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소설] 생텍쥐페리 가 27번지_제4회

 

[중편연재]

 

 

생텍쥐페리 가 27번지 (제4회)

 

 

전삼혜

 

 

 

삽화_생텍쥐페리가27

 

    4. 사랑하는 나의

 

    비아. 혹은 에이쥬어.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웨일.
    폭발이 있을 거라고 아델이 말한 날, 나는 워프게이트를 타러 가지 않았다. 나를 안고 달리던 손을 뿌리치고 재단 건물에 남았다. 벽에는 길게 금이 갔고 창문이 깨져 유리조각이 흩어졌다. 어린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깨진 유리조각들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그 와중에 한 ‘선생님’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에이쥬어, 세상에! 안 다쳤어? 어디 있었니?”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내 팔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양손 모두 손가락 세 개가 없었다. 지금은 웨일 재단에서 만들어 준 손가락을 쓰고 있지만, 웨일-차일드일 때는 두 손을 합쳐도 손가락 네 개가 전부였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보조 손가락을 끼고 공부를 했다. 다치지 않았냐느니, 괜찮냐느니, 그런 말은 사실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한 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니.
    금이 간 학교 건물을 수리하는 동안 웨일-차일드들은 전부 웨일 재단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는 생각보다 조금 이르게 수술을 받게 되었다. 어차피 웨일 병원에 와 있고, 돌아갈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짐작할 수 없었으니까. 손의 발달 상황을 체크하고, 새로 만들어질 손가락의 모형을 나에게 보여주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검사를 했다. 웨일 재단에 ‘남겠다’고 한 사람은 두 명. 그 중 한 명은 폭발 사고 때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웨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죽었다. 그러니 ‘남음’을 스스로 택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수술 날짜를 잡고 나서도 나는 내내 1인용 병실에 있었다. 병원 밖을 거닐 수도 있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수술 이틀 전,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물었다.
    정말 수술을 받고 싶니?
    나는 대답했다. 네. 당연하잖아요.
    손가락이 다섯 개씩 달린 부드러운 두 손이 내 뭉툭한 손을 잡고 다시 물었다.
    너는… 들었잖아, 보았고… 아델이 어떻게 되었는지. 수술은…
    어디를 더 수술하게 될 건지 모른다는 이야기죠? 내가 되물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차마 잇지 못한 말을 내가 대신 입 밖으로 내었다. 그리고 죽을 수도 있고요. 극소수지만 이번 폭발을 ‘방조한’ 선생님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아델을 의심했다면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폭발물을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불안해하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안심을 시킨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처럼.
    선생님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웨일 재단에서 또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어. 이번 사고로 많은 애들이 쇼크를 받았다고 판단해서, 아이들의 기억을 지울 거야. 이번에는 흠칫, 내 손이 떨렸다.
    기억을 지운다고요?
    정확히는 조작이지. 너희가 고아원에 버려졌고, 웨일 재단에서 너희를 거두어 기른 것처럼 할 거야. 너희의 출생을 숨기기로 한 거지.
    이래도 수술을 받겠냐는 듯, ‘선생님’은 안쓰럽다는 눈길로 나를 보았다. 마음대로 유린당할 어린 동물을 보듯이.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 시선을 외면했다.
    뭐 어때요. 친구들은 전부 죽거나 사라졌는데요. 기억 정도 지운다고 해서.
    선생님은 내 옆모습을 뚫어져라 보다가 말했다. 내일 ‘마더 웨일’을 만날 거야.

 

