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준은 그 애를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장에서 발견했다. 그 애가 쓰레기장 구석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있지 않았더라면, 선준은 그 애가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었다. 무심해보이긴 하지만, 새로운 불운의 형태를 굳이 쓰레기장에 내려앉은 소년으로 상상해 볼 필요는 없었다. 선준이 고약한 냄새를 맡지 않으려 숨을 참고 쓰레기 봉투를 던지고 있을 때, 그 애가 몸을 일으켰다. 그 애는 조그만 머리를 쓰레기통의 질펀한 옆면에다 그대로 박았다. 아이는 잠에 취한 듯 휘청거렸다. 선준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주소와 집 전화번호와 재학 중인 학교의 이름 따위를 물었지만, 그 애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했다. 그 애는 해쓱한 얼굴로 말했다.

 

갈 곳이 없어요.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은 선준이 도망칠 수 있는 기회조차 앗아갔다. 계속 묻다가 대답이 없으면 그냥 가려고 했던 선준이었다. 그러나 사정없이 찢어진 아이의 바짓단이 눈에 들어왔고, 그대로 놔뒀다간 기절할 것 같은 핏기 없는 얼굴이 보였다. 경찰서에 데려다 줄까? 선준이 묻자 아이는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경찰서에 가는 게 나을 거야. 너를 도와주실 수 있을지도 몰라.

안 돼요. 경찰서에 가 봤자…… 저는 아무 것도 없어요. 저를 내쫓을 거예요.

 

선준은 난처했다. 하지만 이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평생 처음 본 낯선 사람을 집으로 들인다는 건 불쾌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체념하고 뒤를 돌면 다음 날 아이의 얼어버린 시체가 쓰레기장 한 쪽에 남아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되길 바랐다는 듯, 아무런 반항 없이 끌려 왔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애는 그 애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한 선준의 집으로 들어섰다. 아이의 표정은 평온했다.

 

어쩌다 저 애를 들였을까. 선준이 새 집으로 이사 온 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새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좀 더 넓었고, 화장실을 빼고도 방이 두 개나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사와 가까웠다. 그래서 이사를 가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다. 회사와 집과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선준의 일상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집이었다. 집을 옮기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 서툰 선준이 유일하게 어깨를 펼칠 수 있는 곳,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만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곳. 조그맣지만 안락한 나의 집. 선준이 몇 년 전부터 바라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저 애를. 선준은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는 바닥을 보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감정은 평화로운 뇌 속을 비스듬히 지나가는 지진과 비슷했다. 선준도 그걸 알았다. 처음에는 동요하지만, 빠르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감정이 지나간 후, 선준의 앞에는 거대한 쓰레기 밭이 생긴다. 진짜 지진이라도 났던 것처럼 마음이 황폐해지곤 한다. 방금 전에도 어떤 감정이 찾아왔었다. 리히터 규모 불분명. 감정의 이름은 동정심이었다. 머리 꼭대기를 점령했던 동정심은 그 애의 손을 잡고 집의 문을 열어줬고 그래서 이 집엔 그 애가, 그 남자애가 있었다. 후회해도 변하지 않았다. 선준은 또 하나의 문제를 제 팔로 직접 껴안은 셈이 되었다. 불길했다. 뒤를 돌아 남자애를 쳐다봤다. 그 애는 하얀 발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도 우리가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한 집에서 살게 됐잖아. 그렇지?

 

그 애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덜 자란 식물의 뿌리처럼 힘없이 들렸다. 아이는 말 없이 눈을 끔뻑였다. 선준은 최대한 다정하게 웃으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뭔가, 그래도 아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네 이름이라도 알아야지.

 

사실 선준은 그 아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그 애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선준은 하루 정도 그 애를 집에서 재워주고 나면 내보낼 작정이었다. 그건 낯선 이에게 베풀 수 있는 최선의 호의였다. 그 이상은 동정심도 발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무례하다는 생각에 분노하게 됐다. 실제로 화를 내진 못했지만, 호의를 권리처럼 누리려는 사람은 어떻게든 피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그 애는 표정 없는 얼굴로 멀뚱히 선준을 보았다. 이 집에 온 것이 선준의 아량 넓은 행동이었던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답답했다.

 

그래. 대답 안 해도 된다. 근데 내가 내일 회사에 나가서 말이야. 그 때까지는 네가 집에서 나가줘야 할 것 같아.

그렇지만 저는…….

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널 믿어줄 순 없어. 나는 네 이름도 몰라.

아무 것도 안 할게요. 정말 아무 것도 안 건드리고 있을 수 있어요. 전 더 갈 곳이 없어요.

