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_단편소설_입] 햄버거가 되기 위하여

 

[소설_3월_입]

 

 

햄버거가 되기 위하여

 

 

 

박은성

 

 

 

 

    아이엠에프가 터진 해에 나는 스무 살이면서 열여덟 살이었다. 주민등록상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고 실제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담배도 술도 살 수 없었지만, 천진난만한 나이답게 노량진에 있었다.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가 눈앞에 닥친 그 시점, 가장들은 실직하고 가정이 붕괴하여 집과 직장을 잃고 노숙자로 나앉은 사람들의 사연이 연일 보도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셨으며, 집도 없었고, 내 밥은 내가 벌어서 먹어야 했기에 그리 타격을 입지 않았다. 나한테 용돈을 주는 사람이 없는 건, 아이엠에프가 터지기 전이나 터진 후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일 설레며 노량진으로 향했다. 노량진은 나한테 거대한 햄버거였다. 사람들은 두 개의 빵 사이에 끼워진 패티(patty)였다. 하늘이라는 빵과 땅이라는 빵 사이에서 사람들은 쏟아져 나와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지하철에서, 학원에서. 나는 매일 저녁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고기버거 세트를 먹었다. 자그마치 세트였다. 뭉크러진 양상추와 달짝지근한 소스가 혀를 감싸고 돌 때의 황홀함, 마요네즈의 느끼한 맛은 콜라가 거두어 갔다. 케첩에 찍어 먹는 짭짤한 감자튀김의 조화.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은 재수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줄을 서서 먹는 포장마차의 김밥, 떡볶이, 순대, 어묵도 아니었고, 편의점의 삼각 김밥과 컵라면은 더더욱 아니었다. 학생들이 한 달 치 식권을 끊어서 먹는, 수백 가지 메뉴지만 조미료 덩어리로 맛이 비슷비슷한 식당밥도 아니었다. 분식집의 떡을 넣거나 만두를 넣거나 계란을 넣어도 같은 맛이 나는 라면도 아니었다. 나는 한 달간 먹은 노량진 골목식당의 속 쓰린 밥들을 떠올렸다. 밥이지만 밥이 아닌 것들, 오로지 위장을 채우기 위한 덩어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쓴물이 넘어왔다.
    어스름이 몰려오는 노량진 하늘과 분주한 사람들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나는 한없이 우아해졌다. 뉴욕시 맨해튼 34번가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앉아 뉴요커들을 내려다보며 식사하는 기분이랄까. 하루의 노동에 찌든 그들과는 다른 세계에 앉아 호기심으로 그들의 하루를 내려다보듯. 햄버거는 진정한 도시의 맛이었다.
    “오늘 저녁에 끝나고는 못 데려다줘.”
    옆에 앉은 민준이 나를 현실 세계로 끌고 왔다. 서울시 노량진의 패스트푸드점 2층으로. 민준은 입안 가득 고인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감자튀김을 바라보는 민준의 눈에 숨길 수 없는 허기가 묻어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알아. 오늘 회식 있다고?”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술 마실 거야. 넌 언제 커서 어른 될래?”
    민준은 우쭐해져 말했다. 나는 주민등록증상 열여덟 살인 내 나이가 부담스러웠다. 엄마는 어쩌자고 나를 두 살이나 늦게 호적에 올렸을까. 그래 놓고 제 나이에 학교를 보냈다. 학교만 보냈나? 서울에 상경시켰다. 시골에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취업을 나왔다. 언니가 알아봐 준 공장에 경리로 취직했지만, 은행업무도 볼 수 없는 나이라 늘 눈치를 봐야 했다. 올봄에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나는 2년을 기다려야 어른이 되는 것이다. 밥만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나이까지 따로 챙겨 먹어야 한다니.
    “고기 먹겠네. 좋겠다.”
    남은 감자튀김을 손으로 쓸어 입에 넣는 나를 민준이 웃으며 바라봤다. 우아함이고 뭐고 고기를 생각하니 배가 반만 찬 것 같았다. 아침, 점심을 거른 빈속을 채우기에 햄버거 한 개는 적지 싶었다. 그나마도 민준이 사주는 것이라 세트로 먹을 수 있었다. 기지바지와 블랙 셔츠를 입은 민준의 차림은 도시적이라기보다 변두리의 빈티가 묻어났다. 나는 시계를 보고 일어섰다. 7시부터 재수학원 단과 수업 시작이었다.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알았냐?
    자를 세워 손등을 때리던 종일반 물리강사의 말이 떠올라, 서둘러 문제집을 챙겨 일어섰다. 달랑 한 달 다닌 종일반에서 배운 거라고는 4시간 자면 붙고, 밖에 없었다. 영어 시간에는 모르는 단어뿐이라 까막눈으로 앉아 있었고, 수학 시간에는 미분과 적분과 공식 때문에 울고 싶었다. 수리영역 2의 다른 과목들은 한글로 된 것에 위안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언어영역 시간에 숨을 쉴 수 있었다. 문제집 속 서정주의 시에 감동을 받았다면 재수생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걸까.
    첫 번째 모의고사를 본 후 재빨리 종일반을 나왔다. 세상이 내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닫고, 상상했던 것보다 내 머리가 한참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학을 하향 조정했다. 아니, 대학에 들어가는 게 꿈이 되어버렸다. 경리하면서 모아 놓은 돈은 한 달의 종일반 수업료와 한 달 동안 잠자는 용도로만 사용한 개인 독서실 요금과 예의 조미료 덩어리의 식대, 과목별 문제집 값(문제집만 한 박스였다, 이걸 다 보면 내가 서울대도 가겠다 싶게 많았다) 등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언니는 내가 경리를 그만두고 재수학원에 등록했을 때 자신의 집에서 쫓아냈다. 언니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남은 돈으로 방 한 칸을 빌려주는 곳에 세를 얻었다. 그러자 통장에 딱 한 달 치 생활비만 남았다.
