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이 또한 여행

 

[여행에세이]

 

 

이 또한 여행

– 2005년 가을, 파리

 

 

양재화

 

 

    10년 전,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그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빙자한 신선놀음)를 했다. 런던이 처음 밟은 외국 땅이지만, 실상이야 어떻든 보통 드럼통만한 이민가방을 끌고 (학생비자 입국심사를 위해)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떠나는 걸 ‘여행’이라고 부르진 않으니까, 내 기억 속 ‘첫 해외여행’은 같은 해 가을에 갔던 프랑스 파리라고 할 수 있다.
    난생처음 홀로 떠난 여행이 한가을의 파리라니 꽤 근사하지 않은가, 라고 나는 정말 쓰고 싶었다. 애초에 ‘우아함’과 ‘여유’를 모토로 한 파리 여행이었다. 계획은 이랬다. 하루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유명 건축물은 한두 곳만 다니고, 천천히 센 강변이나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고, 유서 깊은 카페에 가서 카페오레를 마시거나 멋진 물건을 파는 가게들을 구경하자. 하루는 교외로 나가고. 그러나 도착한 첫날부터 지하철표 하나 사는 데 뭐에 홀린 듯 창구와 무인판매기를 오가며 한 시간 가량을 허비하고, 진땀을 빼며 도착한 호스텔에서 징그럽게 불성실하고 불친절한 직원을 만나는 순간 내 이상과 함께 이성도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날부터 나는 정신없는 ‘명소 구경(sight-seeing)’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내가 여길 언제 또 올지 몰라, 볼 수 있는 건 다 보고 가야지!’
살면서 뭐 하나 끈덕지게 해본 적이 없는데, 여행지에선 항상 이상한 순간에 이상한 오기를 부려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런던에 오기 전까지 알 기회가 없었던 내 여행 스타일은 ‘무조건 많이’였다. 먼저 가이드북에서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가려내 가까운 위치에 따라 리스트로 정리한 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시간을 산산이 쪼개어 하루에 되는대로 많은 일정을 욱여넣었다. 그러고는 게임에서 미션을 클리어하듯 한 곳 한 곳을 ‘정복’한 뒤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리스트를 한 줄 한 줄 지워나가는 것이다. 오랫동안 굶주린 개처럼 시종 킁킁거리며 거리를 헤맸다. 대학 시절 친구가 어느 날 장우산을 검처럼 옆구리에 끼고 걷는 내 모습을 보고 ‘양장군’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만큼 전투적인 걸음으로 파리를 쏘다녔다. 의지와 욕구가 끓어 넘치던 시절이었다.
    입장 시작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일주일을 봐도 모자란다는 루브르 박물관을 오전 나절에 휙 둘러보고, 튈르리 정원과 오벨리스크가 있는 콩코르드 광장을 스치듯 지났다. 튈르리 정원에서 그 유명한 분수대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선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책을 읽는 파리 시민들을 보고는 ‘음, 역시 파리야, 이 여유!’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은 뒤 30초 만에 발길을 돌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 코미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그렇게 벤치에 한 번 앉지도 않고 부지런히 걸어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센 강을 슥 내려다보고 앵발리드를 흘깃한 뒤, 점심도 거른 채 내처 로댕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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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르리 정원과 콩코르드 광장

 

    18세기 저택을 개조한 우아한 박물관 내부와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이 근사한 배경을 이루는 정원을 거닐며 곳곳에 놓인 로댕의 조각들을 눈에 담는 순간은 상상보다 더 황홀했다. 훗날 깨닫게 되는, 여행 중에 이따금 선물처럼 찾아오는 ‘완전한 순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온전히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몰입하는 충만한 순간이라고 할 만했다. 그 느낌을 좀 더 오래 붙들고 곱씹었다면, 그것이 여행이 줄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이자 어쩌면 유일한 효용이라는 사실을 더 일찍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나는 ‘고작’ 스물세 살이었고, 혼자 처음 여행을 떠나와 들떠 있었고, 그곳은 마침 파리였다. 볼거리가, 자극이 너무 많은 국제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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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박물관

