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여행⑦]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

 

[여행에세이_이 또한 여행⑦]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

 

 

 

양재화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인다.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 터이다. 여행지에서 사람들로 가득한 길거리를 걷거나 시끌벅적한 식당에 들어설 때도, 마치 그들의 몸에서 특별한 아우라가 풍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왠지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눈인사를 나누거나 굳이 가서 말을 붙이지 않아도 어떤 공감대 같은 것이, 모종의 은밀한 연대감 같은 것이 ‘우리들’ 사이에 흐른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 사는 일이 다 녹록지 않다고 해도, 여자로 사는 일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담아 그렇다. 수백, 수천 년을 이어온 물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징적 격차와 차별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며, 더욱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여성들의 삶을 제한한다. 하물며 여자 혼자 여행을 하는 일은, 아무리 다를 바 없다고, 별일 아니라고 어깨를 꼿꼿하게 펴고 자신 있게 고개를 쳐들고 다녀도 남자라면 겪지 않았을 가슴 철렁하는 순간을 시시때때로 마주해야 하는 과정이다. 조금 더 큰 용기와 굳은 결심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중해에 면한 터키 남부의 휴양 도시 안탈리아에서 하품 나오는 ‘크루즈 투어’란 걸 했다. 실상은 해안 절벽을 따라 느리게 항해해 제주에 있는 정방폭포 높이의 2분의 1이나 될까 말까 한 해안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두 시간 여의 소소한 뱃놀이였다. 출발한 지 이십 분쯤 지났을 때 아, 아무래도 호객꾼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뭐, 바다로 뛰어내릴 수도, 배를 돌리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반쯤 체념하고 배를 사뿐하게 흔드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이리저리 기대며 따스한 햇살 아래서 꾸벅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 별 볼일 없는 뱃놀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 옆에 앉은 할머니였다.
    《곰돌이 푸》의 파란 당나귀 이요르가 그려진, 지중해의 빛깔과 잘 어울리는 파스텔블루 티셔츠에 꽃무늬 롱스커트(일명 몸빼치마)를 입고 백발에 히잡 대신 고운 보라색과 연두색 페이즐리무늬 스카프를 두른 할머니는 터키 어디 출신인 듯했다. 이슬람 교리에 따라 여자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게다가 옛 세대라면 그런 일이 더욱 낯설 나라에서 할머니는 어떤 사연으로 이 배에 혼자 오르게 되었을까? 너무너무 궁금했다. 평소답지 않게 용기를 내서 말을 건넸지만, 할머니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듯했다. 그저 “메르하바”(‘안녕하세요’라는 터키어)라는 나의 인사에 수줍은 미소로 답했을 뿐이다.
    나는 힐끔힐끔 할머니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단조로운 해안선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항해 내내 할머니는 두 눈을 반짝이며 옅은 미소를 머금고 열심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치 바다를, 해안을, 하늘을 처음 보는 듯한 표정으로, 단 한 순간도 놓치기 싫다는 듯이. 그 얼굴은, 사진으로 찍어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것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셔터 대신 눈꺼풀을 깜빡여 그 모습을 내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러다 어느새 고개를 박고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깨어나 보니 할머니가 없었다. 어딜 가셨지?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할머니는 거기, 뱃머리 꼭짓점에 서서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뒷모습이었지만 나는 할머니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아까처럼 천진하게 눈을 반짝이며 웃고 계시겠지. 아니면 똑같은 표정으로 울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 옆에는, 구레나룻을 기른 건장한 남자와 함께 타 내내 큰 소리로 싸우듯이(실은 그것이 그들의 평소 말투이겠지만) 떠들던 이탈리아 여자가 볕에 한껏 그을린 육감적인 뒤태를 뽐내며 패션 화보처럼 멋진 포즈로 서 있었다. 그 대비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번에는 못 참고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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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터키 안탈리아의 ‘크루즈’ 위에서

 