    대학 가서 성공해야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펄펄 솟구쳤다.
    나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 단과반을 다니면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노량진 개인 독서실에서 짐을 챙겨 나올 때, 종일반에 다니면서 재수, 삼수하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대학에 가서 뭐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학생처럼, 혹은 저 학생처럼 평범해지고 싶었다. 대학 가는 게 꿈이 아니라, 종일반 재수생이 되는 게 꿈이라니. 정말, 이렇게 소박해져도 나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트레이닝 차림에 삼색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재수생들을 지나치고, 떡볶이에 튀김과 순대까지 비벼 파는 포장마차를 지나 학원에 발을 들였다. 대부분 직장에 출근했다가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로, 전문대학에라도 들어가는 게 소원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하루에 세 과목 수업으로 5일 동안 과목이 바뀌면서 수업이 이루어졌다.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배고픈 그들의 입에서 구취가 풍겼고, 헐레벌떡 뛰어온 발에서 고린내가 났다. 학구열에 불탄 중년 남자와 단순 사무직에 염증이 난 삼십대의 여자, 종일반 수업을 받고도 부족해서 단과 수업반까지 와서 앉아 있는 삼수생,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상고 학생, 야간 대학을 준비하는 은행원, 오로지 대학 가는 게 꿈인 나까지, 다양한 사연만큼 골고루 흘린 땀 냄새가 섞여 백 명 넘게 앉아 있는 강의실을 채웠다. 그들은 눈이 충혈 된 채 노트필기를 했다. 강사는 칠판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대로 정리된 표를 만들었다. 부족이 만들어졌다가 국가가 세워지고, 망하고, 누군가는 난을 일으키고, 어떤 왕은 죽고, 전쟁이 일어나고, 그 시기에 서양에서 일어난 사건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 중국에서 통일됐다가 망하고 세워진 나라까지. 강사는 기특하게 한 표에 몰아넣고 다 외우라고 했다. 그리고 문제집을 풀자고. 문제를 풀면서 이야기하자고.
    콜라를 너무 마셨나?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길을 걸었다. 광장을 지나는데 한 남자가 쫓아왔다.
    “도를 아십니까?”
    “몰라요.”
    “아가씨, 아가씨, 가방 열렸네요.”
    가방? 나는 친절한 도, 아저씨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봤다. 검게 그을리고 볼이 움푹 들어가 메말라 있었다. 이렇게 지치고 배고파 보이는 얼굴로 도를 전해도 될까. 나는 등에 멘 가방을 끌어내렸다. 가방은 복주머니처럼 입구를 동여매는 것이었다. 문제집과 필통은 있었고 지갑이 없었다. 내일 하루 밥 사 먹을 돈이 들어 있었는데. 공연히 도, 아저씨를 노려봤다.
    “전생에 공주셨네요. 아주 귀한 상인데, 집안에 억울하게 죽은 조상이 있어서…….”
    “내 지갑, 내 지갑이 없어졌어. 아저씨가 가져갔어요?”
    도, 아저씨는 고개를 휘젓고 황급히 뒤돌아서 걸었다. 지갑 안에는 올봄에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이 있었고, 그것보다 아까운 내일 밥값이 들어 있었다. 억울하게 죽은 조상? 내가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은데 조상까지 챙겨야 돼?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어디다 흘렸을까. 누가 가져갔나. 고작, 내 지갑을. 세상에 가져갈 게 없어서. 불고기버거 세트는 언제 먹긴 먹었나 싶게 배가 고팠다. 하늘이 한 뼘 내려앉았고 길이 확,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고여 있는 길가 벤치에 주저앉았다.
    내일은 동그랑땡이랑 도시락 싸올게.
    민준이 집에 가면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 민준이가 있었다. 운이 좋으면 변호사가 내일 월급을 줄지도 모른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파트 문에 열쇠를 꽂았다. 주인할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불면증 때문에 죽겠네. 늙으면 잠도 없어진다니까. 아, 아가씨 화장실 좀 깨끗이 써. 씻고 나면 타월에 비누 묻혀서 한 번 더 닦아내라고. 수챗구멍에 엉킨 머리카락 치우고.”
    주인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끄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잔소리하려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허기지고 허탈해서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지려고 했다. 이 아파트에는 방이 세 개 있는데, 주인할머니가 방 하나를 사용하고 나머지 두 개의 방은 월세를 놓았다. 내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뭘 하는지 모르는 할아버지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살았다. 부엌과 냉장고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집에서는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없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이유는 보증금이 오십만 원이어서였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아침이었다. 1시까지는 분명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4시간 자면 붙고, 물리강사의 말이 빈속을 찌르르하니 훑고 갔다. 점심은 민준이가 싸온 도시락을 먹고, 저녁에는 또 불고기버거 세트를 사주겠지. 불고기버거의 달짝지근한 소스를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민준이가 있지. 민준이가 있었어. 나는 민준이를 처음 봤을 때처럼 있는 힘껏 웃었다.