 

잠깐 기시감이 들었다. 그러나 선준은 그 애가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갈 곳이 없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다시 그 쓰레기장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결정을 했다. 그 애가 어떤 아이든,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됐다. 그리고 그 아이는 최악의 상황을 벌이기엔 많이 연약해 보였다. 아이는 선준의 옆에서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에게 유예 판정을 내렸다. 며칠동안은 더 집에 있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선준은 그 애에게 옷을 내어 주고 안방으로 들여보냈다. 그 애는 무릎을 다 펴지 못하고 구부정하게 걸었다. 괴물이 침을 삼키듯, 그 애가 문을 닫는 소리는 둔탁하고 짧게 퍼졌다. 선준은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결국 원점이었다. 어쩌다가. 내가 어쩌다가. 선준은 텔레비전을 틀고, 채널을 돌리다 잠이 들었다. 실소와도 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회사였다. 눈을 뜨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양치질을 했다. 다른 건 신경 쓸 새도 없이 지하철 역을 향해 뛰었다. 아침의 젊은 직장인들은 도로를 거슬러 가는 구급차들보다도 바쁘다.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리며, 빨리 가지 않으면 제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뛴다. 선준은 십 오 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틈에 눌리며 차에서 내렸다. 출근 시간은 아주 조금밖에 단축되지 않았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고 자랑했던 말이 무색하게, 선준은 헝클어진 머리와 축 쳐진 넥타이를 하고 회사에 나타났다. 선준을 대하는 상사들의 태도도 여전했다. 갑작스런 변화는 기적적인 성공 스토리에나 있는 일이었다. 회사에 와서 선준이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빈틈없이 서류가 쌓인 자신의 책상이었다. 불쌍한 내 책상. 가끔 선준은 그의 상사들이 제 책상 위에서 블록 쌓기 놀이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쌓는 게 블록이 아니라, 건드려도 쓰러지지 않는 파일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달랐지만.

 

선준 씨. 지금 별 일 없나?

 

선준의 상사가 그를 불렀다. 선준은 대답 대신 상사의 옆으로 가서 섰다. 상사는 선준을 보지도 않은 채 눈썹을 찡그렸다. 무안해진 선준이 짧게 대답했다.

 

부르셨어요?

그게, 우리 회사에서 봉사활동을 신청했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신입사원들이 가는 게 좀 좋지 않을까 해서.

아…….

요즘에 뉴스 보면 많이 나오잖아, 그런 거. 사회 환원인가 뭔가 해서. 봉사활동 했다고 기사라도 몇 편 나면 회사 이미지도 좋아지겠지 해서 신청한 모양이야. 노숙자 점심 배식, 그런 건가 봐. 우리같이 늙은 사람들이 그런 델 갈 순 없으니까.

 

상사는 자신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는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듯 조용히 선준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게 더 큰 압박이 되었다. 선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니터에 펼쳐진 통보 형식의 봉사활동 안내문을 살폈다. 안내문은 상사의 손에도 들려 있었다. 일찌감치 인쇄해 뒀던 듯 했다. 거절할 수 없었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아마 버스를 대절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표정 좀 펴고.

 

상사가 입꼬리를 비죽였다. 선준은 상사가 건넨 종이를 받아들고 자리로 갔다. 의자에 앉아 종이를 훑어보자 새삼스럽게 자신이 한심해졌다. 학생 때 억지로 채웠던 봉사활동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팠다. 선준의 선행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자신이 입는 피해를 피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적당한 선행 정도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선준을 옥죄어 오는 상황들은 마치 그를 성인聖人으로 만들겠다는 양 온갖 친절을 요구하고 있었다. 요즘에 죄를 많이 지었던가. 고해성사의 보속이 끝없는 선행이었던가. 선준은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눈치를 보면서도 일찍 퇴근했다. 피곤했다. 상사는 선준에게 자신의 책임을 떠맡긴 게 미안했던지 여섯 시의 퇴근을 허락했다. 버스 좌석에 앉아 피로를 쫓으려 애쓰며, 집에 가면 그 애가 있다는 게 기억이 났다. 그러자 불안감이 허리를 쑤셨다.

 

오늘 집에서 뭐 했니.