   이요르 티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유독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전 일정이었던 사프란볼루에서 터키어로 ‘혁명’을 뜻하는 데브림이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사프란볼루는 터키 북부, 흑해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고원지대에 위치한 마을로, 13~17세기에 카라반(대상隊商)들이 드나들던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지금은 그저 작고 고요한 산골 마을이지만, 그 당시 독특한 양식의 전통 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마을을 거닐다가 남다른 미적 감각이 엿보이는 나무 장식품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데브림은 원래 수도 앙카라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는데, 방학을 맞아 남편의 가게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데브림이 나와 내 친구의 촛대를 우리가 원하는 색으로 칠해주는 동안 제법 길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은 ‘혁명’이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비록 직업이 있고, 이슬람 전통이 훨씬 강한 터키 동부에 비해서는 운신하는 폭이 넓은 편이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여행하는 일은, 특히 해외를 여행하는 일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처럼 여행하는 여자들을 만나면 너무 보기 좋고 부럽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눈이 슬퍼 보여서 나도 따라 슬퍼졌다. 같이 사진을 찍을 때 예쁘게 안 나왔다며 몇 번이나 머리를 매만지고 수줍게 웃는 모습. 살짝 들떠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영어 단어를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모습. 어쩌면 중요하고 어쩌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얘기들. 헤어질 때 두 손 꼭 잡고 볼 인사를 나누며 아쉬워하던 착한 눈동자. 자신은 터키를 떠날 수 없으니까 언젠가 또 놀러 오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조금 눈물이 고였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그녀도 이요르 티를 입은 할머니처럼 지중해의 어느 뱃머리에 홀로 설 수 있기를. 이왕이면 다른 나라로 건너가는 큰 여객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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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혁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데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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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흐드를륵 언덕에 올라 바라본 사프란볼루 전경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정체불명의 관용구와 달리, 숱한 여행길에 내가 곤란하다는 걸,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때로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은 항상 여자들, 그 중에서도 중년이나 노년의 나이 든 여자들이었다.
    호주 북부의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익숙지 않은 트레킹을 할 때, 마치 모글리처럼 산속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던 남자 가이드와 나보다 종아리 하나가 더 붙어 있는 듯한 긴 다리로 성큼성큼 커다란 바위들을 타넘던 다른 일행들 사이에서 뒤처져 중간쯤에 혼자 남겨진 적이 있다. 일행들이 돌아올 때까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쪼다가 된 기분으로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나처럼 혼자 투어에 참여한 백발의 호주 할머니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목적지에는 건기라 물도 별로 없는 폭포가 하나 있고, 그냥 다들 물웅덩이에서 수영하다 온 게 전부라고. 여기서 바람을 쐬며 쉬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고. 마음이 꿰뚫린 기분이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코끼리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지독한 몸살에 걸려서 무섭고 비참한 기분으로 혼자임을 절감하고 있을 때에도 내 상태를 알아봐주고, 다정한 말을 건네주고, 트럭에서 자리를 양보해준 것은 중년과 노년의 여자들이었다. 스페인 론다에서 굴속 같은 끔직한 호텔 방을 빠져나와 저녁거리를 사려 슈퍼마켓에서 미적거릴 때, 의식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음울한 오라를 풍겼을 내게 자기들 호텔에 가서 한 잔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준 것도 ‘언니들’이었다. 그 호텔 방은 테라스에서 론다의 명물인 누에보 다리의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고, 우리는 알싸한 가을 저녁 바람을 맞으며 노오란 등불을 밝힌 다리를 바라보며 언니들이 산 새콤달콤한 자두를 나눠 먹으며 최고로 맛있는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니 먼저 세계를 여행한 남자 어른들이 반 협박처럼 늘어놓는 말들에 너무 많이 겁먹지 않기를. 주의하고 경계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면 당신의 세상이 그만큼 좁아지는 거니까. ‘여자 혼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지/가지 말라’는 말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세상 어딜 가나 당신과 똑같이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이 있고, 그들이 당신이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 테니까. 돌이켜 보면 혼자라고 생각했던 여행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혼자 여행하는 다른 여자들과 멀찍이서 또 가까이서 같이 걸어왔던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양재화
 

– 대학에서 언론정보학 등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편집자로 1년 중 10개월은 돈을 벌고 2개월은 여행하며 살고 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에 ‘여행의 뒷모습’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blog.naver.com/moodforlife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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