 

    비서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민준과 김 실장만 텅 빈 층에 있었다. 긴 복도를 따라 사무실이 다섯 개나 있었는데, 낡은 사무집기들만 있었다. 책과 종이들이 뒹구는 곳에 먼지가 자욱하게 쌓여 있었다. 민준과 김 실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통화 후 면접을 보러 온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주춤주춤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다가갔다. 민준이 나를 보고 웃자, 나는 있는 힘껏 환하게 웃었다. 그게 민준과의 첫 대면이었다.
    후에 김 실장은 나를 불러서 말했다. 대학 나온 지원자도 많았는데 너를 뽑은 이유는 민준이 그렇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해서라고. 그러니 민준에게 잘하라고. 대학도 안 나왔을뿐더러 열여덟 살밖에 안 먹은 시골뜨기인 나를. 민준은 왜? 그리고 뭘 잘하라는 거야?
    복도 끝에 문패를 건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곳에 늙은 변호사가 있었다. 민준과 김 실장은 나를 뽑아서 그 변호사 앞에 앉혀 놓고, 자신들은 아래층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서 뭔가 복잡한 일을 한다고 했다. 칠십이 넘은 변호사는 종일 책상에 앉아 신문 보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찬호 박. 찬호 박.
    자신의 종씨라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기사만 줄곧 읽어댔다. 나는 낡은 타자기로 가끔 문서를 타이핑하고, 종일 책상에 앉아 있었다. 변호사에게 커피를 타주고, 오지도 않는 전화를 기다리고. 아무 일 없이 그저 변호사와 앉아 있는 것이 내 일이었다. 나는 독서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문제집을 펼쳐 놓고 잠을 잤다. 밤에 하지 못한 공부를 종일 하려고 했지만, 끝없이 졸렸다. 꾸벅꾸벅 졸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었다. 또 저녁 다섯 시가 되면 학원으로 달려갔다. 월급은 육십만 원이었다. 이십만 원은 월세, 이십만 원은 단과반 학원비, 십만 원은 교통비, 십만 원은 식비였다. 십만 원으로 한 달을 먹으려면, 하루에 삼천 원을 써야 했다. 한 끼에 천 원. 뭐, 아침은 거의 먹지 않으니까, 점심에 김밥 한 줄, 저녁에 라면을 먹으면, 하고 계산했다. 오라는 곳도 없으니 수능 볼 때까지, 학원 다니는 동안 몇 달만 참자. 잘 굶기만 하면 이런 일이 세상에 있을까. 믿기지 않았다.