    다음 날, 그러니까 수술 전날, 나는 ‘마더 웨일’을 만났다.
    우리들의 어머니.
    단 한 조각의 유전자도 섞이지 않았더라도 우리를 만들어낸 사람. 마더 웨일은 큰 안락의자에 누워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어서 오라는 말을 할 때 호흡기에서 나오는 쉑쉑거리는 소리가 ‘어머니’의 목소리와 섞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마더 웨일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악수를 할 수 없으니까. 마더 웨일은 퉁퉁하게 부어오른 팔을 움직여 내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쌌다.
    이름이 뭐지?
    에이쥬어요. 에이쥬어 웨일.
    수술이 끝나면 어떤 이름을 받고 싶니?
    나는 머뭇거렸다.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러자 마더 웨일이 희미하게 웃었다. 여러 이름을 준비해 놓을 테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렴. 마더 웨일이 심하게 기침을 했다. 호흡기 안이 날숨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선생님’이 나에게 이제 나갈 시간이라고 말하자 마더 웨일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이리 가까이 오렴. 다가간 내 뺨에 마더 웨일의 손이 얹혔다. 차갑고, 부드럽고, 부어오른 손. 마더 웨일이 나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내 아이.
    그날 밤, ‘선생님’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수술을 받겠다고 말하고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억하고 싶어요. 내 기억을 조작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마취를 하는 동안 폭발의 기억이 떠오르거나 하면 심장박동 등이 급격하게 상승해 수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조건을 바꾸었다.
    재단에 사고가 났다는 것만 기억하게 해주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선생님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나는 웨일 재단이 그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은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무엇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꿈꾼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의 곁에 있겠다는 꿈을 꾼다고 해도, 내 인생에 손해는 없는 셈이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특수 소재로 만든 손가락 관절이 잘 접착되고 나면 위에 인조 피부를 씌울 거라고 했다. 내 병실은 옮겨져 있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네 말대로 네 기억은 일부만 조작했어. 그러니까 너는 이제… 다른 아이들을 만날 수는 없을 거야. 다른 애들이 너를 기억하지도 못할 거고. 지금은 다들 ‘사고 현장에서 구조되어서 한 방에 있는 아이들’ 정도로만 서로를 인식하고 있어.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의 몸이었던 것처럼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브이 자 모양을 만들었다가, 검지손가락만 펴 보이거나, 여러 가지 손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서 이제 새 이름과 새 신상명세를 만들어야 돼.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새로 만들어도 좋아요. 하지만 저는 계속 재단에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되겠다는 거니?
    아뇨.
    나는 처음으로 ‘주먹을 쥐어’ 보며 말했다.
    웨일 재단의 광고판이 될 거예요.

 

    비아 웨일. 나는 새 이름을 받았다. 학교를 폭파하고 달아난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 혹 나도 같이 탈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 손가락 위에는 매끈한 피부가 덧입혀졌다. 처음으로 가져본 열 개의 손가락. 그 손으로 마더 웨일의 손을 잡았을 때 마더 웨일은 웃었다. 그리고 나를 불렀다.
    사랑하는 우리 비아.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라고 불렀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마더 웨일은 더 손에 힘을 주어 나를 잡았다. 빠져나가려는 나를 가둬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나를 불렀다.
    비아, 엄마라고 불러도 돼.
    네.
    네. 엄마.
    살고 싶었지만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는 몰랐다. 다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 주었으니 그 사람의 곁에 있고 싶었다. 만약 아델이, 안나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 주었으면 아델이나 안나를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해 준 적이 없었다. 그 뒤로 공부하고, 새로운 수술을 자진해서 몸에 받고, 이름을 알리며 나는 내가 다짐한 대로 웨일 재단의 간판이 되었다. 비아 웨일. 장애를 딛고 이겨낸 천재 소녀. 그녀의 팔과 다리가 되어준 웨일 재단. 우리는 좋은 한 쌍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아 웨일이 되었다.

 