 

현관문을 열자마자 한 말이었다. 아이는 공손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에게 혼난 꼬마처럼 등을 움츠리고 앉은 꼴이 영 보기 싫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지만, 그 애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선준은 양말을 벗어 세탁기 안에 던져 두고 소파에 누웠다. 바람이 다 빠진 소파가 선준의 쪽으로 약간 내려앉았다. 남자애는 선준과 같은 소파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눈이었다. 선준은 당장이라도 여긴 내 집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애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려있는 걸 알아챘다. 그 불편함을 담은 눈빛도 선준의 같잖은 오해였을지 몰랐다. 남자애는 어제 저녁에 침실에서 끌어왔던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올린 상태로 대답했다.

 

그냥 자다가…… 잤어요.

밥은 어떻게 했니.

별로 배가 안 고파서 안 먹었어요.

난 너 병 걸리게 할 생각까진 없다.

병 안 걸려요. 괜찮아요.

밥은 챙겨 먹어. 라면 끓일 줄 알아?

네.

그럼 라면이라도 끓여 먹든지 냉장고에서 반찬이라도 좀 꺼내 먹든지 하고.

 

선준은 그렇게 말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냉장고 안의 공간을 채우는 건 달걀 껍데기 색의 불빛과 거의 텅 비다시피 한 반찬통들 뿐이었다. 뭘 사 두기라도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남자애는 밋밋한 표정으로 선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애의 시선을 피하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기계 안에서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만지고 그러진 않았지?

네.

 

대화는 곧 끊겼다. 시간은 잠을 참지 못하고 아주 더디게 걸어갔다. 초침의 움직임이 느려져갔다. 늪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늪에 가 본 적이 없는데도.

 

어릴 때 정글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짧고 단조로운 동요를 부르며 탐험가가 될 거라고 자랑스레 말했었다. 그러나 지금 늪은, 정글은, 오지는, 까마득한 숲과 산은 선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곳에 가면 선준은 혼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생물체들이 선준의 적이 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모두를 적으로 보면서라도 살아야 했다. 현대 사회를 흔히 사람들의 정글이라 부른다. 도시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생명을 입증하는 불빛들이 꽉 차 있는데, 사람들은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한다. 친구라는 터울 안에서 서로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진짜 친구를 만났지만 그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선준은 젊지만 느리고 건장하지만 할 줄 아는 게 없는 어리석은 탐험가가 됐다. 그러나, 선준의 존재를 아예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그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정글은 그런 곳이었다. 하루하루를 자신이 그곳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곳. 그러자 꿈은 병들었다. 의미가 사라졌다. 선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추억은 없었다. 어차피 지나가버린 시절의 환상이 주는 것은 단시간의 행복일 뿐이었다. 그런 건 뒤로 제쳐둬도 상관없었다.

 

선준의 손에 아이의 발가락이 닿았다. 그 와중에도 발동한 냉점의 감각은 아이의 피부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다는 걸 알아챘다. 선준이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애는 눈을 감고 있었다. 숨소리가 얌전히 들리는 것을 보면 자고 있는 듯 했다. 선준은 아이에게 더 두꺼운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잘게 떨리는 아이의 속눈썹이 애처로웠다. 이 아이도 언젠간 긴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아이는 이미 그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선준은 생채기가 가득한 아이의 발을 쓸었다. 아이는 두 팔 가득 이불을 껴안고 자고 있었다. 그 애는, 꼭 사람의 몸체에서 함부로 떨어져나간 살덩이같았다. 생명력은 없으나 피와 살이 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그 애와 선준은 몹시도 닮았다. 아이의 등이 불편하게 구부러졌다. 선준은 아이를 고쳐 눕히고서는 침실로 들어갔다. 아주 작은 소리조차도 나지 않는 밤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었다. 선준은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왔다. 버스가 회사 앞의 주차장에 들어서 있었다. 선준은 버스에 올랐다. 삼십 분 쯤 지나 버스는 어느 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노숙자들의 배식소는 방학 중인 초등학교의 급식실이었다. 봉사활동에 온 사람들은 그나마 얼굴이 익숙한 입사 동기들과,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부모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들 뿐이었다. 그녀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착하기도 하다며 웃어보였다. 선준도 함께 웃으려는 노력을 하며 그녀들이 주는 앞치마와 비닐장갑을 받아들었다.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녀들은 자기 아이들의 급식실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종의 감시 차원에서 온 듯 한데도 아주 익숙하게 행동했다. 그녀들의 태연한 행동과 비릿한 말들 사이의 간극이 날선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씁쓸함을 숨기며, 선준은 뒤로 돌았다. 앞치마의 끈을 등 뒤로 묶고 비닐 장갑을 꼈다. 스테인리스 솥에서 하얀 김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배식이 시작됐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들은 검은 모자, 혹은 헤져서 검게 보이는 모자를 쓰고 두꺼운 점퍼를 입었다. 그들의 불룩한 주머니 위로는 목장갑의 손가락이 튀어나와 있었다. 선준이 맡은 일은 식사 시간 후 뒤처리였다. 노숙자들은 나름의 질서가 있었기에 청소에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선준은 이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바랐다. 성실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의에 의한 봉사를 한다고 해서 뿌듯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학생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그랬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터운 지루함이 다가왔다. 한 사람이 수십 번 복제된 듯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폐물을 처리하는 공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게 다 버려진 것처럼. 숟가락도, 식은 반찬도, 김이 피어오르는 국그릇도, 한 건물 전체가 폐기된 듯 했다. 그 안에 있는 선준 자신마저도 버려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고 부대끼며 앉아있는데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국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왔음에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진 것처럼, 선준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선준은 물수건을 집었다. 벌건 양념과 밥알과 누런 국물이 묻은 탁상을 닦았다. 기계적으로. 공장스럽게. 그러자 그들 모두와 야릇한 유대감이 들었다.