 

    “나, 지갑을 잃어버렸어. 흘렸는지 지하철에서 누가 가져갔는지 잘 모르겠어.”
    동그랑땡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나는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밥을 떠먹는 나를 보던 민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민준은 공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아래층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고에서 뭘 배우면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본 적은 없었다.
    “돈은 얼마나 들어 있었어? 어디쯤이야?”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느라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민준은 초조해 보였는데, 내가 도시락을 먹거나 햄버거를 먹을 때, 줄곧 초조한 표정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은 별로 없었어. 가방이 저 모양이라 누가 빼갔나 봐.”
    민준은 잠시 내 가방을 보더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비어 있는 먼지투성이 사무실 중 한 방에 있었다. 민준은 도시락을 싸오면 나한테 먹였다. 자신은 오후 간식을 먹으면 된다는 둥, 아침을 많이 먹어서 생각이 없다는 둥, 핑계를 댔다. 나는 무조건 믿었다. 배가 고파서였다. 눈을 뜨면 배가 고팠고 눈을 감아도 고팠고 뒤돌아서도 앞으로 걸어도 배가 고팠다. 펄펄 끓는 내 열정을 갉아먹는 유일한 괴물은 허기였다. 허기 앞에서 나는 순진해졌고 바보가 됐으며, 말이 안 돼도 믿어버렸다. 나를 향한 순전한 감정조차 허기를 해결하는 데 이용할 만큼 미치게 배가 고팠다.
    집에 가면 얼마든지 밥을 먹을 수 있는 민준이라서, 내가 돈이 없어서, 그냥, 내가 먹는 걸 민준이가 좋아해서. 나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서 합리화했다. 간혹 민준이 일이 있거나 내가 점심값이 있을 때는 라면이나 김밥을 사 먹었다.
    “노량진에서 부천 사이지?”
    민준이 다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떠온다며 나갔던 민준은 자신의 가방을 들고 왔다.
    “이거 메이커야. 우리 누나가 산 건데 내가 뺏어서 가지고 다녔거든. 우리 누나는 옷도 메이커만 입어. 너 가져. 비싼 거니까 잊어버리면 안 돼.”
    민준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약간의 허세를 부렸다. 가족들은 메이커 옷만 입고, 집에 돈을 쌓아 놓은 것처럼 말했다. 나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부대 자루처럼 커다랗고 까만 크로스백이었다.
    “오늘은 가볼 데가 있어. 학원 못 데려다주겠네.”
    민준의 말에 나는 입을 내밀었다. 오늘은 불고기버거 세트를 못 사주겠다, 는 말로 들렸다. 민준을 봤다. 민준의 눈이 묘한 빛을 냈는데, 분노가 섞인 어두운 눈빛이었다. 김 실장과 일을 해결하러 갈 때 저런 눈이었다.

 

    “엄마는 내 얼굴에 뽀뽀해 주는 걸 좋아했어. 착한 내 아기라고. 이마, 두 눈, 코, 입술, 양볼. 그럼, 나는 아주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곤 했어.”
    며칠 만에 나타난 민준은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나는 민준 엄마가 다 큰 사내아이의 얼굴을 잡고 이마와 두 눈과 코와 입술과 양볼에 입을 맞추는 야릇한 모습을 그려 보았다.
    “아기 때?”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이 일 년 전이었어.”
    그 말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민준의 눈이 타액처럼 끈적끈적해서 눈길을 피했다. 나를 향한 거침없는 열망이 오롯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그 막을 길 없는 마음이 두려웠다.
    “너는 왜 대학에 안 갔어?”
    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도시 아이들은 모두 대학에 다니는 줄 알았다.
    “귀찮아서. 공부하기도 귀찮고, 대학 나와서 딱히 할 것도 없고.”
    대학 가는 게 꿈인 내 앞에서 민준은 말했다. 나는 민준의 다친 팔을 바라보았다. 민준은 가끔 몸에 상처가 나서 나타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나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나는 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대학 가기 전까지만 민준을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후진 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내 미래까지 맡기고 싶지 않았다.
    패스트푸드점 창밖으로 무수한 재수생이 보였다. 나는 불고기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도시 어딘가에는 대학도 나오고 버젓한 직장에 미래도 보장된 남자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민준이 무슨 일을 하든, 어디가 다쳐서 오든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지갑에 삼천 원 들어 있었대.”
    민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소매치기한 새끼 뒤지게 맞았는데 억울해하면서 그러더라고. 고작 삼천 원 들어 있었다고. 그런데 지갑은 못 찾았어. 공중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다는데 없더라고.”
    삼천 원이 어때서. 나는 삼천 원으로 살 수 있는 하루 치 먹을거리를 생각했다. 자신의 눈길을 피하는 나를 본 민준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계산하지 않고 들이대는 민준의 마음보다 내가 모르는 민준의 다른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팔은 어디서 다친 거야?”
    민준은 픽 웃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밤에 길을 가는데 고등학생들이 담배 하나 달라는 거야. 손 좀 봐주다가 다쳤어. 내가 이 정도인데 걔네들은 오죽하겠냐. 막 빌더라고, 한 번만 봐달라고. 내가 너 봐서 봐줬지.”
    이 자식 또 허풍 시작됐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그럼 그렇지. 소매치기를 무슨 수로 잡아. 조직으로 움직인다는데. 또 뻥이구나,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나는 남은 불고기버거를 알뜰히 먹어치우고 학원으로 달려갔다. 가을이 되고 시험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밤은 꼭 데려다주겠다고 민준이 뒤에서 소리쳤다.

