비듬 같은 비늘이 떨어진다.
    소녀는 잠결에 소매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작가소개 / 김하율(소설가)

1979년 서울 태생. 단국대 문예창작과 박사 수료.
2013년 《 실천문학 》 신인상에「바통」이 당선되어 등단.

 

 

 

   《글틴 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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