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J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나였다.

 

그를 J라고 지칭하는 데에는 별 의미 두지 말길 바란다. 이니셜일 뿐이다. 오로지 나만이 그의 이름을 안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그에게 참으로 특별한 존재 같아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그의 의사가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히 가장 가까운 사이는 맞을 것이다. 우린 같이 살았고 매 순간 함께했고 사랑했다. 연인, 그래. 우선은 연인이라 치자. J와 나는 연인이었다. 목소리에 담뿍 설렘을 담아 말을 하면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경청하는 것이 퍽 예쁜 사람이었다. 어딘가 모를 교활함이 나를 미치게 했지. 그는 도통 입을 여는 법이 없어서 그가 입을 여는 것을 보려면 꽤나 기다려야 했는데 그 기다림마저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내가 신나서 재잘대고 있으면 낮은 음색으로 중간중간 맞장구를 쳐 주는 J는 사랑스러움의 극치였고, 그 사랑스러움 덩어리에 나는 매일 새롭게 반했다. 연인 사이였다면서 왜 그에게 있어 내가 특별한 존재였는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냐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 확실히 못을 박고 가겠다. 그것은 아까 전까지의 얘기다.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아니 사실 나에게 있어 실질적으로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그 역시 나를 사랑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지금 그에게 숨을 고르며 달려가는 중이다. 어서 그에게 가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다, 그가 좋아하던 간질간질한 내 목소리로 그의 품에 파고들면서 입 맞추고 싶다. 이런 나를 본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좋아하던 그 교활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일까.

 

그래서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 말하고 가겠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막 봄이 된 내 눈에서 눈이 녹듯 눈물이 흐른다. 이 눈물은 그를 향한 내 마음의 증표이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는 상상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리라. 그가 나를 사랑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어쩌면 그가 그에게 붙어 있는 위태로운 숨을 끊는 그 순간, 딱 그 순간만큼은 나를 증오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어떤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던가, 원망 서린 눈이었던가, 사랑으로 가득찬 연정의 눈이었던가. 미안해, J.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어.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말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교활한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할까 무서워 나는 그만 손으로 그의 눈을 찔러 버렸다. 이미 그의 심장은 터진 뒤였다. 사실 정말로 터졌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그의 마지막 순간에 널찍이 퍼져 있던 핏덩이들이 그의 심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를 묻었다. 내 손 역시 온통 그의 붉은색으로 범벅되어 있어 무언가를-예를 들면 꽃이라든지-그와 함께 묻어주지는 못했다. 그의 피가 나 아닌 다른 것에 묻는 것이 싫었다. 아마 당신도 그랬을 테지, J. 나는 끝까지 당신을 생각했어. 나를 생각했다면 이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이미 없어진 눈으로 그가 내게 말할까 무서워 나는 그만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나는 지금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후회하고 있어, J. 그래서 네게 돌아가려 해.

 

눈을 동쪽으로 서쪽으로 굴려가며 그의 무덤을 찾았다. 여기였던가, 아니면 저기였던가. 시간이 없었다. J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J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그의 흔적이 묻었던 손과 발로 무작정 흙을 파냈다. 고동색의 흙 속에서 나오는 드글거리는 개미, 콩벌레, 따가운 나뭇가지, 그들 속에서 유난히 화사한 무당벌레, 하나같이 다 역겨운 것들. 지금껏 그가 이런 것들과 함께 있었다니, 그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져 다시금 눈물이 나왔다. J, 어떡하면 이런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방법은 하나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하는 것.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것.

 

그 미개한 것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틀림없는 그의 살결.

 

J, 드디어 널 찾았어!

환희에 찬 나는 옆에 보기만 해도 환멸이 나는 개미 따위의 것들이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흙을 파 그의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제 우리는 평생 함께하는 거야, J.

사랑해.

 

 

 

 

 

 

 

 

[ 뉴스 속보입니다. 오늘 아침 8시경, 서울시 XX구 XX동 한 아파트 화단에서 사람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스물일곱 살 최모 양은 평소 자신이 기르던 애완 고양이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숨져 있었는데요, 아직은 정확한 사건의 경위를 파악 중에 있다고 합니다. 김 기자 …]

 

" 저게 뭐야, 무슨 일 있어? "

" 아, 좋은 아침. 아파트 화단에서 누가 죽었나 봐. 자살 같다는데. "

" 뭐? 화단에서? "

" 응. 어제 밤에 그런 것 같은데. "

" 화단에서 자살을 했다고, 옥상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가능해? 아니 그것보다, 그런데 좋은 아침이라는 거야? "

" 우리 아파트 일도 아니고, 뉴스인데 뭐. 가능하지, 추워 죽겠는 이 날씨에 밤새 저기서 저러고 자면 얼어 죽지.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 그런데 저 사람, 좀 아팠었나 봐. "

" 어디가? "

" 동물을 사람으로 여겼다는데, 그걸 동물 성애라고 할 수도 없고. 그 왜 있잖아, 옛날에 베를린 장벽과 결혼한 여자,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그리고 약간 정신도 피폐했나 봐. 싸이코패스 같은, 그런 거. "

"  정말? 그럼 저 사람이 자기가 키우던 고양이도 죽인 거야? "

" 나야 모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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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이김선재 Recent comment authors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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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대 반전이 있었네요. 동물 성애자가 실제하는지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ㅠ 물론 소설을 쓰는 것에 있어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경계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어떻게 '잘' 그려내느냐가 관건이겠죠. 이 작품의 전반부를 읽으며 문득 든 궁금증은 그런데 '왜' 죽였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경지를 알지 못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가능을 불가능으로 만들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그 과정을 건너 뛴게 아닌가 싶어요. 이 작품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사랑했고 사랑받았지만 그것을 늦게 깨달아서 그와 죽음도… 더보기 »

지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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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아

안녕하세요, 마약님. 글 잘 읽었습니다. 베를린 장벽과 결혼한 여자는 물건이나 무생물에 사랑을 느끼는 오브젝텀 섹슈얼리티란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죠. 끝에서 이름모를 사람들의 대화에 동물 성애라고 할 수도 없고 라는 언급이 나오긴 했지만 주인공인 '나'는 동물 성애자처럼 보이네요. J를 사람이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고양이여서 좀 충격먹었답니다. 흔하지 않은 소재를 이렇게 보니 새롭네요. 다 읽고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는데, '나'는 왜 J를 죽인 건가요? 묘사에 따르면 J의 심장은 터진 것 같고 (아니면 터진 것처럼 보이고) '나'는 놀라서 J의 두 눈을 찔렀다는데… 사랑하는 대상을 그렇게 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런 행동이 아무래도 일반적이지 않다보니, 그게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