 

    늙은 변호사는 침을 튀기면서 화를 냈다. 나한테가 아니라, 살찐 중년 남자한테였다. 김 실장과 민준이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내가 이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 사장이라는 사람을 처음 본 날이었다. 그는 늙은 변호사가 있는 힘껏 화를 내고 있는데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사장이 이 사무실에 오기까지, 늙은 변호사는 전화로 아침 내내 소리를 질렀다. 그다음은 나를 아래층 사무실에 내려 보냈는데, 나는 김 실장 앞에서 쭈뼛거리며 변호사님이 오라고 하셨어요, 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다음은 민준이 몇 번 왔다 갔다 했고, 김 실장이 와서 사과했다.
    “이게 사과로 될 일이야? 내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걸렸는데. 이 나이에 변호사도 못 해 먹게 생겼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어떻게 해 처먹은 거냐고. 사장 불러 이 새끼야.”
    김 실장은 고개를 계속 숙이다가 내려갔다. 그리고 오후 네 시가 넘어서 사장이 올라왔다. 늙은 변호사의 목소리가 비어 있는 다섯 개의 사무실에 울렸다.
    “넌 퇴근해.”
    김 실장이 나한테 손짓했다. 나는 민준의 눈치를 살폈고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을 나서서 걷는데 등 뒤에서 험악한 욕설이 오갔다. 아래층은 빚에 넘어가는 집과 상가를 경매로 넘기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민준의 몸에 가끔 상처가 났던 일을 떠올렸다. 빚에 쪼들려 쫓겨나는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어쩌면 그들을 협박하거나 더 심한 일을 해서 쫓아낼지도 몰랐다. 지방 법대를 졸업했다는 김 실장이 법적인 문제를 처리하고, 그런 과정에서 늙은 변호사의 면허를 이용한 듯했다. 어딘가 불법의 냄새가 났지만, 아이엠에프로 호황을 누리는 중이라 아래층 사무실은 늘 바빴다. 민준도 바빠서 며칠씩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난 참이라 나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미적거리며, 변호사 사무실에 귀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두 달만 버티면 시험인데 불안했다.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리던 늙은 변호사의 목소리가 일순간 줄어들었다. 사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김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소리가 작아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게 더 불안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이 난리통에 점심도 걸렀다. 허기가 몰려와 뱃속을 움켜쥐었다. 나는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와서 가장 먼저 보이는 분식집으로 달려갔다. 머릿속에서 통통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면서 두통이 왔다.

 

    다음날부터 늙은 변호사는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출근했다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민준이 와서 말했다. 늙은 변호사는 정리되었고, 아래층 일이 많아져서 위층의 빈 사무실까지 모두 사용할 거라고. 젊고 유능한 다른 변호사가 올 것이고, 사무장과 비서도 여럿 뽑을 거라고.
    “내가 잘하겠다고 너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김 실장한테 부탁했는데…… 김 실장이 안 된대. 내가 그만두겠다고 협박해도 안 된대. 그런데 걱정하지 마. 내가 너 대학 보내줄게. 우선 우리 엄마 만나자. 너 대학 가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도 되느냐고 내가 물었거든. 너 대학 등록금도 내가 다 댈게. 걱정하지 마. 내가 예전에 하던 일 다시 하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거든. 지금 사무실이야 엄마가 다니라니까 다니는 거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요일에 같이 집에 가자. 응?”
    예전에 하던 일? 예전에는 고등학생이었잖아, 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무작정 덤비는 민준의 열정에 기대 보고 싶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평범한 가정에서 해주는 밥 실컷 먹고, 등록금 대주면 대학에 다니고. 꿈같은 일이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잘렸지만, 아이엠에프가 터지고는 워낙 흔한 일이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직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민준이었다.

