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10주년 특집] 아무래도, 주변인

 

[글틴유감_10주년 특집]

 

 

아무래도, 주변인

 

 

 

변혜지

 

 

 

 

    오, 이런, 신인 추천에 응모했는데 또 떨어졌다. 작년엔 학사경고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해 수명이 줄었다. 엄마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졸업이 한 달 남았다. 영어 성적? 물론 없다. 컴퓨터, 인터넷으로 웹툰을 볼 줄은 알고, 자판을 칠 줄은 안다. (지금 이렇게) 졸업 이후 나는 하나의 호칭을 또 다시 획득할 예정이다. 백수. 삶이란 것에 중심과 언저리가 나뉘어 있다면, 아무래도 내 삶은 언저리에 있다. 자학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게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다.
    주변인, 언저리, 그리고 구 년 전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했던 그 단어, 막장. 글틴에 대해, 글 쓰는 십대들에 대해 말하기에 아무래도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글틴에 대해 떠올리면 이 단어는 자동완성 기능처럼 뒤따라온다. 글틴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스스로를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중심부. 뭐, 내가 그랬다는 이야기다.
    그 당시 우리에게는 정해진 집결지가 있었고(대학로) 만난 이후의 행로가 정해져 있었고 (식도락에서 삼천 원 이내의 식사를 한 뒤 마로니에 공원, 혹은 노래방으로) 겁 없이, 혹은 수치심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도 있었다. 나는 열여섯 살이었으니까. 구 년 전의 나는 거리를 뛰어다니고 큰소리로 웃고 웃음을 멈추지도 못했다. 그 때 그 거리를 지나다녔던 사람들을 지금 마주친다면 나는 얼굴도 들지 못 할 정도로. 그러나 그 시절의 나를 전부 겪어온 또 다른 글틴 친구들을 나는 한 점 부끄럼 없이 만날 수 있다. 걔네들이라고 다른 것은 아니었으니까.
    세 살 이후로 나는 늘 나를 소개할 때, 내 이름보다 앞서 붙는 소속을 가지고 있었다. 예림어린이집 참새반, 극동 유치원 보라반, 우이 초등학교 1학년 6반……. 이런 식이었다. 열여섯 살의 나는 누가 활보하는 우리를 보고, 대체 저 집단은 뭐야? 라고 묻는다면 큰소리로 말할 수도 있었다. 우린 글틴인데요! 그때 이미 스무 살이 넘었던 언니 오빠들이 내게 달려와 재빨리 입을 막았을 테지만. 하지 마. 창피하니까 제발 하지 마. 읍읍!
    학교의 분위기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확 변해버렸던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놀 수 있었던 열여섯 살에서 살벌한 진학 분위기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열일곱 살이 되었다. 그때 집안에서의 대화는 이런 방식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결심하고 식사시간에 비장하게 말을 꺼낸다. “어머니, 학교는 아무래도 저와 맞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된장찌개를 입속에 마저 털어 넣는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다 먹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설거지가 끝난 뒤 어머니는 내 등을 두드려 창밖을 가리킨다. 교복을 입고 즐겁게 노는 여자아이들을 가리키며 어머니는 의미심장한 눈짓을 한다. 그리고 이 일이 반복된다.
    그 당시의 나는 심적으로 상당히 몰려 있었다. 나는 울 준비를 끝내 놓고 글틴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인생은…으로 시작하는 장광설을 준비하며 절망에 빠진 열일곱 살이라니, 아무래도 나는 언저리에 있지 않은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학로에 도착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집단에 슬쩍 끼어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고, 이제 수다 타임이 시작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원에 앉아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을 떠들어대는 일은 거의 노동에 가깝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작 학교에 가기 싫은 열일곱 살이 된다. 내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뭐, 이런 식이었다는 거다.
    너도?
    ……너도?
    (웃음, 그리고 또 웃음)

 

    십대 중후반의, 그리고 이십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한데 모여 있기는 쉽지 않다.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와 없는 나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를 술이자 안주로 삼아 우리는 참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대다가 누군가 혀를 차며 이야기한다. (많아 봐야 스무 살, 스물한 살 정도일 테지만 그때의 나에겐 왕 언니, 혹은 왕 오빠나 마찬가지인 누군가)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아. 그러면 다시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고민과 불안을 웃음과 털어내고, 밤이 깊으면 엉덩이를 또 툭툭 털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던 그때로부터 벌써 구 년, 십 년이 지났다고 한다. 나는 그 뒤에 예고에 들어갔고, 대학에 들어갔고, 또다시 졸업을 앞두게 됐다. 이럴 수가.
    과거는 누구에게나 그렇다고는 하지만, 떠올릴 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떠올릴 때마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가진다는 게.

 

 

 

작가소개 / 변혜지(글틴 필명 : 여탐)

– 문창과 대학교의 수료를 일주일 앞둔 예비 백수, 당분간 시를 쓰며 진짜 백수로 지내볼 예정이다. 처음으로 소속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매우 겁을 먹고 있지만 또 어떻게든 될 거라는 낙관주의적 생각이 유일한 자랑. 열여섯, 혹은 열입곱의 내 사진을 보고 귀여워하는 게 취미.

 

 

   《글틴 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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