 

    그리하여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리스트에는 아직 많은 일정이 남아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에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 샹젤리제 거리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기’라는 항목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이를 악물고 나선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엉거주춤 기다시피 하며 전망대에 올랐을 때, 기대했던 탄성 대신 욕이 튀어나왔다. 노을은커녕 하루 종일 하늘을 온통 뒤덮으며 시야는 물론 가슴까지 답답하게 하던 희뿌연 연무가 더욱 짙어져 있었다. 멋없이 일자로 쭉 뻗고 쓸데없이 넓기만 한 샹젤리제 대로는 여느 번화가와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 못생기고 시끄러운 길이, 고금을 막론하고 숱한 이들이 보석 같다 칭송해 마지않던 그 샹젤리제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이미 전날 밤에 에펠 탑의 요란한 전구 장식과 나이트클럽 같은 레이저빔 쇼에 크게 충격을 받은 터였다.
    에펠 탑과 샹젤리제에서 입은 정신적 외상 때문인지, 날이 완전히 저물고 배불리 저녁을 먹은 뒤에 나는 마치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다음 장소로 향했다. 목요일 야간 개방을 이용해 내친김에 오르세 미술관까지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밤중에 오르세를 찾아가는 내 모습은, 흡사 조지 로메로의 공포영화 『시체들의 새벽』에서 인간들이 사는 쇼핑센터를 향해 발을 끌며 걸어가는 ‘좀비 1’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을 나와,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 한 장과 무딘 방향 감각에 의지해 길을 잃고 찾기를 반복하면서 숙소에 도착해 보니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런 식의 일정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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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 탑과 샹젤리제 대로

 

    이 여정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나의 몸이었다. 젊고 건강한 몸은 목소리가 크지 않은 법이다. 나는 내게 두 다리와 두 발과 허리가 있다는 걸, 그네들이 비명을 지르기 전까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과 동선만을 염두에 둔 일정은 밤이면 절뚝이며 걸음을 옮겨야 할 만큼 무리였던 것이다. 그나마 혼자 다녔으니망정이지, 일행이 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정이다. 길에서 대판 싸우거나 상대가 절레절레 손을 흔들며 나를 남겨놓고 숙소로 돌아가버렸을 테지. 4박 5일이 아니라 한 달 여정의 배낭여행이었다면 중간쯤 어딘가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돈과 시간을 들인 만큼 얻어 가겠다는 욕심이 컸던 것 같다. 여기저기 다니며 최대한 많이 보는 게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게걸스럽게 배를 채우듯 무언가를 좇으려 하면 할수록 파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나는 점점 더 조바심이 났다.

 

    다시 파리를 간다면 10년 전과는 다를 것이다. 루브르와 오르세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공들여 감상하고, 마레 지구를 천천히 걷고, 이번에야말로 튈르리 정원의 그 유명한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나는 크게 다르지 않게 여행했을 것이다. 꼬인 동선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바꿀 순 있겠지만 말이다. 그 나이 대에 맞는 여행이 있다는 뭉툭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한 시간 전에 다른 사람이었고, 하루 전에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1년 전, 2년 전, 3년 전……에는 말할 것도 없다. 순간의 몸과 마음의 상태, 물질적 환경과 쌓아온 경험 및 지식에 따라 나는 그때그때 다른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며, 그 다른 사람이 하는 여행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2005년 가을의 파리 여행이 남긴 것들이 있기에 2015년의 여행이 존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가서 같은 대상을 보고, 같은 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먹어도 여행자들은 어디까지나 개별자이며, 각각의 여행은 모두 다 다르고 모두 다 제 몫의 의미가 있다. 그러니 10년이 지난 지금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여행이었다고.

 

 

 

양재화
 

– 대학에서 언론정보학 등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편집자로 1년 중 10개월은 돈을 벌고 2개월은 여행하며 살고 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에 ‘여행의 뒷모습’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blog.naver.com/moodforlife

 

 

   《글틴 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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