 

    뽀얀 국물에 큼직하게 빚은 만두 다섯 개가 떠 있었다. 국물 속 고명처럼 둥둥 떠 있다가 머리를 처박고 깊이 잠기고 싶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만둣국 때문이 아니라, 만둣국이 담긴 초라한 대접과 그 대접이 놓여 있는 밥상, 그 밥상이 놓여 있는 거실 겸 부엌의 반지하방 때문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온 빈속인데도 입맛이 똑 떨어졌다. 방이 두 칸 딸린 열다섯 평짜리 빌라 안에는 컴컴한 어둠을 닮은 사내아이 둘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사내아이 중 하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됐을까 싶게 어렸고, 나머지 하나는 머리가 제법 굵은 고학년으로 보였다. 저렇게 어린 동생들이? 민준은 한 번도 줄줄이 딸린 동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민준은 흥분되고 부산스러워 보였다. 참담한 내 얼굴을 민준 엄마와 동생들까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민준만이 신이 나 있었다.
    쾅. 쾅.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지듯 가득 찼던 기대감이 폭발해 가루가 되었다.
    민준은 눈치 없이 내 입에 만둣국을 떠먹이려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한 숟갈 받아먹었다. 썼다. 노량진 골목식당의 조미료 덩어리 밥도 이런 맛은 아니었다. 속은 쓰렸지만, 참고 먹으면 궁금한 미래를 입안에 넣고 씹는 기분이었다. 이걸 먹고 대학에 가서 취직하고 돈을 벌 수 있겠지. 기대하는 맛. 락스로 박박 닦았을 식기류에서 냄새가 올라오고 그것들이 위장을 긁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겠지, 기대하며 현실을 곱씹는 맛이었다. 몇 달째 질리도록 먹었던 라면과 김밥과 떡볶이와 하물며 빵 한 조각도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나였다.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모욕적인 순간이 와도 먹고 봤다. 그런데 만둣국은 썼다. 나는 숟가락을 놓았다. 옆에서 만두를 불고 있는 민준이 안쓰러웠는지 민준 엄마가 말했다.
    “너 슈퍼 가서 음료수라도 좀 사올래?”
    민준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순하게 자신의 엄마를 보며 웃었다. 민준 엄마는 한쪽 눈을 심하게 깜빡거렸다. 민준에게 신호를 주는 게 아니라, 다쳐서 생긴 장애 같았다. 민준이 서둘러 나가고 나서 민준 엄마는 나머지 아들들을 방에 몰아넣었다. 나는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하지? 나를 대학에 보내주기는커녕 내가 돈 벌어서 가족까지 부양해야 될 것 같은 집구석에서 어떻게 도망가지? 민준에게는 또 뭐라고 하지? 민준 엄마가 정말 나를 잡고 이 집에서 지내라고 하면? 언니에게 갈까. 형부의 분식집이 망하지 않았다면 언니도 월세방에서 조카들과 지지고 볶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내가 몇 달 비빌 언덕이라도 됐을걸. 국물에 코를 박고 오만 잡생각을 했다.
    그 순간 정말, 만두가 되고 싶었다.
    “우리 이렇게 살아 아가씨. 내가 아가씨를 부른 것은 민준이가 아가씨 때문에 다시 깡패소굴로 들어가려고 해서야. 일 년 전에 거기서 나오면서 얼마나 맞았는지 한 달을 입원했었어. 아이엠에프 때문에 집 경매로 넘어가고 여기로 나앉지 않았으면 저 녀석 내 말도 안 들었을 거야.”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소매치기를 잡아서 두들겨 팼다고 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민준이 말한 전에 하던 일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아가씨 대학 보낸다고 다시 그 일을 하겠대. 지금 하는 일, 돈이 적다고. 아가씨랑 우리 아들은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 헤어져. 부탁이야.”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가, 라는 듯이 민준 엄마가 나를 봤다. 아들과 헤어지라는 말은 부잣집 사모님이 돈 봉투를 얼굴에 던지며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럼 나는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하고 돌아갔을 텐데. 이건…… 낭만도 없이 비루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그렇게 착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민준을 사랑하지 않아요, 라고 말을 이으려다가 서둘러 일어섰다. 그 집에 들어찬 암울한 공기에서 벗어나야 숨을 쉴 것 같았다. 나는 계단을 올라 집 밖이 보이자마자 달음박질쳤다. 빌라 단지 입구에서 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민준의 집 쪽 길에는 나를 따라 나온 민준 엄마가 서 있었고, 다른 쪽 길에는 민준이, 그들과 다른 방향에 내가 서 있었다. 민준은 나를 발견하고 얼굴이 환해졌다. 다음 순간 검은 봉지를 들고 선 민준은 자신의 엄마와 나를 번갈아 봤다. 나는 뛰었다. 민준이 나를 쫓아왔다. 나는 숨이 찼고 속이 울렁거려 구역질을 했다. 길가 전봇대에 만둣국을 토하고 있는 내 옆에 민준이 서 있었다.