 

아저씨, 맛있으세요?

 

선준은 유독 천천히 밥을 먹는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점퍼에 달린 모자로 이마까지를 가리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자, 거뭇한 얼굴 색과 그 위의 진한 주름들이 보였다. 그의 눈썹은 하얗게 새었고 얼굴에선 질척한 땀이 흘러내렸다. 선준은 그런 모습을 무시하려 애썼다. 자신이 착한 청년으로 보이길 원했던 것이지, 제 앞에 앉은 사람을 추악의 완전체로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선준은 자신이 그들과 닮아보인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폐기되었더라도 자신은 생생해야 했다. 그 안에서 의미를 가져야만 했다. 그래야 선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음식이 참 맛있네. 아주 착한 사람이야.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문장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었음에도, 선준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웃었다. 그는 그런 말이 선준을 떠나게 만들 줄 알았었는지 선준을 무시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숟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다 식은 국물이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러나 선준은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이것 역시도 일종의 동정심이 만들어 낸 거짓 선행인 듯 했다. 어쨌거나 선준은 그 말을 자신의 입으로 뱉었다. 노숙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선준을 선명하게 쳐다봤다. 아까와 같은 낯이었음에도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진지한 표정에 되레 긴장을 한 건 선준이었다.

 

이름 없어.

네?

 

선준이 되물었다. 노숙자는 약간 성난 표정으로 또렷이 말했다. 이름은, 필요, 없어, 나는, 이름이, 없어. 선준은 제 이마가 땀으로 젖은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아까 자신이 그를 보고 추악함을 느꼈듯 노숙자의 눈에도 제가 더없이 추악하게 보일 것 같았다.

 

이름이 왜 필요하지 않아요. 이름이 없으면…….

내 이름을 알아서 뭘 할 건가.

뭘 할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냥 저는…….

이름은 더 이상 내게 가치가 없어. 날 찾는 사람도 없고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어. 사람들은 내가 없어지길 바라고 있겠지. 그러니까 내 이름은, 3호선 X역 5번 출구 노숙자 정도면 충분해.

 

그는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투로 얘기했다. 해야 할 말을 잊은 선준은 뒤로 약간 물러섰고, 그 사람은 게걸스럽게 국물을 들이켰다. 선준은 눈을 끔벅였다. 그는 벌써 밥을 다 먹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잔반 처리대 쪽으로 가고 있었다. 주방에 있던 여자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청년, 여기 흘린 거 있는데 좀 닦아 줘요. 청년은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행주와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음식을 치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또한, 거기에선, 단지 음식물을 치우기 위한 사람에 불과했다.

 

 

 

봉사활동을 마친 시각은 오후 두 시였다. 선준이 집에 돌아가려고 준비를 하던 참에 회사에서 문자가 왔고, 봉사가 끝나면 다시 회사로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야 했다. 그의 상사는 선준을 갈구기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저번에 일찍 가서 밀린 일이 좀 있으니, 오늘 다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경악스러운 말이었지만 일을 했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에 회사를 나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순간 선준은 자신이 아침마다 내리고 저녁마다 타는 역이 3호선 X역인 것을 알았다. 낮에 봤던 그 노숙자가 생각났다. 선준은 5번 출구 쪽으로 뛰어갔다. 그건 선준의 기준에서 멍청한 일이었지만, 그는 멍청해지고 싶었다. 선준이 바쁘게 달려가자 출구의 계단 아래쪽에 신문지를 깔고 그 날 구걸한 돈을 정리하는 노숙자가 보였다. 선준은 그에게로 뛰어갔다. 노숙자는 사나운 눈으로 선준을 노려봤다. 선준은 숨을 고르고 해맑게 웃으며 노숙자에게 인사했다.

