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_신작시_입] 완벽한 입

 

[3월_신작시_입]

 

 

완벽한 입

 

 

오성인

 

 

 

 

    세상에서 가장 빈틈없는 표정을 위해 종속(從屬)을 강요받은 입은 길들여지지 않는 말들을 가차 없이 내다버린다 버려진 말들도 그런 입을 버린다 입안에 쌓인 버려진 입들을 먹고 자라난 기름기 번지르르한 말들이 입의 구령에 맞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퍼즐을 맞추듯 표정의 빈 공간을 메운다 한 치의 균열도 용납 않기 위해,

 

    놀려져야 하는 혀는 악역을 감수해야만 한다 자칫 봇물처럼 터져버릴 말들을 옭아맸다가 풀어 주기를 능구렁이처럼 능숙하게 하는, 그의 이면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십 년 만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 함께 술을 나눠 마셨던 벗의 곰삭은 울음이 뼈만 남은 채 발견되었고 오랜 시간 끝에 백수에서 벗어났다는 또 다른 벗은 벌거벗은 채 아직 식지 않은 웃음을 꽉 끌어안고 호쾌했던 모습 그대로 죽어 있었다 괜찮아, 라는 말과 아무 일 없는 듯한 표정을 유일한 유품으로 남긴 그들은 정말로 괜찮았던 것일까, 두 벗이 남긴 유품 앞에서 한동안 괜찮은 척 서 있는 나에게 당신은 괜찮은 건가요?, 라고 한 여자가 물었다 잔뜩 무거운 혀가 무서웠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 거기 있는 당신에게 용기를 내 편지를 쓸 것이다 세상의 모든 표정들이 잠든 시간에 몰래 끓어오르고 있음에도 뜨겁다고 감히 어느 누구에게 발설하지 못했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피로,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고 죽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미처 말하지 못했다고 피 묻은 입술로 고백할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입과 그 입이 변호하는 표정의 참혹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함구(緘口)하며 함구(含垢)하고 있는 나는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입으로부터 버려진 말들의 행방은 어떻게 됐을까

 

    부정한 표정의 변호를 위해 희생된 입들의 장례식, 마음껏 곡하지 못하고 숨만 죽이다 끝내 시든 잎사귀 같은 몸을 수습해 돌아서던 혀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당신들이 불신의 시간을 쟁이고 있었을까 * 당신들은 정말로 괜찮은가 입은 부패한 표정들의 무덤 가장 완벽한 표정은 가장 불온하고 불안하며 불완전하다 망설임 없이 표정의 균열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공허한 공기의 입자들 틈에서 하나 둘 귀환하는 버려졌던 말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입을 위해,

 

    악역을 끝낸 혀가 가볍다, 그러나 무겁고 무섭다
    우리는 여전히

 

   * 기형도의 시 「입 속의 검은 잎」 중,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라는 구절을 인용해 변형함.

 

 

● 시작 노트

 
    청탁을 받고 입에 대해 오래 골몰했습니다. 외부로 전해지지 않은 말들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비밀로 쌓여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숨긴 표정의 이면에는 어느 만큼의 불(不)들이 새겨져 있을지를. 생각은 엉킬 대로 엉켜 풀어질 줄을 몰랐고 묵은 시간들은 비밀이 되어 대책 없는 폭설처럼 제 안에 쌓였습니다.
    입은 그 자체가 완벽한 하나의 물질입니다. 모양이나 상태가 어떻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완벽한’, 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뱀을 그린 뒤 거기에 발을 덧붙여 그리는 일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무리수를 둔 것은, 생명이라면 누구나 지닌 공통 화두인 ‘불완전함’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막상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만 우리는 실은,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자신의 불완전한 면이 탄로 날까 봐 항상 불안함을 감추고 애써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말들을 내보내지요. ‘괜찮다’, 라는 말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한 흔한 용어일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입은 온전히 내 입일까요. 안정적인 듯해 보이는 불안한 표정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비밀은 완벽할까요.
    한 마디 말이 새로운 세계와 인물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좌우하며 생사(生死)를 가릅니다. 입을 열고 닫아야 할 때를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겠습니다만, 먼저 불완전한 자신에게 솔직해야 할 것입니다. 내면의 불안을 스스럼없이 말할 때, 입은 비로소 완벽하겠지요.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우리는 자꾸만 쓰고 읽으며 불안과 불온을 논합니다. 그러나 민망하게도 저는 불완전한 제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합니다.
    웅크렸던 말들이 몸을 펴네요. 부끄럽지만 저는 계속 써야겠습니다. 불완전한 자신을 믿으세요. 새 계절이 오는 남쪽 길목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졸필 드립니다.

 

 

작가소개 / 오성인(시인)

1987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벌교, 순천, 정읍, 인천, 의정부, 창원, 광주 등지로 옮겨 다니며 자랐다. 2013년 계간 《시인수첩》에 시 「못다 끓인 라면」외 4편이 뽑혀 등단했다.

 

 

   《글틴 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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