 

    지금 나는 노량진 패스트푸드점 2층에 앉아 불고기버거 세트를 앞에 놓고 있다. 자그마치 세트다. 월세 보증금을 빼고 짐을 시골에 부치고 마지막으로 노량진에 왔다. 월세 보증금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이십만 원을 떼이고 삼십만 원을 받았다.
    민준의 집에서 도망쳐 온 후, 나는 내 방에 처박혀 며칠 동안 잠을 잤다.
    빨리 서른 살이 됐으면 좋겠다고 잠꼬대를 했다. 배고파서 눈을 뜬 순간에도 생각했다. 열여덟 살이 아니라 서른 살이었으면 지금보다 낫겠지. 지금보다 배고프지 않고 막막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겠지. 하룻밤에 오 년씩 십 년씩 나이 좀 먹었으면.
    방에서 잠만 자는 내가 불안했는지 주인할머니가 자꾸 문을 두드렸다. 나는 오줌도 참았다가 주인할머니가 방에 들어간 것 같으면 잽싸게 달려가 쌌다. 돈이 없으면 좌절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구나. 계속 문을 두드려대는 주인할머니 통에, 또 더는 배고픈 걸 참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아침마다 우거지 된장국에 밥을 차려 주던 엄마가 보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고 늘 괜찮다고만 말했는데. 엄마를 불러 올려 민준 엄마와 싸움이라도 붙이고 싶었다. 나도 우리 집에서는 귀한 자식이라고. 근데, 내가 귀한가? 귀했던 적이 있나?
    “엄마…… 나는 왜 2년이나 늦게 호적에 올라가 있는 거야? 어디 들어가서 일하려고 해도 취직이 안 돼.”
    엄마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리자마자 투정부터 부렸다. 내가 스무 살이면 지금 이 설명할 수 없는 모멸감이 덜할까.
    “이 말은 안 하고 살았는디, 너 우로 언니가 있었어야. 낳을 때부터 몸이 약하더니 2년을 살다가 갔어야. 죽을까 봐 출생신고도 2년이나 기다려서 했는디. 느 언니 죽고 니가 태어났지야. 느 언니 사망신고 하기가 어찌나 손 떨리고 가슴 떨리던지. 마침 너 출생신고도 해야 됭께. 걍 그 호적 너한티 그대로 물려줬어야. 이사를 많이 댕겨서 놈들은 모르제. 너 크니께 차마 미안혀서 또 그 말은 못 하겄드라.”
    헌옷도 아니고 물려줄 게 따로 있지. 나는 죽었다는 언니 이야기를 듣고 도, 아저씨를 떠올렸다. 길에서 만났던 도, 아저씨는 용하기도 하지. 어떻게 딱 보고 억울하게 죽은 언니 이야기를 했을까. 나는 도, 아저씨의 흔한 멘트인 억울하게 죽은 조상, 에 내 스토리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도, 아저씨를 따라가 굿이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근데, 왜 학교는 일찍 보냈는데?”
    엄마는 기억을 더듬느라 우물거리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때는 걍 학교에서 받아 준께. 니가 키도 컸고 집에 둬도 나 밭일 가믄 심심할 텡께 그랬제. 도시 살이 힘들지야? 너무 힘들믄 지금은 죽은 언니 나이로 살고, 나중에 니 나이로 또 살고 그라믄 되제. 태어난 해 고치는 것은 재판도 해야 항께 힘들디야. 그라고 영 힘들믄 내려온나. 돈 찬찬히 벌어서 소원인 대학 가믄 되제. 나이도 어링께.”
    통화 끝에 엄마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죽은 언니 대신 사는 것잉께…… 힘들어만 말고, 언니가 못해 본 거 다 해본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불고기버거를 깨물면서 도시의 하늘과 땅을 바라봤다. 그사이에 무수히 밀려왔다 밀려가는 패티들이 보였다. 햄버거는 원래 독일 이민자들이 값싸고 질긴 소고기를 다져 빵 사이에 끼워 먹은 요리라고 했다. 햄버거는 한 번도 우아하거나 고급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도시의 이 구석 저 구석의 자리 잡지 못한 사람들과 노량진 바닥을 돌아다니는 재수생, 삼수생처럼 언제든 중심에 섞이려고 준비 중인, 다져지고 있는 인간들의 맛, 그것이 햄버거의 참맛이었다.
    불고기버거의 달콤한 소스가 혀와 식도를 거쳐 뱃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노량진에서 처음으로 불고기버거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거의 매일 사줬으며, 노량진을 발음하면 입에 침부터 고이게 해준 민준과의 마지막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너를 사랑했던 적이 없어.”
    전봇대에 구토해 놓고 민준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민준보다 약간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도 옆에 있게만 해주면 안 돼?”
    위에서 위액이 넘어왔다. 나는 침을 뱉듯 말했다.
    “구질구질해. 가까이 오지 마.”
    민준 엄마가 골목 끝에서 우리를 보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준은 집과 반대 방향을 향해 걸었다. 나는 그 골목을 벗어나려고 뛰었는데, 지하철역을 찾지 못해서 울고 싶었다. 지하철역을 찾았을 때는 울고 있었다. 민준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민준과 공원에서 끌어안고 서로의 몸을 더듬었을 때, 민준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심장도 부끄럽게 같이 뛰었음을 깨닫고 울었다. 나이를 어서어서 먹어서 이 감정이 뭔지 알게 되길 바라면서.