    안나는 워프게이트를 통과했다. '웨일 병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가 안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다행스럽게도 입은 옷도, 개조한 의수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안나는 워프게이트를 나와 통로로 들어섰다.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 낭랑한 안내방송이 들렸다.
    “안나 웨일 님, 우측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주십시오.”
    그렇지. 여기 들어온 순간 나는 이미 감시망에 놓인 셈이지.
    안나는 순순히 오른쪽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은 저절로 열렸고, 몇 층인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끝없이 올라갔다. 수술 후로 처음 오는 거니까 거의 2년 만인가.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보다 엷은 라벤더 향기가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층수가 적혀 있지 않은 곳에서 문이 열렸다. 복도 바닥에 드문드문 놓인 표지판이 안나의 갈 길을 안내하듯 깜박였다.
    병실 안에는 두 명이 누워 있었다.
    카롤링거, 에바. 두 명은 각자의 이름표가 달린 침대에 누워서 편안하게 숨 쉬고 있었다. 카롤링거의 팔과 에바의 팔에는 각각 다른 색의 액체가 천천히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카롤링거에게는 거뭇하게 수염이 돋아나 있었다. 벌써 수염이 날 때가 됐나. 한 번도 몰랐는데. 안나는 카롤링거의 침대로 다가갔다. 카롤링거의 흰 뺨에 가볍게 손등을 대었다. 손등에 와 닿는 수염의 꺼끌꺼끌한 감촉이 생경스러웠다.
    “어른이 되는 건가.”
    안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카롤링거는 눈을 뜨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 나를 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반, 이대로 잠든 채로 내 두려움을 일깨우지 말아 달라는 마음이 반이었다. 기억을 지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롤링거의 기억은 사실상 언제 사라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싸구려 약을 투여하면 투여할수록 망가져가는 카롤링거의 상태를 어쩌면 병원이 '구원'했을지도 모른다. 카롤링거의 정맥에 연결된 호스와 천천히 떨어지는 약물은 청결해 보였고 카롤링거의 표정은 편안했다.
    나를 잊었을까.
    혹은 기억할까.
    안나는 바스락거리는 기척에 뒤로 돌았다. 에바의 침대가 있는 쪽이었다. 에바가 잠이 덜 깬 것처럼 멍한 눈을 하고 안나를 보고 있었다.
    “안나.”
    안나는 에바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에 안심했다.
    “응. 에바.”
    “아, 응.”
    에바는 힘없이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감기 전,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안나의 귀에 바늘이 되어 박혔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러 온 거구나.”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받고 싶어해.
    사랑받는지, 미움 받는지, 무관심한지.
    사랑받는다면, 미움 받는다면, 몇 번째 순위쯤 될지.
    우리는 재단에서 늘 알파벳 순서로 불렸지.
    그 순서만이 우리에겐 유일한 순위였지.

 

    안나는 비틀거리며 병실 문을 나왔다. 병실 문은 저절로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카롤링거와 에바는 무사하다. 청결하고 안전한 환경에 있다. 확인했으니 나는 어디로 떠나야 하지? 카롤링거와 에바를 되찾겠다고, 나의 곁으로 돌려놓겠다고 이곳에 왔는데, 이곳은 나의 곁보다 훨씬 따뜻하고 안전한데.
    복도 저편에서 휠체어 바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박사박, 여리지만 일정한 발소리. 휠체어가 다가오는 속도만큼 천천히, 복도 등이 켜졌다. 천장의 전구들이 빛을 내는 모습을 보며 안나는 저 멀리서 빛이 스스로 걸어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빛 속에서 나타난 것은 휠체어를 꽉 채운 거대한 여자.
    그 뒤에서 걸어오는 아름다운 아이.
    안나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에이쥬어.”
    아이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안나 웨일.”
    아이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안나에게 걸어와, 자신의 뺨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내 이름은 비아 웨일이야.”

 

    우리들의 어머니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했더라. 여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최초 실험에는 그녀의 난자로 만든 아이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만든 기술이 우리에게 적용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무력하고 퉁퉁 부어오른 사람이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미워할 수 있는 상대이길 바라고 있었다. 냉혈하고 강하고 우리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만큼 무자비한 인간이기를. 그래서 우리가 승리해서 '정의'가 될 수 있기를. 거대한 왕국을 다스리는 독재자처럼 나쁜 사람이기를 바랐다.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마더 웨일.”
    안나가 휠체어 앞으로 다가가자,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목, 팔, 다리, 어깨, 어느 한 곳 부어오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수많은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코와 입에는 호흡 보조장치를 달고 있었다. 축 처진 볼 살과 부어오른 임파선이 묘하게 연결되어 곧 터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여자는 고개를 들고, 안나에게 미소 지었다.
    “네가 안나구나.”
    “…”
    안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양 주먹을 세게 쥐었다. 여자는 그리운 꿈을 보는 듯 안나를 보았다. 둘 사이에는 침묵과 이질적인 두 개의 분위기가 서로 섞이지 않고 흘렀다.
    “보고 싶었단다.”
    안나는 뒤로 물러섰다.
    등 뒤에는 벽뿐이었다.
    벽에 등이 닿아, 서늘함이 전해졌다.
    안나가 벽에 기대어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동안, 마더 웨일이 심하게 기침을 했다. 호흡기 안쪽에 붉은 얼룩이 남았다. 에이쥬어가, 아니, 비아 웨일이 달려와 휠체어를 붙들었다. 비아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안나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엄마!”
    나는 대체 왜, 여기에.