 

접니다. 아까 급식실에서 봤던 청년이요. 아저씨, 기억하세요?

누구십니까.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었잖아요. 저, 접니다. 아저씨에게 성함을 물어봤던 사람이요.

죄송하지만, 전 어떤 기억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할 때 바로 잊어버립니다. 그 일도 반쯤 잊었지만 아마 나는 이름이 없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그게 궁금해서 온 겁니까.

 

그게 궁금했던가. 선준은 다시 멈춰섰다. 자신이 왜 그 노숙자에게로 뛰어갔는지, 지하철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왜 자신은 그에게 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제 이름을 물어봐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다. 불편함을 느낀 것도 아니었고, 한 번 쯤 마주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였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의미를 두었던가. 그에게 의미가 있었던가. 상실감이 들었다. 나는 당신에게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어. 당신이 내 의미를 빨아먹은 거야. 선준은 그에게 달려들기 위해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팔은 아주 느리게, 다시, 가라앉았다. 노숙자는 한심하단 얼굴로 선준을 바라봤다. 볼 일 없으면 가요. 나도 이제 자야 합니다.

 

그래. 나는 절대로 당신에게 다른 의미를 주지 않을 거다.

당신에게 분노하지도 않을 거고, 당신을 증오하지도 않을 거고, 혐오하지도 않을 거다. 내게 의미가 있는 건…….

 

경쾌한 알림음. 지하철이 오고 있었다. A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A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선준은 지하철 쪽으로 달려갔다.

 

 

 

잘 있었니?

 

선준이 아이에게 인사했다. 자신과 닮은 아이. 자신과 똑같이 탐험가의 꿈을 꾸고, 정글로 뛰어들고, 의미를 찾기 위해 다른 이들과 싸우게 될 아이. 그런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일주일 새 아이는 선준과 많이 비슷해졌다. 선준처럼 말했고 선준처럼 걸었고 선준처럼 움직였고 선준처럼 생활했다.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고 눈꺼풀을 쓰다듬을 때 선준은 여물지 못한 저의 어린 시절을 느꼈다. 너는 뭘 생각하고 있니. 선준은 되도록 아이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자신과 같은 의미를 담고 살고,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선준 자신의 모습을 보길 원했다. 선준 자신의 의미가 더 돋보이도록. 나의 의미가 늙을 때까지 성장하고 남의 위에 올라서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 아이를 통해서.

 

맞다.

왜요?

혹시 너, 이름이 뭐니?

 

아이의 얼굴 위에서 알 수 없는 감정선들이 복잡하게 얽힌다. 아이는 산뜻하거나 혹은 울음을 삼키거나 혹은 다정하거나 혹은 부드럽거나 혹은 애처로운 얼굴로 선준을 응시한다. 선준은 아이의 대답을 기다린다. 보채지 않는다. 그러자 아이가 입술을 벌린다.

 

없어요.

 

어차피 텅 비어있던 아이다. 태어났다는 이유로 살아야 했던 아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었던 아이다. 선준이 아니었다면 영영 잊혀졌을 아이다.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선준에 의해 의미를 가지게 된 아이는 선준에 의해 정의되어야 했다. 선준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네 이름을 지어줄게.

뭔데요?

선준. 이선준.

그럼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나는…….

 

선준은 이제 선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선준의 혀에 선준의 이름이 닿는다. 선준이 웃는다. 선준은 선준을 안는다. 선준은 선준의 목을 쓰다듬으며 고백한다. 그의 이름을. 나는 너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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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줄

선준은, 동정심이 많은 인물인가봐요. 글, 잘읽었습니다:)

김선재

* '그애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덜 자란 식물의 뿌리처럼 힘없이 들렸다." –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든 상황입니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힘없이 들'린다는 진술은 좀 과하게 여겨집니다. 차라리 "아이는 작은 식물의 뿌리처럼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가 나을 듯 합니다. * "그래도 우리가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한 집에서 살게 됐잖아. 그렇지?" : 단지 하룻밤 재워줄 아이에게 '살게 됐'다고 말을 건네지는 않겠죠. "같이 밤을 보내게 됐잖아."가 더 적절할 듯 합니다. * "불안감이 허리를 쑤셨다." – "불안감에 허리가 쑤셔왔다." * "기계 안에서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 어떤 기계를 말하는 건지 모호합니다. 문맥상 냉장고의 냉각기 소리를 말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는…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