 

    진짜 열여덟 살이 된 나는, 그 감정을 콜라와 함께 삼켰다.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서 씹었다. 입을 오물거리는 내 앞에서 세상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는 겁도 없이 입을 크게 벌렸다. 하늘이라는 빵과 땅이라는 빵, 그사이에 낀 패티까지 삼킬 만큼 크게.
    패티 안에는 민준이 있었다.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나한테 먹이면서 나 대신 굶던 초조한 민준이. 자신의 저녁밥값으로 불고기버거 세트를 나한테 사 먹이며 뿌듯해 하던 민준이. 허기를 숨기려고 허풍을 떨던 남자 아이가.
    고작 나보다 두 살 많은 민준이, 배고픔을 꾹꾹 눌러 가며 자신의 첫사랑을 향해 있는 힘껏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창작 후기

 
    스무 살 때는 빨리 서른 살이 되고 싶었다. 어서어서 나이를 먹어 내가 모르는 것들을 다 알게 되고, 꿈꾸는 무엇인가가 돼 있고, 안정되고 평범한 그 무엇을 갖게 되길 바랐다. 그러나 청춘의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렀다. 그리고 처음 접한 모든 감정이 아팠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던 청춘의 시절은 왜 그렇게 힘겹고 아팠던 걸까. 되돌아봐도 그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청소년 소설 청탁을 받았을 때,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취업을 나와 바라본 도시는 복잡한 괴물 같았다. 나는 노량진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낮에는 일을 했다. 늘 배가 고팠고, 잠이 쏟아졌다. 그러나 만사에 호기심을 가졌고 재미있었고 설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서툴고 모르니까 청춘이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장소들과 사람들, 어떤 흔적을 남겨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청춘의 모든 자국이 고맙다.
    매일 아침 싱싱하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꿈을 꾸던 나. 있는 힘껏 웃으며 미래를 긍정하던 나. 지금은 그때의 내가 그리워 밤에 잠이 안 온다.

 

 

작가소개 / 박은성(소설가)

2014년 《영남일보》 신인문학상에 「리플레이」가 당선되며 등단. 2014년 《문학나무》 봄호 「최초의 언어」 발표.

 

 

 

   《글틴 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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