 

    비아가 복도에 있는 호출 전화로 응급 의료진을 부르자 몇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마더 웨일의 휠체어를 끌고 사라졌다. 덜덜 떨고 있는 안나의 어깨에 비아가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들으려던 게 아니야.
    “나보고 여기로 오라고 했지.”
    “그래.”
    “왜 그랬어?”
    “어머니가 너희를 보고 싶어해.”
    “왜?”
    비아의 눈에 쓸쓸함이 깃들었다.
    “어머니니까.”

 

    모른다.
    나 역시 안나처럼 어머니의 배가 아닌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생명체. 누구의 정자와 난자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상관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사랑한다 해 준 사람을 나는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재단의 광고판이 되고자 했다. 재단을 탈출한 아이들에게 재단에서 자란 내가 행복하다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새로운 ‘형제’를 만난 내 마음이 이럴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
    재회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한 곳에 모이면 어머니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엄마가 저 애를 보고, 안나를 보고 짓는 따뜻한 표정이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엄마, 제가 부족한 인간이라 그런 건가요? 엄마, 엄마는 저 애와 나를 똑같이 사랑하나요? 저를 더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가요?
    엄마.
    엄마는 나의 엄마죠.
    나만의 엄마는 아니었죠.
    알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요.

 

    “이제 어쩔 생각이야?”
    비아가 먼저 물었다. 안나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처음엔… 이곳을 부숴버리고 싶었어. 카롤링거와 에바를 다시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어. 어디에 있는 게 그 애들에게 좋은지 알 수가 없어.”
    비아는 천천히 다리를 까닥거렸다.
    “재단 밖에서, 즐거웠어?”
    안나는 비아의 얼굴을 보았다.
    “모험을 떠나서, 행복했어?”
    죽을 뻔했다. 태양이 우리를 불태우고, 밤이 우리의 사지를 얼렸다. 부족한 약물. 떨어져가는 생필품. 뒷골목의 더러움. 모든 것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했다. 웃고 떠들고 악쓰고 살아남기 위해 사막 도마뱀을 잡아먹고 싸구려 약을 투여하고 뒷골목에 쓰러진 사람의 지갑을 훔쳤다.
    재단 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했다.
    우리 스스로 재단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살아갔지.”
    안나의 애매한 대답에 비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같았어.”
    “너는 왜 우리를 모았어?”
    “말했잖아. 어머니가 너희를 보고 싶어한다고.”
    “그래서, 이 다음은 뭐야?”

 

    어머니는 너희가 웨일 재단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그 후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안전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기억 조작이니, 추가 수술이니 그런 건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야. 어머니만 알겠지. 혹은 어머니도 모르겠지.
    너희는 웨일 재단으로 돌아가고, 나는 여기에 남겠지. 어머니의 곁에, 나만 남겠지.

 

    “나도 몰라.”
    비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할 수 있다면, 너희를 모두 웨일 재단으로 데려가고 싶겠지? 어머니가 그걸 바라실 테니까. 그 외에는 몰라.”
    비아는 안나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인공 관절과 관절이 서로 긁혔다.
    “나는 너희를…”
    모두 없애버리고 싶어.

 

    밤의 고요. 재단의 고요. 병원의 고요. 고요 속에서 안나는 비아에게 물었다.
    “혹시 아델을 본 적 있어?”
    그리고 덧붙였다.
    “폭발 이후에 말야.”
    “그걸 나에게 물을 줄이야.”
    비아가 천장 등을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안나, 너는 그 이후로 아델을 만나지 못했어?”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나지 못했어. 우리는 곳곳으로 흩어졌고, 서로를 찾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 나는 카롤링거 외의 다른 사람은… 만난 적이 없어. 카롤링거가 몇 명의 소식을 전해 준 적은 있어.”
    비아가 몸을 돌려 안나의 눈을 마주했다.
    “어떤 소식을 들었는데?”

 

    그 이후 나는 웨일 재단에 남았지. 공부하고 몸을 단련하고 수술을 받고 사회에 나가 웨일 재단이 어떤 곳인지 홍보했어. 웨일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도왔지. 사회를 돕고, 희망을 주었지. 웨일 재단이 외부에 따로 세운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들을 만나기도 했어. 환자들은 내 손을 만져보고, 내 손의 움직임을 보고 부러워했지. 탄성을 질렀지. 자기도 꼭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했어. 하지만 나는 수술을 받은 이후, 한 명도 나 외의 ‘웨일-차일드’를 만난 적이 없었어. 나는 외부 사람들과 인사를 했지. 식사를 했지. 일을 하고 칭찬을 받고 주목받았지. 하지만 나에게 가족은 없었지.
    오로지 엄마뿐이었어.
    안나, 너는 무슨 연락을 주고받았니.

