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백일장 수상작품 함께 읽기③]욱욱한 시만 깨어 있는 새벽

 

[청소년백일장 수상작품 함께 읽기③]

 

 

욱욱한 시만 깨어 있는 새벽

 

 

박찬세(시인)

 

 

 

 

    “욱욱한 시.”

 

    어릴 적 친구들과 강가에서 놀 때면 누가 더 많은 물수제비를 띄우나 내기를 하곤 했습니다. 반질반질하고 납작한 돌을 줍기 위해 천천히 바닥을 읽어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강가에 서서 돌을 던지면 돌이 닿는 곳에서 빛이 튀어 오르고 돌이 또 다른 빛을 찾아 날아가는 게 보였습니다. 강은 참 많은 빛을 품고 흘러갑니다. 그 빛 속에서 살고 있는 이름들이 떠오릅니다. 방학이 끝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던 이름들……. 그 강을 성큼성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다리를 건너다니며 어른이 되어 갑니다.

 

2014년 제19회 한국작가회의 전국 고교생 백일장 장원

  물수제비

 

    달성고등학교 3학년 윤재성

욱욱하다
계절이 나를 가져가지 않은 탓이다
손에 쥔 돌은 언제나 예쁘고
나랑은 무방하다
그 사람이 늦마를 가지고 도개교로 가버렸다
우리는 그때 물수제비 연습을 했으니
비는 이제 수평선이랑은 친하고
내가 가진 이 돌,
너무 예쁜 것을 나만 바라보게 되었다
도개교는 언제까지 다리인 걸까,
그 사람이 버린 질문이 도개교 바깥에서 오래 살았다
내가 던진 물수제비는 항상 젖지 않는다
증기선이 지나고,
대답은 돌의 계절에 서 있다

 

    빛나고 환합니다. 화자의 기억이 그 계절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에 쥔 돌은 언제나 예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같이 물수제비를 뜨던 그가 늦장마와 함께 도개교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비는 오래전에 그쳤습니다. “너무 예쁜 것을 혼자만 바라보”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요? “그 사람이 버린 질문이” 물수제비로 번지고 “물수제비는 항상 젖지 않”습니다. “증기선이 지나”갑니다. 도개교가 들어 올려집니다. “도개교는 언제까지 다리”입니까? “대답은 돌의 계절에 서 있”습니다.
    첫 행이 시를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첫 행이 시의 주춧돌이기 때문입니다. ‘빛나서 환하다’라는 말을 화자는 “욱욱하다”고 합니다. 뜻은 밝은데 느낌은 어둡습니다. “욱욱하다”만큼 이 시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만 깨어 있는 새벽.”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경제난으로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예전엔 탈북자라는 말을 썼지만 요즘은 순우리말로 순화하여 새터민이라는 말을 씁니다. 북한과의 대치 상태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어야만 했던 이즈음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한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나라 사람일까요? 배척하고 멸시하고 구분 지어야 할까요? 총칼을 맞대고 싸워서 꼭 쓰러뜨려야만 하는 상대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명확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2014년 제18회 한국작가회의 전국 고교생 백일장 장원

  리영희, 이영희

 

    인명여자고등학교 3학년 정다솔

별들만 깨어 있는 새벽.
일터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
리영희는 이영희가 되어야 한다.

 

북한 년이 갖다 준 물이라며
욕하는 이 땅.
빨갱이가 어디서 말대답이냐고
다그치는 이 땅.
이 땅에 발붙이기 위해서는

 

한 걸음 한 걸음
ㄹ을 지우고
빨간색을 지우고
그렇게 리영희는 이영희가 되었다.

 

별들만 눈 떠 있는 늦은 밤
식당에서 돌아오는
이영희가 리영희로 돌아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동무 생각
오마니 생각

 

반 지하 집에 들어서서야
이영희는 비로소 리영희로 돌아왔다.

 

눈감는 순간까지
다시 한 번 되뇌인다.
일없습네다. 괜찮습니다.
일없습네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별들만 깨어 있는 새벽” “일터 식당으로 향”하는 “리영희는 이영희가 되어야” 합니다. 북한 년이라고 빨갱이라고 욕하고 다그치는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영희가 되어야 합니다. “ㄹ을 지우고/ 빨간색을 지”워야 합니다. “별들만 눈 떠 있는 늦은 밤” 이영희에서 리영희로 돌아가는 걸음걸음마다 고향에 남아 있을 어머니와 친구들이 떠올랐을 겁니다. 반 지하 방, 혼자 견디는 적막 속에서 일없습네다를 괜찮습니다로 고쳐서 되뇌는 리영희 씨. 리영희 씨가 살고 있는 반 지하 방 문을 두드리고 묻고 싶습니다. 일없습네까? 일없습네까? 정말 일없습네까?
    시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고 말함으로써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를 읽는 동안 화자가 말하는 리영희 씨가 보입니다. 시를 읽고 난 후 화자가 말한 리영희 씨는 흐릿해지고 화자가 말하지 않은 리영희 씨가 점점 선명하게 보입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오늘도 그냥 잠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작가소개 / 박찬세(시인)

–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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