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백일장 수상작품 함께 읽기⑤] 대지의 이마 위 바람에 쓸리우는 시

 

[청소년백일장 수상작품 함께 읽기⑤]

 

 

대지의 이마 위 바람에 쓸리우는 시

 

 

박찬세(시인)

 

 

 

 

    “헐떡이는 대지의 이마 위로 촉촉하게 맺히는 시.”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빗장을 푸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피곤에 절은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나서면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딛고 버스승강장으로 지하철역으로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선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끄덕끄덕 졸면서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아니 내가 보입니다. 윤중목 시인은 도시에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는 “아스팔트도 자연이다” 말했지만 저에게는 아직은 낯선 아침 풍경입니다. 여러분의 아침 풍경은 어떻습니까?

 

<1994년 제2회 대산청소년문학상 대상>

  아침 풍경화

 

    산서고등학교 3학년 윤석정

매일 대문을 나서면
빗장을 푸는 안개.
아침 바다 하나 은은하게 출렁인다.
 
 
자, 가자.
녹슨 자전거야.
 
 
신작로가 논두렁 옆구리 아래로
쭈욱 미끄러지는 곳으로
페달을 힘껏 밟아 가면
자전거 바큇살이 웅성대는 소리.
길가 풀잎들이 길을 내주며
돌아눕는 소리.
안개가 저절로 풀리는 소리.
 
 
한길의 허리를 타고
한치 비틀거림도 없이 달려갈수록
세상의 끝을 향해
세상의 기쁨만을 몰고 가는
내가 파수꾼이 될 것 같다.
 
 
헐떡이는 대지의 이마 위로
촉촉하게 이슬 맺힐 때쯤
나는 당도하리라.
싱싱한 아침의 나라에서 일렁이며
금방 빨갛게 달아오른
태양도 보리라.

 

    바다처럼 안개가 은은하게 깔린 시골길을 녹슨 자전거가 달립니다. 길옆으로 논들이 펼쳐져 있고 소년은 이 아침의 청량감이 좋습니다. 페달을 힘껏 밟으면 바큇살이 아침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논가에 자란 풀들이 바큇살에 스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안개들이 서서히 열리며 자전거를 타는 소년의 청량감은 점점 고조됩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끼는 소년이 보입니다. 빠른 속도가 곧음을 만들고 곧음의 끝엔 기쁨이 자리합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헐떡이는 소년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맺히고 소년은 학교에 당도합니다. 안개를 걷으며 금방 빨갛게 달아오르는 태양이 보입니다. 시를 읽으며 소년의 등굣길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시는 글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스케치가 필요합니다.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혀야 합니다. 아침 풍경화의 스케치를 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부는 바람에 쓸리우며 쓰는 시.”

 

    가을걷이가 끝이 나면 곡식을 품어주던 들판은 아이들을 품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빈 들판에 불을 놓고 집에서 가져온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연을 날렸습니다. 제각각 만들어온 연을 하늘에 띄우며 누가 더 멀리 날리나 내기를 하기도 하고 연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 같이 모여 시린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저녁놀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같은 바람을 갖고 같은 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일. 어른이 되고 나서야 왜 겨울이면 빈 들판에 서서 연을 날려야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얼레 하나씩 만들어줬는지 알 것 같습니다.

 

<1978년 학원문학상 당선작>

 

 

    대건고등학교 2학년 안도현

바람이 분다 부는 바람에 쓸리우며
우리 연을 띄우자.
아직은 설푸른 슬기로
웃음 함께 모두어
뉘우침이 자욱한 새벽 끝에 서면
참 눈살 시린 하늘이
겨울에도 가슴으로 고여들고
예감은 밤나무 얼레로
풀려 가는데
훠어이 훠이
밀물처럼 밀려 오르는데
한결같이 바람 소리 높은 곳
저 아름다운 꽃잎 흩날리는 햇살은
누구에게 보내는 영원의 노래인가.
사계(四季)가 피었다 이우는
왼쪽 하늘에는
방패연
조개연
오색치마연
아득히 어디로 날리우는 것일까.
바람빛 연한 사랑을 채워둔 한지(韓紙)에
항시 곧고 가는 낱말이
떨림으로 자라는 댓살에
수만의 땅을 물고 가는
건강한 바람의 어깨를 보았으리.
구천(九天)을 돌아온 연줄의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의지(意志)를 보았으리.
훠어이 훠이
언덕받이에선 휘파람 소리
서둘지 않고 우리들의 새벽은
귀를 여는가.

 

    연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바람 때문일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상층부로 연을 띄우기 위해 아이들은 달립니다. 새들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날갯짓 하듯이, 바람을 만난 새가 날개를 펴고 공중을 누비듯이, 바람을 만난 연이 아이들을 제자리에서 연줄을 풀게 합니다. “한결같이 바람소리가 높은 곳에” 닿기 위해 연은 날아오릅니다. 지상의 고통을 잊고 더 큰 자유의 품을 맛보기 위해서일 겁니다. “수만의 땅을 물고 가는/ 건강한 바람의 어깨”일 겁니다. “아직은 설푸른 슬기”지만 “참 눈살 시린 하늘이/ 겨울에도 가슴으로 고여들”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연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바람이 아니라 연줄 때문인 것 같습니다.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의지” 때문이고 “서둘지 않고” “귀를 여는” “우리들의 새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인은 잠수함의 토끼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 아프면 가장 먼저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말이겠지요. 지금 어디 아픈 소리가 들리는 곳은 없는지 귀를 기울여봅니다.

 

 

작가소개 / 박찬세(시인)

–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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