 

    “주로 죽음이었어.”
    안나의 입에서 실소가 섞인 대답이 나왔다.
    “누가 죽고, 누가 또 죽고, 누가 죽었는데 누구는 아직 안 죽었고. 장례식을 치르기나 했는지도 몰라. 치르지 못했겠지? 우리는 모두 신분이 없으니까 병원에 갈 수도 없었거든. 대충 아무 데나 묻거나 했겠지. 우리는 모두 몸이 불편하니까.”
    죽음밖에 들은 것이 없구나.
    살겠다고 웨일 재단을 나와, 내가 들은 소식이 거의 죽음이었구나.

 

    “아델은 재단에 온 적이 없어.”
    비아가 말했다.
    “나도 아델 소식이 궁금했어. 너라면 혹시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그 폭파 사건의 주범은 역시 너희 둘이라고 보는 게 맞잖아. 아델은 주범, 너는 공범. 그러니까 너는 아델의 소식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모른다니.”
    안나가 묵묵히 입술을 깨물었다.
    “아델은 어디 있을까.”
    그리움인지 분노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
    아델이라면, 발각되었더라도 잡혀가는 것을 거부하고 차라리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웨일 재단이 직접 아델을 죽였거나, 아델 스스로 죽음을 택했거나. 어느 쪽이든 아델은 발각되건 찾아가건 웨일 재단과 접촉한 적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아델을 뺏어갔으리라고, 카롤링거처럼, 에바처럼, 나에게서 빼앗았을 거라고 분노하며 나는 웨일 재단으로 찾아왔는데.
    아델은 없고, 카롤링거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고, 에바는 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쓰다듬는 것을 보고 들었지.
    이 병원에 오니 나는 나약하디 나약하구나.
    내 의수 안에 잠들어 있는 송곳을 쓸 일조차 없어. 비아 웨일, 나는 너를 만난다면 네 목을 꿰뚫고 마더 웨일의 심장을 꿰뚫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약하고, 마더 웨일은 너보다 더 약해 보이는구나.

 

    “아이들을 모두 웨일 재단으로 데려오겠다고 하면, 나를 죽일래?”
    “아니.”
    “왜 그래. 그렇다면 나에게 애들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줄래?”
    “아니.”
    안나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비아에게 말했다.
    “나는 애들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카롤링거만 알아.”
    “그렇구나. 카롤링거의 도움 없이도 찾아낼 수야 있겠지만, 이왕이면 평화로운 게 좋을 텐데.”
    “평화라니… 솔직히 말하자면, 비아, 나는, 내 생각에는.”
    아이들이 이곳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어.
    카롤링거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여기가 집인 것 같아.

 

    “카롤링거가 눈을 떠야 하는구나.”
    “눈을 뜨겠지. 웨일 재단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비아가 무표정하게 안나를 응시했다.
    “지금까지 재단을 거부한 네가 하는 말 치고는 꽤 이상해.”

 

    우리 어쩐지, 지금 이상해.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나는 지금 너희를 모두 없애버리고 싶어. 그게 안 된다면 너희가 나를 없애주었으면 싶어. 그래서 엄마 옆의 단 한 명의 아이로, 엄마가 사랑하는 비아로 남고 싶어.

 

    아이들을 웨일 재단에서 빼내겠다고,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결심하던 나는 지금 재단에 아이들을 맡기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 마더 웨일의 곁에서 떠나 스스로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른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웨일 재단이 나쁜 거라고 생각했는데. 억지로 어른이 되려던 게 사실은 실수가 아니었나 싶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안나.
    나는 아이로 남고 싶지 않아, 비아.

 

    마주선 두 소녀 사이로 밤의 정적이, 웨일 재단의 정적이, 병원의 정적이 무거운 물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끝)

 

 

 

작가소개 / 전삼혜(소설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제8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으로 장편소설 『날짜변경선』과 『내일의 무게』(공저) 『어쩌다 보니 왕따』(공저) 『조용한 식탁』(공저)이 있다.

 

 

   《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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